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여러분이 <진보신당>입니다

13000개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에게 띄우는 편지

“시지프스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돌아오는 동안이고 멈춰 있는 동안이다. 바로 바위 곁에 있는 기진맥진한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거운,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끝도 알지 못하는 고뇌를 향하여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본다. 그의 고통처럼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휴식 시간, 이 시간은 의식意識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로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는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중에서


뒤늦은 새해편지

당원 동지 여러분.


설 연휴가 지난 지도 오래고, 2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으니 새해인사를 전하기엔 새삼스런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디는 ‘신년사’라는 걸 통해 동지 여러분께도 말씀을 건넬 계획이었습니다. 오래된 관행도 그렇고, 새해의 첫걸음을 응원하고 희망어린 비전을 제시하는 게 마땅한 도리라는 사람들의 권고도 있었지요.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겠습니까만, 너나할 것 없이 강조하는 2012년의 중요성 때문에 더욱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숙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신년사라는 말이 싫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순간 과장되고 거짓된 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무렵, 이른 아침 집을 나와 경의선 기차역까지 걷는 동안 문득 신년사를 편지글로 고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지 말라”고 어느 시인이 말한 적이 있지요. 결국은 못 부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경구를 이번에는 잊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절망이든 희망이든, 저는 제 속에 깃든 진심을 차라리 드러내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에 쓴 이 편지를 아침에 읽지 않은 채 여러분께 곧장 띄웁니다.



시지프스를 떠올리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거나 그 반대인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너도나도 ‘위기의 시대’를 입에 올리지만, 하나의 위기가 지나고 나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는 급속히 좁아지고 불행을 감내해야할 사람들의 그것은 같은 속도로 확대되어왔습니다. 23년 만에 영구 귀국한 2002년 1월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그 격차라는 것이 이 정도까지였나 하는 점을, 고백컨대 저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깊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당대표가 되고 나서 3개월 동안 저의 일상을 중요하게 차지한 것은 불안정 노동이라 부르는 비정규 노동자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투쟁 집회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3개월 동안 다닌 곳이 지난 10년 동안 갔던 곳보다 많지 않을까 싶네요. 그냥 다닌 게 아니었습니다. 발언 순서를 기다리면서는 왜 그리 긴장되는지, 또 마이크 앞에서는 다른 분들처럼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자꾸만 허둥대는 자신이 또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세상에 이리 많은 싸움이 있는데, 세상은 왜 이리 조용한가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 길고 지루한 싸움의 끝을 대체 누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요? 네 번의 겨울을 맞으며 15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선생님들의 거리농성장을 찾던 날이었습니다. 이 막막하고 외로운 싸움을 목도하고 나오면서 저는 문득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떠올렸습니다.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끝도 없이 되풀이해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그래서 어쩔 건대?’라는 자본의 비정한 얼굴에 맞서 부르튼 두 손으로 기약 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부조리한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분들뿐이겠습니까 마는.


그러다 또 문득 저는 진보신당 당원 동지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하루아침에 뒤로 하고 떠난 당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이 시대의 시지프스가 아닌가요? 냉소와 무관심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뻗어 당을 지탱하고 다시 산 아래로부터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있는 우리의 운명이 시지프스의 그것 아닌가요?


1% 대의 지지율, ‘통합’이란 이름표를 단 야당들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된 원외정당의 설움, 언론의 외면, 고집불통이란 딱지, 명망 정치가들이 남기고 간 부정적 유산과 상처, 무정한 옛 동지들에게 ‘진보(신)당’이란 이름마저 도용당하는 비애, 이당 저당 가릴 것 없이 ‘좌클릭’이요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 조합원들의 민주적 선택권을 몰수하여 3자통합당에 대한 변형된 배타적 지지방침을 관철시키려는 민노총에 대한 울분……. 기나긴 지난 1년여의 통합논쟁으로 지치고 힘겨워 주저앉은 당원들과 지역당협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일까요?



자존감自尊感에 대하여


당원 동지 여러분.


13000개의, 저마다의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는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입니다. 알베르 까뮈처럼,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도,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야만 한다”고도 차마 지금은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에 우리가 가야 한다.” 이 말도 지금은 잠시 유보해 두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 한마디는 반드시 해두고 싶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 <진보신당>입니다. 우리에겐 13000 개의 진보신당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정치적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문명 자체의 위기가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에서 정작 자본주의 이후를 대비해야할 진보정당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슬픈 역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여도 야도 ‘좌클릭’이 유행인데 우습게도 왼쪽에 있던 사람들마저 몸은 ‘우클릭’하는 이 역설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이 어처구니없는 자기분열의 시대에 그저 목이나 어루만지며 안심하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정치 혹은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자존감에 존립합니다. 자존감은 우선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지 않고 자기정체성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끊임없는 확인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질문이 누락된 정당은 누군가의 말장난처럼 ‘가설정당’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일 수 없습니다.


