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세관 세관장과의 인터뷰가 예정된 자리,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아이들 소녀시대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알고 보니 인천공항세관의 홍보대사로 임명장을

받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최근 좀더 대중적으로 친근하고 살갑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인천공항세관에 딱 맞춤한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녀들이 몰고 다니는

한류열풍을 감안하면 얼마나 자주 일본이니 중국으로, 해외로 들고 나겠는가. 여러모로 딱인 캐스팅.

세계최고의 관세행정, 인천공항세관의 비전

세관장님은-비록 그때 소녀시대에게 임명장을 건네며 악수를 나눈 분은 아니었지만-그런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공유하고 있으신 분이었다.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세관행정을 열심히 펼치고 있는데

막상 홍보가 제대로 안 되어 이해를 잘 받지 못하고 심지어 협조하기를 거부하거나 기분나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본인의 짐을 왜 함부로 뒤지고 열어보느냐는 건데, 사실 갈수록

몰래 밀반출하는 범죄가 대형화하고 많아지는 추세거든요. 세관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께 널리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관장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국민들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데는 그만한 자신감이 밑받침된 거다.

올해로 인천공항은 세계공항평가에서 6년째 1위를 고수해왔는데(2006-2010), 평가항목 중 입출국에

소요된 시간이라거나 로지스틱스, 세관업무에 대한 부분들도 담겨있었다고 한다. 입출국하려는

승객들은 당연히 빠르고 간편한 절차를 선호할 테니 최대한 편의를 고려하면서도 업무에도 빈틈없이

해왔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인천세관의 비전이라는 '세계최고의 관세행정'이 예사롭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인천공항세관

회의실 한쪽에 붙어있는 포스터에는 이달의 관세인이 자랑스럽게 내걸려있었다. 북한산 마약을

몰래 들여오려던 사건을 적발해낸 분이 5월의 관세인으로 선정되었는데, 실제로 요새 특히 마약을

밀반입하는 범죄가 대형화하고 있다고 한다. 방법도 갈수록 교묘해져서 마른명태의 뱃속이나

만두속에 꼭꼭 채워오기도 한다고. 그보다도 더 놀라웠던 사실은 히로뽕 관련 사건의 60-70%를

세관에서 적발하고 있다는 점. 경찰만 법망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세관 관련해서 여러가지 기사들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외국에 나갔던 대사가

돌아오며 상아를 들여오려다 걸렸다는 이야기, 금괴 수억원어치나 수백만달러를 지니고 들여오다

걸렸다는 가십성 기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비아그라 수십만정을 들여오려다 걸렸다거나 녹용이니

뱀을 대량으로 들여오려다 걸렸다는 기사들은 이제 너무도 익숙해진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인천공항세관

그리고 하나더, 최근 기사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내용이었는데, 단속된 가짜상표 상품들을
 
상표를 지우고 외국이나 국내의 다문화가족, 보훈원등에 기증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런

상표법위반 상품들이라 해도 그대로 폐기처분하거나 소각처리하는 건 자원의 낭비인 거 같다

싶어서 참 잘하는구나, 고개끄덕이며 읽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더욱 반갑다.


단속하면서 인간적으로 안타깝거나 곤란했던 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외환을 밀반출하는 단속

사례중에서 조선족이나 이주노동자분들이 제법 많은데 그분들은 송금했을 때 자칫 다른 사람이

돈을 채가거나 사고가 생길까 싶어 직접 들고 나가신다는 거다. 발각되더라도 7-8% 벌금을

뗄 생각으로 그렇게 들고 나가시는 분들의 사정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한다.

인천공항세관은 2001년 3월, 인천공항 개항과 함께 시작되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여태까지 공항과 함께 이루어낸 성과도 대단하지만 앞으로 인천공항세관의 역할은 점점 커질 것
 
같다는 게 세관장님의 말이다. 2012년에 핵안보정상회의도 있고, 한미/한EU FTA 등의 비준이

가시화되면서 세관 차원에서도 더욱 철저하고 확실한 행정업무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현재 수출화물을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분내외, 수입화물도 1일이내로 소요되고 있지만

이 역시도 앞으로 좀더 단축시키되 확실한 검역 및 관세행정은 기본이란다.

