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링의 가능성은 최대한 비켜내고자 하는, 영화를 보고 삐쭉삐쭉 뻗어나간 사변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은 비켜내기로 하자.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에 반대하지만 자칫-아니 백방-구구절절히

사형을 반대한다고 처벌에 반대한다거나 정당한 죗값을 주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라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주렁주렁 엮여야 할 것은 뻔하니, 그냥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고 싶다.


사람을 죽인다. 냉정하게 말하건대 별 거 아니다. 실수로, 사고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심지어 스스로

목숨줄을 놔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 생명이란 게 얼마나 취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여느 영화에서처럼 목 한번 돌려주거나 숨통에 바늘 하나 꼽는다고 켁, 나자빠져 버리지야 않겠지만 그냥 목에

밧줄 한번 감아서 땡겨주거나 전기로 지지거나, 여차하면 독액이 든 주사액을 주입해버리면 그뿐이다. 실제로

사형은 그런 식으로 집행된다. 어쩌면 흔히 벌어지는 일들과 같이 차에 치이거나 높은 곳에서 밀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수고로울지 모른다.


죽이는 건 별 거 아니다. 사람의 육신을,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건 쉽다. 문제는 그 임팩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밖에서 보기엔 법원의 판결이, 공문 한 장이, 국가의 이름 하에 국가가 사람을 죽이는 거였지만,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 아무리 국가의 공무(公務)라는 휘광 뒤에 숨으려 해도, 사회의 법과 정의를

위해서라는 대의를 내세우려 해도, 혹은 피해자의 아픔과 가해자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인 공명이라 해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 건 사람이다. 비록 그게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거라 해도,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신성하고 지고한 '초인간적인' 국가 따위 실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합법적 폭력'을 휘두르는 부르조아

소위원회..한줌의 사람-그들 역시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과격한 거일라나.)


갈림길이 나온다. 이사람은 죄를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고, 죄값도 치렀(다고 생각하)으며, 결과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사람은 죄를 뉘우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고, 사회에 돌아가면 계속 죄를 저지를

(처럼 보)이고, 갱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사람을 살릴지 저사람을 살릴지,

누굴 죽여도 되고 누굴 안 죽여야 할지의 갈림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과 '신'의 갈림길이다. 앞선 문장

중간중간을 얼기설기 묶어둔 괄호들, 그게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징표들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오바하는

걸까. 다른 생명을 판단하고 소멸시키는 건 신, 혹은 만물을 주재하는 운명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가 맡을

역할이지, 동일한 생명, 인간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저사람을 죽일 때의 죄책감이 다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강호순 사건 때나

조두순 사건 때 골프장 갤러리들처럼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쳐죽일 놈, 광화문 네거리에 육시를 할 놈, 어쩌구

막말을 내뱉던 사람들도 밝고 맑은 정의로움과 숭고함을 유지하며 사람을 죽일 수는 없을 거다.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히니까 막말을 하고 저주를 내뱉고 '죽여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다. 설혹 '내가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듯 말한다 해도, 또 설마 실제로 직접 손을 써 죽여버린다 해도, 영화 속 집행자들처럼 뭔가가 하나둘씩

무너져버리고 말 거다.


처음에 말을 잘못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사형제도를 건드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사람을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것이 그간 주목받지 못해온 사형제도의 비인간적인 한 측면인 거다. 사회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안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집행'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상한 게 있다. 왜,

집행의 선고자들, 이 사회와 제도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가. 저승에 있다는 

길고 긴 젓가락을 휘두르듯, 그렇게 누군가 다른 사람을 들어 '집행'시키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격무에

시달리거나 피곤해서는 아닐 텐데. 


"우리는 망나니였어" 어쩌구 하는 대사가 있었다. 사회를 위해 법을 집행하는, 좀더 적나라하게는 살인을

떠맡는 존재들. 사회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그들 안의 무엇인가는 어쩌면 사회로부터 죽임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걸 또 다른 '살인'이라 부르기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무엇인가가 무너져

버리는 건 틀림없는 거다.



