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을 하던 문규현 신부가 쓰러졌다. 문 신부는 단식 10일째 22일 새벽 5시 신월동 성당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문 신부는 숨을 쉬지 못했고 맥박도 뛰지 않았다. 함께 있던 나승구 신부(역시 단식 중)가 심장 마사지를 했고, 119를 불러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겼다. 응급조치를 마친 뒤 문 신부는 오전 8시 55분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진 상태다.

   
ⓒ시사IN 장일호
병실을 지키는 문정현 신부와 용산참사 유족 전재숙씨.
나승구 신부는 “오전에 쓰러지실 때 심장마비가 왔다. 병원 쪽에서 그 때 뇌로 산소공급이 안 돼 뇌손상으로 의식이 없다고 한다. 하루 정도 있으면 의식을 회복할 것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여의도 성모병원 최승필 응급실장은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지를 했다. 현재 의식은 없지만 혈압은 안정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최 실장은 “큰 위기를 넘겼지만 의식이 돌아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의식은 하루정도 지나면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문수
지난 5월18일 저녁 용산 참사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광주항쟁을 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한 오체투지로 순례중인 문규현 신부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현재 병원에는 전종훈 신부와 문규현 신부의 여동생 두명이 병실을 지키고 있다. 문 신부의 형인 문정현 신부는 문 신부가 중환자실로 옮겨지자 용산 참사현장으로 돌아갔다.
용산 참사현장에서는 문 신부를 비롯해 전종훈 신부, 나승구 신부 등이 단식을 계속 하고 있었다. 전재숙 씨 등 병원을 찾은 용산 참사 유족들은 “(단식)중단하셔야 한다. 안 그러면 저희도 모두 단식에 들어가겠다”라고 말했다.


2009년 10월 22일 (목) 13:38:38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                                                               *                                                               *

네이버 포털 중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를 제하고는 기사창에 뜨지도 않았다. 온통 '서울대생이

술통에 쩔어간다'라느니, '김태희가 생각보다 글래머'라느니, '강남 5대미녀, 난 양치질해도 화보'

라느니, 포르노가 어쩌구, 콘돔이 어쩌구저쩌구.


어제는 생각없이 웹툰을 뒤지며 뭔가 찾다가 꽤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무슨 광고/홍보용

웹툰이 그렇게 많아. 심지어는 삼성 MP3플레이어 아이콘을 소재로 한 웹툰도 있었다. '도전만화'에서

'요일 웹툰'으로 정식 등극하기 위해서, 혹은 보다 많은 노출이 되어 '베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추천을

해주고 높은 평점을 매겨줘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으론 상업자본의 분탕질에 너무 취약하지 않을까.


인터넷이 처음 도입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열광했었다. 정보격차를 줄이고

그야말로 '1인 미디어' 시대의 도래로 양질의 정보가 선순환할 거라 생각했었던 게다. 그런 식의 환상은

이미 사그라든지 오래, 오히려 '빅브라더'라거나 하루키의 1Q84식으로 말하자면 '리틀피플'이 날뛸

가능성만 높이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전보다 나아지진 않은 것 같다.


문 신부님,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얼른 일어나셔요..ㅜ





 #1. 시사IN이 어떤 생각으로 특별판을 내는데 합의했을까.

시사IN이 단순히 자신의 명의로 '추석 특별판'을 무려 15만부나 찍는다는 사실에 들떠서, 인지도가 올라가서 앞으로 많이 팔아먹을 수 있겠다고 덥썩 합의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시사IN이 집회나 거리선전전에서 뿌려짐직한 '(피/아의 식별이) 뚜렷하고 (문제의 해법이) 단도직입적으로 선명한' 그런 본래적 의미에서의 '찌라시'용 글투나 주장에 강하다고 자신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설마.

시사IN이 시사저널 때부터 이어온 고유한 특징으로, 또 척박한 한국 언론계에서의 나름 존재의 의미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글투, 좌/우 진영논리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과 냉정함 아니었나. 그것이 시사 주간지로서의 본령이자 언론의 기본이라고 믿는 언론사, 언론'기업'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겠으되 일단은 어느 모로 보나 추석맞이 특별판, 더구나 선명한 정견을 가진 시민단체의 의뢰를 받아 특별판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뭐랄까, 허를 찌른 나름의 '역발상'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편집권의 소재 문제라느니, 용산참사/4대강 사업 등에 대한 논조 조율의 문제라느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강 그렇다. 애초 왜 시사IN이 그런 특별판을 자신의 제호로 내는데 합의했을까. 특별판의 내용으로만 추측컨대 마치 어정쩡한 상업성 추구와 '먹물'의 '곤조'가 죽도밥도 아닌 것을 만들어내 버린 꼴이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순진하게 '광고입네~', '광고 끌어온 기사네~'하고 드러내는 최근의-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는 느낌의-몇몇 기사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15만부의 매력, 추석의 대목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 vs 그래도 나름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기사체를 고수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결과는 어정쩡한 '추석 특별판'과 모두의 불만으로 돌아온 듯 하다. 