마지막으로 세관장님이 당부한 이야기는 다름아닌 '인터넷이야기'였다. 인터넷에 보면 세관에

걸리지 않고 고가의 의류나 상품들을 들고 오는 법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와 팁들이 있지만

그런 거 전부 엉터리니까 절대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짐들은 전부 엑스레이

스캔을 거치며 몇중의 검색과 비공식적인 검사를 통해 여행자의 정보를 분석하고 그 소지품을

체크하게 되므로, 괜히 박스버리고 택떼고 영수증버리고 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굳이 스스로 시험에 들게 하려거나 인천공항세관을 시험해보려는 게 아니라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법의 테두리 내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소지하는 게 좋겠다. 면세범위는 미화400불

이내, 구매범위는 미화 3000불 이내라고 하니까 참고하면 좋을 듯.

인천공항세관, 다리부터 눈에 띄는 소녀시대를 홍보대사로 삼은 건 정말 잘한 일이지 싶다.

여태까지도 그러했듯 참 열심히 일하고 계시구나 싶고, 앞으로도 더욱 할 일이 많으실테니

그런 이쁘고 튼튼한 다리, 건각(建脚)으로 건승하시길 바란다.









 

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개항 이래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6년 연속(2005-2010) 1위를 달성했고,

지금까지 누적 여객이 2억명을 넘어선 명실상부한 국제 허브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공항이다.

국제여객운송은 세계 11위, 국제화물처리는 세계 2위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하니 평소엔 아무

생각없이 해외로 떠나고 돌아오던 공항이 새삼 다시 돌아보이는 순간이다.


그렇게 세계로 들고 나는 관문에 있는 것이 바로 인천공항세관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라는 인천공항세관, 휴대품을 통관하면서도 참 신경써야 할 게 많겠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열심히 해도 잘 티도 안 나고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확연히 두드러지는, 그런 일인 거다.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출입국할 때 자신의 짐만 찾아서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닌 거다. 그 짐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안전한 건지, 혹시 건강을

해치거나 환각제류의 불법적인 요소가 들어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자칫 위험한 폭발물이나

도검류의 물품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혹은 반출입이 제한된 일정금액 이상의 외환이 들어있진

않은지. 굉장히 많은 것들을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각자의 일정에 맞춰 빠르고도 편안한

와중에 그런 것들을 체크해야 한다니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거다.


인천공항세관은 동북아 물류중심인 인천공항에서 연간 230만톤의 수출입화물을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뉴스에도 났지만 그와중에 걸리는 비아그라 등의 불법 의약품 120만정을 일일이

세기도 하고,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시스템을 통해 365일 언제라도 문제가 되는 부분을 걸러내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신속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나.


그 와중에 해외여행자나 항공화물을 이용한 반사회적인 밀수, 또는 마약류의 밀반출을

잡아내고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미처 몰랐는데, 국내 마약 유통등의 마약범죄

대부분, 그러니까 약 7,80%를 인천세관이 잡아내고 있다니 정말 그 단속능력이 탁월하다.


당장 눈앞에서 그런 단속 현장이 펼쳐진 걸 보는 것도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가방에 저렇게 멜로디가 커다랗게 울려펴지는 노랑색 자물쇠가 채워진 사람들은 공항을

나서기 전에 저렇게 한쪽 구석에 마련된 정밀 검색대에 가서 내용물을 샅샅이 조사받게 되는

거다. 그렇게 노란 자물쇠가 채워진 건 사전에 씨씨티비나 여러 경로를 통해 불법, 탈법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된 짐들에 대해서 보다 철저한 검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미 공항에 들고나는 짐에 대해서는 100% 엑스레이 검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무작위의

추가적인 검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 와중에 한번 제대로 알아둠직한 정보.

