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고려대학생의 자퇴 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대학생의 자퇴 선언.


자퇴하게 된 문제의식이나 선언문으로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약간 결이 다른 거 같고, 훨씬 어깨에 힘을 빼고

자퇴를 결정하게 된 내면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긴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내용이래도 될 거 같다.

무엇보다, 이러한 학벌에 대한 판단과 자퇴의 결정이 개인의 가치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신이 처한 객관적인 조건과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운이 좋아 들어왔던, 혹은 공부를 하다보니 들어오게 된 학교였을 뿐인데. 그에 따르는 급부라거나

기득권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고 어울리지 않는다 싶게 된 그런 불안감 혹은 부조리감도 없지 않았을 거다.

그건 '명문대/비명문대'로 짜인 사회의 고정관념, 그리고 그보다 단단하고 확실한 차별적 수혜구조에 대한

판단을 강요하고, 끝내 이렇듯 몇몇 아이들로 하여금 기권을 외치게 하는 거 아닐까.


더이상 이런 판에 얽매이기 싫다, 는 소극적인 불만에서부터 더이상 이런 판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는

결단으로. 그렇게 아이들은 스스로의 학력자본을 포기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어른들은 이제 어쩔 수 없으니 내 아이라도 잘 되게 해보겠다는, 모두가 잃고 있는 이 교육 도박장에 대해

뭔가 행동으로 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아이들조차 짧은 인생을 바쳤던 뭔가를 내놓는 상황이니 말이다.


스스로 살짝 되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저만큼 솔직하고 치열하게 '학력'에 대한 고민을

했던가. 그래서 저렇게 용감하게 행동을 할 수 있었는가. 모두가 저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저런 행동이 '철딱서니없다'거나 '공부 잘하는 자의 잘난척'이라거나 '가진 자의 허위의식'이란

식의 매도만큼은 없어야 하는 거다. 그들의 선택에, 그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이야기를 할 일이다.

우리의 교육이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대학 교육'이란 건 어떤 교육이 되어야 하는 건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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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학벌 기득권 정점, 서울대를 떠납니다"

서울대생이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반대하며 자퇴를 선언해 이슈가 되고 있다. 자신을 사회과학대생이라고 밝힌 '공현'(가명) 씨는 14일 서울대 학생회관에 붙인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이 자퇴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는 지난해 3월 김예슬 씨의 고려대 자퇴 선언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공현 씨는 "대학 서열화나 입시 문제는 대학 교육 차원에서도 악영향이 있으며 등록금 문제도 (대학) 서열화 및 초과수요 문제와 깊은 인과 관계가 있다"면서 "사회에서의 학력·학벌 차별 문제 등 모든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고 저항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서울대에 오기 싫었지만 결국은 지원하고 입학했다"며 "하지만 대학에 와서도 문제의식은 계속 커져갔고 '서울대 학생'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발붙이기도 어려웠다"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프레시안>은 공현 씨가 대자보를 붙이기 직전, <인권오름>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껄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울대 학생으로 적을 두고 있다. 아니, 있었다. 바로 지난주에 학과 행정실에 자퇴한다는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아직 자퇴 처리가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중요한 건, 바로 그거다. 내가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이 나에게 껄끄러운 일이었다는 것.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어쩌다보니 청소년운동이라는 걸 하게 됐다. 그것도 뭐 YMCA, 보이스카웃 같은 게 아니라, 아주 저항적이고 투쟁성 충만한 청소년인권운동이었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고3, 남들은 다들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에 열심히 집회를 준비하고 캠페인을 꾸리고 학내 모임을 만들고 지하신문을 기획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걸 놓고 담임교사가 불러서 나무라도, 시큰둥하게 "지금 저한테 뭐가 중요한지는 제가 정해요"라고 얘기하고 나왔다. 자연스레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도 발전시켜나갔고 '안티수능' 운동 등도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느껴온, 학교가 나를 성적으로 대우하는 데서 비롯된 소외감을 더 분명하게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온갖 인권침해를 감내해가며 입시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는 게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이들은 성적이 좋은 게,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자기 노력의 결과'이며 입시체제는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시험 성적이 좋은 게 일종의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입시에 적합한 형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나보다 더 노력하고도 나보다 시험을 잘 못 보는 친구들도 많았고, 나보다 그 분야 학문에 대한 감도 지식도 뛰어난데도 내신/수능 성적은 낮은 친구도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나보다 더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사람 같은데도 입시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친구들도 많았다. 사람을 문제풀이 점수로 '평가'하는 시스템, 그건 어쨌든 '공정'할 수도 '인간적'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적이 상위권이라는 이유로, 또는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명문대'에 가게 되었을 때 '명문대' 학생이라거나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가지게 될 자원과 혜택들이 부당한 특혜, 불공정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했더라도, 현실에선 여러 가지 것들이 꼬여 있었다. 나는 입시경쟁에 비판적이었지만 정작 대학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미루고 있었다. 2학기 때 영어교사가 입시를 앞두고 친구들을 격려하는 말을 해보라고 했을 때, "이런 식으로 살 바엔 그냥 대학을 때려치웁시다"라고 말해서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쟤는 성적도 잘 나오면서 위선 떨고 있다"는 냉소를 받았다.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나는 뭐 일단 한번 내보자면서 서울대 2학기 수시 원서도 냈고 ― 서류에서 똑, 떨어졌지만 ― 성적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면서도 학교 숙제나 수업 참여, 복습은 또 습관적으로 꽤나 성실하게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그저 입시 문제에 대해서 우유부단한 상태일 뿐이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진로/입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봤다. 친하게 지내던 교사에게도, 지역의 다른 활동가에게도,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에게도, 짝사랑했던 사람에게도, 당시 상담을 받던 카운슬링 센터의 상담사 분에게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그래도 대학은 최선을 다해서 가고 나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앞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등등의 얘기들이었다.