* 고백 하나, 사실 '사람으로서의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순간은 꼭 정말로 사람을 죽일 때만은 아닌 거 같다.

거리에서 전경들과 마주 선 채 투석이 난무하거나 파이프를 맞대고 있을 때, 전쟁터와 같은 그런 상황에서 역시

분노와 공포, 혹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뭔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 뭔가

눈먼 야수같은 광기가 뿜어지는 듯한 감각은 두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무엇이었다. 단지 문제가 사형이

살인인지 아닌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성을 조장하는 시스템, 문화, 분위기, 그리고 감수성의 차원까지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하는 이야기다. 꼭 생명을 말그대로 끊어버려야 살인이 아닐 거다.

(물론 당연히도 이른바 '폭력집회'가 잘못되었다거나 비인간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스템과 정책의

문제를 틀 내에서 해결치 못하고 거리에서 파열음을 내게 만드는 기제 자체가 비인간적인 상황을 이끈다는

말이다. 2미터 앞에서 돌을 던지는 보호장구 완비한 전경들이나, 자위적 차원에서 무장을 한 시위대, 문제의

본질은 그 너머에 있다.)




강호순이라는 연쇄살인범 개인의 인권에 대한 지지 활동을 마치 스타에 대한 팬들의 그것과 같이 해보고자 했다는

'팬까페'가 급작스레 폐쇄되었습니다.

네이버를 통해서도 쪽지가 두 건 왔습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백기를 드는 대신 바톤을 넘기겠다는 글이 올랐었는데, 아무런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급작스럽게 까페 폐쇄를 결정한 것 같습니다.


대체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가뜩이나 우울한 밤에 더욱 우울한 소식이라 여겨질 뿐입니다. 아마도 이분은,

더이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으셨던 듯 하네요. 그리고 그렇게 시니컬하게 공지에

올리셨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범죄자의 '인권'이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결론 지어버리신 듯 합니다.

관련 포스팅 : I 'love' Hosun..강호순 팬까페에 가입하다., 강호순의 목청큰 갤러리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 까페는 우리 사회의 포용성과 성숙도를 시험에 들게 했고, 결과적으로 그 시험에서 우리는

아마도 언젠가 재수강을 해야하는 수준의 점수를 받은 것 같달까요...


우울한 밤이네요.



엊그제인가, 인터넷 포털이나 각 페이퍼 신문들에도 빠짐없이 떴던 기사가 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인권 팬카페’ 등장...네티즌 "기절초풍",

강호순팬카페 개설? 연쇄살인보다 더 큰 충격

강호순팬카페 개설, 소식 접한 네티즌 '충격, 경악'

살인에 충격·살인 찬양에 ‘또’ 충격…강호순 팬까페

강호순팬카페 개설 소식에 "개념없다" 비난폭주

강호순 ' 카페' 등장…"할 말을 잃었다"

"강호순은 영웅" "살인자 찬양하냐"…'강호순 팬카페' 네티즌 논란 확산

강호순 신드롬?…팬카페 개설에 네티즌 북적

강호순 팬카페에 네티즌 경악

네이버에 강호순 팬카페…네티즌 "황당하고 어이없다" 비난


전부다 비슷한 식으로 제목을 달고는 "네티즌"을 동원해서 강호순 팬카페가 엽기적이고, 반사회적 신드롬이며,

세상에 어떤 또라이가 저런 짓을 했나 싶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내용도 그런 식이다. '충격과 공포'랄까.

치사하게 따옴표를 동원하거나 네티즌의 입을 빌려 선정성을 극대화하는 대부분의 언론들에 비하자면,

그나마 덜 자극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쓰려 했던 신문 두 개의 제목은 차분한 편이다.

‘인권’ vs ‘살인예찬’…강호순 팬카페 논란 (경향)

강의 팬카페 “범죄자 인권도 보호돼야” (서울)


궁금해서 가입했다. http://cafe.naver.com/ilovehosun.cafe



등업인사방에 보니까, 온갖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이었다.


글쎄, 굳이 I love Hosun이란 센세이셔널한 주소를 달았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개인의 판단이다.

