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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고전. 이토록 강력한 영화라니. 충격과 반전의 후반부는 말그대로 입을 떡 벌리게 만들었고, 인간과 삶에 대한 김기덕 류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폭발이 아니라 세련되고 담백한 표현만으로도 그정도 성취에 이를 수 있음을 웅변한다.

2차대전후 피폐해진 이탈리아,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한 가족이 바라보는 건 아버지뿐이지만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직업소개소에서 용케 소개받은 일자리는 자전거가 꼭 있어야 일할 수 있다는데 정작 전당포에 팔아먹은지 오래. 침대보와 베갯잇을 다시 전당포에 잡히고 자전거를 꺼내오는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에게, 아니 그의 가족에게 자전거는 당장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수단인 셈이다. 그런 자전거를 도둑맞고서 그가 느꼈을 암담함과 좌절감은 얼마나 깊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은 러닝타임 내내 계속되는 자전거와 자전거 도둑에 대한 추적이 줄곧 무위로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짜증과 답답함으로 변질될 지경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경찰, 나몰라라 하는 주변인들, 증거내놓으라며 뻗대는 관련자들.

그러게 왜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그러냐. 같이 돌아다니는 꼬맹이 아들은 무슨 잘못인데 왜 화풀이하고 그러냐. 겨우 도둑에게까지 가닿았다 싶은데 무기력하게 빈손으로 되돌아설 때쯤에는 애꿎은 화살이 급기야 피해자인 남자에게 쏠리고 말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전개. 사실 충격이라기엔 사람 심리가 그런 거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날벼락같은 피해를 입었고, 누구도 내게 도움을 주지 않고 관심도 없다면, 어쩌겠는가. 도둑맞은 이가 도둑이 될 수 밖에. 사진이 바로 그 갈등의 순간.

그리고 한번 더 인상적인 반전이 등장한다. 순식간에 잡혀버린 그는 아이 앞에서 따귀를 맞고 다구리를 당하지만, 잡힌 도둑 앞에서, 다시금 안전하게 수중에 들어온 자전거 앞에서, 이번 피해자는 관대함을 과시한다. 경찰서로 끌고 가는 대신 그냥 아이와 함께 보내주겠다며 풀어주는 것.

그의 흔들리는 눈빛과 망연자실한 표정이라니. 사방으로 휘적대는 눈빛은 어딘가 목을 매달 곳, 죽어버릴 곳을 찾는 것만 같다. 칼날 위에 선 듯 위태로운 파국을 맞을 것만 같은 긴장감이 팽팽한 순간, 아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비척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 아,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벌써 십여년째-아마도 올해가 십년째라던가-이어지고 있는 세계불꽃축제.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이탈리아,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의 순서로 진행된 쉼없는 불꽃들은 아홉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그야말로 아낌없는 불꽃들의 향연.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십분을 책임진 이탈리아의 불꽃이 가장 이뻤던 듯.

 

늘 그렇듯 삼각대는 꼭 필요할 때면 들고 가지 않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발동하여, 무적의 손각대를 출동시켰으나..

 

불꽃이 워낙 느닷없이 피어올라가 뻥뻥 터지는 바람에 타이밍이고 뭐고 되는 대로 눌러버렸단 게 맞겠다.

 

촬영장소는 한강대교 중간에 조그맣게 걸쳐있는 노들섬, 미리 두시간쯤 전부터 맥주와 저녁거리를 사들고 자리를 잡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정상적인 자리는 만석이었다는 거. 덕분에 풀밭으로 기어올라가 없는 자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폭죽 소리, 그리고 하늘 가득 휘황하게 번쩍거리던 불꽃의 대향연. 정말이지 모처럼,

 

터지는 걸 보고 나서도 씁쓸하거나 허무하지 않은 불꽃들을 잔뜩 볼 수 있는 자리였지 싶다.

 

 

 

 

마루 소파에 딩굴딩굴, 하면서 티비도 보고 술도 마시고.

역시 와인은 코와 입 외에도 눈으로 보며 즐기는 술이란 게 맞지 싶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붉은 빛.

그럴 때면 무슨 고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뭘 그리 아둥바둥 맘쓰며 사나 싶기도 하고.

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 '아랄디카 브라께토 다뀌'. 빛깔은 로제 와인처럼 산뜻한 핑크빛에 가깝고,

탄산가스가 계속 뿜어올라서 와인잔에 달라붙었다. 제법 달달하지만 시원상큼한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느낌. 원래 스파클링 와인은 저런 넓은 잔이 아니라 뾰족하고 긴 잔에 마셔야

기포가 송송 솟아오르는 걸 볼 수도 있고 맛도 오래 즐길 수도 있다지만, 뭐 아쉬운 대로.


