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드디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 단어가 좀 이상하지만 '박물관'이 생겼다는 기사는 봤었다.

 

독립공원 내에 지어지기로 했다가, 광복회 같은 단체에서 '격이 다르다'며 건립에 반대했다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vs '피해자 한국'의 구도로만 보는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생각했던 사건이었다.

 

 

어쩌면 좀더 깊숙하게는 '전쟁' 상황에서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의 문제,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의 문제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여성', '인권' vs '전쟁'시 증폭되는 남성성의 문제, 그게 본질인지도 모른다. 한일간의 국가간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간에 붙은 이름은 무척이나 명확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가는 길은 참, 참담하도록 허술하고 허름했다.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어 종이로 전봇대에 붙여놓은 화살표가 전부.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판이 그나마 화살표를 가리고 있어서 눈 크게 뜨고 돌아보지 않고는 찾기도 쉽지 않은.

 

일본에 대고 국가 배상을 해라 말아라, 한국 정부는 떠들지만 말고 이런 기억의 장소부터 제대로 챙길 일이다.

 

 

드디어 나타난 간판.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의 날씨에 붉은 단풍이 서렸다. 근데 아무래도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좀.

 

박물관 건물 전경. 독립공원 내에 입주를 포기하고 찾은 곳이 홍대입구에서 멀지 않은 이 곳의 가정주택이었다고 한다.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얼마전 트위터에서 '미디어몽구'님이 앞장서서 모금운동을 펼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할머니들 수요집회 다니시거나

 

외부 활동 다니실 때 쓰시라고 기증된 차량도 볼 수 있었다. 모금한 분들의 이름이 하트 모양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던 핑크빛 차.

 

건물 귀퉁이에 조그맣게 있는 입구.

 

마침 수요일이어서, 수요시위를 마친 오후 세시부터 관람하러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은 오후시간만 개관.

 

입구를 들어서면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동영상이 쉼없이 돌아가는 벽면의 설치물, 그리고 매표소.

 

카드 사용이 불가하며 일반인은 3,000원, 청소년은 2,000원, 어린이는 1,000원.

 

지하 1층, 1층, 2층으로 구성된 전시공간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고,

 

개별 전시공간은 유기적인 이야기로 잘 엮여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면 티켓을 받는데, 매일 다른 할머니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11월 21일, 홍강림 할머니와의 연을 맺었지만, 이 분은 이미 스러져가신 다른 많은 할머니들처럼 세상을 뜨셨다.

 

"일본 정부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그대로 증거입니다!"라고 외치시던 분들.

 

유일하게 촬영이 허용된 곳은 2층의 소녀상. 비어있는 의자 옆에 두 주먹 꼭 쥔 소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깜박이지도 않고 응시하고 있는 곳은, 수요집회의 영상. 할머니들이, 지지하러 온 사람들이 확성기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머금고 일본 정부에 외치고 있는 영상이었다. 위안부의 존재조차 여전히 부정하는 그들을 향한.

 

슬픈 듯 분노하는 듯, 아니면 차라리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 어깨에 앉은 새 한마리.

 

의자가 두 개, 앉은 사람은 하나. 저 소녀가 혼자 진창같은 삶을 살아오다 진실이 알려진 게 고작 1991년이다.

 

이십년이 넘어가지만, 저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적기만 하다.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를 막론하고.

 

작년인가, 헌법재판소에서 그간 한국정부가 필요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던데, 바뀌려나.

 

2층에서,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한 장 굳이 찍고 말았다. 이게 뭐냐하면,

 

위안부를 상대하는 군인들에게 지급된 콘돔이다. '돌격'이라고 쓰여진 콘돔...돌격이랜다. 끔찍한 표현.

 

 

정신대, 처녀 공출 따위 여러 표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따옴표까지 포함해 '위안부'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위안부'라는 표현 자체가 남성의 시각에서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따옴표 안으로 넣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군대(국가 폭력)에 의한 집단적/조직적 강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층 테라스의 추모관. 하나둘 세상을 뜨시는 할머니들이 벽돌 하나하나를 비석삼아 쉬고 계셨다.

