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이 곳의 사계절은 두바퀴 정도 돌려서 봤던 거 같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

 

올겨울 삼엄하게 내린 눈에 호수가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본관 중앙홀에 설치된 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으로 쌓은 탑이 360도의 뷰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 작품은 볼 때마다 내가 티비를 보는 건지 티비가 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주는 듯.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라도 할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 탑의 끝쪽에는 대들보를 상량하며 적어둔 축문이 한바퀴 둘려있다.

 

 

마치 구겐하임 미술관의 달팽이껍데기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계단이 휘감긴 벽면.

 

그리고, 온통 앙상한 잔가지만 가득한 나무와는 달리 겨울철 북풍한설에도 끄덕없는 둔탁하고 묵직한 인공조형물.

 

그 와중에 과천서울랜드 매표소가 이렇게 방긋 웃고 있었다. 어렸을 때도 저렇게 웃고 있었던가, 기억이 그닥.

 

 

 

 

 

 

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PM 06:15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나온 장소가 어디인지 맞춰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 힌트 : 아래 장소와도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28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줄여서 보통 MOMA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숙소 옆인데다가 카드 혜택으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하여 시간을 쪼갰다. 짧은 일정의 여행 비스무레한 것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리는 건 다소

 

무리한 일정일 수 있었지만 이전에 여기를 돌아봤던 기억이 꽤나 인상깊게 남아있던 덕분이기도 하다.

 

 

야외 전시공간에 넉넉히 깔려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갈색머리의 아가씨, 그리고 슬쩍 눈길이 돌아간 가드 아저씨.

 

성상들이 색색으로 뉴욕의 한가운데 하늘을 이고 섰고, 그들의 발치에서는 뱀이 스르륵 미끄러지는 중.

 

 

염소상 앞에서 신나서 염소 우는 소리를 내는 꼬맹이, 그리고 함께 머리 위로 뿔을 만들며 놀아주는 엄마.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빠져들어갈 듯한 포즈의 석상 뒤로는 테이블을 점령한 채 통화중인 여유로운 뉴요커 혹은 여행객.

 

  

  

MOMA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중이었는데,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 안에서 뭔가 만드는 아이들이 보인다.

 

 

 

실내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는 참에 문득 눈에 띈 표지. 500명 이상이 모이는 건 위험하며 불법적인 행위라는 경고문인데,

 

얼마전 뉴욕과 세계 일부를 뜨겁게 달궜던 '어큐파이!(Occupy!)'의 영향이려나 싶기도 하고.

 

무지개빛으로 꽂힌 주요 언어별 MOMA 안내 팜플렛.

 

 

 

1층과 2층에 걸쳐 전시중인 현대미술 작품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 촬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주로 Contempararty Art 쪽을 둘러보며 눈길 가는 작품들을 하나씩 사진에 담아보았다.

 

 

QR코드 같기도 하고 체스판 같기도 한 작품. 카펫을 짜듯 가로세로로 직조해서 만든 듯.

 

 

 

I wasn't invited here, so I came here to see why I wasn't invited. 센스있는 어느 작가의 수기 작품.

 

 

선 몇 개로 저렇게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움직이는 느낌을 부어넣을 수 있다니.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도 못하는 발치에 동그마니 놓인 고양이밥..을 빙자한 예술작품. 이런 파격은 여전히 재미있다.

 

어느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의 작품. 스타킹을 못박고 무겁게 매달아 바닥에 철푸덕, 내려앉혀 버렸다.

 

 

 

 

벽 안에 들어간 채 불투명한 유리로 슬몃 형체만 보이는 신발들. 어떤 건 짝을 맞춰서, 어떤 건 한 짝만.

 

의자 위에 앉거나 옷장 안에 옷을 넣는 게 도무지 불가능해진 의자와 옷장.

 

 

 

 브루클린의 빈곤율과 범죄율을 예술로 형상화한 작품. 시뻘건 선들은 인연을 묶어둔 실이 아니라 범죄자와 감옥을 이은 선이다.

 

 

바랜 색감이 인상적이면서 무슨 오랜 사찰의 불화같기도 하고, 괴물을 그려놓은 거 같기도 한 게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어디서 봤었는데, 그냥 곳곳의 권위적이고 유명한 명소들에 대고 뻐큐 손가락 셀카를 찍었을 뿐이었다.

 

 

 

 

혹시 백남준의 작품인가 싶어-비디오 아트, 하면 백남준 밖에 모르니깐-봤는데 TV가 필립스다. 백은 삼성만 썼었다.

 

 

 

인디언과 선글라스와 액자 하나. 액자 속 그림이 눈부시니 인디언한테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인디언이

 

선글라스 같은 현대문물을 갖는 대신 액자 속 그림과 같은 대자연을 상실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피카소의 Weeping Woman이라는 작품 중 하나. 그림만 봐도 딱 그 제목이 번뜩 떠오르는.

 

 

특정 사물, 아마도 사람인 듯한 사물과 모서리 벽면이 중첩되는 순간을 여러 시선에서 담아낸 듯한 연작이다.

 

이제는 어느새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현대 문명'의 소산임에 틀림없는 카세트 테이프의 릴을 온통 풀어제쳐서

 

사방에 치덕치덕 흔적을 남기고 급기야 그 테이프판까지 자취를 남겨버린 작품.

 

그리고 전시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참신하면서도 재미있던 작품. 갖고 싶은 거 하나 고르라고 하면 이걸 가리키고 싶었다.

 

이미 '현대 미술'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되어버린 현대 미술의 클래식같은, 그래서 이미 너무 비싸진 작품들 말고

 

정말 따끈따끈하고 익숙치 않은 작품들이 더욱 재미있고 눈길을 붙잡았다. 

