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한시간 반,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날은 굉장히 흐리고 꿀꿀한 게 금세라도 비나 진눈깨비가 내릴 듯한 날씨였지만 호수의 수면은 거울처럼 매끈하다.

 

 

백조가 유유히 직선을 그어내는 호수 너머 조그마한 섬, 매직 아일랜드같은 느낌으로 버틴 섬을 꽉 채운 성모승천 교회.

 

 

그리고 100여미터의 절벽 위에 서 있는 블레드 성. 무려 천년 동안이나 저 위에서 호수를 굽어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모양의 (아마도?) 쓰레기통, 그 넓적한 입매가 장난스럽게 비틀어졌다.

 

 

백조님의 클로즈업 샷. 어찌나 깃털이 발수기능이 좋으신지 머리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호수는 엄청 커서, 둘레가 대략 6키로미터라고 했던가. 겨울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여름엔 무지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덩굴처럼 자라난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이 수면 위로 스물스물 그림자를 드린 가운데 새하얗게 우아한 백조가 그리는 궤적.

 

 

아직 날은 춥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지만 여지없이 봄이 내딛는 발자욱은 한걸음씩 진군 중이었다. 꽃망울을 여기저기 터뜨리며.

 

 

 

블레드 성에 오를 즈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그칠 기미없이 점점 세차진다 싶더니 급기야 호수 표면에 셀수없는 구멍을 내버렸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그어갈까 했지만 아직 다들 잎사귀조차 제대로 틔우지 못한 앙상하고 헐벗은 나무들.

 

 

중간중간 블레드 호수로 모이는 개울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드높아졌다.

 

 

 

블레드 섬과 호수 둘레길과의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던 즈음, 두마리 조그마한 오리들이 섬을 향하듯 호수면을 미끄러지고.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호숫가에는 차가운 빗물이지만 쉴새없이 내리며 조금씩 겨울의 흔적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블레드 호수의 둘레길, 블레드 성에서 산 와인 한병을 들고서 홀딱 비 맞고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병나발 부는 맛이란. 캬.

 

 

 

 

원래 블레드 섬까지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다고 해서 그것도 타보고 싶었지만, 워낙 비수기에 와버린 데다가 이렇게 비가 내리니

 

들어가는 건 포기해버렸다. 그 안에는 '소원의 종'이 있는데 그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내게 소녀시대가 있으니 괜찮아.

 

 

 

섬 주변에는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곳곳에 있고, 블레드 성같은 오랜 유적도 있는 데다가, 레스토랑이나 까페도

 

뭉탱이 뭉탱이 몰려 있다. 이 건물도 뭔가 까페인 거 같은데, 비수기라 역시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블레드 섬의 360도 뷰를 찍어볼 기세로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와인병을 기울이며 사방에서 찍어댄 결과물들.

 

 

 

그리고 호수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더이상 촬영은 무리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집어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담은 블레드 성의 옆모습. 얼짱각도에 수렴하는 45도 비껴난 샷이다.

 

다시 블레드에서 류블랴나로 가는 버스 안. 옷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홀딱 젖어서 무척이나 묵직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빗물이 진눈깨비나 눈발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날이 좀더 푸릇푸릇하고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비를 쫄딱

 

맞으며 와인 한병을 병나발 불며 호수 한바퀴를 도는 경험이란 것 역시 나무랄 데 없다.

 

 

 

 

 

공지천을 굽어보는 테라스 난간, 아가씨가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다. 옷자락이 나부끼고 바람이 불었다. 가느다란 팔목에

 

살풋 긴장이 어렸다. 피리를 어루만지던 손가락들이 바람을 더듬었다.

 

 

 

 

 

플라잉 구스, '날아다니는 거위'로 유명하다는 가게가 뭔가 했더니, 홍콩을 들르거나 살았던 외국인들이

 

귀국할 때면 전부 이 곳의 거위 요리를 사들고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라나.

 

 

웨이터가 건네주는 메뉴가 무려 세가지. 하나는 일반 메뉴랄까, 기본적인 요리들이 나와있고 다른 하나는 이곳

 

융께이 레스토랑의 수상 경력이라거나 수상 요리에 대한 소개, 마지막 빨간 표지는 완전 특별한,

 

각종 요리대회 수상 요리들로 채워진 코스 메뉴.

 

베이징 카오야랑 조금 비슷하게 바삭하고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있는 부드럽고 담백한 거위 살이 맛있었다.

