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Y NEX-5R을 한달동안 사용해 보면서, NEX-5R의 디자인, 촬영 성능, 무선통신 기능, 그리고 다양한 촬영 부가기능에 대해

 

살펴 보았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작고 가벼운 장점을 극대화한 디자인 속에 왠만한 DSLR 못지않은 성능과 부가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위로 180도, 아래로 50도 움직이는 LCD 모니터는 촬영 자세를 무척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리고 보급형 DSLR과 동일한 무려 1,610만 화소를 자랑하는 APS-C 이미지 센서를 장착한 NEX-5R.

 

DSLR과 성능이 같다는 건, DSLR과 동일한 아웃포커싱 효과, 고감도 노이즈 억제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확연하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도달한 미러리스 디자인의 절정"이라는 상찬이 다소 오글거린다 할지 몰라도, 실제로

 

SONY NEX-5R을 들고 다니면서 그 앙증맞고 야무진 디자인에는 늘 뿌듯함을 느끼고는 했던 것이다.

 

 

결국 '당신에게 필요한 한 대의 카메라'라는 SONY의 카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간 SONY NEX-5R과 함께 담아본 풍경들을 나누면서 당신에게도 이 카메라가 필요할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서울의 인사동, 광화문, 시청, 코엑스, 압구정동, 홍대입구라거나 대구, 인천, 군산, 가평, 춘천을 돌아다니며 함께 했던

 

SONY NEX-5R, 내게는 꼭 필요한 한 대의 카메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ㅇ 서울, '샛노랑과 샛빨강 사이'의 11월.

 

 

 

 

 

 

 

 

 

 

 

 

 

 

 

 

 

 

 

ㅇ 대구, '大雪'을 코앞에 둔 대설특보가 내린 날.

 

 

 

 

 

  

 

 

ㅇ 서울, NOW IS GOOD with 류이치 사카모토.

 

 

 

 

  

 

 

 

 

 

 

 

 

ㅇ 군산, 홍어삼합처럼 코끝을 톡 찌르던 겨울 바람.

 

 

 

 

 

 

 

 

 

 

 

 

 

 

 

 

 

 

 

 

 

 

 

 

 

 

 

 

 

 

ㅇ 춘천, 얼음과 눈의 나라.

 

 

 

 

 

 

 

 

 

 

 

 

 

 

 

 

 

 

 

 

 

ㅇ 그리고, 파노라마 세로샷 한 장 투척!

 

 

 

 

 

 

* 이 글은 SONY NEX-5R의 체험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삼성동 포스코사거리 앞의 루미나리에. 나무 맨살에 전깃줄을 둘둘 감고 있는 모습이

맘에 안 들기는 작년이나 올해나 마찬가지지만, 워낙 날씨가 추워놓으니 왠지 저렇게라도

따뜻하게 온기를 입혀주는 게 나쁘지만은 않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작고 빤짝이는 불빛 굴다리 속에 들어가서 한번, 이쪽 바닥에서 저쪽 바닥까지 파노라마로

드르륵 긁었더니 나름 성공적으로 하늘과 땅이 맞닿게 나온 사진.



@ 포스코센터 앞. (by SONY a33)


매년 11월 30일은 '무역의 날', 올해는 그 무역의 날이 제정된지 47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공과가 어찌되었건 우리 나라를 지금의 경제 발전 루트로 견인해 온 건 바로 '무역입국'의 기치

아래 머리카락부터 북어까지 돈되는 건 전부 수출에 나섰던 그 시절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터.

그 때 이래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출은 좋은 것, 수입은 나쁜 것'이라거나 '우리나라의 살 길은

오로지 수출, 대외지향형의 경제'라는 정형이 생긴 건 이제 좀 교정이 필요할 때지 싶지만,

여하간 그 때나 지금이나 포스터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맨날 도약이래.

세계 속의 수출한국. 한국이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so 심플한 거다. 사는 것보다 많이 팔면

된다는 식. 이 포스터의 테두리에 감긴 국기들이 아마도 당시 한국의 주요 교역 국가였나보다.

외국 앞에서는 항상 '우리'로 똘똘 뭉치는 성향도 있거니와 그걸 부추기는 건 이런 식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세계 시장을 우리의 무대로, 온 동네방네에 태극기와

애국가를 퍼뜨리며 가슴 뿌듯해 하는 건 일종의 병이겠지만, 아직 상품 무역에 치중하던

때 무역이야말로 바로 그런 가슴뛰는 애국심의 원천, 용광로였을 거다. 나라를 부강케 하고

당장 우리 가족들을 잘 살게 만든다는 믿음에 기반했을 테니 마냥 냉소할 일도 아니다.


