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미술관,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만난 참 잘 생긴 벚꽃나무.

 

고층빌딩들로 포위된 형국임에도 여전한 당당함을 간직한 덕수궁의 모습과도 같이, 우아한 가지를 늘어뜨린 채

 

자그마한 등불같은 벚꽃송이들을 밝히고선 드문드문, 깜빡 잊었다는 듯이 팔랑팔랑 흰나비들을 날려보내는.

 

 

 

 

덕수궁 돌담길. 연인들이 걸어가면 백방 깨진다지만 사실 안 깨지는 연인이란 거, 한 사람에 한번쯤이려나.

내가 좋아하는 길, '검문'이란 단어가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들어 놓아서 아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의경들이나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걷다 보면 구세군회관도 나오고. 종로통도 나오고.

장소를 옮겨 효자동, 거리를 지나다 허벅지 높이에서부터 말간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뜬금없어 보이던, 그렇지만 사실 머잖은 산타클로스의 재림, 등잔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 오각별들이 반짝반짝.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리얼리즘' 전은 추석 연휴 기간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김혜자를

닮은 이 인도네시아 여자는, 그녀의 인상적인 얼굴, 혹은 두 눈을 제한 나머지는 온통 흐릿하게 처리되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는 듯.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라는 무미건조한 제목이 레알 리얼리즘의 향취 가득.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로 광고나 티켓에 온통 쓰이고 있었는데 역시, 작품의 일부만 자른 채 활용된

그림들과 전체가 다 살아있는 실제 사이즈의 그림은 그 느낌이 꽤나 다르다. 가장 맘에 들던 작품 중 하나.

또 하나는 문화혁명기의 중국 화풍을 여실히 보여주는 몇 가지 작품들, 리얼리즘이 결국 대면하게 되는 사회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영웅화된 노동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예컨대 이런, "구리광산의

첨병" 같은 작품.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마치 기념동상이라도 된 듯 단단하고 당당하게 버티고 선 저 굳건하고

의지적인 자세, 게다가 광산 내부를 흐르는 물방울의 정밀한 묘사까지.


이외에도, 비바람을 맞으며 한밤중에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복구하는 용감하고 굳은 눈매를 가진 아가씨의

그림이라거나, 밤중에 애기를 이쁜 포대에 업은 채 쇠스랑을 꼬나쥐고 사람죽일 눈매로 뛰쳐나오는 애아주머니의

그림 같은 것들.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절로 기운이 솟아 죽창이라도 뽑아들거나 열심히 노동해야 할 듯.

사실 한국의 20세기 리얼리즘을 보여준다는 작품들은 대개 실망이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20세기는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를 공유하고 있었고 피식민 경험, 일본의 수탈, 태평양 전쟁,

식민지 근대화와 독재, 자본주의화 따위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치열히 대면한 작품들이 보였지만, 한국은

그다지 선명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은 느낌. 일제 강점과 극렬한 사상대립, 한국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

재벌과 압축 근대화 등등 리얼리즘의 냉막하지만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주제는 무궁무진했을

텐데, 다른 나라의 작품들에 비해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의미심장해 보이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아마도 한국의 리얼리즘을 좀더 잘 드러내는 작품들의 섭외가 안 된건지도. 그치만 그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속 농자천하지대본'. 쌀포대에 직접 그려진 이 작품은 표창장과 태극기와 캠페인 포스터의

활짝 웃고 있는 농부의 모습들이 온통 쭈글쭈글한 저 노인의 얼굴 속으로 우겨들어간 채, 그가 품은 한장의

편짓말로 주제를 드러낸다. 노인들만 남아 일손은 없고, 몸은 아프지만 난 괜찮응게. 부디 너그들은 대처에서

잘 살아라잉.



추석날 서울에 남아서 노는 건 처음이었다. 뭔가 공기가 달라진 채 휑한 느낌의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갔다.

중화전 앞마당에 놓인 품계석들은 원래 왕이 조회를 볼 때 문무백관이 시립할 위치를 표시한 것, 그렇지만

추석을 맞아 품계석 주변에는 온통 '일반 백성'을 위한 플라스틱 의자가 깔린 채 우리 소리 한마당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거의 한 때나마 '똥돼지들'이 대대손손 해먹던 자리에 '딴따라'와 '무지렁이 백성'들이

편안히 앉아 연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니. 유쾌한 추석.





오랜만에 덕수궁미술관, 생각해보면 여긴 뭔가 내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덜렁 카메라 둘러메고 떠나는 곳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덕수궁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있었다.

미술관 앞, 몇 개의 부처상들이 놓여있었다. 심상히 여기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배치된 것들이었다. 작품의 컨셉, 이번 전시의 컨셉은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지. 그리고 그 아연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어떤 공력을 기울이고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는지. 그걸 보여주려는 전시였달까.


그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이 조각상들..이었지 싶다.

덕수궁 미술관을 가는 길엔 산책삼아 한바퀴 돌아보는 덕수궁, 늘 그렇듯 낯익은 듯 하면서도 새로운 구도와

모습들이 드러난다. 내가 방문하는 시간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피사체는 사라지고 배경만 남아버린 이런 풍경.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전시 제목은, 실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라는 백남준의 작품 제목을

따서 지은 거라 한다. 전시회를 한바퀴 둘러보다가 운좋게 만난 도슨트의 설명이 그랬다. 굉장히 로맨틱하고

그럴듯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백남준의 원제가 더욱 그럴듯하지 않은가 싶었다. 우리가 둥그렇게 생긴

아날로그, 디지털 시계를 내려다보기 전에는 달을 바라보며 시간을 어림잡았을 테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밤하늘에 뜬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상념을 잠겼을 거다. 그야말로 태곳적의 텔레비전.

내가 전시를 돌아보는 방식은, 언젠가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런 식이다. 우선 한바퀴 훌쩍 돌아보고 나선 맘에

폭폭 꽂혔던 것들 위주로 다시 한번 돌아보기. 요새는 워낙 도슨트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처음 한 바퀴는

으레 도슨트를 따라 돌며 기본적인 배경지식과 관점을 참고하게 된다.

