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프로토 190CXPro3, 옷장 안에 봉인된 삼각대를 대신하다.
맨프로토 324RC2 Joystick Head, 정말 좋은 '손잡이'다..!


비가 슬금슬금 내리던 날씨, 맨프로토Manfrotto의 190CXPRO3 삼각대에 324RC2 Joystick Head를 옆좌석에

태우고 고수부지로 향했다. 카본화이버 튜브에 마그네슘 재질, 중학교 때던가 K-Ba-Ca-Na-Mg..로 나가는

반응속도를 죽어라 외우며 물에 던져진 마그네슘 조각이 폭발하는 실험을 했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지만,

다행히도 강변 둔덕위에 다리를 펴고 삼각대를 올릴 즈음 비가 멎었다. (물론 삼각대의 마그네슘 성분이

비 좀 맞는다고 폭발할 리는 없고, 오히려 녹슬지 않으니 악천후와 무관하게 쓸 수 있을 듯.)

삼각대를 써본 게 처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고급형은 다르다. 수평계가 달린 볼 헤드와 유려하게 미끄러져

나오는 삼각대의 다리들 덕에 위치를 잡고 세팅하기가 쉽고 빨랐다. 우선은 살살, 셔터속도를 1/2 sec 정도로

잡고 강 넘어 북쪽의 도시를 찍어보았다. 이런, 망원렌즈를 안 가져왔더니 저 너머 S타워의 모습이 너무 작다.

게다가 한강은 왜 이리도 넓고도 도도하게 흐르는지.

불빛이 반짝반짝할 만한 장소로 바꿨다. 동작대교 위의 구름까페 전망대. 강넘어 아파트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차분하게 반짝반짝, 게다가 육각별 모양의 가로등 불빛이 정말 반짝반짝거리는 동작대교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이 길게 미끄러지기까지. 때마침 지나가는 전철을 잡겠다고 삼각대를 대충 펼치고는 볼 헤드로

순식간에 각을 잡았다. 삼각대도 삼각대지만, 볼헤드 조이스틱 참 편하다는 감탄을 다시금.

조금씩 셔터 속도를 과감하게 늦춰보았다. 왜 그, 자동차 불빛이 길게 이어지면 빨갛고 노란 띠처럼 차도 위를

두르는 사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평소엔 망할 손떨림 때문에 고작 1초도 흔들림없이 버티지 못하는 데다가,

비그친 후 강바람이 세차게 부는 다리 위에서 미미하게나마 흔들리던 싸구려 삼각대의 경험이 있어서 불빛이

마치 너울성 파도처럼 울렁울렁 했던 거다. 셔터속도 6 sec, 빨갛고 노란 불빛띠가 선명하게 감겼다.

셔터속도를 한 15초쯤으로 놓으면 어떨까. 불빛들이 어른어른해지고 아파트니 동작대교의 실루엣이 뭉개지진

않을지 염려스러웠지만 일단 시도. 15초 동안 꼼짝않고 미동조차 없이 카메라를 잡고 있어줘야 할 텐데.

결과는 나름 만족스러운 정도였다. 한강의 수면이 간유리 표면처럼 보들보들하게 불투명해졌고 차도 위 불빛은

엷게 번져나갔다. (15 sec, F/40.0, ISO-800) 착한 녀석, 토닥토닥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

ISO를 좀더 높여서 다시 시도, 차도 위에 감겼던 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은은한 황금색 불빛으로 하늘까지

물들어버린 느낌, 이 시간을, 이 공간을 뭐라면 좋을까. (15 sec, F/40.0, ISO-3200)

아담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에 대해 일찍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런 불빛 띠가 반듯이 감기는

사진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다리'의 위력이 꼭 필요하다. 사진 안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눈치챌만한 여지도

남기지 않는 시크한 녀석이지만, 이리저리 휘두르며 들고 다녀도 힘들지 않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흔들림없이,

단단하게 카메라를 잡아줄 수 있는 녀석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선 시장이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하듯, 보이지 않는 '다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역시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 거다. (3 sec, F/29.0, ISO-3200)



P.S.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진들이 나오고 마는 거다. 모처럼 짬내서 카메라 둘러메고 밖으로 나섰더니 고작

요런 사진들만 우르르 나와서야 대략 난감. 삼각대, 제대로 된 삼각대 없이 찍힌 난감한 사진의 몇 가지 대표적인

예시들을 골라 봤다.