어느 대학을 가는 게 좋다는 조언은 있었어도, 대학을 가지 않는 게 좋다거나 대학이 활동에 안 좋을 거라는 말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들의 수험생에 대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대학 같은 건 안 가는 게 좋다고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좀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나도 그냥 대학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수능을 잘 보려고 노력을 하진 않았다. 수능 바로 전날에도 다른 신문 원고를 쓰다가 늦게 잤다. 다만 수능 시험 자체는 특별히 틀리려고 하거나 대충 하는 것 없이 풀 수 있는 한 풀었다. 그냥 모의고사 보는 기분으로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도 점수는 잘 나왔다. 그 전에 모의고사 성적이 뚝뚝 떨어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능만 성적이 높게 나왔으니 이건 운이라고 해야 할지. 정시 원서를 쓸 때는 부모와 많이 다퉜다.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뜻대로 연세대, 서울대에 원서를 냈다. 논술은 좀 재미있었다. 둘 다, 합격했다.

결국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고서 한 생각은 이런 거였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입시에 대한 그 골치 아픈 고민과 갈등들이 어쨌건 일단락되었다는 기쁨. 부모 뜻대로 대학을 갔으니 크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 같은 것. 입시경쟁에 학벌사회에 반대한다면서 서울대의 후광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딱히 서울대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누군가 나보다 더 서울대에 가고 싶었을 사람을 밀어내고 합격한 것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감정.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여러 가지 감정들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했다. 결국 나 자신에게 운동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간 대학이었다.

대학 부적응이랄지…

그렇게 들어오게 된 대학은,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공부든 대학 내 운동이든 즐기려고 했다면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기업에 취직할 생각도, 고시를 볼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주변 다른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가해보면, 서울대는 단지 학벌, 이름값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강신청을 할 때도 이미 '필수'로 시간표가 다 나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건 6학점, 10학점도 채 안 된다는 대학도 있었고, 대학에 교양 과목 수업의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대학도 있었다. 그에 비해 서울대는 여성학이든 사회주의이든 문학이든, 나처럼 졸업이나 학점에 괘념치 않는다면 비교적 여러 수업을 골라 들을 자유가 있었고, 강의의 질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대학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서울대 졸업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계속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의 다양성과 질마저도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봤을 때 결국 불공평한 자원 분배의 특혜이고 특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대학 안에서 대학생운동이라도 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운동은 청소년운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청소년운동 일정 때문에 과반 행사는 죄다 불참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하나 하던 평화운동 동아리 활동은 나 외에 사람들이 대부분 졸업하면서 정리하게 됐다.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계속 서울대 학생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거부하게 했다. 나중에는 수업에 잘 들어가지도 않게 됐고 학교에 나가지를 않아서 모든 과목에 낙제점을 받기도 했다. 이것도 일종의 대학부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요즘 대학이라는 게 그런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남아 있을 곳이 못 된다. 등록금은 내가 입학할 때 이미 200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학자금 대출을 몇 번 받았고, 집이 개인회생 중이라는 사유로 장학금도 한 번 받아봤지만, 성적이 뚝뚝 떨어지니 학자금 대출도 장학금도 불가능해졌다. 학자금 대출도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면 안 해준다는 걸 알고서 우습기도 했고, 이미 두 번 받은 학자금 대출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웠다. 내가 무슨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질 계획도 아니었고….

