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5.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도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근 10년만이었다. 구묘역과 신묘역으로 기억하고 있던 광주 5.18묘역은 그사이 많이 깔끔해져 있었다. 그때에도 이미

 

신묘역의 말끔함은 억지스런 분칠로만 느껴져서 왠지 모를 거부감과 암담함을 느끼게 했었지만.

 

평일 오전시간. 신묘역, 그러니까 무려 '국립 5.18민주묘지'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관리하시는 분들이나 몇몇 보이지 않는

 

참배객들의 몸가짐에서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조심스러움과 함께 역사의 무게를 감각하는 이들의 비극성이 묻어나는 듯 했다.

 

그런 역사를 이렇듯 '성지'화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일렀거나 부주의했다. 여전히 전두환이 건재하고, 5.18을 딛고 선 신군부와의

 

딜을 통해 은밀한 권세를 유지한 유신 잔당들은 다시금 명실상부한 권좌에 앉겠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새 빛이 바랜 (아마도) 2002년의 안내판. 이미 5.18은 오래되다 못해 이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과거가 되어 버린 걸까.

 

묘역 안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구슬프지만 우아하고 절제된 선율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 뿐, 분노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이전에 찾았던 정태춘의 노래들이라거나 5.18관련 영상들을 다시 찾는데, 이상하게도 많이들 짤렸다.

 

뭔가 오기가 생겨서, 이것저것 괜찮은 자료들을 다시금 퍼올려두기로 한다.

 

 

 

 

'민주의 문'을 지나 묘역 안으로 들어서는 길.

 

 

 

 

문재인이, 안철수가, 그 이전에는 이명박과 노무현과 김대중이 섰던 그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내게 광주, 그리고 5.18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이 동영상의 첫머리, 5.18의 '모란꽃'이라 불렸다는

 

전옥주의 가두방송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계엄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 그렇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세상임에도, 5.18민주항쟁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거대한 그림자와 의미를 던지는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그 주역들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의

 

결과와 후폭풍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적 변곡선들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신 잔당의 청산 문제, 지역 감정 문제,

 

한국 사회 민주화의 지체 문제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쩌면 당시 광주는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시민'들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며 일어선 사람들.

 

아마 전옥주는 이런 식으로 언론이 봉쇄되고 언로가 막힌 광주시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방송을 했을 거다.

 

"당신들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돌아가신 날짜대로 열을 지어 누워 계신 분들. 1980년 5월 18일부터 드문드문 나타난 비석에는 어느 순간

 

1980년 5월 20일자의 죽음들이 셀 수 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어미의 마음으로 새겼을, '싸우리라." 비석의 뒤에는 남겨진 이들의, 혹은 떠난 이들의 독백이 단단히 새겨졌다.

 

열다섯의 누군가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헌혈하고 나오는 길에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지고, 서른여덟의 누군가는

 

진압하려드는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트럭을 몰고 항거하다 숨졌다. 누군가의 아비는, 어미는, 먼저 간 자녀들의 넋과

 

뜻을 기리며 피눈물을 새겼고, 누군가의 형수는 그저 평안하길 바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 그나마 '상식'이 있고 그나마 '일반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해지는 자들,

 

그들에게 광주는 어떤 의미일까. 광주 민주항쟁은 어떤 빛깔로, 어떤 목소리로 기억될까.

 

 

어쩌면 그건 그들의 '상식'이라는 게 얼마나 올바르고 균형감이 잡혀 있는지를 고백하는 바로미터와 같을지 모른다.

 

 

강풀 원작의 영화 '26년'이 여전히 제작조차 쉽지 않은 나라, 학살자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광주 5.18의 흔적을 보며 그저 슬픔을 느낄 뿐인지 분노를 느끼는지의 차이 말이다.

 

 

 

 

 

"이곳 금남로는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맞서 5.18 광주항쟁 기간 중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다. 5월 18일 카톨릭센터 앞에서 최초의 학생 연좌시위가 있었으며 5월 19일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5월 20일 저녁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100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대가 이 거리를 누볐다.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금남로는 5.18광주민중항쟁을 상징하는 거리다. 5.18광주민중항쟁 이후에도 항쟁의 진실을 밝히려는

투쟁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가톨릭센터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시민 집회가 계속 열렸다.