#2. 시사IN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내/외적으로 규정짓고 있을까.

그렇다고 시사IN 추석 특별판이 이명박의 거짓 친서민행보를 까고, 4대강과 용산참사에 대한 핏대세운 기사를 담았다면 해결이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최근 시사IN 기사를 보면 나름 감정이 생생한 '대담'의 방식도 활용하고 조금씩 기사의 열기를 더해가려는 시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사IN은 언론 시장에서 상당히 딱딱하고 건조한, 심심하고 지루한 매체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작년 촛불사태 때 시사IN이 거리편집국을 꾸리고 나오면서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점차 모두에게 유치하도록 선명한 '피/아'의 식별을 강요하는 시대의 문제라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사IN은 뜨거워질 텐가, 아니면 여태껏 견지해왔던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고수할 텐가. 이미 시사IN을 아낀다 자처하는 '열혈'독자가 생겨났고, '촛불'들은 시사IN에 대한 이성 이전의 호감을 굳힌 상태다. 그런 단어들, 사실 시사IN의 딱딱하고 무미한 글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사IN의 롤모델은, 사견이지만 손석희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손석희 정도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추석 특별판 15만부'로 희석되고 휘발되는 무딘 정체성과 감성, 고민에서 나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3. 시사IN은 인터넷 소통을 포기할 참일까.

이곳에 종종 글올리는 걸 즐기는 1人으로, 이번 '추석 특별판' 문제가 불거지고 벌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다. 느리다. 느리고, 무뚝뚝하다. 느리고, 무뚝뚝하고, 고압적이다.

문제가 제기되고 많이 지나서 '시사IN 기자' 한분이 댓글을 달았다. 더 궁금하면 편집국에 전화하란다. 이건 아니다. 시사IN 홈페이지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사IN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글쓰고 댓글달고, 그러지 않는다. 최소한 부정기적인 가판대 독자거나 정기 구독자, 못해도 (광범한 의미에서의) 심정적 지지자다.

편집국장의 편지에서 자랑스럽게 '온라인팀'의 신설을 알렸다. 온라인의 특장은 신속성과 양방향성이다. 아직 가동되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말하기는 민망할 거다. 댓글 단 기자님께는 그나마 '전화하라'는 댓글이라도 달아주어서 감사할 지경이다. 인터넷 공간,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에 대해 이 정도로 무심하고 시크해서야. 그래도 내 페이퍼 독자에겐 따뜻하겠지, 라고 위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사를 차갑고 무겁게 쓰는 건 (개인적으로) 환영이지만, 소통에 있어서까지 그래서야 곤란하다. 지겨운 단어, '소통'이다.

아직까지 시사IN이 왜 '추석 특별판'을 내게 된 건지, 사실 확인 자체도 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을 활용해 '소통'해라, 정도의 팁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런 정도로 일이 퍼지고 커지기 전에 무언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사실 확인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문제가 처음 제기된 이곳은 '시사IN 놀이터'지 '버려진 놀이터'는 아니지 않은가.


*                                                           *                                                           *

원래는 블로그에 쓴 글을 시사인 홈페이지(http://www.sisain.co.kr/)의 '자유게시판'에 옮겨 올리는데,

이번엔 순서가 바뀌었다. 검색엔진에서 '시사인', '추석', '특별판' 따위 검색어로 찾아보면 대체 무슨

사건인지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사인이란 주간지가 추석 때 특별판을 언소주 등 시민단체의 의뢰로

15만부 찍어냈는데, 애초 의뢰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매우 불분명한 논조의, 주제도 합의된 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다. 사실 관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가장 압도적인 상념은 그거다.