ㅇ 반출임금지 물품

 - 국헌, 공안, 풍속을 해치는 서적, 비디오테이프, 씨디 등

 - 정부기밀을 누설하거나 첩보활동에 사용되는 물품

 - 화폐, 채권 기타 유가증권의 위조품, 변조품, 또는 모조품


ㅇ 신고대상 물품

 - 면세범위 초과 물품/판매할 물품과 회사에서 사용할 물품

 - 총포, 도검류, 석궁 등 무기류, 실탄 및 화약류, 유독성 또는 방사성 물질

 - 필로폰, 헤로인, 코카인 등 마약류 및 오남용의약품

 - 미화 1만불을 초과하는 외화, 원화 또는 여행자 수표

 -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및 그 제품(상아, 웅담, 사향 등)

 - 동물, 식물, 과일, 채소류 등 농림축산물

 - 위조상표 부착 물품(가짜 상품)



이 분의 짐가방에서 나온 건 사향성분이 들어있는 우황청심환이었다. 신고대상인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및 그 제품'에 해당되어 해당물품이 끄집어내어지고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절차에 따라 법적 조치가 취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순순히 조사에 응하고 적발된 내용에 대해서 법적인 조치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부정하거나 거세게 저항하고 본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세관의 검사에는 소극적으로 응하거나 뭔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대하기 마련이라, 이렇게

추가적인 엑스레이 검사를 받도록 하거나 가방을 열어 보일 것을 요구하는 경우 고함을 지르고

저항하며 휴대품 검사직원과 말싸움,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그 와중에 직원분으로부터 들었던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자면,

세금을 내라며 가방을 계속 뒤지고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피우던 사람과의

곤혹스런 상황이 지속되던 중 어찌어찌 확인을 하고 조치를 하였으나, 이후 세관직원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라거나 절대 가만 안둔다며 윗사람의 이름을 대라고 하는 등 그야말로

딱 한국적인 상황에 처했던 거다.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상황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냥, 평소에 우리가 경찰이나 공권력의 역할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듯이 인천공항세관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법에 저촉되거나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전혀

우리의 행동이나 짐가방을 구속할 일이 없을 테니까, 마치 공기처럼 평소에는 그 중요성이나

역할을 전혀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분명히 알아두는 게 필요하겠다 싶다.


ㅇ 여행자 휴대품 면세범위

 - US$ 400

 - 주류 1병(1리터 이하, US$ 400 이하)

 - 담배 한보루(200개피)

 - 향수 60ml


ㅇ 출국시 신고대상 물품

 - US$ 10,000 초과 외화, 원화 등 지급수단

 - 고급시계, 카메라, 귀금속, 보석, 모피, A급 골프채 등

 - 수출신고 수리된 물품




생각보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빈곤하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전부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철학 위에서 세워진 시스템을 상상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주류 언론, 거물급 정치인들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되풀이하며 선전선동을 일삼는 상황에선.


'This is not America!'라는 외침에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니컬한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예측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인종차별, 보이지 않는 계급 WASP(white-anglosaxon-protestantist), 총기, 마약, 시장주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속성까지. 미국에 대한 빈정거림과 비난은 하늘을 찌르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노출하고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솔직히 까놓고, 미국의 인종차별이 심하다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미국의

정치판과 대통령이 대놓고 전세계의 놀림감이 되지만 한국의 그것들은 어떤가. 그게 미국의 저력이다.


마이클 무어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관심도 없던 사람들에게 딱딱한 사회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현학적이거나, 반대로 감정적이지도 않다. 눈높이를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올려가는,

능란한 요리사가 부식재료를 다루듯, 그는 냉소적이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멘트들로 포커스를 한 점에 모은다.

미국 의료보험업계 로비스트와 결탁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


시스템이 포인트다. 그는 응급실에서 돈 얘기부터 하는 의사의 야박함을 탓하지도, 티비에 나와 캐나다의

의료보장제도를 욕하는 정치인들의 뻔뻔함을 비난하지도, '의료 손실'이라는 손익의 개념으로 접근해 최소한의

보험을 제공하려는 보험업계의 비인간성을 타박하지도 않는다. 물론 야유와 조소는 아낌없이 던져지지만,

문제는 사람들을 그렇게 상상하고 움직이도록 틀지워주는 시스템이란 걸 그가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거다.


시스템이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그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심지어 쿠바의 사례까지

풍부하게 제시한다. 그 모든 장면에서, 의사와 마주해선 'How much..?'부터 조바심치며 묻는 미국인들은

그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시선 앞에서 완전히 당황하고 만다. 미국에서 120불짜리 약이 그들의 적국

쿠바에서는 겨우 5센트라니, 미국의 시스템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 앞에서는 완전한 배신감에 망연해지고 말았던 그들.


