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후역으로 가는 길, 양옆에 늘어선 상점들이 성업중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건 이 뽑기기계.

마치 수백마리 종이학들이 푸드덕대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주홍빛 종이가 투명한 원통 안에서 서로 부딪쳐가며

나부끼고 있었던 거다. 저 꼬맹이는 첨엔 다소 움찔거리며 겁내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 저 종이새들이 그악스럽게

휘몰아치는 기세에 겁먹었겠지만, 이내 손을 조심조심 내뻗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의젓하게 지켜봐주는 오빠.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도 꼬마손님들이 쉼없이 다녀간다. 닌텐도DS니 WII니 그런 경품이 걸려 있다는 것도

꼬마손님들을 이끈 동기겠지만, 저렇게 원통안에 갇힌 채 맹렬한 기세로 날아다니는 종이를 한번쯤 손뻗어

잡아 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더욱 크지 않았을까.

사람 참 많다. 다자이후 역에서 다자이후텐만구, 혹은 고묘젠지까지 이르는 그 짧은 구간에 빼곡하게 늘어선 작은

상점들도 꽤 볼만한 게 많아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좀체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꼬맹이가 두손으로 캔을 그러쥐고 마시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저 말똥말똥한 눈망울하며.

'소녀떼'들도 주말을 맞아 놀러온건가. 아님 하교길에 잠시 들른 건가. 군것질거리를 파는 몇몇 가게에는 여지없이

그네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있다. 일본 교복이 이뿌단 말은 많이 들었는데, 역시 예외는 있는 법이다.

고명에서 매실향이 조금 나는 찹쌀떡이랄까. 얘들을 머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소녀떼 팬들을 모아들이고

있던 것의 정체는 바로 이것. 한 개에 105엔, 다섯 개에 525엔, 열 개에 1050엔, 열다섯 개에 1575엔, 스무 개에

2100엔. 많이 산다고 전혀 가격할인이나 덤도 없는 시크한 가격체계.

이곳에서 유명한 건가 보다. 똑같은 걸 파는 가게가 몇개나 늘어서 있었는데, 손님이 많은 집은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 있고 없는 집은 썰렁했다. 만드는 방법은 약간씩 달라서, 어떤 집은 이렇게 손으로 반죽을 떼어 틀에 넣고

만드는가 하면, 또 다른 집은 마치 호두과자 기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고 있었다.

이런 식이었는데, 역시 기계로 만드는 곳에는 별로 사람이 모여있지 않았다. 가격이 다르지도 않았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손맛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다. 달다 싶으면서도 쫀득하고 부드러워

금방 먹게 된다. 그렇다고 찰떡처럼 찰지지는 않고 살짝 흐물흐물한 편이라, 많이 사갖고 들고 다니기는 무리였다.


덧붙이자면, 이건 '우메가에모치'라는 떡이라고 한다. 이하는 '후쿠오카 관광가이드북'의 관련 자료 내용.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이 에노키샤에서 불우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조묘니'라고 하는 노파가 공을 동정하여

가끔 이 떡을 가지고 와서 공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공이 서거했을 때 이 떡에 매화나무 가지를 덧붙여

보냈다는 고사에서 기원되어 우메가에모치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이 떡에 공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인지 우메가에모치를 먹으면 병마를 막을 수 있다는 특효가 있다고 하여

널리 유명해지게 되었다."

좀..앞뒤가 맞지 않고 매화와 떡을 잇는 이야기가 워낙 빈약하다 싶긴 하지만, 어쨌든 병마를 막을 수 있댄다.

근데 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은 죽어버린 거지?ㅡㅡ;

한국 관광객이 역시 많은지, 종종 한국어 설명이 병기되어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근데 이게 뭥미.."감자기 경단"??

감자 경단이면 감자 경단이지 감자기는 뭐람. 난 첨에 얼핏 '갑자기 경단'이라고 읽었었다. 갑자기 경단이 먹고

싶어지면 와서 먹으란 겐가 했다.

한국인이 이 관광객 틈에 어딘가 스며들어 있겠지만, 일본/중국/한국인의 구분을 잘 해내는 편인 나로서도 찾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11월 중순께 급격한 엔고 추세로 인해 뜸해졌을 수도 있고, 한국관광객들의 여행 비수기라

그럴 수도 있겠고. 서양 관광객도 거의 눈에 안 띄었는데 찍고 보니 용케 비 아시아권으로 보이는 관광객 한명이

사진에 잡혔다.