정치가 자존감이 아니라 수數나 세勢에 존립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진보신당 13000 당원들은 불가사의한 존재들로 보일지 모릅니다. ‘끝없는 패배’가 두려운 이들에게 정치적 자존감이란 것은 그저 던져버리고 달아나고픈 거추장스런 시지프스의 바위로 비쳐졌을지 모릅니다. 두 가지의 아주 다른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산꼭대기만을 쳐다보다 바위를 버리고 달려가는 ‘상층연합’의 길이 있는가하면, 바위를 밀어 올릴 때나 바위를 찾기 위해 산 아래를 향해 걸을 때나 묵묵히 자신의 발끝이 향하는 길을 보고 걷는 ‘하층연합’의 길이 있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가운데는 제가 당대표가 된 직후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진보신당 당원들과 저의 힘겨운 노력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즉시 ‘하방下放’을 선택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의 밀알이 되겠다는. 처음부터 패배주의로 시작하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은 이것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1926년 <리용 테제>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한때 사회당(PSI) 좌파의 지도자였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광풍 앞에서 반半합법적 존재로 탄압받으면서 궤멸의 위기에 처한 이태리 공산당(PCI)은 자국 내에서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프랑스 리용으로 당원들을 소집하지요. 그람시는 이 당대회의 테제에서 5만 당원에게 ‘하방’을 명령합니다. “북부의 노동자와 남부의 농민을 조직하고 그들의 혁명적 동맹을 공고화하라”는 이 테제에 따라 당원들은 민들레 씨앗처럼 공장으로 농촌으로 학교로 퍼져나가 삶의 근거지마다에서 진지를 구축하지요. 그리고 파시즘의 몰락 이후 당은 50만 당원을 가진 서유럽 최대의 대중적 좌파정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동지 여러분.


벌써부터 머지않아 다가올 4월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살아남을 것인가 해산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분분합니다. 진보신당의 존재가 자신들의 뒷덜미를 잡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간절히 희구할지도 모르지요. 여기에 판돈을 걸어야 한다면 아마도 후자 쪽에 수북이 쌓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렵게 존속시키려던 당은 해산되고 우리는 다시 시지프스처럼 산 아래로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겨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민들레가 뿌리째 뽑혀도 갓 털을 단 씨앗들이 흩어져 큰 숲을 이루듯, 당이 해체되고 진보신당이란 이름이 사라져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13000개의 진보신당으로 남아있다면 머지않은 시간에 13만의, 130만의 진보정당이 출현할 것입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병사했지만, 그의 두뇌를 20년 간 작동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호언하던 파시즘 권력은 사라졌어도 그의 《옥중수고》를 우리가 지금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져야 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요? “싸움은 승리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시라노>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입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13000개의 진보신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면, 총선이라는 한 번의 전투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과 한 알의 밀알에 우주가 있듯이, 여러분이 각각의 존재가 진보신당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자존감의 두 번째 비밀입니다. 씨앗과 밀알이 썩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에서 보듯이, 자존감은 ‘자기다움’에 대한 치열한 물음이자 ‘자기해체’를 무릅쓰는 용기입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다움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해체의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지난한 진보좌파연석회의의 과정은 바로 이 ‘찾기’와 ‘만들기’의 동시적 진행과정입니다. 우리가 우주를 품고 있는 밀알의 자존감이 있다면 무엇을 주저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이번 임시당대의원대회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인 사회당과의 통합문제도 그렇습니다. 긴 시간을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분투해온 사회당과의 통합은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사고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입니다. 그것은 정체성이 유사한 이웃 당은 소외시키면서 어제까지 한 지붕 아래 있을 수 없다던 정당과는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손을 잡는 정치공학을 끝내고 이제 자존감의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실천이며, 보다 넓은 진보좌파정당 건설로 나아가는 정치조직의 자기정비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창당을 모색하는 녹색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유와 성장과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이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가치와 씨름해온 생태주의자들은 또 다른 시지프스들입니다. 오늘의 신자유주의 교리와 자본의 독재가 강요하는 삶이 결코 ‘올바르지도’ 않고, 앞으로 온전히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자본주의 극복에 있어 좌파와 녹색은 전략적 동맹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까지도 사로잡아온 ‘성장의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우리에게는 과감한 자기해체의 모험과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녹색과 좌파가 서로의 보완재로 보지 않고 내적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가치의 연대’가 이 시대 한국의 진보좌파 앞에 놓인 가장 중차대한 숙제라고 인식된다면, 우리는 좀 더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겸허하고 섬세한 선거연대를 시도하되, 일시적인 비대칭성이 주는 난관 때문에 비관하지 맙시다. 시간문제일 뿐 ‘녹색좌파’의 새로운 전망은 기어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할 것입니다.


