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를 열심히 건축 중인,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채로 강행 중인 이 건물을

 

풀샷의 스윙으로 날려버리겠다는 듯한 포즈의 역동적인 해머 던지기 선수.

 

 

 

 

 

한바탕 비가 쏟아붓고 난 목요일, 트레이드 타워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멀찍이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한조각 찢어져서 떠가는 애기 구름 하나.

 

건물 옥상에서 밤에 깜빡깜빡거리며 비행기 등의 충돌을 방지하는 붉은 등 너머로 남산타워까지 보이고.

 

역삼역과 테헤란로 저너머 관악산자락이 왼켠으로 웅크리고 있다.

 

 

높은 구름 그림자가 한강에 얼룩덜룩한 흔적을 남기고, 한강의 서안과 동안에 빼곡한 아파트들.

 

봉은사의 초록빛 녹지공간과 그 너머 담색 물결의 한강, 그 위엔 새하얀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

 

 

주변을 얼추 돌아보고 나서는 옥상 위 구경. 군사시설로 쓰였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뭔가 낡고 녹슨 시설물들 위로 짙푸른 하늘을 내달리는 새하얀 구름들.

 

건물 옥상에 있는 이 안테나같이 생긴 시설물은 뭘까.

 

 

 

 

점심시간을 틈타 옥상에 올라와서 서울 시내를 굽어보는 재미에 홀딱 빠져있는 직장인들.

 

 

선릉. 봉긋한 능 하나가 앞으로 보이고,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다이나믹한 녹지가 빌딩들에 포위됐다.

 

 

 

하늘 높은 곳에서 구름이 소리도 없이 내달리는 순간, 선릉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여의도 방면. 날이 맑으니 여의도 63빌딩이니 쌍둥이 빌딩이 쉽게 눈에 띄인다.

 

 

그러고 보면 서울 시내 끝에서 끝까지 한눈에 들어올만한 거리는 되는구나 싶다.

 

물론 날이 맑아야 하고, 이정도 높이에 올라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올라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가는 길. 옥상을 가리키는 친절한 화살표들이 사방에 붙어있었다.

 

 

올라가든 내려가든 화물엘레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워낙 고층 옥상의 풍압이 센지라 중간문을 닫지 않으면

 

엘레베이터가 출발을 못하고 휘청거린다는 위협적인 사실.

 

 

 

 

 

#1. 암기 강요

부대에 배치받고 내무실이 정해지자마자, 바로 위 고참은 '몇월 군번'인지 서열에 따라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 하단으로 내려가는 군홧장 앞으로 데려갔었다. 몇 월에 입대했는지를 외우고, 이름을 외우고,

보직이 뭔지를 외우고, 30분을 줄 테니 전부 외우라고 했었다. 그게 편한 군생활을 시작하는 길이라고.

당연히 한번에 외우지는 못했고 그때마다 얼빵하다느니, 그것밖에 안 되냐느니 따위 비아냥과 갈굼을

들어야 했었다. 필사적으로 외우고 났더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다른 내무실도 전부 외워야했다.


#2. 각잡고 앉아있기

내무실 맨 끄트머리에 더블백을 풀고는 이내 자세를 잡고 앉았다. 허리를 바싹 세우고 책상 다리를

하곤 두 팔을 빳빳이 펴서 양쪽 무릎 위에 올려두는 자세, 자연스레 양 어깨가 귓볼까지 와닿는

바싹 주눅든 채 굳어버린 모양새가 나오는 거다. 그야말로 신병의 기본자세, 갈기거나 할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닥다닥 붙어서 그 자세로 앉아있다가 옆에서 발차기라도 날아오면 속절없이

우르르 넘어졌다가 후다닥 다시 모양새를 잡아야 했다.


#3. 코골이.

원래 코를 안 고는데, 노란 따까리를 붙이고 긴장한 채 뛰어다니는 신병 생활인지라 밤에 조금 코를

골았나보다. 슬리퍼가 날아오고 군화가 날아오더니, 씨발씨발거리며 내 자리로 와서 따귀를 철썩

갈기고 다시 잠들던 말년 병장이 있었다. 담날부터 베개를 안 베거나 엎드려 자거나 심지어 휴지를

돌돌 말아 코피날 때처럼 양쪽에 박아두기도 했지만 별무소용, 일주일 후인가 그는 한밤중에 내무실

전체 인원을 깨우더니 전부 머리박게 시키며 소리를 쳤다. "신병을 얼마나 풀어놨길래 잘 때도

긴장 하나 안하고 코를 고냐!!" 내게 하이바를 씌우고는 소총으로 머리를 때리고 발로 걷어차다가,

자기부터 차례차례 하나씩 잠이 든 걸 확인하고 자도록 했었다. 이후에도 방독면을 쓰고 자기도 하고,

군대가면 철든다는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코고는 습관은 확실히 고쳤으니.


