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용산 철거현장 강제 진압... 5명 사망 참사
"특히 특공대들은 수십미터 높이의 대형 기중기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참극이 벌어진 농성 현장에 접근했다. 철거민들을 상대로 사실상 대테러 작전을 펼친 것."(데일리중앙, 2009. 1. 20)

 
 

점유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강제 퇴거, 괴롭힘 또는 기타 위협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점유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 사회권규약 일반논평4)


책을 보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 몇장 힘겹게 넘기다가 울컥, 눈물이 쏟아져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이었다.

그러다 문득 기사를 보았다. 쌍용차 공장에서도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는 기사였다.
 
"법을 얘기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쌍용차 공장에서는 용역들이 새총을 쏘고 불을 지르고, 용산참사에서처럼 똑같이 합니다. 경찰이 엄호하고 합동작전도 하고 경찰 장구도 빌려줍니다. 경찰력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자존심이 있지, 일반 용역깡패에게 지위 안 넘깁니다. 경찰은 경비업법 위반과 중상해죄, 공무원 사칭의 공범입니다. (권영국 변호사)"("테이저탄 맞아 뺨 썩는데 항생제 없이 수술..." - 오마이뉴스)


어제그제, 울음을 삼키며 책을 읽어내렸다. 그게 그러니까 올 초였다. 사람이 여섯 명이나 '학살'당했다. 경찰특공대는
 
용역과 손발을 맞춰 '도심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엄혹한 군사작전을 성공리에 펼쳤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다.
그분들은 장례조차 못 치르고 있다. 만평 그대로, "뒤는 걱정않고 뭉개버렸던"
 
그들은 여전히 건재한 채 또다른 살인, 또다른 학살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재개발문제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2000년의 봉천3동 철거촌에서 며칠 깔짝대며 나름대로 남들보다 보고 들은 게

있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오늘은 봉천 3동에서 이루어진 동계 노동자 빈민 학생연대투쟁(줄여서 빈활)의 첫날이었다.

이미 포클레인에 무참히 무너져내린 빈 집들이 쭉 좌우에 도열한 가운데 성했을 무렵에도 꽤나 볼품없었을 그런 집의 길쪽 창가에나마 여전히 갸날프게 매달려 있던 방범철창들...그건 공권력에 대한 순진한 기대를 비웃는 듯 했다.

겨울철에는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불법임에도, 이주 비용조차 없는 빈민들을 위한 가수용단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철거깡패들을 동원한 폭력과 방화 등의 살인적인 강제 철거가 지금에도 계속 사실상 경찰의 비호 아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빈민들-대부분이 세입자인데-에게는 약간의 이주비 외에는 아무런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재개발 사업 지역에서 충돌이 그치지 않는 주된 이유의 하나가 되는 거 같다.
가옥이 재산으로만 파악이 될뿐, 실지로의 삶의 터전, 즉 주거의 공간으로는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을 '빈민'으로 칭하던 그때의 대학생이 사회인이 되고 나니 알겠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가진 꿈은 '내집 마련'.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은지 오래건만, 전체 가구의 40%가 전월세로 살고 있다. 10명이 5,508채를

소유하고 있다는 현실이라거나, 전체 인구의 1%가 전체 사유지의 60%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은...그냥 넘기기로 한다.

소득불균형이 아니라 부의 불균형을 따진다면 나라가 벌써 엎어졌을 거라던 이준구 교수님의 이야기도 그러려니 한다. 


정말 복장터지도록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거다.

왜. 미분양 아파트는 쌓여만 가는데, 계속해서 더욱 비싸고 넓고 고급스런 아파트만 지어지고 있는 걸까.


좀더 적은 세대수를 가진, 좀더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유효한 아파트를 위한 현재 방식의 재개발이 지속되는 한,

철거민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집이거나, 혹은 (자영업자로서) 자신의 '밥그릇' 그 자체를 일부 땅주인들과

건설업자, 공무원들의 이익을 위해 통째로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세입자 보상은 재개발 사업의 너무 늦은 단계에서,

거의 모든 것이 정해진 상황에서 그저 강요된 독배처럼 이뤄진다면.
가게에 대한 투자금과 전세금
등을 100% 보상받지

못할 뿐 아니라, 기존의 영업지역, 생활권 이외의 지역에서 다시 장사를 일으키라며 막무가내로 내쫓는 거다. 게다가 이미

인접지역은 재개발 열풍에 휘말려 잔뜩 전세금이 올라버린 상황, 사람들은 체념을 강요당한다.


