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다 역 주변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유센테이 공원으로 향했다. 한 30-40분쯤 갔을까, 버스 안에 사람들이 잔뜩

탔다가 다시 대부분 내렸을 즈음 한적한 교외 동네가 나타났다. 유센테이, 友泉亭. 아는 거라곤 이수영이 여기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더라, 그리고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라더라, 그거밖에 모르고 무작정 와본 길.

정류장 지나 이런 돌담길을 마주치니 대충 이게 유센테이 공원의 외곽이겠거니, 감이 왔다. 입구까지 조금 걷다.

가을. 바삭할만큼 구워진 삼겹살처럼, 잘 말려진 갈빛 낙엽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안내판.

정(靜)..숙, 이겠지. 입에 손을 갖다대고 쉿, 할 필요도 없이 늦은 아침. 인적없이 고요한 공원에 발을 내딛었다.

한참 지나서야 부스럭거리며 나온, 그리고 채 자리도 못 잡고 있는 아저씨. 단정한 건물과 규칙적인 기왓장 배열.

작지 않은 연못을 경계로 두 세계가 마주보고 있었다. 위아래가 바뀌어도 이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느낌은 같다.

초록물이 번진 것처럼,  오랜 돌위에 이끼가 슬몃 끼어들었다.

바람조차 조용히 불고 지나는 찬란한 수면 속, 혹은 수면 위 세상.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만 표지판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순로'를 걷는다. 무작정 반대로 가지는 않을 만큼의 나이.

쉼터. 큰 연못을 가깝게 끼고, 때로는 살짝 멀게 두고 걷는 코스라지만 내겐 그다지 길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나무그늘모양 물웅덩이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금빛 물고기.

깔끔하면서도 정갈한 맛이 똑 떨어지는 느낌의 저 석조상에서 풍기는 꼿꼿한 존재감.

만원짜리의 경회루를 한번은 제대로 봐야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선 대조군이 외국, 실험군이 한국이 되고 말 듯.

저 둥글둥글한 탑 너머, 저 배배 뒤틀린 수풀 너머 암흑물질이 가득한 곳에는 토토로가 살고 있지 않을까.

네 활개를 쫙 펼친 '당당한' 남자용 표식.

빨간 천으로 팔다리를 다소곳이 싸매고는, 노랑 밴드로 이뿌장하게 동여맨 느낌의 여성용 표식.

연못에서 쏘아올린 분화구 속에서 피어오른 수풀들이 까칠해보인다.

설계도가 분명 필요했을 거다. 설계도에 더해, 적당한 크기와 모양의 돌들을 골라내어 섬세히 배치하는 수고로움.

90도, 그리고 또 90도. 그렇게 가차없이 전개된 대나무 울타리.

오랜 청동기유물처럼 사방에 초록색 녹이 슬어있어서, 싱싱한 녹색 수풀과 녹슨 이끼의 경계조차 허물어져버렸다.

들고남(出入)이 아니라, 서서 들어가는(立入) 걸 금지하고 있는 걸까. 유방이 기어지났다던 가랑이 사이도 아니고.

대인배는 200엔, 소인배는 100엔. Y자와 등호 =자가 포개져 인쇄된 듯한 게 엔 표시의 기원을 더욱 궁금케 만든다.

물에 절반, 땅에 절반 빚지고 있는 누각 위에 오르다.

잎사귀가 붉어지는거야 자연의 섭리, 일본색이 무척이나 강한 낯선 정원에서 내편처럼 든든히 느껴지던 단풍.

원근감과 입체감을 상실한 굵고 검은 나뭇둥치가 얼기설기 펼쳐지고, 붉고 푸른 조각들이 꽉 메워진 모자이크화.

액자식 구성, 스토리 속의 스토리. 1인칭 주인공을 바라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희롱처럼 고양이가면을 씌웠다.

이끼처럼 곱게 깔린 융단이 살짝 주름이 진 듯하여 맘이 좋지 않았다. 저걸 반듯이 펴주어야 하는데.

정숙해 보이는 연못속 세상을 흐트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50엔, 누룽지밥알처럼 엉겨붙는 물고기들의 아비규환.

다다미도 이뿌고 비슷한 사이즈의 단정한 문짝도 이뿐데, 저 빨간 요가 매트같은 게 영 거슬린다.

방 한구석에 놓인 화분 한 점과 그림 한 폭이 공간을 자극하며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대나무를 찰지게 엮은 매듭, 그리고 이끼가 점령한 지역과 자갈자갈 소리를 내는 산책길을 고집스레 선긋는 기와.

고풍스런 청보랏빛 우산이 이렇게 이뻐보이는 건,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의상과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다.

버스 노선도를 가만 보면 유센테이에서 텐진(天神) 지역을 지나 하카다역(博多驛), 300엔까지 오렌지색 라인 12번.

 주중,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의 운행스케줄이 다 달라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지만, 시간만 잘 지키면 된다. 쉽다.

유센테이 공원을 나서다가 발견한 스탬프 두 개, 기념품삼아 꾸욱 눌러 가져오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유센테이 공원. 과거 지방영주의 가옥이었던, 다도체험이 가능한 새롭게 정비된 일본식 정원이랜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서는 한국에 돌아와 비로소 펼쳐보아도 좋다. 그림같은 풍경이 가득했던 유센테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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