#4. 뻗치기 등 직접적인 구타행위

내무실 관물함과 벽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었는데, 일과 이후 취침 점호 때까지 거기에 들어가 있으란

것도 하나의 처벌이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그것들은 '요새 군기가 빠졌어'란 말로 축약될

그런 애매모호한 것들이었다. 벽을 바라본 채 똑바로 서서 두세시간씩 버티고 있는 건 눈앞이 핑핑

돌고 귀가 멍멍해지는 일이었지만, 귀로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티비소리에 정신을 집중해서 버티곤 했다.

그 밖에 너무도 흔해 오히려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들, 식당 뒤로 집합시켜서는 머리박기, 엎드려뻗쳐,

쪼인트까기, 따귀 때리고 발로 밟는 따위. 사실 초등학교 때 보이스카웃 단장을 겸했던 선생님에게부터

단련된 것들이니 새삼 군대 구타가혹행위라 하기도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5. 빨래해주기, 말리고 개어서 관물함에 넣어주기

병장이 되면 세탁기와 세제를 쓸 수 있었고, 조금 잘 보이면 상병 5호봉이 되고도 쓸 수 있는 게 내가

이병 때의 룰이었던 거다. 착한 고참은 자신의 빨래를 해주는 대신 내 빨래도 함께 슬쩍 돌릴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고, 나쁜 고참은 그냥 자기 빨래만 세탁기 돌리도록 했었다. 이후 빨랫줄에 널거나

건조기를 돌리고 찾아오고 각잡아 개어서 각자의 관물함에 넣어주는 건 막내들의 몫.


#6. 사제 용품 금지

상병이 되면 샴푸, 린스를 쓸 수 있었고, 병장이 되면 폼클렌징과 바디워시를 쓸 수 있었다. 그 전까진

초록빛 비누 한장으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하고. 어느 내무실에서 이병이 샴푸, 린스를

휴가다녀오며 들고 왔을 때 전 내무실장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랫것들 군기 제대로 잡자는 방침을 천명하고 이후 강고한 구타와 정신교육으로 '밥대가리 없는

것들의 정신나간 행위'를 박멸했던 적이 있었던 거다.


#7. 삐엑스, 독서실, 헬스장, 피씨방 등 출입금지

보통 피엑스라 하는 매점, 공군은 삐엑스라 하는데 거긴 상병 이상만 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독서실과 헬스장은 병장 이후, 피씨 세대가 놓인 피씨방은 사실상 유명무실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책 한권 보거나 아령 하나 들어볼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군기빠진 생각이자 건방지기 짝이없는

불순한 생각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던 거다.




별로 오랜 이야기는 아니다. 2002년부터 2004년 8월, 2년 5개월 1주일동안 공군으로 복무했던 시절의

앞부분 이야기니까. 2002년 한국의 월드컵 경기 직전마다 전 내무실을 돌며 '대한민국~ 짝짝짝' 응원을

홀로 목청껏 외치고서야 경기를 볼 수 있었던 때쯤의 이야기니까. 새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요새

'숨소리가 크다'느니 따위의 이유로 벌어진다는 전의경들 사이의 구타가혹행위가 그야말로 '새삼'

이슈가 되고 있는 게 웃겨서다. 여태까지 그런 게 없었던 것처럼 새삼 부각시키는 이유는 뭐지, 그리고

전의경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군대의 문제임은 왜 끝내 외면하려 드는 거지 싶어서.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이러저러한 피해자였던 동시에 누군가에게 가해자이기도 했다. 아무리 내가

'밥이 차고' '힘이 생긴' 후에 평소 생각하던대로 각종 금지를 풀고 암기니 뭐니 하지 말도록 했지만

그 이전에 어느 순간에는 밑의 후임을 갈궈야 했던 거다.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내려오는 갈굼 쓰나미에

휩쓸렸다고 자위하기에는, 내 머리와 손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는지

어쨌는지, 어느새 나도 조금은 군대물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누군가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욕설을

내뱉는 그 기분은 처음보다는 두번째가 덤덤했고, 두번째보다 세번째가 덤덤해졌었다.


반성부터 해야 할 일이다. 피해자로만 자처하기에는, 그 군대라는 시스템 하에서 시간이 흘러가며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맡겨졌던 악역과 가해자 역할의 시간 역시 짧지 않았다. 좀더 철저했더라면

자신이 맞는 것을 거부하는 만큼이나 자신이 때리는 상황에 처하는 것 역시 거부했어야 했다. 고작

이년여의 시간만 지나면 끝나버릴 병정놀이였는데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좀더

폭력에 민감한 채 유지했어야 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두번 다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원치 않는 역할을 맡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생각보다 바깥 사회와 군대 내의 사회는 비슷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요새는 점점 더 비슷해진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이로 밀어붙이는 꼰대들은 여전하고, 한발 떨어져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은 권력과

위세를 부리며 못살게 구는 '가해자'들의 유치함과 폭력성도 비슷하다. 게다가 웬만한 폭력은 전혀

폭력으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불감증이 온사회에 만연해 버린 느낌도 여전하다. 지금의 치유불가능한

꼰대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면 해결될까.