나라마다 시스템의 각론은 약간씩 다르지만, 'This is not America. System pays it'. 대답은 한결같고

그 대답이 깔고 있는 마인드도 한결같다. 돈이 아니라 환자가 우선이라는 거다. 누군가 자신의 지갑이 아닌

건강에 신경을 써주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봐준다는 것. 적절한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이며, 더욱 부강해지자는 주문을 쉼없이 외우는 정치인들의 목적은 더욱 국민들을 잘 돌보기 위함이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상식과 의지가 모여 시스템을 만든다. 상식의 힘은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 데에 있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는, 상식을 조작하고 의지를 분쇄한다. 미국은 최소한 의료보장제도에 있어서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최근

오바마가 다시 전국민을 수혜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두고 볼 일이고..


미국의 그들이 '시스템'과 '상식'의 가면을 빌어 하는 이야기는 뻔하다. 사회화의 비효율성, 비용 문제,

세금폭탄..사회화(socialization)와 몰락한 현실 사회주의/전체주의 국가 사이에 은근슬쩍 이퀄(=) 표시를

꼽아두고는 사회화나 국가적 차원의 복지 시스템을 절대악으로 몰아간다. 한국과 같다.


한국의 그들은 미국의 의료제도를 따라 영리 의료법인 설립을 독려하고, 의료서비스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거다.

그들이 우러러보는 '선진시스템',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 국가가 운영하던 인천공항도, 한전이니 철도니 도로니

따위의 것들처럼 민영화한다는 이야기가 스물스물 나오는 판이지만, 한박자씩 뒤늦게 따르는 그들의 지독한

박자감각은 어쩔꺼나. 이미 시행됐고 문제가 잔뜩 불거져서 고칠려는 판에, 우리는 그 '정통 오리지널' 버전을

수입하겠다니.


아무리 그래도, '상식과 시스템'을 둘러싼 전투에서 한국의 그들은 줄곧 승리해 왔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는, 상식을 조작하고 의지를 분쇄한다. IMF 이후 급격히 무너진 공공 영역, 공공 부문에 들이대진 효율과

수익성의 잣대로 민영화는 곧 지고선이 되었고. 하나하나 무너져내려 이젠 정말 돈 있는 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유료로 지키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나온대도 딱히 이상해지진 않을 만큼 '상식'과 '시스템'이란 게 후퇴하고

있는 거 같다.


식코에 등장한 9/11 자원봉사자들, 한때 미국의 영웅으로 떠받들리다가 건축 폐자재 따위로 인한 신체적

손상이나 심리적 스트레스로 정신적 손상을 입은 채 내버려진 그들을 보고 중첩되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가해 선박의 이름으로 보통 기억되곤 하는 해상 기름유출 사고지만, 마치 누군가 본능 깊숙이 인셉션한 것처럼

'서해기름유출사태'로만 기억날 뿐인, 2007년의 "삼성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


아이들의 고사리손까지 끌고 가서 국민들은 돌덩이의 기름띠를 닦아냈지만, 사실 그 원유는 치명적인 독성을

갖고 있던 데다가 변변한 안전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채였던 거다. 거기서 국가나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그 '자원봉사'를 영웅화하고 애국마케팅으로 소모해버릴 게 아니라,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상식'을 지켜야 했던 건 아닐까. 이놈의 나라 국민들은 너무 순해빠진 건 아닐까.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 그리고 쿠웨이트의 삼개국.

내 머릿속의 세계지도를 펼쳐놓으라면 아마도..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내가 가본 프랑스,

터키, 이집트, 태국, 일본..그런 나라들에 밀려 구석탱이에 조그맣게 눌려있거나 혹은 아예 존재치 않았었을

나라들이다.


두 달여 정신없이 이런저런 일들과 함께 동시에 준비하던 출장이라, 삼개국 관련한 국가 자료를 만들고 어쩌고

했지만 막상 도착할 때까지도 이 나라들이 대체 어떤 나라들일지, 아무런 감이 없었다. 그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일하시러 떠나셨던, 멀고먼 세계의 끝에나 있을 나라랄까, 난 한번도 밟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런 나라.


출장 떠나기 직전, 정신사납게 어질러져 있는 사무실 내 책상. 들고 가야 할 온갖 자료들, 서류 뭉치들과 남겨놓은

일들, 계산기나 잡다한 문구류들. 눈앞의 일들에 급급해 막상 떠나는 곳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출발했단

걸 깨달았던 것은, 리야드행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 두바이를 경유했던 그 쯔음이었을 게다.


