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비밀서재 #히틀러 #서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어떤 책을 읽어왔고 어떤 책을 소장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은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근거가 될까. 적어도 1만6천권의 장서를 개인소장했고, 그의 사상과 행동이 역사를 뒤흔든 사람이라면 그의 독서이력과 서재는 큰 힌트가 된다는데 이견은 없겠다. 사실 나는 그보다 자취가 작은 일반인, 한국같은 작은 나라의 대통령이라거나 평범한 갑남을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애서가를 자처했고 늦은 밤까지 하루 한권의 책을 읽어내는 것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의 제3제국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철학자로 니체나 쇼펜하우어를 들먹인 것도 주효했을 거다. 지독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뒤범벅된 그의 이른바 민족사회주의는 그래서 더욱 파악하기 어려워보이는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대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어떻게 엮어내겠단 건지, 거기서 파생되는 논리적 귀결들이 서로 절그럭거리는 건 어떻게 해소하겠단 건지. 유대인은 왜 이렇게 늘 인류의 적이 되어 왔으며, 아리아인종이란 건 대체 어디서부터 순수하고 어디서부터 '오염'된 건지도. 등등, 끝이 없다.

그렇지만 과연 그가 그만큼의 소화력을 갖고 있었는가 하면, 아니었단 게 이 책의 일관된 메시지다. 그는 체계적인 독서를 한 적이 없고, 그의 사고는 독서와 함께 부딪히고 발전하고 변화한 게 아니었단 이야기다. 문제는 그의 독서법. 그는 자신의 근거없는 신념과 망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조각들을 찾는 방식의 독서를 했고, 개별 철학이 진지하게 구축하려 한 세계와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런 아전인수식의 발췌독은 현란한 수사와 웅변에 필요한 벽돌은 제공할지언정 본인의 사고와 사상을 위한 자양분은 뽑아내지 못한단 이야기렸다.

이 대목을 아전인수식으로 다시 인용해보자면, 글쎄. 양보다 질이다. 몇권을 봤는지가 아니라, 개개의 책들이 어떤 맥락과 통찰력을 갖추고 본인에게 도전해왔는지가 중요하단 말이다. 교양을 진열하기 위한 지대넓얕식의 지식 소비가 갖는 위험성은, 혹은 장학퀴즈/일대백식의 퀴즈쇼에 특화된 암기지식이 갖는 위험성은 전혀 본인을 흔들지 못하는 그 무독한 지식에 있다. 백번을 흔들리고, 아프고 또 아파야 하는 건 청춘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개개인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식이라면 결국 애서가이자 웅변가 '히틀러'가 되는 게 고작일 테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 독서 경험과 서재의 구비를 통해 히틀러의 뼈대가 될 신조와 인생을 짚어준다는 것. 사실 지금까지 과문한 바 히틀러의 삶과 그의 신념에 대해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투쟁'을 읽어보는 건 고사하고 그가 외계인도 남장여자도 사이코패스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런 반인류적인 짓을 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각 하나 찾지 못했으니깐. 그렇지만 그의 사고퍼즐을 담당한 책들이 직조되면서, 그 역시 평범한, 혹은 다소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성찰력이 부족한, 그래서 결단력만 가득한 멍청이였지 않을까 상상하고 이해해보게 만든다.

쁘띠 프랑스, Petite France 곳곳에서는 쁘띠 프린스, 어린 왕자의 자취를 찾을 수가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인

생떽쥐베리 재단의 공식 라이센스를 갖고  '쁘띠 프린스'를 초청해 '쁘띠 프랑스'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 것.


어린 왕자는 평소 자신의 조그마한 별 구석구석을 잘 관리해주었다던가. 별을 꺠뜨릴 수 있는 바오밥나무 씨앗을 솎아내고,

화산이 막혀서 폭발하지 않도록 잘 청소도 해주고. 장미꽃의 진딧물을 잡아내고 유리케이스를 씌워주기도 하고.

생떽쥐베리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줬던 양 한마리. 병든 양, 염소같은 양, 뿔이 난 양 따위를 걸러내는 날카로운 선구안을

가진 어린 왕자가 맘에 들어했던 건 사실 상자 속에 들어있던 양이었는데. 그 상자는 여기에서 못 본 거 같다.

별들을 여행하던 어린 왕자가 만난 어른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고, 술에 취했으며, 쓸데없는 일을 벌여놓고는

스스로 만족하려 애쓰고 있거나 우울함에 빠져있곤 했다. 더이상 나와 전혀 관계없는 딴세상 이야기라 말할 수 없는 것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일? 밥먹는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건 정말 어려운거란다."


