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은 위기감 없이,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가겠다며 김칫국부터 마시며 자리 나눠먹기 중이고,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구호를 내버린 채 대중정당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자멸 중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와 이명박은 꽃놀이패를 쥐고 즐기는 참이고.

 

 

그 와중에 홍세화 당대표가 '전태일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태일의 집'을 전국에 짓자는 제안을 해왔다.

 

문득, 총선에서의 패배를 예감했던 4월의 어느날 이래 멎어있던 심장이 뛰었다. 두근. 전태일당이라니.

 

5월 총선 이후 그가 침통하고 분루를 삼키던 사진이 숙제처럼 컴퓨터에 저장만 되어있다가, 이제야 올린다.

 

 

 

 

우리는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왜 다시 전태일을 호명해야 하는가-

 

 

 

 

나는 왜 쓰는가? ― 4년 전의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일주일 전쯤, 20대의 한 청년 당원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이 글을 시작하려는 지금 다시 내 마음을 짓누른다. 동네 가게 주인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선거 때 표 찍어달라고 열심히 다니던데, 그런 정당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앞날이나 잘 챙기라”고. 짐짓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뻘의 가게 주인에게 “그 당은 제가 속한 당이 아니”라며 설명하려는데 억울하고 목이 메여 눈물이 핑 돌더라는 얘기였다. 선거에 패배하여 이제는 그 이름조차 기억 속에 묻어야 하는 당을 변명해야 했던 그 청년 당원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4년 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그것은 2008년 2월 13일 민주노동당을 떠나며 남겼던 글이다. “민주노동당 당원 번호 ‘25994’는 이제 주인이 없다”로 시작하는 그 글에서 나는 “민주노동당에 민중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오직 요란한 구호의 장식품이었을 뿐, 오로지 배제 행위에 의한 권력 싸움만 남은 자아팽창자들의 권력의지의 전시장이라고 썼다. 나는 그 글의 말미에 이렇게도 썼다. 기어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그래서 진보신당 평당원으로 3년 반을 채울 즈음, 당 대표를 지낸 이른바 명망가들이 당 대회의 결정에 아랑곳없이 떠나는 것을 보아야했다. 그리하여 한낱 서생에 자족해온 내가 그 빈자리에 올라 어울리지 않은 직책의 무게에 허덕이며 오늘에 이른 셈이다.

나는 이제 다시 쓴다. 지난 총선에서 당의 존립을 지키지 못한 패장으로서, 그러나 분노보다는 슬픔으로, 슬픔보다는 쓸쓸함으로 이 글을 쓴다. 그것은 위장전입과 당비 대납, 대리투표와 비례대표 독식 등 4년 전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몰염치와 오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몰염치가 한 치의 오치도 없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온 것이 아니다. 내가 4년 전 그 글을 썼을 때, 그리고 그 글이 이른바 당을 장악한 종북 편향의 패권주의자들에게 알량한 쁘띠의 ‘유럽사대주의’의 발현으로 읽혀졌을 때, 이미 나는 그들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접었다.

 

나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어떤 통합이냐고 묻는 동지들을 ‘고립주의 독자파’로 몰아붙이고 주저 없이 떠난 이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3당 통합이 ‘노무현과 전태일의 만남’이라고 정의될 때 노무현 시대가 노동하는 인간에게 어떤 시대였는지 기억하는 노동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배타적 지지’를 강행했던 조직노동의 대표자들에게 묻기 위해, 그리고 진보정치가 통합진보당의 독점물이 되도록 여론 몰이에 앞장선 한겨레를 포함한 이른바 진보매체들이 이제서 이 당의 비례대표경선 부정에 새삼스레 경악하며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정말 이제 비로소 알았다는 것인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가 실현되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 되고 ‘개혁적’이 되는 국민참여당 출신들의 반응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노총은 무엇을 용인할 수 없고 또 어디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분당은 절대 없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전의 진보신당 대표이자 오늘의 통합진보당 대표인 여성 정치인은 왜 4년 전엔 분당을 결단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 분단의 질곡이 보수를 왜곡시켜 극우의 품에서 사익을 추구하게 했듯이, 본디 보수인 민족자주세력이 패권주의를 통해 주류 종파가 되었고 이들의 뭉뚱그려진 헤게모니 아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과 노동조직까지 실리를 챙기려 했던 공모의 결과물이 통합진보당의 실체 아니었던가. 막무가내로 패권을 휘두른 이른바 당권파들이 차라리 단순한 편이라면, 그들이 그토록 막무가내가 될 때까지 침묵하고 방관하고 용인하다가 마침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서는 사람들은 복잡한 편이다. 이제서 당권파들을 제물 삼아 몰아세우며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서있음을 입증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왜 그 예민한 지성의 분개는 사태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늘 퇴각하는 권력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작동할까? 차라리 몰랐다면 진솔한 자기고백이 필요할 뿐, 대중의 분노 뒤에 숨어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자제했을 터이다.