시대가 하 유치하여 그야말로 선명한 '피아 식별'을 요청하고 있다. 빨간 색과 파란 색 가득한 촌스러운

태극무늬 단면 위에서 뛰노는 게 아니라, 한뼘쯤 떨어져서 주변의 사괘도 구경하고 하얀 바탕도 감상할 만한

여유, 그런 메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단순히 시민단체의 요구가 그랬다는 거 때문이

아니라, 시사인이 그런 '찌라시'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 때문이다. 그게 시대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

아니면 상업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간에.)




#1.

어젯밤 꿈에 전지현이 나왔다. 그녀는 내 앞에서 해실해실 웃으며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따내려고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없었다. 당황해서 가방을 뒤졌지만 역시 핸드폰은 나오지 않았다. 울고 싶은 마음이 되어 그녀에게
 
말했다. 명함 한 장 주세요.


#2.

저번주 목요일 밤부터 2박 3일, 제주도에 다녀왔다. 예기치 않은 일정, 생각지 않았던 장소였다. '올레길'이란 건 뭔가

심각한 고민이나 결정할 사항들을 싸짊어지고 걷는 게 제맛 아닐까 했는데, 가족들하고 도란도란 걷는 것도 좋았다.

덕분에 포스팅거리는 잔뜩 늘었다. 캄보디아도 갈 길이 먼데, 제주도부터 차근히 올려야겠다.


#3.

일요일밤에 만난 군대친구는 부산에서 올라왔다. 벌초하러 갔다 오는 길에 문득 서울행 버스를 탔다고 했다. 밤늦도록

술을 마시면서 또 물었다. "어떻게 살 건데?" 아마도 2002년께 군대에서부터 서로에 대해 계속되었던 질문,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 보러 가서 밤새 술을 펐을 때의 대답과는 달랐나보다.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은, 내게서 그가 기대했던 마지막 말이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시작되는 구구한 말들,
 
"핑계인지도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핑계들. 내가 이미 그 녀석에게 '황소만한 개구리'라고 뻥을 얼마나 잘

쳐놨었는지는 몰라도, 아닌 게 아니라 요새 스스로에 불만이 많다. 자유란 건 단순히 물리적인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

아니니까.


#4.

슬슬 바빠지고는 있다. 할 일은 늘어나고, 하고 싶은 건 많고. 당장 이번주 월요일에 있었던 '시사IN 강연회'는

가지도 못했다. 진중권이 강사로 나왔는데, 다음달 출장 준비다 뭐다 바빴다. 오늘도 노종면 YTN노조위원장의

강연이 있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벼운 버전>

시사IN 독자위원회 리뷰를 마치면 늘 가곤 하던 서대문역 근처의 허름한 맥주집, 그곳에 불쑥 이해찬 전 총리가

찾아왔다. 어제 있었던 시사IN강좌 "거꾸로, 희망이다 - 시즌 2" 첫 강좌를 마치고 나서 들른 모양이다.

한쪽 테이블에서 이야기에 여념이 없던 우리들은 술렁대다가, 다이어리를 펼쳐들고 쪼르르 달려가 싸인을 받았다.

우선 나부터. "이름이 어떻게 되요?" "윤성의입니다." "성의?" "넵, 성의있게 살라고 할 때 그 성의요."

"예끼~ 자기 이름갖고 장난치면 쓰나" 하며 허허허 웃었다. 그새 꽤나 늙고 수척해 보이던 양반이 웃으니 보기 좋았다.

(사실 이 전총리의 웃음 코드란, 그 연세의 분들이 그렇듯 조금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어쨌던 웃었으니 됐다.)
 

사인을 전부 받고 나서 자리에 돌아와 각자 뭐라고 써줬는지 멘트를 확인했다. 내가 "진실은 승리합니다!"라는 멘트를
 
받은 후론 전부 "꿈은 이루어집니다!"라는 멘트. 한마디했다. "무슨 월드컵이냐." 실은 머릿속으로도 잠깐 든 생각,

별★이라도 하나 그려주지 그러셨어요.




<약간 무거운 버전>

얼마전 친한 대학 선배들과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단대학생회장을 했거나 나름 학생회에 발담그고, 아니 그보다 

적절한 표현으로는 '사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선배들,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래서

신촌바닥에서도 스스럼없이 둥글게 서선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었겠지만. 그 자리에서 꽤나 오랜만에 이론적이랄까,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교 때에는 늘 하던 이야기지만 사회 나오니 다른 사람들과는 나누기 힘든, 나눌

염도 내기 힘든 그런 이야기, 근본 모순이라느니, 주체라느니. 그리고 여느때처럼 노정된 약간의 관점차들.


