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福岡)이라는 지명을 풀어보면 '행복의 언덕'이란 뜻 정도 되려나? 그곳에서 지냈던 며칠동안의 추억을

마음 가득, 그리고 카메라 가득 담아서는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아사히맥주공장에서 공장
견학과 함께 맥주

시음도 맘껏 하고, 다자이후에 가서 텐만구, 큐슈박물관, 고묘젠지, 그리고 엉성하게
한글 광고가 써져있던

가게들도 구경했다. 이수영 뮤직비디오에 나왔다는 유센테이코헨, 한때 큐슈번주의
별장이었다는 그곳에 가서

한적한 정원을 거닐기도 했고, 라멘과 음식들은 매번 어김없이 성공적이었으며,
아크로스 후쿠오카에서 바라본

후쿠오카의 전경은 굳이 올라가보길 잘했다 싶었다. 캐널 시티나 어딘지
딱히 짚을 수 없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헤매듯이 쇼핑도 했었다. 구시다신사에서 짝짝 박수치며 흉내를
내보았던 건 역시 잘했다 싶고,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가 한국인이라며 반겨주던 텐진 시내 포장마차(
야타이)는 꼭 한번 더 가보고 싶었더랬다.

당연한 듯 길을 잃고서는 지도 탓을 했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레 다른 길로 빠져서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같은 풍경들을 마주했지만, 때로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그저 쉬고 싶은 맘뿐이기도 했다. 같이 배를

타고 왔던 그 많던 한국인 여행자, 혹은 관광객들은 전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아사히맥주공장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관광객들과 맞닥뜨린 때 빼고는 아무 눈치 안 보고 활개치며 다녔었다.

후쿠오카에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 마을을 꼭 가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살짝 섭섭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로 향했다. 사실 '행복의 언덕'

후쿠오카에서는 서울과 부산이 도쿄보다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곳이니 언제든 맘만 울컥하면 달려올

수 있지 않을까..환율만 좀 미쳐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번에 나설 때도 고작 사흘만에 백엔당 원화환율이

백원 이상 올라 천오백원을 넘나드는 바람에 식겁했었다.

터미널 이용권을 구매하고, 유류세를 별도로 또 내야 한다. 유류세는 2,000엔이었던가 부산항에서의 유류세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터미널 이용료는 약간 더 비싼 것 같다. 대인 500엔. 부산항이 2,500원이었던가. 그러고

보면 실제로 여행에서 쓰는 경비 중에 참 많은 부분이 교통비로 들어간다.

마치 공항에 있는 항공사 부스처럼 말끔하게 차려진 게 프레임 내에서는 그럴 듯 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실 저

프레임을 넘어서는 곳에는 벽들이 버티고 있는, 그런 조그마한 여객 터미널이다.

역시 일본, 이라며 한국을 향해 돌아설 때까지 날 감탄케 했던 건 저 반짝거리는 쓰레기 분리수거통. 물론 한국에도

저렇게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도록 구분되어 있는 쓰레기통이 대세라긴 하지만, 하나씩 별도로 세워져 있는 것도

드문데다가 왠지 저렇게 깔끔하게 운영되는 건 못 본 거 같다. 뭐 여기라고 별 수 있겠냐 싶고 알고 보면 어제 밤에

새로 사서 들여놓은 쓰레기통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최소한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봤던 것들은 지방

중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것처럼 퀘퀘하고 지저분했었다.

일렬로 서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배를 타고 있다. 조그맣지만 참 잘도 달리는 배, 비록 바닷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게 꽁꽁 싸매진 상자박스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등버스 정도는 되는 좌석과 안락함이 느껴져서 그닥

답답하지는 않았다. 아마 갑판으로 나가서 바람을 쐴 수 있게 열린 구조라면 벌써 몇 사람은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를 못이기고 날아가버리지 않았을까.

부산으로 향하는데 조금씩 물방울이 창문에 튄다 싶어서, 파도가 높구나 했다. 그런데 날카롭게 찢긴 칼자욱처럼

쭉쭉 늘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둘 그어지더니, 유리창을 가득 덮어버렸다. 海雨.

좌석 앞 주머니에 들어있는 면세상품 쇼핑책자. 저런 식으로 배가 바다 위로 배의 뱃면을 둥둥 드러내놓고 달리다

보니 그렇게 흔들림도 없고 왠만큼 거칠어진 파도에도 크게 영향받지 않나보다. 바다 위로 비가 솔찮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다지 배의 진로에 장애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부산. 짧은 여행은 끝이 나고, 너무너무 길어서 그 사이 누군가는 지쳐 나가 떨어지고 또다른

누군가는 질려서 식욕조차 잃는다는 한평생만큼 이어지는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후쿠오카 여행기 끝.
 


"삶에 대해 곰팡내를 풍기는 낡아빠진 시시한 말들을 지혜로 여기는 자는 식탁에 앉을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며, 심지어는 맛있게 먹기 위한 식욕조차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F. Nietzsche.