이번 출장을 위해 산 29인치짜리 초대형 가방에 들어간 건 아마도 9할쯤이 가서 일하기 위한 준비였고, 내 짐은

그 나머지 1할 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저 컵라면박스는 가서 선물로 주고 오거나, 출장길을 함께 하는 분들을 위해

챙겨가는 비상식량. 휴대용 프린터은 억지로 우겨넣고, 카메라가방은 메고 가기로 했다.

밤 11시 55분 비행기로 우선 두바이까지 10시간 15분여를 날아간 후, 6시간 정도 트랜짓 시간을 거쳐 다시 1시간

40여분을 날아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하는 게 우선의 일정이었다. 밤 9시가 넘어 도착한 인천공항은 흔히 보던

낮의 풍경과는 너무 많이 달랐다. 출국심사대를 거치고 바로 나타난 면세품 찾는 곳에서는 하루일을 정리중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하나 없었고, 백화점 면세점에서 미리 구매한 물건들을 쌓아두었을 뒷켠의 캐비넷들은 온통 텅텅

비어있었고, 그리고 짐을 옮기는 플라스틱 상자와 가방들을 모두 꺼내놓고 셔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서서 면세품을 챙겨가던 그곳의 낯선 풍경.

평소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던 명품샵들과 화장품, 주류, 담배 등을 빼곡히 팔던 면세점들은 온통 닫았다. 한바퀴

둘러보며 보딩 시간을 기다리려던 계획이 틀어져서 다소 심드렁하던 차에 문득 눈에 띈 24시간 심야면세점 표지판.

뭐 볼 게 있을까 했지만, 이건 모...김, 김치, 인삼, 홍삼...전부 먹을거리 뿐이다. 밤비행기를 타면 면세점도 못

돌아보는구나 하고 실망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참...밤비행기를 타기 전엔 시간 보내기도 쉽지 않구나, 했다.

그리고 10시간동안 영화도 보고 잠도 자고 하다가 도착한 두바이. 좌석 앞에 붙은 모니터안의 조그마한 비행기는

태양에 조금씩 노출되어 가는 지구면을 피해서 기를 쓰고 어둠 속으로 날고 있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수도 아부다비보다 더 잘 알려진 아랍에미레이트 연방의 현대적 상업 도시, 두바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새벽 5시 10분. 'Transfer' 사인을 따라 들어온 두바이 공항의 실내는 왕궁을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별이 총총한, 시와 사막에서 봤었던 듯 한 밤하늘이 그려진 것도 그랬고.

아직 해가 뜨기 전, 한밤중이랄 시간인데도 공항이 무척이나 번잡스러웠다. 빼곡한 좌석마다 사람들이 그득히

앉아 있었고, 미처 자리를 못잡은 듯한 사람들은 아무데나 철푸덕 앉아서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로

어딘가를 향해 걷기도 한다. 인천공항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영 다르다. 왠지 10시간여의 비행을 한 노곤한

몸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꽉 차있고 번잡스런 두바이 공항의 분위기에 젖어서인지 잠이 깨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짐이 놓인 카트를 두고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짐에 대한 안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잠이 올리 만무한 것. 그래서 저렇게, 자신의 몸으로 카트를 고정시켜 두거나 아예 껴안고 자는 사람들.

사막무늬를 형상화한 것이겠지만, 누런 색 바탕에 갈색 물결이 반복되는 카펫 위에는 저런 야자수가 몇그루씩

군집해 있었다. 진짜일까 궁금해져서 나중에 만져봤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가짜여서 살짝 실망.

하긴 인천공항만큼 자연채광이 잘 되어 있지는 않아서 진짜 나무가 자라기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지 싶다.