꼬치는 300엔~ 무지하게 비싼 거 아닌가. 한국이던 일본이던 관광지 주변 물가란 건 참..그렇다.

그렇게 다자이후 역까지 돌아나왔다. 바로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조금 반대편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 넓은

번화가가 펼쳐져 있지도 않고 시골 읍내처럼 한두 블럭에 걸친 상점가가 보여서, 금세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건물들이 폭이 좁다. 대부분 슬림하게 빠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건물들의 색감도 대체로

차분하고 담백한 느낌이다. 간판도 한국처럼 서로 튀려고 그악스럽게 다툼하는 자극적이고 천박한 색과 모양이

아니라는 게 또 하나의 발견.

"티셔츠가 아주 싸지고 있습니타?" 티셔츠가 싸면 싼 건지 대체 싸지고 있는 건 뭘가. 아주 싸지고 있으니 조금더

기다렸다가 사라는 건가. 이걸 발견하고 재밌어서 한참 실실거렸다.

같은 가게, 티셔츠에 씌여진 일어 단어들을 삼개국어로 설명해 놓았다. "무책임", "우리 길을 간다!", "파란만장",

뭔가 그럴듯한 의미가 있어보이고 적당히 반항기 어려보이는, 딱 내가 좋아할만한 문구들이 적혀있었는데, 마지막

하나 설명을 보고 대체 뭘까 한참 고민해야했다. "깨지만 나무"???? "Bad boys or Bad girls"가 대체 왜 그렇게

번역이 되는 걸까. 게다가 깨지만 나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이냐. 근데 정말 "Bad boys or Bad girls"을

한국어로 어떻게 바꿔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좀 격하게 나가자면 "씨X놈X들", 좀 부드럽게는 "나쁜 녀석들"정도?

하카다 큐슈난지. 대학 다닐 때 동경대에서 교환학생을 왔던 친구가 큐슈 출신 남자였다. 교환학생을 와서 머리로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간'을 사용해 공부하러 왔다던 그와 숱한 술자리를 가지면서 배운 몇 안되는 일본어 중

하나. 큐슈난지. 한국에 경상도싸나이가 있듯 일본엔 큐슈난지가 있다고 했다.

우유부단 티셔츠. 아...이 가게 정말 재미있는 티셔츠나 소품들이 많아서 한참동안 구경했다. 저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왠지 우유부단해지는 건가.

금세 끝나버린 번화한 골목 뒤에는 또 무슨 신사인지 절인지. 예전 철없을 적 좋아라, 하면서 보았던 일본 만화

"오 나의 여신님"의 주인공들이 사는 절이 이런 곳 아니었을까.


지독히도 남성중심적인 판타지로 가득한 그 만화에서. 찌질한 주인공을 둘러싼 세명의 여신이 가진 이름들은,

알고 보니 게르만 전설에 나오는 세 운명의 여신 노르네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과거를 아는 우르트르

(울드),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트란디(베르단디), 그리고 미래의 여신인 스퀼트(스쿨드). 그치만 개인적으로 이

세명은, 메이드/선생/아줌마(엄마) 취향을 위한 베르단디, 군복녀/SM/누나/직장녀 취향을 위한 울드, 그리고

롤리타(소녀)/안경녀/여동생/교복녀 취향을 위한 스쿨드로 짜여진, 이후 일본의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섬세하게

분류된 캐릭터 구축을 위한 선행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조금 더 걸어가다가 보게 된 다자이후의 주택가. 다닥다닥.

푸른 대나무밭에 기대선 집들 역시, 다닥다닥.

계속 걸어나가다 보면 어디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조금씩 풍경이 시골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까지 보이는 걸로 보아 더 가봐야 돌아올 때 힘이 들테니 돌어가자는 판단을 내렸다. 발의 피로도가 누적되는

것을 감수하고 미지의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탐사하기엔 이득보다 비용이 커질 뻔한 지점에서 돌아서다.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고등학교. 학교이름을 저렇게 크게 써두는 것도 한국에서는 못 본 거 같다. 보통 교문에

자그마한 문패를 걸거나 표지석을 세운 게 전부아니었나. 적어도 내가 봐왔던 한국의 학교들은 그랬던 듯.

