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어로 '파니'는 물, wat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레파니나 타다파니, 혹은 여기 히말파니까지의 지명에 '파니'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특히나 이곳 히말파니는 히말라야의 물, 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곳 히말파니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욱신거리는 무릎을 뜨거운 물에서 좀 쉬게 하고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롯지는 이제 우기가 끝나고 몰아닥칠 트레커들을 위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으로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하고는

 

내리막길로 걸어서 15분정도 걸린다는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은 없고, 앞서 가던 가이드가 물소들이 몸을 담근 저 늪을 두고 온천이라는 소리에 잠시

 

시껍했으나, 다행히도 저렇게 정비되지 않은 물구덩이를 두고 온천이라고 하진 않는 듯 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사정없는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더욱 아파올 무렵, 근 40분 가까이 걸었다 싶던 참에 비로소 강물 옆으로 나타난 온천 건물.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둥 박아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놓은 정도지만 저 정도만 되어도 기대 이상이다.

 

너도나도 재빨리 옷을 벗고 최소한의 복장만 갖춘 채-함께 내려가던 일행 중에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콸콸 쏟아지는 온천수로.

 

강물이 이렇게 거칠게 흐르는 산골짜기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으니 롯지에서 여기 온천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험했던 거다.

 

 

그 와중에 먼저 와서 실컷 즐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예수처럼 생긴 서양 아이 하나. 그러고 보니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벌렁 누워 가방에 꽂힌 우쿨렐레를 연습하던 그 녀석이다. 여성 앞에서도 거침없이 덜렁덜렁 지나가는,

 

그리고 여성 역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그 쿨함과 자연스러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옆에서는 두번째 탕을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 같은 대머리 할아버지랑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두 명이서

 

언제 다 지어질까 싶은 네모난 탕을 만들려는 듯. 물은 뜨겁진 않고 따뜻한 정도, 그치만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린다.

 

굳이 하나 더 짓지 않고 하나 갖고 복작복작하는 게 왠지 더 이곳의 분위기에는 어울릴 거 같은데.

 

점심으로 나온 볶음면. 다시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역시 30분이 넘었던 듯 하고, 올라오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조금 나아진 듯 했던 무릎도 다시 아팠지만, 그래도 한번 꼭 들러보길 강력히 추천하고픈 히말파니의 온천.

 

 

한결 개운해진 몸과 가벼워진 무릎으로 한참을 걸어 가던 참에, 이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거워 쉬엄쉬엄. 나오는 마을이나

 

롯지마다 한번씩은 앉아서 땀도 식히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했던 것 같다. 챙겨간 볼펜을 줘도 좀체 웃지 않던 요 꼬맹이.

 

색색의 빨래들이 얹힌 은빛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마당에 편히 자리잡고 앉아 옥수수를 말리는 아주머니의 다부진 머릿수건.

 

 

와중에 굉장히 이쁘게 꾸며졌다 싶던 어느 마을, 간드룩 지방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지천에 사루비아가 넘실넘실.

 

길은 거의 헷갈리거나 잘못 들 염려가 없는 한길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샛길도 나있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친절한 표지판 등장.

 

게다가, 어느 마을에서부터 졸졸 쫓아오더니 아예 앞장서서 인도해주는 길앞잡이 개까지 친절하다.

 

비록 중간에 물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겁먹고선 꼼짝도 못하는 순둥이에다가, 가파른 내리막 앞에선 주춤거리다가 절룩거리는

 

내 다리 사이로 진로방해를 하는 녀석이긴 헀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려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쉬어주는 센스쟁이.

 

그렇게 도착한 큐미. 간드룩 지방의 여러 마을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다음 마을인 시욜리 바자르Syauli Bazar에서부터는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나야풀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코스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7일동안 바퀴달린 거나 엔진같은 동력기관을 본 적이 없다. 왠지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큐미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갈까 아니면 시욜리 바자르까지 예정했던 대로 갈까 고민 시작.

 

꽃나무도 많고, 롯지 한쪽에서는 이렇게 재봉틀이 발랄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말끔한 마을이어서 꽤나 맘이 동했지만

 

그래도 온천빨이 아직 남아있으니 좀더 걸어두기로 했다.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저녁 먹고 자는 걸로 결정.

 

 

큐미에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려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당나귀떼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출현했던 듯한 수많은 당나귀들이 ctrl+c, ctrl+v로 찍어낸 느낌으로 불어나있었다.

 

그 와중에 앞엣놈 엉덩이 냄새를 맡는 놈도 있고, 괜히 대열을 벗어나 사람들에 흥미를 보이는 녀석도 있고.

 

그러고 보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게 하산길 초입이니 이틀째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걷고 있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아침 일곱시반쯤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점심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들을 빼더라도 대략 열시간 내외 걷는 것 같다.

 

 

 

 

여태 들렀던 롯지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어있던 곳이어서 눈여겨 보았더니, 자매만 셋인 집이었나보다. 나름 한껏 치장하고

 

포즈를 잡은 사진들을 벽면에 잔뜩 붙여두었는데, 히말라야의 녹색 풍경 속에서 문득 현란한 색감을 마주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제는 마차푸챠레 봉우리도 등지고 안나푸르나도 등지고, 정말 산에서 내려간다는 실감이 팡팡 나는 내리막길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곱시 반부터 출발해서 조금 걷지 않아 무릎이 절룩거리길래, 중간에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려던 참.

 

꼬맹이들 둘이서 끈을 잡고 앞뒤로 살살 흔들어대는 뭔가가 흥미를 잔뜩 돋궜다. 뭘까.

 

따뜻한 담요로 꽁꽁 싸매어진 그것은 바로 갓난아이가 담긴 포대기. 눈까지 푹 내리씌운 자줏빛 모자가 귀엽다.

 

저런 식의 한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요새 히말라야 트레킹을 오는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겠다.

 

이제 햇살도 다시 완연히 뜨거워졌고, 왠지 초록빛들도 훨씬 더 싱싱해진 느낌. 멀리 새하얀 봉우리가 꿈만 같다.

 

 

 

시누와 아랫마을부터는 물소도 보이고, 당나귀도 짐을 싣고 다니고. 시누와가 그 마지노선이라고 했었다.

 

내리막이라고 마냥 내리막길만 있는 건 아니다. 꼬맹이들도 애기를 업고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기도 하고.

 

 

그리고 트레킹 길을 관통하며 세워진 '굉장히 큰' 상점. 거의 히말라야 최대의 대형마트 수준인 거다 이정도면.

 

술도 팔고 담배도 팔고 과자와 물과 등산화와 스틱, 수건에 필름, 건전지, 약품류까지. 없는 거 빼놓고 없는 게 없는 상점.

 

 

 

그리고 촘롱에 도착해서 일단 맥주부터 한잔. 아침 6시반부터 열심히 오르내리막, 전반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걸었더니 몇시간

 

걷지 않아 땀이 흠뻑 나버렸다. 아무래도 아래로 내려올수록 기온이 확 올라가는 게 체감될 정도로, 가파르게 하강 중인 거다.

 

맑은 날에는 촘롱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와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보인다더니, 정말 선명하게 두개 봉우리가 보인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만년설로 덮인 날카롭고 위태로와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

 

다리가 아파 더이상 못걷겠다는 어떤 트레커는 이제부터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하고 백마를 호출했다.

 

 

잠시 쉬고는 다시 출발, 닭들을 쫓으며 노는 아이를 지나기도 하고.

 

노랗고 빨간 무늬의 수건이 높은 바람에 펄럭이는 제법 '대문'이란 것도 갖춰놓은 집을 지나기도 하고.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바싹 당겨 관찰해보기도 하고.

 

푼힐 전망대쪽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는 반대쪽 길로.

 

 

층층이 그 육중한 무게감과 부피감을 과시하는 산의 옆구리들. 그리고 그 모든 굵직한 주름들 너머로

 

짙고 두터운 하얀 구름을 피워올리며 홀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안나푸르나.

 

 

 

 

 

 

 

 

 

 

 

 

#2012_01.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유후인 가는 길(고속버스 시간표 포함)

 

#2012_02. 유후인 료칸의 열세가지 코스 만찬.

 

#2012_03. 방마다 노천온천이 딸린 유후인 몰.

 

#2012_04. 유후인 료칸의 숨은 그림찾기.

 

#2012_05. 유후인 료칸의 흔한 조식.

 

#2012_06. 유후인역까지 걷는 밤마실.

 

#2012_07. 유후인의 토토로, 그리고 숯의 정령들까지.

 

#2012_08. 유후인 료칸 체크아웃 후의 하루짜리 산책..오전편.

