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지나가고, 남은 건 좌절과 냉소뿐이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출발하여 정치에 대한 냉소로 끝난 싸움.

 

그건, 이른바 '시대정신'이라 거창하게 호명되는 일반대중의 정서가 어느결엔가 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것이기도 하다.

 

 

불신과 냉소의 악순환.



촛불의 실패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고, 우선 촛불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부터 다르겠지만 내겐 그렇다.

 

촛불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고, 아무 것도 저지시키지 못했으며, 촛불을 든 스스로조차 거의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안으로 더욱 옹송그린 채 냉소만 머금게 만들었으니 철저하게 패배한 싸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에 대한 거부, 부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질서유지선 안에서 '상식' 수준에 머문 채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였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의제도, 그들을 대변하거나 응집시키지 못했다.

 

광우병 걸리기 싫다는 정서만 공유했을 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진전되지 못한 건 그래서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심화시키는 과정, 그 소란스러움과 긴장감이 바로 정치의 본령일진대 그걸 거부했다.

 

(논쟁이라 부르기도 어설픈 '비폭력 논쟁' 나부랭이가 고작이었고, 유모차 부대는 '해맑은 아이들의 눈에 맨날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인들은 부끄럽지 않나요' 따위의 신화적 정치에의 감성에 감응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안철수.

 

 

변화를 원하지만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다가 정치를 혐오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 켜든 또다른 촛불이나 다름없지 싶다.

 

현상타파의 눈먼 의지(혹자는 그 눈멀었음을 상식이라 포장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정치(과정)에 대한 불신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마도 2012년 대선후보 안철수라는 아바타에 투영된 '시대정신' 아닐까.

 

 

대선에 뛰어든 이후 현재까지 그가 보여준 짧막한 말들과 모호한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대개 그런 식의 '정치에 대한 부정/거부', 정치에 대한 혐오에 그 뿌리를 기대고 있는 '앙상한 상식' 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라면, 그가 만의 하나 대선에 승리한다고 치더라도 별반 기대할 것은 없어 보인다.

 

가치판단과 입장이 없는 '상식'에 기대어 공공의 장에서 발언하고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데다가,

 

어떤 정책을 어떠한 철학으로 펼쳐낼지에 대한 공백상태에선 또다시 대중의 열광은 냉소와 불신만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촛불을 거치며 크게 소진해 버린 변화와 혁신의 욕망, 그 에너지가 다시 방향을 잘못 찾고 소진되어 버리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암울하게도, 지난 촛불의 낯부끄러운 패배와 뒤따른 냉소의 시기..수년간의 절망은 곧 재연될 거 같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야당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준비 안된 안철수가 되는 경우에도)

 

 

안철수를 보면 촛불이 떠오르는 이유다.

 

 

 

 

 

* 참고삼아 읽어둘 만한 글 하나.(글 내용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촛불시위 2년, 내가 쓰는 ‘촛불 반성문’ (시사평론가 유창선, 2010. 5월)

 

 

 

2차 희망버스를 다녀와서 느꼈던 것 중 하나. 자칫, 과거의 촛불집회가 그랬듯 '광장에서의 카타르시스'로

끝나는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이벤트로 끝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모인 사람들은 희망버스를

타며 '봉사활동', 혹은 벼랑 끝의 목숨인 김진숙을 구하러 가는 '구조활동'으로 생각한 걸까, 아니면 정말

자기 스스로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가는 건지. 그 '희망버스'가 그런 생각들을 표출, 발전시킬 수 있을지도.


촛불집회를 꺾었던 건, 막아선 경찰 앞에서 '폭력/비폭력'을 운위하며 스스로 동력과 가능성을 소모해버린

대중의 두려움, 그리고 어느 정도 기존 편견에 기댄 '시위꾼'들에 대한 염증에 따른 정당/시민단체 등 운동

지도세력에 대한 불인정. 그 두가지 아니었을까. 희망버스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났던 것 같다. 185대에 자발적으로 타고온 사람들이니만치 나름의 의견, 입장은 있을 테고 존중하지만 .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이야기가, 그저 듣기 쉽고 편한 이야기만 하다 끝내자는 이야기와 같지는 않다.