문득 앞에서부터 오는 버스를 보고 놀랐다. 운전수가 서서 운전하고 있네, 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그리고 다자이후에 온 관광버스들은 모두 저런 분홍색 옷의 안내원이랄까, 조수랄까 앞좌석에

타고 계셨던 거 같다.

돌아가는 길. 개찰구는 뭐, 한국이랑 별반 차이는 없다.

티켓을 사서 처음 들어가면서 넣으면 저렇게 구멍이 뚫려서 나오고, 나오면서 넣으면 그냥 먹어버린다.

텐진행 급행열차. 밝은 하늘색 차체가 둥글둥글한 모양새가 귀엽다.

굳이 일본어를 몰라도 영어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누구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다. 편하면서도 살짝 섭섭한 게,

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 붙잡고 말걸고 길묻고 친해지고, 그런 것들도 재미가 쏠쏠한데 자꾸 표지판에 의존하게

된단 말이다.

다자이후에서 텐진까지. 여긴 거의 일본어밖에 안 쓰였다. 이래서야 까막눈.




고묘젠지를 둘러싼 야트막한 담장길을 따라 나오는데, 단풍나무가 빼꼼히 배웅을 한다. 들어설 때 보이지 않던

풍경, 나무 밑둥으로 하얀 자갈이 고랑을 그리며 깔려 있는 모습이라거나, 저 건물 너머 그림같이 이쁜 정원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묘젠지에서 다자이후 역으로 돌아나가는 길, 길 양옆에 이런 울타리를 쳐 놓았다. 푸른 대나무를 다듬어 긴

장대로 만들고는, 목책에 구멍을 뚫어 걸어두거나 저렇게 대나무를 가뿐히 접어 고정시켜 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커다란 규모의 관광포스트들, 예컨대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혹은 고묘젠지 이외에도 자잘한 사원이나

사당같은 것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아마도 관광객) 출입금지인 걸로 보아 신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곳인 걸까.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753명절을 지내러 부모님 손잡고 텐만구에 가는 듯한 가족들하며, 점점이

보이는 소풍나온 듯한 학생들까지.

그런 와중에도 비둘기 한마리에 완전 몰입해 있는 귀여운 딸내미. 주위의 공기가 들썩들썩, 사람 버글대는 휴일

분위기로 꽉 차 있지만 그런 따위에 연연치 않는 듯, 꼬맹이와 비둘기 주위엔 왠지 다른 질감의 공기가 느껴진다.

석탑 위에 버티고 선 저 동물형상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글쎄 잘 안 나온 거 같다. 물고기나 해마 비슷하게

생긴게 꼬린지 발을 힘껏 차올리고서는 마치 물구나무서다가 고개만 꺽인 자세로, 정면을 보고 있다.

고묘젠지의 담장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바로 이렇게 민가들이 버티고 서있다. 커다랗게 적힌 한자들 때문일까,

뭔가 한국같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게 어디서 비롯하는지 모르겠다.

국화 화분을 앞에 내놓은 채 장사 중인 가게도 있고. 근데 이사진은 내가 뭘 찍고 싶었던 걸까.ㅡㅡ;

이렇게 이쁘게 잘 관리받고 있는 집도 있고. 일본의 집은 작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정말 다 작아

보인다.

이건 뭘까. 뭔가 넓은 부지를 차지한 채, 사당을 둘러싼 녹지에 원형 산책로까지.

그렇게 다시 다자이후 역근방까지 도로 나왔다. 살짝 꾸물꾸물한 하늘, 꾸물꾸물 모여들어 이젠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 혹은 참배객들.

화장실을 잠시 가려는데 여기도 남/녀 표시가 특이하다. 여기저기서 이렇게 화장실 남녀표시를 그간 찍어온 것만

따로 모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선남, 선녀.

다자이후 근방에는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그리고 고묘젠지가 일단 역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금방금방 돌아볼 수 있고, 약간 떨어져서 절이라거나 유적지, 혹은 과거 토성의 흔적같은 게 산재해 있다고 한다.