항쟁 당시 가톨릭센터에서는 천주교광주대교구청과 CBS광주방송국이 들어서 있었다. 천주교광주

대교구청에서는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살상행위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피어린 투쟁을

전국에 알려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전파하였다."

그런 곳이 이 곳, 광주 금남로.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500여명이 사상당한 곳이자, 항쟁

처음부터 끝까지의 중심무대였던 곳이다. 대검으로 임산부를 찔러죽이고 도망가는 시민의 뒷통수를

곤봉으로 내리치고, 심지어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총을 쏴갈긴 곳. 예전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굉장히 좁은 곳이란 거였고, 이번에 다시 찾고서 느낀 건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하는 민망함.

몇걸음 뗄 때마다 세워져있는 조형물들을 마주하게 되어서 하나씩 찍어보기 시작, 그렇지만 그 조형물들이

80년 광주의 기억에 이어져있는 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한 기준은 작품의 형태와 제목,

그 이상 판단할 여지가 없기도 했거니와 금남로 양측으로 곤두선 건물들에 수반된 공공미술작품으로

늘어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작품이 고추상의 작품이어서 결국 판단은 작품 제목에

많이 기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내린 결론은 역시 광주의 기억을 떠올리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것.

제목 : 상징.

제목 : 평화를 추구하는 무등여인상.

제목 : 평화로운 나날.

제목 : 사랑.

제목 : 여심.

물론 금남로가 온통 광주의 기억으로 짓눌려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광주시내의 중심이니 박제된

역사적 공간으로만 남아있어서도 안 되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은 거다.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한복판이니.

다만 금남로공원처럼 이렇게 약간의 공간이라도 조성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 아픈 사건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너무나 아무것도 안 남아있는 거다.

금남로4가 전철역 입구에 서있는 지방 무가지 신문박스. 신문은 하나도 안 들어있었다. 그것보다 눈에

거슬렸던 건 그 뒤에 저 싸구려스럽고 촌스런 노랑색 담장.

뭔가 봤더니 노란 바탕색에 돌멩이인 양 그려놓은 회색 얼룩이 얼룩덜룩한 얄포름한 합판을 억지로

세워둔거다. 차들이 지날 때 흔들흔들거리는 게 꽤나 위태해 보였는데, 가늘디 가는 쇠줄 하나가

억지로 그 담장형태의 싸구려 장애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작은 사거리에서 만난 경찰초소. 뒤로 쉼없이 지나는 버스와 택시들, 이 거리에서 100대가 넘는 대형차량들이

시위에 합세해서 도청을 향해 행진했던 그런 날, 저런 경찰초소를 온통 불태우고 무너뜨리며 전진하던 그런

날, 어쩌면 그때가 한국 민주주의 정신이 도달했던 정점 아니었을까 싶어 우울해졌다.

금남로 지하상가에도 뭐가 있나 내려가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복작복작함,

지하상가 특유의 활기와 어수선함은 좋지만 왠지 괜히 아쉽다. 지상에도, 지하에도, 어디에도 그 사건은

기억할 만한 흔적과 자취를 남기지 않았나 보다. 괜히 화장실 사진이나 한번 찍고.

올라오는 길, 대피소 사인. 80년에는 지하상가가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확치는 않다. 그랬다면 더욱

끔찍한 참사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전경들, 군인들이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듯 쫓아다녔을테니.

제목 : 꿈(DREAM).

제목 : 추의 사념에서.

이렇게 조각들을 찍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 무렵. 지하철 환풍구에 누군가 페인트로

박아둔 글자가 눈에 확 띄었다. **반대.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반대한다는 표시, 그리고 저렇게

오래도록 남아 뜻을 전하려는 의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다. 단순히 미감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는 두루뭉실한 조각상들을 보다가 눈에 확 꽂혀버린 두 글자. 반대.

제목 : 꿈의 나라로.

제목 : 삶(LIFE).