배제된 자들의 서사전략


불과 얼마 전까지 평당원이었던 사람이 당대표의 역할과 업무를 파악하기에도 석 달이라는 시간은 넉넉지 못합니다. 그런 제게 총선과 대선이 있는 이 2012년의 초입은 일찍이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캄캄한 입을 벌리고 있는 긴 터널의 입구에 서있는 것 같아 현기증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에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까지 겹쳐 어수선한 정국에서 집권 보수세력의 재집권이 어려워지고 자유주의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야당의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2013년 이후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이야기하는 지식인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이들의 말처럼 그런 상황이 노동자들의 처지에, 진보정당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예컨대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거대한 파고로 밀려올 때 수구적 보수세력인 새누리당만이 야당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유리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람시는 파시즘을 가리켜 “사라져가는 옛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의 출현이 지체되는 위기 국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병적 징후들”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바 있지요. 과거 어설픈 당근과 가혹한 채찍 사이에서 사회적 격차가 오히려 고착되었던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처럼 자유주의 정권 주도의 위기관리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파쇼적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진보정당은 그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말한 이도 그람시였지요.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난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사하게 된 후에만 배를 떠날 수가 있다”고 말한 이도. 기억들 하시는지요? 여러분께 드리는 첫 인사글 말미에 “두려운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제가 인용했던 것을. 부조리한 운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그 말을 다시 반추해 봅니다. 고통과 번민에서 곧바로 어떤 의미든 찾고자 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의미 없는 고통을 하루하루 끝도 없이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삶에 오래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지식인적 사고가 지닌 허영 아니었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숟가락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천하를 논하는 ‘큰 정치’가 따로 있고, 삶의 고통을 다루는 ‘작은 정치’(혹은 민생 정치라 부르는 것)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정치’에서 말해지는 희망을 위해 목전의 삶의 불행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면 그것은 다만 거짓일 뿐입니다.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숟가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의 최전선에서, 아래로 전가되는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전략’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 경로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저는 우리 당의 비례대표전략을 <배제된 자들의 서사 전략>이라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묵살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조직으로부터도 소외되거나 외면당해온 ‘배제된 노동’을 비례후보의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이 만들어온 삶과 사랑과 투쟁의 서사를 무기로 이 시대의 자본권력과 지배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을 이번 총선의 중심전략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진보신당이 맞이했던 다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치르는 선거가 될 것입니다. 명망정치인들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 이제 무명의 척탄병들이 서 있습니다. 초라한가요? 패배가 너무 불 보듯 빤한가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당의 지역후보가 13000명이라면? 무명의 척탄병들 옆에 13000명이 나누어 선다면? 그렇다면 이번 선거가 이 시대의 난장이들과 시지프스들이 오만한 권력과 물신을 향해 돌멩이들을 쏘아 올리는 싸움의 장, 축제의 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시는지요?


여러분이 <진보신당>입니다. 우리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미리부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축소시키지 말아주십시오. 그저 부조리한 운명에 순응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시지프스는 까뮈를 통해 끝없이 패배하면서도 운명에 저항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위대한 존재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시지프스가 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려는 순간이고, 고뇌에 찬 얼굴로 잠시 정지한 시간입니다. 그것은 운명을 응시하는 시간이고 운명을 밀어 올림으로써 운명보다 한 뼘씩 우위에 서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알베르 까뮈로 편지를 시작했으니 그가 《시지프스의 신화》의 첫머리에 쓴 구절로 끝을 맺겠습니다.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진보신당 대표


#0. '장 그르니에'라는 섬에 대한 조각지도.

그의 글들은 쉽지 않다. '글'이라는 것이 뭔가를 묘사하고 구체화하는 거라면, 그의 글은 그의 내면 세계와

사고 과정을 묘사하고 스케치하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자칫 난해하다거나 사변적이라는, 어렵게

쓰려고 참 애썼다, 라는 비아냥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짧은 단편들은 그의 내면, 그 구석구석에 대한 부분 지도와도 같다.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는지, 여행이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행을 왜 떠난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굵직굵직하고도 근본적이랄 문제들에 대해 '장 그르니에'라는 이름의 섬을 조금씩 드러내는

지도인 것이다.



#1. 묘하게 빨려드는 헛된 유희의 중독성, 삶.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삶이다. 두 가지 다 영판 아니다 싶고,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런 게 삶"이고, 일정 시간 후에는 죽음으로 흘러가도록 정해져 있다는 건 억지로라도

잊으려 애쓴다. 생일이 다가오면 한 살 더 먹었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살 날이 한 해 줄었구나,

라고 생각해도 안 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포심과 터부, 그 이외엔 없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은

'비인간적'이라 거부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유희에 말려들어 덧없는 것 속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찾아 헤매게 되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항상

좋고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악마'의 유혹이 귓전에 맴돌게

되는 거다.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 걸 안 골라? 왜 좀더 낫게 살지 않아?" 라는. 그말에

따라 달리기를 시작하고 여행을 떠나고. 집 한 채 마련하려고 수십년을 바치고.


니체가 '동일자의 무한반복'이라는 세계의 이미지를 견디어내는 자를 일러 칭했던 '위버멘쉬', '초인'이란

단어는 유사한 현실인식을 궁구하면서도 끝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장 그르니에에 붙음직한 칭호인지 모른다.

그는, 그렇게 무한한 밀물썰물의 진퇴를 반복하는 세상 가운데에서도 어느 순간 충만함을 맛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파도의 움직임에 문득 의미가 깃드는 순간. 그 한 순간이면 된다. '행복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자는, 어쩌면 그 '한순간'이란 게 생각보다 인생 곳곳에 숨어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2. 여행의 대용품, 섬 찾아나서기.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일상의 더께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툭툭 먼지를 털고

다시금 탱탱하게 충전시키고자 함이다. 그렇지만 장 그르니에의 말을 빌건대,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것이고.."

그는 여행이 꼭 필요함을 말하는 동시에, 또 부질없음을 말한다.


더구나 영상 매체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세상의 낯선 풍경들,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줄

그런 풍경들의 파괴력은 반의 반의 반쯤으로 줄어버린 게다. 이미 어디선가 한번쯤 본 풍경, 어디선가

보았던 구도를 답습하고, 꼬리를 문 관광객들의 뒤를 이어 화살표를 따르는 여행이란, (여행을 테마로 했다

주장하는 블로그를 채우려는 사람 입장에선 많이 아이러니하지만) 자칫 티비 다큐멘터리 하나 보는 것만

못한 지루하고 진부한 경험일 수 있다.