 

아마도 4년 전과 오늘이 다른 게 있다면 한 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진보’라는 명분을 필요로 했던 자유주의자들까지 끌어들여 키우고자 했던 파이(권력)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13개의 숫자로 불어난 권력이 지나치게 한편에 치우쳐 작금의 갈등이 촉발되었다면, 그 권력을 다시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대한 합의에 따라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겠다.

 

롤랑 바르트가 그랬던가? ‘좌파(여기서는 문맥상 ’진보‘라 하는 게 맞겠다)의 신화’는 그것이 실제의 혁명과는 무관해지는 순간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그런데 권력정치로 변질된 진보가 여전히 혁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권력의지를 그 속에 감추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진리’라 ‘법칙’이라 ‘섭리’라 ‘운명’이라 왜곡하기 시작하는 이 순간은 동시에 이 신화의 수명이 파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역사마저 비틀어버린 불행한 동거의 파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왔어도, 권력정치의 레일에서 열차가 이탈해 완전히 전복되기 전까지 그들의 현란한 정치공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부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갈 진보신당을 옹호하기 위해 목 메이던 청년 당원의 눈동자 속에 어른거리던 열정 때문에 차마 못했던 말을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한국에서 진보는 죽었다. 진보라는 말에 담겨 있던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들은 그 가치들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권력에만 관심을 갖는 자들에 의해, 진보정치를 현실적 실리와 명분이라는 ‘떡’을 양손에 쥐고자 했던 자들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았다. 진보신당 또한 죽었다. 권력정치와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우리의 안간힘 역시 참담히 패배했다. 진보정치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던 성장주의와 결별하고자 했으나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일구어내지 못한 우리들 역시 사망선고를 받았다.

 

젊은 벗이여, 이제는 서둘러 낡고 병든 진보(정치)의 신화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땅속에 묻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들 자신에게도 권력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이 진보의 장례식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땅 속에 내려간 진보의 죽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의 씨앗으로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의 참담과 추악과 왜곡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이 쓸쓸한 봄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는다. 오웰 스스로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책’이라 했던 이 빼어난 르포르타주는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의 정치드라마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증언한 고발서의 의미를 갖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페인 인민의 열망 편에 서려고 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소련-스페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배제되고 억압당하고 끝내는 죽음을 당했는지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 책보다 먼저 발표된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에세이에서 소비에트를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연합의 정치적 논리는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너무 따질 것이 아니라 함께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 아래 인민 민주주의 지향은 부르주와 민주주의에 의해 차단되었다. 스페인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식견이 너무 ‘오른쪽’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왼쪽’이어서” 처형당했다.

 

너무 먼 역사이야기인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 오웰의 책은 소비에트와 연결된 자신의 이해를 실리적으로 계산하는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과 언론들, 심지어 출판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한 세기 전의 상황이 2012년 한국과 너무 닮아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이렇게 ‘배신당한 혁명’으로 프랑코 독재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파시스트들에게 쫓겨 스페인의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나는 1980년대 파리에서의 망명시절 국제엠네스티 프랑스 지부에서 일하던 스페인 출신 2세 한 여성을 알고 지냈다. 스페인에서 쫓겨 온 그녀의 부모세대들은 그 무렵 이미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고 하나 둘씩 남의 땅에서 눈을 감았다. 동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백발의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래, 우리 삶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들은 끝까지 권력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고발서라기보다 제목 그대로 ‘찬가’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여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인간들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웰은 그것을 망각 속으로 밀어낸 권력정치의 드라마를 고발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턱없이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이같이 불편한 글을. “대여섯 살부터 작가가 되리란 걸 알았다”는 탁월한 작가 오웰과 달리 내게 글쓰기는 언제나 고된 짐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쓰는가? 우리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되찾고 싶어서다. 그 노래를 한 번 함께 불러보고 싶어서다.