좀 낯설었고, 좀 벙벙했다. 어느샌가 그런 이야기, 뭔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달까. 물론 나름의 비전과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 이론틀과 세계관의 역할이라지만, 굳이 거시적인

그림의 디테일한 차이점을 미리부터 따지거나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눈앞에 당면한 갈림길이나 급박하게

결정을 요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3KM 전방에 갈림길" 표지판을 보고 준비해도 될 텐데, 지금은 3KM는 커녕 300KM,

혹은 300광년 정도 떨어져 있지 싶어서다. 내 '호흡'이 바뀐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해찬에게 사인을 요청한 사실은 조금 우스운 일이었고 겸연쩍은 일이기도 했다. 그건 노무현과 김대중의

서거를 지켜보며 착잡해하는 스스로에게 쭉 느껴왔던 감정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그들의

정책과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에 반대하며 거리를 뛰어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능구렁이 김대중, 가증스런

노무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사IN 말마따나 "지난 20여년간 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이해찬

전총리를 보니 왠지 아는 척 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더랬다.(“민주 세력 ‘새 단결’이 김 전 대통령의 유언”)

비록 그게 인지상정이거나 고양된 감정의 발로였다손 치더라도.


그가 이루겠다는 '꿈', 그가 생각하고 지키려는 '진실'이 뭔지는 사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의 한계에서 대충

각을 잡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이루고 나서, 한계단 올라서고 나서 그 이후에 펼쳐질 문제와 입장차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건 아니다.

이해찬은 나름의 일관된 입장과 궤적을 밟고서, 나도 나름의 입장과 짧으나마 궤적 위에 서서 사고하고 이야기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렇게 각자의 길을 따로 또 같이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시사IN 제1기 독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때, 시사IN에서 처음으로 단행본을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의였던가, 회의실 밖에 붙어있는 '거꾸로, 희망이다'라는 책 표지 가안들을 구경했고, 우리들도 각자

원하는 책 표지 도안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시사IN에서 책을 배려해주었다.

내가 스티커를 붙였던 바로 그 시안대로 표지가 나왔다. 사실은 '거꾸로, 희망이다'라는 제목이 좀 맘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그 책제목을 시각적으로 살려주며 흥미를 돋구는 디자인인 거 같아 만족.


제목이 불만이라 했지만, 사실 요새같은 때 거꾸로 희망을 보자는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이빨이나 들어갈까 싶어서다.

흔히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하고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 하며 위기가 곧 기회라 하지만, 그건 꽤나 장기적인
 
안목을 유지하는 사람이거나 희망섞인 기대와 당위로 '오염'된 예측일 뿐이다. 물론 장기적으로야 박정희도 무너졌고

전두환, 노태우의 시대도 무너졌지만...케인즈가 시장의 자연회복을 기대하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과 싸우면서 했던

말이 딱 어울린다. "장기적으로 (경제야 물론 살아나겠지만) 그때는 이미 우린 모두 죽어 있을 거다."


게다가 아침이슬의 첫대목에서 보이는 "긴밤지새우고.." 류의 인고의 정신, 지금의 고난을 기꺼이 맞닥뜨려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의지란 건 꼭 사회적 약자, 구조적 약자의 전유물은 아닌 거다. 뒷산에 올라 요새도 즐겨부르고 있을지

모르는 거다. 사실 그와 그의 따까리들 역시 나름 곤란한 상황을 맞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심지어 어제 동아일보는

사실을 통해 그들을 보수주의자가 아닌 '보신주의자'라 일갈했던 바 있다. 하여, 결국 '살 맛이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쳐야 할 건, '거꾸로 희망을 보라'라는 무슨 자기계발서나 경영기법에 나올 법한 아포리즘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컨텐츠다. (자칫 그들이 이런 제목만 보고, 그래 위기가 기회다~하며 더 치고 나올까 무섭다.)


역시 시사IN, 책의 내용은 훌륭하다. 나름의 '특수관계'를 의식한 말이 아니라, 정말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올초, '혼돈의 시대, 위기 속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벌어진 여섯 차례의 강연회를 엮은 강연록이다.

시사IN 독자위원회 때 늘 나오던 이야기 중 하나는, 좌담회 형태의 기사란 게 영양가 있고 재미있게 쓰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현란하게 짜인 액션영화처럼 잘 짜여진 '합'에 따라 정말 예술적인 수준의 문답이 오고 가야 하는데

그건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과 적잖은 준비를 통해 질문자와 응답자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야기의 강약에 대한

감이 서있어야 가능할 거다. 그에 더해 서로의 말하기 스타일에 대한 감까지 있다면 더욱 유려한 대담이 될 테고.