 

나와 연이 맺어진 홍강림 할머니, 누군가 놓고 간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벌어졌다.

 

그리고 박물관 앞뜰. 날이 좋으면 이곳에서 문화행사도 열고 담소도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찬바람만 머물렀다.

 

돌아나오는 길. 굉장히 먹먹해진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입구 겸 출구인 곳 앞에서 나비떼가 확 번져갔다.

 

그리고 들어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돌무더기 한 줌. 어찌 보면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이같이 생기기도 했고,

 

그 위에 묵직하게 얹힌 돌멩이들 하나하나가 왠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나도 돌 하나를 얹어놓았다.

 

찾아가는 길, 그리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관련 정보 다시.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일본 아오모리현 도와다 호수의 오리배는 이렇게 생겼다. 지금 다시 보니 네스호의 괴물이라거나 공룡이 떠오르는

 

외모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딱 보자마자 원피스의 고잉메리호가 떠오르더라는.

 

나름 원피스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는, 고잉 메리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장면.

 

 

호숫가 나룻터에 묶인 채 둥싯거리는 오리배들. 최근에 다시 색칠을 한 건지 부리나 리본이 화사하다.

 

둥싯거리다간 서로의 부리를 입맞춤하며 느그적 휘어진 모가지로 하트를 그리기도 하고.


나룻터 끝에서 바라본 도와다 호수는 어찌나 넓던지, 오리배 페달을 밟는 발놀림이 비장해 보였다.


오리배들을 어루만져주는 두 할아버지, 한가로이 파라솔 아래 앉아 담소를 나누시던 모습.

 

호수를 따라 죽 이어지는 산책로, 울창한 숲과 산을 옆에 끼고 있는 데다가 시선을 어지럽히는 가게나 매점도 없다.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의 푸르스름한 렌즈가 똘망똘망하다.

 


도와다 신사로 가는 길, 다른 관광대국들도 그렇지만 일본도 맨홀뚜껑을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 전봇대가 아직도 서 있는 도와다 신사 경내의 산책로.

나무뿌리가 잔뜩 헤집어진 건지, 아니면 벼락을 맞은 건지 위풍당당한 모습에 이끼가 잔뜩 슬었다.

 

곰이 출몰하는 지역이니 주의하라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표정과 포즈의 곰 앞에서 손도 떨었나보다.



도와다 신사 도착.

 



나무의 잔뿌리가 지면 위에까지 핏줄처럼 툭툭 튀어나온 모습이 땅 속을 궁금하게 만든다.

나무 계단은 하얗게 바랬을지언정 말끔한데 정작 아래 돌받침은 둘로 쪼개진 채 이끼가 잔뜩이다.


 


석등을 둘둘 휘감고 기어오르는 덩굴도, 석등 위에 꽂힌 깃털처럼 나부끼는 풀떼기도 고작 한계절이면 저리도

 

그악스럽게 자라날 텐데, 왠지 바라보는 사람은 거기서 이 신사의 고색창연함을 느끼는 거다.



일본 신사의 '약수터'는 물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손을 씻어 몸을 정갈히 하는 곳.

 

 

도와다 호수의 명물이라는 소녀상. 소녀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를 만든 작가와 평생 해로했던

 

아내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했던가. 호수의 물안개를 잘도 버티고 서 있다.

 

 



도와다 호수 주변을 좀 거닐면서 담은 풍경들.



차를 타고 좀더 올라가 도와다 호수 전망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희뿌연 간유리 너머

 

풍경처럼 어슴푸레한 호수 너머 풍경과 온통 짙푸른 녹색이 가득한 풍경. 아오모리, 푸른숲靑森이구나.

