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철수가 그랬던가, 비오면 비온다고, 추우면 춥다고, 어떤 핑계든 대고 찾는 게 술이라고.

그렇게 비온다고, 눈온다고, 밤이라고, 춥다고 찾는 게 또 하나 있으니 음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음악과 술은 언제 어느때고 내키면 꺼내들 수 있는 창과 방패인 듯 하다.


부드러운 음악으로 실드치고 톡 쏘는 술로 찌르기 들어가고.


그렇게 싸우다 보니 저녁밥으로 술을 마셔버렸다. 아 무슨 술꾼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은 공부가주 마시고 야근중..)




남자의 색 파란색, 남자화장실에 그려진 기저귀 찬 쪼꼬만 애기. 올 11월 일본 큐슈에 갔을 때 하카다 역 안의

화장실에서 발견했던 왠지 기분 좋아지는 화장실 표시. 이제 남자가 애기 기저귀 갈아주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정도로는 세상이 변하는 있는 게다.

그림만 봐서는 카이로 쿠푸왕 대피라밋 정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화장실 표시이지만, 사실은 일본 하카다 역 근처

자그마한 비즈니스급 호텔 로비의 화장실. 대체 왜...?

하카다 근교 다자이후에서 마주친 화장실 표시. 일본색이 풀풀 나는 선남, 선녀의 그림이랄까.

이수영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큐슈 유센테이코헨의 화장실 표시. 손발을 쫙 펼친 적극적인 남성의 큰대(大)자

모습과는 달리 손발을 곱게 모으고 노란색 끈으로 동여매인 듯한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11월 말, 남북간 육상 교류가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지기 직전쯤 다녀온 개성에서 손꼽히는 '고급'음식점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남한의 고위 공직자들, 정치인들이 숱하게 다녀갈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조각조각난 '위생실'도

모자라 앞에 빨간 펜으로 '남'이라고 써놓은 게 엉성엉성하다.

화장실 내부를 잠시 볼작시면, 딸랑 하나 있는 '편의시설' 그리고 세면대도 따로 없이 초등학교 때 걸레빨던 곳처럼

대충 만들어놓은 개수대에서 알아서 일보라는 듯. 당연히 핸드 드라이기나 심지어 휴지조차 없었다.

10월, 사우디-카타르-쿠웨이트 출장을 다녀오면서 마주쳤던 남녀 화장실 표시. 턱수염 콧수염이 덥수룩한 아랍의

남자가 반짝반짝 불빛에 반사된 채 왠지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우연찮게 조명도 어두컴컴하게 받아버린

여성이 검은 히잡을 쓰고 검은 망사로 얼굴에 격자무늬 빗금이 둘러쳐진 건 아랍 지역에서 상대적 열위가 두드러진

여성의 위상을 반영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표정도 살짝 입을 앙다문채 새침해 보인다.

사우디였던가, 공동화장실의 남성용 편의시설. 왜 저렇게 길게 쭉 턱을 내뻗고 있는지 얼핏 보면 '큰 것'을 위한

시설로 보일 정도지만, 엄연히 저건 '작은 것'을 위함이다.

카타르의 쇼핑센터에 있던 화장실, 한 켠에는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늘어서 있다. 무슬림들이 사는

세상에선 당연시되는 것들, 이집트나 카타르를 막론하고 모스크 입구에 꼭 설치되어 있는 발씻는 곳.

쿠웨이트 국제공항 내의 화장실. 살짝 당당한 포즈로 양허리춤에 손을 괸 남자와는 달리, 손발이 경직된 여성의

치마가 뾰족하다. 그러고 보니 두 발 사이의 간격도 다르다. 살짝 쩍벌남의 기운이 느껴지는 남성.

아랍 삼국의 호텔을 돌면서 계속 마주쳤던 룸 내의 화장실. 욕조와 편의시설 사이에 놓인 저 제3의 편의시설은

뭘까, 생각하다가 비데의 일종임을 알고 무지 신기해했었다. 그렇지만 얼마전 송년회삼아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 룸에서 일박을 하면서 똑같은 시설물을 마주하곤, 이건 왠지 글로벌 스탠다드인가..하는 깨달음이 번뜩.