다행인 건, 우리 사이엔 아직 신대륙이 남아있다는 것.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은 매우매우매우 무궁무진

하다는 것. 장 그르니에의 단편들이 모인 이 단편선의 제목이 '섬'인 이유는, 그가 허무하고 부질없다 느끼는

삶에 애정과 온기, 열정을 불어넣게 되는 이유가 바로 '섬'에 대한 이해, 유대의 욕망이기 때문일 거다. 그는

본질적으로 삶이 무의미하고 공(空)한 것이라는 인식을 양보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두 그루의 나무, 한 번의 악수, 어떤 눈길, 그런 것들로 충분히 삶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섬. 점에서 조심스런 말줄임표로, 기어이는 선으로.

김기덕 감독의 '섬',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제각기의 해안선으로 외곽을 단단히 둘러친 '섬'같다는

이미지가 단단히 굳어져 버렸다. 망망대해에 혼자만 존재하는 듯 덩그마니 놓여 있는 자그마한 땅덩어리.

사실 그런 이미지는 많은 선인들이 차용했던 것이었고, 그르니에 역시 그 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제각기 떠들고는 있지만,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다가 결국은 그 섬에서

굶어 죽던 나이들어 죽던 제각기의 삶을 소진하고 제각기 죽어갈 뿐이라는 식의 이미지.


다만 그는 '섬'이 갖는 폐쇄성, 소통불가능성, 본원적인 고독, 외로움 따위의 이미지에 더해, 그 복수의 '섬들'에

대한 여행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저기 저 섬, 한번 여행하듯 떠나보지 않을래? 조금씩 지도를 읽어나가듯

이해하고, 소통해보지 않을래? 육체를 먼 곳에 내동댕이치는 여행이 아니라, 지독히도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다른 육체와 정신들에 대해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련, 하고 그는 권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이란 그래서 동떨어진 하나의 점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점들이 하나하나 이어져 조심스런

말줄임표로 서로를 탐색하고, 결국은 갸냘픈 '선'에까지 이르러 탄탄하고 의지함직한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의 시초, 일종의 씨앗. 그에겐 '보로메의 섬'이었던 그것은 아직 서로에 뿌리를 뻗지 못한 우리들이다.



#4. 글쓰기. '섬'으로의 친절한 초대장.

글쓰기란 그래서 내겐, 일종의 '작도(作圖)'다. 2009년 10월 20여일 어디메쯤의 나라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품고 있고, 이런 내면을 갖고 있음을 전하려는 지도 그리기나 다름없다. '블로그'라는 도구가 새로운 양 하여

뭔가 그에 걸맞는 뾰족한 수가 있지 않겠나 했지만, 그건 전혀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블로그가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다. 그러고 나면 온갖 광고성 리뷰와 내키지 않는-고역스럽고 '일'이 되어버리는-포스팅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장 그르니에의 '사변적이고 난해한' 글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건, 전혀 경험치 못한

하나의 세계, 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그가 니힐리즘과 실존주의 철학의 역사적

궤적 하의 인물이고, 까뮈를 예비한 인물이란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다 해도, 그래서 일정 지역에 몰려 있는

'군도'에 속해 있다 해도 그는 여전히 '섬'인 채로다. 그런 글조차 없었다면 대체 어디에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또 대체 어디에서부터 그에게 '들어갈' 수 있을까 싶다.



- 10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방금 [제3차 동시나눔], 혹은 2009년 8월 동시나눔을 예고하는 포스팅에서 예고한 것처럼, 이번에는 책뿐만이 아니라

뭔가 가슴떨리고 두근두근한, 예기치 못했지만 누구라도 환영하고 사랑스러우며 러블리러블리 샤방샤방한, 게다가 럭셔리한 "옵하 한번 믿어봐~" 초절정은하계대박만성최고절찬리상습적조기품절 물품

을 내어놓습니다!! ([제3차 동시나눔 함께해요!] 저는 샤방샤방 러블리한 나눔물품을 올릴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1차 동시나눔에는 화폐전쟁, 쿠오바디스 경제학을 비롯한 경제 관련 서적을 나눴구요,
[나눔] '경제'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책 날개달기.(보도자료 첨부)

제2차 동시나눔에는 해리포터 영어판, 유토피스틱스 영어판을 비롯한 영어책을 나눴었네요.

[동시나눔] 해리포터 최종편 개봉기념 영어책 날개달기.


왠지 계속해서 책만 나누고 있다는 주변으로부터의 압박과 모진 비난(리나님 뜨끔하시죠?ㅋㅋ)도 있었지만, 저도 뭔가

새로운 나눔을 개척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엔 좀 참신한 것들을 나눠볼까 해요. 그것도 좀더 참신한 방법으로요ㅎ


각설하고, 나눔 물품부터 뵈드립니다~! 골라골라~~
기호 1번. "거꾸로, 희망이다!!" 음...반응이 별루인가요...ㅡㅡ;;;; 그래도 스스로를 잘못많은 무지랭이로 몰아가는

자기계발서에 담긴 '희망'보다는 훨씬 아름차고 이뿐 희망을 읽을 수 있다구요. 옵하 한번 믿어보시라능.ㅋ

[거꾸로, 희망이다] 위기의 시대, 거꾸로 희망을 찾아보지 않으련? 이라 묻는 책.