"안녕, 잘 있어" 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 잘가.... 참,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사막을 아름답게 하는 건, 사막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어서에요..."
"맞아.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아저씨가 내 여우와 의견이 같아서 기뻐요."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밭에 앉아있는 거야.
곁눈질로 널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거든.
그러면서 날마다
너는 조금씩 더 내게 가까이 앉으면 돼."

"..."
"..."

"너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이미 나는 불안해지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구경하러 가..."
"그렇지만 기다려야 해."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넌 언제까지나 내 동무로 있을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 질꺼야."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모든 별들이 다 아저씨에게 웃고 있는 듯이 보일거야."

"누구나 다 친구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를 잊는다면 나도 숫자 밖에는 흥미가 없는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그렇게 되면 황금빛이 물결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별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에요.
꽃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정성을 들인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없는 친구가 될테니까."

"누가 수천,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자그마한 종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저 버섯같이 생긴 녀석이 '바오밥나무'를 표현하려 했단 건 나중에 알았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소금꽃나무 - 10점
김진숙 지음/후마니타스

3차에 걸친 희망버스, 연인원 수만명의 자발적인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을 찾았다.

이제 조남호 회장에 대한 청문회가 내일(18일)에 있을 예정이고, 진보 정당들 이외에 민주당까지도 이 문제를

적극 이슈화하며 조남호 회장의 불법적인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겠다며 벼르고 있으니, 어쩌면

조금은 해피 엔딩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렇게 한진중공업 사태가 조금이나마 전향적인 방향으로 해결되리라는 희망이 보이게 된 건, 거의 전적으로

그녀 덕분이다. 반년이 넘도록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그녀,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

그녀 스스로 한진중공업의 전신 대한조선공사의 불법 정리해고 희생자인 채 아직도 복직되지 못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오십이 훌쩍 넘은 '중늙은이 아줌마'가 죽을 각오로 크레인 위에서 버텼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떤 삶이었기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이미 두명이나 죽어내려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갈 각오를 했던 걸까. 한진중공업에 무슨 일이 있는지, 그녀가

무슨 요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그녀의 이름 석자, 김진숙을 알고 감동하고 감탄하고 더러는

욕하는 시대, 그녀를 편들던 아니던 그녀를 좀더 깊이 알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닐까.


조금씩 그런 우려들이 나오는 거 같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의 외침 대신

그녀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모습들이 꼭 달 대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 같다는 우려다. 그렇지만

그녀의 안부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그녀가 지금 목숨을 걸고 그곳에 있는 이유로 관심이 옮아가는 건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더구나 그녀 김진숙이 지난 시간 써온 글, 뱉은 말들과 행동의 연장선 상에서

마치 나침반의 자침처럼 한 곳만을 흔들림없이 향하고 있다면.


이 책, '소금꽃나무'를 낼 때 김진숙 그녀는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따위 게 책으로 만들어낼 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그따위 걸 책으로 만들어 내자고 나무를 베어내도 되는 걸까." 그리고 펴낸 책 앞머리에

이렇게 글을 박아 넣었다.

"소금꽃나무를 읽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았냐고 묻곤 한다.
난 내 삶을 살았던 것 뿐이다. 누구에게든 삶이 있듯 내 삶은 그랬던 것 뿐이다.
내가 지닌 이력 중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채 쉰둘.
살아 내려간다면 단 한가지만큼은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꿈꾸며
85호 크레인, 169일을 맞는다.
_2011년 6월 23일 김진숙."


그녀 김진숙의 지난 생을 기록하고, 그녀가 만난 노동자들의 삶과 고통을 기록하고, 그렇게 2011년

한국 사회로 치달아온 야만의 세월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망이 담긴 책, '소금꽃나무'를 읽으며 줄곧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비정규직 문제나 소규모 사업장 노조 문제와 같은 문제를

정면으로 맞부딪히고 싸워온 그 대담하고도 치열한 순수함 앞에서, 열정 앞에서, 부끄러웠다.


그 눈물은 김진숙 때문이라기보단, 그녀가 온몸으로 가리키고 있는 이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란 게

더 맞을 거 같다. 1970년 전태일이 스스로를 불태웠던 시대로부터 멀리 나아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기껏 비정규직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짐을 전가시킨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건 너무나도 아픈 일이다.

김진숙 그녀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기엔 그런 손가락조차 귀한 시대, 'Golden Age'

도금시대를 살고 있는지라 그녀의 존재 자체, 목소리와 몸짓 모두를 아끼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렇게 달을 보기 전, 김진숙이라는 손가락 앞에서조차 이토록 부끄럽고 아파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랄까, 세례식이 필요한 거 아닐까. 이런 야만과 부조리 앞에서 이토록 무감각한 우리라면.