 

오늘의 절망스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정당운동의 첫걸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희망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길을 잃게 되었을까?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언제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에 대한 현실적 욕망으로 뒤바뀌고 진보정치가 권력정치의 주술에 갇히게 되었을까?

 

올해로 귀국한 지 꼭 10년이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과도 고스란히 겹쳐지는 이 10년 동안 내가 가장 빈번히 들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먼저 바뀌는지를 줄곧 지켜봐왔다. 그리고 진보정치와 조직노동이 스스로를 ‘민중권력’이라 강변하던 그 시간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그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배제된 노동자들의 숫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나는 왜 쓰는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고 인간의 고통과 시간을 건너뛰어 자유주의-진보주의 연합을 이룩한 저들의 허위와 몰락을 증언하기 위해 쓴다. 그리하여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머물러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는 아직 이 노래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알지 못한다. 이 구절을 외는 것만으로 인간의 숭고함 속으로 성큼 다가가는 것 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중졸도 안 되는, 기껏해야 지상에서 누린 지위가 봉제공장 재단사 보조밖에 안 되는 스물셋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겨준 노래...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쓴 「베를린에서 전태일을 보았다」는 제목의 시에는 제목 외에 전태일은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의 연이 바뀔 때마다 80페니히의 가격이 매겨진 건포도빵, 1마르크 20페니히의 출근길 맥주, 장벽이 무너진 베를린광장 앞에서 파는 5마르크의 기념품, 4마르크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눈동자 없는 눈’을 지닌 신들의 전시실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건 다름 아닌 노동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까지 완벽히 삼켜버린 물신의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사물을 넘어 살아있는 인간 모두에게 가격을 매겨놓은 물신의 세계가 펼쳐놓는 매끄러운 스크린 위에 모든 것들은 풍경으로 존재할 뿐. 전태일이 그림자로서나 어른거릴 뿐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장막을 찢지 않고선 그도, 그가 사랑으로 껴안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아픔도 볼 수 없다. 이 물신의 세계에 파열을 내지 못하는, 그저 권력정치에 포섭된 노동조직이 전태일을 실체 없는 유령으로 만드는 까닭이다. 유령이 된 전태일이 노무현을, 나아가 박정희 체제가 만들어놓은 자본과 권력, 이들과 만나지 못할 까닭도 없다.

 

지난 반 년 동안 기꺼이 나의 글의 첫 독자가 되어준 진보신당 당원 동지들, 그리고 젊은 벗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간곡한 제안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리가 재창당할 당의 이름을 <전태일당>으로 하자고. 그리고 <전태일의 집> 운동으로 오늘 권력정치에 질식당한 진보좌파운동의 새로운 길 찾기를 하자고.

 

좌파정당의 이름으론 낯선가? 전태일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사유화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전태일당>과 <전태일의 집>은 ‘망자亡者와의 연대’이며 배제당하고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다가가 부둥켜안기 위해 물신의 세계에 저항하며 싸우는 정당의 정신을 당당히 선언하는 이름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으로 우리를 침탈한 데 머물지 않고 등록취소가 되자마자 곧 진보당으로 바꾸겠다는 저들에게 응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약속하기 위함이다. 전태일 자신이 그랬듯이.

 

절망할 일로 가득 찼을 스물셋 봉제노동자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고 탄식했을 때 그 희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돌아가기 위해’ 죽음도 무릅써야 했던, 그리하여 기어이 그가 만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태일은 버림받고 감추어진 자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사랑이고 만남의 정신이었다. 연대는 내게 넘치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부족한 걸 떼어주는 것이다. 늘 배고픈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눠주기 위해 버스비를 아껴 수유리에서 청계천 평화시장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던 전태일의 발걸음을 정의하는 말이다.

 

진보신당 대표가 되어, 지금도 어색하기만한 옷을 입고 주로 했던 일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이런 구호들 속에서 나는 ‘연대’라는 말만 들으면 늘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력감과 미안함,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말일까? 단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걸 의미하는가?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것도 두 번 버림받은. 한 번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그리고 다음에는 정규직 노동조직에 의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 대해, 그들의 노조가입조차 배제된 현실에 대해 침묵하면서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정규직 노동조직 자신이 배제한 비정규직의 존재를 자본과 권력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은 염치없는 정치적 알리바이 아닌가.