8월 파리 여행에서 숙소삼았던 유학생 친구의 집에서 만난 화장실. 세면대와 욕조는 다른 공간에 있고

덩그러니 지저분한 편의시설 하나만 비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공간.

퐁피두센터 옆에서 만난 공중화장실. 뭔가 쌔끈한 메탈 튜브가 떠오르는 외관이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항상

내부에서 모종의 거사가 진행중이었거나 심각한 냄새의 원천이 되고 있어서 차마 발들일 수 없거나 했다.

어느 여름, 가족들과 함께 삼청각 찻집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쳤던 한국식 화장실 표시. 국내에서 내가 본 것

중에 이만큼 세심하고 이뿌게 한국의 미를 살리려고 애쓴 화장실 표시는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을 수

있는 화장실 표시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걸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나처럼, 누군가는 그 표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려 애쓰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문학류라 묶일 것들부터 정리..)

보르헤스, '셰익스피어의 기억'
- 보르헤스의 단편들에서 풍기는 현실 너머의 현실에 대한 감각.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냐..랄까.

정지아, '봄빛'
- 점심시간 짬을 내어 읽기에는 단편집이 좋았다.
"소멸을 의식함으로써 똑딱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가는 이 순간은 더욱 생생해졌다. 여자는 소멸해가는 중이었고,
그러나 아직 살고 있었다." 

장영희, '축복'
- "헤매는 자가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행복해보인들 '미래'를 믿지 말라."

주제 사라마구, '눈먼자들의 도시'
- 눈이 먼 자들 사이에서 눈뜬 자는 되려 병신일 뿐 아니라, 온갖 추악함을 생생히 감각해야 하는 천형을 받은 몸.

주제 사라마구, '눈뜬자들의 도시'
- 으레 그렇듯 보수 40%, 중도 50%, 진보 10%랬던가..그 써늘한 냉소가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향했다.

노신,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 식민지 지식인의 양가감정, 지키고 긍정해야 하는 자신의 뿌리로서의 민족과 동시에 깨우기 위해 비판하고
부정해야 하는 과거의 것으로의 민족. 그 사이에서 균형잡고 줄타기에 능한 노신.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
- 프랑스 가기 전에 파리의 몇몇 풍경에 이야기들을 심어두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종교적 편향이 없는 내겐
그다지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그 유리 피라밋 아래 조그만 피라밋이란 게 대체 어딘지는 결국 못 찾았다.

코맥 매카시, '더 로드'
- 광고문구에서 표현되듯 이책은 묵시록인 걸까. 불을 운반하는 아버지와 아들, 그들이 가닿는 감정의 깊이와
순정함을 보면서 난 자꾸 그 말이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그가 20대에 썼다는 이런 소설, 나도 한번은 쓰고 싶었던 소설.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고, 꽃들을 피우고, 죽는다.
그리고 또다시 상처를 머금고 씨앗은 자란다.

남무성, 'Jazz it up'(1-2)
- 재즈의 기원부터 전개 과정, 빛나는 뮤지션들까지 만화체로 풀어 설명한 책. 중간중간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나올 때 맛보는 마치 퍼즐조각의 제자리를 찾아낸 듯한 쾌감.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점심시간 짬짬이 일주일에 걸쳐 읽었던가. 뜬금없이 하루키에 비기자면, 하루키가 시니컬하고 삐뚤어진 태도로
'그래도 살아 제길' 정도 이야기해줄 때, 코엘료는 왠지 아름답고 부드러운 밤하늘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밤이에요'
할 거 같다.

주이란, '혀'
- 조경란과의 표절논쟁으로 떠들썩해진 덕에 굳이 사서 읽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나도 소설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까지는 스스로의 감정을 풀어내기도 힘든데 감정이입따위 해가며 픽션을 쓸 염은 없었다.

한상복, '배려'
- 이런 류의 책..자기계발인지 뭔지, 정말 혐오한다. 치즈를 누가 옮겼던 말던, 어차피 그런 교훈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이야기의 '원형'은 넘치도록 많다. 왜 같은 이야기를 온갖 디그레이드된 버전으로,
그것도 건방지고 오만한 말투로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지. 그나마 다행히 숙제였던 이 책은 좀 낫다 싶었지만.