상품 수출 뿐인가. 중동으로, 독일로 간호사나 건설 노동자를 내보내어 외화벌이에 나서게

하고, 일본 관광객을 겨냥한 기생 관광도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언제나 그렇듯 대다수의

이름없고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이 나라 경제를 이만큼 이끌어왔다.

한국에서 '수출기업'은 한때 굉장한 특혜와 정책적 배려를 누렸고, 여전히 그런 점이 없잖다.

의도적인 고환율을 유지하거나 거의 0%에 가까운 이율로 자금을 융통해준다거나, 사실은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데다가, 특히나 한국처럼 원자재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하는 형태라면 수입과 수출 모두를 잘 챙겨야 하진 않을까 싶은데. 이전이야 수출, Export만

강조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작고 약한 경제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이제 어쨌든 OECD도 들어가고

G20도 들어갔으니 어느 정도 마구잡이식 달러벌이에선 벗어날 때가 된 거 아닐까.


군수물자 팔아서 달러 벌고, 빈국에 제공하는 무상원조는 가능한 쌩까거나 수익 조건을 달거나,

노동자들이 파업만 하면 '소나타 몇대분 손실'이네 협박하는 행태는 이제 벗어던져야 더욱

발전할 동력을 얻을 거라고 생각한다. 몸빵과 '하면된다' 정신으로 해결될 수준은 지났으니까.

이건 언제적의 포스터일까. 정말 상상속의 '로봇손'이 반도체를 쥐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계산기처럼 생긴 컴퓨터 초기모델이 휭휭 날아다니고, 아, 반도체는 심지어 한반도 어디메에서

뻗어나온 빛과 연결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날고 있는 건, 인공위성인가 설마.

왠지 조금씩 포스터에 들어가는 메시지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기술혁신과

품질의 고급화로, 소득을 높이고 생산을 많이 하고 외화를 벌고 고용을 많이 하자는 메시지.

왠지...낯설지 않다. 사실은 수출입국의 기치를 세운 이래, 혹은 대부분의 수출을 담당하는

대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이 펼쳐진 이래 늘 일관된 이야기였던 거다. 기술 혁신에는 비단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인적자산 관리기술, 쉽게는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따위라 표현할

기술도 포함되는 것. 뒤집어 말하자면 모든 정책이 표방하는 목표는 한결같았다. 다행이랄까.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부분을 빼고 나면 역시 "소득 증진과 고용 증대"가 관건이다.

'근로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거슬리지만 참 집요하게도 계속된다. 오늘도 이명박 대통령은

무역의 날 행사 축사 중에 '근로자'란 단어를 몇 번이나 썼던 것. 수출 500억불을 달성했음을

축하하는 포스터가 86년에 만들어졌고, 조만간 무역 1조불을 축하하게 될 테니 여전히 한국

경제는 고속 성장중인 듯 보이기도 한다. 수출, 수입에 한정하자면.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86년 포스터에서 '국회' 건물 이미지가 보인단 사실과 '수입업자'는

발 딛을 곳이 없이 빠져있다는 사실. 정부는 적절한 시책을 펼 테니 국민들과 국회는 그저

정부만 잘 이고 지고 따르라는 걸까. 수입은 적을수록 좋다는 기조 아래서 수입업자들이야

뭐, 찬밥 아닌 찬밥 신세인 거는 어쩔 수 없었을 테고.

세계를 한국의 무대로. 곧게 솟은 태극기가 워낙 작아서 혹시 거꾸로 들린 건 아닌지, 사방의

괘가 제대로 그려지긴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운 색감과 도안만 조금

손보고 나면 딱히 메시지에서 바꿀 거는 없어 보인다. 수출 증진, 수출 몇백억, 몇천억, 규모로

세계 몇 위라느니 등등 수치에만 목 매달고 축하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란.

사실은 그 수출의 순이익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원재료를 수입해 왔는지, 무엇보다

그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국가의 총이익이 전체 국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고 있는지 그런

질적인 측면을 더욱 앞세워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 걸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늘 '무역의 날' 행사에서 본 장면 하나, 회사의 오너가 아닌 월급쟁이 사장이 마침 그

회사의 수출 실적이 몇 백억, 몇 천억에 도달해서 행사장에 나와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산업훈장을 받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사실은 그 월급쟁이 사장이 아니라 수십년째

한결같이 일해 온 그 밑의 직원들이 받아야 하는 상 아닐까. 이씨 일가의 삼성이나 정씨

일가의 현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영광'이-이명박에게 받는 건 영광은 아닌거 같지만-

사장 혹은 회사대표의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건 웃기다. 이 나라 경제가 몇몇 대기업 덕분에

이만큼 커지고 자라난 게 아니듯이.