다자이후 역에 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고, 거기서 빌려서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별로 의지가 없어서였는지 찾지 못했다. 후쿠오카(텐진)역에서 다자이후까지 가는 법은 위와 같음.ㅋ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명박대통령이 한-중-일 삼국 정상회담을 하러 간 곳이 후쿠오카랜다. 귀를 쫑긋 세우고,

찍찍대는 소리는 적당히 걸러가며 듣다보니 어라, 후쿠오카 큐슈국립박물관에서 원자바오 중국총리랑 아소 다로

일본총리를 만났대는 거다. 불과 몇주전 내가 갔던 그곳을 뒤따라와서 정상회담을 했구나, 하는 맘에 반가워서

여행다녀온 내 이야기를 부랴부랴 포스팅.


그나저나, 이명박대통령을 줄여서 쓰려다보니 이명박통이 된 건데...왠지 이거 의도치않게 와닿는다. 이명朴統.

우선 기차를 탄다. 다자이후텐만구와 인접해 있어서 아예 날잡고 다자이후텐만구, 고묘젠지, 그리고 규슈박물관을

돌아보면 반나절 내지 하루코스가 될 거 같다. 나 역시 아침 일찍 다자이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소풍가듯 그곳을

향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함께 설레하며 출발.

니시테쓰(西鐵) 다자이후역에서 내리면 이렇게 영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병기되어 있는 표지판들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준다. 일본과 한국, 참 가까운 나라이긴 한 거 같다. 서로 왕래가 이만큼 잦으니만치

관계도 그만큼 좀 친근해졌으면 좋겠는데, 참 간단한 일일 수도 있을 텐데 좀체 어렵다. 예컨대 서울, 부산, 도쿄,

후쿠오카의 사이즈를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도쿄에서 지방의 영양분을 모두

취하면서 각자의 존재감을 경쟁하고, 자신들이 마치 한국과 일본, 그 자체인양 비대한 몸집을 흔들며 상대보다

앞서기 위해 부산의, 후쿠오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준만교수가 쓴 지방은 식민지다, 라는 책을 요새 읽고 있는

탓일까. 모든 걸 중앙 지역, 일부 계층으로 집중시키는 블랙홀 혹은 기생충같은 몇몇 것들이 참 마뜩찮다.

다자이후 역 앞의 골목을 따라 쭈욱 걷다보면 깔끔하게 정리된 일본의 전통 가옥들이 늘어서있다. 전통가옥이라

할 수 있을지, 살짝 자신감이 없어지는데 뭐..일본에 대해 무지한 탓이려니 한다. 얼마전 월미도에 놀러갔을 때

차이나타운 귀퉁이에 옛날 일본조계였던 지역을 조그맣게 복원해두었던데 그때 봤던 단정하고 왠지 수줍은 집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음...막상 긁어오니까 별로 비슷하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그 깔끔하고 단정한 외관에서 느껴지는 '왜색'이란 게

공통적이라고 우선 우겨두기로 하자.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다자이후텐만구에 와 닿고,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큐슈박물관이랜다. 아직 관광객이

많이 들지 않은 거리에는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들만 분주하다.

마침 국화 품평회랄까, 뭐 그런 누가누가 국화 잘 키웠나 보자는 대회가 있나 보았다. 크고 작은 국화꽃들이 사방에

전시되어 있었고, 그 화분 옆이나 앞에는 아마도 출품자의 신상정보가 적힌 듯한 팻말이 함께 있었다.

주먹만한 꽃들이 눈을 부라리듯 화분 위에 딱 버티고 서있다. 어떻게 저렇게도 탐스럽게 키워냈는지, 꽃잎 한장

한장이 목련잎처럼 두툼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다자이후 관광협회장상, 다자이후시상공회상 등등 이아이들은

검증된 애들인 거다. 음...자세히 보면 저 무거운 꽃때문에 대궁이 처지지 않도록 빳빳한 마분지로 된 턱받침들을

하나씩 괴고 있다. 그렇지 않음 아마 몸을 못 가눴을 테니, 얘들 쫌 많이 심각한 대두다.

