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돌아왔다 #넷플릭스 #히틀러 #나의독재자 #영화

2014년, 그가 삶을 마감했던 지하 벙커 바로 그 자리에서 히틀러가 되살아났다. 우선 보여줄 거리는 60여년의 시간차로 인한 어벙한 모습들, 그로 인한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기. 기울어가는 전쟁 한복판에 있던 그가 평화로운 베를린 한복판에서 거리의 공연을 펼치는 이들과 자리다툼하는 모습이라거나, 군복을 몽땅 벗어 세탁소에 맡기는 모습 같은 것들.

가볍게 그의 시대착오적인 연설을 끄집어내어 실소를 머금게 하는 것도 좋겠다.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그의 말투는 한소절만 들어도 웃음이 터지는 개그물일 뿐이니까. 난민, 청년 실업, 노인 빈곤, 국가 채무, 멍청한 텔레비전...어라. 생방송 프로그램에 개그맨으로 발탁된 그의 연설솜씨는 전혀 우습지 않다. 그의 주제 역시 전혀 터무니없거나 미친소리 같지 않다.

일약 사회문제로 떠오른 티비 히틀러. '히틀러의 지적이 독일 사회문제의 정곡을 찔렀다'거나 '정치가 뭔지를 아는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따위 폭발적인 찬사가 이어진다. 대중은 그를 좋아하고, 언론은 그를 잘 포장하여 대중 앞에 대령하며, 자신이 진짜 히틀러임을 셀수없이 선언한 그에게 재차 이름을 묻는 사람은 사라졌다.

영화는 집요하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마치 1933년 드라마틱한 그의 집권을 전후한 시대상과 현재의 상황을 정면으로 충돌시킬 생각인 거 같다. 그것도 있는 힘껏. 히틀러의 뼈대가 되었던 우생학과 아리안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가 얼마나 농담같이 시작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상식이 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게 히틀러라는 악인의 등장이라는 돌발변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이름의 누구라도 대행할 수 있었을 인류의 한 국면이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건 꼭 '악의 평범성'으로 풀 이야기만은 아니다. 히틀러를 낳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무르익으면, 그 화약고에 불붙이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독일 걱정에 밤잠을 못이룹니다"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정작 독일을 불구덩이로 집어넣었었고 또다시 집어넣을지 모르는 역사의 반복, 이건 두번 다 틀림없는 비극으로 귀결되고 말 거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이를 가진 어떤 나라에도 불길한 전조를 드리운다.

그렇게 소름돋게 만드는 영화의 마지막, 2014년의 히틀러는 이제 대중의 인기와 언론매체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채 슬슬 본색을 드러낸다. 잡종개를 총으로 쏴죽이고 유태인의 피를 혐오하며 유색인종은 육체노동이나 하라고 농담처럼 밑밥을 깔아둔 터였다. 난민을 위한 집단수용소에 대해선 전문가라며 자신감을 보인 터였다. 더이상 그는 어릿하고 후져보이지 않는다. 눈빛은 명민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카리스마는 백퍼센트 충전됐다. 이제 어디로 독일 국민들을 끌고 갈까.

설경구가 스스로를 김일성으로 착각한다는 설정의 '나의 독재자'를 초반에 살짝 떠올렸으나,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 대충 얼버무리거나 금기시되어버린 히틀러라는 이름이 갖는 미묘한 지점들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사람들을 당혹시키려고 작정한 작품이고,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그 목적을 초과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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