 

살짝 미소녀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작품, 그래서 더 인상적이기도 했고 마음에 들기도 했는지도.

 

어느 문명이 멸망하고 남긴 최후의 아이들처럼 꼬맹이답지 않은 성숙하고 비극적인 표정과 묘한 색감이 참 맘에 들었다.

 

 

* 작품을 사진으로 재촬영하며 색감과 톤이 바뀌는 건 피할 수 없었지만, 이 또한 현대 미술에서 용인할 만한 수준의

 

재현과 변용에 속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면서 새삼 '오리지널리티'란 뭘까 하고 답없는 고민을 살짝 해보았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최초 아이디어는, 이런 풍경과 조우하며 시작한 거 아닐까.

그가 즐겨 활용한 골드스타의 텔레비전 브라운관 속에서 뭔가 예기치 않은 걸 발견하는 순간.


그런 거랑 비슷한 거다. '중력의 법칙' 뉴턴과 사과나무를 묶어 생각하듯이

한국 최초의 아티스트 백남준과 허름하게 낡은 텔레비전이 하나의 끈으로 묶이는 거다.


상처투성이 브라운관 안에는 꽃잎을 대부분 털어버린 벚나무와 가로등이 들어차고,

그 나머지 여백은 뽀얀 햇살이 전부 메워버렸다.


일 좀 하자. 한 번만 더 보고.





내눈을바라봐 넌행복해지고

내눈을바라봐 넌건강해지고

허경영을불러봐 넌웃을수있고

허경영을불러봐 넌시험합격해

내노래를불러봐 넌살도빠지고

내노래를불러봐 넌키도커지고

허경영을불러봐  넌더예뻐지고

허경영을불러봐  넌잘생겨지고

아침점심저녁 허경영을세번만부르면 자연스레웃음이나올것이야

망설이지말고 right now

call me touch me with me every day every body

난너를원해 난너의전화를원해 바로지금두려워하지말고 허경영을불러봐

신나는일이생길꺼야 즐거운일이생길꺼야 행복한일이생길꺼야 놀라운일이생길꺼야


이명박에 대한 비난, 비판은 때로 환각 효과를 일으키고 또 그것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 만악의 근원이 이명박 개인인 것처럼 '상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용산과 같은 철거문제도,

미디어법안과 금산분리문제도,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것도, 경제가 만성적인 위기 상태에 처해있는 것도,
 
쌍용차와 같은 비정규직 문제도, 삼성의 불법재산 상속이나 주식승계 문제도, 사교육 광풍도, 부동산 투기도, 

북한과의 대결 구도나 심지어 일본에 대한 외교사적 문제까지도, 그 모든 게 이명박 일개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비롯한 일인 것처럼 주장된다.


똑같다. 5년전과 똑같다. 그 때도 이게 다 놈현 때문이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명박 탓이라 돌리기는 쉽다. 사실 노무현 탓이었다 돌리기도 쉬웠다. '권력'의 가시적인 상징으로, 시스템의

살아있는 징표로서, 때리기도 쉬웠고 욕하기도 쉬웠다. 눈앞에 보이니까. 깊은 생각없이 그저 모든 문제를 그의

앞으로 밀쳐두고 욕하기는 쉬웠으니까.


그렇지만 구분되어야 한다. 이명박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야 하는 게 맞지만, 이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은 아니다.

사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자인했듯, 권력을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 근본적인 문제는 그나마

제도적인 감시가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어느새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변했거나 우리 내부에

이식(혹은 자생)되어 있는 부분에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 근본적인, 그리고 치명적인 질문을 던져 볼 때라고 생각한다.


뭔가 우리가 바라던 건 '철인정치인'이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리들의 '어질고 현명한 목자'였던 건 아닌가.

우리는 우리를 알아서 잘 다스려주고 어여삐 보살펴줄 성인군자, 혹은 시혜자, 혹은 전지전능한 왕의 재림을

기다리는 건 아닌지. 그런 부풀려진 기대가 노무현과 이명박, 그리고 죽은 노무현을 다시 불러내는 우리 안의

토양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좌절하고, 여기는 썩었어, 희망이 없어, 라는 또다른 극단적인 자기혐오와

패배의식으로 달려가고 말이다.


이건 일종의 병리적 현상 아닐까. 사실 이명박의 한마디로 언론의 논조와 법원의 판결과 검찰의 기소, 그런

이 사회의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며 반동적인 부분들이 조종, 통제된다고 생각하기에는, 적나라한 공권력의

행사로 목숨을 부지중인 이 정권이 너무나도 허약한 게 사실인데도, 이명박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또 반대로, 이명박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만사형통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일 개인에 모든 문제점을 귀착시키는 패턴을 반복하다보면
 
나오는 게 있다. 이미 나와 버렸다. 허경영이 "건강과 행복과 웃음"을 약속했다. 허경영이 "시험합격과 다이어트 성공,

키높이깔창과 성형수술 성공"을 약속하고 나선 거다. 그는 이제, 대중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는 신이 되겠노라

선언하고 나섰다.


기대를 한몸에 받던 노무현, 한순간에 모든 국민의 비웃음감이 되어버린 노무현, 어쨌든 당선한 경제대통령 이명박,
 
모든 사람이 증오하게 된 이명박, 또 다시 기적처럼 부활한-마치 토굴 속에서 사흘만에 부활한 그리스도처럼-

고 노무현. 이미 한국의 대통령은 신적인 존재로 취급된지 오래다. 그게 전능한 구세주던, 혹은 악신이던간에.

허경영은, 그리고 허경영의 "Call Me"란 노래는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건지도 모른다. 선한 목자의 재림을

기다리는 양떼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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