다자이후 큐슈박물관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는 조그마한 사원 미니어쳐 같은 구조물들. 한옥의 날아오를 듯 유려한

처마지붕도 멋지지만, 이런 처마 모양도 멋지다. 말아올리다 만듯 단정한 끝마무리로부터 급격히 배불러오른 처마

중앙께까지. 돌아봤던 신사들이나 다자이후텐만구나, 대충 지붕은 모두 이런 모양에서 딱히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자이후텐만구를 향할지, 큐슈박물관을 향할지 그 분기점쯤에서 재롱을 피우려는 듯 준비된 원숭이. 대체 무슨

재롱을 피우려나 보고 가려고 잠시 미적거리며 어슬렁댔는데, 이넘의 원숭이는 새초롬하게 빼고만 있고 외려

할아버지만 열심히 드럼(이랄까 북이랄까)을 두드리고 계셨다. 나중에 오는 길에 보니 결국 뭔가 사람들에 둘러

쌓인 채 재롱을 피우는 것 같긴 하던데.

큐슈국립박물관 입구. 다른 입구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다자이후텐만구쪽에서 들어서는 입구를 통하면

상당히 긴 에스컬레이터 구간을 지나야 박물관에 도착하게 된다. 얼핏 보아하니 저 뒷쪽의 산을 넘어야 박물관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명박통이나 중국, 일본 총리와 수행원들도 이쪽 길로 왔을까? 왠지 분명히 다른 곳에 또다른

입구가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렇게 불편한 곳을 감내할 만한 양반들이 아닐 텐데.

바로 오르막 에스컬레이터. 상당히 가파른 기울기의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길게 올라간다. 아마 한강 밑에까지

내려가고 혹은 밑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여의도역의 에스컬레이터 정도? 그정도로 길고 가파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올라서고 나면 다시 한동안 수평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이번에는 5호선 김포공항 역쯤에 있는 무쟈게

긴 그 수평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아..모든 걸 다 자신의 기존 경험과 지각에 어떻게든 맞춰보며

이해하고 소화시키려 애쓰고 있는 거다. 역시 그 양반들은 이쪽길로 안 왔을 거란 확신이 다시금 강해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터널을 지나, 불쑥 빠져나온 바깥에는 큐슈국립박물관이 냅다, 라는

느낌으로 덜컥 버티고 섰다. 일본의 국립박물관 중에서 가장 크다던가,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박물관'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들어가보고 이해했다. 일본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역사도 고루 소개하며 일본과의 비교문화사적 특징들, 그리고 상호 교류한 흔적들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아이들 놀이방같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서는, 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는 곳인거 같아 들어가봤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붙어있는 발바닥 모양을 하나씩 꼭꼭 짚어가며 들어서니, 정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아시아 각국의 아이들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도 있고, 전통놀이같은 것도 가볍게 체험할 수 있게 해뒀다. 시간대에

맞추면 뭔가 체험학습도 벌어지는 공간인 듯. 속내야 어쨌든 외견상 많이 어른인 만큼, 냉큼 나와버렸다.

박물관 입구에 높이 서있는 이건 뭘까, 구시다신사에서도 비슷한 걸 봤었는데, 뭔지를 모르겠다. 뭔가 축제나

행사 때 쓰이는 조형물인거 같긴 한데, 사람이 딱히 탈만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리고 저 인형들은

보기에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음...그나마 여기 출연한 사람들은 뭔가 근대의 복장과 근대의 제스처-한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한다던가 하는 등의-를 취하고 있어서 이질감이 덜한 편이다.

뒷면에 있는 이 아저씨들, 누님들은 대체 왜이리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거냐고. 마치 케이블에서 드문드문 봤던

일본 애니 '지옥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 그리고 몸짓이다. 대체, 다시한번 대체, 이게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걸까 궁금해 죽겠다.

더구나 그 탑이랄까, 인형들이 층층이 버티고 선 조형물이 놓인 곳이 이렇게 양광이 찬란히 스며들어오는 단정한

현대식 건물이란 데서 더 부조화스런 느낌이 커졌던 거 같다. 음...잊고 있었는데, 그래서 여기서 이명박통이 일본,

중국총리와 만나 삼국 정상회담을 했다는 거다. 박물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건 다른 무미하고 삭막한 회의장에서

하는 것보다 인문학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왜 좀체 그런 아우라가 안 씌워지는 건지.