그냥, 전시를 죽 돌아보고 나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도. 역시 시간은 흐르는구나. 시간은 흐르고,

어찌 되돌이키거나 붙잡거나 고여있을 수 없는 순간들이 지나고, '강이 흐르듯' '시간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듯'

어쩔 수 없는 상처들은 덮거나 지우고  다시 흐르는구나. 나도 흘러야겠구나. 그런.

이 작품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비누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삽시간에 '나이'를 먹는다. 야외에 설치되어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씻기고 아이들의 손이 타 금세 지저분하게 녹아내리고 심지어는 갈라지는 조각상.

건물마다, 예술작품마다 제각기의 '수명'이랄까 '나이'가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게 아마 도심속의 덕수궁

미술관에 들어설 때 느끼는 이질감의 정체겠지만, 씬삥의 콘크리트 건물이 뿜어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훨씬 긴 호흡의 뭔가를 이전 시대의 건축물이나 예술품에서 느끼는 거다. 그 차이. 그걸 응축해서 보여주는

게 이 비누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아닐지.

다른 작품들은 모두 이미 제작된 작품들을 섭외한 거지만 이 아이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다시 제작된

것들이라 했다. 이전 전시에서는 이런 아이들이 화장실 세면대 옆에 설치되었다던가. 손을 씻고 이 아이들을

문대면서 자연스레 씻겨나가고 지워지는 효과를 의도한 거라 했었다. 멋지다.

덕수궁 내에는 시간의 흐름을 잡아내는 또다른 도구가 있으니, 바로 자격루다. 덩어리 덩어리 분절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흘러가는' 시간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은 액체, 물이었을 거다. 그러고 보면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 가슴을 울렸었다. liquified agony. 에라 모르겠다. 씻겨나가겠지, 라는 식의 제목.



* 도슨트 말로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를 위해 덕수궁 미술관 앞에 설치된 저 비누 조각상들이

불과 한달만에 저렇게 쩍쩍 갈라지고 허옇게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아마 전시가 끝나기 전에

녹아내려버릴지도 모르겠다 했다. 장마철이 다가오고, 유난히 비가 많을 거라는 이번 여름을 생각하면

정말 그럴 거 같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관람료는 덕수궁 입장료 포함 5,000원. 성인 기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카소전시회에 다녀왔다. 미술을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작품을 보며 그의 위트와 의도를 느끼고 웃어줄 수 있었다. 회뜨듯이 얼굴을 조각내어 평면에 늘어놓은 그림들은 그의 한 시기..그리고 그의 계속되는 실험의 한 연속선에 불과했다. 그가 곁을 허용했던 7명의 여자들..피카소는 그녀들을 모델로 세워두고는, 그 어슴프레한 윤곽을 몇개의 선으로 버혀내며 마치 선율처럼,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정말 와닿았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 그림 앞에서 족히 십분은 서있었던 것 같다. 그가 큐비즘에 빠져있던 시기, 칼날처럼 솟은 어깨'뽕'을 대담하게 그려내고는, 그위에 어두운 색채로 생략된 목에 이어붙은 직육면체의 턱쪼가리..혹은 얼굴의 아랫도리. 그리고 그 첨단쯔음에 위태하게 균형잡고 선 초승달같은 얼굴. 정면을 향한 외눈과 긴장되고 신경질적인 얼굴면 옆에는 또다른 얼굴이 그림자를 먹고 숨어있었다. 칼날같은 초승달이 품고 있던 측면부의 완만함. 피카소라면 분명히 '둔덕'이라고 표현했을 것같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굴곡을 그리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와 보이는 그 초승달의 얼굴정면은 가득찬 FULL MOON과 같은 이면을 갖는다. 정면의 외눈이 날카롭고 섬세하다못해 찌를듯한 예기가 서려있다면, 그림자를 머금은 측면의 눈은..놀란 듯이 커진 눈. 예기치못하게 허를 찔린 듯한, 원치않던 사랑에 빠진 듯한..표정. 그렇게..그 정면을 향해 무표정한 '여자'는, 측면에서는 가늘고도 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측면을 파고 들수록 깊어지는 어둠..불빛조차 가닿기 힘든 내면으로 다가설수록 그녀의 미소는 깊어지고 황홀해진다.

피카소의 인물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여자'가 가진 최외곽의 가면..하늘을 향해 예각을 세운 날카로운 코잔등에서 급격하고 단호한 감정선을 느껴보고, 찔리면 당장 죽을것 같은 코끝에서 사정없이 놀아나는 남정네의 가슴서늘함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약간만 고개를 틀어도 나타나는 방심한 듯한 눈매의 매력과 깊이를 품은 미소에 반하기도 하고. 피카소는, 잘라낸 손톱같이 신경질적이고 속알머리없어 보이는 초승달의 이면에 그렇게 둥실하고 아늑한 둔덕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는, 7명의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한사람한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인듯이 사랑했을 거라고, 질리지도 않고 그녀들의 얼굴을 탐닉하고, 표정과 뉘앙스를 짜내었을 거 같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시작되는 입술의 한쪽 언저리에서 다른쪽 언저리까지 가닿고 탐험하고 싶어서..불빛도 닿기 힘든 그 구석 한켠의 미소를 완전하게 찾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리라.

이미 한차례, 쪽당할 각오하고 '노란벨트'라는 작품을 폰카로 기어이 찍어버린 터였다. 피카소의 에로틱함..혹은 그가 추구하던 관능미가 유쾌하게 변주된 작품인거 같아서. 마치 프로이트의 심리병리학적 해석들처럼. 그런데 도무지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가 없다. 온갖 매체들이 써놓고 긁어놓은 작품사진이나 설명을 보아도..무엇이 원전인지 모르겠지만 거개가 다 똑같은 작품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뿐이다.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이 작품은..아마도 대중이나 전문가의 '인증'이란 걸 받지 못한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어서..내가 한번 기억을 떠올려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여자의 얼굴'이란 거.