기호 2번. "여기 사람이 있다!!" 음...왠지 이번 나눔 컨셉을 잘못 잡았나 스스로 패닉상태에 빠져가는 중입니다.ㅜ

음...음...뭐랄까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책들마저 퍽퍽한, 아니 혈흔이 얼룩진 듯한 내용일지라도, 이런 책들이

뭘 바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봐주고 쓰다듬어주고 나아가 용산에 또 철거문제에 한번 관심가져주고..

그러길 바라는 거겠죠. 옵하 한번...미...믿어 보시...ㄹ라우?ㅡㅡ;

[여기 사람이 있다] 우리들의 '구차한' 밥그릇싸움에 사형을 언도한 그들.

기호 3번. 술입니다 술, 술술, 술술술!! 꺄하하~♡  그러고 보니 어제 저렇게 책 두권을 하려다가 문득 술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간 고이 소장해뒀던 미니어쳐 양주들을 어디에 뒀나 뒤적뒤적하다가, 이런 걸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지요. 럭셔리하죠? 러블리러블리 콜? 샤방샤방 빛나는 뽀샵처리는 기술부족으로 못하지만,

자체발광 두근두근 사랑스런 '옵하 한번 믿어봐' 초절정대박최고절찬리조기품절 물품!!!

아아, 정신 좀 차리고-이거 완전 몸 속에서 알콜이 자체적으로 생산되는가 봐요 아침부터..-아리땁게 다리를 살포시

꼰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앉아있는(보이죠? 술병들이 다리꼬고 앉아있는거, 안보이면 응모하지 마셈ㅡㅡ+) 술병들,

내가 그대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다만 유리병에 지나지 않겠죠. 왼쪽부터, 러시아에서 온 보드카종족 레베루양,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도 녹여버린다는 위스키부족 그랜츠군, 40여년전 이방인을 탈고한 까뮈

옆에서 텅텅 빈 채 나뒹굴었다던 프랑스 꼬냑마을 출신 미시즈 까뮈, 아마도 미국산 싱글몰트위스키주에서 왔다던

글렌리벳씨, 영국(?)-갈수록 병들 국적에 확신이 없어진다는..-출신 천한매력 노예 바카디(대체 왜인지는 묻지 마시길.),

마지막으로 확실히 마데 인 우스아(USA) 속삭이는 위스키 잭다니엘 할배. 얘들 전부 묶어서 한분께 드립니다!!


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

자, 이제 어떻게 해야 요 사랑스런 베이베들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들어갑니다~* 간단해요. 말만 잘하면 꽁짜로도 덥썩

덥썩 집어주던 재래시장, 벼룩시장의 정신을 십분 앙양하야, 말만 잘하시면 되요.

원하는 울트라초대박은하계최고절찬리상습적조기품절상품들의 기호를 말씀해주신 후,
가장 긴 댓글을 남기시는 분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제? 이 블로그에 대한 평가, 개선해야 할 점, 원하는 점...같은 거 아니어도 되요. 오늘 하루의 일기를 시간순으로 쓴다거나 소설을 쓴다거나 시를 읊는다거나 편지를 쓴다거나 의미없는 낱말들을 나열한다거나..."자유 주제"입니다.

기간? 지금부터 요이~땅! 해서 달려가면 8월 19일(수) 24:00까지 받도록 하겠습니다. 넉넉히 잡은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상품에 대해 자신보다 긴 댓글을 단 사람이 있다면 추가로 댓글을 더 달아 글자 수를 늘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기준? MS Word 2007로 그대로 긁어 붙여서 "단어개수(공백 제외)"로 검증토록 하겠습니다.


* 뭐, 강제사항은 아닙니다만, 책의 경우 읽고 나서 리뷰를 트랙백걸겠다거나, 술의 경우 맛난 안주와 함께 마시는
 
인증샷을 첨부해 트랙백 걸겠다는 등의 공약(公約)을 내거시는 경우, MS Word 2007 기준 공백제외한 단어개수

100자 인정해드립니다!

* 공정한 심사를 위해 '비밀댓글'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저번엔 티스토리 초대장을 이런 식으로 나눴었는데 무려 2,345자(공백 제외)까지 써주신 분이 계셨어요^^

말만 잘하면(!) 공짜로 막 드리는 제3차 동시나눔 이벤트, 지금 시작합니다.

(왠지 이번 나눔 멍석돌이로 활약 중이신 백마탄초인님의 글투를 닮았다고 느끼는 건 저 혼자일까요..ㅋㅋ)










* 본 포스팅은 백마탄 초인님의 블로그 1주년 축하 이벤트 응모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

1. 미술(예술) 은 [         ]이다!!!
(간략한 설명 첨부)

미술은 뭘까. 잘 모르겠다. 미술작품을 보면 마냥 이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쁘지 않으려고 애를 쓴 듯한 모양새에 흠칫 하며 이건 대체 뭥미..하게 되는 작품도 있다. 풍경이나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몰두한 작품도 있고, 혹은 뭔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득 품은 듯한 작품도 있다.
 