그나마 아직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가능한 재원을 박박 긁어모아 가능한 인근한 주거지로 옮겨간다. 물론 순식간에 두배 이상 뛰어버린 전세금을 감당하기

쉽지 않고 사고처럼 닥친 '재개발사업'에 재산도 반토막났지만, 그래서 이전보다 좁고 열악한 환경으로 가기 일쑤지만,

어쨌든 '입에 풀칠하란 법은 없다'는 속담이 아직 힘이 된다. 이전에 비해 더욱 힘겨워진 삶이고, 심지어 집주인들조차

잔뜩 올라버린 집값을 감당치 못하고 튕겨나가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주변에 그나마 연착륙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철거되는 지역에서 곧 철거될 지역으로 이동한다. 계속

낙후한 곳으로 밀려나고 밀려나 어느순간 '소시민'에서 '거지'로 전락해버린 걸 깨닫는 사람들. 그렇게 밀려날 수 없어서

항의를 시작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고 만다.


어쩌면 그들의 잘못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애초 도심에 비비고 살고 있었던 게 잘못이다.

원하던 원치않던 자녀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학원을 옮기는 등 아이들 교육 환경이 바뀌는 게 뭐가 대수라고.

원하던 원치않던 다니던 직장이 조금 멀어지고, 출퇴근이 조금 어려워지는 게 뭐가 대수라고.

원하던 원치않던 조그마한 가게 없어지면, 어디서든 새로 열어 손님 새로 만들고 단골 만들면 되지 그게 뭐가 대수라고.

이웃간의 정이니 마을의 화목함 따위야 돈없고 촌스런 자들의 자기위안일 뿐이지 그게 뭐가 대수라고.

보다 쾌적하고 안락하며 고급스러워서 돈되는 건물을 올리겠다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대로 국가발전을 위한

최적의, 최고효율의 자원 배분을 하겠다는데. 그게 비록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착각.


사과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가난한 사람이면 가난한 사람답게 교육에도 욕심 안 부렸어야 했고, 직장이니 가게니 어차피

당신들 눈에 보이기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텐데 그런 걸로 쪼잔하고 구차하게 굴지 말아야 했으며, 삶의

터전이니 뭐니 촌스러운 단어로 '떼잡이질'했던 것들 너무너무 반성하고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그런 건가.


용산은,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는 두 가지를 요구했었다. 지금까지 장사해왔던 이곳에 주상복합 상가를 지은 후
 
다시 이 곳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상가를 임대조건으로 제공하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로는 공사기간 중 영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수용상가를 개발지역 내에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밥그릇 싸움이다. 다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밥그릇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다. 개발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살던 곳에서 살 수 있을
 
만큼의 생존권만을 확보해 준 상태에서 개발을 하라는 거다. 세입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집주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손해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항의했던 거다.


그리고 그건 모두를 대신한, 생업에 바쁘고 어쨌던 삶을 이어가기에 바쁜 사람들을 대신한 항의였다. 서울에만 50개가

넘게
짓겠다는 뉴타운 공약을 비롯 전국각지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 그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재개발 지역의 혼란상.
 
잔뜩 올라버린 집값과 앉은 자리에서 슬금슬금 빼앗기고 있는 우리네 재산. 없는 이들의 재산이 있는 자들, 세입자 한번도
 
안 해봐서 세입자 심정 모르겠다며 똥배짱 튕기는 용산구청장, 건설자본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고발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용역과 경찰과 법과 언론에 위협받았으며...끝끝내 살해당했다.


"지금,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난쏘공의 저자

조세희 작가님은 말한다. 불행한 사람들, 불행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연대의 깃발 하나로 목숨을 건 전철연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이 돈을 받았다느니 어쨌다느니 언론이 떠들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사계절 넘게 망루 투쟁을

벌였던 용인 어정상가/공장 철대위분들은 자신들 대신 돌아가신 거라며 눈물흘렸고, 용산4구역 철대위분들은 자신들

도와주러 왔다가 돌아가신 분들때문에 고개를 못든다며 눈물을 흘린다.


아무래도 조세희 작가가 놓친 한 부류가 더 있다. 행복해하는 자, 혹은 최소한 눈물흘리지 않는 자의 한 부류가 더 있으니,
 
그들은 살인자다.


