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사를 기다렸다. 쉼없이 악의적으로 북한을 흔들어대는 기사들, 마약이 창궐했다느니

젊은 여자들이 몸을 판다느니 완전히 무너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식의 기사들을 한줄로 꿰어내는

좋은 시선을 가진 기사. 그렇게 북한이 금세라도 붕괴할 듯 남한 주민들을 동요시키고 동시에

북한을 향한 한-미-일의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커먼 속셈까지 품고 있는 전쟁광들을

분간해낼 수 있어야 할 거 같다. 그들은 합리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고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봉쇄하며, 결과적으로는 전쟁의 한길로만 몰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질문 1. 여태 60년을 버텨온 북한이 갑자기 무너질 거라고 보는데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질문 1-1. 북한 붕괴론이 쉼없이 나오는 데에는 차라리 국내정치적 이유가 더 큰 건 아닐까.

질문 1-2. 연평도 사태 이후 남북 관계, 국제 정세의 주도권은 남한보다 북한에 넘어간건 아닐까.

질문 2. 남북한 문제에 있어 전쟁을 하나의 전략적 옵션으로 고려할 수 있을까.


(기사 중 굵은글씨 처리는 자의적으로 취사선택)




이제 '종말론'은 그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북한이 조만간 망할 것이라는, 망해야 한다는 신앙에 기반한 종말론은 지난 3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조금만 더 조이면…"이라는 주문으로 태평양 상공을 배회했다. 이제 그 종말론은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회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에 다가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가 찰떡공조를 과시하며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전략적 인내'의 결과가 이제 확실히 나왔다. 북핵의 포기가 아니라 그 반대인 북핵의 강화, 핵 프로그램의 확대라는 결과가 나왔다. 개방과는 정반대인 "자력갱생 원칙 철저 구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남북 교류·협력은 차단되고 남북관계는 전쟁 직전의 위기 상태로 추락했다. 적과도 대화를 하겠다던 오바마 정부는 서해에서, 동해에서 벌이는 군사 시위로 자위하며, 제대로 된 대화의 통로도 확보하지 못한 채 중국의 입만 바라보는 처지로 전락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떻게 하여 '비핵·개방·3000'은 '우라늄 농축봉 2000'으로 돌아오고 '전략적 인내'는 '전쟁 위기의 인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 이명박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 이후에야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냈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 아니던가. 한국 정부의 관리들은 미국 관리들과 만나서도, 중국 관리들과 만나서도 북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북한 정권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되뇌고 다니지 않았던가. 북은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구원의 그날'이 곧 올 것이라고.

대충 2008년 여름부터만 잡아도 이명박 정부의 주문(呪文)은 고장 난 레코드마냥 되풀이 된다. "김정일이 쓰러졌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유엔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화폐개혁으로 북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천안함 폭침은 내부 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김정은의 등장으로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연평도 포격 이후 평양의 엘리트도 동요하고 군도 이탈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죽음을 기원하는 절절한 비나리는 죽음의 춤사위를 불러일으킨다. 봉쇄 춤사위는 유엔 결의안에 맞춰 크게 펄럭이며 북의 숨통을 노린다. 작전계획 5030 춤사위도 추가된다. 북한 가까이 급작스런 군사 훈련을 수시로 벌여 북의 군사력을 소진시키고 혼동을 유도하겠다는 위험한 춤사위다.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개념계획 5029 춤사위를 작전계획 5029로 격상한다. 아예 이참에 일본 자위대도 한반도로 끌어들여 한·미·일 3각 연대 춤사위도 꿈꿔본다.

죽음의 춤사위에 장단과 추임새가 빠질 수 없다. 북한 깊숙이 정보원이 있다는 '언론 매체'들은 흉흉한 뉴스를 장단 맞춰 뿌려준다. 주민들은 배가 고파 일을 가지 못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불만 때문에 당 간부와 갈등이 심하단다. 절망의 심연에서 마약이 창궐하고, 한국을 구원의 땅으로 갈망한단다. 종말이 멀지 않았단다. 수백 명이 참가한 당대표자회 개최일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 '언론매체'는 미래의 일은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10년 내에 붕괴한다. 그리고 그 경로는…"

이들의 추임새로 춤사위는 치솟고 비나리는 높아진다. 확신은 확신을 낳고 세상을 재단한다. 북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면 경제 제재를 견딜 수 없어 굴복한 것이고, 북이 포격을 가하면 경제 제재를 견디지 못해 주먹을 휘두른 것이라고 믿는다. 김정일이 언론에 나타나지 않으면 병세가 위중한 것이고, 언론에 나타나면 와병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쇼라고 믿는다. 한국의 포격훈련에 맞대응하면 북한은 호전적이고, 한국의 군사훈련에 대응하지 않으면 북한이 굴복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이들에게 북은 죽어도 죽은 것이요, 살아도 죽은 것이다.

하여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의 주술에 취해 한바탕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모두를 끌어들이려 한다. 동참하지 않는 자들은 저주하고 배척하고 단죄한다. 굿판에 남아 있는 이들 끼리는 같은 주문을 주고받고, 서로의 코드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이들 사이에서 종말론은 확신이 되고 현실이 된다.

그 굿판의 와중에도 물론 현실은 굴러간다. 북은 지난 1년 동안에도 발전소를 완공하고, 화학공장과 금속공장을 개비한 데 이어 소비재 생산을 확대하고 놀이동산을 짓고 핸드폰 보급을 늘렸다. 재작년에 헌법을 '김정일 헌법'으로 개정하고 국방위원회를 명실상부한 최고통치기구로 공인하는 등 국가체제를 정비하더니, 지난해에는 40여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열어 노동당도 '김정일 체제'로 재정비했다. 선군정치는 '핵 억제력' 강화를 넘어 우라늄 농축과 경수로 발전소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연평도 포격에 분풀이라도 하듯 한미 양국군이 총력을 동원해 포격훈련을 하던 날 북은 "비렬한 군사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않았다"고 '물'을 먹이고, 연이어 열린 한국 육·해·공군 군사훈련에는 김정일 최고사령관 취임 '경축연회'로 대응한다. 그 와중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대화 제의를 하고 핵 연료봉을 해외에 매각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하는 것으로 화룡점정이다.

사제들의 현란한 언론 마사지와 종교재판으로 유지되던 천동설도 결국에는 종말을 맞았다. 현실만이 최후의 심판관이다. 조만간 오바마 대통령이 질문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 각하, 기다리라는 대로 기다렸는데 결과는 정반대 아닙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하여 김지하를 빌린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서재정 美 존스홉킨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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