덕수궁 돌담길의 그늘에 숨어 걸으며, 피카소는 붓으로 독심술의 결과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는 여자의, 사람의 얼굴이나 마음이 책처럼 편평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거다. '독심술'이란 말의 어폐..를 그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2006. 6. 24)
시립미술관 가는 길은 늘 설렌다. 덕수궁 돌담길의 운치도 그렇지만 도심에서 한발 벗어난 곳의 고즈넉하고

적적한 분위기가 맘에 든다. 게다가 몇 시간꺼리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소재들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아마도

어렸을 때 큰 길건너 아파트촌에 있었던 '기린놀이터'로 달음질치던 기분이 이랬을 거다.

앤디 워홀. 대량 생산, 무한 복제의 시대에 걸맞는 '팝아트'를 창시한 예술가이면서 헐리웃과 세계의 '유명인사'

그 자체를 이미지로 소비해낸 자칭 '기술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영향력, 역사적 중요성 따위와 관계없이 그저

사람들이 잘 알고 제혼자 친숙한, 그야말로 '쎌레브리티(Celebrity)'로서, 그는 마를린 먼로와 레닌, 마오쩌둥을

같은 반열 위에 놓고 작업을 하는 거다.

그의 숱한 '선정적'인 말들 중 이런 것도 있다. "미래에는 모두가 15분씩은 유명인이 되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

했던가. 그의 작품들은 마치 익명의 일반인이 유명인이 되듯 하찮고 사소한 상품과 물건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꽤 많이 보인다. 너무도 흔한 세제 상자, 통조림스프 따위가 열맞춰 세워진 모습을 재구성한 작품들이 그렇다.


그가 창조해내는 세상은 모든 것이 이미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제통도, 재클린 케네디의 죽음도,

레닌과 마오의 이데올로기도, 교통사고와 심지어는 죽음조차 변주되는 해골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는 왜

자신이 기계처럼 예술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까. 뭔가 그림 뒤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고 온갖 기호를 암호처럼

배열하던 기왕의 미술과는 다르다는 뚜렷한 선긋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더이상 스스로를 근대적, 혹은 그 이전 시기 '예술가'라는 단어가 갖는 아우라로 포장하지 않고, 단순한 하나의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를 자처하고 자본주의 상업미술과 근대 미술과의 접점을 찾는 여정을 걸었달까. 그런

점에서 그의 세계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탈근대의 미학과 미감들에 대한 하나의 클래식인지도 모른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탈근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클래식'은 이제 조금은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앤디 워홀이 전례없는 예술 양식과 미감을 개척했다고는 해도 사실 워홀식의 작품들은 이미 무수한

발전 혹은 변화를 거쳐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거다. 자본주의적 광고와 예술의 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일상의

것들을 주목하고 새로운 문맥에 배치하는 시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너무도 진부해진지 오래. 


게다가 재키-재클린 케네디-의 죽음이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이미지로 어떻게 소비되고 소진되는

지에 대해서는 워홀보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훨씬 익숙할 수 있는 거다. 물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여전히

워홀의 참신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필요하달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익숙해진 만큼 다른 예술가들은 다시

꾸준히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있는 거다. 굳이 앤디 워홀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앤디 워홀의 바나나 그림이 프린팅된 벽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찍고 있는 사진 한장한장,

그게 바로 앤디 워홀이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한 마릴린 먼로라는 작품이고 네가지 색깔의 레닌 작품인 거다.

이미 이미지는 넘치는 데다가 심지어 유사한 곳에서 유사한 피사체-음식, 건물, 풍경 따위-가 쉼없이 복제되고

변주되고 있는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가 워홀을 관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시대를 관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 뒤를 보려 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런지는 별개 문제지만

그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충분한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아'지는 걸 두려워했나 보다. 충분한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기. 이미지의 매트릭스를 깰 수 있는 건 역시 성찰의 힘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모르겠다.

그의 작품 뒤로 걸어나오면서, 몇가지 그의 말들을 되씹어 봤다. 말장난같기도 하면서, 묘하게 여운이 있다.

*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 의해 변화한다.

* 인생은 그들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시리즈의 연속물이다.

*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살고 늘어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아이로 살아갈 것인지 배워야 한다.

* 사람을 가장 흥분시키는 매력들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 예술은 당신이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것,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굳이 꾸역꾸역 찾아 돌아보는 이유기도 하다.

시립미술관 1층에서는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이 열리고 있었다. 다들 앤디 워홀전만 보고 여기를 지나쳐

가버리는 듯, 들어가니 관람객은 나 혼자 뿐이었다. 작품들을 보다 보면 불현듯 스스로 되묻게 된다. 근데 이거

조각전이었지? 조각은 뭐지? 하고.


커다란 덩어리 하나 혹은 여러개가 단단하고도 조용하게 지표 위에 버티고 있는 게 전통적 의미의 조각이라면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의문에 빠뜨린다. 덩어리가 아니거나, 단단하지 않은 액체/기체거나, 조용하지 않고

회전하거나 불규칙하게 움직이거나, 지표 위가 아니라 벽면이나 천장에 있거나. 형체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도발적이고 불안정해 보이는 것들, 그것들을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각이 아니라 청각과

촉각까지 끄집어내는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앤디 워홀전만큼 재미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했던

전시 공간이었다. 앤디 워홀의 그것들이 조금은 더 '클래식'하고 '올드'해 보인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에서 돌아나오는 길, 아까는 참 앙상하고 못나보였던, 무슨 파리채마냥 똥그란 철사에 전선 그물망

얼기설기 엮인 듯 보였던 그곳에 불이 들어왔다.



연말 분위기낸다고 나무들에 저지르는 만행, 이제 그만하자.

라는 포스팅을 어제 올렸지만, 시립미술관 가는 길에 마주쳤던 멋진 풍경, 멋진 아이디어, 멋진 사람들이 있어

소개를 하고 싶었다. 흉물스런 나무조명들에 눈쌀을 찌푸리며 오르던 덕수궁 돌담길과 함께 걷던 나무들이

빨간 토시를 둘렀다.

새빨간 털실로 정말 보기만 해도 후끈 따뜻하게 보이는 나무들이다. 어쩌면 저렇게 가지런히, 차분하고

정갈하게 털실을 감았을까.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만큼 새빨갛고 따뜻한 색깔로 소개된 캠페인,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이건 뭘까.

