어느 가을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를 둘러보았다.

고작 그 노래 하나로 평생 울궈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지만, 화개장터 근처에 친척댁이

있는지라 그래도 드문드문 들러보는 화개장터는 조금씩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근처를 걸을 수 있는 산책길 코스가 정비되었고, 화개장터의

옹기집이니 반찬가게니 좀더 번듯하고 깔끔하게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거다.


이전에 화개장터는 그저 유서깊은 재래시장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조금씩 이렇게

초가지붕도 엮어올리고 구석구석 황토의 분위기를 살려넣어 좀더 전통 문화나 정서가

담기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한 재미다. 바가지머리 모양으로 초가지붕을 올린

남자화장실 건물 역시 그런 의식적인 노력의 일환일 거다. 파랑 작대기인간이 서있는

화장실 사인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 양쪽 옆구리춤에 쓰인 '남자'란 글자가 정겹다.

여자 화장실도 일관성있다. 빨강 작대기인간 양쪽 허리춤으로 역시 '여자'라고 두글자를

적어넣은 분은 틀림없이 동일인물.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다면, 화개장터와 하동, 하면

역시 박경리의 '토지'만한 컨텐츠가 없으니만큼 서희랑 누구더라, 그 남자캐릭터를

남녀 화장실의 표지모델로 썼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하늘을 이리저리 내키는대로 구획하고 있던 까맣고 강단진 나뭇가지들이 까칠해 보였지만,

그네들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주홍빛의 살짝 길쭉하고 둥근 열매는 마냥 풍만해보였다.

장대가 닿기 쉬운 가지 아랫자락은 몽창 털린 채, 바짝 손들고 선 나무 꼭대기층에나

듬성듬성 남은 채 대책없이 매달려있던 감들. 정확히 말하자면 감 중에서도 대봉시들이다.

감을 딴다는 것, 감이 아니라도 나무에 달린 뭔가를 딴다는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사실

평소에 별로 생각을 해볼 일도 아니고 상상을 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나무

작대기 끝에 천으로 대강 기워진 주머니를 달아서는 하나씩-좀 숙달되면 세네개씩-따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없단 건 조금은 놀랍달까. 더 편하고 더 빠른 방법이 없다니.

감나무를 기어오르기란 생각보다 수월한 게 디딜만한 어깨를 여기저기에 마련해둔 거다.

나무 높이의 반절만 기어올라도 잔뜩 달고 있는 묵직한 대봉시들의 무게로 추욱축 늘어진

가지를 손쉽게 털 수 있다. 여차하면 장대 대신 손만 뻗어도 될 만큼 눈앞에 매달린 녀석들.

감나무에 달린 건 감뿐 아니라 지저분하게 말라붙은 감잎새들도 있어서, 사진 찍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를 찍으려니 잎사귀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수목에 뭔가 너무 지저분해 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거의 감나무와 밤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이 산에서 정말 가을철 한 때는 온통 감빛 열매가 지천에 매달린 풍경은 꼭 정제되고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닌 게 사실이니까.

올해는 태풍도 여러 번 다녀가고, 감산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여느 해보다 감이 조금 달린

편이라고 했지만 딱히 작년이나 이전의 풍경을 못 봤으니 이 자체로 충분히 감탄하고 말았다.

저렇게 얇고 허약한 가지 끄트머리에 저토록 씨알이 굵고 무거운 열매를 우글우글하게

피워올린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 그야말로 일종의 기적인 듯 싶다.

보다 보면 나무 끝에 이렇게 이쁜 엉덩이처럼 두개가 톡 붙어서 몽실몽실 커나간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브이자로 갈라져 자라나간 가지 양끝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듯 마주보며 커나간

녀석들도 있었다. 저런 녀석들은 장대를 요리조리 움직여 한큐에 담아내는 재미도 있지만

가지째 잘 꺽어내서 어딘가 걸어둔채 오늘의 가을을 기억하는 재미가 더 쏠쏠할 듯.

장대로 훑어낸 대봉시들은 꼭지 끝에 남아있는 나뭇가지를 떼어내고 포대에 차곡차곡 담는다.

어떻게 보면 출산이랑 같다. 나뭇가지로 연결되어 한몸이던 나무와 열매를 억지로 떼어내선

탯줄과도 같았을 '꼬다리'를 잘 정돈하고 나면 저렇게 배꼽자국이 거칠게 남는다. 이녀석들,

포대 안에서 응애응애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감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감이 익을수록, 조금씩 커질수록

감나무 가지 역시 고개를 숙여간다. 급기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툭 떨궈지고 마는 시선.




@ 경남 하동. 11월말.

@ 청남대

@ 헤이리

@ 헤이리

@ 경남 하동

@ 수원 화성

@ 서울대공원

@ 충북 보은

@ 충북 보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