2011 광주비엔날레에서 채택된 시민 공모 디자인인 듯. 큐브 같기도 하고, 뭔가 이쁜 상자같기도 하고. 저런

공공 설치물에 미감을 더하는 건 대체로 맘에 든다. 물론 주변 경관이나 색감과의 조화라는 부분이라거나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부분도 따져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를 누비는 디자인'이란 건 긍정적인 거 같다.

제목 : 함께 부르는 노래.

어렴풋이, 꿈 대신 해몽인지도 모르지만, 광주의 역사적 기억에 그 영감이나 의도의 부스러기를 빚지고

있는 듯한 작품들이 없진 않았지만 계속 아쉬운 와중이었다. 좀처럼 딱 깨놓고 여기가 그런 공간이었다,

말하고 공식적으로 기억하는 기념물은 왜 없는 거지. 그러다가 인도 한복판에 굉장히 어색한 위치에

설치된 벤치 두개를 보았고, 벤치에 시선이 팔려서 못본 채 지나칠 뻔 하다가 겨우 발견.

'5.18 민중항쟁 사적 4'라는 잔뜩 녹슨 글자는 쉬이 읽히지도 않는다.


사적비의 뒷면. 숫자가 4라고 붙어있는 걸 보면 다른 것들이 더 있다는 얘긴데, 요새 지자체들 잘하는 것들을

왜 여기엔 적용하지 않나 모르겠다. 포스트마다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부스를 설치해 둔다거나, 사적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비치해 둔다거나. 사실 올레길이니 갈매길(부산)이니 바우길이니 온갖 걷기코스가

개발되고 있는 요즘에, 이런 사적들을 잇는 순례길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굉장히 차별화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80년 광주의 기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 같은데. 


제목 : ~~ 문.

그렇지만 현재 금남로는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메시지 불명의, 오로지 거리 미화를 위한 듯한

조각들과 '부자되세요'라는 강력한 생활형 주문에 멈춰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미술 자체에 불만은

없고, 오히려 다른 거리에 비해 많은 미술작품들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이런 거대한 역사적 공간을

그냥 묵히고 있는 게 안타까운 거다.


제목 : 풍경.

제목 : 묵시-전환기적 시점에 서 있던 이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문화전당역, 이라는 역명을 가리키는 버스정류장. 문화전당이라.

제목 : 5.18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기념조형.

제목을 까먹은 조형물 하나를 마지막으로, 짧막한 금남로 두어 블록의 산책이 끝났다. 길 양쪽을 온통

돌아보며 확연히 건물에 부속된 조형물을 빼고 길가쪽으로 설치된 작품들만 찍었는데 정말 꽤나 많다.

그리고, 광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은유가 확연한 작품은 정말 꽤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범상치 않게 보이던 시그널. 추억의 7080 충장축제라던가. 광주의 7080은, 흔히 티비에

나오는 추억의 7080쑈라느니 하면서 달달한 통기타 노래들을 공유하는 그런 게 가능할까. 단순히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시대의 부조리와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던 사람들이 종종 토로하듯 그 시대에

멋내고 통기타치고 고고장 다니는, 그런 문화만 있던 건 아니었던 게 분명한데 말이다. 마냥 축제인듯

아름답고 멋지게 빛바랜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을까. 특히 광주에서.


내가 감정과잉의 상태로 광주를 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괜히 하나하나 민감해져서, 광주에서 사는

생활인이라면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이미지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외지인이라 해서, 실제로 그 고통을 겪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해서-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는 훌륭한

핑계에도 불구하고-할 말을 못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금남로에서 80년 광주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단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떤 책들은 읽고 나면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사방팔방으로 울림이 번져나가는 책,

그게 소설이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되었던, 들불처럼 사방으로 번질 수 있는 의미의 갈래들을

하나씩 새겨보고, 그게 어떤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읽는 것 자체와는

또다른 큰 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런 책들에서 자신이 애써 고삐를 추스려 잡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 중의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뭐, 고작해야 학사 나부랭이인 내 수준에서