내가 고등학교 때 대학을 가는 변명이 되어주었던 '서울대 가서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운동에 더 유리하다'는 건,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냥 헛소리라는 게 명확해졌다. 지금 운동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것이었지 몇몇 엘리트가 아니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개인적 출세나 권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변화가 필요했다.

사실 서울대 나온다고 해서 무슨 특별히 운동에 도움이 되는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학력ㆍ학벌 같은 것들은 사회에 순응하려고 할 때는 커다란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저항하려고 할 때는 별 다른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어차피 욕먹는 건 똑같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입시를 비판하면 쟤는 공부 못 하고 피해 보니까 저런다고 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입시를 비판하면 지는 잘 나가니까 배가 불러서 저런다고 하는 게 세상이다.

대학에 더 있을 이유도 없어졌고, 대학에 더 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두 학기쯤 학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던 건 결국 병역 문제가 이유였다. 병역거부를 하겠노라고 진작부터 마음을 굳히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병역거부자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편이니, 나도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줬기에 조금씩 대학을 이유로 병역 문제를 미뤄왔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휴학은 한도까지 다 썼고, 등록금을 해결할 방법도 딱히 없고, 대학을 더 다닐 마음도 없다.

병역거부는 지금도 좀, 아니 많이 두렵지만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주변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다고 하니, "옳거니"하며 지금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퇴서를 냈다. 하기야 어차피 군 휴학으로 인정도 안 되는 병역거부 때문에 학교는 제적될 처지였다. 부모도 병역거부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으셨기 때문에 병역거부 때문에라도 대학교를 일단 그만두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해두었다.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을 뿐

내가 어떻게 대학을 오게 되었고 어떻게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나, 개략적이지만 길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원래 서울대 안 갔어야 할 사람이 우물쭈물하다가 서울대에 갔다가 그만두는 과정일 뿐이라고 요약해볼 수도 있다. 하기야 대학거부가 뭐 별거인가. 나는 김예슬 씨가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쓴 글을 읽어봤을 때 어찌나 오글거렸는지 모른다. 뭐 이렇게 폼을 잡고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싶어서. 읽으면서 그것도 고대생이기 때문에 잡아볼 수 있는 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영 삼키기가 어려운 글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나의 대학 자퇴, 대학거부를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가진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긴 하다. 내가 서울대에 가기를 꺼려했던 것, 대학 진학 자체를 놓고 고민했던 것, 대학에 발을 붙이지 못했던 것, 결국 대학에 자퇴서를 낸 것, 그 모든 과정들은 불공정하고 비인간적ㆍ비교육적인 입시경쟁교육,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개개인의 차원에서 착하게 산다거나 윤리적 선택을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입시 공부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딱히 내가 착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바꾸기 위한 활동의 일부로서 대학을 거부한다.

내가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해도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효과가 있기에, 그런 사회적 의미와 효과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 타이틀을 거부한다. 대학거부가 이처럼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대학입시를 거부하기로 한 '수험생' 나이대의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하려 하고, 이미 대학에 가지 않았거나 나처럼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과 같이 대학거부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나면 이제 '서울대 거부한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대학을 다닐 때도 걸리는 건 많았지만, 대학을 자퇴해도 걸리는 건 아마도 많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병역거부를 하고 출소한 다음에 뭔가 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다시 대학을 가고 싶어질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입시폐지-대학평준화가 되고 나면 다시 대학을 맘 편히 갈 수도 있을 거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게 금방 될 거 같지도 않고….

이제 며칠 안에 김예슬 씨처럼 거창한 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학거부의 뜻을 알리는 대자보를 하나 학교 안에 붙여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무슨 반응이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우리가 대학을 거부한 거에 괜히 자기가 비난 받는 것처럼 느끼거나 하는 대학생, 대학졸업생은 없으면 좋겠다. 대학을 그만두거나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이나 대학 체제 등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같이 참여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지금 같은 교육을, 인권을 짓밟는 학교를, 잘못된 대학을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싶을 뿐이다. 우리들의 대학거부의 의미는 대충 그거면 되지 않을까.