궁금해 하면서, 또 이런 식으로 나무를 꾸미면서 알리는 방법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미술관 쪽으로 걷다 보니

여전히 작업중이신 분들이 많다. 나무마다 두명씩 달라붙어서, 옷이 더러워지거나 쪽팔리거나 하는 건 신경도

안쓰고 아예 땅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나무에 털실을 감는데 온통 몰입중이었다.


굉장히 추운 날이었다. 이번주 내내 몰아닥친다던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털실을 저렇게 꼼꼼하게 신경쓰며 감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 이뿌게 감아내는데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역력히 느껴졌다. 추위조차 잊었을까. 빨갛게 얼어붙은 얼굴들이 너무 이뻤다.

미술관에 들어갔다 나올 때도 계속 작업 중이면 따뜻한 캔음료라도 건네리라 했다. 두어시간 구경하고 나오니

해는 떨어지고 추위 역시 더욱 맹렬해져 있었다. 다행인지 그분들도 대략 작업을 마치셨는지 철수하셨다.

음료값은 굳었지만, 웬지 아쉬웠다.


그래서,

집에 와서 좀 찾아보았다. 대체 누굴까. 빨간 털실을 저토록 정성들여 나무에 감아주는 저 쎈스쟁이들은.

그리고 질문처럼, "지금 아프리카의 신생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http://www.moja.sc.or.kr/  '세이브 더 칠드런'이란 국제연맹에서는 국내외 아동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댄다. 이렇게 실을 나무에 감는 건, 심한 일교차에 목숨을 잃는 아프리카 말리의 신생아들에게

모자를 떠서 보내주자는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자는 커녕 실뜨기도 제대로 못하는데, 라고 맘속으로 중얼대는 걸 들었는지 플래시로 만들어진 첫화면에선

슥슥 글씨가 써진다. "처음 뜨는 모자입니다." 방문객의 맘 속을 짚어 미리 선수쳐주는, 꽤 감각있는 카피다.

아프리카에서 얼어죽을 수 있단 거, 이해한다. 이집트 사하라 사막에서 하룻밤 노숙을 해본 경험상 아프리카의

굉장한 기온차는 상대적으로 더욱 위험할 수 있을 거다. 더구나 저렇게 조그맣고 연약한 아기라면..

"하나의 모자가 한 생명을 살립니다." 불쑥 나도 연말에 털모자나 떠볼까, 싶다.






그래도 일요일 오후, 육천원짜리 전시를 보았으면 사진찍는 솜씨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싶은데.

확실히 겨울이었다. 들어갈 땐 흐릴 지언정 사방이 환했는데, 몇시간 지나지 않아 금세 어둠이 짙게 나렸다.
 
어둠 속, 문득문득 도심의 야만스런 불빛과 소음이 정적을 깨뜨리는 가운데 둥실둥실 떠오른 덕수궁 내 중화전.

배병우 작가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닮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의 농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

중 태반은 해뜨기 직전, 실내는 묘한 공기에 감싸이고 바깥은 몽환적인 보랏빛이나 초콜렛빛 어둠이 출렁이는

그런 시간에 얻어졌다고 했다. 뭐, 사진이 쉽게 찍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상당부분 '우연'이란

요소가 짙게 작용하는지도. 일단 빛이라는 것부터가 그러니까 말이다.

뭐 그런 노력에 비견되랴만은, 쉼없이 눌렀던 셔터, 그렇게 남았던 몇개의 흔적 중 그래도 조금은 봐줄만

하다 싶은 사진들. 진눈깨비처럼 펄럭이며 내리는 빗물 탓이기도 했지만, 한동안 덕수궁미술관 입구 처마 안에

우두커니 선 채 셔터만 눌렀다.

미술관에서 몇 걸음 내딛다가 뒤로 돌아 한 방, 날려줬다. 이녀석 깜짝을 놀랬을 거다. 아닌게 아니라, 하얗게
 
질려버렸다. 스크림의 그 유령 마스크가 떠오를만큼.

확실히, 몸이 움직이니 구도가 바뀐다.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진은, 무쟈게

실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눈여겨본 것, 그런 것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USB였다.

기억의 외장하드. 딱히 미감이나 예술적인 측면을 고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 아..사진 좀

잘 찍고 싶다. 카메라도 질렀는데 제길.

조금 걷는데 하얗게 질린 덕수궁미술관 벽면에 얼룩이 졌다. 무슨 백한마리 달마시안도 아니고, 괴기스럽게

부풀고 꺽여든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벽면에 대고 간질간질, 간지르듯 간만 보고 있었다.

아까 밝을 때만 해도 카메라 수십대가 쏠렸던 광명문, 지금은 나와 일대일, 독대하는 중이다. 역시 빛이 부족한

건가. 커다란 구리 종색깔같은 처마 위 하늘 색깔이 제일 맘에 드는 구석이다.

돌아나가는 길, 느지막히 아침 겸 점심만 먹고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참이었다. 배가 고파서 몸은

뭔가 먹을 것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앞으로만 계속 내달리고 싶어하는데, 손이랑 눈이 브레이크를 잡는다.

참..별 것도 아닌 사진 찍겠답시고 계속 멈춰서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모습이라니.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낮에 이미 사람들이 우르르 훑고 다닌 길에 닳을 대로 닳아버렸을 구도일 게다. 꼭 내

카메라로 내가 다시 찍어서 내가 다시 간직하고 다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야 할 이유는 뭘까. 뭐, 모르겠지만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정도의 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데세랄 지른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터에 이런 회의와

시니컬한 구렁텅이 따위 빠져들 시간이나 여유는 없는 게다.)

알고 보면 꽤나 넓은 덕수궁과 외부를 연결하는 대한문, 혹은 입장료 내/받는 곳. 특정 포인트를 향해 정연하게

벌어진 등불들과 달리 외부 세상의 불빛은 사방을 향한 사방으로부터의 불빛이다. 잊을만하면 툭툭 떨어지는

산만한 물방울들만큼이나 무질서하고 정신없는 세상이다.

