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항구들이 숫자를 복창하기 시작하는 시작점, 페리빌딩. 여기에서부터 항구들이 홀수숫자로

 

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져서는 피어39를 지나 피어47까지 뻗어나가는 거다.

 

 앞에는 온갖 잡화를 취급하는 마켓이 열려서 청과물이나 수산물을 팔기도 하는데, 왠지 이 아저씨와 마네킹은

 

제페토 아저씨와 피노키오같은 느낌이어서 슬쩍 한 방.

 

 

 그리고 페리빌딩에서부터 차도 건너편에는 뭐랄까, 잔뜩 용틀임중인 조형물이 하나.

 

 멀찍이 베이브리지의 높은 끄트머리에서 늘어지는 강철줄들이 머리카락처럼 보인다.

 

 깃발을 쇠사슬로 묶은 채 굳센 부리로 지탱하고 있는 어느 난폭해 보이는 새 한 마리.

 

 

 베이 브리지로 향해 해변을 걷던 참에 툭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막힌 산책로. 거기에 그려진 미국의 해경 선박.

 

 

베이브릿지 아래로, 언뜻 보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잠깐 돌아본 사이에 휙 사라지곤 하는 요트가 한척.

 

막힌 산책로 끝에서 낚시줄을 드리운 아저씨 한 분. 슬쩍 다가가 가방을 보니 여즉 허탕인가부다.

 

베이브릿지도 심심하지 않고 꽤 이쁜 다리라고 생각하는데, 워낙 유명하고 그럴듯한 금문교가 옆에 있는 탓에 묻힌 거 같다.

 

아니면 온통 밋밋하고 재미없는 시멘트덩어리 다리들만 가득한 서울에서 온 내게만 특색있어 보이는지도.

 

 

페리빌딩과 유명한 시계탑. 완공된지 몇 년되지 않아 발생한 20세기 초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때 시계가 멈췄다던가.

 

 

안전망 그림자가 만들어낸 촘촘한 그물망에 꼼짝없이 엉켜버린 뱅글거리는 의자 두개.

 

 

 

여긴 원래 뭐가 있었길래 이렇게 기둥만 하릴없이 녹슬고 낡아가는 걸까. 가끔 갈매기들만 몸을 의지하는 한뼘남짓한 쉼터.

 

 

이녀석들은 샌프란시스코 동쪽의 거대한 활 앞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 같은 녀석들이다. 거북이와 불가사리, 문어들.

 

 

누가 설치한 작품인지 맥락은 전혀 모르겠지만, 맘대로 상상해보자면 그런 거 아닐까,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쫓겨난

 

천사 한 녀석,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라면 큐피드라 부를법한 꼬맹이 하나가 징징거리면서 어머니 치마폭같은 오로라 뒤로

 

숨겠다며 북쪽으로 날아가다가 문득 여러가지 사건으로 활과 화살을 떨어뜨리는 거다. 하늘에서 추락한 활이 그대로 박힌 곳.

 

이런 스토리, 잘만하면 뭐 하나 뚝딱뚝딱 만들어지겠다 싶은데 글쎄.

 

해변가 어느 닫힌 산책로 끝에 누군가 의자를 가져다 놨나보다. 앉아서 쉬기 참 좋겠는 게,

 

삼면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가 바람도 시원하겠다 햇살도 따땃하겠다.

 

오랜 시간 해풍과 파도에 시달렸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잔금이 쭉쭉 번지다 못해 덩어리로 콘크리트가 떨어져나가겠지.

 

아마도 해상 안전이나 보안과 관련된 시설인 듯, 철조망과 나팔꽃으로 보호받고 있는 시설물.

 

 

그리고 깜놀! 베이브릿지의 남쪽 끄트머리에 파이어폭스 사옥이 있었다니. 몇몇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음 모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탑..이랄까.

 

파이어폭스를 개발해낸 개발자들과 설립자들의 이름이 온통 빼곡하게 세워져있는 기념비라는 게 차라리 맞는 표현이겠다.

 

 

 

 

'맛있는 인생', 현실까지 넘쳐들어온 강릉의 로맨스.