 


전망대 위로 올라가는 샛길이 하나, 무성한 수풀 뒤로 숨어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인지

 

낙엽이니 풀들이 온통 점령해버린 땅바닥엔 발딛은 맨땅 한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에 정복당해버린 숲길을 혼자 걷고 있자니 왠지 무섬증도 살짝.

 

어디선가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살짝 머릿속으로 이미지트레이닝도 해보고.

 


계속 신경을 긁던 까마귀 한마리가 숨어서 울어제끼던 곳을 결국 찾아냈다. 사진 속의 그곳.


슬쩍 제2 전망대까지만 찍고 내려오는 길. 인적끊긴지 오래인 듯한 괴괴한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며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라 내려오는 길은 카메라를 꼭 쥐고 거의 날 듯이 뛰었지만,

 

그래도 푸른 숲과 퍼런 호수의 풍경은 놓칠 수 없어 시선은 계속 도와다 호수에 붙박혀 있었다.

 

 

 

 

 

 

 

 


 


소녀시대의 공연을 코앞에서 보다니. 아아 소녀시대소녀시대소녀시대..역시 좀 짱인 듯.

조만간 다시 컴백할 예정이라 하니 그녀들이 또 어떤 노래를 들고 나타날지 둑흔둑흔.

@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메인스타디움.(2011_10_8)



* 소녀시대 멤버들 별명(네이버 지식인 참고)

 

티파니

띨파니: 띨띨한 행동이나 모습을 보일때 부르는 별명.

람파니: 공을보면 무조건 차는 티파니에게 붙여진별명.

울먹파니: 울먹거리는 표정을짓는 티파니에게 붙여진 별명.

랩파니: 벌레를보며 랩을하는 티파니에게 붙여진 별명. (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 를 빠르게 말하심.)

긴파니: 긴머리의 티파니

단파니: 단발머리의 티파니

양파니: 양갈래 머리의 티파니

 

서현

서로로,케로현: 서현양이 케로로를 많이좋아하고 닮아 불여진별명.

막개공주: 막내이며 언니들에게 무한이쁨을 받아 붙여진별명.

순수서현:멤버들이 서현을 순수하다고 말해 불여진별명. 외모상으로도 순수함이 뿜어져나온다.

서주우유:서현양의 어렸을적 별명. (서현의본명은 서주현이기때문에)

 

수영

식신: 먹는양이 많으시고 그속도가 빨라 지어진별명.

명랑공주: 수영양이 자신을 이렇게 부른다. 보기에도 명랑하고 밝다.

셩이: 수영을 다르게 부르는말. 수영을 빠르게 부르면 셩이가 된다

 

제시카

식칼이: 슈퍼주니어의 희철군이 이렇게 부른다.

資?시카: 제시카에서 제를 떼고 부르면 시카다. 그 시카를 줄임말이 資甄?

얼음공주: 차가운 첫 이미지때문에 불여진별명. 알고보면 애교도많고 재밌다.

눈물공주: 눈물이많아 불여진별명.

 

윤아

윤ABC:티파니양이 지어준별명. 아무래도 '아'가 'A'여서 그냥 그뒤에 BC를 붙인것같다.

사스미,꽃사슴: 사슴과 닮았다. 특히 눈망울이 닮아 불여진별명.

힘윤아:보기보다 힘이 강해 붙여진별명.

(무거운박스를 드는가하며, 자신보다 훨씬덩치가큰 데프콘씨를 밀어넘어뜨린적이있어서.)

임센터,센터윤아:무대나 단체사진을보면 항상중심은 윤아양이 이기때문에 붙여진별명.

 

유리

깝율:깝치는 유리양에게 붙여진별명.

흑진주,흑율:까무잡잡피부때문에 지어진 별명. 그래도 외모는 빛나심.

참율,조신율,청순율:참하고 조신하고 청순한 유리양에게 불여진별명.

율위,유뤼: 멤버들과 팬분들이 이렇게 많이부르셔요.

 

써니

활력소:무지밝고 쾌할한성격덕에 붙여진이름.