쟁쟁한 강사들에, 쟁쟁한 질문자들이었다. 하나하나 강연 내용 자체가 완결적이었던 건 강사의 온전한 이야기에 더해,

강사가 품고 있는 겉내와 속내의 이야기,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질문자가 틈새를 잘 보완하고 완급을 추스렸기 때문일

거다. 어렵거나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소재들에 대한 내용을 말글로 풀어내어 훨씬 쉽고도 깊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여섯 건의 강연 내용과 문제의식을 얼추 소개하자면 이렇다.


* '생태적 상상력'을 묻는 이문재 시인, 말하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 

경제불황 속에서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관찰이 있었다고 한다. 해고나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남아돌게 된 시간에 꽃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되려 가지게 되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녹색'의 삶이란 뭘까.

*'위기의 심리'를 묻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말하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

심리적 견지에서 대통령의 자격요건을 묻는 김어준다운 질문에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자기성찰능력이라는 명쾌한 대답. 불안한 사람들은 각자의 섬으로 스스로를 유폐하지만, 불안을 터놓고 공유할 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 '자본의 미래'를 묻는 정태인 경제평론가, 말하는 김수행 교수 ;

정통 맑스주의자인 김수행교수는 역시 경제공황의 필연성을 이야기한다. 특히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모든 국민이 잘 살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강조하며, 모두가 잘 살기 위한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자고 한다.

* '문화적 상상력'을 묻는 우석훈 경제학박사, 말하는 조한혜정 교수 ;

문화적 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틈새에서 '소모성 건전지'를 자처하며 말라죽어간다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소수를 살게 하고 다수를 죽게 내버려두는 체제' 말고 다른 체제를 꿈꾸자고 말한다.

* '대안경제'를 묻는 하승창 시민운동가, 말하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까지 끊임없이 시민들을 자극하려는 박원순. 경제는 경제자체로만 수직상승할 수 없으며 사회적 복지라거나 사회적 평등, 생태의식과 같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비례한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 '역사의 위기'를 묻는 정해구 교수, 말하는 서중석 교수 ;

현대사를 전공한 서중석 교수는 한국 뉴라이트와 일본 극우세력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최근의 '건국절' 논란이 그들의 태생적인 한계랄까 아킬레스건를 반증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다만 오바마의 당선과 촛불시위를 한국 민주주의의 역진에 대한 전환 모멘텀으로 삼고 있는 점은...두고 봐야 할 듯.


각기 상당히 다른 부분들을 건드는 주제이면서도, 결국은 '거꾸로, 희망을 찾아보지 않으련' 정도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골이 깊고 어둠도 짙고, 누구랄 것 없이 위기라며 한숨을 물고 사는 시대라서 그렇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조금은 더

낫게, 사람사는 것처럼 살고 싶으니까 고개 끄덕일 수 밖에 없다. 희망을 찾아보자고.


거꾸로, 희망이다 - 10점
김수행 외 지음/시사IN북




3개월, 3회에 걸친 독자위원회 활동을 마쳤다. 시사인의 독자층을 반영하는 듯 6명의 독자위원이 모두 20대였고 그 중

직장인은 내가 유일했다. 빠른 생일 덕에 20대에 꼈으니, 그냥 세대 다양화를 위해 30대로 치고 좀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겠노라 다짐했는데 막상 돌이켜 보니 '직장인으로서', '30대로서', 꺼냈던 지적이나 요청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직장인' 혹은 '30대(준)'라는 자각이 없는 탓이다. 게다가 직장인의 정체성, 30대의 정체성을 내걸고 짚을 수
 
있는 부분이란 건...뭘까. 재테크 관련 정보를 달라고? 결혼준비를 위한 정보? 직장상사와의 관계 노하우? 진지하게라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삶의 질 문제라거나 안정성, 그와 이어지는 비정규직 법안이나 노조탄압 문제..파업이나 투쟁에 대한

적대적인 언론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근데 이미 그런 것들은 시사인이 민감하게 다루고 있는 편이니, 딱히 더

할말이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Dynamic Korea. 워낙 껀수가 많은 나라인 탓에, 게다가 위정자가 귀머거리인 탓에, 해결은 커녕 최소한의 봉합조차