이 글은 "대학 잘못온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공현 아수나로 활동가





99년만 해도 등록금과 입학금을 합쳐도 백만원이 안 되었었다. 사회대는 그랬었다. 물론

미미하지만 꾸준히 등록금은 올랐고, 졸업할 때쯤엔 백팔십..이었던가, 꽤나 오른 셈이다.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벌써 이야기나온지 십년쯤 된 것 같은데, 한마디로 서울대를 회사처럼

운영하겠다는 거다. 돈되는 학문 키우고, 등록금 '현실화'해서 수익도 남기고, 기념품도 적극

판매하고,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돈안되는 학문분야는 버리거나 축소하고, 등록금 부담스런

학생들은 생활이 피폐해지는 흐름이다.


서울대 이외에 다른 대학들은 이미 한참전부터 그렇게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 모두가

효율과 수익을 집요하게 따지기 시작하면서 교육 역시도 더 나은 효율과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고, 대학은 예전과 같은 '신성성'이랄까 '사회비판'의 기능 따위는

상실한 채 적극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인력 공급으로 돈벌이에 매진하는 사업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나마, 대학이 어떤 대학이어야 하는지, 대학 교육이 본질적으로 어떤 걸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그나마의 '여유'란 게 남아있던 공간 중 하나가 서울대였던 게 현실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그래도 순진하다거나 세상물정 모른다는 식의

면박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서울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서울대가

대학교육 본연의 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 문제제기를 해온 것도 아니지만 어정쩡하게나마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여태 '법인화'가 미뤄졌는지도 모른다.


법인화의 귀결은 뻔하다. 그나마 어정쩡하게 옛 대학의 그림자가 남아있던 서울대마저

여느 대학들처럼 돈벌이에 급급한 기업이 되는 거다. 대기업 취직율을 떠들고, 고시 합격률을

광고하며, 등록금은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그런 대학. 교육부의 입김에 맞춰 매년 입학

전형방식을 시험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가린 채 돈많고 집안좋은 애들만 받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될 거다. '반값 등록금'이니 '교육의 공공성'이니 따위 더욱 멀어지게 될 거다.

그런 의제들이 실현불가능한 몽상으로 치부되거나, 아예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질 거다.


아직은 상상할 수 있는 시간, 실현가능하다 믿을 수 있는 시간, 지금의 서울대학도 아니고

법인화된 서울대학도 아니고, 내가 바라는 대학은 그렇다. 단순히 취업준비 단체교습소도

아니고, 지식만 반복재생산하는 학원도 아니고, 사회와 유리된 상아탑도 아닌 대학.


대학생들 전부가 피폐한 사회흐름에 잔뜩 핀치에 몰려있을 때, 대학이 전부 돈벌이에 눈이 벌개

등록금올리고 로스쿨 양산할 때, 사회가 집단적인 광기를 보이며 이명박을 뽑고 G20을 찬양할 때,

이성과 지성이 매도되고 하향평준화를 요구하는 '민주주의'가 횡행할 때, 마치 정의구현사제단이

그러듯 사회에 대해 일종의 이정표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집단.


그렇게 대학이 기능하려면 나아가야 하는 길과 '서울대 법인화'의 길은 아마도 정반대.



p.s. 솔직히 서울대 교수들 너무 고상한 척만 한다. 각자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어떤 입장이던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발언하는 것도 '교수'의 사회적 역할일 텐데

아래 인터뷰한 서사과 최갑수 교수나 법대 조국 교수 정도 밖에 안 떠오른다. FTA이슈가 터졌을 때,

통상 이슈가 터졌을 때, 그리고 하다못해 서울대 법인화 이슈에 대해 우리 외교과 교수님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부끄러울 뿐. 최갑수 교수가 '미생물이 아니라 무생물같다'고 말한 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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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서울대마저 등록금 오르면 가난한 학생들이 갈 곳은…"

지난 8일 예산안 강행처리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 중 '서울대법인화법'도 '쥐도 새도 모르게' 통과됐다. 교수들은 "끼워팔기, 신종날치기"라고 즉각 반발했다. 무엇보다 평소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외치던 이들이 교육 관련 법안을 충분한 상임위 논의 없이 바로 통과시킨 것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인화법이 통과됨에 따라 서울대는 2012년부터 국립대에서 독립된 법인으로 전환된다. 총장 선출은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뀌어 이사회의 선출과 대통령 임명 과정을 거친다. 법인이 되면 채권을 발행할 수 있고 수익 사업도 가능해진다.