그렇단 얘기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 10점
최장집 지음/돌베개

최장집 교수의 이 책, 그의 다른 책들처럼 굉장한 책이다. 나는 그저, 내 나름의 맥락에서 그 중

일부를 떼어서 조금이나마 사고를 자극하고 정렬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일종의 발제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전제로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두 개의 집단이 맞서고, 두 집단은

모종의 타협이나 정치적 과정을 거쳐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런 무조건적인 통합의 메시지는 국가주의나 집단주의를 초혼할 뿐이다.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국회는 안건을 갖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게 당연하고, 시민들 역시 떠들어댈 광장이 필요하며,

시스템이 안배한 통로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은 초법적 수단조차 동원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갈등선'이 비로소 그어지는 거다.


갈등을 부정하고 묵살하는 사회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갈등'에 대해 그 존재부터 부정하고, 묵살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시스템 내의 '갈등

발견&해소 프로그램'은 협소하고 취약하기 짝이 없어서, 모든 갈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결국 사교육비 많이 부담하라는 교육문제, 애기 외롭지 않게 키우라는 출산율문제, 손 많이 씻고

쇠고기는 알아서 골라 먹으라는 보건문제, 우유 많이 먹고 성형외과 찾아가라는 젠더문제, 눈높이를 낮추고

기술을 배우라는 취업문제. 사실은 사회 문제, 즉 사회적인 갈등선을 빚어내는 문제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소하도록 종용되고 있다.


복불복 마인드로 순치되어 버린 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조용한 사회. 누군가 '노'라고 이야기하면-갈등을 말하려 하면-사회 불만세력, 반정부세력, 심지어는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조장하는 매국노로까지 매도당한다. 지금의 비정규직 정책에 반대한다, 한미FTA에

반대한다, 재개발 정책에 반대한다, 등등 이어지는 '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무조건적인

사회 통합의 강요, 국가발전 한길로 매진해야 할 시기에 힘 빼지 말자는 국가주의적 교시였다. '노'라고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적 안배나 기제가 없는 상황에서 번번이 '불법'으로 밀려나는 최악의 상황에선, 1박2일식

'복불복 마인드', '나만 아니면 돼'라는 파편화된 개인들은 그러한 무서운 국가 앞에 무력할 뿐이다.


똘레랑스는 갈등 인정 이후의 문제다

그게 민주주의일까. 황장엽이 말하고 보수세력들이 떠드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그런 거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 혹은 다른 무엇이다. 민주주의는 최장집의 표현을 고대로 빌건대 "폭력을 배제한 갈등과

타협에 기초한 정치체제"에 가까운 무엇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똘레랑스는 고사하고 갈등 자체를 터부시

하고 있는 거다. 시끄러운 국회가 싫다, 시끄러운 광장이 싫다, 결국 '시끄러운 게 싫다'란 정도로 요약될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한 혐오나 염증이 문제다. "정치인 아저씨들은 왜 맨날 싸워요?"라고 묻는 어린애의 똘망한

눈망울 앞에 무조건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적인 갈등을 대체하는 추상적 전선(戰線)

혹은 갈등을 묵살하고 없는 것 취급하는 것과 동시에, 추상적인 양극 구도로 몰아간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평화개혁세력 대 냉전수구세력' 따위의 갈등선은 뭔가 선명하고 뚜렷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이상

내용도 없고 실천적 의미 또한 던져주지 못하는 죽어버린 그림이 아닐까. 87년을 기점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나서, '민주', '진보', '개혁' 따위의 단어로 지시되는 내용은 그때그때 바뀌어 버렸다. 이미 갈등선이

그 고도로 추상화된,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쉬운 단어의 세계를 넘어서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로 넘어온 거다. 