안녕 대한문. 그러고 보면 덕수궁은 꽤나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일년에 두세번은 가는 듯. 창덕궁 후원-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곳이 여기라던가-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맘은 먹는데,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 배병우 작가가

'생산'해낸 작품 중 소나무를 소재로 한 것은 SNM, 비원을 소재로 한 것은 BWN이란 약자로 시작하는 작품

번호를 가졌다던가.



* 이제부터는 오로지 카메라 자랑을 위한 사진들.

사진으로 일단 찍은 후에 한번 하얗게 불살라 버린듯한 느낌.

사진이 뻘겋게 타버렸다. 그러면서도 묘한 깊이가 느껴지는.

제대로 오래된 사진 느낌..혹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오래된 사진의 분위기란 게 이런 거 아닐까. 누렇게 변색된.

찍고 나서는 아궁이불이 들어오는 구들장 같은 데 기름먹은 장판 속에 한 이십년쯤 묵혀둔 듯한 사진. 

비슷하게 구들장에서 타버린 느낌이긴 한데, 조금 다르다. 타고 나서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한 삼년쯤 식혀진.

뭐, 이문세의 '조조영화'던가, 그런 노래가 떠오른 이유는, 아마 저 오른쪽 창구가 영화티켓 예매소, 그리고

입구는 극장 입구스러워서일 게다. (대체 어디가? 라고 물어도 별로 대답할 말은 없다는...)





배병우라는 사진 작가, 얼핏 귀동냥한 수준이라곤 일본에서 미스터 소나무 라 불릴 정도로 소나무 사진이

유명하다는 정도? 그의 작품을 보기 전 내 감각이란 게, 보고 난 후의 감각과 어떻게 달라질지, 달라지긴 할지

괜시리 궁금해져서 시험삼아 눈앞의 소나무를 찍어보았다.

어라, 들어가려고 봤더니 도슨트의 설명이 오후 네시, 다섯시, 여섯시, 그렇게 있다. 한 삼사십분 밖에서 돌다가

들어가면 도슨트 누나야들과 함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겠다 싶어 우선 발길닿는대로 덕수궁을

둘러보았다.

미술전이었다면 뭐 딱히 도슨트의 설명 없이 알아서 이해하면 되겠지, 싶었지만 왠지 사진전은 여러차례 접해

보아도 뭔가 내가 이해하는 게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이 없다. 미술전이라 해도 으레 먼저 한바퀴

돌아보고 도슨트와 함께 한번 다시 돌아보며 내가 받았던 이미지나 느낌들과 비교해 보는 게 또 쏠쏠한 재미,

어떻게든 도슨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건 더욱 재미있게 전시를 즐기는 첩경이지 싶다. 

전시를 둘러보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우선 한 바퀴 전체적으로 둘러본다. 몇몇 눈에 밟혔던 작품들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한번 돌며 그것들만 찾아서 좀더 시간을 할애해 감상한다. 이제 어느정도 정형화되어 버린 

미술전 감상에 비해 아무래도 아직 사진전은 이렇다 할 정도의 전형이 잡힐 만큼 많이 돌아본 건 아니라,

게다가 사진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뜬금없지만 새로 산 카메라 자랑. 펜탁스가 10월 초 회심에 찬 일격으로 내놓았다는 K-x. 이런 기능이 있다.

설정만 해놓으면 지 마음대로의 색감을 끄집어내어 랜덤으로 찍어버리는. 완전 낡고 퇴락한 느낌이다.

덕수궁을 종횡하며 가로지르는 돌담들, 그 담장을 중간중간 끊어놓고 있는 문들은 자연스럽게 담장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담장에 저런 대문, 아니면 뭘 갖다 붙일 수 있을까.


빗발이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했다. 단체로 출사를 나온 듯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위계를 나타낸

비석들이 쪼르르 서있는 마당이 스산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덕수궁 입구와 덕수궁 미술관을 이어주는

최단거리 상에 몰려 있었다.

다시 한번 카메라 자랑질. 오오...신기하다 신기해. 같은 공간인데 이토록 다른 느낌이라니.

물, 빛, 바람(공기)를 늘 사진 속에 포착해냈다는 배병우란 사람, 그의 사진을 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들이

있었다. 같은 사진이라 해도 '크기'라는 요소에 따라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겠구나. 같은 공간이라 해도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구나. 구도를 창조해낼 수 있는 그림과는 달리 사진이란

건, 구도를 발견하고 끌어내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발로 뛰어야겠구나. 뭐 그런 것들.

그는 소나무 사진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그렇게도 말한다고 했다. 그가 한국 해안가에 자라는

옹골지고 고단한 해송이 아닌 다른 지역의 소나무를 테마로 잡았다면 이토록 성공하진 못했을 거라고. 한국의

소나무, 그중에서도 거센 바닷바람을 버티고 열악한 토양조건을 극복해야 하는 주름지고 굴곡진 해송들의

강한 기운을 존중하는 그는, 경주의 왕릉 주변 소나무를 찍은 사진 반대편 전시공간을 온통 까만 천으로 덮어

버렸다. 얘기인즉 왕릉 주변의 소나무들은 지상의 영혼을 하늘로 이어주는 강한 영적 매개체라 맞은 편에

작품이 놓이면 그 기운을 배겨내지 못했을 거라 여겼다는 것인데, 1:1 사이즈로 '생산'된 그의 사진들을 보면

정말 뭔가 기운이 발산되는 듯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런 요청까지 굳이 했다는 작가를 소나무에 미친

'또라이'라고 이야기할 수야 없는 거인데다가, 엽서나 카드 사이즈의 사진과는 다른 모종의 '포스'를 그 1:1

사이즈의 사진들은 분명하게 내뿜고 있었던 거다.)

그는 스스로를 '사진가'가 아니라 부정했다. '예술가'라고 했다.

일반적인 화가들이 붓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펼쳐내듯, 그는 카메라로 스스로의 세계를 끌어냈다. 그가 '생산'한

사진들은 단순히 현실의 재생이 아니라 배병우 자신의 의도와 관념이 짙게 투영된 그림과도 같다는 거다. 하여

그의 사진들은 일반적으로 사진의 특성이라 얘기되는 뛰어난 모사성, 구체성, 디테일함이나 세밀함 따위를

대체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소나무 한 그루에 더해 흐릿한 실루엣 쪼금, 그걸로 족한 사진들이다.