그게 내가 이 책을 모든 사람에게 떠맡기듯 기어이 강권하고 싶은 이유다.



* 아래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2003년 김주익 열사를 추모하며 바친 추모사 동영상.

 
"1970년대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2003년 김주익 열사 추모사)



* 그리고 '소금꽃나무'를 굳이 사서 보진 않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부분 발췌.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은 위험해 보인다. 싸워서 얻은 해방감을

단 하루도 누려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을 지키겠다고 목숨까지 거는 이들은 무모해

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북선은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거들랑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그들을 보라."




"동지 여러분. 저는 우리가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제는 노예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되돌아

보니 우리가 벗어던졌다고 믿었던 사슬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돼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자리에서마저 쫓겨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2006년 부산지하철 고용승계쟁취 결의대회,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



"나는 교향악단을 구경한 적도 없고 오케스트라 같은 건 지나가다라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만약 단

한 번만이라도 여러분들의 연주를 듣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거다. 한 달에 70만원을 받고 그마저도 잘릴까봐 전전긍긍하면서 그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면 누가 그 음악을 듣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모멸감을 느끼면서 만들어진

음악이 도대체 누구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겠는가." (마산 예술 노조 복직 투쟁)



"요즘 십대들이 무섭다지만 그때 십대들이 더 무서웠다. 먹고사는 일에 목숨 걸었던 그 무서운 십대들이

결국은 독재를 유지시켰던 균주였고 지금도 먹고 살게만 해준다면 인권이나 환경이나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삽시간에 나발이 되고 마니까. 먹고살기 위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넘어간 일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으나 내가 무슨 힘이 있냐는 체념과 타협한 일은 오죽이나 많았겠는가."



"정문 앞에서 끌려 나가던 동료들을 창문 너머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무수한 자괴감에 대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동료들을 밖에 둔 채 들어가서는 수많은 시간을 죽고 싶은 채 살아 있어야 했던

열패감에 대해, 그리고 비겁이라는 감옥을 제 손으로 짓고 들어가 10년(전교조가 합법화되기까지)을

장기수로 복역해야 했던 그들이 그 감옥에서 이제는 출감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하여 따뜻한 밥상 앞에서 더 이상 목 메지 않기를, 누군가가 두들겨 맞는 시위 장면을 보더라도

더 이상 채널을 돌리지 않기를, 빨래를 걷다 말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다보는 일이 없기를, 아이들에게

정의라는 단어를 말할 때, 도리 같은 단어를 말할 때, 공연히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더 이상은 없기를..."



"노무현 정권의 필살기는 투쟁이나 구속이나 수색 같은 특수하고도 전문적인 분야들을 좀 더 대중화해

일반인들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한 점과 음지에서 했던 일들을 양지에서 내놓고 하게 한 게 아닐까.

이게 절차적 민주주의다. 저 시절엔 기가 질려 "동네 사람들아!"를 못했다면, 이 시절엔 절차대로 한

일이니 아무리 불러도 동네 사람들이 안 오는 거다."



"사람들은 이제 내가 땟국이 빠져서 얼굴이 허여멀건 게 도시 티가 난다고 했지만, 나는 햇빛을 못 봐서

허옇게 뜬 얼굴을 볼 때마다 설움이 왈칵 솟고는 했다. 회사 옥상에 높다랗게 붙어 있던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큰 간판이 언젠가 '수출강국'으로 바뀌어도 전혀 강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그 간판 아래

짓눌린 채 배추 잎사귀처럼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 책(전태일 평전)을 끝내 들추지 말았어야 했을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다.

가슴에 큰 산 하나가 들어앉아 그 산에서 돌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양심에 돌팔매질을 해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산 사람. 그러나 그 삶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끌어안고 뒹굴었던 사람.


난 뭘까. 그의 삶에 비한다면 내 삶은 뭘까. 똥구덩이 같은 현장에서 혼자 비단신을 신고 내내 똥을

탈탈 털고 있었던 넌 뭐냐. 시집을 끼고 다니며 니체도 모르는 아저씨들을 비웃으며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던 넌 누구냐. '노동자'란 말에 멸시를 보내며 '회사원'이라는 자만의

웃음을 질질 흘리던 넌 도대체..."