이뤄지지 않고 시간에 쓸려가는 사건들이 부지기수다. 용산에서 피어오른 화마가 잡아먹은 사람이 6명.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냄비근성'의 사람들은 새로운 자극과 더 강한 충격을 좇아 달리는 중이고, 이제 전대통령의 죽음조차

겪은 사람들이 대체 무엇에 충격받고 분노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끊임없이 New를 찾아 달려야 하는 언론에게 새로 밝혀야 될 것이 아니라 이제 그걸 토대로 추궁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책임까지 지우는 건 과하다. 이른바 '기자정신'이 얼마나 비장하고 끈덕진지는 몰라도, 그건 'New'를

찾아내기 위한 거지, 그 뉴스로 촉발될 수 있는 후폭풍까지 끌어내기 위함은 아닐 거다. 그래서 더 답답한지도.

용산참사의 경우 합법/비법/불법을 동원해 면죄부를 쥐어주긴 했지만 '죄'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더이상 New가

아닐만큼 판단이 섰다고 보는데. 노 전대통령의 경우도 누가 사과를 해야하는진 더이상 New가 아니며, 사람들이

그걸 받아내지 못하는데 언론에서 계속 '사과해라사과해라'할 수도 없는 거고. 계속 뉴스를 발굴하는 건 별개지만.


* 용산참사 직후에 썼던 난쏘공 리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촌스러운' 용산참사와의 부끄러운 데자뷰

진보신당이 왜 민노당 뒤에 타고 있는지에 대한 농섞인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표지. 사실 원내 의석수나 지지율 등으로

따지면 당연한 걸 텐데..뭐 그랬다. 그리고 '초식남'에 대한 여성 패널들의 빈정거림만 가득했던 기사에 대한 불만을 잔뜩

털어놨던 자리. 초식남에 대한 빈정거림은 마초와 남성 일반으로 번져갔고, '자아'가 최대 수출품목이라는 네팔에 다녀온

남자는 우스워지고 까페에 앉아 책을 본다거나 와인을 즐기는 남자는 자뻑 나르시즘에 쩔어버린 속물로 취급당했다.

여러번 뜨끔뜨끔, 했던 탓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더구나 '된장녀'니 '신상녀'니 여성들에 대한 그런 식의 딱지붙임이

불쾌해서 네넘들도 한번 당해봐라, 이런 맘으로 기획된 거라면 더욱 아니다.

그 이전까지는 개성공단을 살리자는 측과 죽이자는 측으로 단순했던 것 같다. 북한에서 개성공단 내 임금과 임대비용등을
 
몇 배로 올려달라, 중국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으로 달라고 했더니 바로 살리자는 측이 쪼개졌다. 한국경제를 살리려고

개성공단을 이용하자는 건데 이럴거면 죽이자, 라는 것과 임금을 올려주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라며 살리자는

입장으로 대별되지 않을까 싶다.


개성공단의 가격경쟁력이 천년만년 갈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저임금만을 경쟁력으로 삼아 버틸 생각이었나. 통일되고

나서도 북한의 저임금을 발려먹을 생각이었을 거다. 기업들이 앞장선 남북간 민간교류란 게 그렇게 흘러간다.


*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속내.  '개성공단 춤사건'을 기억하시는지. - 봉동관, 그리고 입경.(4/4)

* 혹시 이 글이 시사IN 제2기 독자위원회 위원분들의 눈에 띈다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ㅎㅎ

으레 시사인 독자위원회가 있던 날은 집안에 일이 있거나, 몸이 안 좋았다. 한 시간정도 일찍 조퇴해서 독립문역까지

오면서 한달 네차례 나온 주간지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챙겼다.

독립문. 구한말의 근대화 노력을 상징하는 건물이라지만, 파리의 개선문을 따라 지었던 만큼의 한계도 보인다.

당시의 '독립'이란 의미는 꼭 중국에 대해 굴욕적인 종속적 지위를 벗어나겠다는 비분강개의 의미만 담겨있던 건

아니었다. 서구적/근대적 독립국가간의 평등한 네트워크라는 패러다임이 사대교린, 단일중심의 위계를 상정했던

아시아의 기존 국제질서 패러다임과 부딪히는 상황에서 '독립'은 이른바 중화질서를 벗어나 서구제국들의 근대질서로
 
편입되겠다는 의지였을 거다. 바뀐 패러다임을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새로운 질서에 대한 설렘 혹은 희망..?