정말 미술(예술)은 뭘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전시회가 있으면 가고 싶고, 미술관도 드문드문 가주고 싶고, 이왕이면 집에나 사무실에도 그럴듯한 그림이 걸려 있으면 좋겠다. 이쁘던 안 이쁘던, 풍경화던 추상화던, 뭔가 내게 끌림이 느껴지는 그런 미술작품 말이다. 까뮈는 "매력이란 명백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예'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비록 내게 미술이 어떤 명확한 뭔가를 던져주진 않지만...그래도 난 대개는 항상 미술(예술)에 예, 라고 답하게 된다.

아마 내게 미술(예술)은 결국,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매력적인 그 무엇"인 것 같다.

혹은 미술은 "현실에 대한 애무"인지도 모른다. 미술(예술) 안에서 현실은 좀더 이해하기 쉽고, 좀더 의미있으며, 좀더 질서가 부여된 방식으로 잘 매만져진다. 종종 이해할 수 없고, 무의미해 보이며, 무질서 그 자체인 듯 보이는 현실 세계를 튼튼한 위장으로 소화해내고 주위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쉽게 살도록 긍정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것도 대부분 파괴적인 충동에 의해 현실 세계를 부서뜨리고 망가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을 사는 나와 내 주변사람,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이 담긴 손길로 어루만져진다는 느낌이다. 혹 다소 거칠고 광기에 찬 무언가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애증을 표현한 것 아닐까. 그러한 애정욕구로부터 표현욕구가 비롯되는 걸 테니 말이다.


2.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은 누구이며 무엇입니콰? 
  
(국내, 국외 상관 없이 그 작가의 그림중 가장 좋아하는 그림1점을 올려 주세요! 작가명과 작품 제목은 필수!!)

피카소전시회에 다녀왔다. 미술을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작품을 보며 그의 위트와 의도를 느끼고 웃어줄 수 있었다. 회뜨듯이 얼굴을 조각내어 평면에 늘어놓은 그림들은 그의 한 시기..그리고 그의 계속되는 실험의 한 연속선에 불과했다. 그가 곁을 허용했던 7명의 여자들..피카소는 그녀들을 모델로 세워두고는, 그 어슴프레한 윤곽을 몇개의 선으로 버혀내며 마치 선율처럼,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정말 와닿았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 그림 앞에서 족히 십분은 서있었던 것 같다. 그가 큐비즘에 빠져있던 시기, 칼날처럼 솟은 어깨'뽕'을 대담하게 그려내고는, 그위에 어두운 색채로 생략된 목에 이어붙은 직육면체의 턱쪼가리..혹은 얼굴의 아랫도리. 그리고 그 첨단쯔음에 위태하게 균형잡고 선 초승달같은 얼굴. 정면을 향한 외눈과 긴장되고 신경질적인 얼굴면 옆에는 또다른 얼굴이 그림자를 먹고 숨어있었다. 칼날같은 초승달이 품고 있던 측면부의 완만함. 피카소라면 분명히 '둔덕'이라고 표현했을 것같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굴곡을 그리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와 보이는 그 초승달의 얼굴정면은 가득찬 FULL MOON과 같은 이면을 갖는다. 정면의 외눈이 날카롭고 섬세하다못해 찌를듯한 예기가 서려있다면, 그림자를 머금은 측면의 눈은..놀란 듯이 커진 눈. 예기치못하게 허를 찔린 듯한, 원치않던 사랑에 빠진 듯한..표정. 그렇게..그 정면을 향해 무표정한 '여자'는, 측면에서는 가늘고도 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측면을 파고 들수록 깊어지는 어둠..불빛조차 가닿기 힘든 내면으로 다가설수록 그녀의 미소는 깊어지고 황홀해진다.

피카소의 인물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여자'가 가진 최외곽의 가면..하늘을 향해 예각을 세운 날카로운 코잔등에서 급격하고 단호한 감정선을 느껴보고, 찔리면 당장 죽을것 같은 코끝에서 사정없이 놀아나는 남정네의 가슴서늘함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약간만 고개를 틀어도 나타나는 방심한 듯한 눈매의 매력과 깊이를 품은 미소에 반하기도 하고. 피카소는, 잘라낸 손톱같이 신경질적이고 속알머리없어 보이는 초승달의 이면에 그렇게 둥실하고 아늑한 둔덕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는, 7명의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한사람한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인듯이 사랑했을 거라고, 질리지도 않고 그녀들의 얼굴을 탐닉하고, 표정과 뉘앙스를 짜내었을 거 같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시작되는 입술의 한쪽 언저리에서 다른쪽 언저리까지 가닿고 탐험하고 싶어서..불빛도 닿기 힘든 그 구석 한켠의 미소를 완전하게 찾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리라.

이미 한차례, 쪽당할 각오하고 '노란벨트'라는 작품을 폰카로 기어이 찍어버린 터였다. 피카소의 에로틱함..혹은 그가 추구하던 관능미가 유쾌하게 변주된 작품인거 같아서. 마치 프로이트의 심리병리학적 해석들처럼. 그런데 도무지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가 없다. 온갖 매체들이 써놓고 긁어놓은 작품사진이나 설명을 보아도..무엇이 원전인지 모르겠지만 거개가 다 똑같은 작품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뿐이다.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이 작품은..아마도 대중이나 전문가의 '인증'이란 걸 받지 못한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어서..내가 한번 기억을 떠올려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여자의 얼굴'이란 거.