"'자네 살었을 때 열심히 살게나. 죽어서 천당이 뭔 필요냐. 현실에서 앗싸리 끝내 불제. 천당에도 사장이
 
있다먼 아무리 좋아도 난 거그 안 갈라네. 왜? 그거 가 봐야 읎는 사람은 또 노동자로 살아야헝께. 사실
 
하난님도 썩은 디를 포크레인으로 파다파다 못 파서 도로 덮어버린 디가 우리나란디 그 냥반 붙잡고

나가 먼 야글 더 허간디.' 그라먼 우리 마누라가 '당신은 하난님헌티도 팍 찍힌 사람잉께 잘혀 보씨요'
 
그러면서 웃어 불제라." (대우조선 노동조합 상집 인터뷰 취재 중)



"내 조카는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다만 민주노총이 어떤 합의를 하면,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그 내용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일 뿐이다...

나는 내가 민주노총이라는 게 참 자랑스러웠다. 운동한답시고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면서도,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 늙은 아버지까지 안기부에 경찰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면서도,

그까짓 상처쯤이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로 다 덮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았는데, 점점 안 좋아지는 세상. 지 잘난 맛에 살았던 그 잘나 빠진 이모가 조카를

파견 노동자로 만들어 버린, 아......나는 20년동안 뭘 한 걸까. 내가 20년동안 한 건 뭐였을까.

일요일도 없고, 재고 조사하는 날은 밤도 없는 조카 앞에서 나는 이모가 열심히 싸워서 민주노총

사업장은 대부분 주40시간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다. 상여금도 없고 체력 단련비도 없고 효도

수당도 없고 하다못해 월차도 없는 조카의 1,000만원도 안 되는 연봉 앞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심히 싸워서 그들의 성과금이 너의 1년 연봉을 넘는다는 자랑도 할 수가 없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건 산하노조의 투쟁이건 비난이 난무할 때, 조중동만 탓하기엔 참 옹색해져 버렸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잘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잘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잘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잘릴 때 동생들은 '헹님도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잡았네.'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수백만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지만 아무도 자기가 그 대상이 되리라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이 짜릿한

러시안룰렛게임. 이미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지만 아직도 내가 비정규직이 되리라는 걸

예상하지 않는 이제는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전선이 돼 버린 이 스릴

넘치는 치킨 게임."



"우리 사회에는 학번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 학번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여 간다고

나는 믿는다. 학교를 떠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아마 학번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학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빛나는 자리에 서 보지 못한 사람들. 한 번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대에서 이루지 못한 학번의 꿈을 자식 대에서라도 이루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무모한 돌진. 그 무모함이 만들어 내는 온갖 왜곡되고 기형적인 현상과 구조들.

그건 우리가 바꿔야 할 모순의 가장 밑바탕이기도 하다."



"담당 검사님은 그러시더군요. 병원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면 사진을 찍어놨다고 고발을 하지 그랬냐고.

물론 노조 측에서도 사진을 찍었지요. 역시 카메라는 빼앗겨서 박살이 났구요. 그들 숫자가 훨씬 많았고

힘도 훨씬 셌으니까요. 그중 심하게 다친 조합원들 열 명이 전치 10일에서 4주까지 진단서를 첨부해

폭력을 주도했던 병원 측 관리자 스물한 명을 고발도 했구요.


그러나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더군요. 노조 측에선 열세 명이 사법 처리당하고 세 명이

구속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새삼스럽게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되는 게 아니냐며 흥분하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겪은 법은 늘 그래 왔으니까요. 그걸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아주 생생하게.

그래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라는 검사님의 충고도, 목적이 아무리 옳아도 불법에 대해선 처벌할 수

밖에 없다는 판사님의 지엄하신 판결에도 얼른 고개가 끄덕여지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한 항소이유서를 쓰는 거구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래도 할 수 없고 대답 없는 메아리래도 어쩌겠습니까. 힘이 약해 만날 당하고

깨지기만 하는 약자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그렇게라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조합원 대부분이 스물을 갓 넘은 아가씨들인 일흔여 명의 작은 노동조합. 병원 측의 잔인하고도 악랄한
 
탄압과 일상적인 폭력을 그들만의 힘으론 도저히 막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들과 함께
 
했고 저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 노조가 지켜졌다면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낸 거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가슴이 뿌듯합니다.


이 땅 어느 구석에선가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가 탱크 앞에서 맨주먹으로 자기는 노예가

아니라고 외치며 대항할 때, 우리가 외면한다면 도대체 우린 무엇이란 말입니까
."

(1995년 동래봉생병원 노조파업과 관련, 3자개입, 집시법 위반 등으로 구속되었을 때의 항소이유서 중)



* 그리고 그녀, 김진숙의 크레인 위 유일한 소통의 끈 트윗.(@JINSUK_85)



"저는 지금 주익 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주익 씨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주익 씨가 살아생전 나지막이 봤던 세상의 모습들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주익 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이 되도록 제가 가진 힘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날개(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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