일요일, 점심때쯤 비가 온다길래 비가 그치면 나설라고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가 왠지 '낚였다'는 기분에 우산도

안 챙기고 길을 나섰다. 덕수궁미술관, 배병우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덕수궁미술관은 왠지 원 플러스 원의 느낌이다. 전시도 보고, 가는길 오는길 틈틈이 덕수궁도 구경하고.

갈 때마다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예컨대 중화전 옆구리에 붙어있는 분수대에서

물개인지 수달 모양의 조각을 발견한다던지.

이런 것도 있다. 조선시대엔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았던 거다. 단순히 자시, 해시, 따위 12간지를 본딴

어중띤 시간감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인 해시계와 '과학적'인 현대의 시간계측 간에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는 것. 십몇년마다 일초씩 뚱땅뚱땅 고쳐나가는 지금의 시간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어쨌든 문제는 '기준'이다. 지금의 시간대로 '해시계 시대'의 시간을 번역하기 위한 로제타스톤인 거다.

해시계를 짓누르는 음울한 하늘, 뭔가 고장나 버렸지만 여전히 늠름한 해시계의 위용.

뜬금없게도 뭔가 우리들 사이에도 저런 보정표, 혹은 정오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반응은

너의 요런 반응과 대응하고, 너의 저런 반응은 나의 죠런 반응과 대응한다는 식의 해석을 가능케 해주는.

지금 시간이 몇시니. 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이 움푹한 세수대야같은 데다가 고개를 들이박고는 시간을

헤아렸을 당대의 마인드가 왠지 운치있을 법 하다.


용미봉탕(龍尾鳳湯) : 잘 차려진 음식이 있어 정동삼락 하나.



d1.jpg

탁집어 콕 : 브라질리안 풍? 아니, 진짜 브라질리안 요리.
평가 : ★★★★★

국내 굴지의 패밀리 레스토랑 샐러드 바 뷔페는 얼마? 싸게는 13,000\ 호사를 부리자면 23,000\ 정도. 헌데 어디 먹을 것이 있더냐, 몇 가지 킬러 메뉴를 빼면 사실 돈 값 참으로 못하는 것이 샐러드 바다. 그럼에도 매장은 평일 손님들로 붐빈다. 왜? 그 몹쓸 뷔페 때문에.

d4.jpg

그런 의미에서 이빠네마는 나름 고객이 실속을 차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뷔페 중 하나로 국내 유일의 브라질 정통 츄라스카리아 레스토랑이다. 츄라스카리아는 브라질 정통 숯불 BBQ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빠네마에서는 소등심, 소안창살, 양갈비, 소시지, 칠면조, 닭다리, 돼지갈비를 재료로 이용하고 있다. 물론 추가 지불 없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테이블로 BBQ를 가져와 썰어주는 일명 로디우스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다.

d2.jpg

또 연어, 샐러드, 초밥, 과일 등의 메뉴를 제공하고 있는데 많은 수는 아니지만 충분한 먹거리라 할 수 있겠다. 다소 부실하다 생각된다면 BBQ 하나만을 생각하자 수입산 꽃등심도 나가서는 200g에 20,000\은 너끈하지 않는가?

d3.jpg

일주일 중 수,목,금에 손님이 가장 많다는 이 곳은 특히 다양한 룸과 넓은 홀이 있어 주말에는 매장앞 프란체스꼬 성당에서 열리는 행사의 피로연으로 예약되는 경우가 많아 이 때는 반드시 연락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쉐프는 모두 브라질인으로 어느 나라의 맛을 추구한다. 표방한다가 아닌 브라질의 맛, 바로 그 자체다.

Lunch (11:30~14:30 ) : 1인 1,7000원 어린이요금(4-9세) 8,500원

Dinner (17:30~22:00) : 1인 2,6000원 어린이요금(4-9세) 1,3000원

(02)779-2756~7
경향신문옆 프란체스꼬 교회 맞은편 정경빌딩 지하1층


e1.jpg

탁집어 콕 :  동 가격대 이탈리안 레스토랑 대비 월등한 맛, 유럽풍 인테리어의 원조, 그 감각을 느끼시라.
평가 : ★★★★★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는 체인점이다. 정동을 본점으로 홍대, 인사동, 삼성, 대학로등에 분점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체인점이 맛에 차이가 없었다면 신문로에 있는 미세스 피자를 소개했으리, 본점답게 타 지점보다 낳은 맛을 제공하는 아지오 본점이다.

e3.jpg

제공되는 음식으로는 해물 그라탕, 크림소스, 해물 스파게티(각10,000\), 마가리따 피자(14,000\)등이 있는데 맛을 평가하자면 수준급은 아니지만 분명 여타 식당에 비해 훌륭하다 할 수 있으며 가격 또한 딱히 튀지 않는 가격대로 정동길의 왁자지껄한 레스토랑, 카페를 비껴나가 호젓함을 즐기기에 좋은 ‘도심 속의 아지트’ 이 말이 딱 적합한 표현이다.

e4.jpg

인테리어를 살펴보자면 오래된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계단 난간부터 발코니, 난간, 테라스, 테이블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분위기만큼은 추구한다는 유럽의 오래된 가정집의 느낌을 가장 훌륭히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아지오와 같은 유럽 어쩌구 지방의 부엌 분위기를 표방한다는 곳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나름 원조격답게 내외관 모두 여타 업소가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는 분명 사람의 손보다 시간이 가능케 했을 터, 적당히 낡고, 적당히 삐걱거리고 적당히 빛 바랜 노쇠의 미학이 돋보인다.

e2.jpg

(02)720-1211
경향신문사 옆 맥도날드 건너편에서 BIS간판이 보이는 곳으로부터 20m 직진

m1.jpg

탁집어 평 : 갈아 끓여 깔끔하고, 듬뿍 넣어 진한 일품 호남식 추어탕
평가 : ★★★★★

정동길 맛집하면 빠지지 않는 곳이 남도식당이다. 평일 점심시간에는 주변 직장인이 몰려 언제나긴 줄을 늘어뜨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메뉴인 추어탕의 맛 하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곳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뼈째 끓인 추어탕과 달리 갈아 끓인 호남식 추어탕이기 때문에 입안에 씹히는 잔뼈 없이 부드럽고 진한 국물이 만족스런 곳이다. 또 밑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 3종 세트와 추어탕은 몹시도 훌륭한 궁합을 보여준다.