'부러지지 않는 쌍쌍바', 자잘한 균열선들의 긍정적 역할

두 개의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쌍쌍바 여러개를 고르게 포개어 쪼개는 그림, 그리고 쌍쌍바 여러개를

무질서하게 포개어 부러뜨리는 그림. 첫번째 그림에서 쉽게 부러질 쌍쌍바가 '민주 대 반민주'니 '진보 대

보수'니 따위의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갈등선으로 일관하는 사회의 파국 혹은 불건전성을 의미한다면, 둘째

그림에서 좀처럼 부러지지 않을 쌍쌍바들은 예컨대 '동성애 찬성 대 반대', '증세 찬성 대 반대', '등록금 무료

찬성 대 반대', '모병제 찬성 대 반대' 따위 수많은 이슈에 대한 자잘한 갈등선을 품어내는 사회의 건전성을

의미한다. 최장집은 정당정치가 그러한 자잘한 갈등선을 반영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부재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정당 정치는 마비되었고, 광장 정치(광장 민주주의라 높이 평가되기도 한)는

고양되지 못한 채 배설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근대 정치에 걸맞는 '자유주의적 인간형'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거대한 국가와 동등한 계약관계로 묶인(혹은 묶였다고 상정되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시민' 대신에 NL(민족민주)이니 PD(민중민주)니 통일조국, 민주국가건설을 위한 '민중'만이 화석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광기에 가까운 월드컵 응원 열기, 골프와 피겨, 축구 선수에 대한 과도한 국가적 상징화,

새롭게는 '국격'이니 '국위 선양'이니 따위의 국가주의적 수사에 푹 절어 있는 것이 하나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네티즌 수사대'가 몰려들어와 융단폭격을 하는 원시적/집단주의적 작태가 다른 하나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바꿔내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

최장집이 이른바 386세대, 운동권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세력,

구조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서 스스로를 형상화하고 안티화해내면 되었을 뿐인, 역사적인 한계기도 하지만 능력

부족이기도 했던 부분이다. '민중'이란 불분명한 역사적 집단에 기대어 '역사의 정방향으로의 발전'을 믿었던,

지금과는 정반대의 뒤집어진 세상만 꿈꾸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불철저했던 문제의식은 곧 김대중/노무현

두 자칭 '진보성향' 정권의 실패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은

동일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혹은 이명박은 10년 '좌파 정부'의 예정된 귀결이었다고 판단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을 박제화한 '민중'의 배신은 당연하다

과연 그런 걸까. 판단은 유보하되 의견을 말해 보자면,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죽음에 비통해 하던 이들은

'민중'이었지 '시민'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세속된' 이해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갈등을 시스템 내에서

해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또 이명박이 퇴행시켰거나 노출시킨

허술한 민주주의에 놀란 상태에서 '민주 대 반민주'라는 손쉬운 갈등선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한 '민중'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명박 덕분에 갑자기 '민주'의 화신, 실패한 영웅으로 부활했지만, 사실 그들은 재임 중

수많은 이슈에 대해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도 시스템 내로 그런 이슈, 갈등을 들고 들어와

해결하는 기제를 마련치 않았다. 그 결과다. '민중'은 속되고 삿되다 하여 정치권에서 다루지 않는 온갖 생활

밀착형 이슈들, 부동산과 주식과 교육과 취업과 세금의 문제에서 또다시 '김대중과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고

있다. 이명박의 지지율을 보면 알 일이다.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 10년을 날려버린 정치권의 실패다. 그들은

"샐러리맨 세금낮추기 정당", "공휴일에 지하철 막차시간 연장하기 정당", "대학생 일자리 보장 정당" 따위, 좀더

세분화되고 생활에 발딛고 있는 이슈로 자잘한 찬/반 균열을 그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이슈들의 묶음으로

커다란 '진보'를 형상화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곧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라는 구호의 함의였을 거다.

사실 국가 발전을 위해 다른 갈등들을 묵살하는 기득권 세력의 몸짓은 지금의 '운동권' 세력에게도 여기저기

발견된다. 조직 내 성추행 사건을 덮는다거나, 전경과 대치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동원되는 '사수대'의 군대식
 
규율,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도덕률과 사명감의 차원으로 모든 것을 치환해 버리는 방만함까지.