마치 내가 이 포스팅의 제목을 뭘로 하던 내 마음이듯이,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화자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일종의 후크(hook)랄까. 그리고 카페지기는 설명한다. 그 러브란,

범죄자 강호순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지지가 아니라, '자비에 기인한 사랑'을 의미한댄다. 호의적으로

생각하자면 종교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휴머니즘.

게다가 그 까페는 모방범죄를 독려한다거나 연쇄살인범에 대한 동경 내지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체포 후의 그를 대하는 언론과 사회의 드잡이식 행태로 인해 침해받는 인권에 대해 지지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아가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까지, 조금은 깊고 진지한 이야기까지 끌어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아래는 까페 가입 후에야 읽어 보게 된 까페지기의 규탄 글.

 

그리고 현재, 까페지기는 '카페 향방에 대한 중대결단'을 공지한 상태. 이 사람의 편을 100% 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촛불시위때부터 갑자기 집단지성의 화신으로 떠받들리기도 하는 소위 '네티즌'이란 정체불명의 집단이

때론(여전히) 얼마나 흉폭하고 잔인한 말들을 던지고 있는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인터넷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이상, 네티즌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의미한 단어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거다.

사실 '네티즌'이란 단어 대신 '사람들'이란 단어를 바꿔써도 의미상 별 차이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아직 네티즌에

특화된 의미가 부여될 맥락이야 남아있지만, 갈수록 '네티즌'이란 단어는 무의미해 지지 않을까.


어쨌든, 이 사람의 말할 권리, 생각할 권리를 싹수부터 짓밟아 버리고 욕하고 침을 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실 그다지 틀린 내용이 아닐 뿐더러, 상식을 얘기하고 있을 뿐 아닌가 싶다. 강호순과 같은 범죄자의 인권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범죄자를 대하는 사람들의,..'이상한' 태도에 대해서 이미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강호순의 목청큰 갤러리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내용도 자세히, 최소한 객관적으로라도 알릴 노력은 없이 그저 신나서 갈굴 거리, 욕할 거리만 찾아 바치는
 
언론들은 또 뭔가.(용산참사와 정부의 실책들을 가리려는 건 아닌가..라는 식의 음모론은 사양이지만, 대체 왜?)




아래는 공지글 전문.

*                                     *                                     *

백기를 들까하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카페의 향방에 대한 중대결단을 공지하는 바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쪽지와 메일, 게시물을 통해 '인권'에 대한 고견을 피력해주셨고 또 현재까지도 계속 그러하시고 계십니다. 비록 며칠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지금껏 수많은 분들께서 인권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며 연쇄살인범 인간이 아니고 고로 그의 인권은 부정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때문에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범죄자의 '인권'을 논한다는 것.

 본 카페가 만들어 진지 약 나흘이 지났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범죄자의 인권 또한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그저 지극히 원론적인 주장이 이토록 많은 '돌팔매질'을 불러올 줄 몰랐습니다. 한 성인(聖人)인 말씀하셨듯이 죄가 없으시어 그리도 쏟아 부으신 돌팔매인 지는 잘 모르겠으나, 마치 그 돌이 내던져지는 이 사회의 범죄자인권의식인 것만 같이 느껴져 참으로 씁쓸하고 괴로웠습니다.

 수많은 욕설과 비난의 여론으로 인해 무척이나 혼란스럽기도 하였고, 많은 분들의 조언, 혹은 협박과 같이 차라리 이쯤에서 카페를 폐쇄를 하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적어도 그러는 편이 마치 짙게 내리깔린 안개 속을 홀로 걷는 듯 한 막막함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십분 도움을 줄 것이 명백해 보였습니다. 때문에 대문에 중대결정 발표시안을 내걸고 몇 시간 동안 홀로 모니터 앞에 앉아 그동안 보내주신 쪽지며, 메일들을 통해 소통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서도 '혹여나 또 받아들이시는 면과 글의 내용에 있어 오해가 있지는 않을까'하여 몇 번이고 다시 검토를 하며 고심하였습니다.