참고적으로 전화도 없으며 예약도 받지 않는다.
추어탕 8천원. 메뉴는 단 한가지. 일요일, 공휴일 휴무

정동극장 바로 옆 골목

h1.jpg

탁집어 콕 : 칼칼하고 진한 국물의 장터 국밥. 쉬이 접하기 어려운 고급형 장터 국밥.
평가 : ★★★★★

서민의 음식 장터국밥이 6,000\이다. 아무리 물가가 하늘을 찌른다는 정동이지만 문제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조리 과정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사골과 양지머리를 넣고 24시간 동안 고아내 파, 마늘, 무 등을 넣어 만든다는 만든이의 정성까지 추가해 나름 서민 음식의 격을 조금은 끌어 올렸다고 판단된다. 푸짐한 국수사리(리필可)와 함께 제공되는 칼칼하메 얼큰한 청송옥 장터국밥은 주변 직장인들에게 언제나 인기 절정의 메뉴이다.

(02)754-1547
정동 배재빌딩 건너 편



c1.jpg

탁집어 콕 : 음식, 분위기 모두 만족스럽다. 필히 그대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와야
평가 : ★★★★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로베르토 베니니’와 본 업소 창업주의 이름에서 가져온 ‘베니니’는 영화관 ‘미로스페이스’를 총괄하는 ‘미로비젼’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깔끔한 오픈키친이 인상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c2.jpg

자연스런 유럽 레스토랑의 풍경과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를 접목하여 유럽의 정원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추구한다는 이곳은 원목으로 통일된 자재들과 나무들이 편안한 느낌을 주며 곳곳에 놓인 화분과 나무 조형물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인테리어를 변모케 한다.

c3.jpg

신선한 육류, 콩, 보리 등 건강식 재료들을 이용하여 조리하는 이곳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맛이 매력적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식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지배인인 ‘전현모’씨는 프랑스 농산물 진흥청이 주최한 ‘한국 소물리에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이로 매장 전면에 놓인 와인 저장고는 맛 좋은 와인을 제공한다는 그의 자신감을 대변한다.

c4.jpg

가격의 경우 런치세트 기준 21,000\에서 45,000\으로 분명 낮은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급형 레스토랑의 경우 단순히 재료비와 맛과 같은 음식의 퀄리티로만 가격의 고저를 판단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즉 이곳으로 인해 얼마만큼의 안식과 여유, 그리고 유희 등을 얻었는가 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모두 개인의 몫이다.

(02)3210-3351,3352
서울시 중구 서울 역사 박물관 옆 가든 플레이스 1층



l1.jpg

탁집어 평 : 정동 내 몇 안되는 4,000\ 균일가 식당. 어느 음식을 시켜도 후회치 않는다.
평가 : ★★★★

아마도 정동에서 손님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소공동 뚝배기 집이다. 1962년에 소공동에서 순두부로 시작, 인기가 많아서 서울 여러 곳에 분점을 냈다는 이곳은 사실 그 늘어선 줄 만큼 기대를 가질 맛집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4,000\이라는 가격에 이만한 맛을 내주는 곳이 없는 까닭에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 메뉴 1962순두부 4,000\ ,장모님 된장4,000\, 냄비 비빔밥 4,000\

(02)7759292
정동 배재빌딩 건너 편



g1.jpg

탁집어 평 : 시원한 대구탕, 푸짐하게 주니 어찌 어여쁘지 않을 쏘냐!
평가 : ★★★★

최소한 내 인생의 순댓국밥집은 있어도 내 인생의 대구탕집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어지간하면 딱히 흠잡을 것 없는 음식이 대구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집 역시 비릿함 없이 시원하고 얼큰하게 대구탕 좀 하는 집이긴 하지만 딱히 특출한 맛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단 일인분에 6,000\이라는 가격에 제법 푸짐한 양이 주어지니 이 매력에 종종 찾게 될만한 집이다. 또 주 메뉴가 아닌 돼지고기 두루치기 또한 비슷한 가격에 나름 출중한 맛과 양을 자랑한다.

(02)735-4046
경찰 박물관 옆 계단에 올라 두 번째로 나오는 우회골목 지나기 전 바로



j1.jpg

탁집어 콕 : 지리산 토종 돼지를 직송한다는 이 집, 부인할 수 없는 진짜다.
평가 : ★★★★

이 집, 좋게 말하면 경영철학, 조금 세게 이야기하자면 곤조가 있는 집이다. 외부에 알려져 무리하게 100명의 손님을 받아 10명을 만족시킬 바에 정성드릴 수 있는 10명만 받아 그 모두를 만족시키길 원한다고 한다. 특히 지리산에서 직송한다는 토종 돼지가 맛 좋은 이곳은 겸손하던 주인장을 반짝이던 눈빛으로 자랑하게 만들었던 메뉴이다. 알려지기 싫다며 한사코 취재를 거부하던 주인 아들의 취재거부는 고깝지만 마음에 든다. 또 그 곤조 만큼이나 전체적인 메뉴의 맛도 나쁘지 않다. 식사, 회식에 추천하는 바이다.

(02)722-3353
경찰 박물관 옆 계단에 올라 두 번째로 나오는 우회골목 진후 바로

 1.jpg

탁집어 콕 : 명성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하지만 담백함의 味를 안다면.
평점 : ★★★

정동 국수라고 했다면 이름이 그다지 멋스럽지 않았을 테다. 쉼표의 거리 정동에 딱 어울리는 국시, 그리하여 졍동국시는 조어적으로 아주 탁월한 브랜딩이다.최소한 정동문화벨트에 들른 사람들에게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게 할 정도의 위력은 있다.실내도 아주 깔끔하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예찬 사인물과 각종 방송액자도 나름 단정하게 줄 맞춰 걸려있다.