 

영화 '맛있는 인생'에선 차를 타고 슬쩍, 그야말로 옆동네 가는 기분으로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옮겼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도 강릉에서 주문진 건너가는 건 그런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던 거다. 경포 앞바다를 떠나 길을 잠시 달리다간

 

어느새 다시 나타난 바다는 좀더 본격적으로 항구도 두어개 끼고, 아저씨들은 그물을 정리하고.

 

 

 

방파제의 두 팔 안에 조심스레 안겨있는 주문진항에서 둥실둥실 여유로운 배들, 그리고 그물을 정리하는 분들.

 

그리고 항구 코앞에 바다를 바라보며 주차된 자전거와 자동차, 수면에 기댄 채 출렁이는 배까지. 탈거리 셋이 모였다.

 

주문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호의 선착장. 크루즈라곤 하지만 글쎄, 그다지 호화스러워 보이진 않던데.

 

 

주문진항 근처의 수산시장을 돌다가 만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가오리 떼들.

 

골목골목 누비다가 만난 '성인나이트'의 숨겨진 간판, 그렇지만 입구도 숨겨진 거 같구 지금도 하는지는 미지수.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단단한 선언조의 문구가 눈을 확 잡았던, 마치 무슨 공산당 테제같은 느낌의 광고.

 

 

골목을 한꺼풀만 열고 들어가도 재미난 풍경들이 숨어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얼기설기 얹은 허름한 집 앞 자전거.

 

 

수산시장 골목마다 김을 펄펄 피워올리며 새빨갛게 익어가던 가뜩이나 빨간 대게들, 저 녀석들은 물구나무를 서있는 건가.

 

 

주문진항의 상징물 오징어는 왠지 울트라맨에서 자주 나오던 크라켄이던가, 거대괴물이랑 비슷하게 생긴 듯.

 

수산시장 입구에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아무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처럼 회는 먹고 가야겠다는 다짐만

 

갈수록 단단해지던 차에, 생선을 따로 사고 회를 따로 떠서 어디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먹기로 결심.

 

광어랑, 청어였던가 제 이름으로 못 불리고 '잡어'로 통칭되는 생선들 몇 마리, 그리고 개불이랑 멍게까지.

 

그리고 주문진 앞바다. 드문드문 바닷가 깊숙하게 쳐들어간 바위 덩어리들은 이렇게 자그마한 금강산 코스프레중.

 

일만이천봉우리가 하나하나 살아나선 뾰족뾰족 하늘을 이었다.

 

 

바위들 위로 기어올라가 제법 뜨끈하게 달아오른 햇살 바라기 좀 해주고, 덥다 싶으면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물고.

 

 

멀찍이 보이는 등대 아래춤에선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정지화면처럼 멈춰 있고. 움직이는 건 바람결에

 

살랑살랑 잔물결을 이어나가는 주문진 앞 바다뿐.

 

조금은 흐린 날씨탓에 하늘과 바다가 분간하지 어려워서 문득 망연해지는 시선을 붙잡아 주는 건, 문득문득

 

생각났다는 듯 날개를 펼치고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한마리.

 

 

 

 

 

어렸을 적 백원, 이백원을 쥐고 달려갔던 곳은 으레 허름한 공터에 엉성한 천막으로 지어졌던 '덤블링장'.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쉼없이 튕겨올라오는 그 탄력 넘치는 그물망이 좋아서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온몸이 흠뻑 땀에 젖을 때까지 뛰었던 기억이 있다. 문득 너무 높게 뛰었다 싶을 때의 짜릿한 공포감 역시 생생하다.

 

 

예기치 않게도 주문진의 어느 골목 귀퉁이에서 만난 '덤블링장', 정식이름은 트램폴린이란 건 이제야 알았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덤블링을 하며 까르르 웃음을 사방에

 

흩뿌리는 중이었다. 연령대에 따른 1점프대, 2점프대로 구분이 된 건 나 어렸을 적에도 그랬던가. 기억이 안 난다.

 

자전거를 대충 주차해놓고 그물망 위에서 온몸에 힘을 주어 발을 튕기고 엉덩방아를 튕기며 쑥쑥 키가 크는 아이들.

 

허름한 천막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건지 어설프게 걸쳐진 지붕천 사이로 봄볕이 함께 튕겨들었다.

 

무시하다 다치면 주인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안전수칙판의 낡은 상태를 보니, 내 어렸을 적에도

 

저런 거 하나쯤은 옆에 세워져 있었겠구나 싶다. 그런데 다 좋지만 6번은 대체 뭐지. 음주후엔 올라가지 못한다는.