 

#2012_09. 흑마백마가 환대해주는 유후인.

 

#2012_10. 유후인 료칸 체크아웃 후의 하루짜리 산책..오후편.

 

#2012_11. 짙은 녹색의 그림자에 숨어든 금색 비늘의 호수, 유후인 긴린코.

 

#2012_12. 유후인의 편의점털이.

 

#2012_13. 후쿠오카의 밤거리 & 유후인 2박3일 여행일정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끗)

 

 

 

 

 

 

 

 

후쿠오카 하카타역에 내릴 즈음 아슬아슬하게 해가 남아있다 했더니, 숙소에 짐을 놓고 다시 나오니 그새 깜깜해졌다.

 

하카다역, JR선이나 신칸센을 탈 수 있는 후쿠오카의 구도심 중심지다.

 

퇴근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여기나 한국이나.

 

 

역사 앞에 차곡차고 주차되어 있는 차들에서 번지는 불빛, 그리고 그 너머 그리 높지는 않은 건물들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에서 터져나오는 불빛들.

 

 

조리개를 바싹 조이고 바라본 후쿠오카 시내의 밤 풍경.

 

후쿠오카에 와서 라멘을 놓치고 갈 수는 없는 일. 돼지뼈를 푹 고아서 완전 찐득한 국물까진 아니었지만 이정도만 되도.

 

 

다음날 아침, 250엔의 전철을 타고 세네 정거장,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하는 참이다.

 

게이트에서 비행기로 탑승하는데 문득 눈에 띈 에바항공의 헬로키티 비행기. 저걸 타는 건 아니었고.

 

사실 저런 건 본인이 직접 타는 것보다 누가 타고 있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다. 대부분의 통유리창 까페가 그렇듯.

 

내가 탔던 티웨이항공의 소박한 기내식. 음...저가항공사의 합리적인 비용 절감책이 반영된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 인천공항에 새초록한 잎사귀들이 돋아났다.

 

 

유후인을 목적으로 했던 2박3일의 여정, 유후인을 만끽하기에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정이었지만,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더하기에는 분명 짧았던 기간이었다. (사실 모든 여행은 늘 너무 짧다. 늘 짧다.)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유후인역에서부터 유후인아동공원을 지나 드디어 유후인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곳, 긴린코 호수 초입에 도달했다.

 

슬슬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살짝 목이 마르다 싶던 타이밍, 일본까지 와서 물을 사 마시느니 음료를 사마시고 까페에서 차를 마시는 게

 

낫겠다며 계속 그런 걸 마셨던 차에, 저렇게 신기한 '오이 막대'라니. 살짝 짭조름하게 간이 밴 오이가 와삭와삭.

 

기운이 불끈 돋아 씩씩하게 걷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보이는 한글들, 그리고 한국인들의 한국말 소리들.

 

 

긴린코 호수 주변을 어슬렁대는 오리들, 처음에 조우했을 때는 정말 화들짝 놀랐는데, 그런 사람 따위 관심도 없는 듯

 

시크하고 여유로운 뒤뚱거림으로 이내 시야를 벗어났던 오리 한 마리.

 

 

드디어 눈 앞에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호수가 쫙쫙 양팔을 벌린 만큼 커지는 것만 같았다.

 

'긴린코'라는 호수 이름은 金鱗湖, 즉 금색 비늘 호수라는 뜻으로 풀이하면 될 텐데, 석양에 비친 물고기들의 비늘이

 

금빛으로 번쩍거린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호수 수면 아래로 팔뚝보다 굵은 물고기들이 미끄러지듯 유영중이었다. 아침해가 빛날 때나

 

저녁해가 가라앉을 때쯤에는 정말 꽤나 볼만하겠다 싶다.

 

 

알고 보니 이 '긴린코 호수'의 물 절반은 뜨거운 온천수, 나머지 절반은 차가운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자욱하게 물안개를 피워올린다고 하는데 일정상 그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한낮의 쨍쨍한 햇살 아래에도 짙푸른 녹색이 시원하게 수면 위로 내리깔린 긴린코 호수의 호젓한 분위기나

 

드문드문 호수를 내려다보는 찻집이나 레스토랑들, 잠시 앉아 쉬어가며 시간을 붙잡아 두기에 딱 좋은 곳.

 

멀찍이 신사도 보이고, 저건 왠지 일본 애니메이션 '지옥소녀' 오프닝에 나오는 그 곳 같은 느낌.

 

 

긴린코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산은 유후인의 명산 유후다케, 유후인 마을에서도 멀찍이 보이던 그 산자락이다.

 

 

 

호수변에 피어난 노란 꽃들이 제법 뜨거운 햇살에 축축 늘어졌다. 호숫물을 쭉쭉 빨아올리란 말이다.

 

 

유후인의 소로들을 거닐 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 울창하게 숲을 이룬 커다란 나무들과 드문드문 호숫가에

 

모로 누워버린 나무들이라니. 꽤나 깊숙한 자연 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거나 이리저리 에둘러가는 길들이 꼬불꼬불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이미 유후인 료칸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며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으니 굳이 다 돌아보진 않기로 했다. 잠시 짙은 녹색 그늘 아래서 쉬다가 유턴.

 

긴린코 호수 옆을 빠져나가고 다시 샵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가기 전, 아까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이쁜 가게가 하나.

 

 

인력거가 조금 탐이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과연 이런 뜨거운 날씨에 사람이 헉헉거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끄는데

 

나몰라라 맘 편하게 저 위에 앉아서 갈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어서 패스.

 

슬슬 유후인역까지 걸었다.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무지무지 오래, 대충 네다섯 시간 걸렸던 거 같은데

 

여기저기 한눈 안 팔고 적당히 슬슬 내려오니깐 고작 30분쯤 걸렸으려나. 조금 이르지만 유후인에서 먹는 마지막 간식..이랄까

 

혹은 이른 저녁 part1이랄까, 유후인 수제버거.

 

 

이제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나가는 가장 늦은 고속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하카다역 버스터미널로~*

 

 

 

 

 

 

 

유후인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건 사실 이렇게 흰 갈기를 찰랑거리는 백마였다. 백마가 끄는 마차는 그 다음으로

 

시선이 가 닿았고, 아무래도 저 백마의 긴 생머리같은 갈기는 엘라스틴을 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

 

마차에 사람들이 제법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도 백마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유후인의 파란 하늘 아래 반점 하나 없이 하얀 말이 끄는 고풍스러운 마차라니, 유후인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샤방하다.

 

사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교통 표지판 역시 하늘로 치솟으라는 의미로 새삼 새롭게 읽히는가 하면.

 

길바닥에 고개를 꿇어박고 귀여운 펭귄들이 가방을 메고 있는 그림을 찍어대기도 하고.

 

 

유후인역사 건물이 떡 버티고 선 유후인의 메인로드.

 

 

곳곳에 나있는 샛길들 하나하나, 재미있는 기억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품고 있을 가능성들이다.

 

그러던 와중에 곁눈질을 하며 따가닥 거리는 얼룩말 한마리 추가로 발견.

 

이 녀석도 참 순둥이처럼 생긴데다가 반질반질한 등저리에서 햇살이 자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마차 꽁무니를 조금 쫓다가 포기하고, 어느결에 살짝 달라진 풍경을 구경하고. 여기 사람들은 이미 마차엔 익숙한 듯.

 

그럴 수 밖에. 유후인의 자그마한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마차가 시시때때로 돌아다니다 보니 워낙

 

곳곳에서 조우하게 되는 거다. 깔끔한 아스팔트 위를 다가닥다가닥,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달리는 말들.

 

 

문득 궁금해지고 경탄하게 되는 건, 저 흑마와 백마들이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설물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하길래 이렇게 깨끗하게 거리가 유지되는 걸까. 일본 문화나 교양의 저력인지도.

 

 

 

 

 

 

 

 

유후인 료칸의 체크아웃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 그때쯤 나서서 후쿠오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마련이지만 아예

 

하루를 유후인 마을에서 보내기로 했다. 유후인 역의 라커에 가방을 보관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걷기 시작.

 

인력거 아저씨가 토막난 한국어로 흥정을 걸어왔지만 기력이 쌩쌩한 상태에서 저런 걸 탈 리가 있나.

 

 

전날 밤에 미처 걷지 못했던 골목을 좀더 헤집어 보기도 하고, 밝은 대낮에 보니 또다른 풍경에 감탄하며 연방 사진을.

 

 

 

뭐지, 여기가 유후인의 긴자 거리쯤 된다는 걸까. 잔뜩 색바랜 간판을 보면 도저히 그럴 리는 없는데.