자잘한 이슈들을 그어내고 반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좀더 갈갈이, 중층적으로 찢겨야 한다. 무슨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반공이니, 신자유주의니, 혹은 친미/반미니,
 
심지어는 희화화된 형태의 '보수꼴통'과 '친북좌파'의 굵고도 무식하며 무시무시한 일도양단식 균열말고. 그런

세속화되고 일상적인 형태의 자잘한 균열들이 좀더 촘촘하게 그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고착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구처럼 국가 이전에 '시민'이 먼저 형성되는 것이 실패하였다 치더라도,

이제라도 강력한 국가 앞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시민'을 불러내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분열을 말할 때다. 지금처럼 인터넷 상에서 서로 ^^해가며 좌빨이니 우빨이니 맞지 않는 화살만

잔뜩 주고 받는 소모적인 이야기로 분열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입장이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분열 말이다.



덧댐.

어쩌면, 이명박을 뽑은 국민들이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경제발전'에 대한 감수성과 비판의식을 키워내야겠지만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에 대한 디테일과 방법론이 경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진보'를 자처한 진영이

그 이슈를 송두리째 방기했음을 반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의 삶의 부유함을, 어떻게 창출할 건지에

대한 미시적 수준의 갈등선을 역시 그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역시 이명박의 집권이 김대중/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운동권 세력이 정치적 발전에 소홀했던 덕택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주 월요일 오후, 코엑스 3층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진격, 조그마한 초대장

하나를 들고 차려입은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 전우회 따위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들까지

숨넘어갈 만큼 잰 걸음으로 3층 행사장을 찾았다.

얼마나 바글댔냐 하면, 코엑스 1층부터 3층까지 전관에 그들의 숨가쁜 뜀박질 소리가 메아리쳤고, 그뒤를 따라

질서유지를 위해, 그리고 연사로 초청된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안전을 위해 의경들이 떼를 지어 몰려갔었다.

정신사나운 호루라기 소리와 구둣발 소리, 그리고 쉼없이 3층 행사장이 어디냐고, 어디에 가면 라면냄비를

받을 수 있냐고.


심지어 그들은 일층 행사장에서 커피브레이크를 가지며 마주보고 담소를 나누던 외빈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며 "이건 뭐야~"할 정도로 용감무쌍했다. 이럴 수가. 이토록 비문명적인 인간들이라니.

그나저나, 엥? 라면냄비?? 오후3시인가 시작된다던 행사에 수천명의 사람이 몰렸다더니. 무슨 행사인가 싶어서

시간날 때 올라가 봤댔다. 민주평화통일? 진보쪽 단체인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보수색채가 진한 듯 보이는

이름이 슬쩍 호기심을 간질였다. 근데 평화통일 어쩌구 행사에 왠 라면냄비 Seeker들인가 말이다.

안내데스크 뒤쪽 가득히 쌓인 라면냄비를 둘러싸고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전쟁터 한가운데서

부상병이 물한모금을 청하는 심정으로 주위 '어르신'들께 물었다. 이건 대체 뭡니까. 라면냄비는 어떻게 하면

받는 겁니까. 사정인즉슨 이랬다. '북괴를 몰아내는 통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통일무지개회원카드'를

작성해서 회원신청을 하고 나면 입장이 가능하고, 입장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무려, '라면냄비'씩이나 제공이

된다는 거다. 다소 소략하게 말하자면, 회원가입신청과 라면냄비의 물물교환이다.

그래서 신청서를 내고 라면냄비를 받는 창구는 이토록 혼잡스러운 거다. 초대권을 흔들며 왜 더 안 주냐고

항의하는 어르신, 양손에 라면냄비가 담긴 종이백을 네다섯개씩 주렁주렁 꿰고 가는 어르신.

한쪽에는 알맹이가 쏙 빠진 채 껍데기만 남은 종이백이 수북하다. 파란색이다.

"핵무기 개발로 세계와 대결하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2,400만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에 신음하는

참담한 현실", "초당적이고 범국민적인 국민통합을 이루어 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하는 지지층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관계 고위인사들 인사말을 보아도 알 수 있듯, 파란색이다.