(다음, 비문학류랄까, 아님 인문사회과학류랄까..)

조지프 캠벨, '서양 신화-신의 가면3'
- 레반트 지역의 남성신이 어떻게 그 이전의 여성신들을 전복하고 전유했는지. 성경에 매장된 채 변형된 세계.

프로이트, '정신분석 입문'
- 프로이트의 '예술, 문학, 정신분석'을 보고 싶어서, 워밍업차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일독.
그는 참 무서운 사람이다. 자신의 사고를 겁없이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갓난애의 천진난만함은 유아기의 성욕으로
해석되고,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의 관계를 문명의 외피를 벗기고 사유하려는 그의 강철같은 정신.

프로이트, '꿈의 해석'
- 읽다보니 꿈의 해석도 한번 다시 읽고 싶어져서.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 인간이 평등함을, 혹은 평등해야 함을 말하지만. 인간은 무의식 앞에서 평등하다, 아마도 그것만이 있는 그대로 진실일지 모른다.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정권이라는 상투어, 그리고 대한민국헌법1조를 말하는 자는 국민(Korean)이 아니라
인민(people)이어야 한다는 해석..배제함으로써 포섭하는 사회의 갈가리 찢어 관리하는 시스템을 그려보인다.

최장집 등,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2007년에 나온 이 책 제목 앞에는 몇마디가 더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이 당선되기 전인 2007년 현재".
이 책에서 낙관인줄 모른 채 깔고 시작했던 전제들이 몇몇 휘떡 뒤집힌채 허우적대고 있는 2008년 말.
 
앤서니 기든스, '노동의 미래'
- 솔직히 학자들이 미래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내면 보고 싶지 않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워낙 넌센스
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몇몇 개념어를 강조하고 싶은지 미래에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그런 아이디어를
그려넣는다. 별로,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 이름은 익히 아는데 내용은 모르는, 마치 연예인같은 책 중 하나였다. 일본에 가지 않고도 이런 깊이와 균형잡힌
시각의 분석이 가능하다니..하고 놀랬었다. 그리고 이미 이 책이 있는데 왜 '일본은 없다' 따위 쓰레기가 소비될까
잠시 (순진하게도) 의아해졌더랬다.

만델라, 'Long walk to freedom'
- 751페이지짜리 문고판. freedom fighter라는 역할을 혼신의 열정으로 연기해내는 만델라..를 보는 것 같다. 그는
현재 마흔여섯살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후 섬에서 복역 중이다. 여기가 현재 내가 읽는 468페이지의 만델라.

강준만, '지방은 식민지다'
- 서울제국을 위한 내부식민지. 남한 내 비서울지역. 국토균형발전이니 뭐니 말도 많지만, 결국 지방 스스로의
민주적 역량과 실질적 제도적 정비의 뒷받침이 없이는 온통 서울로 빨려들어갈 뿐이라는. 돈도 사람도.

최일도, '이밥먹고 밥이되어'
- 밥퍼공동체에서 봉사를 하고 받은 책. 목사라지만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정말 목사인 것 같다.

최병일, '한미 FTA 역전시나리오'
- 나무가 아깝다.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라'
- 면접준비용 책이었다.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 미래..라는 단어 갖고 사람을 현혹하는 건 이제 그만. 지금의 시스템이 어떠한 과거의 유물과 현재의 부산물로
어떻게 융합되어 있는지부터 철저히 따진 후에야 고작 예측 정도가 가능할 텐데..대체 무슨 과신인지.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 엔트로피의 법칙을 안다면, 이런 책은 사지도 팔지도 만들지도 말자.

(정기적으로 본 것들..)

시사IN
- 이명박 사진 좀 올리지 말라고 독자의 편지에 투고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TIME
- 미국을 조정한다고 믿고 싶은 자들이 보는 잡지랬던가..Economist가 실제로 미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는 잡지라고 했던 거 같아서 바꿀까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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