1) 손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치는 이정도. 젊은 시절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굶주린 상태는 아닌지

등등 여러 조건에 따라 손떨림의 정도는 개인 편차가 있을 수 있겠다. 그치만 사진은 공통적으로 어둑어둑하단 사실.

2) 무리해서 찍는다 해도 손톱만한 사이즈로 볼 거 아니라면 시신경에 매우 유해하다. 멍하니 어느 한점을 응시해서

한 삼십초쯤 바라보면 3D로 뭔가가 튀어나올 기세.

3) 도깨비불이 휘날리듯 사방으로 비틀거리는 불빛들의 대향연. 호흡조차 멈춘 채 얼음처럼 굳어 있는다고 애썼지만

불빛은 심장 맥놀이하듯 벌렁벌렁 나뒹굴고 있다.

물론, 아예 노골적으로 이렇게 흔들어대면 또 나름 멋진(멋지다고 생각되는) 사진이 나오기도 하는 거 같다.

사진으로 생생한 구체를 잡아내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번져나가고 흐느적대며 '미친X 널뛰듯' 일렁이는 추상화를
 
그려낼 거라면, 삼각대의 도움은 필요없이 은지원 만보기 흔들어대듯 카메라 잡고 흔들어대면 되겠다.





삼각대 : 삼각형 형태로 버티고 선 세다리 위에 카메라를 단단히 얹어놓고 사진 찍는 도구.
(출처 : 내 머릿속 단어사전)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삼각대란 그런 거였다. DSLR을 지르곤 사방으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둑어둑한 풍경을 찍어야 할 일도 생기고, 저주받은 손모가지의 부들거림을 의식하게 되고, 무거운 카메라를

거꾸로 쥐고 주야장창 셀카만 찍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삼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카메라를 전문적으로 쓰는 언론사 사진기자 같은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았다. 

Q. 카메라 삼각대 뭐가 싸고 좋은가요.
A. 얼마 정도 예산을 잡고 있니.
Q. 5만원이요.
A. 헉... 
Q. (눈치를 보며) 그럼 한 10만원 이내...?
A. 됐고, 맨프로토를 사. 싸구려 사놓고 카메라 버리지 말고.
Q, 얼만데요?
A. 대충 삼십 정도면 좋은 거 산다.

이해할 수 없었다. 까짓것 급하면 돌멩이도 괴어놓고 사진찍는 판에, 삼각대가 뭐라고 몇십만원이나 줘야 하나.

그렇게 한 번 싸구려 삼각대를 샀고, 무겁고 뻑뻑한 그 녀석은 컴컴한 옷장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리고, 맨프로토 삼각대를 다시 샀다. 나는 소장용이 아닌, 전천후로 어디던 들고 다닐 삼각대가 필요했다.

맨프로토, 이탈리아의 'Manfrotto'가문의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 전문가용 삼각대 브랜드였고, 카메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알고 보니) 거의 삼각대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였던 거다.

맨프로토 홈페이지에서 들고 온 나의 삼각대, 190CXPRO3의 이미지다. 옷장 안의 삼각대에 비기자면, 뭔가

최소한의 뼈와 가죽만 남긴 채 앙상하다는 느낌, 그러면서도 왠지 강인해보여서 별로 가벼울 거 같진 않다는

첫인상이었다.

집에 도착한 녀석을 뜯자마자 해본 건, 아령처럼 두 손에 쥐고 올렸다 내렸다, 가볍다 싶어서 다시 한손으로

쥐고 올렸다 내렸다 해보았다. 꽤나 가볍다. 사람이 올라서는 저울 위에 올렸더니 1kg에서 2kg 사이에 걸쳤고,

다시 주방용 저울에 올렸더니 한바퀴 돌아 1kg를 넘어 150g 정도에서 멈춘다.


가볍다. 이정도 무게면 계속 손에 들고 다녀도 돌아다니기에 전혀 무리가 없겠고, 가방에 넣어 어깨에 매고

다니면 거의 티도 안 날 수준이지 싶다.

삼각대를 본격적으로 훑어보기로 했다. 원래 다리 달린 동물들을 고를 때는 발굽의 상태부터, 밑에서부터 홅어

올라오며 보는 법이라 했던가. 야무지게 끼워진 고무재질의 발굽이다. 너무 말랑해서 금방 닳아버릴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단단하고 딱딱해서 쉽게 미끄러질 것 같지도 않은 딱 알맞은 감촉.