 

우리가 오늘 전태일을 다시 호명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대의 노동현실에 가로놓인 이 이중의 배제구조를 외면하고 외치는 노동정치에 대해 이제는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허위의 현실에 안주해온 죽은 진보를 이제 땅 속에 묻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어이 전태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남도의 끝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 매달린 절망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간 버스에 ‘희망’이란 말이 붙은 것을 나는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는 전태일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고, 그리하여 죽은 전태일이 죽음을 무릅쓰려는 김진숙을 살려낸 기적이다. 김진숙의 기록 『소금꽃나무』는 내가 읽기에 ‘망자와의 연대’이다. 크레인 위에서 떨어져 죽어간 동료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고 기어이 크레인 위로 올라갔던 그녀가 희망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부활은 기적을 통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지금 진보의 죽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기적 아닌가? 이제 우리가 만들 당의 이름이 전태일, 그의 이름이면 안 되는가? 우리의 당의 정신이 온통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정신인 그의 정신이면 안 되는가? 평생 집이 없었던 그의 이름으로 집을 짓고 배제되고 쫓겨나고 상처받은 노동자들이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게 하는 일에 전력하는 일, 그게 새로운 정당운동이면 안 되는가?

 

오늘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그것이 우리가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 존재이유라고 자위해선 안 된다. 우리 자신은 검게 드리운 권력 정치의 그림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일까? 진보정당이란 몸통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우리들은 과연 민중의 고통을 따라 움직이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설움 받는 평화시장 어린 동심을 지켜보던 그의 눈을 닮은.

 

진보신당을 변명하며 목 메이던 젊은 벗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 한편 발췌해 남긴다. 이것이 내가 말한 ‘망자와의 연대’의 의미이다.

 

 

“경기대에서 「조국은 하나다」/ 육성시낭송 듣고도 울지 않고/ (……)/ 불 꺼진 취조실마냥 어둡던 망월동/ 그의 하관을 보면서도 이 악물었는데// 그를 묻고 돌아온 서울/ 심야버스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다/ 다리 난간에 덜덜거리는 허리 받치고/ 헤머드릴로 아스팔트 까며 야간일 하는/ 늙은 노동자들을 본 순간/ 이 악물며 울고 말았다/ 그가 간 것보다 그가 사랑했던 한 사내가/ 저물어가는 것이 서러웠다”

―송경동의 시, 「김남주를 묻던 날」

 

 

 

 

 

*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생각난 예전 홍세화 대표님의 글


 

 

1984 (반양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문학동네


솔직히 그런 책들이 있다. 제목을 워낙 많이 들었거나 그 핵심 아이디어라며 쉽사리 인용되는 한두가지 개념에

워낙 익숙해진 탓에 미처 읽기도 전에 이미 읽었다고 착각하고 마는 책. 예컨대 '빅브라더'같은 단어가 그런

착각을 일으킨다. 하루키의 1Q84를 두고 '아이큐84(IQ84)'라며 이상하게 읽어대는 어떤 문학평론가를 조소하다가,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하루키가 1Q84라며 비튼 제목의 원전 격이랄 조지 오웰의 '1984'를 여태 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정말 굉장히 멋진 책이다. 하루키를 무지 좋아라 하지만, 그의 1Q84는 조지 오웰의 1984과 매우 '다르다.'

그리고 아마 2984년쯤에도 살아남아 찬사를 받을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일 거라는 데 걸겠다. 물론 두 작품은

제목 빼고는 별로 주제도, 내용도 겹치지 않으니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1Q84를

제목으로 내건 하루키가 1984의 문학적 성취를 의식하고 호승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뭐랄까, 두 번째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불현듯 마오쩌둥의 '영구혁명론'이 떠올랐다. 사회주의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한번의 혁명, 한번의 전복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애써 이뤄낸 성취가 무위로 돌아가거나 후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모든 분야에 걸쳐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그 '영구혁명론'의 대강인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1984년의 세상은 그런 영구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세상인 거다. 다만 그 혁명은 위로부터의

혁명, 그러니까 기득권층, 더 적나라하게는 지배계급의 '영구혁명'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겠다.


1984년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 '빅브라더'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했다, 혹은 이해했다고 믿는다. 권력을 쥔

상층계급에 대항해서 자유와 평등, 정의 따위의 수식을 내건 중간계급이 하층계급을 끌어들여 그들을 전복시킨다.