아무리 그들이 돈없으면 죄인이요, 망루가 너희를 반기리니 회개할지어다..라고 떠들지라도, 세상이 온통 가진자

위주로 돌아간다는 섬뜩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진실이 정말 끝끝내 진실이라 할지라도,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낸 내일,
 
내일은 박카스라도 한 박스 사들고 용산에 가야겠다. 돌아가신 분들, 그리고 사는 것 같지않게 살아가시는 분들..

여기도 사람이 있다고, 죄송하다고 찾아뵈야겠다.



용산참사 반년, 사회 원로 대표 시국선언(7.23)


- 이전 포스팅들

▶◀ 불도저식 진압, 이건 살인이고 학살의 시작이다.

용산참사 후 2개월, "용산GAJA展"에 다녀왔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촌스러운' 용산참사와의 부끄러운 데자뷰







여기 사람이 있다 - 10점
강곤 외 지음/삶이보이는창




3개월, 3회에 걸친 독자위원회 활동을 마쳤다. 시사인의 독자층을 반영하는 듯 6명의 독자위원이 모두 20대였고 그 중

직장인은 내가 유일했다. 빠른 생일 덕에 20대에 꼈으니, 그냥 세대 다양화를 위해 30대로 치고 좀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겠노라 다짐했는데 막상 돌이켜 보니 '직장인으로서', '30대로서', 꺼냈던 지적이나 요청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직장인' 혹은 '30대(준)'라는 자각이 없는 탓이다. 게다가 직장인의 정체성, 30대의 정체성을 내걸고 짚을 수
 
있는 부분이란 건...뭘까. 재테크 관련 정보를 달라고? 결혼준비를 위한 정보? 직장상사와의 관계 노하우? 진지하게라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삶의 질 문제라거나 안정성, 그와 이어지는 비정규직 법안이나 노조탄압 문제..파업이나 투쟁에 대한

적대적인 언론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근데 이미 그런 것들은 시사인이 민감하게 다루고 있는 편이니, 딱히 더

할말이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Dynamic Korea. 워낙 껀수가 많은 나라인 탓에, 게다가 위정자가 귀머거리인 탓에, 해결은 커녕 최소한의 봉합조차

이뤄지지 않고 시간에 쓸려가는 사건들이 부지기수다. 용산에서 피어오른 화마가 잡아먹은 사람이 6명.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냄비근성'의 사람들은 새로운 자극과 더 강한 충격을 좇아 달리는 중이고, 이제 전대통령의 죽음조차

겪은 사람들이 대체 무엇에 충격받고 분노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끊임없이 New를 찾아 달려야 하는 언론에게 새로 밝혀야 될 것이 아니라 이제 그걸 토대로 추궁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책임까지 지우는 건 과하다. 이른바 '기자정신'이 얼마나 비장하고 끈덕진지는 몰라도, 그건 'New'를

찾아내기 위한 거지, 그 뉴스로 촉발될 수 있는 후폭풍까지 끌어내기 위함은 아닐 거다. 그래서 더 답답한지도.

용산참사의 경우 합법/비법/불법을 동원해 면죄부를 쥐어주긴 했지만 '죄'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더이상 New가

아닐만큼 판단이 섰다고 보는데. 노 전대통령의 경우도 누가 사과를 해야하는진 더이상 New가 아니며, 사람들이

그걸 받아내지 못하는데 언론에서 계속 '사과해라사과해라'할 수도 없는 거고. 계속 뉴스를 발굴하는 건 별개지만.


* 용산참사 직후에 썼던 난쏘공 리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촌스러운' 용산참사와의 부끄러운 데자뷰

진보신당이 왜 민노당 뒤에 타고 있는지에 대한 농섞인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표지. 사실 원내 의석수나 지지율 등으로

따지면 당연한 걸 텐데..뭐 그랬다. 그리고 '초식남'에 대한 여성 패널들의 빈정거림만 가득했던 기사에 대한 불만을 잔뜩

털어놨던 자리. 초식남에 대한 빈정거림은 마초와 남성 일반으로 번져갔고, '자아'가 최대 수출품목이라는 네팔에 다녀온

남자는 우스워지고 까페에 앉아 책을 본다거나 와인을 즐기는 남자는 자뻑 나르시즘에 쩔어버린 속물로 취급당했다.