지금껏 진보진영의 세력들이 대중과 유리되어왔다는 비판이, 그들이 갖고 있는 견해와 입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과 같지는 않다. '시민'의 자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이 '지도부'의 존재와 모순되는 것은 분명

아닌데, 누구 하나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을지 모른다.


지도부가 없고 모두가 주체라는 말은, 뒤집으면 정제된 정체성이 없다는 말과 같다. 백인백색의 주장만이

난무할 뿐 요구사항과 승리조건을 정돈해서 내밀지도 못하는 모래알같은 군중이란 말과도 같다는 말이다.

차벽이 막았을 때 돌파할지 말지의 문제는, 스스로의 법을 무시하며 초법적으로 군림하려 드는 국가권력에

저항할지 말지의 문제였다. 폭력/비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저항의 문제라고 이야기해야 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고, 어렵고,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문은 터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여기 왜 모였습니까. 어떤 점이 당신을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앞으로 이끌었습니까. 무엇이 달성되면 돌아가겠습니까. 장애인과 동성애자와 두리반,

유성기업, 콜트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당신의 '저항'이, '분노'가 향한 끝은 어디입니까.

그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마침 비슷한 생각을 써낸 기사가 있어서 스크랩.



*                                                               *                                                            *

연대의 희망버스, '촛불판 명박산성' 넘을까(미디어오늘)


희망버스와 '광우병 촛불집회', 불평등·불공정의 '차벽' 넘어 희망 홀씨 주목

[0호] 2011년 07월 12일 (화) 허완 기자 nina@mediatoday.co.kr

전국 각지에서 194대의 버스에 나눠 탄 7천여 명의 사람들이 부산에 모여 ‘정리해고 분쇄’와 ‘구조조정 중단’을 함께 외쳤다. 9일 부산에 집결한 ‘2차 희망의 버스’는 700여 명이 동참했던 ‘1차 희망의 버스’를 넘어 그렇게 뜨거운 연대의 불길을 지피며 하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87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끝내 만나지 못했다. 이들은 ‘3차 희망의 버스’를 다시 출발시키자는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3차 희망의 버스’가 출발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기성 노동운동과 정당, 시민운동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 보완하고 대체해 주고 있다”고 말했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조직된 노동자들이 함께 정리해고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풀어나간다는 의미가 희망버스에 있다”고 밝혔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도 “이제 노동운동도 과거 수동적이거나 선전선동, 상투적인 조직으로는 안 된다”며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가 주축이 됐던 이번 행사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 '2차 희망의 버스' 서울지역 출발 지점이었던 시청 앞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한 참가자가 '슈퍼크레인' 티셔츠를 팔고 있다. ⓒ허완 기자

한겨레는 11일자 사설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나눔, 희망버스>에서 “이들의 마음은 이제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자를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과 불공정을 함께 해결해가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했다. 경향신문도 같은 날 사설 <촘스키, 강경진압, 그리고 ‘희망의 연대’>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들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불쌍하다고 동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문제’로 여기고 해고노동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2차 희망의 버스’가 주목할 만한 ‘새로운 현상’이자 ‘대안 운동’의 하나로 떠올랐지만, 현장에 있던 참가자들 사이의 ‘온도차’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9일 저녁 거센 빗줄기를 뚫고 부산역에서 출발해 약 4㎞를 걸어 영도조선소를 향해 가던 시위대의 눈앞에 육중한 경찰 ‘차벽’이 나타나자, 참가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 부산역에서 시작된 행진을 마치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와 불과 700여 미터 떨어진 봉래 로터리에 도착한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마주한 것은 거대한 '공권력의 성채'였다. ⓒ허완 기자

차벽 맨 앞에 자리를 잡은 몇몇 단체와 시민들은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평화행진 하겠다는 데 이게 뭐하는 거냐”, “카메라 끄라고(채증을 중단하라는 뜻) 이XX들아!”,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와 욕설이 난무했다. 참가자들은 차벽에 ‘정리해고 박살내자’, ‘강제진압 중단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붙였다. 깃대로 차벽 위에 있던 전경들을 공격하거나, 주먹으로 차벽을 거칠게 두드리며 거세게 항의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일부 참가자는 물병을 던지거나 거리에서 통째로 뜯어온 안전펜스를 타고 올라가 차벽 위에 설치된 채증용 카메라의 선을 뽑기도 했다. 이들은 양 옆 인도를 막고 있던 경찰들과 쉬지 않고 몸싸움을 벌이며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차벽에서 멀리 떨어져 행렬 뒤 편에 자리 잡고 있던 참가자들에게서는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예 일찌감치 자리를 펴고 앉아 맥주와 준비해온 음식 등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원생 이 모(26)씨는 “왜 저렇게까지 해서 (저지선을) 뚫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가볍게 몸을 흔드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 사이 방송차에서는 “방송차가 뒤로 이동하니 앞자리로 이동해서 빈자리를 채워달라”거나 “젊은 남성분들은 앞쪽으로 나와 저지선을 함께 뚫자”는 방송이 이따금씩 흘러 나왔다.