지하의 면세점은 불야성을 이룬 채 사람들이 가득하다. 인천공항이, 그리고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가 되겠다고

했던 이야기의 온갖 변주가 가득한 한국이다. 금융의 허브, 물류의 허브...그렇지만 얼마전 신문에서 한 교수였던가

한마디 따꼼한 소리를 했던 게 생각난다. 허브라느니, 대문이라느니 식의 이미지 메이킹이나 지향은 피해야 한다,

직접 갈 수 있는 조건이 점차 갖춰질수록 굳이 대문을 지나고 허브를 거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게 내가 이해한

그의 포인트. 어쨌든 우리가 몇 년째 공염불로 외고만 있는 그 '허브'라는 거, 두바이 공항은 이미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바글바글, 유럽 가는 길에 경유하고, 아프리카 가는 길에 경유하고, 아시아

가는 길에 경유하고. 불꺼진 공연장을 연상케 했던 인천공항과는 영 딴판이다. 물론, 인천공항이 이렇게 되기에는

여러 현실적 제약도 있을 것이고, 두바이랑 인천은 입지조건이나 주변 국가수라거나..여러 차이도 있을 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천이 왜 두바이가 못 되는가..하는 장탄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허브'라느니 '대문'이라느니

떠드는 선전선동의 태생적 한계..그리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을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굳이

그런 식의 되도않는 이미지를 갖다붙이려 해봐야 어울리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단 말이다.

천장 가까이에서 기둥을 감싸고 있는 저 금빛 구체, 그리고 오오라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올라가는 금빛 실오라기.

창밖으로는 조금씩 동이 터오는 듯, 물빛에 비행기 동체가 온통 잠겨있다.

마치 피난민들 같다. 이들은 이런 시간에 익숙한 듯 보인다. 이미 챙겨왔을 모포와 깔개를 한껏 활용해 온몸을

감싸고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 숙면하는 것. 천에 둘둘 감긴 미이라를 연상케 할 만큼 꽁꽁 싸매고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자 하나만을 활용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의자를 몇개씩 차지한 채 누워버린 염치없는 사람도

보인다. 우리나라 시골 버스정류장 대합실 분위기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두바이 공항은 이들에게 그 정도로

손쉽고 가까운 정류장인지 모른다.

문득, 내가 앉아서 쉬고 있던 곳 바로 옆의 비상구 문을 억지로 열려던 한 아저씨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뭘 어떻게

만졌는지 미친 듯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 그 아저씨는 총총히 자리를 떠버렸고, 나와 내 일행은 모처럼 얻은 자릴

포기하고 기약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싫어 버티기로 했다. 금방 누군가 와서 조치를 취해주고 저 신경 거슬리는

소리를 가라앉혀주겠지, 하고.


30분, 공항에서 근무하는 듯한 제복입은 사람이 왔다. 문을 덜컹거려 보다가 버튼 몇개 눌러보다가 가버린다.

40분, 어이가 없어서 직원을 불러왔다. 문을 덜컹이고 두들겨보고는, 자기는 어쩔 수가 없고 경비원을 불러야

한다며 가버렸다. 45분, 직원들이 귀를 막고 지나간다. 아무도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는 듯, 손에 든 무전기는

장식품인양 하다. 50분, 경비원을 불러왔지만, 자신은 이 구역담당자가 아니랜다. 지칠 줄 모르고 울려대는 사이렌.

일행 중 한명은 휴지로 귀를 막았고, 다른 한명은 비행기에서 쓰던 귀마개를 틀어박았다.

사이렌이 터진지 1시간 반이 지났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옮길까 몇번 돌아봤으나 좀처럼 빈자리가 없다. 아무도

와서 소리를 꺼줄 생각을 안 했고, 두바이 공항 한구석에서부터 요란하게 터진 소리는 이미 주변 사람들의 잠을

완전히 깨워버린지 오래였다. 2시간쯤..우린 결국 이 사이렌이 다시 꺼지는 걸 못 보고 리야드행 비행기 티켓팅을

위해 자리를 떴다. 참 지독한 두바이 공항의 직원들.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책임이 되는 거고, 그걸 싫어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단 공항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중동의 문화가 그렇다고 했다.

티켓팅을 마친 후 살짝 들렀던 두바이 공항의 면세점, 온통 초콜렛, 담배, 그리고 치약같은 자잘한 소비재였다.

중동에서 일하는 인도, 파키스탄, 혹은 기타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장을 봐갖고 간다고 한다. 대부분

형편이 넉넉치 않은 상황인지라 면세점이 일종의 이마트같은 대형마트 느낌으로 운영되는 건 당연할 거다.

그나저나, 중동에도 가을이면 단풍이 들까. 저 인테리어 디자인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백화점같은 데서

볼법한 빨간 단풍 그림.