그전까지는 중화 질서 내에서 중국 다음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했겠지만, 이젠

중국의 허약함이 간파당하면서 그런 위계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수치스럽게 느껴지게 된 시점이었을 거다.

평등하고 독립적인 국가들 사이의 당당한 액터가 되겠다는 순진한 믿음. 그렇지만 실제로는 '근대화'의 미명 아래

'파리', '워싱턴', '뉴욕'의 그것들을 최정점으로 하는 층층시하 위계지어진 공간에서 '성장 이데올로기' 한길로

천박하게 달려오고 있다. 결국 파리 개선문의 짝퉁이래도 별반 할 말은 없는 독립문, 그리고 그 이래의 역사.

그나마 조금은 한국적이고 독자적인 뭔가가 나타난다면, 온통 서울로만 밀집해 버린 국가기능,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확대되고만 있는 비대한 아파트촌. 뒤에 곧추선 고층 아파트들이 차라리 지금 한국의 '독립'을 더 효과적으로 상징하는

건 아닐까. 삶의 질이고, 평등이고 도외시한 채 정말 '독립적'인 궤적을 밟으며 지금의 부를 일궈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시사인 편집국이 소재한 건물로 가는 길, 맞닥뜨리는 풍경들이 왠지 때이른 향수에 젖게 만든다. 아니, 아직 내가 뭔가를

보며 향수에 젖을 나이는 아닌데, 희한하게도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슈퍼나 문방구의 그 느낌이 그대로다.

서울이란 도시, 너무 쉽게 화장이 지워지는 거 아닌가 싶다. 조금만 도심에서 멀어져도 한적하고 '촌스러운'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싶은데, 심지어는 도심 한복판에도 곳곳에 이런 남루한 가게들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맞은 편에 있던 칠전문 페인트점. 간판이 좀 신기하다. 칠 대신 페인트. 페인트칠을 다시 해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칠하지 말고 가만있으면 페인트를 해주겠다는 건가. 갸웃갸웃대다가 가게로 들여놓으려는 수작인가.ㅋ

위풍당당한(...!) 시사인 편집국 건물. 독자위원 중 한 명은 저 커다란 '임대' 현수막이 맘에 걸린다고 했다.

경향이나 한겨레나 '88만원 세대'보다 못한 월급을 받고 있다는 흉흉한 시절인지라, 맘에 걸릴 만 하다.

그리고 아담한 건물 6층에 자리한 시사IN. 두번째 모임서부터는 경비아저씨가 알아봐주시곤 어디가냐고 묻지도

않으셨는데, 좀 익숙해지니 다시 올일이 없다는 게 아쉽다. 그치만 주간지를 꼼꼼히 읽어가며 뭘 지적해야 할까

눈빨갛게 정독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피로한 일이어서, 은근히 홀가분하기도 한 느낌.

독자위원회가 열리는 곳은 회의실이자 도서자료실같은 곳. 우리가 리뷰를 진행하던 사이에 어떤 기자분이 오셔서는

지난 시사인 표지를 유리에 이어붙이고 가셨다. A4 한장만한 사이즈를 매주 한장씩, 어느덧 넓은 유리벽 한면이 반쯤

차가고 있다.

잡지 표지를 장식했던 인형들, '끊고 살아보기'라는 기획 기사가 있는데 그간 휴대폰끊기, 밀가루끊기, 엘레베이터끊기,

담배끊기 등 많은 소재들이 있었다. 예컨대 "계단에 주저앉아 담배와 이별하다" 같은 기사들.


내가 줄기차게 요청했던 것 중 하나가 'MB사진끊기'였는데...안 된단다. 난 정말 소화불량에 홧병에 치질까지

생겨버릴 태세인데..야박한 사람들.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올랐을 때 쓰였던 작품. (관련기사 : 21세기형 쪽방에 저당잡힌 청춘)

이건 뭐더라..뭐 강만수가 보이고 돈을 돛대삼아 수수깡 뗏목을 띄운 걸로 보아 아슬아슬한 느낌 만땅이다.

편집국 한쪽 벽면을 채운 셀레브리티들의 인형들. 눈에 확 띄었던 건, 왜 하필 이명박과 이건희의 머리에 빨간 띠를

둘렀을까. 단결투쟁, 이라 적힌 새빨간 머리띠를 두른 이명박과 이건희라니. 자신들에 반대해 연대하라는 의미인가.ㅋ

표지에 이렇게 이뿌게 들어가고 난 인형은 편집국을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남는 것 같다. 그대로 잘 보관해서 아크릴 상자

속에 넣는다던가 해서-작가의 사인과 '품질보증서'를 첨부하여-나중에 바자회같은 데 내놓아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 시사IN 제1기 독자위원회 활동기.