▲ 일부 참가자들이 인도를 가로막고 있던 경찰을 뚫고 진입을 시도하면서 거친 몸싸움이 이어졌다. ⓒ허완 기자

경찰이 경고방송 끝에 물대포와 최루액, 색소포 등을 쏘아대자, 차벽 앞에서는 점점 더 거센 ‘분노의 몸짓’이 이어졌다. 한 쪽에서는 ‘폭력은 안 된다’며 이를 저지하는 참가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팽팽한 긴장 속에 긴박하게 대치 상황이 이어지던 새벽 두 시경, 일부 참가자들이 ‘희망의 계단’을 쌓기 시작했다.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의 손길이 뒤에서 앞으로 벽돌과 소금포대 등을 연신 날라댔다. 경찰의 차벽을 넘어 85호 크레인으로 가자는 이들의 열망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계단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강경 진압’으로 반응했다. 경찰의 진압 작전은 순식간에 시위대를 50여 미터 뒤로 멀찌감치 밀어냈다. 결국 차벽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 형성된 ‘전선’은 다음날 정리 집회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 채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새벽에 발생한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연행된 50명의 석방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혼선도 빚어졌다. 주최측은 10일 아침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행자가 석방되기 전에는 희망 버스 단 한 대도 서울로 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참석자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대안은 있는 거냐”고 되물었다. 일부에서는 짐을 챙겨 농성장을 이탈하는 장면도 적지 않게 목격됐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자체 행사’를 갖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주최측과 참가단체 대표단이 회의를 거듭하면서 오전 한 때 프로그램 진행이 일시 중단되는 상황도 두세 번 연출됐다. 무엇보다 한 번 ‘밀려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힘은 나오기 힘들어 보였다. 맨 앞줄에 서있던 한 참가자는 “이럴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 시민들은 행진을 가로막은 차벽에 다양한 구호를 담은 손팻말을 붙이며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허완 기자
▲ 대치가 이어지면서 일부 참가자들이 물병을 던지는 등 강하게 저항하자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액, 최루액을 섞은 색소포 등을 뿌리기 시작했다. 차벽 위로 모습을 드러낸 물대포가 참가자들을 조준하고 있다. ⓒ허완 기자

“판을 크게 키워놓기는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판을 이끌고 갈 것인지 고민하고 책임 있게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

소리 공연과 랩, 마임 등 흥겨운 ‘연대 공연’이 이어지던 10일 오전, 현장에서 만난 한 노동운동단체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한진중공업 사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지금처럼 느슨한 연대로는 경찰의 저지선도 뚫을 수 없고, ‘판’을 앞으로 이끌어 나갈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같은 상위 단체가 대규모 투쟁을 조직할 여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만 기대기에는 (투쟁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송경동 시인은 1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밥을 먹으러 가는 데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그럼에도 ‘밥을 먹으러 가자’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기존의 운동들이 많이 관성화되어 있고 진정성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흔히 이야기하는 ‘운동 중심’을 넘어서 보편적인 ‘사람의 문제’에 기반을 두어 공개적으로 (희망의 버스를) 제안하고 연대해나가는 운동이 힘을 갖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송 시인은 다양한 목소리가 한 데 어울리면서 발생할 수 있는 전술적 의견 차이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투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큰 결정들은 현장에서 의견을 종합해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희망의 버스’ 내부에 이견이나 분란이 있다고 보는 것이나 운동조직과 일반시민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관점도 잘못된 것”이라는 게 송 시인의 생각이다.