두바이 공항의 스타벅스. 아랍어로 씌여진 메뉴판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국과는 살짝 다른 휘핑크림의 맛이라거나

메뉴가 새롭기도 했다. 진열장에 조각케잌을 진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솔찮이 오래 걸린다. 보고 있자니, 케잌

몇개 밀어넣고는 옆사람과 잡담하고, 잠시 신문도 보고, 손님도 맞고. 그리고는 또 몇개 밀어넣고는 딴짓하고.

계속 보면 왠지 깝깝한 기분이 복받칠 거 같아서 그냥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로 했다.

기념품으로 이런 걸 사와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특이하고 이뿐 텀블러들. 아랍어로 뭔가가 씌어져 있기도 하고,

문양들 역시 아랍권 문화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스타벅스는 중동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일까. 가격대를 보면

한국보다 살짝 싸단 느낌이다. 역시, 우리나라 커피값은 세계 최고라는..

아랍에미레이트 항공(EK)을 타면 하나씩 좌석에 비치되어 있는 스티커. 좌석에 자신의 필요대로 알아서 붙이라는

세 가지 종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건들지 마셈, 밥줄때 깨우셈, 그리고 면세품 팔 때 깨우셈..이라는 세가지.

그림도 귀엽지만 저 꼬불꼬불한 아랍어는 왠지 모를 매력이 있다. 예전에 이집트 여행할 때 아랍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걸 직접 보고 문화적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온통 손날부분을 시꺼멓게 만들어가며, 글자를

뭉개가며 연필로 꼭꼭 눌러쓰던 기차역 매표원.

그 스티커의 뒷면에는 이렇게 자세한 사용설명서도 있었다.

난잡하다. 1. 행동이 막되고 문란하다.
              2.사물의 배치나 사람의 차림새 따위가 어수선하고 너저분하다.

난삽하다. 글이나 말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어렵고 까다롭다.


뭔가 일상이 난잡하고, 또 난삽스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보통 책을 한권씩 읽어나가는 편인데, 다빈치 코드와 로드를 비롯한 네다섯 권의 책들을 사무실에 한권, 가방에

한권, 반디앤루니스에 한권, 내 방에 두권 이렇게 벌려놓고 닥치는대로 읽고 있다. 그다지 내게 잘 맞는 독서법은

아니라는 재확인..앉은 자리에서 쫙 읽고 해치워야 제대로 몰입이 되지.


어제 점심엔 호주대사관의 Evanor, Stephanie랑 두시간동안 54층 마르코폴로서 행사 뒤풀이를 겸해 와인한잔에

코스요리를 먹었고, WTC Seoul의 공식실무자로서 WTC LA에서 온 손님과 한시간동안 인터뷰를 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 라는 부채감..그리고 대체 언제..라는 꿉꿉함.


아침에 시사인을 보면서 출근하다가, 종종 글을 올리는 김현진이란 에세이스트가 기륭전자 노동자 두분의 단식

농성에 동조단식을 하며 쓴 글을 보았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청와대로 쳐들어가 제대로 된 사과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사과를 던지려고 했다던, 사과한테 사과하라며 강짜를 부리던 그녀는 대체로 깊이보단

재기발랄함에 기댄 감성적인 글을 쓰는 편이다. 별다른 이슈가 없거나, 스스로 이슈를 포착하지 못했을 때에는

다소 시니컬한, 큰 임팩트 없는 그저그런 글들이 이어지던 터였다. 그런데 최근 그녀가 쓰는 글들의 주제와

내용이 점차 '진화'하더니, 급기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적 싸움터로 통하는 그곳에서 울고 굶고..

그러고 있다고 한다. 왠지 '건국절' 행사에 동원되어 버린 걸 포함해 인천공항 민영화 주체로 가시화되는 맥퀘리

그룹회장을 만찬 헤드테이블로 챙겨넣고 있는 사람과 비교된다. 신경쓰기 싫고 화내기 싫어서 그냥 등돌리고

서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문득 다이어리를 보면, 일주일이, 한달이, 텅빈 채 넘어가고 있다. 하다못해 날짜조차 안 적힌 채 하얗게 비어있는

그 시간들이 참..내가 뭐하는 건가 싶은 감상에 지배당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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