여러번 뜨끔뜨끔, 했던 탓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더구나 '된장녀'니 '신상녀'니 여성들에 대한 그런 식의 딱지붙임이

불쾌해서 네넘들도 한번 당해봐라, 이런 맘으로 기획된 거라면 더욱 아니다.

그 이전까지는 개성공단을 살리자는 측과 죽이자는 측으로 단순했던 것 같다. 북한에서 개성공단 내 임금과 임대비용등을
 
몇 배로 올려달라, 중국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으로 달라고 했더니 바로 살리자는 측이 쪼개졌다. 한국경제를 살리려고

개성공단을 이용하자는 건데 이럴거면 죽이자, 라는 것과 임금을 올려주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라며 살리자는

입장으로 대별되지 않을까 싶다.


개성공단의 가격경쟁력이 천년만년 갈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저임금만을 경쟁력으로 삼아 버틸 생각이었나. 통일되고

나서도 북한의 저임금을 발려먹을 생각이었을 거다. 기업들이 앞장선 남북간 민간교류란 게 그렇게 흘러간다.


*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속내.  '개성공단 춤사건'을 기억하시는지. - 봉동관, 그리고 입경.(4/4)

#1. 데자뷰로 위장된 변함없는 일상

가끔씩은 어제 신문이 오늘 신문같고, 또 오늘 신문이 내일 신문같을 때가 있다. 기자들은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진

듯이 떠들고 이런저런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려 애쓰지만, 그건 어쩌면 매일매일 새로운 NEWS를 찾아내야 하는

그네들의 직업적 특성이거나 생계유지를 위한 언론인들의 암묵적 공모인지도 모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쏘공이 씌여진 그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난장이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나아가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임을 말하는 신애도 그렇게 말한다.


"사회 부조리 시정 촉구한 고위층, 당직 개편 않겠다고 밝힌 야당 당수, 사회 안전법 해설, 남북한 대화 촉구한

UN사무총장...10년 동안에 여덟배로 늘어난 강력범죄, 학교 돈 1억원을 횡령한 재단 이사장...경기 회복되어도

계속 흐릴 고용전망...한 개에 1천만원이 넘는 기둥 스물 네개로 떠받들여진 여의도 새 의사당, 30만 원이 없어

아파트 입주 포기하고 새 터전 찾아 떠나는 재개발 지구의 철거민들...톱밥으로 만든 고춧가루...어제의 신문과

다를 것이 없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날마다 같은 신문을 찾아 읽는다."



그렇지만 일종의 데자뷰, 기시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난쏘공의 나오는 사람들이 내뱉는 탄식, 절망, 분노는

낯설지 않다. 사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침없이 터져나왔던 것들이지만, 근래 다시 그들에게 마이크가 향했다는

점이 새삼스런 오버랩을 가능케 했을 거다.



#2. 난장이와 난장이 가족들, 난장이와 한편인 사람들의 이야기

난장이에게 다른 세계를 상상하도록 자극했던 지섭, "일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만 읽는다는 지섭에게 과외를

받았던 윤호 역시 탄식한다. "여기서는 무엇 하나 이룰 수가 없어.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난장이가 '난장이의 가족'들과 함께 살던 서울시 행복동 집에 철거계고장이 날아온 날, 아파트 입주할 돈이 없어

입주권을 팔고 원치 않게 추방당한 그들의 가족들은 분개하지만 난장이는 말한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난장이의 큰 아들, 그의 속깊음과 따스함으로 결국 사형대에까지 떠밀린 그는 이미 어려서부터 깨닫고 있었다.

무허가건물이 난립한 그의 동네에 찾아와 철마다 표를 구걸하던 거짓말쟁이들은 계획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는 사실. "이미 많은 계획들이 나왔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고, 설혹 무엇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그건 실제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리라"
는 깨달음.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나가고 나니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던 그들. 난장이의 아들딸들.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다나. 그 보호란 건 그 구역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보호였고,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엄격히 나누어진 세계에서 이질집단으로 평생 낙인찍힌 채라야 받을 수 있는 보호였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마음이 편하댔다. 그러면서도 바다에 떠있는 늙은 수부가 목말라 괴로워하듯, 회색에 감싸인 축소된 집과 축소된

가족들을 들여다 보며 "물, 물, 어디를 보나 물 뿐, 그러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고 또한 괴로워했다.