이런 어이없는 대북관, 게다가 황장엽의 어이없는 통일관. 몇년전 황장엽이 주최하는 소규모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때 주체철학의 창시자였던 그는, 그의 '인간중심철학'이 김일성에 의해 일인독재를 정당화하는

'주체사상'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남한땅에서의 지분을 받았지만 남겨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인간적으로 동정을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북한에 대한 매파적이고

극렬한-결과적으로 한국 보수반동과 통하는-목소리를 더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머리위에

있는 한국은 한국만의 '한국식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느니 어떻다느니, 정부의 동원능력을 확대하고 시민적

공간과 가치를 훼손하는, 그런 어이없는 민주주의론까지 운위하고 있는 건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게다가 이런 자리를 위해 화환을 보내고, 사람들을 동원하고, '라면냄비' 몇천개를 사라고 돈을 내어주는

사람들은 더더욱 어이가 없다. 회원이 되면 낭독하게 될 '선서문'에 보면 적나라한 그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정부의 대북정책 공감대 확산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

솔직히 이런 양반도 마찬가지다. 나름 인지도가 있는 김병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있다. 뭐,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가서 대통령 팬이니 어쩌니, 내복이 어쩌구 저쩌구 박자맞춰주는 탤런트니 아나운서들도 있으니

이런 조그마한 데서 마이크 잡는게 뭐가 어떠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나는 애 많이 낳자거나 다시 한번

같이 뛰자거나 허리띠 졸라매자는 공익광고에 목소리 빌려주는 사람들도 일말의 가책은 있지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런 관제 행사가 먹히는 상황이 많은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관에서 얼굴마담 내세워 사람들

동원하고 여론몰이하려 들고, 그래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게 별 거 아닌 쭉정이 단체에의

가입신청서를 써주는 조그마한 수고가 되었건, 별 거 아닌 '라면냄비' 따위 일용품이 되었건, 한 사람의 그런

호응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런 조그마한 호응이 모여 지금같이 괴물같은 시대를 만들어낸 거 아닌가. 그래놓고

뒤로 돌아 정부 욕하고, (돈/지식) 가진자 욕하고 그래봐야 자기 얼굴에 침뱉기다.


하나더, 굳이 말하자면 '어르신' 문제다. 우리 사회에 대체 존경, 최소한 존중받을 만큼의 어르신이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식민시대라는 시대적 굴레에 대한 일정한 책임,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에 대한 일정한 책임, 이후

미쳐돌아가던 반공이데올로기와 발전이데올로기의 총화라고 해도 심한 건 아니지 싶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스스로 겸손한 '어르신'은 찾기가 힘들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만 먹었을 뿐.

얼마전 '친일인명사전'에 맞서 '친북인명사전'을 발간했다는 어떤 뉴라이트계열 단체의 기자회견장에서

"왜 김대중, 노무현이 포함되지 않냐"라면서 니놈들도 빨갱이다, 라고 하며 급기야 서로 빨갱이 삿대질을 하던

사람들, 오바마 방한때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던 사람들, 어르신들이다. 이미 사고방식이 굳을대로

굳어버려 더이상 개전의 여지조차 없는, 그래서 약간 관조적이랄까, 역사적이랄까 그런 먼 시각에서 보자면

사라지는 것 밖에 답이 없는 존재들 아닐까 싶다. 반면교사로서 훌륭한 귀감이기도 하지만.




추석때 갔던 구리 한강시민공원. 차들이 2차선 도로변을 빼곡하게 메워놓고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이토록 넓은 코스모스밭에 듬성듬성 풀려나 있었다.

그냥 분홍빛 풀밭으로 보이던 것들, 가까이서 보면 초록 풀빛 위에 얹힌 형형색색의 분홍빛 꽃잎들이다.

발 디딜틈 없이 빼곡하게만 보이던 '그야말로 꽃밭', 한 가운데 길이 나있었다. 물을 공급하는 검정 호스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양쪽 시야에 코스모스를 꽉 채우고 길을 걷자니 꽤나 멋지다.

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색이니 향이니 모양이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이 뽀송뽀송하고 때묻지 않은 '새것'이란 느낌 그득한 점이 크지 않을까. 적어도 난 그렇다.

꽤 잘 꾸며놓았다. 오두막에 주렁주렁 매달린 잘 익은 조롱박, 처음엔 너무 이쁘게 생겨서 가짜인가 했댔다.