 

혼자 가서 2-3인분이라는 레귤러를 시켰는데, 사실 3-4인분이라고 표기된 반마리나 한마리를 시켰어도

 

완전완전 만족스럽게 다 먹었을 듯.

 

저 거위 껍질에 잘잘 흐르는 윤기하며, 부드러운 고기 위에 살짝 얹힌 채 바삭바삭함이 살아있다.

 

 

두번째 메뉴에 있던 온갖 수상경력들. 홍콩에서 유일하게 포춘지에 선정된 세계최고 레스토랑 15선 중 하나라던가.

 

 

그렇게 거위 요리를 맛봤지만 조금 모자라다 싶어서, 로제와인에 재워만들었다는 족발요리도 하나 더 시켰다.

 

음. 이건 뭔가 반찬도 같이 주문했어야 했거나 다른 채소 요리랑 같이 먹었어야 했을 듯.

 

 

레스토랑 입구에 걸려있는 잘 조리된 거위들. 저 노릇노릇한 껍질하며, 반질반질한 윤기하며.

 

나중에 가면 세번째 메뉴에 있었던 그 특별 메뉴들이 즐비한 코스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데, 가격은 굉장히 비싸단 느낌.

 

그렇지만 요리의 천국 홍콩에서 이런 거 한번 먹어보는 호사를 누리는 건 분명 꽤나 기억에 남을, 행복할 경험일 거다.

 

 

 

 

 

유후인역에서부터 유후인아동공원을 지나 드디어 유후인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곳, 긴린코 호수 초입에 도달했다.

 

슬슬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살짝 목이 마르다 싶던 타이밍, 일본까지 와서 물을 사 마시느니 음료를 사마시고 까페에서 차를 마시는 게

 

낫겠다며 계속 그런 걸 마셨던 차에, 저렇게 신기한 '오이 막대'라니. 살짝 짭조름하게 간이 밴 오이가 와삭와삭.

 

기운이 불끈 돋아 씩씩하게 걷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보이는 한글들, 그리고 한국인들의 한국말 소리들.

 

 

긴린코 호수 주변을 어슬렁대는 오리들, 처음에 조우했을 때는 정말 화들짝 놀랐는데, 그런 사람 따위 관심도 없는 듯

 

시크하고 여유로운 뒤뚱거림으로 이내 시야를 벗어났던 오리 한 마리.

 

 

드디어 눈 앞에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호수가 쫙쫙 양팔을 벌린 만큼 커지는 것만 같았다.

 

'긴린코'라는 호수 이름은 金鱗湖, 즉 금색 비늘 호수라는 뜻으로 풀이하면 될 텐데, 석양에 비친 물고기들의 비늘이

 

금빛으로 번쩍거린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호수 수면 아래로 팔뚝보다 굵은 물고기들이 미끄러지듯 유영중이었다. 아침해가 빛날 때나

 

저녁해가 가라앉을 때쯤에는 정말 꽤나 볼만하겠다 싶다.

 

 

알고 보니 이 '긴린코 호수'의 물 절반은 뜨거운 온천수, 나머지 절반은 차가운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자욱하게 물안개를 피워올린다고 하는데 일정상 그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한낮의 쨍쨍한 햇살 아래에도 짙푸른 녹색이 시원하게 수면 위로 내리깔린 긴린코 호수의 호젓한 분위기나

 

드문드문 호수를 내려다보는 찻집이나 레스토랑들, 잠시 앉아 쉬어가며 시간을 붙잡아 두기에 딱 좋은 곳.

 

멀찍이 신사도 보이고, 저건 왠지 일본 애니메이션 '지옥소녀' 오프닝에 나오는 그 곳 같은 느낌.

 

 

긴린코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산은 유후인의 명산 유후다케, 유후인 마을에서도 멀찍이 보이던 그 산자락이다.

 

 

 

호수변에 피어난 노란 꽃들이 제법 뜨거운 햇살에 축축 늘어졌다. 호숫물을 쭉쭉 빨아올리란 말이다.

 

 

유후인의 소로들을 거닐 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 울창하게 숲을 이룬 커다란 나무들과 드문드문 호숫가에

 

모로 누워버린 나무들이라니. 꽤나 깊숙한 자연 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거나 이리저리 에둘러가는 길들이 꼬불꼬불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이미 유후인 료칸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며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으니 굳이 다 돌아보진 않기로 했다. 잠시 짙은 녹색 그늘 아래서 쉬다가 유턴.