 

자판기 왕국답게 담배 자판기가 네다섯대 즐비하게 늘어선 건 제법 장관이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숯의 정령을 만났던 곳, 여러 귀여운 아이템들이 많았다.

 

 

이렇게 굵은 터치로 파내어진 등불이 반짝반짝거리기도 했고.

 

 

이 정도 인테리어에, 이렇게 사람 없는 샵이라면 한번 앉아서 쉬어주는 게 예의지만, 아직은 몇 걸음 떼지도 않아서 패스.

 

 

샵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조그마한 왕복 이차선의 길거리. 그런 샵중엔 퇴마 효과를 연구하는 샵도 있다.

 

 

이런 류의 사이비 과학이랄까, 운명론이 발달한 나라답게 손가락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반지를 끼라고 유혹하는.

 

그러고 보니 일본은 아버지의 날이 있었다. 6월 17일, 아버지의 날.

 

조촐하지만 확연한 메인도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목길은 틈틈이 나타나서 손짓했지만, 꾹 참았다. 일단은

 

긴린코 호수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준보석이라 불리는 돌멩이마다 '능력치'를 표시하고 있던 그림. 우와, 이런 건 역시 온갖 종류의 게임이 발달한

 

나라라서 그런지 굉장히 시각적이고 확연하다. 마치 삼국지의 장수들 능력치를 따지는 것 같잖아. 지력, 매력, 무력..

 

이 복을 던져주는 고양이는, 그 주인의 복을 사방으로 던져버릴 셈인지 굉장히 몸값이 비쌌다. 무려 28만엔. 헉.

 

 

그리고 완전완전 귀여운 것들이 가득하던 샵 하나 발견.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다 싶었다. 아직 오전이라 그랬겠지만, 5시 버스로 유후인을 뜰 생각이었으니 근 6시간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흐느적흐느적 걷다가 쉬고 배고프면 군것질하고 차마시고 그러기로 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서 이렇게 샅샅이 샵을 순례하며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살까 말까 재보기도 하고.

 

 

이 고양이는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배를 깔고 누워서는 슈퍼맨 놀이 중이었다.

 

이 곰인형은 어메리칸 스타일의 바이크에 기우뚱 앉아서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역시 고양이, 고양이. 일본은 왜 이리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

 

그리고 술을 파는 가게 앞에서 빗자루를 쥐고 있던 고질라.

 

잠시 앉아 쉬었다. 사실 직선거리로만 따지면 얼마 걷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샵들이 많아서 꼬불꼬불 걸었던 걸 헤아리면

 

마치 꽁꽁 감겨있던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왕창 늘어날 거다.

 

 

너무너무 유명한-아마도 한국인 사이에서 특히?-롤케잌집 비스픽은 이미 가게 안이 바글바글하길래 스킵.

 

다리를 건너고 나서 만난 또다른 샛길. 개울을 따라 쭉 걷는 길 옆에 색색의 꽃들이 만발해서 유혹하는 중.

 

어느 길 모퉁이에는 누가 만들었을까, 페트병을 잘라서 어찌어찌 만들어낸 바람개비가 팽글거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군부대의 움직임. 뭔가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유후인에는 자위대 주둔지가 인접해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보이는 상점들, 음식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랄까,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가볍게 여러 끼를 먹는 게 현지의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고 특히나 유후인 같은 데에서는 길거리 음식이라거나 군것질거리들을 위한 여지를 남기는 방법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상 메뉴판을 보니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게 잔뜩. 치즈 케잌이니 단팥죽이니 고구마 세트는 뭘까.

 

그래서 이것저것 맛보고 일본의 맛난 커피도 마시고, 시원한 에어콘 바람 맞으며 쉬다가 정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그렇게 유후인 마을을 샅샅이 살펴보기로 한 하루 일정의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의 분위기만큼 고즈넉하고 여유롭게.

 

 

 

료칸과 각종 아기자기한 샵들이 즐비한 유후인의 거리엔 저녁이 일찍 찾아온다. 저녁 5시만 되어도 하나둘 가게 문을 닫고는

 

저녁 6시가 될 즈음이면 대개의 상점들이 불을 끄고 문을 내려서 여행자들이 북적이던 한낮의 풍경 같은 건 삽시간에 사라진다.

 

대개 그즈음이면 각자의 료칸에서 석식을 하고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을 때인지라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네 한바퀴 돌아보며 밤마실을 다니는 건 여행의 묘미 중 하나. 픽업차량을 타고 돌고 돌아 도착한 료칸에서부터

 

다시 유후인역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드문드문 불이 켜진 음식점들, 료칸들. 사람 손이 구석구석 닿아 이쁘게 꾸며진 깔끔한 건물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한자로 '이용'이라 크게 적힌 이발소의 빨갛고 파란 간판도 잠시 지난한 회전에서 풀려나 한숨 돌리는 시간.

 

 

유후인 거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2층, 끽해봐야 3층이었는데 이 호텔 정도면 굉장히 덩치가 큰 편에 속한다.

 

건물 앞이고 창문틀이고 온통 색색깔의 꽃들이 지천이다. 게다가 9시가 넘어간 밤에도 쓰레기 하나 없고 취객 하나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청결한 밤거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도 무섭진 않고 살짝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조금 어둡다 싶으면 이내 코 앞에서 고개를 박고서 빛을 내려뜨리는 가로등들이 꾸벅꾸벅.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하하호호 하며 뱅글뱅글 돌고 있는 듯한 모션을 취하고 잇는 야쿠르트 집.

 

 

마음에 뭔가 짠하게 남던 풍경.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겨우 하얀색 빛깔을 지키고 있는 저 허름한 양철 건물의 셔츠들.

 

 

그리고 깜짝 놀랐던 자판기. 맥주 자판기야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만 이렇게 맥주병을 파는 자판기라니.

 

슬슬 걷다보니 벌써 낯익은 유후인역 앞 유후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역 앞이라고 해서 가게들이 좀더 문을 열었거나 밤늦도록 불야성인 풍경 같은 걸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내친 김에 역 안까지 들어가서 구경하기로 했는데, 마침 새빨간 색의 기차가 서있는 게 보였다.

 

 

잠시 멈춘 게 아니라 아예 불을 꺼놓고 유후인 역에 웅크린 채 쉬고 있는 기차. 기차역조차 참 고즈넉하구나 싶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 택시 한대가 겨우 역사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 앞에 바리케이트엔 기차 모양이 꾸며져 있었고.

 

어느 골목에 슬쩍 고개를 들이박아 보니 멀찍이 대낮처럼 환한 풍경이 조금 보이는 거다. 저긴 뭘까, 싶었는데

 

왠지 온통 교교하게 침묵하며 어둠이 나려든 유후인 골목통의 분위기가 더 맘에 들어서 그냥 스킵.

 

그리고 살짝 후각을 자극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공중 화장실.

 

 

손톱달이 떠 있는 밤 하늘 아래에 그림처럼 이쁜 샛노란 집이 반짝반짝 빛망울을 두른 채 편의점 앞을 지키고 섰다.

 

 

아직 그래도 몇몇 술집은 불을 켜놓은 채 한적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빙 둘러싼 원형의 벤치엔 어둠만 내려앉았다.

 

 

크게 한바퀴 유후인 역까지 돌아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 정도면 여자들끼리 여행와서 밤마실 나와도

 

딱히 위험하거나 무섭진 않겠다. 게다가 워낙 조그마한 동네라서 걸어서 돌아보는 재미도 있으니.

 

숙소인 '유후인몰'에 도착하고 나니 하얗고 노란 불빛들이 환하게 밝혀진 게 안도감이 든다.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조식. 체크인할 때 7시반과 8시의 두 타임 중에서 선택해 놓으면 모닝콜도 겸해준다는.

 

신선한 샐러드로 먼저 입맛을 좀 돋군 후에 밥과 반찬으로 돌입.

 

생각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았던, 딱 적당한 만큼의 아침식사.

 

 

반찬들도 조금씩 맛을 볼 수 있는 정도로,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씩 맛보다 보면 밥 한그릇이 비워지는 정도로.

 

식사가 치워지고 나서 나온 건 정말 간이 하나도 맞춰지지 않은 그냥 생 콩즙이랄까. 콩비지랄까.

 

과일잼이 뿌려진 채 살짝 얼려져서 나온 치즈까지 먹고 나면 조식은 끝~

 

아무래도 일본의 료칸에 묵으면 이렇게 멋진 저녁과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듯.

 

자리 옆에 일본 전통 화지로 문창살을 발라 놓고는, 더러 빵꾸가 난 곳에는 저렇게 이쁜 꽃모양으로 땜빵을 해 놨다.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외관 탐구. 료칸에 들어서면서 꼭꼭 눈에 담기던 풍경을 좇아 밖으로 나왔더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게 더욱 큰 재미였던.