해가 갓 떠오르려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부산 후쿠오카를 향하기 직전이다. 한번 꼭 가보아야

겠다는 생각만 하다가, 문득 생겨난 찬스에 얼씨구나, 하면서 올라탔다. 비록 언제 환전하는 게 좋을까 환율추이를

보던 며칠새 백원씩 급등하는 환율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후쿠오카에 뭐가 있는지, 서울에서부터 어떻게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을지 요리조리 따져보면서 여행 자체보다 좋기도 하다는 '여행의 전희'를 맘껏 누렸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리면 바로 KTX입구 오른쪽으로 이렇게 순환셔틀버스 승차장이 있다. 전철역으로

한정거장, 부산역-중앙동역(여객터미널이 있는) 구간을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은, 그렇지만 7시 50분 가까이

되어서야 첫 차가 운행한다. 내가 탈 배는 오전 8시 30분 출발, 한시간 전까지는 안전하게 도착하라 했으니..셔틀은

아쉽지만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기본요금 거리, 참 부산 택시의 기본요금은 1900원이다.

11월 중순에는 그래도 기름값이 꽤나 내려간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오를 때와는 달리 그렇게 금방 반영되지는 않는

듯 하다. 왕복 뱃삯 이외에 유류세가 부과되는데, 부산에서 갈 때는 삼만원, 후쿠오카에서 올 때는 이천엔. 100엔에

대략 1500원 이상하고 있으니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금액의 세금이 부과되는 셈이다. 거기에 더해서

부두 이용료도 내야 한다. 부산에서는 3,200원, 후쿠오카에서는 500엔. 가기 전 인터넷이나 여행사를 통해 정확한

액수를 알아보려 했지만 워낙 변동이 심한 탓인지 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정확한 금액을 확인했다.

드디어 출발, 부산서 후쿠오카까지 고속으로 주파하는 이 배는 수면위 2미터를 부상해서 달린다고 한다. 왜 그

호버크래프트처럼 공기를 분사해서 떠 있는 건지, 아님 다른 뭔가 원리가 적용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엔간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3시간이면 충분히 후쿠오카에 닿는다고 했다. 푸른 하늘에 날아가는 갈매기떼들이 부럽지

않게도, 드디어 비행기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으로 외국을 밟게 되는구나, 싶은 느낌. 배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니,

 한'반도'라곤 하지만, 기실 섬나라에 살고 있었단 실감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고속여객선의 실내. 상당히 안락한 의자에 넓찍한 공간까지. 우등고속버스, 혹은 그 이상으로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보통 배를 타면 느끼는 파도모양의 율동감이 거의 안 느껴졌다.

깔끔한 식판거치대에 배 안내문, 면세품 이용안내문까지 가지런히 꽂혀있다.

옆에 지나치는 저 배는 대마도로 가는 배란다. 최근 일본 우익세력이 대마도의 실효적 지배권이 한국인에게 넘어

간다느니 어쩐다느니, 결국 독도를 노린 술수를 부리고 있다지만, 어쨌든 저 배에 타는 사람은 그렇게 많아보이진

않았다. 실제 대마도땅을 한국인이 매입한 것도 고작 0.5%라던가, 그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엄살쟁이 우익들.

배는 이렇게 부산항의 등대를 지나,

망망대해를 달렸다. 시속 80킬로미터라고는 하지만, 어디 하나 기준잡을 곳이 없는 망망대해인지라 그 속도감이

별로 실감이 안 난다. 다만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는 느낌, 파도 따위에 아랑곳없이 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다. 이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배가 아니라 수면 위 2미터 수준으로 공중부양한채 달리는 배인 거다.

한 세시간 가까이 지날 즈음, 우리가 가는 곳에서 오고 있는 여객선이나 고깃배들도 보이고, 첨엔 쪼그만 점처럼

보였던 섬들이 금세 부풀어오르더니 시야 뒤로 사라져 버렸다.

저기 조그맣지만 분명하게 형체를 드러낸 대형 관람차가 있는 곳에서 후쿠오카 인근 여행명소가 시작되는 거다.

저기가 이름이 뭐였더라, 후쿠오카에서 배를 타고 조금 가야 하는 곳이라고 봤던 거 같은데.

하카다항에 거의 도착할 즈음, 배의 속도가 완연히 늦춰졌다는 느낌과 함께 입국 안내가 시작되었다. 양손가락

지문을 모두 요구하는 일본의 과도한 입국 심사가 인권 침해라는 비판도 많지만, 사실 주권국가 일본이 그러겠다면

딱히 외부에서 막을 방법은 없는 거다. 일본에선 일본 법을 따라야 하는 건 기본이요, 들어갈 때도 일본 법에

따라야 저런 '입국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협박에 쫄지 않을 수 있는 거다. 그치만 이미 저런 흉악한 안내문 자체로

살짝 심리적 위축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얼마전 내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이야기에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 아니, 한국정부도 못 믿는데 일본정부는 어떻게 믿냐 말이다.

하카다항에 배를 대고 세관으로 올라서는 길, 부산까지 213킬로미터임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있는 항만의 건물.

웰컴투 후쿠오카, 세관을 거치기 전이라 그런지 촘촘한 그물이 일본땅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세관을

통과해야 비로소 그물이 걷힐 테고, 그러고 나서 맘껏 후쿠오카를 거닐어주겠다고 두근두근.

부산발 후쿠오카행 고속여객선 티켓. 배는 1층, 2층으로 나뉘어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볼 게 없었다. 그리고 시속

80킬로-실감나지는 않았지만-로 달린다는 배답게 선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놓고, 듬성듬성 설치된 티비로

영화를 상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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