 

긴린코 호수 옆을 빠져나가고 다시 샵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가기 전, 아까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이쁜 가게가 하나.

 

 

인력거가 조금 탐이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과연 이런 뜨거운 날씨에 사람이 헉헉거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끄는데

 

나몰라라 맘 편하게 저 위에 앉아서 갈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어서 패스.

 

슬슬 유후인역까지 걸었다.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무지무지 오래, 대충 네다섯 시간 걸렸던 거 같은데

 

여기저기 한눈 안 팔고 적당히 슬슬 내려오니깐 고작 30분쯤 걸렸으려나. 조금 이르지만 유후인에서 먹는 마지막 간식..이랄까

 

혹은 이른 저녁 part1이랄까, 유후인 수제버거.

 

 

이제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나가는 가장 늦은 고속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하카다역 버스터미널로~*

 

 

 

 

 

 

뚝섬쪽 한강 고수부지, 서늘한 강바람을 쐬며 커피라도 한 잔 하려 갔을 뿐인데 한강 위에

온통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뭔가 가만히 살펴보니 목에다가 야광 목걸이를 차고 있는

오리보트들이 둥실둥실. 페달을 밟아대는 그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무래도 밤이라

그런지 서로 적정한 거리를 예의바르게 지켜가며 그저 한자리에서 둥싯둥싯 물결을 타넘고

있었다. 목에다가 빨강 형광목걸이, 파랑 형광목걸이를 차고 있는 오리들이 십여마리

한강 위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외려 낮의 모습보다 이뻐보였다. 한번 타봄직한.

한강변에서 터지는 싸구려 폭죽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다운되는

거 같다. 피식, 펑, 피식, 퐁, 쉭, 폭..그런 식으로 짧게 던져지고 쪽팔린지 서둘러 터지는 폭죽을

보면 왠지 인생무상함이 짙게 느껴지고 별 거 없다, 싶은 맘이 커지는 거다. 그래도 그나마 가끔

제대로 피육, 쏘아올려져서 퍼엉, 하고 여운이 남게 터지는 당당한 폭죽을 예기치 않게

바라보며 즐기는 낙이 있으니 매캐한 화약냄새를 기꺼이 맡고 싶어지기도 한다.


키스데이라는 6월의 14일, 한강에서 오리보트 페달을 밟다가 문득 키스라도 한번 하거나,

쪽팔린다 싶으면 수줍게 터지는 폭죽 몇 방으로 분위기 쇄신하고 다시 힘내서 시도함이 어떤지.

그러고 보니 꽤나 괜찮은 하루의 마감일 듯.
타이완의 야시장음식, 길거리음식도 워낙 유명하지만, 허름한 길가 음식점이나 조금 고급스런 수준의 음식점의

음식 역시 뭐 하나 맛이 없는 게 없었다. 상해나 북경에서 맛봤던 중국음식들도 대개 맛있었지만 대개 음식점들

내부는 기름때가 손닿는 모든 곳에 쩔어 있고 기름쩐내 역시 음식점 내에 꽉 들어차 있었다면, 바로 그런 위생상의

문제가 깔끔히 해결된 채 중국 요리의 맛까지 놓치지 않은 게 타이완의 음식점인 듯.

타이완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콩국', 두유, 혹은 그냥 영어로 소이밀크, 라고 하면 다들 알아들었었다.

아침으로 워낙 많이들 먹는지 파는 곳도 굉장히 많고, 들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는데 콩을 갈아

직접 만들고 며칠 만에 소진해서 새로 만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찬 것과 뜨거운 것, 두 종류로 팔던데 찬 두유를

마시면 기운도 나고 땀도 식고. 아침식사로 딱.

아침으로 두유와 함께 먹는 샤오삥(小餠), 깨가 가득하게 뿌려진 채 파삭파삭하고 고소하니 따뜻한 빵만 따로

팔기도 하고, 계란을 스크램블 에그처럼 으깨넣어 팔기도 하고. 
 
타이완에 가면 누구나 '딘타이펑' 본점을 순례하듯 들르곤 하지만, 사실 길거리 이름없는 가게에서 파는

'샤오롱빠오(小龍包)'도 뜨거운 육즙이 그득하게 들어있었다.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101빌딩 내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본 적도 있었다.