 그렇게 결코 짧지 않은 나흘,

그리고 카페의 향방을 결정짓기 위해 가진 몇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고심 끝에 얻은 결론은,
 여러분 말대로 범죄자에 대한 '인권'은 없다는 것입니다.
고심 끝에 얻은 결론이라고는 너무도 황당한가요?

'인권'
타인의 인권을 유린한 자에게서 박탈되는 것.
고로 짐승과 같은 범죄자에게는 없어도 되는 것.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 사회에서의 통용되는 '인권'의 정의란 위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저는 금방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략 1600건의 쪽지와 50여 통의 메일, 수백 개의 게시물과 수천 개의 댓글들은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인권'의 의미를 예습, 복습하기에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여러분이 백번 옳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하나의 인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괴상한 따옴표 조차 지니지 않은 보편적이며 절대적이고, 자고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영원히 가져야할 진정한 의미의 인권 말입니다. 설사 어떤 이가 짐승과 같은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사람 역시 인권을 존중 받아야할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강호순씨가 7명의 부녀를 연쇄 살해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사실조차 천부된 권리를 박탈 할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강 씨를 비롯한 범죄인 및 소수자 아울러 만인의 인권은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바입니다. 

 더불어 예로부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죄가 미워 형벌로써 다스릴지언정 사람이 미워 가족사항이나 얼굴 등 개인신상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태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국가권력과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닌 사력(私力)에 의한 방임적인 형태의 응징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임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가령 강 씨의 신상정보의 유포로 인한 피해로부터 그 누가 강 씨의 범죄와 전혀 관련 없는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을 보호, 보상해줄 수 있겠습니까?

  옛 독재정권시절 국보법위반으로 잡혀갔다 나온 이가 그 소문이 동네에 번져 자신의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빨갱이의 아들이라고 놀림 받고 "빨갱이 잡았다"며 목줄에 매어 끌려 다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슬퍼하였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강 씨의 아들이 단지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이유로 형태는 달라도 어떤 부당한 대우나 사회적 차별 받게 될지 모른다면 이것은 분명 현대적인 관점에서 명백히 부조리하고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범죄인의 인권에 대한 여론이 나날이 극단화되어가고, 이에 대해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며 바람직한 여론을 제시해야할 언론이 앞장서서 팔걷고 나서며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등 오히려 대중적 분위기에 영합해 마치 진화(鎭火) 커녕 부채질하고 기름을 붓고 있는 것만 같은 최근의 형상을 보이는 것도 저는 진심으로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일부 언론 행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께서 오해하고 계신 부분에 대해서 짚고자 합니다. 범죄자의 인권조차 존중한다는 본 카페 모토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확장하여 마치 우리가 피해자의 인권은 하등의 위함도 없이 여긴다고 오해 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 카페 측에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인권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여 구태여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결코 희생자의 인명과 인권에 대해 경(輕)하게 여기고 있지 않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애초 그러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하지 않아 발생한 군중과 카페 상호간의 입은 불측의 손해에 대해서는 일부 잘못을 시인하고 잔혹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 고인과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또한, 이미 GreatKiller라는 매니저 본인의 닉네임과 '팬 카페' 라는 명칭에 대해서 이전의 공지를 통해 해명하였음에도, 그 어감으로 인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회원님들의 의견에 공감하여 닉네임은 즉시 다른 것으로 바꾸고 '팬 카페'를 '모임'으로 대체하려 하였으나, 네이버 정책상 6개월 동안 카페 명을 수정 할 수 없어 네이버 측에 꾸준히 별도의 문의를 하는 한편 후임 스텝에게도 이에 대한 책임을 유보할 생각입니다.

  백기 대신 바톤을 드는 이유.