돌고래순규:박정현의 편지할께요를 돌고래창법으로 멋지게불러 붙여진별명.

숭규: 본명인 이순규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

 

효연

사과공주: 사과머리를한 효연양에게 붙여진별명.효연양이자신을 이렇게부르시죠~

댄싱퀸: 훌륭한 춤실력덕에 불여진별명.

효댕,횬: 효연을 다르게 부르는 말. 줄여부르는말.

효크:순결한 재용이에서 나온말. 효연+오크. 좋은뜻의 별명은아니에요.

꽉효: 정확한뜻은없고, 소.학.가 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죠! "안녕하세요.꽉효입니다."

 

태연

백설기:소.학.가 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뽀얗고좋은피부때문에 불려지는별명.

꼬꼬마리더: 키가작아 꼬꼬마라 불리우고 리더는 소녀시대에서 리더를 맡고있기때문에.

탱이,탱구: 태연을 다르게 부르는말.

멍탱이: 두뇌왕 아인슈타인에서 붙여진별명. 멍충이 -> 멍탱이

때때 : 어렸을적 '태연' 이 발음이잘안되 오빠가 붙여준 별명.



갑자기 날씨가 이상저온현상을 보이면서 강원도 동쪽산간지역은 냉해 피해까지 입고 있다하고,

제주도로 떠야 하는 출장 비행기는 해무와 기상악화로 인해 수십분씩 딜레이되고 심지어는

캔슬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우울해하면서도. 지난 주말 부평문화거리에서 만났던 꼬맹이들의

물장난은 그저 시원해보이기만 하는 거다.

한걸음씩 멈칫거리며 내뿜는 물길로 다가서더니 어느순간 흠뻑 젖어버리고는 까르르 웃으며

이내 텀벙, 쏘아올려지는 물줄기들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던 꼬마 아가씨가 너무 이뻤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도 나지만, 저렇게나 젖고도 한참을 질리지도 않고 뛰놀던 꼬마 아가씨도

대단하달까. 그러던 와중에 가장 인상적이던 포즈는, 저 물줄기를 막고 잡고 꺽고 희롱하던

그녀가 불쑥 물줄기와 껴안으려 시도하던 순간.

물줄기는 (당연히도) 그녀의 가느다란 두 팔을 휘감아 넘고는 산산이 부서진 채 지상으로

낙하하고 말았지만, 그녀는 그런 허망한 허깅이 꽤나 맘에 들었던 모양인 듯 몇 번이고

거푸 시도하며 가망없는 구애를 하고 있었다.


@ 부평, 문화의 거리.


#0.

처음 '코르다 사진전'의 사전광고가 코엑스몰 인근에 쫙 깔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체게바라의 사진이었다. 무슨 사진전인지 몰랐지만 체게바라의 얼굴을 앞세워 그 이미지를

팔아먹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인가 싶으면서, 대학 내내 가방에 달고 다니던 체게바라의 배지를

두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새 애들 그저 다들 멋져보이니까 하나씩 달고 다니지.

맞네 아니네 다투기보다 그냥 묵묵히 있기로 했었다. 체를 좋아하고 체로 대변되는 혁명정신이

좋은 거고, 난 호치민과 로자와 레닌의 생애와 지향이 좋은 거라고 말하고 싶었었다.


사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99년, 그리고 이삼년후 갑자기 '체게바라 평전'이 출간되고 영화배우

문소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방송에서 이 책을 소개했던 이후쯤 한국 사회에 나타난 체의

얼굴은 마치 68혁명 이후 미국에서 체를 '자본주의적으로' 소모하는 것과 딱히 다를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잘 생겼고, 획득했던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을 과감히 포기했으며,

쿠바를 끝내 혁명하는데 성공하고는 다시 제3세계로 달려가 그야말로 '세계혁명'의 야망을

품었던 사람이니, 그런 팬덤을 불러일으켰단 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1.