덕수궁 돌담길의 그늘에 숨어 걸으며, 피카소는 붓으로 독심술의 결과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는 여자의, 사람의 얼굴이나 마음이 책처럼 편평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거다. '독심술'이란 말의 어폐..를 그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리뷰] "여자의 얼굴"-피카소.(2006.6.24))



3. 미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습니콰? 

2007년에 도예의 기초수업을 들으면서 도예를 연마했던 적이 있다. 전생에 도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던 추억이다.
예술성과 실용성의 격돌
조교 : 이 작품은 이번 '도예의 기초'강의에서 나온 것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늬에, 유약 처리에, 가마에서 예기치 않은 불의 산화/환원의 세례를 받고 나온 저 청동빛의 신비로운 색감을 보라.

윤작가 : 골판지의 따스함과 안온함을 형상화한 무늬를 넣어 진흙의 차
갑고 맨질맨질한 분위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덥히고자 했다. 조교가 우연이라고 착각하는 저 청동빛깔은 사실 작가의 치열한 미의식과 로맨티시즘이 현현한 것으로, 물방울과 같은 접시 안에 로마의 흥망성쇠, 나아가 인류의 흥망성쇠를 담는데 성공한 것이다. 화려한 청동조각상도 흐르는 물방울과 같은 세월에 씻겨 저렇게 녹스는 것 아니던가!

엄마 : 너무 작아, 어따쓸래? (이 때, 쾅! 하는 효과음. 실용성과 예술성의 격돌.)

광기에 사로잡힌 흩뿌림
화장토를 흩뿌리다 보면 가슴속에서 묘한 울렁임이 이는 걸 느끼게
된다. 붓 끝에서 사방으로 비산하는 물방울들, 그것은 체셔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사방으로 튀던 흰색 물방울들은 사라지고, 휘영청 구부러진 자기 위에 얼룩점만 남았다. 남으로 창을 낸..화분? 화병? 필통? 뭐가 되었건 여튼 내가 만들어낸 아이.

안에 있던 건 안나오고.
어디에 쓸지에 대한 아무생각없이 완벽한 구형태를 만들겠다고 마냥 동글동글 동글리다가, 문득 그 안에 숨어있는 주전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여 다시 닭볏과 꼬리를 가진 주전자를
만들려다가, 다시 뿔이 듬성듬성난 형상화를 꾀하다가, 결국 나온건 돈데돈데돈데 돈데크만. 내가 봤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왠 괴물 주전자가 나와버렸었다는. 미켈란젤로는 조각이 안에 있는 형체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던가...그는 틀렸다.ㅡㅡ;;


4. 자신이 좋아하는 컬러와 자신은 무슨색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콰? (간략한 설명 첨부)

대체로 가장 좋아하는 컬러는 검정인 듯 싶다. 시뻘건 빨강색도 무지 좋아라 하지만, 가끔 너무 부담스럽거나 감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검정색이 세련되면서도 무난한 듯 잘 섞여들고, 또 그러면서도 자체의 존재감은 분명히 각인시킬 수 있는 색깔인 것 같다. 다만 검정 일색으로는 좀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고, 의외로 이쁘지 않은 검정색도 은근히 눈에 많이 띈다. 굳이 나누자면 무광의 죽은 듯한 검정-배트맨이나 배트카의 검정색이 무광 검정이다-은 너무 위세를 빼는 것 같아 맘에 안 들고, 어느정도 광택이 반들대며 유쾌하게 뛰노는 맨들맨들한 유광의 검정이 좋다.

스스로를 색깔로 표현한다면..글쎄, 아마도 검정색 아닐까 싶다. 검정이라면 무광의 죽은 듯한 검정은 말고, 적당히 빛에 반사되며 반짝거리는 검정색이..라고 느껴지면 좋겠지만, 그닥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듯. 어차피 이건 내맘대로 쓰는 거니까 뭐.ㅋ


5. 지금! 바로 자신 앞에 흰 도화지와 연필이 있다면, 무엇을 그리겠습니콰? 그 이유는?

그냥 그림판 꺼내서 그려봤다. 머..한가해서 그린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절대로 아닌데, 정말 오랜만에 그림그려본다. 그냥 요새 기차가 너무 타고 싶어서, 그리고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떠오른 대로 그렸다. 마우스를 움직여 그리기란 쉽지 않지만..그래도 재미있었으니 됐다. 저건 내가 그렸던 태양 중 가장 그럴 듯 하다, 대만족.ㅋㅋㅋ 별모양 별들이 너무 진부하고 유치하긴 하지만...별들 하나하나도 저렇게 그리긴 힘들어서 그냥 기호화된 별을 그려넣었다.


6. 미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콰?

방금 마우스를 깔짝대며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 영혼이 고양되는 걸 느꼈다..는 건 뻥이고, 글쎄..아무리 미술(예술)이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감동을 던질 수 있다고 해도 고양이 한마리도 아니고 무려 '인류'씩이나 구원할 수 있을까 싶다. 구원이란 게 뭐로부터의 구원인지, 뭐에 대한 구원인지도 모르겠고. 혹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의미에서 인간 실존의 한계..죽음을 극복할 수 있냐는 거라면 예술이 인간에게 불멸의 무언가를 순간적으로 맛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인간 자체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렇게 언뜻 언뜻, 인간이 먹고자고 똥싸는 존재로부터 뭔가 정신적인 존재로 고양된 느낌이 들도록 해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도 생각한다.