그리고 중간계급은 상층계급으로 자리이동하고 다시 새로운 중간계급이 생성되어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는

식의, 커다란 순환을 무한반복한다는 것이다. 이제 권력은 그 역사의 흐름을 이해했으니 그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영구히 보유하려 한다. 중간계급이 성장하기 위해서 집적되어야 하는 부를 족족 소진시키고,

중간계급을 각성시키기 위한 지식을 황폐화시키겠다는 황당하지만 살벌한 전략. 그게 지배계급의, 지배계급을

위한, 지배계급에 의한 '영구혁명'의 목표다.


듣기엔 우습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온 인류를 먹여살리고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수준에

오른 생산력은 주변국과의 쉼없는 전쟁을 위한 총과 대포를 위해 소모된다. 현재의 세상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나침반이자 전거로서 기능해야 할 과거의 역사, 과거의 지식은 매시간 새롭게 씌여진다. 늘 전시체제 하에서

동원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전쟁이 없던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며, 배급되는 신발과 면도날의 질과 양이

불과 일년 전에 비해서도 양호해졌는지를 따지지 못한다. 그들은 전쟁의 광기에 불현듯 휩싸이면 빅브라더를

위해 만세를 부르며, 집안 화장실마저 감시하는 사상경찰 하에서 억지웃음을 지을 뿐이다.


권력이 자원을 무익하고 비생산적인 쪽으로 소모해버리고 적극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건 2010년 지구에서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풍경이다. 한국만 해도, 온 국민을 먹여살리고 북녁의 주민들까지

먹여살릴 수 있을만큼의 풍요한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희소하게 만들어 버린다. 전쟁무기를

구매하고 국외와의 불공정한 경쟁에 노출시키며 4대강 같은 무익한 사업에 쏟아부으며 '소모'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만들기에도 게으르지 않다. 권력과 언론간 '반복과 차용'의

근친교배를 통해 사실로 굳어져버리고 마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들. 천안함 사태가 그렇고, G20가 그렇고,

사대강 사업이 그렇고, FTA옹호론이 그렇다. 그 와중에 국내이슈를 덮어버리는 애국 마케팅도 절묘하다.


조지 오웰의 상상력은, 그렇지만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괜히 그를 '디스토피아'의 무시무시한 재현자로

이야기하는 게 아닌 거다. 이들, '빅브라더'를 전면에 내세운 채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버리려는 이들은 사회를

통제하고 구조를 고착화시키려 안간힘을 쓸 뿐만 아니라 아예 인간의 사고 자체를 개조하려 든다. 기계에서

자동으로 배열된 몇가지 단어로 짜맞춰진 시와 노래만을 유포하고, '섹스를 더럽게 변질시켜' 억압된 성욕을

전투적인 증오심과 지도자 숭배로 전환시키는 거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사고능력을 둔화시키고 제거하기

위해서 언어 그 자체를 새롭게 정리한다. 어휘를 계속 줄이고 줄여서 생각의 폭을 좁히고, 결국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기계인간을 만드는 것이 빅브라더가 생각하는 혁명의 완수.


빅브라더의 생각대로 될까.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다양한 동사와 형용사들, 깊은 사고와 반성을 가능케 하는

관념어들이 없어지면, 정말 인간이 변화할까. 그리고 신발깔창처럼 제작되는 노래와 시들이 재래의 예술을

대체하면 인간의 문화는 황폐해지고 말까. 성욕을 억압하면 인간들이 까칠해져버려서 전투적으로 변하고

전시상태의 비인간성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전통적 가정을 하나의 상호 감시단위로 변화시킬 정도의

강력한 감시와 통제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수락할 수 밖에 없게 될까.


모르겠지만, 조지 오웰은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고 말한다. 이미 그의 주인공 윈스턴조차 찢겨진 시체의 팔목을

무심히 발로 차내어 버릴만큼 황폐해졌고,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을 곡괭이로 살해하고 말겠다 다짐할 만큼 살벌하다.

결국 지독한 고문과 자기 부정을 거쳐 윈스턴이 빅브라더를 사랑한다 고백하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면, 오웰의

예측은 옳은 것이었다고 동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마는 거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에까지 몰리면

인간은 멸종하고 말겠구나, 역사는 멈추고 말겠구나, 기껍지는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게 단순히 조지 오웰의 '사고 실험'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어떤 권력도 빅브라더만큼 철저하게 국민들을

통제한 바 없으며, 언어를 조직적으로 퇴화시키는 건 고사하고 문화와 사생활과 사고방식을 규율하고 억압한

적은 없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불길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 신체에 대한 구속력-생체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졌고, 국가와 자본주의의 동학 내에서 대중문화는 스스로 천박해진지 오래다. 전신을

스캐닝하고 개인정보와 생체정보를 집적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란 너무 쉬워졌다. 민주주의의 이름을

팔아 하향평준화를 강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자기 성찰과 반성적 사고를 단련하기 위한 시간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슈들에 선점당한다고 느낀다면, 너무 시니컬한 건가.