 

 

료칸의 입구. 입구에서부터 온통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입구에 놓인 차임벨. 여느 술집이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벨에도 온통 꽃무늬다.

 

유후인에서 실감했던 '원피스'의 위력. 료칸에도, 유후인 거리에도 온통 원피스!

 

 

 

풀섶에 숨어서 갸웃이 고개를 내민 고양이 인형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유후인몰, 조그마한 세로형 간판 양 옆에 서서 손님을 반기는 마냥 해피한 얼굴의 인형 두개.

 

 

이건 사실 유후인몰이 아니라 이전에 들렀던 숙소에서 담은 풍경. 비슷한 료칸의 풍경이다.

 

 객실문마다 별자리를 따서 붙인 이름, 그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호실 명패.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입구. 이 곳에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고.

 

 

남녀탕이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에 발에 채일만큼 많이 널렸던 아이템들, 이 장난감 강아지도 그중 하나.

 

 

완전 싱싱하게 뻗어나간 굵고 탄탄한 대궁 위에서 활짝 피어난 잎사귀.

 

 

 

 혼자 사진에 담긴 고양이는 왠지 도도해 보이는 느낌이 아주 강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 녀석들은 왠지 다소곳하다.

 

 

그냥 되는 대로 툭툭 아무데나 던져둔 것 같은 악세사리들이 료칸 바깥에 온통 널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큐슈 지방의 햇살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있는 꽃들.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길, 그 옆에 소복소복 쌓인 초록빛 무더기들.

 

가족탕으로 꺽어들어가는 길, 그 앞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어느 가족이 지금 사용중이다.

 

주의할 것조차 딱히 없어서 온통 녹슬어버린 주의 표지판. 이 조그마한 온천 마을이란.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저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고양이 녀석 한 마리를.

 

 

 

료칸에서 펑펑 솟는 온천수 덕분일까, 새로 돋는 잎사귀가 무지 두텁고 반질거린다.

 

 

 

 

사람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고즈넉한 마을의 조용한 료칸, 건물 밖의 의자에 앉아 흐느적대기 딱 좋은 곳.

 

 

온통 담쟁이덩굴이 칭칭 휘감아 시간도 끈적하게 쉬엄쉬엄 흐르는 곳이라 이끼조차 한모금 머금었다.

 

 

 

 

조화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아무래도 그 빨갛고 푸른 색감이 참 선명하다.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너울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 시퍼런 어둠에 먹힌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아직은 제 색깔을 고르게 지켜내고 있는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들. 

 

 

체크인했을 때 고개를 꿇어박고 서류를 작성했던 딱딱한 책상에도 주홍빛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건물을 갉아들어왔고,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그 와중에 나비 모양 등불은 꽃망울을 향해서 활짝 날개를 펼쳤다.

 

 

 

원래는 이 곳에 머물 예정은 아니었다. 애초 머물기로 했던 숙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 것.

 

그렇게 옮겨간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픽업 차량은 벤츠, 벤츠 로고를 단 봉고차였긴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유후인 역까지 걸어서 20분이면 가닿는 곳, 유후인 동네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걸 감안해도 이정도 입지면

 

정말 꽤나 훌륭한 편이다. 그리고 입지보다 중요한 건 그 곳에서 머물 공간의 내부 풍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야가 한없이 쭉쭉 뻗어나간다. 현관을 지나 침실을 지나 다다미방을 지나 저 멀찍이 보이는 건,

 

방마다 구비했다는 실내 노천 온천..!!

 

 

사람 둘셋이 들어가도 모자라지 않을 사이즈의 노천 온천이 뻥 뚫린 하늘 아래 검게 그을린 나무 담벼락과 초록빛 왕성한

 

풀숲의 호위를 받으며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중엔 그 뜨끈하고 미끈한 온천물에다가 편의점에서 사온 날계란을 담궈놓고 온천 계란을 만들기도 하고.

 

 

방 안에는 화사한 일본 전통종이로 씌워진 빳빳한 안내 책자에 료칸 객실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선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 간단한 스낵.

 

그리고 유카타 두 벌과 일본의 진한 녹차 티백이 가득 담긴 다기 세트.

 

 

 

방안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적당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온천에 들고 나갈 수건 꾸러미 옆에는 토끼,

 

열쇠나 잡다한 장신구를 놓음직한 받침대 위에는 꽃바구니, 뭐 그런 식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개인을 위한 노천 온천이 객실 안에 있다는 건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고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즈넉한 시간대, 둥근 조명빛이 고스란히 옮겨진 온천 수면을 깨고 들어가기.

 

사실 온천물에 날계란을 익혀 먹기는 반쯤 실패하고 말았다. 물이 굉장히 뜨거워서 한참이나 찬물을 섞어야 했지만

 

막상 날계란을 익히기는 온도가 모자랐던 듯 하다. 그렇지만 밤새 온천물에 담겼던 계란들은 정말 굉장히 맛있었다!

 

 

 

개인용 노천 온천탕이 있다는 건,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뜨자 마자 첨벙 뛰어들 수 있는 뜨겁고 시원한 온천탕이

 

있다는 이야기. 밤새 지켜왔을 무거운 정적과 침묵이 한순간에 깨어져 나가는 순간. 보통 유후인의 료칸은 오전 10시까지

 

체크아웃을 완료해야 하는데, 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천탕 안에서 버티는 게 남는 거다. 몸에나 마음에나.

 

그리고 료칸의 객실 내부를 좀더 살펴보자면, 여느 일본의 호텔이나 숙소처럼 화장실은 꽤나 작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분리되어 있고 각자는 꽤나 협소한 공간. 욕조가 그래도 들어가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실내에 개인용 노천 온천이 있다고는 하지만, 별도로 공용 남탕과 여탕도 있고, 크고 작은 '가족탕'도 있다.

 

가족탕의 경우는 이렇게 사용하기 전에 빨갛고 파란 램프에 불을 켜두어서 해당 욕실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 표시를 한다.

 

그래야 누군가 사용하러 와서 벌컥 문을 여는 민망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불빛을 켜두어 표시한다고 해도 만의 하나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가족탕 앞에 표지판도 세워둔다.

 

입욕중, 혹은 비어있음의 표시를 해두는 것에 더해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나 물소리가 들리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가족탕 내부에 뻥 뚫린 하늘, 그리고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유후인 마을의 모습.

 

 

그리고 대나무발로 구획지어지고 천장이 절반쯤 닫힌 가족탕의 모습. 이 정도 크기면 왠만한 목욕탕 사이즈다.

 

파란색 바구니와 빨간색 바구니, 역시 이건 남자용 그리고 여자용 옷을 담아두라는 의미일 듯. 외국에 나가도

 

인류 공통의 색감과 색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남탕, 여탕이 분리된 여느 온천에서 흔히 보이는 입구.

 

 

 남탕에서 보이는 유후인의 봉긋한 산봉오리,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다른 건물들.

 

탕 안의 시설만 보면 한국의 시내에선 이제 보기도 힘든 낡고 오랜 목욕탕 같기도 하지만, 여긴 물이 다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열어본 여탕의 출입문. 부처님 오신 날 연휴가 끼어있는 황금연휴였지만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그리 보이지 않아 문을 열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탕이라고 말해두지 않으면 전혀 남탕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실내.

 

 

유일하고도 중대한 차이라면, 남탕에는 없는 디지털 체중계가 여탕 한구석엔 놓여있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옷을 보관해두는 바구니가 저렇게 얌전하게 대기하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가족탕, 그리고 남탕과 여탕. 무엇보다도 객실마다 구비된 개인용 노천탕까지. 온천의 수질이 어떤지, 어떤 성분이

 

녹아있는지 같은 거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건, 이 곳의 온천 시설은 '개인용 노천탕' 하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일본과 다른 나라의 온천장들을 올킬하고도 남는다.

 

 

 

 

 

유후인 료칸에서 제공되는 석식. 보통 료칸은 여느 호텔과는 달리 투숙 인원수로 숙박비를 받는데,

 

그 이유는 온천에 대한 사용료와 더불어 석식, 그리고 조식이 함께 제공되기 때문이다.

 

묵었던 '유후인몰'의 경우 석식은 오후 6시, 6시반 두 시간대 중에서 선택을 해야했고, 조식 역시 오전 8시,

 

8시반 중에서 미리 선택해야 했다. 그러면 이렇게 시간대에 맞춰서 테이블을 미리 세팅해두고

 

객실번호를 올려두어 예약석을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뭐가 뭔지 알아볼 수가 없는 메뉴판, 그저 알 수 있는 거라곤 몇몇 한자어로 미루어 짐작해볼 뿐인 메뉴 몇 개와

 

가짓수가 참 많은 거 같다는-대충 열세가지?-기대감을 부풀게 만들던 깨알같은 코스 요리일 거란 사실.