공장의 사장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이야기로 그들을 위협했다.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하고,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혹은 힘껏 일한 후 함께 누리게 될 부와 희망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른바 '파이 논쟁', 키워서 나눌지 나누면서 키울지가 2009년까지도 여러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3. 새삼스레 촌스러운 이야기, "촌스러운" 용산참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랑이 없는 세계라고 했다. 배운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생각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필요하다면 밥 대신 모래라도 먹일 사람들이란 게 난장이 아들딸의 생각이었다. 폐수 집수장

바닥에 구멍을 뚫어 폐수를 직접 바다로 흘려넣는 사람들이란 게 난장이 아들딸의 생각이었다. 촌스럽다.


지섭도 말했다. 달나라의 이름으로 펼쳐보였던 그 사랑이 가득한 세상은 이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그는

목사, 과학자와는 달리 스스로가 많은 희생자 중 하나로서 노동자였다. 작품을 통틀어 계속해서 끈질기게

자칭 타칭 '근로자'라 불려왔으나, 손가락 두개를 잃은 지섭의 재등장과 함께 '노동자'라는 단어가 비로소

등장한다. 근로자와 노동자의 어감 차이, 그건 단순히 근면성을 강제하는 뉘앙스의 차이만이 아닌 거다. 못 배운

사람, 약자에게 경제적 고문을 퍼붓는 시대에 A대학 법학부에서 쫓겨난 그는 노동자,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역시 촌스럽다. 현장에 뛰어드는 학출 노동운동가라니, 촌스럽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기업들의 구태는 말하자면 '우리의 대표브랜드'라는 세련된 분장 뒤에 숨었다.

"협조적인 사람이 이끄는 노조라고 해도 그것이 기업에 이익을 줄 리는 없으며, 기업에 해롭고 우리 모두에게

해로운 노조는 우리 전체의 구조를 약화시키는 악마의 도구"
라는 마인드는 더더욱 촌스럽지만, 천박하게 번쩍이는
 
도금 광택으로 세련됨을 강변한다. 용산 참사 뒤에 숨은 대자본 건설사의 야만성과 촌스러움, 경찰과 검찰의

비열함과 촌스러움, 사과조차 없이 뭉개고 앉았는 위정자들의 더러움과 촌스러움, 그리고 여론을 스스로

자처하는 보수 언론들의 저열함과 촌스러움 역시 무엇인가로 위장되거나 혹은 스스로 세련됨을 강변하고 있다.


난장이의 아들딸이 보기에 그들이 살았던 사회와 같다던 먹이 피라밋은 여전히 유효할까. 아님 더욱 강해진 것은

아닐까. 대학교 신입생의 구성이라거나, 소위 좋은 직장의 신입 직원 구성이라거나, 무엇보다 세습을 포함한 부의

불균등한 분배에 이르면 더욱 공고하고 가팔라졌다는 느낌이다. 대학교 때 토지경제학을 가르치셨던 이정전교수는

우리 나라에선 절대 부의 불균형에 대한 통계를 낼 수 없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봉과 같은 소득 불균형

자체도 이미 이렇게 심각하지만 부동산이나 물려받은 재산등이 포함된 '부'의 불균형이 공표되는 순간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고 하셨던가. 분명치는 않지만. 


이미 난장이의 아들은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고 있었던 게다. 부모는 그의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라지만, 이미 자식들은 첫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노비 매매문서에 적힌 그들의 조상에서 넘겨진 삶의 무게와

질곡에 눌린 아버지는 난장이가 되었고 난장이의 아들은 그보다도 작은 어릿광대로 눈을 감을 것이라는 예감.


#4. 悲

언론의 또다른 특징은, 새롭지도 않은 NEWS의 행진이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놓아버린다는

점이다. 혹자는 한국인의 냄비 근성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미 한달여가 지나 OLDS가 되어버린 용산 참사,

그리고 사실 조세희가 이 소설을 쓴 때부터 OLDS였던 철거민 문제, 그런 것들이 대장 속에서 쉼없이 연동하는

그런 것들처럼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고 잊혀진다. 의도적이던 아니던.


용산 참사 후 한 달, 참사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한 철거민은 "박정희도 이러진 않았다"고 말한다.

"내가 테러리스트란다. 진짜 도둑은 따로 두고…"(프레시안, 09.02.2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뫼비우스의 띠 장마 외 - 10점
조세희.윤흥길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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