 강호순씨를 비롯한 범죄인들의 인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여지를 두어 편향된 여론이 균형을 이루는 데 미약하게나마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이 카페는 존치되어야 합니다. 일부는 온라인이라는 활동범위의 제약을 근거로 본 카페의 역할론을 부정하며 '소용없는 짓'으로 규정하지만, 모종의 '잔상효과'를 통해 앞으로 범죄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그 이슈를 접하는 일반 대중에게 두고두고 범죄자의 인권이 상기되게 함이 본 카페 최대목적이며, 우리는 그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본인의 자질상의 미숙으로 인해 카페개설 초기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온라인상에서 일대 논란을 촉발하고 고의 아닌 사회적 충격을 안겨준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그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 기해 후임 매니저에게 조만간 운영권을 이양하고 일선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사회적인 논란을 촉발한 사실 자체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드리며,
 더불어 다시한번,
범죄의 희생양이 된 고인과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장면 #1.

강호순이 현장검증을 다니며 여기저기 야산에서 살인과 매장을 재연할 때마다 벌떼처럼 사람들이 몰렸다.

'동네주민'이라고 소개되는 이들은 한결같이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느냐, 사형시켜야 한다 등등 극한 언사와

폭언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저게 인간이야?!", "저 XX한테 인권이 어딨어?!", "마스크를 왜 씌우냐고!!"

수백명의 강호순'갤러리'들이 그의 범죄 현장을 따라다니며 혀를 끌끌 차대고 고래고래 욕해대기에 바빴다.


마치 팬클럽처럼 졸졸졸. 스트레스 제대로 풀 화풀이감 하나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장면 #2.

대중을 끊임없이 자극시켜, 행여나 그 날선 분노와 눈먼 증오가 무뎌질까봐 두려운 기자들은 오늘도 이런 기사를

쓴다. 강호순, 유치장서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잘 먹고…(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2/2009020200054.html)

현장검증을 하는 강호순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방송멘트는 으레 이렇게 시작된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살인행각을 별다른 동요없이 태연히 재연했습니다, 이틀째인 오늘도 태연히 재연했습니다, 대체로

무덤덤한 표정으로...망설임없이...(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278278_2687.html)


대체 강호순이 어떤 표정과 태도를 보이면 만족할지 궁금하다. 직접 손으로 찢어발기지 못해서 아쉬운가.


장면 #3.(고백)

어렸을 적 나를 놀래키고 겁먹게 했던 배가 빨간 독개구리, 셀수없이 많은 발을 꼬물딱대던 지네, 그리고

새까맣고 반들거리는 눈에 분홍색꼬리를 가진 쥐를 '말살'시키면서 어떠한 쾌감을 느꼈는지 고백한다.

*                          *                          *

마스크를 벗겨야 하네 어쩌네 말이 많았다. 그 와중에 법질서 수호를 걸핏하면 핏대높여 외치던 조선과 중앙이

가장 먼저 '공익'을 위한답시고 마스크를 벗겨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분한 욕지거리와 삿대질,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느껴지는 광기는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 집단적인 폭행을 가하고, 멸시하며, 침을 뱉고 돌을 던진다.

그리고 언론은 그런 비이성적인 흥분과 감정과잉의 상태를 부추기고 보도하며 보도하고 부추긴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라는 탄식. 그건 위선일지 모른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고

자신은 어떤지 돌아보지는 않더라도-'너희 중 죄없는 사람만이 돌을 던지라'는 가르침을 주는 어느 종교가

성행하고 있으니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굳이 사이코패스니 뭐니 나와는 다르다는 부적들로 덕지덕지

분리시키고 격리시키는 건 왜라고 생각하는가.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다면, 지금 이렇게 사냥감의 목덜미를 한번 물면 놓을줄 모르는 충성스런 사냥견같이

강호순에 극악스럽게 달려들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당신들은. 피냄새를 맡고 온 건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들이 발가벗겨진 그보다 훨씬 선하며 인간답다는 도덕적 우월감, 그리고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마치 말못하는 못생긴 짐승과도 같은 그에 비해 압도적인 힘의 쾌감을 은근히 만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어쩌면 그건 강호순이 다른 여자들을 죽이면서 얻었던 쾌감과도 같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렸을 적

혐오스런 생명들을 짓밟으면서 느꼈던 잔인한 희열과는 분명히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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