▲ 경찰의 진압은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시위대를 저지선에서 멀찌감치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은 부상을 당했고, 50여 명이 연행됐다. ⓒ허완 기자

한편, ‘희망의 버스’에서 2008년 여름의 거리를 장식한 ‘광우병 촛불집회’를 연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반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가 집회를 주도했다는 점과 ‘느슨한 연대’가 지속됐다는 점 등 당시의 촛불집회와 ‘희망의 버스’가 여러모로 닮았다는 지적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는 송선주(22) 씨는 물대포와 최루액 등이 등장한 경찰의 강제 진압, 결국 ‘차벽’을 넘어서지 못한 ‘2차 희망의 버스’의 고민 등 “현재 상황이 2008년에 ‘명박산성’을 앞에 두고 시위대 사이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협상에 반대해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촛불집회는 당시에도 ‘새로운 운동’, ‘대안적 운동’ 등으로 불리며 뜨거운 여론의 관심과 호응 속에 거리를 물들였다. 시민들은 자유롭게 광장에 나왔고, 자유롭게 떠들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했고, 즉석에서 토론이 오고가기도 했다. “웹 2.0 세대가 시위를 ‘놀이’로 만들어 즐기기 시작했다”, “대중지성, 집단지성이 세상을 바꾼다”는 등의 찬사도 이어졌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동시에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권력을 향해 냉소와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그 뜨겁고 맹렬했던 기세만큼이나 급작스럽게 사그라들었다.

▲ 경찰의 차벽 앞에서 피켓을 들어보이는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의 모습. ⓒ허완 기자

2008년 촛불집회 직후 출간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백승욱 중앙대학교(사회학) 교수는 당시에 썼던 <경계를 넘어선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다>라는 글에서 “(집회가) 축제로 끝난다는 것은 이 집회에 참여하는 대중들이 이미 머물러 있던 경계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지키면서 불만만 표출하는 차원에 머문다는 의미”라면서 “촛불집회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이 집회가 ‘축제’가 되어 ‘카타르시스로’ 끝나는 일”이라고 썼다. 백 교수는 이어진 글에서 “2008년 촛불집회가 부딪힌 가장 큰 한계점은 광장의 저항이 자신의 생산·재생산 공간(일상적 삶의 공간)으로 확산되고 이전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촛불집회가 “참가자들 사이에 놓인 경계들(비정규직과 정규직, 이주노동자와 현지인, 남성과 여성, 고학력 노동자와 저학력 노동자 등)을 넘어 구체적인 연대로 나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희망의 버스’의 미래를 좌우할 고민이자 과제로 남아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희망의 버스’를 제안한 송 시인도 “(한진중공업 사태가) 이 곳 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과 이 일이 당사자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보다 긴밀하고 보편적으로 퍼져야 한다”며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산 등 그간 진행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기조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의식”을 언급했다. 이는 ‘한 번 왔다가 가는’ 투쟁의 현장에서의 삶과 일상 생활에서의 삶이 서로 변화를 주고받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엇갈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인 셈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단순한 ‘동정’이나 ‘안타까운 마음’, ‘막연한 분노’를 넘어서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 버스'가 당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도 숙제다. 한진중공업노조가 사실상 떨어져나간 상태에서 '희망버스'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큰 힘이 되고 있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어떤 결말로 나아갈지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3차 희망의 버스'가 안고 갈 희망만큼이나 그 등불이 되고 있는 김진숙지도위원에 대한 부채감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차 희망의 버스’가 출발한 곳은 시청 앞 재능교육 농성장이었다. 이곳에서는 부당한 임금체계를 개선하고, 특수고용직으로 규정된 학습지 교사를 정규직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이 무려 12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작년 겨울 파업을 벌였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30여 명은 ‘희망 자전거’를 타고, 2년 전 직장을 잃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1일 평택을 출발해 도보로 ‘희망의 버스’ 대열에 합류했다. 사측의 직장폐쇄에 맞서 일괄복귀를 요구하며 두 달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100여 명도 달려왔다.

‘희망의 버스’가 활짝 열어젖힌 ‘연대의 장’은 분명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렇지만 “광장에 모인 개인들은 과연 ‘연대’하고 있었던 것 것일까? 아니면 함께 모인 사람들과 그저 함께 있기만 했던 것일까?”(백승욱 교수)라는 질문은 이번에도 필요해 보인다. 과연 ‘희망의 버스’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더 많은 곳으로 실어 나를 수 있을까?