안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나오는 길, 왠지 요 '간판' 앞에서 다녀왔음다~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유치하게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하냐는 거부감 사이에서 심적 갈등을 일으키던 사이 놀러온 일본 여학생 두명이

헤실대며 바로 여기서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난리가 났다. 저 동그란 '간판'을 힘주어 미는 척도 해보고, 둘이

셀카를 찍기도 하고, 약간 떨어진 채 지켜보고 있던 나를 살짝 의식한 채 신나라 하길래, 그네들이 떠나고 나도

사진 한장. 저 사진 너머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 뒷길을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마음만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쭉 내려오고 나니 아까 미처 못봤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큐슈국립박물관 입구라고 했던 건물

맞은편쪽에 있는 자그마한 놀이공원. 한눈에 보기에도 월미도 놀이공원 사이즈인데, 그래도 꽤 산뜻하게 꾸며놓은

듯 했다. 입구까지 조금 걸어서 무슨무슨 놀이기구가 있나, 가격은 얼마인가 한번 알아보기나 할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돌아서버렸다.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곳. 901년 '우다이진(右大臣)'이라는 장관직에서 돌연 다자이후로 좌천된

미치자네는 2년 후, 이곳에서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 이 '텐만구(天滿宮)', 그니까

신사로서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학문의 뜻을 이루고 부와 행운이 따른다나. 시골마을로 밀려난 이사람이 왜 무려

'학문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지는...글쎄, 관직운과는 별도로 학문적 성취가 대단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다만 '학문적 성취'를 빌도록 특화되어 개창했을 이 신사가 언제부터 부와 행운까지 얹어주는 종합선물세트로

탈바꿈했을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사람들은 언제 어느시대고 그런 것들을 바라는 법인가 부다 싶다.

다자이후텐만구에 가는 길에는, 엔 기호처럼 생긴 저런 문을 몇개씩 지나야 했다. 어렸을 적 민족사관이니 뭐니에

빠졌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솟대, 천군의 상징이 저 문의 원형이라더라, 라고 외치는 비분강개조의 목소리에 동해

합세했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가까운 지역이 영향을 주고 받는 건 당연한 거고. 과거를 금칠하는 건 곧잘

현재를 비하하고 부정하는, 과거로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초래하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한민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외려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그리고 과도하게 부끄러워하는 함정. 그러다가 덜컥

부국강병, 군사강국을 이야기하고 '다물'을 이야기하며 북벌이니 남벌이니. 심지어는 핵무장을 통해 무궁화꽃이

피었다고 비분강개조로, 혹은 격정적인 연설조로 눈물이 그렁그렁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유아적 발상.

그런 시끄러운 감정과잉의 것들보다는 차라리 요런 게 훨씬 좋다. 저 꼬맹이의 할머니뻘 되어 보이는 분이 아기를

들쳐앉고는 봉헌된 '신성한 소'의 옆에 바싹 붙어 사진을 찍고는,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빌었다. 조용히.

또다시 지나는 문, 조금씩 본전에 다가설수록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교육 문제가 심각한

곳이니만큼, 학업성취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 다자이후텐만구는 아마도 영원토록 무궁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은 얼핏 듣기로 대학교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도 어딜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어쩜 여태껏 한국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미, 조만간 한국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상승해서

금방 따라잡고 또 추월할 거 같단 생각이 강하긴 하지만.

마침 이곳을 방문했던 날이 11월 15일, 일본 명절인 시치고산(753)이라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한 백일잔치나 돌잔치를 하듯 일본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주는 행사라고. 아이들이 무사히 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신사에 가서는
 
조상신에게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날이란다. 말그대로, 7, 5, 3살짜리 아이들을 위한 날.


정작 이렇게 이뿌게 차려입고 온 아이들이 꾸역꾸역 정말 쉼없이 신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무슨

중학교 입학시험이나 초등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막 치르고 왔나 했다.

저렇게 귀엽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양손에 잡은 어른 한 명, 그리고 카메라를 쥐고선 버둥대는 아이들을 열심히

지휘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어른 또 한 명. 그렇게 구성된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던지, 도촬 아닌 도촬이 계속되고 말았다는.

우리나라 산사에 오르면 입구에 시원한 샘물이 있듯, 후쿠오카에서 들어가본 모든 신사에도 그런 샘물이 있었다.