더욱 무서운 사실 하나, 나름대로 부대 내에서 입지를 쥐고 난 이후 모든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한

제한들을 풀어버렸지만 오래 가지 못했던 거 같다. 군대란 원래 그런 조직이며, 군대에서 배워야 할 건

그런 인내심과 '사회생활'이라는 식의 생각, 그 이면에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질시나

배아픔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제대하고 난 이후 다시 원상으로 복귀했다고 들었다. 길고

긴 군생활을 재밌게 하려면 처음부터 다 풀어주면 안 된다고 했다던가.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박정희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복지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 비교해서.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사회화', 그게 모범답안인 양 사회 전체에 횡행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상 군대를 이야기하는 건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군대 내의

구타가혹행위의 가해자들이 아무런 가책이나 반성없이 똑같은 마인드를 가진 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리라는 (결코 근거없지 않은) 상상, 혹은 자신은 그저 군대의 선한 피해자였을 뿐이라고 맘대로

기억을 재구성하듯 지금도 숨죽인 채 사회 시류에 휩쓸리는 모습을 정당화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노라면, 많이 우울해지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배우고 있다.



이번 외박은 폰을 안 살리기로 했다.

생일에 맞춰 나오긴 했지만, 굳이 머..생일을 여기서 맞으면 죽어버릴거 같단 극단적인 생각때문이 아니라 걍,

이왕 나올 꺼 생일쯤 해서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으로.

솔직히 이제 병장단지 다섯달 되는 시점에서, 주위의 사람들이 '미쳐' 가는 걸 보고 있다.


일이병 때의 절실했던 온갖 개인적인 욕구들, 꿈들..그런 것들이 객관적으로 손에 닿거나 이미 충족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어느새 피한다던 똥에 딩굴어버린건지, 그저 제대날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제대날이 된다고

마법에 걸린다거나 무언가 살 방법이 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닌 건데.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을 다시 만들어가얄 건데..나 역시 위험하다.


요새 아침점호에 살짝살짝 빠지며 8시까지 늦잠자는데 습관을 슬~ 들이고 있는데다가 일욜이면 잔다고 피씨방도

안 나온다--; 머..나름대로 1시까지 책보니까 피곤하단 핑계를 대긴 하지만, 또 점호따위 안 나가고 잠자는게

차라리 생산적이라고 핑계대지만, 그래도 이미 부대서 '거칠 것 없어진' 터에 자기규제마저 풀려버리면 끝갈줄

모르고 방만해질 게다.


해서, 이제 외박 나와서 스트레스 푼다고 소비적인 생활로 풀어버리는 건 쫌...민망한 노릇이지 싶다. 물론 여전히

여기에 속박되어 있고, 아무리 편해졌대도 여전히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공간인지라 거기서 거기겠지만, 어쨌건

더이상 줄구장창 한 풀듯이 마시고 노는 건 좀 아닌 거 같단 얘기.


저번 휴가 때부터 구체적으로 살살 다듬어가는 여행 계획이 있다.

원래 제대하고 바로 유럽 여행이나 가 볼까..하는 수준이었는데, 여기저기 디비다 보니까 중동 쪽이 정말 가고

싶어졌다. 여기서 착취당하며 그나마 손에 쥐어진 돈 몇 푼과 외박 때, 그리고 제대쯤에 '수금(정말 맘에 안드는

단어지만, 솔직히 아무런 생산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나로선 상당한 자금원이다, 전적으로 금전적인 면에서

이야기해서.)'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중요한 건 외박 때마다 돈을 벌어볼라구.


아무튼 그런 post-ㅈㅔㄷㅐ의 기획으로, 절라리 지루해지고 병장 12호봉까지 가야하는 조또 공군의 최대 심적

난관을 극복, 해피하고 "섹쉬~하게", 활기넘치게 살고자 하는데.

일단 여행 계획 짜며, 이런저런 구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자체 즐거움이 되더군. 그렇게 '말년병장'의 매너리즘과

방만함을 떨쳐볼라고 겸사겸사 생각중이다. 내 의지가 힘을 쓰는 시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건, 해서 내가 행함에

따라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일을 한단 건 꽤나 오랜만인 듯 시프다.


쩝...근데 머하고 돈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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