▲ 참가자들은 대오를 해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꼬박 밤을 지샜다. 그 사이 새벽이 밝아왔다. 농성 대오와 멀리 떨어져 있는 차벽도 밤새 자리를 지켰다. ⓒ허완 기자


반값등록금, 촛불이 또다시 번져나가고 있지만 입장을 명쾌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고 사립대나 국공립대를 막론하고 대체

그 막대한 자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명료치 않다는, 그에 더해 이명박의 대선공약이었고

그의 당선에 여하간 도움이 되었단 사실 만으로도 '반값등록금'은 이슈가 되기 충분하다.

취직에 쪼이는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선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무적인 일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등록금이 반값으로 줄면 되는 문제일까. 등록금만 오른 게 아니라 물가전반이

모두 올라 있는 총체적 경제파탄의 문제 아닌가. 또 그걸 위한 재정이 국가에서 나오던 기존

대학 재정을 헐어서던 상관없이, 반으로 뚝 잘라 50%만 내면 '교육 소비자'로서 대학생들은

만족이란 건가. 예컨대 국고로 지원된다면 대학 교육의 공공성은 어떻게 확보할 건지,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균형을 맞출 건지 따위 근본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다. 


이래서야 무슨, 소셜커머스에서 50% 할인혜택 받으려고 줄선 구매자들과 다를 바가 뭔가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반값 등록금'이란 요구와 그 저변에 깔린 어려움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좀더 정밀하게 주장을 가다듬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논리와

근거를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우리끼리 한풀이하듯 촛불들고 나가서 울고, 

그렇게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는 건 지난 촛불시위 때로 충분하지 않은가.


'반값'이란 이미지가 굉장히 선명하고 매력적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아무 전략이나 로드플랜없이

'반값등록금'이란 구호에 매몰되어 있어선 좀 곤란하다. 마침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가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글을 올렸다.(http://www.jkl123.com/) 그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대학 본연의 의의를 확보한 대학교육은 공공성을 가지며 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서울대와 달리 사립대학의 경우 (좀더 면밀하 살펴야겠지만) 대학재정 운영의 문제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현재 십수일째 진행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를 좀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끌고, 결과적으로 무언가 성과가 남는 승리의 기억으로 만들기 위한 합리적인

발문으로 쓰임직한 거 같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반값등록금'에 준하는 성과를 낸다거나,

그런 문제의식의 결을 이어받은 '대학 교육,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근본적인 큰그림의 해법과

로드맵이 나올 수 있음 좋겠다.



*                                                             *                                                     *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외침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등록금 마련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거리로 뛰쳐나와 ‘반값 등록금’을 외치게 되었을까?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로 밤을

지새우는 젊은이들의 얘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고된 아르바이트로 몸과 마음이 모두 녹초가

되어 버렸을 텐데 공부를 제대로 할 힘이나 남아 있을지 걱정이 된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말이 이들에게는 별 위로가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대학 등록금이 최근 들어 크게 뛰어오른 것도 아닌데 왜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예전에도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불평은

끊이지 않고 나왔지만, 반값으로 내려야 한다는 요구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을 생각해 조금 내려줬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비싼 등록금에 대한 불만이 폭발적으로 커지게 된 배경에는 최근 들어 서민들의 살림이 크게

빡빡해졌다는 사실이 있다. 성장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서민들의 살림에는 도대체

나아진 점이 전혀 없다. 게다가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어올라 서민들의 살림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입만 열면 ‘친서민’을 부르짖지만 피부에 와 닿는 개선은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러니 근근이 감당할 만하던 등록금의 부담이 갑자기 허리가 휠 정도로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일부 사립대학이 학생들로부터 거둔 등록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사립대학이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세한 재정구조를 갖고 있다. 외국의 유명 대학들처럼 충분한 기본자산

(endowment)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간신히 건물만 지어놓은 상황에서 대학이랍시고 간판을

내건 탓이 크다. 그러면서도 일부 교주는 마치 대학이 자신의 사유재산인 양 전횡을 일삼기 때문에

등록금이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제 등록금을 낮추라는 요구는 도덕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는 대학에게 등록금을 낮춰 달라고 부탁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낮추라고