다행히 아직은 그렇게까지 위태롭지 않다고 해도, 조지 오웰의 이 암울하고 염세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값지다.

자연스런 흥망성쇠의 역사 흐름을 멈춘 채 현재의 지위와 특권을 영원히 장악하겠다는 그들 권력자들의 욕심은,

조지 오웰이 그 결과로 그려낸 세상은 낯설지언정, 그 욕심 자체는 지독히도 진부하고 익숙한 거다. 그들은

언제고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며, 그들을 위해 유리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를 강권한다.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4대강은 운하가 아니고, FTA는 모두에게 유리하며, 아랍인은 테러리스트이고,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자 세계경찰이고, 그리고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란 이야기.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 2+2=5, 라디오헤드의 이노래가 1984의 이 대목에서 비롯한 건 아닐까.

이제 끔찍해질 거야, 도망칠 곳은 없어.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쳐도 이제 너무 늦었어.


Are you such a dreamer
To put the world to rights?
I stay home forever
Where two and two always makes up five

I lay down the tracks
Sandbag and hide
January has april′s showers
And two and two always makes up five

Its the devil′s way now
There is no way out

You can SCREAM IT, you can shout
It is too late now

Because...
You′re not there!

payin′ attention
payin′ attention
payin′ attention
payin′ attention
You have not been paying attention

paying attention
paying attention
WHEN I SAY SOON oohh

I try to sing along
But I get it all wrong
′Cause I’m not
′Cause I’m not

I swat ′em like flies but like flies the buggers keep coming back NOT
But I’m not

All hail to the thief
All hail to the thief

But I′m not
But I′m not
But I′m not
But I′m not

Don′t question my authority or put me in the box
′Cause I′m not
′Cause I′m not

Oh go and tell the king that the sky is falling in

When it′s not
But it′s not
But it′s not
Maybe not
Maybe not


like 1984

언제나 의심해야 할 것은 '충성'과 '민족', '국가' 따위 단어를 내세워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고

무조건 믿고 따르며 똘똘 뭉치라는 말이다. 'Strength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라는 그들의

구호,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거대한 텔레스크린으로 화상지시를 하거나 언제라도 도감청을

내키는대로 할 수 있는 능력, 정부가 날조하고 의도한 이야기만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들,

음악과 예술이 사라지고 10시면 사람들을 집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통제력, 전쟁/테러/질병/

자연재해 등 '외부의 적'을 계속 만들어내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연장하는 그들의 패턴은 똑같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인류가 위계화된 이래 '권력'은 그런 식으로 대중을 동원하고 통제하고 조종해

왔으니까. 어느 정도의 사실을 가지고 언론과 학계의 권위를 빌려 '위기'를 만들어내고 '상식'을

만들어내는 거다. 영화에서 나왔던 소재는 악의적으로 뿌려진 '신종 바이러스'였지만, 1984에서는

'전쟁'과 '재구성되는 역사'였다. ([1984] 지배계급의 '영구혁명'이 진행되는 세상, 1984 혹은 현재.)


각시탈 혹은 바더 마인호프

권력에 대항한 '폭력'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맥락을 수긍케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사회통념상' 쉽지

않은 거 같다. 떠올려보면 70년대 독일 적군파들의 무장봉기 및 테러를 앞세운 극좌노선 이야기를

그렸던 '바더 마인호프', 혹은 (한국에서 프로파간다 차원으로 만든 선전물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김일성 치하 북한에서 각시탈을 쓰고 무력투쟁의 선봉에 서는 '각시탈' 정도일까. '칠레전투3부작'은

조금 그림이 다르니까 논외로 치고, 당장 떠오르는 대부분의 영화는 '폭력은 나쁜 것'이란 선험적인

판단에서 그치고 있는 듯 하다.