 

에피타이저로 제공된 매실주가 온전한 모습으로 담긴 사진은 이것 한장뿐. 따로 음료를 주문받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별도의 비용이 나가게 되므로 굳이 원치 않는다면 그냥 하나씩 날라오는 음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

 

 

어느 각도로 보나 살짝 섹시하게 얹힌 계란말이 두 조각. 그리고 푸딩인지 곤약같은 에피타이저.

 

 

생선회와 구운 생선조각들. 역시 일본의 와사비는 제대로 강판에 갈은 매콤한 와사비였다.

 

 

짜잔, 연잎에 싸여있던 농어와 가지찜. 연잎의 향기가 독특하게 배어있었던 느낌.

 

 

뜨겁게 달궈진 그릇에 담겨나온 저 포슬거리던 계란찜 속엔 어묵이 한줄.

 

마차가루가 섞인 죽염에 찍어먹는 고추튀김, 고구마튀김, 그리고 음..좌우지간 뭔뭔 튀김들.

 

 

그리고 개인용 구이판에 구워먹으라며 나온 와규(일본산 소고기), 닭고기랑 기타 채소들.

 

 

이글거리는 불판 위에 우선 마블링이 아리따운 와규부터 올려주셨다.

 

그리고 버섯과 양파 나부랭이들도 함께, 소고기 기름을 먹고 노릇노릇 익어가는 모습.

 

일종의 스프였다고 해야 하나. 한국어로 된 메뉴 소개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서빙하시는 분 중 한 분이 한국사람이긴 했지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하여, 그저 눈으로 혀로 음미할 뿐.

 

 

하얀 쌀밥에, 저건 토란국일까. 큐슈 쪽 음식이 아무래도 혼쥬에 비해 짜긴 한 듯 전체적으로 조금

 

짭조름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참 맛있게 슥삭슥삭 잘도 비워냈던, 질세라 쉼없이 나오던 료칸의 석식.

 

 

그래도 정신없이 먹다 보니 마지막 음식. 황도인지 살구인지, 과일맛이 강하게 나는 푸딩이라고 해야 하나.

 

사진을 찍으며 하나하나 음미하는 게 목표였건만, 아무래도 사진에 맛이 담기지는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아주아주 훌륭했던,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가서 만끽하고 싶은 유후인 료칸의 석식.

 

 

 

 

 

 

일본의 100대 온천호텔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호텔, 무려 1200평 넓이의 대욕장과 노천탕들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하여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실제로 가서도 실망하지 않을 만큼 괜찮은 곳이었다. 커다란 호수를

끼고서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과 온천시설들로 무척이나 흐뭇했던.

호텔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아오모리, 푸른숲靑森의 마스코트 인형. 깊고 울창한 숲속에선

저런 커다랗고 머리에 꽃단 괴물이 살고 있대도 왠지 수긍할 만 하다. 바야바~ 라거나, 토토로처럼. 


호텔 로비가 그 호텔의 격을 대변하는 공간이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도

좋은 거 같다. 서양인들의 표현으로는 뭐랄까, 젠ZEN의 느낌이 충만하달까.

호텔 객실, 도쿄나 아오모리나 일본의 온천 호텔들은 다다미방인데다가 체크인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오면

저 테이블과 의자가 한쪽으로 싹 치워진 채 이불까지 깔아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게 인상적이다. 다다미에선

살짝 풀내음도 나는 거 같고, 미니멀하면서도 드라이기니 전기포트니 있을 건 다 있는 아기자기함도 좋고.

화장실에 비치된 슬리퍼에는 아예 'TOILET'이라고 씌여 있었다. 화장실용이니 객실 안에서 신고 다니거나

밖으로 신고 나다니지 말라는 완곡하고 공손한 마음이 담겨 있는 듯.

두 사람분의 유카타. 게다에 어울리게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분리시킨 벙어리 양말도 있었고,

별모양으로 단단히 말아둔 허리띠도 재미있었다.

호텔 로비 옆에 붙어 있는 샵에서 팔고 있던 유카타는 훨씬 다 다채로운 색깔들에 화려한 느낌이었는데,

유카타는 한번 입어보면 참 입고 벗기 편해서 좋은 거 같다. 집에서도 한벌 있음 오자마자 입고 있을 듯.

호텔 안을 한 바퀴 둘러보러 나왔는데 이쁘게 생긴 앉은뱅이 의자와 탁자 너머로 산책길이 보였다. 냉큼

건물밖으로 나와 나무 사이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길과 나무 사이를 지나니 단아한 색감의 나무집들이 몇 채씩 길가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호텔의 별채 아닐까 싶다. 더 넓고, 더 럭셔리하고, 그래서 아마도 더 비싼 룸. 내부가 궁금했지만 스킵.

조그마한 내가 중간중간 둥그런 연못을 만들다가 어딘가로 흘러내리고, 다시 또 연못을 만들다가

흘러내리고. 그 옆에선 잔뜩 몸을 기울인 채 흐벅지게 피어올린 꽃무더기를 수면에 비춰보느라 

여념이 없는 나르시스트 꽃나무가 하나. 워낙 크고 풍성한 꽃송이가 한두개도 아니고 저리도 많이

달려있으니 무게도 솔찮을 텐데, 저러다가 물에 잠기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는 괜한 걱정이 들 만큼.
 

그리고 연못 한 가운데 동그마니 튀어나와있는 바위, 그 위에서 저리도 꼿꼿하게 자라나서 훌쩍 키만 큰

왠 들꽃줄가리 하나. 참 가늘고 여려 보이는데, 압정처럼 뾰족하니 하늘로 치솟은 게 대견하기도 하고.

연못, 이라 해야할지 개울, 혹은 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분명 맑은 물인데 문득 바람이

일어나니 끈적하니 바람보다 한풀 늦게, 게으르게 번져나가는 물결.

이제 지금쯤이면 초록색으로 잘 익었던 단풍잎에 조금 붉은 기가 돌기 시작하려나. 생각없이 낭창낭창 걷다가

시간감각을 잃고서는 하염없이 걷겠다 싶어 살짝 당황,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는 길.


호텔 레스토랑. 석식과 조식이 제공되었는데 무난했던 듯. 아무래도 부페는 뭔가 임팩트있는 한방이

부족한 느낌이어서, 배부르게 잘 먹었긴 했지만 뭐가 맛있었다고 말할 거리를 못 찾겠다.

어느덧 저녁, 일본 내에서 온천호텔로 100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곳이니 온천에 푹 몸과 마음을 담그고

쉴 생각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혀를 빼물고선 살짝 깨문 그녀의 눈빛이 굉장히 고혹적이었고,

두꺼비 이마에 놓인 동전들이 진짜인가 한번 만져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온천도착.


그랬는데 이런 공연을 온천 입구 앞에서 시끌벅적하게 시작하고 있는 거다. 아마도 이게 저녁 9시부터 한다던

아오모리 남부 민요쇼인가 싶다. 이미 관객석은 꽉 차 있어서 앉을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뭔가 금빛으로 번쩍대는 삽에 줄을 걸어놓았나보다. 기타나 샤미센을 튕기듯 삽을 잡고 소리를 내는데, 정말

띠용띠용 샤미센같은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이었다. 울림통도 따로 없는 걸 텐데, 소리도 제법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게 온천장 안쪽 깊숙한 곳에 노천탕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한테도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

공연장 옆으로는 커다란 네부타가 물고기 네부타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버티고 서 있었다. 뭔가 구름을 타고

누군가와 싸우는 듯한 다이내믹한 자세.

탕 입구에서 이렇게 올망졸망 자기들끼리 앉아서 나름 열심히 공연을 감상중이신 꼬맹이들. 한 아이는 완전

공연에 몰입해 버렸는지 박수치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른 아이들도 눈을 떼질 못하고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공연 시작되고 나서는 무대를 지나쳐 탕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못 본 거 같기도 하고.


아오모리에서 묵었던 호텔 중 최고였던 거 같다. 수질이야 비슷하겠지만, 노천탕의 그 운치라거나 시설이 환상.
 


 

@ 고마키 아오모리야 호텔.



네모난 창을 통해 바닥, 그리고 벽면까지 기울어진 햇살 자국이 낙인처럼 선명하다. 아오모리현 카즈노의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을 풀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동네를 살펴보려는 차에 햇살부터 설레였다.