코르다사진전, 아마도 '코르다'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전인가 본데, 아무래도 그가 '체게바라와

쿠바'의 사진으로 이름을 알렸나보다, 그걸로 어필하려는가보다 하고 좋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사진전 첫테마는 그의 스튜디오. 쿠바에서 광고사진으로 잘 나가던 그의 작업공간을 보여주고

있어 체게바라는 역시나 미끼였나 싶었지만, 이후 보여준 두번째 세번째 테마를 거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리더들', '민중'이라는 이름의 두세번째 테마에서 보였던 건 쿠바 혁명을 지도하던 카스트로와

체를 비롯한 다른 전사들의 긴박하고 웅장한 혁명 활동과 나른하고 깨알같은 일상의 모습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춘 채 광장을 가득 채워 혁명을 지지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피델 카스트로, 털이 북실북실한 그는 여전히 '미국의 골칫덩이' 쿠바를

지켜내며 농업중심의 산업사회, 복지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젊은 날의 그 역시 왕성한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쿠바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2.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남았던 것은, 쿠바 어딘가를 여행하던 피델이 사탕수수밭에 그야말로

'철푸덕' 소리나게 주저앉아 쉬던 풍경. 그 격의없는 인간적인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사진

곳곳에서 드러나는 피델의 인간적인 면모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이고,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지닌 그런 사람. 이렇게 허름한 입성으로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며 남들 보기에는

무모하기만 했던 쿠바 혁명을 이루어낸 사람이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런 대중의 사랑을 등에 업을 만큼의 그릇이었던 덕분에 혁명도 성공시킨 거일려나.


그러고 보면 사실 코르다의 이번 사진전에서 '체게바라'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역시 일종의

낚시,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코르다 사진전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도록 그는

피델과 가까웠고 그만큼 많은 사진을 남겼던 거다. 피델이 소련에 방문했을 때도 함께 했고,

그가 기지개를 켜거나 잠을 잘 때도 늘 사진을 남길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사이였다니

사진작가로서 그의 이력엔 커다란 축복이었을 터.


#3.

사실 그는 모나리자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많이 복제된 체게바라의 얼굴사진을 찍은 작가니까

그의 이력에 미친 공험으로 따지자면 피델이나 체나 오십보백보. 코르다는 그들과 같이

혁명쿠바의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라 하는 것이 공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코르다가 전하는

체에 관한 짧막한 일화 하나가 소개되어 있었고, 다시금 체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체, 당신이 쿠바에서 최초로 만든 사탕수수 수확기를 운전하는 모습을 찍으러 이 먼 시골까지

왔어요. 코르다 당신은 사탕수수를 수확해본 적 있나요? 아뇨, 솔직히 농사일은 한번도. 그럼

일주일동안 칼을 들고 직접 수확을 해 본 후에 내가 수확기를 운전하는 사진을 찍도록 하죠.


그렇게 일주일 후에야 찍었다는 이 사진. 체는 드디어 쿠바의 농업에 과학을 접목해내었다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게 되었다는 감격을 사진에 온전히 담고 싶었던 것이리라.

책상물림하는 도시 인텔리와 일반 노동자, 농민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던 그에게는 코르다에 대한 그런 요청이 자연스럽고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4.

그가 광고사진으로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사진을 찍게 된 건 나무토막을 인형처럼

소중하게 품에 보듬고 있는 꼬마여자아이를 만나고 나서라고 한다. 아바나 교외의 어느 시골로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카메라를 총처럼 들이대는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아이는 저 나무토막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 다독거렸다고 했다. 코르다는 저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찍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아이의 세상은 광고 속 화려한 환타지와는 달리 윤택하지도 풍요하지도,

최소한 공정하거나 안전하지도 않은 사회였다고, 문득 미안해진 걸까.