한국의 LA갈비와 비슷한 요리, 좀더 짭조름한 맛이 덜하고, 바닥에 상추가 깔려있더란 점 이외에는 비슷했던 듯.

이건..뭐더라..돼지 고기로 만든 음식이었는데, 오향장육이었던가.. 부들부들하면서도 쫀득한 돼지 껍데기 부분이

간장이 주 베이스로 이뤄진 양념에 포옥 안겨있었다. 그리고 옆엔 썰은 파와 고수.

그 고깃덩이와 채소들을 이 빵에 가운데에 넣어서 먹는 거다. 깨가 촘촘히 틀어박힌 빵 속에 젤리처럼 포들한

돼지껍데기와 고기가 웅크리고 들어가서는 따끈따끈, 쉼없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는.

고궁박물관 찻집에서 맛보았던 '애프터눈티' 세트. 호박과 오리와 배추가 이쁘게 올라와 있었던 고급스런 다과.

그리고 개구리 난소였던가, 뭔가 굉장히 독특한 내용물이 들어가 있던 독특한 후식, 시원하고 대추가 들어가

있어 달콤하고, 부석부석한 덩어리들의 식감 역시 묘하게 이끌렸었다.

101빌딩 89층 전망대에 있던 소 한 마리, 냉기가 뿜어나오는 아이스크림을 꼬나쥐고, 우람한 젖통을 불끈

내 보인 채 서 있던 풍경이 넘 재미있어서 한 방.

우육면, 뉘오우룽미앤. 고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우육면과 우육탕면의 이름이 바뀌고 가격이 배로 차이가

나던 바로 그 메뉴. 고기가 무슨 맛난 갈비탕에 담긴 갈비살처럼 보들보들 야들야들.

돼지 귀 잘라 무친 것과 콩으로 만들었다는 소세지 모양의 반찬, 반찬은 한 접시에 40NTS던가, 돈주고 따로

샀어야 했다. 콩으로 만들었다는 저 소세지 같은 건..뭔가 아무 맛도 안 나는 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쫄깃한

식감 때문에 마법처럼 손이 계속 이끌리더라는.

융캉제 주변의 刀麵, 일종의 칼국수 집에서 맛보았던 국수. 손으로 한 반죽을 칼로 설설 썰어내는 통에 두툼하고

얇은 면의 다양한 부분에 제각기의 개성실린 맛이 났다.

 그 유명한 융캉제의 얼음빙수. 삥관, 혹은 아이스몬스터라고 불리는 그 곳에서 먹었던 망고 빙수는 과연 최고.

얼음의 부드러움은 밀탑빙수의 뺨을 치고, 망고의 달콤함은 뭇 과일을 무색케 하며, 야박하게 흉내만 낸

망고 시즈닝이 아니라 그야말로 풍족하게 올려주는 망고를 씹다보면 혀를 씹어도 모른다는.;

혹은 난징둥루의 브리즈센터 지하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반짝이던 홍등 아래 먹었던 음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뭔가 마나 감자나 그런 뿌리식물을 갈아서 만든 것 같은 떡과 같은 에피타이저. 알고 보니 '무' 떡이랜다.

돼지 족발과 비슷하면서도 좀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찜한 느낌이 강하던 음식, 청경채와 함께 찰진 면발 위에

올려져서 함께 먹어줘 함께 먹어줘, 요러고 있었다. 녀석의 소원대로 발가락 사이뼈를 하나하나 분해해가며

남김없이 먹어 치워줬다는.

사실은 베이징 카오야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하고 패스, 꿩 대신 닭, 아니 오리 대신 닭으로 카오야와

비슷하게 바삭한 껍질을 가진 닭요리를 시켰다. 메뉴판의 그림과는 달리 생각보다 카오야와는 많이 거리가

있었고, 차라리 후라이드치킨에 좀더 가까웠던 요리.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라면, '삐딴'을 제대로 맛보았다는 점.

* 네이버 참조 : (중국 요리에서) 오리알이나 달걀을 나무의 재·소금·생석회가루를 섞은 것에 두 달 이상 담근 것. 흰자위는 투명한 적갈색, 노른자위는 진한 녹갈색이 됨. 피단.

그리고 국내에서 이러저러한 기회에 맛보았던 삐딴과는 달리, 타이완에서 몇 번씩이나 맛봤던 삐딴은 일관되게

다른 특징을 보여줬다. 진한 녹갈색의 노른자가 거의 생크림처럼 보드라와져 있다는 점. 심지어 나무젓가락으로

슬쩍 크림 떠내듯 건드리면 노른자가 크림처럼 떠진다는 사실. 게다가 향도 훨씬 진했다.