호텔 입구에 있던 뭔가 '안테나'를 광고하던 티켓.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 사슴뿔이 안테나처럼

쫑긋쫑긋 서 있는 게 귀엽다. 아무래도 아오모리가 워낙 깊은 숲동네인지라 저런 동물들을 활용해서

캐릭터로 만들고 활용하는 게 좀더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아오모리로 오는 길에도 내내 도로변에서 온갖 야생동물이 그려진 표지판들을 보며 왔더랬다.

아, 중간에 한장은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는 사인이지만 여하간, 그만큼 숲이 울창하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야기일 거다.

사람이 드문드문 지날 뿐인 골목을 걷다가 발견한 빈티지스러운 표지판. 뭔가 사방팔방으로 손가락을

해대는 게 살짝 수다스러워보이기도 하지만, 적당히 빛바래고 톤다운된 모습 덕에 과하진 않아 보인다.

호텔 앞으로 지나던 기찻길. 두 갈랫길이 합쳐지는 합류지점에 서서 짙은 초록색이 한가득한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동네를 바라보았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개울을 따라 쭉 이어지는 산책로가 십여킬로미터에

이르도록 정비되어 있다는 이야기인 거 같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대충 이런저런 풍경도 마주칠 수 있고

그렇다는 거 같아서, 설렁설렁 걸어보기로 했다.


슬쩍 산책로로 접어드니 방금 지나친 기찻길이 저 쪽의 다리 위로 지나는 게 보였다. 몇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마을 풍경이 저만큼이나 가려져 버렸고, 이내 빼곡하게 자라난 늘씬한 나무들 사이에 파묻혀 버렸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마을 뒷산같은 느낌이다 싶었는데, 산책로 바닥에 툭툭 돋아난 저 나무뿌리들을 보니

뒷산보다는 좀더 원시의, 야생의 느낌이 짙다.

출발하자마자 맞부딪힌 건 '곰 출몰주의'라는 커다란 경고문. 워낙 산이 깊고 숲도 울창해서 야생곰이

여전히 살고 있는 지역이란 얘긴데, 느리게만 보이는 곰의 최고 속도가 시속 40킬로미터에 육박한다니

맞부딪히면 큰일이다. 어느새 허리까지 올만큼 주변 풀숲도 무성해져서 딴 길로 새면 안되겠다 싶다.

이 길을 걷는 사람도 거의 없는 듯 길바닥에까지도 온통 초록색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조금이라도

사람 다니는 길과 옆엣 풀숲이 구분이 될 텐데, 정말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온통 초록색이다.

흔들다리. 다리 위를 걸으며 일부러 쿵쿵 소리 내어 발을 굴러보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어보기도 했지만

그리 많이 출렁거리진 않았다. 다리를 건너다 말고 양쪽 끄트머리를 바라보니 무성하고 울창한 숲에 덥썩

먹힌 느낌이다. 뭐랄까, 커플이 빼빼로 하나 입에 물고 먹기게임을 하듯이, 숲과 숲 사이의 다리 하나.

숲과 숲 사이로 내어진 개울.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개울을 경계로 양쪽 숲이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온통 녹색으로 뭉개진 듯 삼엄한 숲이지만 엄연히 디테일은 살아있었다. 초록 일색으로 보이던

풍경 속에 숨어있는 샛노랑 꽃밭이라거나, 사람 발길이 이어져 만들어진 길가에 용케 뿌리를 박고

꼬깃꼬깃 잎새를 편 산죽나무 새싹들.

개울을 끼고 계속 이어지는 산책길.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꽤나 잘 정비되어 있는 길이었다.

옆에 쉬어갈 만한 정자도 있구, 개울 옆으로 따라달리는 가지런한 나무데크와 적당한 높이의 나무난간도 그렇고.

중간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곳에 있던 나무등걸 하나가 눈길을 땡겼다. 누군가 나무를 일부러 저런

모양으로 자른 걸까 싶을 정도로 의자랑 비슷한 모양으로 남아있는 나무등걸. 엉덩이가 놓일 자리에는

보기만 해도 폭신폭신한 이끼가 소담하게 앉아있었다.

가다 보니 '폭포'라고 말하기도 민망할만큼 낮고 작은 낙수물도 떨어지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물줄기가

굉장히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여 느낌을 좀 담아보려 노력했으나.

배배 꼬인 나무들이 불쑥 산책로를 틈입해서는 나봐란 듯이 팔다리를 내뻗고 있기도 했고, 맑고 투명하던

물은 어디쯤에선가 저런 쑥빛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다. 햇살에 정통으로 맞아 하얗게 바래보이는 잎새들.


인근에 수력발전소가 있나보다. 물을 방류하면 수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듯한 경고 표지판,

그런데 만화 그림체가 귀여워서 뭔가 메시지가 담고 있는 정색한 표정을 살짝 풀어주는 거 같다.

어느 순간 산책로 양쪽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던 산이 슬쩍 숨을 죽였다. 내려진 차창처럼 그 사이로

햇살이 잔뜩 들어왔고, 어슴푸레하지만 몇 그루 소나무가 비탈에서 꼿꼿이 자라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개울가의 돌밭에서 나뒹구는 새까매진 나뭇가지 하나.

너무 멀리 나왔다 싶어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사람도 하나 없어 문득 겁이 나기도 했고, 언제 곰이 나올지

모른다는 반투명하던 불안감이 점점 형체와 색깔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문득 잊었다는 듯 울어제끼는

새소리와 배경음처럼 깔린 물소리가 전부이던 산책로. 너무 좋았는데, 대충 한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니

그만큼 시간을 들여 돌아갈 생각하면 이쯤에서 유턴할 타이밍.

돌아나와 마을을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사람 얼굴을 계속 연상시키는 이 노랑색 건물이 나름의 기준점

역할을 단단히 해주었다. 유독 높은 건물이기도 했고, 색깔이나 모양새가 워낙 튀기도 하고.

눈이 많은 아오모리 지방인지라 건물들은 대개 단층, 높아봐야 이층짜리, 그리고 지붕은 이렇게 비스듬히

얹힌다고 한다. 차가 워낙 조그마하니 차고도 미니어처처럼 조그맣다.

새 두마리가 노닐고 있는 모양이 새겨진 맨홀뚜껑. 외국에 나가서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맨홀뚜껑이다.

나름의 고유한 특징과 문화적인 미감이 담겨 있는 섬세한 것도 있고, 그저 기능에 치중한 심플하고 멋없는

것들도 있지만 그런 모양 자체로 그 지역의 분위기나 특색을 말해주는 게 있는 것 같다.


조그맣지만 정갈해 보이는 게 일본 가옥의 대체적인 이미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여기는 집집마다 정원을

잘 꾸며놓아서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조용하지만 깔끔하고 화사한 분위기, 이런거 좋다.


호텔 내부를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 히메노유 호텔이란 호텔 이름을 군데군데 알아볼 수 있었던

등불이 지키고 선 뒤쪽으로는 노천온천이 있었다.

아무도 없을 법한 시간대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 노천온탕의 전경. 그렇게 크지 않은 온천탕이지만

소슬한 밤공기 속으로 펄펄 뜨거운 김을 흘려보내는 그 온천의 마력이란. '카즈노의 대표 미인 온천'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온천을 하고 나서 피부가 보들보들, 매끈매끈. 게다가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그 개운함은 잊을 수 없다.




@ 히메노유 온천호텔, 아오모리 카즈노.

아오모리현은 일본 본주의 동북부, 겨울에 눈이 6, 7미터씩 쌓인다 할 만큼 눈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아오모리와 인근 히로사키 인근 지역을 통틀어 쯔가루 지역이라 부른다는데, 이 지역의 전승되고 있는

공예품을 구경하러 갔던 쯔가루 전승공예관을 둘러보면서 공예품이니 인형 같은 많은 소소한 것들에

그런 눈많은 지역적 특성이 여기저기서 배어있다는 게 느껴졌다. 저렇게 털이 북실북실한 달마인형과

귀여운 동자승 같은 코케시인형 등불이 맞이하는 전승공예관 입구.

이 지역에서 과거에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이 일부 전시되어 있었다. 나막신 앞부분에 털가죽을 덮어

발을 따뜻하게 보온하도록 만들어둔 게 눈에 띄었다. 저렇게 해도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는 여전히

차갑고 아프지 않으려나 싶은데, 예전에 게다를 신고 도쿄 하코네 동네 한바퀴를 돌았을 때 발가락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나막신 말고도 경대니 식기류니 재미난 용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던 곳.