 

그리고 11번도 웃긴다. 크게 소리지르거나 심하게 장난치는 어린이는 퇴장도 감수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룰이라니.

 

 

 

 

의왕 오메기저수지, 딱 육개월 전 쯤에 백운산을 가려다가 잠시 들러서 저수지 옆의 개울에서 잔뜩 놀았던 곳이다.

이제 가을 끄트머리가 되어 다시 찾아보니 분위기가 한결 스산하다.

( 백운산 아랫도리를 적시는 개울에 찾아든 신록. )

솔잎이 가지 끄트머리고 나무둥치고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비죽비죽 솟아나온 듯한, 그래서 소담하게 이파리가

모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헐벗은 듯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는데 하얀 가을달이 빛나고 있었다.

낙엽들이 다 떨어지고 앙상하고 뾰족하게 헐벗은 잔가지만 삐죽거리며 내밀고 있는 나무들, 문득 둥그렇고

부드러워 보이는 가을 그림자가 나뭇잎처럼 내려앉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달. 파란 물감이 잔뜩 칠해진 하늘에 물방울 하나가 톡, 떨어져 번진 것만 같다. 아직 끈질기게

잔가지를 붙잡고 있는 이파리가 꽤나 신산하고 지친 표정이지만 그래도 테두리에 둘린 톱니의 날카로움은 아직

살아있어 보여 다행이다.


 그리고 저수지, 흑백영화처럼 지지직거리는 수면 위에서 앙상하게 마른 나무 두그루가 부서지고 있었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한번 걸어보려는데 자꾸 길을 막아서는 건 쓰러진 나무, 뿌리만 남아 독하고 질겨진 잡초,

깨진 시멘트 틈새를 살짝 덮은 낙엽들의 훼이크..


사람 키높이만큼 자란 이 풀떼기 사이에서는 계속 뭔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사람 하나 없이 점점

어둑해지는 주변 풍경에 더불어 다소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냥 새들이거나 들짐승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소리없이 풀이 밟히고 쓰러지는 소리만 단속적으로 들리는 상황은 아무래도 상상력을

이상한 쪽으로 자극하는 데에는 최고의 조건이었던 듯.

그래서 급, 저수지를 떠나기로 맘먹고는 발걸음을 재게 놀려 빠져 나왔다.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이미 푸른 빛을 잃고 거무튀튀한 심란한 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세상을 덮을 듯한 그물망이 촘촘히 내려앉고 있었다.





질퍽하게 더러워지고 만 도로와는 달리 사람들이 감히 밟고 다닐 엄두도 못 내게 만들던

삼엄한 눈발 속 쓰레기통의 위엄. 자동차도로보다 순결해보이는 쓰레기통이다.

게다가 하얗게 눈모자를 쓰고는, 평소라면 캔 나부랭이나 담겼을 그물망에는 소보록하니

눈송이가 잔뜩 담겼다. 예수가 '사람 낚는 어부' 운운했던 걸 빌자면, 이 쓰레기통이 쥐고 있는

그물망은 '쓰레기 낚는 그물망'이 아니라 '눈송이 낚는 그물망'으로 변신한 셈이다.

그리고 조금은 지치고 시든 듯한 초록빛 상록수잎 위로 그득하게 엉겨붙은 눈뭉치들.

이미 나려들던 때의 여리여리함과 따꼼한 찰나의 온기 따위는 지워버린 채 덜 떨어진

냉동고 속이나 찜질방 얼음방 속에 서걱거리는 얼음샤벳으로 변신해 버렸다.

눈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내일 출근할 때에는 삽 한자루를 쥐고 버스 정류장까지 굴을 만들어서

뚫고 가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밤에 돌아오려니 제법 삼삼한 날씨인 것이 더이상 눈오기는

글러먹었다. 게다가 차도도 대충 무지막지한 염화칼슘의 위력으로 정리된 듯 하니...별로

딱히 일상에 영향을 미칠 거 같지는 않아서 아쉽달까. 하루쯤 일 안하고 모두들 그냥 집안에

갇힌 채 지내는 것도 좋을 텐데. (일체의 열외없이 전부.)

이런 날은 어디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눈밭에서 마구 뒹굴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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