서울대를 법인화하려는 주된 이유는 인사와 재정의 자율성이 확보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학문의 자율성이 침해받고, 기초학문이 고사할 뿐만 아니라 등록금도 상승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2007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이란 책자에는 "대폭적인 등록금 인상(2007년 기준 200%)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학내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함(208p)"이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당장 이런 법인화법 같은 사안이 터질 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교수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총장을 선출하는 이사회에 교과부, 기획재정부 차관이 포함되는 만큼 교수들의 '정부 눈치 보기'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학의 사회비판 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방 국립대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법인화 때문에 당장 예산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시장 논리가 강하게 개입되면 이른바 인기학과에만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서울대학교 법인화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학생들이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민주당도 법안 폐기를 주장할 예정이어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모양새다.

<프레시안>은 공대위의 최갑수 상임대표(서양사학과)를 14일 만나 '서울대법인화법'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 인터뷰는 서울대학교내 최갑수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법인화가 되면 가장 먼저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인가? 대학 지배 구조에 변동이 생길 텐데.

최갑수 : 법인화는 대학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은 교수들이 총장을 직선으로 뽑고, 그 총장이 사실상 전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총장은 예산편성권이나 직원인사권은 없다. 교육부가 큰 틀에서 통제하고 대학 안에서는 총장이 모든 것을 하지만, 교수들은 총장직선제를 통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서로 견제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법인화가 되면 이사회가 학교의 사실상 주인이 된다. 총장 한 명에 부총장 두 명, 교수대표는 딱 한 명만 들어간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외부자 중심이다. 당연직으로 교육부 차관, 기획부 차관이 들어오고 나머지는 사실상 재계인사가 들어올 것이다. 교내 인사는 15명 중 최대 4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교내 인사가 최대 4명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최갑수 : 이렇게 되면 사실상 대학이 공기업화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자율성이 부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학 이사회를 교육부가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관치'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예산, 인사 모두 이사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프레시안 : 법인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최갑수 : 전 세계 OECD 국가 중 고등교육에서 국가가 재정지원 하는 비중이 우리나라가 제일 적다. GDP 0.5% 수준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제일 높은 게 우리나라다. 학부 수준으로 80%가 사립대학이다. 미국,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럽이나 제3세계는 사립대학 개념 자체가 없다. 다 국립대학이다. 사립대학이 우리만큼 많은 나라가 일본인데 75% 정도다. 하지만 일본 최상위 대학은 모두 국립대학이다. 국가가 대학에 재정 지원하는 원칙이 확고한 것이다. 물론 일본은 법인화를 했다. 하지만 처음 법인화 논의가 나왔을 때 문부성은 찬성하지 않았다. 총리가 설득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대학 예산과 몸집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일본 법인화는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대학이 기업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갑수 : 물론이다. 법인화는 국가가 고등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국립대학이 무너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립대학 때문에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이 이뤄졌다.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대학, 국립과 사립의 균형이 유지됐다.

근본적으로 대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학은 그 사회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다. 법인화는 자본의 논리 때문에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대학교수에게는 기업 연구원하고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비판적이고 중립적인 것을 기대한다. 자본, 권력과는 다른 것이 지성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에게 '전문가'가 되라고 말한다면 법인화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지식인'이 되길 바라지 않은가? 법인화 이후의 구조라면 대학에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비판적인 목소리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등록금도 자연스럽게 오를 것이다. 정부 지원 예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법인화를 준비하면서 등록금을 올릴 계획을 준비한 자료도 있다.

2007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이란 책자인데 법인화를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을 보면 등록금의 대폭 인상을 전제로 한 (법인화)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대폭적인 등록금 인상(2007년 기준 200%)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학내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함(208p)"이란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등록금이 지금도 절대 싸지 않다. 서울대마저 등록금이 오르면 가난한 사람들 좋은 대학에 갈 수가 없다. 저렴한 등록금으로 좋은 대학이 운영되는 것은 그 사회가 굉장히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프레시안 : 그러나 서울대가 정체돼 있고 발전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또한 법인화법이라는 것이 서울대보다는 지방 국립대에 더 불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최갑수 : 서울대가 정체돼 있다는 것이 단지 경쟁이 부족하다는 의미라면 동의할 수 없다. 현재도 충분히 법인화에 준하는 제도들이 있다. 서울대 안에는 지주회사도 있고, 교수들도 기본적으로는 호봉제지만 연말 성과급제로 급여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연구비에 따라 이미 차이가 많이 난다.