언제부터 나와서 원두막을 차지했는지 아예 안방처럼 편하게 자리잡으신 가족들.

신기한 탈것도 있었다. 워낙 넓은 공원을 모두 코스모스 밭으로 꾸며놓은 터라, 걸어서 돌기도 쉽지 않은 터에

피곤하다 싶은 사람이라면 굉장한 유혹을 느낄 만한 탈거리지 싶다.

똑같은 계절인데 코스모스들도 제각기 다르게 느끼나 보다. 잔뜩 만개한 코스모스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귀퉁이는 이미 이렇게 꽃이 지고 뾰족하고 길쭉한 코스모스씨를 툭툭 떨구고 있는 대궁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아직 탱탱한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기도 했다.

제목은? "꽃과 나", "갈대처럼 지저분한 나", "코스모스도 한 철, 나도 한 철", "코스모스가 뛰니가 나도 뛴다"..?

애초 컨셉은 신해철이 넥스트로 활동할 때 잔뜩 가오잡고 있어보이는 척했던 그런 포즈였는데..OTL.





'순수한 시민'이란 단어가 여태까지는 촛불집회에 나섰던 국민들의 진정성과 평범함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단어를 통해 어느정도 '빨갱이괴담'과
'이념논쟁'으로 몰아가려던 반동세력들의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분,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많은 시민들의 실로 역사적인 대규모
집회 참여를 표현하기에도 적절한 표현이었는지 모릅니다. 시민단체활동을 하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유별난' 사람들만이 시민이라고 생각되던 한국 시민사회의 미성숙함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러한 '순수한 시민'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선명한 입장과 견해를 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중립적이고 초정파적인 입장에 서있는 듯한 '순수한 시민'이란
단어로 우리를 지칭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진행된 촛불의 전진은 '변질'이라 비판받게 되고,
우리는 '변질된 시민, 빨갱이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순수한 시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민으로 가져야 할 순수함이란 게 어떠한 덕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던 우리는 "미국산소고기의 수입을 반대"하고 "이명박 정부의 파행적 정국운영을 반대"하는
분명하고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 이상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최대공약수는 그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거리의 목소리와 제도정치권의 지형이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자신은 정치로부터 초탈한 양, 그저 훈수나
두면 된다는 듯이 "순수한 시민"이라는 고고하고 우아한 미명 뒤에 숨어서 자신의 입장과 정치적
의견을 감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와 진보신당, 나와 민주노동당이 어떠한 점에서 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보수 언론들의 경마식보도처럼) 누가 승기를 잡을지,
누가 뜨는 인물인지에만 가십성 흥미 위주로만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중요한 교훈은 유실되어선 안됩니다.
그건 우리가 '순수한 시민'으로 이해관계에서 초탈해있다거나 정치적 입장이 무색무취한
고고한 원자적 존재들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정치적 지평 내에서 엄연한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가진 정치적 존재들이란 점입니다. 그걸 잊지 않는다면 각자의 입장에 맞는 정치집단,
시민사회집단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거나, 하다못해 자신에게 진정으로 이익이 되는
사람을 뽑을 수 있을 겁니다. 뉴타운이니, 737이니..에 속아넘어가지 않구요.

각자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 결집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상화된 '시민' 전체의 순수한 목소리가
애초부터 아니었기에, 변질된 것이 아닙니다.(이명박도 시민이고, 유인촌도 시민입니다.)
좀더 명료해지고, 좀더 선명하게 '우리'의 입장이 드러나는 것뿐인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점점 진지해지는 것을 보면서, 이건 '변질'이 아니라 '발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적어보았습니다. 불필요한 '순수성' 논쟁이 촛불집회와 국민들의 민주주의적 역량의 성숙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촛불을 든 우리 스스로 그러한 '순수성' 논쟁에 발목이 잡혀서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이며, 이명박정부의 퇴진을
요청하는 시민이며, 조중동이 폐간되어야 한다고 믿는 시민이며, 진보신당이 원내진출을 꼭
이뤄내고 나아가 준비된 정권으로 국정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시민입니다.


- 다음아고라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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