코케시관 입구. 네부타를 만들듯 철사로 이어만든 뼈대에 일본 전통종이인 화지를 이어붙여 색칠한

코케시인형 등이 환히 밝혀져 있었다. 옆의 포스터도 그렇고 등인형도 그렇고 눈매나 표정이 참 귀엽다.

쯔가루 코케시관, 이라 적혀있는 푸른색 현수막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나무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일본 동북부 각 지역에 따라 나름의 특색과 차별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지도와 함께 몇몇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온통 일본어라 봐도 모르겠다는

치명적인 까막눈인지라.

코케시란.

코케시관에서는 쯔가루계 코케시를 비롯하여 전국 11계통 3,000점의 코케시를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애초 코케시는 일본 본주 동북지방의 독특한 어린이용 완구로서 1850년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가,

1900년경부터는 어른들의 감상용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생각보다 역사가 오랜

공예품은 아닌 셈이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과 소박한 색채감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와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폭발적으로 발전, 꽃피워낸 거라고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높이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다.

코케시 인형은 나무를 저렇게 깨끗하게 손질해서 일정 크기로 거칠게나마 다듬어놓는 것부터 제작이

시작된다고 한다. 코케시관 한쪽에서 재연되고 있던 공방 모형이나 사진들을 보면 일본어 설명을

보지 않아도 아, 이렇게 인형이 만들어지는구나 알기 쉽게 표현되어 있었다.

저렇게 나무를 다듬어서 목각 인형의 형체를 만들고, 멋지게 담배를 물고선 집중해서 붓질을 슥슥. 할아버지

손길이나 눈길에 서린 포스가 대단하다. 2D 사진으로 보는 것 뿐인데도 왠지 보고 있는 나 역시 호흡을

잠시 멈추고 붓이 삐뚤어질세라 손길이 흐트러질세라 가만히 지켜보게 되는 거다. 그야말로 장인의 풍모랄까,


눈이 많은 쓰가루의 풍토가 낳은 쯔가루 목각인형은 넓은 옷자락과 풍성한 가슴 등의 독특한 형상이

그 특징이라고 한다. 그게 각양각색의 쯔가루 목각인형이 공유하는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거기에서의

다양한 변주를 가하고 눈코입의 위치나 모양새로 확 달라진 뉘앙스를 싣는 건 온전히 장인의 몫.


코케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케시 인형들을 하나하나 꼼꼼이 살피며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조금

근엄하게 표정을 그려낸 장인이 어떤 생각이었을지 짐작해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이런 식으로 현대적이랄까, 마치 체스판의 폰(PAWN)을 닮은 목각인형의 형체는 그대로

두되 그걸 하얀 도화지삼아 전혀 새로운 색깔을 입히고 금박을 붙이고 천으로 만든 옷을 덧입히는

수많은 변주들도 있었다.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데 그치지 않고 자유롭다 못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새롭게 해석해낸 인형들이 신선한 느낌을 주었지만, 사실 전통 코케시 인형이 주는 소박하면서도

고졸한 멋과 운치보단 못한 거 같다.


그리고 코케시 인형들 옆에서 발견한, 왠지 낯익은 이 녀석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머리들. 몸통은 없고

커다랗고 퉁퉁한 머리에 툭 튀어나온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똑같다.

아마 그는 이 인형들에서 힌트를 얻었던 건 아닐까.

이 인형들은 달마대사의 얼굴을 목각인형에 담아낸 것들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여기에 힌트를 얻어 작품 속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는 머리인형 세개를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엄하게 눈내리는 긴긴 밤 애기들이 이 인형들 갖고 노는 방식이 딱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사방으로

툭툭 치고 다니며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여기저기 데굴거리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인형은 근엄하다못해

살짝 멍청해보이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2층짜리 건물에 빽빽하게 전시되어 있는 코케시인형과 달마인형들을 구경하고 나서 1층 기념품샵으로

내려가는 길, 계단을 내려오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천장에도 코케시인형 모양의 길다란 연이 하나

걸려있었다. 바람을 받고 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인 형태라서, 다시 보니 연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


기념품샵에서 눈에 콕콕 박히던 이쁜 코케시인형들. 생각보다 가격이 좀 센 편이어서, 사이즈로 봤을 떄

8촌짜리 인형이 거의 5000엔에 육박하고 있었으니까, 한국돈으로 따지면 거의 6-7만원 수준인 셈이다.

그래서 눈을 돌렸던 건 부채. 코케시 인형의 오묘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찡긋 웃는 듯한 눈매와 장난스런

입매가 그대로 살아있어 요모조모 눈여겨보게 된다. 게다가 그 트레이드마크같은 단발머리를 그대로 살려서

부채에 그려놓은 '코케시 스마일!'부채였다. 


그리고 쯔가루지방의 민속공예품 중의 하나인, 아이들 장난감일 수도 있겠고 빠찡코를 즐기는 어른들의

장난감일 수도 있겠고, 마치 룰렛처럼 생긴 팽이. 다양한 모양으로 숫자판 위에서 도는 팽이들이

신기해서 계속 돌려보고 사진찍고 돌려보고 사진찍고, 멈추기 전에 사진찍고.


쯔가루전승공예관 입구에 있는 야외 천연온천족탕에 앉아 따뜻한 온천물에 족욕도 즐길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다. 날씨가 너무 뜨겁지만 않으면, 그리고 일정에 여유만 있으면 잠시 양말벗고 앉아서 쉬는 것도

딱 좋겠다 싶었던 공간. 추운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면 더욱 멋질 듯.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1일차 (인천-아오모리-고마키)


12:30 인천공항 출발
14:50 아오모리공항 도착

17:00 고마키, 핫쇼쿠센터 도착

18:30 고마키 아오모리야 호텔(일본 100대 온천호텔) IN

21:00 아오모리 남부 민요쇼(엔카, 쯔가루샤미센 연주 등)


 

2일차 (고마키-도와다-카즈노)

09:00 호텔 OUT


10:20 도와다, 오이라세계류 도착


12:00 점심
13:00 도와다호, 도와다신사, 소녀상 관람

15:00 카즈노, 히메노유 호텔 IN


18:00 만찬(일본 전통 카이세키요리)




3일차 (카즈노-쿠로이시-히로사키-시라카미-오와니)

08:40 호텔 OUT
10:00 쿠로이시, 네프타마을 도착 (쯔가루전승공예관, 코케시관)


12:00 점심
13:00 히로사키, 히로사키성 도착


15:00 시라카미, 시라카미산지(세계자연유산) 도착



18:00 오와니, 아오모리 로얄호텔 IN



4일차 (오와니-아오모리-인천)

09:30 호텔 OUT


10:20 아오모리, 산나이마루야마 공원 도착


12:00 점심
12:50 AEON 쇼핑센터 도착


14:30 아오모리공항 도착


16:40 아오모리공항 출발
19:20 인천공항 도착







 

하코네의 어느 료칸, 잠깐 들러서 온천욕만 즐기다 갈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숙박을 하며

온천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데, 도쿄에서 꽤나 떨어진 하코네까지 와서 하루만에

돌아가거나 료칸 대신 일반 숙소에 머무는 건 좀 아닌 거다. 분명히 싼 가격은 아니지만

온천의 질이나 시설들, 그리고 숙박비용에 포함된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워낙 훌륭하니

절대 강추. (훌륭한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하코네, 어느 료칸의 감동적인 저녁식사.)

료칸 입구 신발장에 정리되어 있던 색색의 게다들. 아무거나 본인이 원하는 걸 골라서 신고 다닐수

있었는데, 따그닥 따그닥 소리가 재미있어서 신고 나가선 가볍게 동네도 한바퀴 돌아봤다. 생각보다

굽이 높고 발 앞굽과 뒷굽사이 간격도 좁아서 뒤뚱뒤뚱, 여자들 킬힐 신음 이렇지 않을까 싶은

느낌으로 신발 위에 올라타서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던.

삼층짜리 료칸 건물 옆에는 정기적으로 하코네 역과 료칸 사이를 오가며 손님들을 옮기는

고풍스런 수송차량이 한대 서 있었다. 버스라기에도 뭐하고, 승용차라기에도 뭐한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한 차. 조금 일찍 시간을 맞췄으면 이 차를 타고 편하게 료칸에 도착했을 텐데,

돌아다니다가 늦어서 택시를 타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해서 들어왔댔다.

료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신사. 밤이라 많이 어둑어둑해지고 나니 왠지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안으로 들어가보려다가 포기하고, 여기서 짧은 게다 산책은 끝.