그러고 보면 이런 식의 스파클링 와인을 통틀어 대충 '샴페인'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랄까. 샴페인<스파클링와인,

이런 포함관계인 셈인데, 어쨌거나 샴페인이란 호칭도 좀 웃긴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니
 
Champagne란 이름은 당연히 프랑스식으로, '샹파뉴'라고 읽혀야 할 텐데 영어식으로 '샴페인'이라

굳어져 버린 거다. 왜 그렇게 된 거지. 20세기초까지도 세계 외교, 파티의 중심이었던 파리일 텐데.


늘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다 보면 샴페인, 샹파뉴에 생각이 미치고 늘 '샴페인'의 패권 장악과정이

궁금해지는 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시간만 흐르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기념일,

그다지 요란스레 축하할 날은 아닌 거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이벤트들, 입학식, 졸업식, 생일

등등은 그저 as time goes by, 시간의 힘에 맡겨진 것들.

그래도, 하루동안 축하해준 이들이 참 많아서 좋았다. 뭐랄까, 어제 하루동안 내게 생일축하한다

말해준 이들의 말풍선을 톡톡 떼어서 돌돌 뭉치면, 원기옥 하나쯤은 쉽게 생겨날 듯 했달까.

그리고 어제 저녁에 갔던 레스토랑, 청담동의 제법 이름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데 분위기가

오밀조밀하니 괜찮았다. 소화전에 이탈리아 국기처럼 초록색, 흰색, 빨간색을 칠해놓은 게 보인다.

바닥 모퉁이에는 '벽난로' 모양으로 쉼없이 활활 타오르는 조명도 있었고, 벽면에는 다소 빼곡한

느낌으로 책들과 술병들과 장식품들이 놓여있었다. 갠적으로는 저렇게 꾸미는 게 이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저렇게 책들이 그저 장식품으로 소모되는 게 조금 걸리긴 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고

내용에는 관심도 없으며 그저 공간을 채울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책들이라니.

게다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런 곳의 액세서리용 책들은 전부 영어나 외국어 책들.

아마 헌책방쯤에서 무게를 달아 1키로에 얼마, 이렇게 사온 책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튼지간, 생일날까지 저런 소소한 것들에 신경쓰기 보다는, 뭔가 좀더 좋고 이쁘고 맛난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 예컨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보드랍고 풍성한 붉은 꽃잎 같은 거.

우선 빵이 나왔고, 십자 형태로 그어진 선을 따라 쪼개 먹으며 우선 감탄. 빵 괜찮네.

전채로 생굴이 나왔다. 역시 겨울엔 굴, 제철음식이 최고인 듯. 씨알굵고 신선한 굴 위에 소스를

약간 얹어서 관자를 칼로 긁어내곤 입에 대고 후르륵. 힘이 불끈불끈..?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거지만, 사실 보통 익숙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의 흥건한 크림소스는

미국에 들어와 변형된 버전이라고 했었다. 여긴 이탈리아 레스토랑, 변형되기 이전의 까르보나라가

어떤 거였는지 보여주는 오리지널 버전. 크림소스가 아니라 계란을 풀어 만든 소스에 수제 베이컨이

두툼하게 들어가 있다. 그리고 얇게 채를 친 치즈가 후두둑후두둑 뿌려져있고.

할라피뇨나 오이 피클이 아니라, 알타리무 피클이 나왔던 것도 신기했던 점 중 하나. 근데

깔끔하고 쌈빡하니 잘 어울렸다는.

리조또 위에 글뤼와인 소스를 곁들인 삼겹살찜. 호텔 음식들처럼 이쁘게 치장되지는 않았지만

맛은 훨씬 낫다. 딱히 지방색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둥글둥글한 맛의 호텔음식들보다 이렇게

이탈리아 본연의 스타일과 맛을 고수하는 타협하지 않는 음식점들이 훨씬 좋다는.

그렇게 크지 않은 레스토랑에 알콩달콩 이쁘장한 소품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지만,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은 것도 꽤나 맘에 들었다. 테이블이 너무 붙어 있는 곳에서 밥을 먹다 보면

옆테이블 사람에게 뭔가 대꾸를 해주거나 그들 대화에 껴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아기자기하고 꽉 찬 느낌이면서도 테이블 간격이 지켜진다는 건 쉽지 않을 텐데.

투토베네. '투토'란 all의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 '베네'란 good의 의미정도라던가. 결국

모든 게 좋다, 란 의미를 가진 이름의 레스토랑.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었고 음식도 넘

맘에 들어서 앞으로 파스타가 생각날 때 종종 가볼 거 같다.

찾기가 다소 쉽지 않은데, '투토베네'란 뜻이 중국어로, 혹은 한자어로 치자면 '만사쾌조'란 걸

알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신기하게도 간판이 저거 하나 달랑 내걸려있는 조그마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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