물맛이 좀 이상하다 싶어 그냥 손만 씻고 말았는데, 일본 사람들도 나이가 좀 든 사람들 아니면 딱히 마시는 것

같진 않다. 하기야 이런 신사가 한국의 절들처럼 산등성이에 버티고 서서 사람을 목마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보고 귀여워 죽겠다고 생각하면 결혼할 나이라고 하던데, 한 세네살쯤 되어보이는 이 꼬맹이 아가씨의 눈이

어찌나 말똥말똥하던지. 그치만 결혼은 아직.

커다란 붉은 등을 지나면 인제 다자이후텐만구의 본전이다. 흐릿하게 디테일을 죽여놓고 보면 색감이나 목조건물

양식이나 얼핏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요모조모 따지다보면 딱히 닮았다기도 민망하지 않을까

싶도록 달라 보인다. 부산에서 배타고 고작 3시간여 달리면 도착할만큼 가까운 곳인데, 사실 아는 게 없다.

본전 앞마당 좌측에는 점쟁이같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아이들과 부모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꼬맹이가 점을 본 건지, 부적을 산 건지, 흐뭇한 아버지는 한 손에 잡은 뭔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애기는 바싹

얼어있는 표정이다. 여린 눈, 여린 피부가 감당하기엔 가을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던 건가.

본전에 올라가 절을 하고 나오는 아이들에게 신녀, 라고 하나...그 누님들이 풍선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다홍빛

치마에 팔소매가 너풀대는 하얀 저고리, 그리고 반들거리는 긴 생머리를 정갈하게 동여맨 흰 머릿수건..(?)까지.

뭔가 단순히 전통을 지킨다는 느낌의 '민속촌 도우미'가 아니라 성당의 수녀님들에서 느껴지는 단정하고 깔끔한,

그리고 뭔가 비세속적인 '종교인'의 느낌이 들었다.

꼬맹이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고 있는 부모들. 그리고 언니가 빠알간 원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게 여전히

낯선지 빤히 바라보는 여동생. 무엇보다 저 꼬맹이가 들고 있는 쪼꼬만 빽. 꺄아.

얜 뭘까. 한국이나 태국의 절에서 많이 봤던 것들과 비슷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태나 머 그런 불교설화상의 동물은

아닐 테고-여긴 신사 안이니까-, 그렇다고 한국설화에 있는 철을 먹는 불가사리, 이런 것도 아닐 테고-여긴 일본

이니까-, 정체가 싱숭생숭한 만큼이나 싱숭생숭한 저 눈빛. 녀석의 기분을 모르겠다.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본전에 들어가려는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지나는 신사 관계자분. 감청빛

바지와 살짝 비취빛을 띈 저고리의 색감이 청신하다. 그리고 왠지 약간의 대머리 느낌이 더할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느꼈다. 저 의상을 걸치고 시커멓게 숱이 많은 머리였다거나, 곱슬머리였다면 전혀 안 어울렸을 듯.

본전에 들어앉아 뭔가 빌고 있는 학부모들, 그리고 아이들. 사람들이 꽉 차들어왔다가는 쑥 빠지고, 또 다음 팀이

꽉 차들어왔다가는 파도처럼 쑥 빠진다.

그리고 한 가운데 당당히 버티고 앉아 뭔가를 읊고 있는 아저씨. 일본 제품들에서 종종 느껴지는 세련된 색감은

어쩜 저런 전통의상으로 전승되는 과거의 빛깔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다. 한국도 요새

세련되고 고급스런 색감의 한복이 많이 나오던데, 아직 그런 빛깔을 갖고 제품에 잘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점보는 듯한 곳에 갔더니 무려 일인당 오천엔. 당시 1000엔에 15000원하던 환율이었으니..무지하게 비싸다. 그치만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역시, 불황 속에서도 아이들만 잘 타겟으로 하면 지갑은 쉽게 열린다. 특히

최근 '소황제' 외동아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중국이나, 더 말할 것도 없는 한국이나, 그리고 일본은 그렇지 싶다.

뭔가 빨갛고 노란 종이들이 가득히 묶여있다. 내가 어렴풋이 아는 바로는, 신사에서 점괘를 보고 운이 좋으면 그냥

가져가고, 좋지 않으면 신사 안에 묶어두는 곳이라고 하던데, 그럼 저 이뿌게 묶인 종이들이 온통 악운을 예언한

것들인 건가. 일본어로 뭐라고 쓰여 있긴 한데 영 까막눈이다. 그래도 한자는 잘 읽는 편이지만, 일본어에 쓰이는

식으로 한단어씩 뚝뚝 끊겨 쓰여서야, 좀처럼 이해불능인 게다.