7.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미술관(화랑 등)에 몇 번이나 가 본 경험이 있습니콰?   (간략한 설명 첨부)

대학 때부터 미술관 다니는데 관심이 있었다. 시립미술관을 자주 가는 편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인사동, 삼청동 쪽의 화랑도 드문드문 들렀다. 외국 여행을 가서도 박물관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 미술관은 좋아라 하며 다녔으니, 꽤나 많이 다닌 셈이다. 요새는 좀 못 가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언제든 내키면 불쑥 가게 되는 곳이 또 미술관이다.

누구누구 미술전이나 전시전이 있으면 혼자 찾아가서 우선 한번 설렁설렁한 걸음으로 뺑 둘러보고, 그다음에는 몇개 인상에 남았던 작품들을 찾아 두바퀴째 뺑 돌았다. 그렇게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오래오래 멈춰서서 이리저리 작품을 굽어보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나마 오랫동안 기억에 새겨둘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미술관은 여럿이 갈 때보다 혼자 갈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더구나 호오가 워낙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영역이라 보고 싶은 그림을 맘껏 보기에도 그렇다.



Thanks to 백마탄 초인님~*

& Congratulation!! 블로그 1주년 '베리베리' 축하드려용!!^^




 

출장이건 여행이건,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꾸려 집을 며칠씩 나서는 순간의 마음은 흡사 그런 것이다. 살풀이?

며칠 일상을 비우고 나면 나도, 내가 놓인 자리도 모두 명료하게 정리되겠지..하는. 잔뜩 분탕질쳐놓은 흙탕물이

차분히 가라앉아 맑아지길 바라는 심정으로. 새벽에 나서는데 주홍빛 해가 곱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데 평소의 승용차보다 눈높이가 일미터쯤 높아진 공항리무진버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또 다르다.

그렇게 훌쩍 올라선 눈높이만큼 여행, 혹은 출장의 기분이 돋구어졌달까.

한강대교 중 가장 이뿌다는 평가를 받는 방화대교, 이사 전에 살던 집이 근방이었어서 워낙 자주 봤댔지만

이렇게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다. 여행자의 눈에야 비로소 발견된 유려한 생김의 다리.

열네시간여 비행끝에 파리, 그리고 두시간 반쯤 다시 비행한 후에야 도착한 알제리. 공항에 도착해서 삼엄한 탐색대를

거쳐서 올라탄 버스는 한참동안이나 출발할 수 없었다. 현지 경찰의 호위(convoy)가 있어야 출발할 수 있다나.

몇 차례의 테러나 외국인 상대의 불상사가 있었던 나라인지라 외국 대표단들이 단체로 움직일 때는 꼭 경찰 호위를

앞뒤로 붙이고야 출발한다고 했다.

앞에 경찰 오토바이 두대, 뒤에 경찰 오토바이 두대가 붙었다. 그리고 앞 차는 현지에서 이번 행사의 차량을 모두

담당했던 마이 후렌드 Farid의 멋진 차. 많은 나라를 다녀본 건 아니지만 경찰 호위가 붙은 적은 처음이었다. 아, 4월에

인도와 파키스탄에 갔더라면 역시 경찰 호위가 좀더 삼엄하게 붙었을 텐데, 역시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취소되었다.

알제리가 북아프리카에 위치했다는 점, 알제리의 수도인 알제, 그리고 우리가 묵을 쉐라톤 호텔이 지중해를 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차창 밖으로 펼쳐진 남빛 지중해.

신기하게도 해가 뜰 때 서울에서 출발해서는 해가 질 때 알제에 들어섰다. 문득 혼란스러워지는 시간감각.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창밖이 아름다웠지만, 주알제리 한국대사관에 차려진 빈소에서 분향할 시간을

갖겠다는 이야기에 다시 울적해졌다. 노무현, 그가 알제리와 한국간의 경제협력 T/F라는 판을 벌였댔다.

황금빛으로 건물들이 쉽게, 곱게 물드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이런 베이지색. 집집마다 내걸린 알록달록한

빨래가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낼만큼 건물 외벽은 순순히 한발 물러선 느낌.

알제 도심에서 발견한 부테팔리카 대통령의 거대한 초상. 그가 한국에 인상깊었던 것이 '새마을운동'이라고 했었다.

오랜 건물들, 이런 식의 유서깊은 건물들 그 어느 틈새에 알베르 카뮈가 살며 이방인의 한장면을 구상했겠고,

축구선수 지단이 어렸을 적 공을 차고 놀았을 거다. 아, 카뮈는 알제리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독립전쟁시에

파리로 도망갔다던가. 그리고 친프랑스적인 행보를 계속 보였다고도.

서울로 치자면 외교 공관들이 모여있는 한남동쯤 된다는 알제 도심으로 들어섰다. 도심이라지만 길은 여전히 좁고

거리는 한적하며, 뭔가 어정쩡한 그림이다. 그렇지만 출퇴근시간에는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이 있다고 했다.

중간중간 게이트를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 알제 시내 그리고 알제 시내로 들어서는 모든 도시에 설치된

체크포인트들은, 테러의 위험이나 위협요소들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실은 시내의 교통 흐름을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원활히 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뭔가..이 동네 꽤나 위험한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땡겼던 첫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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