4.jpg

그러나, 음식점은 이름이나 분위기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닐 터. 대표음식 정동국시, 즉 칼국수를 먹어보자. 역시 이 집은 무엇이든 시각적 효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진한 육수 국물의 손 칼국수가 기품 있어 보이는 사기그릇에 담겨 나온다. 특징은 장시간 끓여내어 깔끔한 사골 국물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면발이 특별히 쫄깃한 것도 아니고 명동교자처럼 고명이 화려한 것도 아니다. 튼실한 왕건이가 몇 점 들어있을 뿐이다.

2.jpg

나쁜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육천 원의 가격을 대입해보면 딱히 추천의 마음은 더군다나 생기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준다는 배추김치와 백김치도 감동스럽지 않다. 심플한, 그러나 가격이 다소 부담되는 국수, 그것이 졍동 국시의 정체다.

3.jpg

(02)732-0114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옆.



b1.jpg

탁집어 콕 : 누구에게나 모남없는 맛, 하지만 맛도 서비스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치명적인 실수
평점 : ★★★

정동길을 따라 강북 삼성병원 뒤 허름한 억덕배기에 위치한 골목에는 소리 소문 없이 자리를 지키는 맛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다. 하지만 20대 층에 어필할 만한 메뉴에서는 다소 빗겨나간 관계로 쉽사리 정보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b2.jpg

그 중 미조 식당은 산지에서 공수한 질 좋고 신선한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곳으로 고기의 맛뿐만 아니라 정갈한 백반 또한 일품인 식당이다. 특히 추천 메뉴라 할 수 있는 낙지 제육 쌈밥의 경우 요란 하게 맛을 내기보다 재료가 가지는 풍미를 잘 살려 깔끔한 뒷맛을 자랑한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구수한 된장찌개는 속 재료가 야박하지 않아 만족스러우며 밑반찬 또한 하나하나 대충 만드는 법 없어 입맛 돋구기에 안성맞춤이다.

b3.jpg

비록 내관은 오래되고 현대인의 미적 관점과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미조 식당은 창 밖으로 보이는 경희궁이 인상적이며 몇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도 눈치 보이지도 주지도 않는 오히려 차 한잔을 더 대접하는 그런 푸근한 식당이다.

다만 여주인장이 일에 치이는 시간이면 음식의 간도 제 각각이고 양도 늘었다 줄었다, 때론 그냥 오지 말고 반드시 예약하라는 말로 호기를 부리기도 하니 적당히 끼니 때를 피해서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b4.jpg

가격은 주변 식당에 비해 싸지도 비싸지도 않다. 암퇘지 구이 8,000\부터, 낙지 제육 쌈밥 6,000\

(02)722-0779
강북 삼성병원 응급실 맞은 편 언덕배기 맛집 골목


k1.jpg

탁집어 콕 : 정동길을 바라보며 파스타를 즐긴다는 지정학적 매력.
평가 : ★★

아기자기한 화단과 화사한 유리창이 예쁜 작은 프로방스는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이탈리안 음식점이다. 하지만 정동길 내에 무시무시리 만큼 많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견주어 봄에 딱히 뛰어난 맛은 아니며 내부 또한 좋은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이다. 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따르는 의무인 냥 직원들에게 딱히 친절함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대로변에 위치했고 가격도 가격이니 만큼 점심 저녁에는 늘 손님들로 붐빈다. 그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가보시길.

주 메뉴, 파스타 8,000\선, 필라프 5,000\선, 마늘빵 3,000\ (기본제공 반찬:단무지 피클)

(02)757-7723~4
정동길 이화여고 맞은 편

 

 

 

n1.jpg

탁집어 콕 : 빈티지한 유럽의 느낌, 이탈리안 요리와 함께 저렴하게 즐기자.
평가 : ★★★

위에 소개한 아지오를 들어서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비스는 피자.해산물 리조쪼새우철판 볶음밥 해산물 칠리 파스타 토마토 스파게티를 메인으로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확실히 아지오에 비하여 내외부의 인테리어가 가지는 아우라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크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 운치 있게 낡은 가구와 다양한 소품을 보는 재미가 있는 이곳은 점심메뉴인 돈까스(5,000\), 철판 볶음밥(6,000\)의 맛과 가격대를 감안한다면 정동 주변에서 나름 합리적이다 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요리하나 10000원 이내 오전 10시 오후 12까지 영업

(02)722-0520
경향신문사 옆 맥도날드 건너 편 바로 BIS 간판이 보임

 

f1.jpg

탁집어 평 : 정동길 유일한 콩나물 국밥집, 땡긴다면 대안은 없으리라.
평균 : ★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들로 만원 사례를 이루는 금문은 한식 전문 업소로 이 벽 저 벽에 붙어있는 방송출연 이력은 유명세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음을 알려준다. 주 메뉴인 콩나물 국밥은 깔끔한 맛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대명사격인 전주 콩나물 국밥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집 저 집에서 곁가지로 만드는 콩나물 국밥보다는 괜찮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f3.jpg

때문에 정동 주변 직장인들이 해장을 위해 찾는다면 권할 수 있겠지만 굳이 정동길에서 맛집 찾아왔다는 개념으로의 접근하려 한다면 극구 말리고픈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 구조 또한 여유로이 끼니를 즐기기에는 무리가 따르는데 혼잡한 홀과 룸이 아무런 구분이 없어 배치되어 있고 테이블 간격 역시 그런 호사를 부리기에는 너무도 비좁다. 다시 말해 주문 후 긴 딜레이 없이 바로 준비되는 콩나물 국밥은 일각을 다투는 직장인들의 적당한 맛과 스피디한 한끼! 딱 그에 적합한 식당이다.

f2.jpg

주의해야 할 것은 콩나물 국밥 외 고등어 조림의 경우 누군가 맛본 후 10여분간 챗머리를 흔들며 절규할 만큼 형편없었다고 하니, 아무리 고등어 조림이 간절하다 하더라도 삼가함이 옳다고 판단된다.

(02)756-0415
시네마 정동 건너편 2층.

 



[뽕빨코리아] 정동삼락(貞洞三樂) 뽕빨지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