닭발 요리, 한국에서처럼 뼈없는 닭발 요리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건 뼈가 알알이 박혀 있는 닭발.

닭발하면 매콤한 맛만 떠올리게 되는 한국인의 상식을 깨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꽤나 좋았다.

그리고 새우 두 마리가 박혀 있던 촉촉한 밀병 요리. 미끈하면서 쫄깃한 게 떡을 얇게 펴서 그 안에 새우를

박아넣은 듯 했다. 좀 새우랑 껍데기랑 따로 노는 느낌은 아쉬웠지만, 나름 묘한 조합.

두화, 한자로는 豆花, 콩꽃이란 뜻이 되려나. 푸딩처럼 야들야들하고 탄력있는 순두부에 팥이니 타피오카니

아몬드니 원하는 토핑을 얹어서 먹는 디저트 메뉴다. 단팥을 선택하고 나니 약간 실망했던 게, 팥의 향이나

맛이 너무 강해서 '두화'가 그냥 단팥죽처럼 느껴지고 말았다는 것,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다면 타피오카나

아님 그냥 토핑없이 심플하게 먹어 봤을 텐데.




(요약)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 박물관에 위치한 찻집에서 맛보았던 황제를 위한 다과 세트.

고궁박물관 가는 길, 아무리 한국이 요새 폭염이니 뭐니 하지만 대만에는 비길 바가 아니다. 훨씬 뜨겁고, 훨씬

습하다.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허둥대다가 하얗게 찍어버린 사진. 버스들 뒤에는 운전사 이름이 번호판처럼

별도로 붙어있다. 오른쪽 밑부분, 하얘서 잘 안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아주 잘 띄인다는. 난폭운전이나 사고

발생시 아주 유용할 거 같다.

드디어 도착, 고궁박물관. 장제스가 이끌던 부패하고 나약한 군대가 마오쩌둥의 붉은 군대에 휩쓸리고 나서,

대륙 본토에서의 패배가 거의 기정사실화되던 즈음 전례없는 군사작전이 펼쳐졌다. 청나라 때부터 북경의

자금성에 수집되었던 대규모의 엄선된 중국 국보급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기는 작업. 수십만점의 회화, 도자기,

조각, 서적 등 귀한 유물들이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무사히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사실 이건 대만 쪽, 장제스 쪽의 시각이고, 중국 쪽, 마오쩌둥 쪽의 시각으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중국 문화의

정수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셈이다. 지금 중국에 남아있는 유물들은 청나라 때부터 누대에 걸친 정선 작업을

통과하지 못한 B급 유물이 대부분이라 할 정도니까. 고궁박물관은 그런 박물관이다.

마치 타지마할처럼 온통 하얀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가야 고궁박물관의 본관에 도착한다. 그 와중에 계단의

장식이 눈을 잡아끌었다. 구름 모양인지 십장생의 하나인 영지버섯의 모양인지. 저 너머로는 야자수가

수양버들처럼 휘영청 잎새를 드리우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총 3층, 내부는 거의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더욱 꼼꼼이 살펴보아야 했다. 사진 따위에 의지해

기억을 남겨둘 수 없으니, 하나하나 눈에 마음에 새겨두겠다는 결의로 근 반나절을 돌아보았다. 특히나 도자기,

그리고 황제의 장난감으로 특수 제작되었다는 보석함이니 장식품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꺼이 많은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청대의 도자기와 현대의 도자기 질감을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마련해둔 코너에서 마주쳤던 '조각'.

이건 무려 네 자의 한자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글자. 중국이나 대만의 상점에서 재운을 기원하는 뜻으로 종종

걸어두는 장식품이라 하는데, 招財進寶, 초재진보. 재물을 부르고 보배를 나오게 하려는 뜻이 담겼다 한다.

그리고 박물관 내의 화장실 표지. 남여화장실이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지만, 별도로 여자화장실만

좀더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일인당 '용무'에 필요한 공간이 남자보다 여자가 넓게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갯수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세심한 조치가 아닐까 싶었는데, 종종 급한 남자들이 여자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나 보다.

박물관 나오는 길, 유리로 만들어진 자동문에 마치 자금성의 붉은색 대문처럼 오돌토돌 징이 박혀 있었다.

