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은행 통장 - 8점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반디출판사

# 공감하는 입장.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늘 쪼들렸을 게 틀림없는 살림에도, 아이들을 불안하고 겁먹게 하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고도 다정하게 헤아려 손잡아주려는 엄마 마음.

차갑고 쌀쌀맞은 주변 사람들조차 감화시켜 '엄마'를 축으로 한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에 포함시키고야 마는 엄마 마음.

가족들을 늘 먼저 생각하느라 당신을 위한 선물은 커녕 당신의 소중한 것조차 선뜻 포기하는 엄마 마음.


그런 엄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카트린, 그녀의 엄마 이외에 시그리드 이모니 트리나 이모니, 제니 이모니 많은 등장인물에

둘러 쌓여 있지만.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한번씩 시큰하게 뒤돌아 보며 되새기게 되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기억 귀퉁이를 건드린다. 문득 그녀의 엄마에게서 우리, 나의 엄마가 겹쳐보일 때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보다 더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신경숙의 작품에서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특정 '엄마'를 살리는데 좀더 신경을 썼다면, 이 책에선 다소 동화적이고 치밀하지 않은 행간과

여백을 남겨 두어 모두의 '엄마'를 투영시킬 만큼의 여유로움이 보이기 때문일까.



# 시니컬하자면.

근데, '엄마'의 이름은 뭘까. 넬스, 카트린, 크리스틴, 다그마르, 카렌의 엄마이자 무슨무슨 이모들의 막내여동생인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아마 화자인 카트린이 좀더 컸어야 가능했을까.


결국 끝이 좋았으니 모든 게 좋았단 식의 이야기. 온갖 풍랑이 밀어붙였지만 끝내 살아남았으니, 제 발로 섰으니

용케 망가지지 않고 쓰여질 수 있었던 이야기는 아닐까. 다행히도 엄마의 은행통장을 실제 꺼내야 할 일은 없었고,

다행히도 아빠는 회복했으며, 다행히도 크리스틴은 엄마의 뜻을 좇아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다행히도 카트린의

학교생활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안착했으며, 다행히도 크리스틴은 순산했다.


세상은 아름답다, 모정은 위대하다, 라는 식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끼는 시니컬함은 이 정도로만.

그렇게 억지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그리지도 않았고 눈물을 짜내겠다는 '불순한 의도'도 크지 않아 보이는 책이다.

잔잔하지만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소품 같은 에피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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