복던져주는 고양이야 뭐, 한국에도 이미 워낙 많이 퍼진 일식 밥집과 술집들에서 익숙하지만

이렇게 천으로 만들어진 건 못봤던 거 같다. 도자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좀더 따뜻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고양이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나무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나서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고스란히 되비치고

있었고, 나무색이 가득한 안온한 일층 로비의 분위기는 이층, 삼층의 객실과 식당 같은 곳까지

전부 이어져 고급스럽고 편안한 기분을 주었다.

한쪽에는 이렇게 유카타를 진열해놓기도 하고, 회의나 기타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방도

마련해 두었다. 여럿이면 오면 저런데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ㅎ

남녀 욕탕으로 들어가는 앞에는 이런 100엔, 200엔짜리 뽑기 기계도 놓여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려는 용도 아닐까 싶지만 또 잘 살펴보면 하코네의 특색이 담긴

뭔가를 뽑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른들도 기념품삼아 한번 돌려봄직 하겠네, 싶어졌다.

고양이 인형이니 클래식한 돌림식 전화기니 료칸 복도나 벽면을 꾸미고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눈길을 붙잡아 두는 것들이었다. 미처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밤새도록 울어대는 귀뚜라미들

소리가 어디선가 녹음해둔 걸 무한 재생시키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귀뚜라미들을 잡아서

기르는 통 안에서 '쌩 레알'로 난 거라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고양이 문양이 가득한 벽면도 있고. 유카타를 입은 내 모습도 비쳐보이고.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고양이 인형들, 어디서 요런 귀여운 것들만 모아뒀는지, 장식품들

하나하나가 다 허투루 만들어진 싸구려같진 않은데.

그리고 아마도 이 토끼는 몸 속에서 양초나 향을 태우는 용도로 쓰이는 거 아닐까. 아랫배 쪽에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걸 보면 저기서 뭔가 연기가 송송 나오던 불빛이 새어나오던.

이제 방 내부로. 간결한 수납공간과 거울이 붙어있고, 역시 하얀 벽지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뼈대가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휴지 케이스도 '깔맞춤'해서 은은하고 차분한 갈빛으로

씌워두었고.

이런 디테일에 대한 세심함, 형광등 스위치까지도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나무결 분위기가 묻어나는 걸로 챙겨서 설치하는 점에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검은색 흰색 두 가지 종류의 면봉과 솜까지도 넉넉히 구비해 두고,

반지나 귀걸이니, 액세서리들을 따로 챙겨둘 수 있는 이런 접시도 있어 빼두고 다시 찾기도

쉬웠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여서 료칸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더할 나위없는 흡족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는 거 같다.

그리고 희뿌옇게 동이 터오던 아침, 간단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전날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던

그 식당으로 다시 내려갔다. 아침식사는 또 어떨지, 간소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법 설레는 마음으로.

확실히 저녁 메뉴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기본 세팅부터가, 젓가락도 그렇고.

우선 상큼한 냉국과 크리미한 계란찜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식욕을 좀 다독다독 일으켜세우고.

생선튀김이 한마리 나오고 끈적끈적한 마가 데코레이션처럼 살짜기 놓였다.

커다란 밥통에서 이런 이쁜 공기에 밥을 퍼서 조금씩 생선이랑 먹기 시작했더니 또 금세

식욕이 깨어났다. 온천을 하고 나니 아무래도 금방 배고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식욕도

빨리 돌아오는 거 같고.

유부피에 쌓인 어묵이 오드득오드득, 찰지고 탱탱한 식감이다. 국물도 시원하니 좋았고.

일본식 미소국은 확실히 우리네 된장국이랑은 다르다. 좀더 맑고 간질간질한 느낌이랄까,

우리네 된장국이 좀 텁텁하고 맛이 진한 것에 비하면 그런 거 같다.

디저트, 오미자 한 알이 폭 박혀있는 푸딩이 나왔다. 이쯤되면 정말 제대로 나온 아침식사다.

아침부터 생선 한마리를 다 먹고, 큰 밥통의 밥을 또 거진 다 먹고, 이런저런 사이드디쉬의

음식들도 다 먹고 후식까지 먹었으니. 여행다니며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게 꽤나 중요한데

이 정도면 든든한 정도가 아니라 점심을 한참 늦게 먹어도 될 듯.

그러고 방으로 돌아가니 간식으로 들어왔던 검정깨 푸딩,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 있어서

마저 또 다 먹고서 그야말로 정말 든든해져서, 1박 2일 하코네 료칸에서의 온천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갈 준비는 끝~*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해서 전철, 산악열차, 유람선, 곤돌라 따위를 타며 하코네를 돌아보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어느 료칸, 예약자명을 대고 입실하고 나니 푸짐함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다다미식당엔 발이 내려뜨려져 있고 마치 명패를

붙여놓듯 각 좌석마다 료칸 투숙객들의 이름을 붙여두었고, 그쪽으로 인도해주던 아가씨는

영어가 조금 짧았지만 생글거리는 미소와 친절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젓가락을 받치고 있는 토끼도 귀엽지만 젓가락을 묶어둔 일본전통종이 재질의 띠지도

고급스럽다. 사실 토끼 표정은 살짝 '자살토끼'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가 여태 봐왔던 수많은 물수건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만한 걸 여기서 만났다고나 할까.

검은 바탕에 알록달록 큼직한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 수건이었는데, 면이 헤지지 않아

털도 두툼하니 포실포실한 느낌이 들었고 따뜻하면서 깔끔한 느낌이 좋았다. 이후로

나오게 될 음식들의 질과 맛을 기대하게 만들던 그럴듯한 '에피타이저'랄까.

이내 내온 음식들,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갔던 이 료칸에서 은근히 토끼 장식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씨알굵은 밤이니 참치니 생선알이니 따위가 금빛 접시에 담겨나왔고,

그 위에는 하얀 무로 깎여진 눈빨간 토끼 한마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금빛 접시에 올라있던 시원한 음료랄까, 냉국이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알맹이가 자작한 국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탱글탱글한 느낌이 잔뜩 전해지는 노란색 묵, 위에 살짝 얹힌 와사비와

초록색 별모양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단순히 미각적인 기대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날 먹어'라고 맹렬하게 유혹하는 음식들.

이제 주메뉴, 하코네 멧돼지고기 샤브샤브. 커다란 접시에 야채도 제법 풍성하게 나왔고,

깔끔하게 썰린 돼지고기들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기온열기 위에 등나무로 만들어진 소쿠리를 올리고 기름종이를 받치고는 육수를 부었다.

그렇게 한겹의 얇은 종이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돼지고기와 야채들, 불이 거의

손실없이 그대로 전달되어선지 순식간이었다. 야채들은 거의 데친다는 느낌으로 끓는 물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먹기 시작했고, 돼지고기는 조금은 더 익혀서.

샤브샤브를 먹는 새 반찬들이 나왔다. 반찬이랄까, 사이드디쉬랄까. 반찬이라기엔 하나하나

단품으로도 너무 훌륭한 것들이어서, 또 딱히 밥이랑 먹는 것들도 아니어서.

밥이 그리 작지 않은 통에 담겨나왔고,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바닥을 보인 채 나뒹굴고 만 밥통. 하루종일 하코네 산간을 돌아다니느라 적잖이 지치고

배고팠던 상황이라곤 해도, 굉장히 맛있게 많이 먹었던 저녁식사였다.

그렇게 야채 한 점 남기지 않고 완전히 싹 비어버린 샤브샤브 접시도 나뒹굴고. 남은 건

애초 서빙될 때 꽂혀 왔던 '하코네멧돼지'가 꿀꿀거리는 화살표 하나.

그리고 디저트, 소복하니 상큼한 과일샤벳과 촉촉한 치즈케잌, 그리고 말차 냄새가 진하게 나는

모찌 두조각에 커피가 나왔다. 정말 디저트까지 한치의 허술함이 없는 훌륭한 만찬이구나, 싶은

느낌이 팍팍 들게 만들던 것들. 새삼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보아도 참...언제고 다시 한번

료칸의 굉장했던 온천욕 시설을 만끽하고 나서 저 만찬을 맛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소소한 디테일도 정겹기 그지없던 료칸의 식당 액세서리들. 젓가락을 받쳐주던 토끼들도

그렇지만, 이쑤시개를 담아두고 있던 저 쇼핑백 모양의 통도 참. 정말 종이쇼핑백을

펼쳐놓은 채인 양 옆에 라인도 들어가있을만큼 디테일하던.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 도쿄, 편의점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신주쿠

@ 도쿄, 미타카역 인근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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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미타카역에서 사서

@ 도쿄, 에도도쿄건축공원에서 먹다.

@ 도쿄, 지하철 자판기

@ 도쿄, 편의점
@ 도쿄, 에비스 맥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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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코네, 자판기

@ 하코네, 유황온천 달걀과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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