무려 4단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미끈한 다리다. 플라스틱으로 성형된 조임새나 손잡이 등 부속들의 매무새가

말끔하다. 마무리가 거칠거나 어설퍼보이는 것들은 조금만 험하게 쓰면 금가거나 떨어져나갈 듯 불안한데,

반질거리는 부품들이 믿음직하다.

손가락이 딱 밀착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진 레버는,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하게 조정이 쉬웠다.

그리고 레버를 올려 다리를 늘이거나 줄일 때 전혀 저항감이 없이 스르륵 뻗어나오는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올렸다가 내렸다가 반복했지만, 한결같이 미끈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캬아..

밭끝에서 한참을 머물며 만져보고 늘여보고 줄여보고, 한껏 애정해주다가 못내 아쉬워하며 조금 시선을

위로 옮겼다. 두 개의 마크가 붙어 있었다.


마그네슘이 사용되었음을 알리는 표지 하나. 강하고, 견고하며 가볍기까지 해서 무게를 줄이는데 맞춤인

마그네슘으로 삼각대의 중앙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100퍼센트 카본화이버 튜브가 쓰였음을

나타내는 빨간 색 표지도 있다. 카본 화이버, 탄소 섬유가 질기고 견고하며 가볍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

발끝에서부터 샅샅이 시선을 훑고 손으로 쓰다듬으며 감탄하다보니 왠지 스스로 조금 묘하다는 기분이 들 무렵,

마치 아리땁고 정숙한 아가씨의 종아리에서 예기치 못한 뜨거운 타투를 발견한 것 같은 순간이다. 

메이드 인 이태리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맨프로토의 로고.

그녀의-어느 순간 나의 맨프로토 삼각대는 '그녀'가 되어 버렸다-미끈한 각선미, 그리고 아마도 카본 튜브의

텍스춰가 그대로 드러나 보여지는 저 배열은 있는 그대로 이뻐 보인다.

팔씨름을 할 때, 사실 승부는 서로 손을 잡으면서 결정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인데 상대의

완력과 단단함이 느껴지는 거다. 맨프로토 삼각대의 다리를 만져봤을 때의 느낌도 마찬가지.

다소 선뜻하면서도 단단하고 강인한 체력과 내구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다리를 쭉 거슬러 올라와, 어느덧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세워놓고 한 방, 눕혀놓고 한 방.

은색의 레버는 삼각대의 각도를 조절하는 데 쓰인다. 25도, 46도, 66도, 89도 총 네 가지의 각도로 조절이 가능.

각도를 조절할 때도 뭔가 걸리는 느낌없이 부드럽고 무리없이 잘 펴지고 접히고, 조작하기가 참 수월하다.

드디어 상단부, 고지에 올라섰다. 마그네슘으로 만들어진 마그네슘 상단부의 매무새가 깔끔하다. 모양새를

보니 단단하게 카메라를 지지하기 위한 최소 부위만 남기려 애쓴 흔적이 보인달까.

그리고 말로만 듣던 수평계가 장착된 삼각대, 이전 삼각대는 수평계도 없고 뻑뻑한 움직임 탓에 수평을 잡고

사진을 찍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수평계가 있으면 카메라의 수평을 잡는데 편리할 듯 싶다. 얼른 들고

나가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수직으로 위치를 전환했을 때의 모습이다. 버튼만 누른 채 센터컬럼을 움직이면 쉽게 수평과 수직의 위치를

전환할 수 있다. 간편한 조작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일체형으로 만들어두면 자칫 조임이 헐겁거나

덜렁거리진 않을까, 묵직한 카메라까지 얹어놓으면 흔들리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다소 난폭하게

움직여보기도 하고 잡아당겨보기도 했다.


아무리 거칠게 다뤄보아도 수평이던 수직이던 위치가 잡히고 나면 미동도 않고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삼각 다리와 센터컬럼이 마치 한몸인 양, 그렇게 믿음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 끝내 감탄하고 말았다.
 

아, 삼각대 무게는 1.29kg이랜다. 왜 우리집 저울로는 1.15가 나왔을까 싶어 다시 살펴보니, 주방용 저울의

측정가능한 맥시멈 무게가 1.15였다는, 다소 멋쩍은 후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