본관 말고도 별관도 있고, 행정용 관리관도 따로 있고. 별관에서는 지금 베트남 특별전시를 열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돌아보기에는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넘 많이 걸릴 듯 하여 패스.

대신에 좀 쉴 겸, 박물관에 딸려 있는 찻집에 들어갔다. 찻집 이외에도 고궁박물관을 감싸고 잘 조경되어 있는

정원과 정자 등도 있어서 어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절실했던 터라 망설임없이 실내로.

찻집 내부. 황실에서 즐기던 다과 세트를 맛 볼 수 있다는 곳이라더니, 실내 인테리어가 꽤나 화려하고 세련됐다.

모란차를 시켰더니 투명한 유리잔에 조그마한 잎새가 꽁꽁 뭉쳐진 덩어리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정말이지

건조한 느낌으로 툭. 그리고 유리잔 주둥이가 찰박이도록 뜨거운 물을 뽈뽈뽈 부어주었다.

뭉글뭉글뭉글,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하는 덩어리. 바싹 말랐던 만큼 급했던 거다. 뭔가 잔뜩 뒤틀고 꼬깃꼬깃

말려있던 것들이 한껏 기지개키며 일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유리잔을 꽉 채워버린 꽃 한 송이. 초록색 꽃받침과 분홍색 꽃잎, 그리고 위풍당당한 수술까지 꽃송이

하나가 완연하게 피어올랐다. 투명했던 유리잔 속 물빛도 은은한 금색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향기. 꽃향기.

모란차 말고 일반 녹차류를 시키면 이렇게 단정한 다기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메인, 다과 세트. 정말 그럴 듯한 쟁반-이걸 뭐라 불러야 할지조차 모르겠지만-에 담겨 나왔다.

3층, 2층, 그리고 2층짜리 쟁반이 제각기의 높이와 공간을 확보한 채 이쁘게 빚어진 다과를 사뿐히 올린 채다.

콩으로 빚어진 오리 한 마리. 물결문양 날개깃이 새겨진 날개하며, 우스꽝스럽게 벌어진 부리하며. 검은깨로

콕 눌러박은 귀여운 눈매하며.

그리고 호박모양으로 빚어진 떡, 호박색도 딱 리얼하지만 그 위에 호박 줄기를 묘사하려고 올려둔 건포도는 참.

고궁박물관의 유명한 전시물 중 하나가 황제의 장난감이라는, 옥을 빚어 만든 배추다. 아마도 이 전시품을

흉내내어 만든 게 아닌가 싶은, 떡으로 빚은 배추.

그리고 복숭아 모양으로 빚어진 만두..라고 해야 하나. 호빵이라고 해야 하나. 비록 좀더 허술하고 치졸하게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복숭아 모양의 호빵은 그리 신기한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맛은 달랐다.

그리고 젤리 형태로 만들어진 다과. 투명하면서도 굉장히 탄력있는 젤리였는데, 의외로 맛은 어쩐 영문인지

굉장히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독특한 식감이었다.

그리고 1층에 담겨 있던 다른 다과. 이 아이는 좀 평범한 형태의 떡이었다. 아무래도 1층에 있는 것보단

2층에 있는 것들이 화려하고, 그 중에서도 3층에 있는 오리모양으로 빚어진 다과가 최고였지 싶다.

또다른 떡, 카카오 가루를 아낌없이 뿌려넣은 떡이었는데, 고명이 평범한 팥이 아니라 검은쌀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찻집 천장에 달린 조명도 자세히 보니 고궁박물관의 다른 유명한 전시품을 따라 만든 모양이다. 고대한자가

조각된 청동종의 형태가 천장에 주렁주렁.

이쁘게 빨간색 파란색 끈으로 매만져진 하얀 종지들.

여전히 햇살은 미친듯이 내려쬐고 있었고 남국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야자수 한 그루가 박물관 앞 정원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지만,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황제의 다과를 맛보고 났더니 뭔가 세상이 색다르다.

70만점이 넘는 소장품을 갖고 있다는 고궁박물관, 70만점이면 루브르 박물관이 가진 소장품의 배가 넘는 숫자,

게다가 그 퀄리티가 중국 오천년 역사의 정수를 품고 있는 수준이니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전시품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있는 찻집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며 차 한잔 여유롭게 즐기는 여유까지 부려보는 것,

대만에서 꼭 고궁박물관을 들러야 한다는 사람들의 조언에 나 역시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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