경쟁과 협동은 물론 병행되어야 한다. 학교 발전에도 경쟁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경쟁은 매우 많다. 95년도에 제기된 법인화 논의와 지금의 법인화 논의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지방 국립대가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서울대 몫이 늘면 다른 국립대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꼭 서울대 법인화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국립대의 법인화를 반대하는 것이다. 절대로 서울대 혼자서는 발전 못 한다. 고등교육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같이 발전해 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프레시안 : 법인화 법이 통과됐다. 어떤 심정인가? 앞으로 계획은?

최갑수 : 상임위 상정도 안 된 채 통과된 것을 보고 학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모멸감 느낀다. 앞으로 공대위는 이 법안의 무효화 투쟁을 할 것이다. 일단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하라고 할 것이다. 민주당도 폐기법안을 요구하고 있고, 서울대 교수협회는 헌법소원까지 낼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봄까진 무효화 투쟁 이어갈 것이다.

프레시안 : 국립 서울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법인화를 할 게 아니라 망해가는 사립대를 국립대로 만드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이다. 서울대는 '겨레, 학문, 세계의 대학'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런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특권적 지위 포기해야 한다. 모든 국립대학이 하기는 그렇고, 거점 국립대학하고 만이라도 같이 입시를 꾸린다든지, 학문적 네트워크를 만든다든지 해볼 수 있다.

학문의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사립대가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대는 기초의학, 기초공학 등 기초학문 중심으로 가고, 로스쿨, 경영학 이런 건 굳이 서울대에 있을 필요가 없다. 사립대가 하면 된다. 이럴 때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

서울대학은 자기 정체성 일신해야 한다. 국민, 사회로부터 너무 멀어졌다. 이번 법인화 문제도 침묵을 지키는 교수들이 많다. 투쟁하면서도 외롭다. 당장 법인 이사회의 '직원'으로 자신의 신분이 바뀌는데도 조용하다. 실망스럽다. 서울대란 조직이 미생물이 아니라 무생물 같다.

/이경희 기자

#1. 2008 PIFF

토요일 아침 댓바람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국제영화제.

대학 들어와서부터 계속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갈 만한 타이밍이 없었달까. 다른 짓들을 이것저것 

하다보니 번번이 '보다 더' 바쁘고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생겼더랬다.

원래는 토욜부터 일욜 저녁까지, 한 예닐곱 편의 영화를 쭈욱 볼 생각이었지만. 이러저러한 변수들로 인해 예매했던

표들을 전부 취소하거나 현장에서 교환하게 되었고..군대 동기들 그리고 그 여자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바다를 보고, 학교 캠퍼스에서 연못을 보고, 길에 눕고, 술을 마시고, 해맞이를 했다.


야외상영관에서 했던 '공각기동대' 감독의 애니 '스카이 크롤러' 더하기 2008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장상이던가..

라던 이태리 영화 '고모라'를 보다가 영화가 중간에 끊기고 이탈리아어가 너무도 리드미컬하게 잠을 불렀던 게

그 모든 걸 촉발시켰다. 아마도 야외상영관의 약간은 산만한 배경도 한몫했을지도.


부산내려간다 하면 니 와봐야 지갑아작나고 몸씹창난다고 오지말라고 걸진 욕지거리를 전화로, 문자로 질겅이는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결국, 이번에도 밤새 뭔가 촛불 하나를 뿌리채 태워버리는 듯한 기분으로 놀아제껴버렸다.

가장 최근에 봤던 건 올해 초 협회 연수기간, 북경, 상해를 거쳐 부산으로 왔을 때, 룸메이트였던 행님 한분을

옆방에 밀치고는 밤새도록 양주마시고 웃고 떠들고..우리가 포대 BX에서 냉장고 열린 문짝서 새나온 불빛을

조명삼아 밤새 술마시던 이야기와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벌이던 담배 한개피의 이야기들..그런 안주거리 삼아 

진지해지기도 했다가는, 결국 침대에 담배빵 한두개 내주고 토하고..담날 아침에 정신못차린 녀석들 쫓아내곤

나 역시 하루종일 널부러져 지냈던 기억.