이 영화는 어떨까. 국회의사당을 폭파하고 정부요인을 암살하며 테러를 선동하는 그 행동들의 기저에는

단순히 폭력에 대항하는 또다른 폭력, 반폭력으로 맞서는 건 어리석다는 판단이 깔린 채다. 총 앞에

총으로 맞서봐야 상대는 대포와 미사일을 갖춘 거대한 폭력집단. 중요한 건 잔뜩 움츠러 들어있고

마비되어있는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자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뇌된 부자유에 대한 불만,

자유와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결핍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대가리가 바뀌어봐야 그대로일테니.

폭력에 대한 판단은 그래서 차라리 부차적이다. 굳이 정당화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 역사가

바뀌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현실적인 '매트릭스'

물론 이 영화에서 '폭력'이 수반하는 모두의 피와 고통을 진지하게 마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화려한 수식과 세련된 연출력으로 잘 만들어진 오락 영화, 'Phantom of Opera'의 사회적

버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주인공 V가 부패하고 부정의한 정치권력을 살육하고 스스로도 목숨을

바쳐 이전 시대를 끝내고자 했다지만, 그가 권력자 한 두명을 바꾼 건지 '앙시앙레짐' 체제 자체를

바꿔낸 건지에 대해서는 답도 없다. 폭파해나가는 국회의사당 안에서 팔다리가 찢겨나가 죽었을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적당한 가벼움과 오락성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내 현실성과 감동을 획득한다.

매트릭스에서 나왔던 빨간 알약, 이번에도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빨간 알약을 나도 함께 먹은

느낌이 드는 거지만, 그때만큼 막막하거나 멍한 느낌은 없는 거다. 이 세상이 통째로 거짓이란

이야기, 차라리 세상을 떠나 어디 가서 도나 닦는게 낫겠다 싶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이 세상이 거짓이긴 하지만 그건 그들이 각본하고 짜맞춘 이야기와 시스템이 그렇다는 거지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부정하진 않으니까. 뭘 해야 하고 뭘 피해야 할지 알려주니까.


감동의 3단부스터 (아이유 좋아요)

그렇게, 옆에 있는 사람들과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V의 가면을 쓰고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물밀듯 몰려오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느리지만 단호한 발걸음이

탱크와 중무장한 군부대 턱앞까지 두려움없이 다가오던 그 때. 수뇌부가 무너진 군병력이

망연자실 손을 놓은 가운데 바리케이트와 방패와 탱크를 넘어 계속 나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1단 감동. 그리고 이윽고 시간이 되자 거대한 국회의사당이 사방으로 불을 뿜으며

폭발해 나가는 그 모습에서 2단 감동. 거대하게 화석화된 권위, 사람들로부터 나왔지만 어느새

사람들 위에 군림하던 국회의사당이 터져나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정말 국회의사당이 무너져내리자 비로소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장면. 감동의 화룡점정, 그야말로 3단부스터였던 거다.

가면 뒤에 숨어서, 가면의 통일성을 빌어 자신들의 목소리와 의지를 전달하던 그들은 이제 가면이

필요없게 되었음을 웅변하던 장면이었다. 제각기의 얼굴로 제각기의 목소리로, 새로운 권위를

세우고 자신들의,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만들어낼 거다.


어쩌면, 워쇼스키 형제는 이런 식의 낭만적인 혁명이 진짜로 가능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아름답고 깔끔한 혁명이란 영화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게

나도 따라 믿고 싶어지는 어느 혁명의 이야기, 브이 포 벤데타.




융캉제 가는 길, 햇살이 박살난 채 사방으로 흩뿌려진 도로 위를 스쿠터로 달리기엔 너무 엄혹하다. 여자들은

긴 옷을 따로 걸치거나 팔토시를 하거나, 잠바를 거꾸로 걸쳐 입거나 해서 노출을 최대한 피하려고 애쓰는 게

뻔히 보인다. 게다가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달리곤 있지만, 아무래도 태양을 피하기는 힘든 듯.

융캉제라는 곳은, 가이드북을 아무리 보아도 대체 뭐하는 동네인지 딱히 감은 오지 않던 그런 곳이었다.

융캉제라는 묘하게 거칠고 리드미컬한 이름 역시 상상력을 자극할 뿐 그 공간에 대한 아무 힌트도 주지 않았고,

사실 가이드북엔 여기의 '빙관', 망고빙수만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었고.
이렇게 허름하고 푸근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온갖 음식점과 샵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어서, 뭐랄까

대낮 버전의 야시장이랄까,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쯤 되겠지 싶은 느낌.