체게바라를, 피델 카스트로를, 쿠바를, 새삼 2010년의 한국에서 여러 장의 사진으로 늘어놓는

이유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굳이 이 시점에 이 공간에서 이런 전시를 하는 목적이자

문제의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큐레이터가 어떤 식으로 기획했던 간에, 백이면 백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진전을 읽어내고 감동을 남겨가겠지만, 나의 버전은 그렇다. 체의 그럴듯한

껍데기, 피델의 (알고보면) 역시 그럴듯한 껍데기를 볼 게 아니다. 화보사진같이 멋지지는 않지만

그들이 함께 나섰던 행동의 순간, 역사의 먼지를 털고 다시 한번 그들의 이미지 뒤에 숨은

가치와 자유 정신을 봐야 하지 않을까.


#5.

체게바라가 남미의 정글에서 정부군에 살해당하기 직전에 했던 말이라고 한다. "I know you have

come to kill me. Shoot, coward! You are only going to kill a man." 마찬가지로 그는 코르다와

피델 사이에 서서 이렇게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You are only going to see a celebrity!"


사실 체를 좋아한다 해서 모두가 총을 들고 제3세계 정글로 달려가 괴뢰정부를 전복해야

한다거나 당장 사회에 기생하는 기득권세력을 척살해야 하는 것도 아닌 거다. 체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이미 달라졌고, 권력은 일부 키맨에 쥐어진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짙은 쌍꺼풀의 털많은 젊은 백인남성 '체'을 알고 좋아하고 이해하는 만큼

그보다 훨씬 오랜 삶으로 신념을 증거하고 생활을 변혁시킨 외꺼풀의 쪼글쪼글한 동남아남성

'호치민'도 알고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리고 그들과 같은 열정으로 지금 세상을

바꿔내려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사람들을 알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일주일여 묵었던 친구녀석의 아파트 건물에 있던 빈티스 느낌 가득한 엘레베이터. 이중문으로 되어 있어

바깥문을 먼저 열고 안의 문을 열어야 엘레베이터에 탈 수 있고, 두개 문을 모두 닫아야 작동되는 형태.

마지막으로 돌아본 녀석의 집. 아침에 나와선 뒤도 안 돌아보고 멀어졌다가, 밤이 깊어 어둑해져서야 더듬대며

돌아왔으니, 이렇게 밝은 시간에 제대로 마주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치?

튈를리 정원 근처의 풍물시장이 있단 이야기를 들었는지라, 살짝 돌아보고 구경이나 할 셈으로.

터헛. 장화신은 고양이 3종세트가 저런 슈렉고양이스런 눈빛을 하고 내게 걸어오는 듯한 환상은 뭐지. 아..

저 애절하면서도 도도하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눈빛. 냐옹.

마침 고양이 인형 샵도 옆에 있어주시고, 냉큼 들어가서 할딱할딱대며 온갖 고양이들을 원없이 구경하다가

눈에 딱 들어온 저 녀석. 저 아이, 딱 보면 갖고 싶어지지 않나효.

고양이 말고도 이런 아리따운 자태의 소녀들과 요정들도 잔뜩 귀엽긴 했지만, 고냥이보단 못해, 라고 멋대로

생각하고는 더이상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고양이에 대한 절개..랄까.

암튼, 내가 샀던 건 요녀석들, 발을 늘어뜨리고 새근대며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니. 꺄아.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점심, 샹젤리제를 걷다가 역시나 발이 땡겼던 곳은 뽕드뺑. 뽈을 가줄까 하다가

그럴듯한 야외 테이블에 빈 자리가 없어서 여기로 와서 간단히 빵과 에스프레소로 요기.

왠지 파리지앵들은 휴가 마지막날 공항으로 가기 직전의 여행자보다도 여유로워 보였다. 휴가를 위해 일한다는

그들,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들은 조건부터가 다르다. 일년에 4주 휴가는 보통, 6주에서 8주 휴가도 전혀 드물지

않다는 삶의 질을 누리는 그들.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안다, 그건 축복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한 '상식'이다.)