그나마 이전처럼 숱하게 잘려나간 필름쪼가리들만 넝마처럼 늘여뜨려 돌아온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있는 기억을 갖고 돌아와서 다행이다. 비록 리비도와 어렴풋한 불만으로 가득한 자유연상법을 차용해

스토리와 인과관계를 무시한..일종의 포스트모던을 표방한 독립영화였지만.


다음엔 영화만 보고 와야겠다..고 잠시 생각도 했었지만, 흔들리는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로 로드 무비를

찍듯 부산녀석들과 밤새 이야기하고 걷고 노는 게 역시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도, 영화를 한꺼번에 세네편씩

과식하는 건 잘 소화시켜 내는 것보다 도로 토해놓는 게 더 많은 거 같아서.




#2. 채용설명회

어제 1시, 서울대학교 140동에서 무역협회 채용설명회가 있었다. 140동이 어딘가 했다. 홈피에서 확인해보니

국제대학원. 몰랐는데, 우리학교에서 채용설명회를 위해 공간을 빌리려면 대관료를 내야 한단다. 한 번에 30,

두 번에 50. 학교가 배가 불러서 그런 걸까. 여러 모로 생각해도 배부를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다른 학교는

쌍수들고 환영이라건만 이상한 일이다. 결국 협회와 관계를 맺고 계신 국제대학원 교수님을 통해 무료로 장소

협찬. 빈정상한 협회 인사팀분들은 자칫 우리학교를 스킵할 뻔 했고, 난 하루 볕쬐며 모교안에 포스터붙이고

채용설명회를 준비하는 색다른 이벤트를 놓칠 뻔 했다.


협회 신입에서 3년차쯤까지 중에 서울대 출신 '대표'로 뽑혀나온 나로선, 내게 주어진 15분쯤의 시간을 어찌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최근 대두되는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을 끌어다가는 60여년전부터 협회가 그런 상을 구현해온게

아닐까 한다거나, 민간부문과 같은 역동성으로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매력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통상본부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민간통상협력활동을 촉진'하는 거창하고 보람찬

일이며 일과 삶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다는 반증으로 PIFF 참관기와 색소폰 연습 등을 주워섬기는, 나름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했던 것 같다. 


중소업체들이 행사나 세미나에 참석하며 진정 고마워할 때 보람을 느끼지만, 가끔 걸려온 전화가 코트라가 아니냐
 
따진다거나 협회는 어디에 있고 대체 뭐하는 데냐고 물을 때 당황스럽다는 '진솔한' 얘기도 가볍게 눌러 해주고.


Q&A시간에는 대부분 구체적인 전형 절차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글쎄..사람들이 보통 채용설명회 안 오는

이유가, 질문이 어떤 수위를 넘어 예민한 영역으로 넘어오면 정답이 안 넘어오기 때문 아닐까. 나도 그래서 작년에

채용설명회는 두세번밖에 안 가봤던 것 같은데 그것도 대개 선물로 준다는 USB나 꽁짜점심 때문이었다. 뭐..그런

당근도 없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라 감사했고, 열심히 질문을 해준 사람들이라 더욱 감사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도 아닌 것이, 사실 나는 작년 한 번, 그 중에서도 고작 한 차례 서류에서

CEO 면접까지를 거쳤을 뿐인 조그마한 샘플인 거다. 동기들도 제각기 다른 질문, 다른 취향의 면접관을 마주했고,

일년 전 전형절차를 밟은 선배들은 더욱더 다른 환경과 내용으로 시험에 처했다. 그리고도 올해 전형이 어찌 될

지에 대해서는 인사담당자가 아닌데 무슨 책임있고 신뢰감 있는 말을 할 수 있으리오.


물론, 그런 건 있다. 협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어떤 사람을 원할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이 역시 어쩔수없이 많이
 
주관적이겠지만), 그리고 이 곳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지. 아마 마지막 문제의 경우에는 이미 이 공간에서
 
닳아버린채 닮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외부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위한 채용설명회마저 내 고민과 기억을 위한 자리로 변질시켜버렸달까. K, Ba, Ca같은 강력한 산화력으로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나를 중심으로 도는 양 묘사하는 건,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인 게다. 사랑을 한다는 건

마음을 가로세로 넓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오로지 그 상대만을 향해서였을 뿐, 어쩜 주위에 대해서는

외려 가로세로 좁혀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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