요구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최근의 사태는 대학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값 등록금으로는 대학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고 호소해 보았자 아무도 귀 담아

듣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물론 일부 사립대학 때문에 건전하게 운영되어 오던 다른

사립대학도 한 묶음으로 매도되는 것에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등록금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라고 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학의 살림을 아무리

쥐어짠다 해도 교육의 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출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알뜰한 살림으로 어느 정도의 절감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절반 수준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한때 서울대학교의 재정에 간여한 바 있기 때문에

대학재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등록금을 절반 수준으로 낮춘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상의 애로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부족분을 메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에 투입되는 비용 그 자체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교육에 투입되는 비용을 대폭 줄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요구는 결국 정부의 대폭적 지원에 대한 요구를 뜻하는데, 이를 무조건 지지하기는

어려운 사정이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사업이 바람직하다고 해서 정부가 무조건 돈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

예산제약이 있기 때문에 엄격한 우선순위하에서 가장 바람직한 사업부터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 대학교육에 대한 지원은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 받기 힘들다. 공공재(public goods)나 가치재

(merit goods)의 성격을 갖는 것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쉽게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외부성

(externalities)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정부의 지원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찾기가 쉽다. 그러나 대학교육은

공공재도 아니고 가치재도 아닐뿐더러, 강한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도 아니다.


때로는 어떤 지출프로그램이 갖는 정당성의 근거를 소득재분배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소득재분배의 차원에서 정당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부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낮추면 가난한 가정뿐 아니라 부유한 가정의 자제까지 이득을 보게 된다. 대학을 아예 가지 않는

사람들이 빈곤층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정부 지원에 의한 반값 등록금은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방향으로의 재분배를 가져올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반값 등록금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반값 등록금은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에 의한 무임승차(free riding)로 인해 효율성과 공평성의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정답은 일단 등록금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집중적 지원을 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요즈음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이것과 반값

등록금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초중학생의 전면 무상급식은 한사코 반대하던 정부, 여당이 반값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망국적 포퓰리즘이니

뭐니 신나게 떠들던 때와 비교하면 온순한 양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더군다나 재정부담의 측면에서 보면

반값 등록금이 무상급식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될 텐데 말이다. 평소의 지론대로라면,

반값 등록금을 실시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마땅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정부, 여당이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결정적 이유는 자신이 반값 등록금

얘기를 꺼낸 장본인이었다는 데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캠프에 ‘등록금 절반인하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당선 후 반값 등록금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부정했고, 교과부 장관은 (등록금의) 심리적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약속이었다는 궤변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무슨 말로 변명을 하던 반값 등록금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원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지금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간 학생들 자신도 반값 등록금의 실현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고도 입을 씻고

있는 정부, 여당이 얄미워서 약속을 지키라고 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을 먼저 낸 쪽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표를 얻기에 급급해 실현되지도 못할 반값 등록금을

약속함으로써 국민에게 부질없는 희망을 안겨준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현 정부가 대선 때 내건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사례가 이 반값

등록금의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과학벨트 등 그 예가 숱하게 많다.

그러면서도 국민 앞에 엎드려 사과를 하던 무엇을 하던 어느 것 하나 깨끗하게 처리한 것이 없다.

반값 등록금 문제도 마찬가지로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내걸어 엄청난 혼란만 일으켜 놓고 얼렁뚱땅

마무리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원칙 없는 국정운영’을 들고 있다. 지금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파문이 확산되어 가고 있는 등록금 문제에서도 이렇다 할 원칙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 여당의 이 사람은 이 말 하고 저 사람은 저 말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 일사불란하게 그 방향으로 추진해 가도 해결이 어려운 터에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금 상황이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야당까지 중심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당이 지금 내걸고 있는 그 많은 복지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터에

반값 등록금까지 약속한다면 그 엄청난 재정부담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세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둬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야당이라 편하게 아무 약속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태도로 일관하면 만년야당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격앙된 분위기를 수습하려면 하루 빨리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질질

끌수록 감정은 더욱 격앙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문제해결은 점차 더

어려워지게 된다. 반값 등록금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대안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가난한 가정의

자제가 겪는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기류에 따라 반값

등록금을 실시할 듯 말듯 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는 문제를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게 만들

것이다. 욕먹는 것이 두려워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알면서도 뒤로 감춘다면 그것은 책임 있는

정치가의 자세가 아니다.