그 아마도 악운을 예견해서 이곳에 동여매진 종이들 사이로 바라본 텐만구 건물.

사진을 찍다보면서 느낀 거기도 하고, 지금 또다시 느끼는 거기도 하지만, 어쩌면 난 아이들이 이뻐서라기보다는

저 쬐끄만 사이즈의 일본 전통의상..아마도 기모노?..의 색깔과 라인, 그리고 문양들에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저렇게 등 뒤에서 커다란 꽃모양으로 묶인 허리띠의 깜찍함이라니.

말하자면 다자이후텐만구의 기념품점인 듯 한데, 파는 게 대부분 부적이다. 이미 수험생활과는 상당히 멀어져버린

몸인지라, 학업관련 말고 다른 종목에 괜찮은 물건이 있음 기념품으로 사갈까 했으나 그다지 땡기는 게 없었다.

뭐...솔직히 녹록치 않은 가격도 한 몫했달까.

100엔짜리 제비라고 한국어로 적혀있다. 한국사람들이 꽤 많이 오나본데, 그치만 내가 다닐 때에는 다른 한국인들

거의 못 만났다. 아사히 맥주공장 견학갔을 때 만났던 게 사실상 유일무이한 한국인과의 접촉이었던가. 급격히

올라버린 환율 탓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거나 다른 곳으로 돌렸다고 했고, 게다가 인근 국가에는

주로 패키지 여행이 많은 탓인지도 모른다. 내 일정 자체는 그다지 한국인을 피하려는 속셈이 없었으니.

다소...기분이 언짢았던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소원 적는 나무판들. 저렇게

조그마한 꼬맹이들이 뭔가를 간절히 두눈 꼭 감고, 혹은 머리를 푹 떨구고 빌고 있다. 합격을 바란다.

저만한 아이때부터 세상에 거부당한 느낌에 직면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극이지 싶다. 경쟁을 통한

선별작업도 좋고, 무한경쟁을 통한 체질개선도 좋은데...아직 가을햇살도 뜨겁고 눈부신 아이들이란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학업 성취라는 달콤한 과실을 설득력있는 스토리에 꿰어맞춘 이 다자이후텐만구는 살짝 애교스런

사기에 가까울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학업 성취'를 팔면서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을 박리다매식으로

그러모으고 있는 게다. 머, 사실 어떤 종교던 뭔가를 팔고 있는 거지만, 다소 노골적이고 상대적으로 다소 단순한

것을 팔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지 심플하고 담백한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선 부활이니 천국이니, 그런 세련된 걸

팔지는 않으니.

이 호리병들은 뭘까. 뭔가 안에 손오공이라도 가둬뒀을 법한 호리병들이 담고 있는 건, 사람들의 밝은 소원일까

아님 뭔가 이곳에 버리고 가고픈 악운이나 나쁜 감정일까.

그런 식의 소원적어 걸어두는 나무판은 다자이후텐만구 본전을 둘러싸고 쭉 계속 이어졌다. 어떤 한국사람은

독도는 한국땅, 이렇게 격정적인 궁서체로 적어놓기도 했고-미리 여기와서 그런 글을 쓰려고 붓을 챙겨올 만큼

용의주도했던 걸까, 아님 펜으로 붓의 궤적을 그릴만큼 집요했던 걸까-우리 사랑 영원하게 해주세요, 혹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운운운.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일본어로 적힌 것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바글바글한 꼬맹이들과 부모들을 품고 있는 본전 건물 뒷켠을 돌았더니 인적이 툭, 끊겨 있었다. 더러는 나무에

걸리고, 남은 햇볕들이 땅바닥에 누웠다.

신녀..라고 해야 할까, 라고 두번째 갈등. 여기서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뭔가

일로 하는 걸까, 아님 알바? 아까는 '종교인'의 포스가 느껴졌던 뒷태였지만, 이렇게 인적없는 곳을 종종걸음치는

모습에서는 왠지 몇세기 전 일본에 불시착한 느낌, 민속촌의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시치고산(753)을 맞아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듯 흥정하는 가족, 그리고 요 쪼꼬맣고 귀여운 아가씨의 뒷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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