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자뷰로 위장된 변함없는 일상

가끔씩은 어제 신문이 오늘 신문같고, 또 오늘 신문이 내일 신문같을 때가 있다. 기자들은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진

듯이 떠들고 이런저런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려 애쓰지만, 그건 어쩌면 매일매일 새로운 NEWS를 찾아내야 하는

그네들의 직업적 특성이거나 생계유지를 위한 언론인들의 암묵적 공모인지도 모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쏘공이 씌여진 그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난장이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나아가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임을 말하는 신애도 그렇게 말한다.


"사회 부조리 시정 촉구한 고위층, 당직 개편 않겠다고 밝힌 야당 당수, 사회 안전법 해설, 남북한 대화 촉구한

UN사무총장...10년 동안에 여덟배로 늘어난 강력범죄, 학교 돈 1억원을 횡령한 재단 이사장...경기 회복되어도

계속 흐릴 고용전망...한 개에 1천만원이 넘는 기둥 스물 네개로 떠받들여진 여의도 새 의사당, 30만 원이 없어

아파트 입주 포기하고 새 터전 찾아 떠나는 재개발 지구의 철거민들...톱밥으로 만든 고춧가루...어제의 신문과

다를 것이 없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날마다 같은 신문을 찾아 읽는다."



그렇지만 일종의 데자뷰, 기시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난쏘공의 나오는 사람들이 내뱉는 탄식, 절망, 분노는

낯설지 않다. 사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침없이 터져나왔던 것들이지만, 근래 다시 그들에게 마이크가 향했다는

점이 새삼스런 오버랩을 가능케 했을 거다.



#2. 난장이와 난장이 가족들, 난장이와 한편인 사람들의 이야기

난장이에게 다른 세계를 상상하도록 자극했던 지섭, "일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만 읽는다는 지섭에게 과외를

받았던 윤호 역시 탄식한다. "여기서는 무엇 하나 이룰 수가 없어.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난장이가 '난장이의 가족'들과 함께 살던 서울시 행복동 집에 철거계고장이 날아온 날, 아파트 입주할 돈이 없어

입주권을 팔고 원치 않게 추방당한 그들의 가족들은 분개하지만 난장이는 말한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난장이의 큰 아들, 그의 속깊음과 따스함으로 결국 사형대에까지 떠밀린 그는 이미 어려서부터 깨닫고 있었다.

무허가건물이 난립한 그의 동네에 찾아와 철마다 표를 구걸하던 거짓말쟁이들은 계획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는 사실. "이미 많은 계획들이 나왔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고, 설혹 무엇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그건 실제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리라"
는 깨달음.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나가고 나니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던 그들. 난장이의 아들딸들.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다나. 그 보호란 건 그 구역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보호였고,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엄격히 나누어진 세계에서 이질집단으로 평생 낙인찍힌 채라야 받을 수 있는 보호였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마음이 편하댔다. 그러면서도 바다에 떠있는 늙은 수부가 목말라 괴로워하듯, 회색에 감싸인 축소된 집과 축소된

가족들을 들여다 보며 "물, 물, 어디를 보나 물 뿐, 그러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고 또한 괴로워했다.


공장의 사장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이야기로 그들을 위협했다.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하고,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혹은 힘껏 일한 후 함께 누리게 될 부와 희망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른바 '파이 논쟁', 키워서 나눌지 나누면서 키울지가 2009년까지도 여러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3. 새삼스레 촌스러운 이야기, "촌스러운" 용산참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랑이 없는 세계라고 했다. 배운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생각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필요하다면 밥 대신 모래라도 먹일 사람들이란 게 난장이 아들딸의 생각이었다. 폐수 집수장

바닥에 구멍을 뚫어 폐수를 직접 바다로 흘려넣는 사람들이란 게 난장이 아들딸의 생각이었다. 촌스럽다.


지섭도 말했다. 달나라의 이름으로 펼쳐보였던 그 사랑이 가득한 세상은 이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그는

목사, 과학자와는 달리 스스로가 많은 희생자 중 하나로서 노동자였다. 작품을 통틀어 계속해서 끈질기게

자칭 타칭 '근로자'라 불려왔으나, 손가락 두개를 잃은 지섭의 재등장과 함께 '노동자'라는 단어가 비로소

등장한다. 근로자와 노동자의 어감 차이, 그건 단순히 근면성을 강제하는 뉘앙스의 차이만이 아닌 거다. 못 배운

사람, 약자에게 경제적 고문을 퍼붓는 시대에 A대학 법학부에서 쫓겨난 그는 노동자,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역시 촌스럽다. 현장에 뛰어드는 학출 노동운동가라니, 촌스럽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기업들의 구태는 말하자면 '우리의 대표브랜드'라는 세련된 분장 뒤에 숨었다.

"협조적인 사람이 이끄는 노조라고 해도 그것이 기업에 이익을 줄 리는 없으며, 기업에 해롭고 우리 모두에게

해로운 노조는 우리 전체의 구조를 약화시키는 악마의 도구"
라는 마인드는 더더욱 촌스럽지만, 천박하게 번쩍이는
 
도금 광택으로 세련됨을 강변한다. 용산 참사 뒤에 숨은 대자본 건설사의 야만성과 촌스러움, 경찰과 검찰의

비열함과 촌스러움, 사과조차 없이 뭉개고 앉았는 위정자들의 더러움과 촌스러움, 그리고 여론을 스스로

자처하는 보수 언론들의 저열함과 촌스러움 역시 무엇인가로 위장되거나 혹은 스스로 세련됨을 강변하고 있다.


난장이의 아들딸이 보기에 그들이 살았던 사회와 같다던 먹이 피라밋은 여전히 유효할까. 아님 더욱 강해진 것은

아닐까. 대학교 신입생의 구성이라거나, 소위 좋은 직장의 신입 직원 구성이라거나, 무엇보다 세습을 포함한 부의

불균등한 분배에 이르면 더욱 공고하고 가팔라졌다는 느낌이다. 대학교 때 토지경제학을 가르치셨던 이정전교수는

우리 나라에선 절대 부의 불균형에 대한 통계를 낼 수 없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봉과 같은 소득 불균형

자체도 이미 이렇게 심각하지만 부동산이나 물려받은 재산등이 포함된 '부'의 불균형이 공표되는 순간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고 하셨던가. 분명치는 않지만. 


이미 난장이의 아들은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고 있었던 게다. 부모는 그의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라지만, 이미 자식들은 첫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노비 매매문서에 적힌 그들의 조상에서 넘겨진 삶의 무게와

질곡에 눌린 아버지는 난장이가 되었고 난장이의 아들은 그보다도 작은 어릿광대로 눈을 감을 것이라는 예감.


#4. 悲

언론의 또다른 특징은, 새롭지도 않은 NEWS의 행진이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놓아버린다는

점이다. 혹자는 한국인의 냄비 근성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미 한달여가 지나 OLDS가 되어버린 용산 참사,

그리고 사실 조세희가 이 소설을 쓴 때부터 OLDS였던 철거민 문제, 그런 것들이 대장 속에서 쉼없이 연동하는

그런 것들처럼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고 잊혀진다. 의도적이던 아니던.


용산 참사 후 한 달, 참사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한 철거민은 "박정희도 이러진 않았다"고 말한다.

"내가 테러리스트란다. 진짜 도둑은 따로 두고…"(프레시안, 09.02.2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뫼비우스의 띠 장마 외 - 10점
조세희.윤흥길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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