후기 1 : Need Blind Policy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 아이비리그의 일부 대학이 실시하고 있는 Need Blind Policy가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얼마 전 Yale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의

입학관련 담당자가 그 대학에서는 바로 이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정책은

지원자들의 입학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재정상태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 점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학문적 자질만을 고려해 입학허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학생에 대해서는

필요한 만큼의 장학금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입학허가를 받은 모든 학생이 재정적

문제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

어려운 학생을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기 2 :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전면 무상급식을 지지했던 내가 대학 등록금과 관련해서는 선별적 지원을 지지하는 것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두 가지 이슈가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보기 때문에 일관성이 문제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중학생의 급식은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데 비해, 대학교육은 가치재의 성격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무상급식은 고려대상이 될 수 있는데 비해, 무상대학교육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왜 등록금의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의 근거도 찾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11월 11일 가래떡데이를 맞아 북한에 가래떡 1000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가래떡데이'는

삼년 전부터 정부가 홍보하고 있는 기념일로, 흔히 빼빼로 데이로 알려져 있는 11월 11일을 쌀소비 촉진과

국내 농가 지원의 날로 바꾸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취지에 더하여 날로 심각해지는 북한의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에 소재한 떡집들에 협조 공문이 11월 9일 자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에 따르면

전국의 떡집들은 각 지역 농협의 미곡처리장(RPC)에 쌓여있는 쌀 재고량을 지원받아 오늘부터 이틀간

밤낮없이 가래떡을 뽑아낼 예정이다.


이러한 조치는 최근 농민의 쌀값 항의시위가 빈발하는 가운데 농식품부가 국정원을 동원해 이에 대응하던

사실이 보도되고, 남아도는 국내 쌀 대신 중국산 옥수수를 북한에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등 거듭되는 악재를 극복하고자 물밑에서 타개책을 다방면으로 모색하던 중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관계자는 "드디어 정부가 정신차리고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사진)


정부 내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국의 떡집에서 뽑아낸 가래떡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집결하여

다시 하나로 길게 연결될 것이며 도라산역을 거쳐 육로로 북한에 전달될 예정이라 한다. 김이 무럭무럭 이는

하얀 가래떡을 뽑아내는 과정 및 수송과정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세계기네스협회에 "세계에서 가장 긴 가래떡"

(the longest rice cake in the world)로 등재될 계획이다.  이 과정을 총지휘하는 관계자 이아무개씨는 "쌀

1000톤이면 가래떡 약 200km 가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전통적 가치와

남북평화의 기치를 내건 이번 이벤트를 통해 '가래떡'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레 피력하기도 했다.



□ 국내 각계의 반응은

이러한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인도적 조치에 대한 국내 각계의 반응이 뜨겁다. 대북 지원을 반대해온

국내의 보수층 일각에서는 "가래떡 먹다 체해버려라"라는 10박자 구호를 외치며 시청앞을 배회하고 북한

인공기를 가래떡으로 휘감는 등 소요를 일으키고 있으나, 쉬이 쉬어버리는 가래떡은 군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냐는 대다수 시민의 온건한 시각을 반영하듯 소수의 호응만을 이끌고 있다.

한식업계 관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경쟁력있는 한국의 떡문화를 세계에 홍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정부에서 요청이 올 경우 가래떡 위로 10센티마다 대추 고명을 얹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서울, 2009.11.10)




* 뭐, 이런 훈훈한 기사가 올랐으면 좋겠다는.


관련기사. "국정원 동원해 농민 이간시키다니" (시사인, 2009. 11. 2)

"쌀값이 떨어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가 (쌀 관세화 유보 대가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쌀 물량이 있는 데다 2007년 이후 북한에 쌀 보내는 걸 중단하면서 재고가 남아돌게 된 것이 큰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재고량이 82만t쯤 될 거라던데, 해마다 북한에 보내던 쌀이 40만t 안팎이다. 그러니 이때쯤이면 비어가야 할 농협 미곡처리장(RPC) 같은 데가 꽉꽉 차 있는 것이다.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면 남한도 좋고 북한도 좋은 일 아닌가. 공짜로 퍼주자는 것도 아닌데. 남아도는 쌀 놔두고 기껏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게 중국산 옥수수 1만t이라니,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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