거리 공연이 늘 벌어지던 지하철 역사 내 그 장소, 어김없이 어느 아티스트의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고 행인들은

적잖이 발걸음 멈추고 구경중이었다. 파리의 마지막 이미지.




<경고> 임산부나 노약자, 혹은 어젯밤 묘한 짓을 하여 심신이 미약해진 젊은이의 건강과 기분을 해칠 수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시제 시장, 대만의 유명한 하고 많은 야시장들 중에서 뱀이나 자라의 해체쇼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

두근두근하며 찾았던 곳이다. 여차하면 이번 여행의 목적 중에 하나였던 '뱀탕'을 시음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실내로 이어져 있는 시장통 골목은 뭔가 다른 스린이나 궁관 야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뭔가

야시시한 상점들도 보였고, 마사지샵하며 횟집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에 가득한 살풋 비린내음.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냄새가 너무도 확연히 와닿았고, 점차 냄새의 실체에 접근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뱀을 커튼처럼 가게 앞에 늘어뜨려놓았다. 다른 가게들도 이미 몇 개를 지나쳤지만 사진 촬영을 허가해 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했다. 비린내가 확 와닿는 뱀커튼들. 옆의 촘촘한 철망에는 뭔가가 쉼없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커튼으로 걸린 녀석들은, 피와 함께 내장을 모두 뱉어내고 있었던 거다. 밑에 놓인 '빠께쓰'에는 핏물과

함께 뱀의 이런저런 장기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기-일다란 뱀의 몸통에 그어진 기-일다란 칼자국, 그리고 그

기-일다란 몸통을 타고 흐르는 핏물.

뱀들이 두세마리씩 끈에 목이 감긴 채 주렁주렁.

뒤의 티비에선 언젠가 했을 해체쇼를 녹화해선 무한반복으로 틀어놓고 있었고, 앞에선 반짝거리는 뱀가죽에

구슬처럼 빛나는 뱀눈알이 콕 박힌 채 흔들거리고 있었고.

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뱀의 징그러운 모습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듯 하다. 뭐가

되었던 신체를 저렇게 칼질하고 내걸어두면 이뻐보일리야 없지만, 왠지 목졸라 죽인 듯한 그 살벌한 분위기에

더해서 더욱 적나라한 뱀의 표정이랄까, 게다가 쫙 찢어진 입은 살풋 비웃음마저 머금고 있는 듯 해서 더욱.

철망 안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 왠지 이 녀석들은 죽음 앞에서도 초탈할 거 같다. 포유류가

파충류, 특히 뱀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어느 문화권에선 경외감과 존경심을 낳았고, 다른 문화권에선

혐오감과 배척을 낳았던 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싸구려스러운 불빛 뭉테기들이 천장에서 흘러내리고, 사진에 찍히지 않는 뱀의

비릿한 향취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뱀탕은 도저히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패스.

그 와중에도 눈이 돌아가는 섹스돌샵, 온갖 종류의 성인 장난감들을 팔고 있었지만 좀처럼 들어가 구경할

엄두도 못내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그저 愛神이라는 간판 제목이 좀 웃겨서 웃었을 뿐, 이내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또다른 샵. 반투명한 비닐 커튼을 드리웠지만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대충 뭐가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저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다 알겠더라. 내 상상력이 탁월한 걸까 아님 그것들이 워낙 적나라하게

생겼던 걸까.

