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태국에서 언젠가 먹었던 맥주. 싱하. 태국 도처에 널린 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호상-아마도

해태?-의 심볼이 새겨진 담담한 색감의 맥주캔이 책상 위에 놓였다.


#1. 파나마에 간 G는 운하 앞에 서서 "한국에 돌아오면 열심히 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자칫하면 내가 따라갈 뻔했던 출장. 아무리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의 가로수가 온통 망고나무인데다가

잘 익은 망고가 뚝뚝 떨어져 아찔하고 강렬한 향을 피워올린다고 해도, 그 꼴 안 봐서 다행. (이랬다가

또 사찰당해서 회사 쫓겨나고 법정투쟁 옥중투쟁해야 하는 건 아닌지. 어제 피디수첩에서 다룬 '민간인

사찰'이야기를 보신 분으로부터 진보신당 당비 이제 그만 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다.)


#2. 세르비아 총리, 방글라데시 총리 등이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나름의 '경제외교'를 펼친다. 외교의

많은 부분이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온통 기울여지고 있는 추세상 새삼스레 '경제외교'랄 것도 없겠지만.

문제는 그런 제3세계랄까,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유입되어야 할 외국의 자본과 상품들은 선택적으로

'시장'을 택한다는 것. 그들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가 조성해놓은) 시장을 본다. 시장 규모, 더한다면 구매력.


정치인들의 연설과 판촉의 꼬드김을 들으며 경제인들은 속삭인다. 저긴 시장이 넘 작아서 먹을 게 없어.

이래서야 개도국이 발전하고 절대빈곤의 수준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일국 차원에서의 인민 대 인민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민주주의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은 부분 상식이 되었고

그 상식에 기대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진보를 지향한다면, 지구적 차원에서는 영 아니다. 국가 대

국가간의 관계, 혹은 시장 대 시장간의 관계에서는 민주주의 따위 통하지 않는다. 적자 생존, 규모의 경제,

형식적이나마 국가 내를 규율하는 1인1표 따위의 평등한 원리 대신 1원1표의 원리로 선택되고 결정되는

국가, 그 안의 국민들의 미래. 그나마 국제연맹이니 국제연합이니 칸트의 이상이 살아있던 때가 있었지만,

더이상 국제 관계는 정치가 아닌 경제가 규율하고 있는 거다. 외교와 민주주의는 더욱 멀어졌고.


#3. 그 와중에 누구는 전시작전권을 소고기와 팔아먹는다. 이 기묘한 셈법은, 상품을 내어주며 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전작권 환수연기에 동의해주어서 감사하다니. 소고기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실제 계산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뻔하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4. 뭐랄까, 물리적 거세를 해봐야 그런 놈은 넘쳐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허벅지라도 대고 부비댈 놈이다.

이상, 술꼬장.


그래도 한때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범야권의 대선주자로까지 거명되던 인물이다.


정부의 역할과 복지정책의 개연성을 높이는 케인즈 경제학조차 '진보'로 분류되는 세상인지라 그랬을 거다.

그는 나름 '케인지안'으로 시장원리주의자들에 대항하는 합리적 혹은 (상대적인) 진보적 언사가 심심찮던 경제학자였다.


그는 이미 교육부장관보다 힘이 세다는 '서울대 총장' 자리에서 나름의 검증을 거쳤다고 여겨졌을지 모른다.

'딸깍발이'류의 신화야 바라지도 않지만, 제도권 정치인과는 다른 고고한 학자로서의 기개랄까, 순수함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상대적으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나름의 신념과 자존심을 꿋꿋이 견지하고 있는 사람일 거라 보여졌다.


그런 것들이 정운찬이 재야 인사나 시민운동 세력으로까지 분류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한나라당에 대항한) 야권,

(보수우익세력에 대항한) 민주세력의 히든 카드로 주목을 끌어온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랬던 그가 '서울대 총장', '케인지안 경제학자', 혹은 자신의 말대로 '서민의 삶을 살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허울을 벗고 검증대에 올랐다. 검증대에 오르기까지 그가 보였던 치졸한 언사들과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말장난들은

논외로 하고, 또 어제까지 자신의 편이라고, 최소한 반대편에 서지는 않으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의 경악과 뻘쭘함 역시

눈감아주기로 한다. 문제는, 그의 삶이다. 그야말로 적당한 단어, '공인(公人)' 정운찬의 삶이다.