* 시사IN 2차 독자위원회 리뷰.



저번달 초에 있었던 시사인 2차 독자위원회 리뷰가 최근 시사인 홈페이지(http://www.sisain.co.kr/)에 올랐다.

마침 노무현 특집이 있었고, 촛불집회 1년 특집도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노무현을 겨눈 검찰의 칼날이 사정없이 

조여 들어오던 시점이었고, 꽤나 먼 일처럼 여겨지는 그 때에도 뭔가 위태함을 감지했던 듯 하다. 그래도 몇 마디
 
노무현, 혹은 '노무현의 가치'를 변호했었다.





그리고 촛불 1주년 특집 기획..에 대해서도. 무슨 타임캡슐 묻어놓듯이 사람들의 짧막한 단상들을 그러모아놓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심도있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마냥 상찬하고 떠받들 것이 아니라, 한계와

부족한 점들을 냉정하게 짚어내고 그에 따른 정확한 기대와 전망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끝장을 내달라 @ Sisain)

그 외에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는데, 조금씩 잡지에 반영되어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어제는 1기 독자위원 마지막, 세번째 리뷰를 진행하고 술을 마셨다.



ⓒ 시사인 홈페이지(www.sisain.co.kr)

지난달부터 시사IN 제1기 독자위원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4월 6일에 있었던 첫 시사IN 독자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려고, 회사에는 집안일을 빙자해 30분 일찍 퇴근하고

독립문역 옆에 있는 시사IN 편집국으로 고고싱. 대구에서 섭도 째고 올라온 열혈독자분도 있었고, 기자분들

수고하신다고 음료수를 양손가득 들고 온 분도 계셨다. 나는? 넥타이만 덜렁대며 갔다가, 나 빼고는 전부

대학생 혹은 졸업생이라 얼른 넥타이만 풀어버리고 말았다.


관련기사들 :

“시사IN 너마저 제목 장사를…”

끈질긴 <시사IN> 저력 보여주길

그래도 하고 싶은 말 말 말

독자위원 눈길 사로잡은 기사

“배달 그것이 알고 싶다.”



애초 한시간 반 정도를 예상했던 독자위원들의 리뷰는 두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끝났다.

내가 말을 좀 많이 했다 싶긴 했는데, 실제로도 좀 많이 하긴 한 듯..정리해준 변진경 기자님이 워낙 깔끔하게

정리해 주어서 다들 그럴듯하게 이야기한 것처럼 나오는데, 감사할 따름.ㅋ


아래 사진들은 여섯 명의 독자위원 중 한명이었던 도윤씨가 찍은 시사인 편집국의 풍경들.

우리가 모였던 편집국 회의실은 도서관도 겸하고 있었다. 무질서한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만큼 자주 저 책들을

들춰보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싶다. (단순히 정리할 시간이 없는 거였는지도 모르지만..당장 누가 꺼내 들춰봐도

전혀 부담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을 저 분방한 분위기라니.)

작년이었던가, 시사IN 표지를 장식했던 MB님.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미지지만, 지금은 다소 MB의 명징함이

떨어지고 있다. 'MBC 내부의 적들'도 그렇고 反MB 진영내의 불분명하고 '정치공학'적인 문제들도 그렇고.

역시 작년 언젠가, MB와 부시의 회동을 시사하는 표지 모델로 나섰던 인형. 그때 이 표지를 보면서, MB가

앞에서 말고삐를 잡고 있고 측면에서 화면을 잡았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했었다.

고이즈미, 정동영, 박근혜에서 박제동에 이르기까지 삼등신으로 재구성된 그들의 인형이 내려다보는 편집국 내부.

시사IN, 난도질에 가까운, 선혈이 낭자한 '하드코어 리뷰'를 바란다면 기꺼이. 그렇지만 애정을 가지고.






그러고 보니 두 건 다 78호 기사에 대한 글이라는. 요새 좀 열심히 읽는 중이긴 하다.


아무리 기술 발달로 페이퍼리스 작업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뭔가 인쇄물에 대한 로망은 여전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쇄된 매체에 대해 자의반 타의반 부여하는 공신력과 권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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