아케이드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조금 살 만하다. 탁하고 비릿한 공기에서 해방되니 야시장 특유의 기름내와

온갖 음식냄새가 뒤섞인 그 오묘한 내음조차 향기롭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만난 뱀아저씨. 담배를 척, 하니 꼬나물고 무려 '소녀시대'의 댄스에 맞춰

뱀을 주물럭주물럭, 완전 기력이 쇠한 듯한 뱀을 억지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뒤의 모니터에선 소녀시대가 상큼발랄한 미소를 작렬하며 귀엽귀엽 댄스 중이시고, 앞에서는 담배를 꼬나문

아저씨가 투닥투닥 뱀을 훑으며 엉거주춤 댄스. 이건 좀 굉장히 부조화스럽기도 하고 부조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녀시대 팬클럽에라도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데.ㅋ '소시가 뱀쇼 배경화면으로 쓰인대요'




앙코르 톰을 벗어나 소위 '그랜드 투어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 보기로 했다. 네모반듯한 앙코르 톰의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동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스몰 투어 코스'로 작은 원을 그리며 앙코르왓으로 돌아오게

되고, 북쪽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랜드 투어 코스'로 좀더 많이 큰 원을 그리며 한나절 코스가 되는 거다.

사실 한나절 코스니, 반나절 코스니 미리 재단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가서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몇시간이

지나가던 앉아서 쉬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아침에 대략적인

스케줄만 스케치하듯 잡고서는 나머지 디테일은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채우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북문에도 여지없이 눈똑바로 뜨고 앙코르 톰을, 씨엠립을, 캄보디아를 지키는 '크메르의 미소'. 네모나게 각진

얼굴에 저런 은근한 미소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에도 역시 깊고 넓게 파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거대한 뱀의 몸뚱아리를 줄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 신들이 있다. 감사해요, 덕분에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겠군요.

쁘레아칸(Preah Khan)으로 가는 길 중간, 느닷없이 마주친 한무리의 아이들. 축축 늘어져있는 가지에 매달려

그네처럼 좌우로 거침없이 흔들기도 하고, 해먹인 양 편히 기대어 쉬기도 하고, 쪼꼬마한 아이들도 나무를 꼭

쥐고서 놀고 있는 게 꼭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도 가끔 나타나 화제가 되고 하는 '정글 인간', 십수년씩 혼자 정글에서 동물들과 생활했다는 그들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지내던 게 아닐까. 정글 깊숙이 우거진 나무들에 기대어 쉬고,

놀고, 잠들고.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품어 주고 버텨주는 나무가 듬직하다.

앙코르 왓 내부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몇 킬로미터씩 가야 띄엄띄엄 있는 수준인데, 가끔은 입장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는 유료 화장실도 있다. 자전거를 격하게 달린지라 장 활동이 활발해졌는지, 화장실의

위치 추적에 예민해졌던 그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났던 '한국-캄보디아 우호의 숲'이라고 읽히는 낯익은 글자.


의전 원칙에 따라 자국 국기를 왼쪽으로, 외국 국기-여기선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자국어인 캄보디아어로

먼저 소개를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질 못하겠고, 한글로는 한국이 먼저 나와 '한국-캄보디아', 그다음

병기된 영어로는 'Cambodia-Korea'로 자국이 먼저 나오고. 나무랄 데 없는 배치다.

우호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장실.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건물을 따라 숲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뭐, 딱히 다를 건 없었고 그냥 여느 앙코르 왓 내부의 정글과 같이 치렁치렁하고 빽빽한

정글, 숲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한 장. 왼쪽부터 보자면, 흡연 금지다. 아무래도 정글에 목재 건물이니

화재 예방이 중요한 거다. 그담 변기뚜껑에 올라앉아 일보지 말라는 표시, 워낙 많은 불특정다수가 쓰는 공용

변기이다 보니 더러워지기 쉬울 테고 그럼 또 저런 자세를 부득불 취해 더욱 더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저 자세로는 물이 사방으로 튈 텐데.ㅡㅡ;; 세번째는,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발 닦지 말라는 건지

신발을 닦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워낙 더운데다 여기 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니 발 한번 씻고

나면 피로도 좀 풀리고 좋지 않나? 좀 이해가 안 되는 표지다. 마지막 그림처럼 샤워하지 말라는 거야, 다른

사람에 민폐도 될 수 있고 '선녀'처럼 옷을 분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 중 하나를 어기고 말았다. 너무 더운데다 이미 옷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 어쩔 수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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