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에 유명한 쌀밥정식집들이 많지만, 대개 큰길가에 나있고 '전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런 외지인용 맛집 말고,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이천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는 쌀밥정식집이 있다길래 알음알음 가봤었다.

 

 

딱히 '맛집'이라고 인증한다거나 추천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나중에 혹시 오다가다 이천에 들르게 되었을 때

 

어디 갈까 고민하기 전에 한번쯤 다시 스스로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이건,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한

 

결과물이랄 수 있겠다.

 

 

 

처음에 하나씩 나오는 에피타이저들을 여유롭게 찍으며 잠시, 이번엔 깜빡하고 먼저 먹어버린 후 빈그릇을 찍는다거나 따위

 

멍청한 짓은 안 할 수 있겠다 기대했었지만. 늘 그렇지만 한정식은 서서히 피치를 올리며 음식을 서빙하다가 어느 순간

 

뙇, 하고 한상 가득 반찬들을 벌여두는데, 그쯤에선 결국 사진 찍기를 단념하고 에라 모르겠다, 먹자, 는 심정이 되는 거다.

 

 

실내 공간은 깔끔하고 조명도 창호문을 응용한 듯 제법 운치있지만, 그렇게 번잡하고 '나 전통음식점이유'하고 대놓고

 

티내는 모양새는 아니다. 입구쪽에 전시된 각종 담근술들이 인삼뿌리라거나 더덕이라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을 품고 섰다.

 

 정식을 시켰는데 보쌈도 푸짐한 쌈야채랑 같이 솔찮이 나오고.

 

 

 대체 이렇게 테이블다리가 휘어지도록 나오는 음식들은 어떻게 담아야 하는 걸까, 가뜩이나 초점거리도 긴 렌즈를

 

갖고 갔던 터라 곤혹스럽기 짝이 없던 상황.

 

 

 에라 모르겠다, 벌떡 일어나서 상을 내려다보며 찍었지만 여전히 맘엔 들지 않는다. 무려 삼사십여가지의 반찬그릇을

 

어떻게 담느냔 말이다. 다행히 반찬이 조금씩 나와서 남기는 반찬에 대한 미안함은 방지할 수 있었고, 맛있다 싶은 반찬은

 

한두번 더 달라고 해서 해결.

 

돌솥에 나온 쌀밥은 덜어내고 물을 부었더니 치익- 소리를 내며 이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뜨끈뜨끈한 숭늉.

 

가격도 이 정도면 저렴한 편인 듯 한데, 다만 음식점이 위치한 곳이 그냥 동네 한귀퉁이 정도라는 느낌이랄까.

 

'특'은 대체 어떤 메뉴가 더 추가되는 건지 못 물어봤지만, 아마도 반찬이 더 추가되는 거겠지. 소고기 반찬 같은.

 

 

 

 

호텔에서 나온 한식 코스메뉴를 쭉 훑어내려 보다가 문득 놀랐다. 얼간이 된장국? 얼간이?

먹으면 얼간이가 되는 된장국인 걸까. 얼이 빠진 사람, 정도가 얼간이의 뜻일 텐데.

그래도 호텔에서 만드는 메뉴이니만치 오타는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또 동시에

'얼간이 된장국'이란 말에 이렇게 생경한 나 자신도 찜찜하길래, SMART하게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국어사전에 접속했다.

얼간망둥이랑 얼간이가 둘다 표준어란 건 알게 된 수확은 있었지만, 그리고 얼간이의

관련어휘로 멍청이, 멍텅구리, 바보, 얼뜨기 따위가 있다는 걸 재발견한 수확은 있었지만

도무지 '얼간이 된장국'의 유래를 알 수가 없었다. 이거 혹시 '얼갈이'의 오타는 아닐까.


왜 그 얼갈이 배추니, 얼갈이 김치니 하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얼갈이는 얼간이랑은

영 다른 의미를 담은 단어, ㄹ과 ㄴ의 한끝차이일 뿐인데 느낌이 확 다르다. 그야말로 절묘한

오타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얼갈이 된장국이 맞지 싶어 수정을 요청했다.

그렇게 다시 고쳐진 메뉴, 얼간이 된장국이 아니라 얼갈이 된장국이 되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해진 기분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눈에 띄는 다른 문구. 진지와 얼갈이 된장국. 밥 대신

진지라고 하니까 그것도 또 나름 웃기다.

여하간 이게 그 '진지와 얼갈이 된장국'의 정체. 그냥 뭐..흰쌀밥과 배추국이다.

아무래도 한식을 호텔에서 먹는 건, 뭔가 코스모폴리타닉해진 맛이랄까, 많이 심심하고

밋밋한 맛으로 순화되어서 그런지 별로 맛있다는 느낌은 없고 정갈하다랄까, 딱 그정도.




'건국'이란 단어를 들이대는 정부. 위대한 국민이라는 말도, 기적의 역사라는 말도, 너무 쭈뼛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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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그랜드볼룸의 한식 세트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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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류의 기본 찬은 미리 깔려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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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채에 들어있는 팬지꽃은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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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주는 복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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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 어..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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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 구이는 언제 먹어도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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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호주산)이 사실상 마지막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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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지와 국'이 함께 나왔지만, 왠지 한식은 그렇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어야 맛이지, 이렇게 쬐끔씩

맛만 보이며 코스로 띄엄띄엄 나오는 건 좀 별루다. 외국 정찬처럼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에 맞게 십여개씩

나와서 그때그때 먹는 메뉴를 준비하고, 얼마나 식사가 진행되었는지 가늠케 하는 것도 불가능한 수저 한벌.

한식이 가야 할 고급화의 길은...아직 찾아내지 못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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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이어지는 쇼쑈쑛. 비보이와 현대화된 템포의 전통악기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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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분의 파격적인 한복, 그리고 명치아래께 케잌묶듯 묶인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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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YTN이나 몇몇 신문방송 기자들이 오긴 했지만, 제대로 기사거리가 될만한 건 없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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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마무리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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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현미. 보톡스의 힘일까, 마치 다림질된 듯한 얼굴을 보곤 생경함만 가득했다.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구성지고 목소리는 깔끔했지만, 나이를 알 수 없이 요새애들처럼 비슷하게 이뻐진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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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에서 왜 느낌표가 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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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겨우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걸, 사회란 이런 거다~라고 제대로 보여주었다.

좌중의 분위기를 조율하며 끌어올리고 내리고를 자유자재로 하는, 게다가 출연자, 스탭과의 호흡이라거나

여유넘치는 애드립이란. 사회자로서 유재석의 겸손함과 출연자에 대한 치켜세움이 미덕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이미 송해는 출연자에게, 관객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풍요롭게 활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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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는 설운도.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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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과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일상의 조명이 되돌아오고, 호텔리어들이 부산해졌다.

항상 뭔가 가슴이 휑해지는 순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직 몇 번 안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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