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픽사애니 '업'의 인트로를 좀더 디테일하게 풀어놓은 느낌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이들이 만나 사랑하고 살아가고 또 이별한다. 이렇게 삶이 피고 지는구나, 라는 짧은 탄식 속에 진하게 졸여진 감정을 표현하기엔 단어가 모자란다. 슬프다기엔 아름답고, 아름답다기엔 애잔하다.

아름답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다. 가진 것도 없고 딱히 야심이나 욕망을 품지도 않았다. 절름발이 무능력녀와 생선잡이 괴팍남의 첫만남은 그래서 좀더 잿빛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단지 어디로던 탈출하고 싶었던 여자의 니즈와 가정부가 필요했던 남자의 니즈가 가까스로 합을 이루었던 위태롭고 앙상한 조합.

말 잘 들으라며 따귀를 맞던 여자가 어느 순간 남자가 끄는 손수레 뒤를 절룩거리며 따라다니고, 또 어느 순간 손수레 위에 앉아 같은 풍경을 보기도 하고 서로 얼굴을 맞대기도 한다. 여자는 이제 남자의 주먹구구식 밥벌이에도 개입해 훨씬 정연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고 있다. 마치 그의 돼지우리같던 오두막이 변신한 것처럼.

그녀의 그림이 없었어도 그와 그녀의 삶은 그만큼 아름다웠을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바라보는 창문 프레임 바깥 풍경과 같은 것을 그가 보지 못한다 해도, 그래서 '고작' 난 당신-내 아내-만 본다며 서툰 경상도 남자같은 고백으로 평생을 버텨냈다 해도,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속엔 이미 그가 가득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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