병역 기피, 탈세, 위장 전입, 논문 게재상의 문제들, 기업과의 유착, 공무원법 위반, 그 모든 탈법 혹은 불법 행위들을

관통하는 것은 부도덕, 그리고 허탈하게도 '능력'의 징표다. 한국에 거주하는 능력자들을 비능력자들로부터 식별해낼
 
수 있는 뚜렷하고도 분명한 지표들이 바로 병역 면제, 탈세 전과, 위장 전입 기록, 유착, 처벌받지 않았던 불법과 탈법의
 
기록들이다.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코스를 필수 정규 과정처럼 밟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능력자'만이 그러한 코스를

밟을 자격이 되는 건지, 그 선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부도덕하고 반서민적이며 불도저스럽다는" MB의

"능력자"들에 대한 유력한 대항마로 여겨지던 정운찬 역시 오십보 백보로 "부도덕하고 반서민적이며

불도저스럽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똥오줌을 뒤집어쓰고 스스로의 말을 뒤집고 신념을 꺽으며,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돌진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그의 권력욕이라니. 그 와중에 드러나는 부도덕성과 반서민성은

차라리 코미디다.


생각한다. 이건 진보니 보수니,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들의 행태, 삶의 방식의 문제다. 이땅에서 나름

누구입네, 하고 거들먹댈 수 있는 사람들, 이름을 대면 알 만하다는 사람들(지쳐버린 '딴따라' 말고), 그들이 불리기를
 
원하는 호칭으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 보다 날 것의 단어라면 (계급화되어가는) '지배계층' 쯤이 알맞을 '노블리스'

계층의 문제다.


진보/보수를 싸잡아 비난하자거나 그런 이념적 지향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인' 정운찬은 진보도 보수도
 
표방하지 못하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아마추어 정치인에 불과하다. 그가 총리직에 낚여서 허부적대다가 덜컥 노출시켜

버린 '있는 사람' 일반의 도덕과 품위와 교양과 상식의 부재함을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만족과 합리화일지언정

'보헤미안(히피)'의 감수성을 가진 '부르조아'라는 '보보스(BOBOS)'족의 출현조차 이 나라에선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그가 MB에 대항하지 않고 투항해 버린 것이 유감이었다. 이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대체 이런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기준조차 충족시키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니, 기껏 그런 사람이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었었다니
 
더욱 암담하다. 진부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갖지 못한 그들, 최소한 지금 위세부리는

'능력자'들 맞은 편에는 그들보다는 나은 도덕과 품위와 상식을 가진 '능력자'들이 포진하고 있기를 바랬는데.


기득권층, 사회지배층, 상위계층, 지배계급, 사회지도층, 뭐라 불리던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다. '비능력자'로서는,

거기에 관심을 끊어버리고 '니들끼리 놀아라' 해버리던가,....다른 어떤 길이 있을까. 일부 '비능력자'이면서 용케

제도권 정치 내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명박의 지지율이 40%를 넘는 세상이다. 이명박을 무난히
 
집권시킨 세상이다.


사실, '능력자'를 힐난하고 그들의 비상식, 부도덕을 지적하면서도 흘깃대며 그들의 '성취'를 부러워하고 '병역면제'니
 
'위장전입'이니 그들의 경력을 어쨌던 "능력"이라 지칭하는 내 안의 시기심, 질투, 전도된 가치관부터 문제일지 모른다.
 
기득권층은 제 혼자 성립되지도, 유지되지도 못한다. 그곳에 편입되기를 열망하고 해바라기하는 사람들이 떠받치고

있는 거다. 기득권층의 문제란 건, 잠재적 기득권층, 언젠가 기득권층이 될 거라 믿는 사람들의 문제기도 해서, 결국

우리 모두의 욕망과 그 해소의 문제라고 해도 억지는 아닐 거다.


"결국 니가 배아파서 그런 거잖아"란 그들의 비웃음에 뜨끔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순결주의나 '남의 티를 찾기 전에 자신 눈안의 들보를 찾아라' 따위 가르침을 따르고 싶진 않다. 난 어쨌든 "비능력자",
 
"능력자"들보고 니들 좀 똑바로 해라 십장생 개나리들아. 라고 이야기할 거다. 다행히 나이먹는 것과는 달라서,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기득권'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니까. 갈수록 이 사회에서 '계층'은 '계급'이 되고 마니까.




<가벼운 버전>

시사IN 독자위원회 리뷰를 마치면 늘 가곤 하던 서대문역 근처의 허름한 맥주집, 그곳에 불쑥 이해찬 전 총리가

찾아왔다. 어제 있었던 시사IN강좌 "거꾸로, 희망이다 - 시즌 2" 첫 강좌를 마치고 나서 들른 모양이다.

한쪽 테이블에서 이야기에 여념이 없던 우리들은 술렁대다가, 다이어리를 펼쳐들고 쪼르르 달려가 싸인을 받았다.