@ 삼성동, 코엑스 무역전시관
"그냥 국물 몇 숟갈 뜨고, 못 먹겠다고 하면서 삼계탕이나 하나 시켜먹어."


저녁 회식자리에서 개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알린 나도 나지만, 문자를 받고 득달같이 전화한 엄마도 엄마다.

그만큼 우리 집에서 '개고기'는 아무도 먹어보지 않았고 먹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그야말로 '금기의 음식'.

뭐 딱히 개를 사랑해서라거나, 비위가 약해서는 아니다. 우리 집안에선 예전부터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개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안 먹던 거니까, 왠지 찝찝하니까 정도의 부담감이랄까. (그렇지만 안 먹어 보았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건 아주

좋아라 하니 찝찝함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도 되겠다.)

처음 와 봤으니 이것저것 맛을 봐야 한다 하여 수육이랑 탕이랑 테이블 위에 올랐다. 기름을 반들반들 머금은

고기가 나오는데, 속살은 흑염소고기처럼 결이 져서 부드럽고 껍데기쪽은 쫀득거린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음식점 한 켠에는 '드시지 못하는 분을 위해 외부음식의 아웃소싱을 해드린다'는 안내까지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룸 내의 사람들은 전부 잘만 먹더라. 딱히 먹으면서 추억할 만한 누렁이와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먹으면서 점점 내 말소리가 개소리로 변해가는 것 같지도 않고.


집에 도착해선 다녀왔습니다, 대신 멍멍, 짖어서 인사를 갈음했다. 국물만 먹었냐고, 고기 정말 먹었냐고

그러길래 계속 멍멍, 그렇게 답하다가 한 대 맞고. 그러다가 개고기를 먹어선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

'치열한(이라 쓰고 저열한, 이라 읽는다)' 논리 싸움. 우리 윤씨는 대대로 개와 잉어를 피했다고 하길래,

조상이 개나 잉어에서 변신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그러다가 멍멍거린다고 한 대 맞고. 뭐라더라,

개랑 잉어한테 도움을 입었다던가, 그래서 그랬다. 어차피 키우던 소랑 돼지랑 닭한테도, 그리고 키우던

깻잎이랑 상추한테도 도움을 입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집안에 도움이 된 게 어디 개와 잉어 뿐이겠냐고.


그리고 친가 쪽만 조상이냐고, 외가 쪽에서는 먹지 않냐고 했다가 외가 쪽도 안 먹는다는 말에 깨갱 한번.

뭐 대충 그렇게 일 합씩 주고 받는 상황에서 우리 집 족보가 과연 진짜일까욤, 요런 질문 던져봐야 별로

도움될 이야기는 아니어서 속으로만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것도 그렇다. 씨족에 따라 존중하고 보살피는

동물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 씨족에 대대로 속해서 족보와 가계에 맞는 오리지널 정통 계보가 얼마나

되려나 싶다. 대부분 돌쇠, 점순이를 조상으로 갖고 있을 텐데.


할머님이 먹지 말라 했다고 당부하셨다고, 옛날 어른들 말씀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랬다. 손에 잡히지 않는

'조상'이란 단어보다는 훨씬 와닿는 할머니의 말씀이었다니 왠지 뜨끔하긴 하지만, 옛날 어른들 말씀이라고

다 삶의 지혜니 살아본 경험이니 응축된 건 아닌 거다. 막말로 사람들 영혼 빼앗긴다며 사진찍히지 말라던 것도

고작 백년안팎 이전의 옛날 어른들 말씀이다. 혹시 모르지,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겠지만 특정

성씨의 씨족에겐 개고기의 DNA와 충돌하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거나 하여 옛 어른들의 경험칙으로만 구전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젯밤은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몸을 보하는 게 아니라 허하게 만드는..;


결국 우리집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먹지 말라는 불문율이 내려오는) '전통' 혹은 '조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겠다. 그런 조심스러움에 더해 조상님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될 거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외경이

개고기에 대한 찝찝함을 증폭시키는 이유랄까. 맛보고 나니 사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전혀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긴 했는데, 왠지 그런 부분이 걸려서 딱히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을 만큼 땡긴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괜히

조상님들을 화내게 만들고 싶진 않아..란 생각이 깊숙이 인셉션되어 있는 거랄까. (아...이렇게 심지가 약했던 걸까...)