우선 나부터. "이름이 어떻게 되요?" "윤성의입니다." "성의?" "넵, 성의있게 살라고 할 때 그 성의요."

"예끼~ 자기 이름갖고 장난치면 쓰나" 하며 허허허 웃었다. 그새 꽤나 늙고 수척해 보이던 양반이 웃으니 보기 좋았다.

(사실 이 전총리의 웃음 코드란, 그 연세의 분들이 그렇듯 조금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어쨌던 웃었으니 됐다.)
 

사인을 전부 받고 나서 자리에 돌아와 각자 뭐라고 써줬는지 멘트를 확인했다. 내가 "진실은 승리합니다!"라는 멘트를
 
받은 후론 전부 "꿈은 이루어집니다!"라는 멘트. 한마디했다. "무슨 월드컵이냐." 실은 머릿속으로도 잠깐 든 생각,

별★이라도 하나 그려주지 그러셨어요.




<약간 무거운 버전>

얼마전 친한 대학 선배들과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단대학생회장을 했거나 나름 학생회에 발담그고, 아니 그보다 

적절한 표현으로는 '사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선배들,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래서

신촌바닥에서도 스스럼없이 둥글게 서선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었겠지만. 그 자리에서 꽤나 오랜만에 이론적이랄까,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교 때에는 늘 하던 이야기지만 사회 나오니 다른 사람들과는 나누기 힘든, 나눌

염도 내기 힘든 그런 이야기, 근본 모순이라느니, 주체라느니. 그리고 여느때처럼 노정된 약간의 관점차들.


좀 낯설었고, 좀 벙벙했다. 어느샌가 그런 이야기, 뭔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달까. 물론 나름의 비전과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 이론틀과 세계관의 역할이라지만, 굳이 거시적인

그림의 디테일한 차이점을 미리부터 따지거나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눈앞에 당면한 갈림길이나 급박하게

결정을 요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3KM 전방에 갈림길" 표지판을 보고 준비해도 될 텐데, 지금은 3KM는 커녕 300KM,

혹은 300광년 정도 떨어져 있지 싶어서다. 내 '호흡'이 바뀐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해찬에게 사인을 요청한 사실은 조금 우스운 일이었고 겸연쩍은 일이기도 했다. 그건 노무현과 김대중의

서거를 지켜보며 착잡해하는 스스로에게 쭉 느껴왔던 감정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그들의

정책과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에 반대하며 거리를 뛰어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능구렁이 김대중, 가증스런

노무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사IN 말마따나 "지난 20여년간 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이해찬

전총리를 보니 왠지 아는 척 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더랬다.(“민주 세력 ‘새 단결’이 김 전 대통령의 유언”)

비록 그게 인지상정이거나 고양된 감정의 발로였다손 치더라도.


그가 이루겠다는 '꿈', 그가 생각하고 지키려는 '진실'이 뭔지는 사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의 한계에서 대충

각을 잡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이루고 나서, 한계단 올라서고 나서 그 이후에 펼쳐질 문제와 입장차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건 아니다.

이해찬은 나름의 일관된 입장과 궤적을 밟고서, 나도 나름의 입장과 짧으나마 궤적 위에 서서 사고하고 이야기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렇게 각자의 길을 따로 또 같이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일문일답] 정운찬 총리 내정 소감 기자회견

정운찬 총리 내정 소감 기자회견 일문일답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지인들로부터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 유성호
정운찬

- 정 내정자가 총리직 수락 전제조건으로 '실세총리', 권한 확보가 가능하면 수락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는 데 이명박 대통령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비서실장과 2번 만났고 대통령과 1번 만났다. 나에게 많은 도움 주겠다고 했지만 나와 대통령 간에 실세다 아니다 말할 겨를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통령을 잘 보필해서 우리나라를 좀 더 강한 경제의 나라, 통합된 사회 만드는 것이 목표지 대통령과 총리가 얼마의 권한을 갖는다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 경제학자로서 언론기고를 통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토목경제다 하면서 비판해왔다. 현 정부 경제정책이 총리 지명자 신념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경제학자로 이런 저런 비판한 것 사실이지만, 과거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도 만나 생각해보니 그분(이명박 대통령)과 나의 생각 다르지 않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같다."

 

- 시기적으로 언제 제의가 와 수락했나.

"매우 최근이다. 신문지상에 내이름 오르 내린 건 오래 전이나 대통령 비서실장 만나고 한 건 아주 최근이다."

 

- 4대강 사업의 경우 계속 비판적 의견 말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운하에 대해선 반대입장 분명히 했다. 환경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대운하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4대강은 수질개선과 관련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어렵다. 청계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4대강 주변에 중소도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반대할 의사 없다."

 

- 장관 6명 됐는데 대통령과 협의를 했나.

"누가 됐는지는 알지만 그 인사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이런 이런 사람이 어떻냐고 해서 내가 '좋다'고 했다."

 

- 윤증현에 대한 생각.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관료로서도 훌륭하고 경제를 보는 관점을 존경해 왔다."

 

- 행정복합도시가 최근 논란이 돼 왔는데 행복도시 원안 추진할 건가?

"경제학자인 나의 눈에는 아주 효율적인 플랜은 아니다.그러나 이미 그 계획 발표했고 사업을 많이 시행해서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동시에 원안대로 다 하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도시는 부분적으로는 하되 대신 충청도 분들 섭섭치 않을 정도로 여러가지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수정은 이뤄지겠네.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수정은 아마..."

 

- 이명박 정부와 정치적 컬러 맞다고 생각하나.

"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 적이 없다. 1년전 대통령 선거 때 출마를 전혀 고려 안한것은 아니지만 당시 어떤 당과 연결된 적은 없다."

 

- 총리직 후 대권도전 계획 가지고 있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대통령 보필해서 경제 살리고 사회통합하는 것이 급선무다."

 

- 대선 도전 가능성은?

"생각 안해봤다."

 

- 본인은 충청권 총리라 생각하나?

"나는 충청도 출신인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나는 충청도 총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총리이다."


원칙도 없고 신념도 없는
당신에 대한 호감을 철회하고, 당신을 반대한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그간 '범야권 정치예비세력'으로 숱하게 하마평에 올랐던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로 내정되었단다. 서울시장 후보니 국회의원이니 말이 많았지만 본인이 한결같이

고사해왔다고 알고 있는데 참 의외다. (국무총리 후보에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내정)


정권 차원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부가 충청권을 감싸앉고 나아가 박근혜에 대항할 수 있는 대선후보를

키우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명색뿐인 '친서민행보'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중도실용노선'을 끌고 나가기 위한 신선한 얼굴마담으로서도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더구나 그간 '범야권'

진영의 후보라 여겨졌던 만큼 정권의 포용성이랄까, 강부자/고소영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불식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고 말이다.


아마 정운찬은 기왕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에 빠지기 이전에 총리직을 맡는 것이

유리하면서도, 적당히 힘이 빠져 개인의 운신이 폭이 조금은 넓고 자신의 목소리를 투영하기 좋은 타이밍이라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내년 G-20도 있으니 국제 무대에서 나름의 비중있는 역할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본인이 충청권과 여차하면 호남, 수도권까지 어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걸까.


참 실망이다. 아무리 정권에 대한 분칠용으로, 본인의 정치욕구에 대한 해소용으로 잇속이 서로 맞았다고 해도,

정운찬이 그러는 건 실망이다. 나름 지난 대선에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고, 박원순 변호사니 누구니

재야 세력과 함께 묶여서 고려되던 사람 아닌가. 서울대 법인화에도 반대 목소리를 명확히 냈던 걸로 기억하고
 
있고, 교육 정책 등에도 상당히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던 사람인데, 결과가 어떻게 되던 일단 실망이다. 게다가
 
똥물만 잔뜩 묻히고 쫓겨나오기 십상이지 싶다.


무서운 건 청와대다. 정운찬을 총리로 발탁하는데 성공하다니, 이런 깜짝 카드를 구사할 만큼의 능력치로

레벨업했다. 집권 초나 얼마전까지의 어리버리함, 막무가내식의 땡깡이 아니라, 나름 머리를 쓰며 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노무현과 김대중의 연이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세력화는 커녕 정체성조차 뚜렷치 않은

야권 세력, 그 비극 중에 묻혀 버린 진보 세력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뿐이다.


물론 청와대는 그들과 이해를 함께 하는 언론과 권력기관의 비호를 받고 있다. 당장 최장집 교수가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강연 중에서 했던 몇몇 대목을 끌어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이 곧 진보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메치기되어

되려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칼로 돌아오게 만든 조중동의 활약이 있지 않은가. 그분의 근본적인 문제의식 따위는

모조리 거세된 채 그저 선정적인 문구 하나만 발췌해서 써먹는 수법이라니.(중앙일보·동아일보, 최장집 띄우기 왜?)


그들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이명박의 통치술이 점점 진보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력 따위 제로에 가깝고

그저 선불맞은 멧돼지모냥 앞으로만 직진하는 미친 불도저인 줄 알았더니,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고 나름

영악스럽게 정국을 장악해 나가는 건 아닌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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