물론 그 밖에 개고기를 둘러싼 많은 찬반의 이야기들이 있다. 개는 인간의 친구라느니, 가장 유전적으로

유사한 생명체라느니, 혹은 반대로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느니(사실 동남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참 많이들

먹고 있다길래 깜짝 놀랬지만) 따위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영양학적 근거를 통해 우수한

단백질 보충원(보양식꺼리)라는 입장과 요새같이 영양분 넘치는 세상에 굳이 개고기까지 먹을 필요가 있냐는

다소 실용성에 주목한 입장(음식의 맛 차이나 그런 요소는 모조리 무시한) 등이 있는 거다. 혹은 위생적으로

전혀 깔끔한 도축 과정이나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는 지금의 실태를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라거나 아님 아예

금지하라는 입장도 있는 거고. 정답은 뭘까.


그냥, 개인적으로는 아무 생각없이 개고기를 가리키며 "개속살은 담백하니 맛있네요. 근데 개껍데기는 좀

쫀득하면서 돼지족발같애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살짝 뜨아했다. 개속살, 개껍데기라...돼지속살, 돼지껍데기랑은

조금 다르게 울리던 단어들. 그리고 사실 단순히 이 문제는 개냐 돼지냐의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육식이냐

아니냐의 선택이 좀더 근본적이고 깊이있는 프레임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국과수에서 시체 부검하는 것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음식의 미학-부검 견학의 감상.)


* 나름 개고기계에서 이름난 맛집이라 하여 첨부해 보는 정보. 먹을 사람은 먹어야지 싶어서.


며칠 전, 어쩌다 카메라를 들고 출근하게 되었더랬다. 퇴근하고, 가벼운 회식 자리까지 마치고 집까지 오는 길..

회사를 나와 눈에 보이는 풍경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칙칙하던지.
둥그런 가로등이 보름달처럼 휘영청 낮게 떠있는 이곳은, 코엑스 유리피라밋 주위의 자그마한 휴식공간이랄까.

그렇지만 겨울비에 온통 젖어버린 벤치엔 앉아 쉴 곳이 없다.

유리 피라밋 너머로 보이는 코엑스몰의 식당가. Glass Ceiling과는 다른 Glass Barrier, 추욱 처질 만치 따뜻하고

안온한 실내의 부유한 공기와 찬 비가 탐욕스럽게 훑고 간 바깥의 가난한 공기를 갈라놓고 있는 그것. 그것은

깜깜한 어둠이 내린 가운데서도 반들반들 개기름낀 이마빡처럼, 번뜩이는 섬광을 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지났던 대보름에는 보름달을 찾아 하늘 한번 볼 생각도 못 했고, 땅콩이나 호두 등속이 가득

담긴 그릇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서는 쉼없이 까먹는 호사도 못 누렸으며, 소원을 뭘 빌지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다. 보름달이 떴다면, 이 정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저 정도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이러저러한, 즐겁지만 피로한 술자리, 사람들 만나는 자리들을 정거장처럼 지나쳐서는 집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우리동네 아파트 가로등도 코엑스 지상의 그것처럼 둥그렇다. 둥그렇고 하얗다. 둥그렇고 하얗고

차갑다. 그리고 왠지 불안하다. You must be fallen from the sky...

술을 마신 탓일까, 아님 야심한 밤에 찍은 탓일까, 한 점에 야무지게 모아져야 할 불빛들은 약간씩 흐트러져 번진

것이 마치 술에 취한 그녀의 립스틱 번진 입가나 살짝 풀린 채 젖은 눈동자 같다. 게다가 사물들이 하늘을 향해

기립하길 거부하고 있는 이 5도쯤의 기울기. 창백한 가로등 불빛에 온통 낯설음만 덕지덕지한 공간.

여전히 그닥 네 녀석에게 빌 만한 건 없어, 중얼거리며 아파트 복도를 지나다. 사람의 기척을 알아채고 귀를 쫑끗

세우는 충성스럽고 성가신 강아지 모냥 반짝 불을 밝혀야 할 센서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채 묵비권을 행사중이다.
 
괴괴한 통로, 묘하게 울리는 구둣발소리의 사성부돌림노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위치에너지를 축적하곤, 운동에너지를 소모하며 조금 걸어 대문 앞에 서다.

뒤를 돌아보니 왠지 가슴시린 어둠. 얼른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곤 재빨리 닫아걸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