골목을 거닐다 발견한 오편함, 아마도 빨간 게 급행, 파란 게 보통 우편을 위한 함인 건가. 그렇게 보기에는

양쪽 모두 구멍이 두 개씩 있어서,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색깔 빼고는 대체로 쌍둥이스러운 두 개의 우편함.

융캉제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 체게바라와 마오쩌둥의 초상, 이런 식의 제3세계 혁명지도자들을 기리는 샵은

동남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타이완 타이페이에서도 만날 줄이야. 근데 사실 이 샵에서 파는 물건들이 이

두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는.

그리고 또다른 혁명가, 오사마 빈 라덴의 초상도 다른쪽 귀퉁이에 붙어있었다. 미국의 골칫덩이, 세계의 불안정성과

폭력성을 자신의 폭력으로 폭로하는 그는, 테러리스트이자 혁명가라 불릴 만 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저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굳이 가이드북을 꺼내들 필요도 없겠다. 노란 색깔로 칠해진 벽면,

우글거리는 사람,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빙관(아이스 몬스터)'. 융캉제의 보석.ㅋㅋ

의자가 몇개 있긴 하지만, 편안히 앉아서 먹을 공간조차 없어서 대부분 입석이다. 높다란 테이블 위에 망고빙수를

올리고 허겁지겁 먹는 걸 보고, 대체 뭐길래 이렇게들 줄 서서 먹는 걸까 했는데 먹어보니 알겠다. 망고도 잔뜩

들어있고 얼음도 곱게 갈려있고, 놓칠 수 없는 맛이다.

이렇게 메뉴판에는 꽤나 여러가지가 나와있기는 한데, 대부분 같은 걸 시켜 먹는 거 같다. 130NTS짜리

망고밀키프리즈, 밑엣줄 가운데 망고 듬뿍 얹혀있는 그림. 타이밍이 되면 두 번쯤 먹고 싶었던.

빙관 앞에서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조금 걸으려다 보니 바로 옆에 이런 조그마한 놀이터 같은 공원이 있었다.

테이크아웃으로 시켜서 여기 앉아 먹을 걸 그랬단 생각이 살짝. 그치만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나오면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컵안에 꾹꾹 담아주어서, 거기서 바로 먹을 때처럼 용기에 이쁘게 담겨나오진 않는단 단점이 있다.

딱 봐도 남국의 식생이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흐느적대며 바람에 너풀거리는 생기잃은 잎사귀들도 그렇고,

열기를 감당치 못했는지 으깨진 생두부처럼 찌글거리는 건물도 그렇고. 그 와중에 싱싱한 건 어린 아이의 웃음.

택시 타고 융캉제를 빠져나오는 길, 융캉제는 정말 뭐가 딱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동네. 내가 짧게 돌아다닌

탓이 크겠지만, 그냥 주택가가 모여 있는 동네에 음식점이나 옷가게 따위가 좀 쏠려있더라 하는 정도. 아,

딘타이펑 본점도 여기에 있다고 들었는데 굳이 찾아가 볼 생각은 안 들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증명서라고나 할까, 택시 뒷좌석에 앉으면 바로 보이도록 조수석 뒤쪽으로 걸려있었다.

타이완의 택시기사 자격증은 요렇게 생겼구나, 해서 한방.

야자수가 미끈하게 자라난 바깥 풍경. 여전히 뱃속에선 망고가 얼음물에 담겨 출렁이고 있어서 마냥 좋던 오후.

그리고 슬쩍 가이드북에서 봤던 듯한, 으리으리해 보이는 처마와 붉은 기둥이 인상적이었던 호텔이 스쳐갔다.

그리고 어딘가쯤에서 발견한 사당. 은근 이런 사당이 도처에서 눈에 띄는 게, 부와 행복을 위해 유연하게 어디라도

기대고 빌 수 있는 중국인, 대만인의 실용성이랄까 유연성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대학가가 밀집했던 동네에서 문득 마주쳤던 고풍스런 성당, 꽤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건물이었는데, 하늘로

솟은 첨탑에 가까울수록 대리석의 빛깔이 뽀얗게 살아있는 반면 아랫도리쪽은 꼬질꼬질 때가 낀 것 같았다.

성당 내부의 분위기는 늘 그렇듯 기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부조에 집중된 조명이나, 공간축과 시간축을 순간

헝클어뜨리려는 의도가 다분하게 배치된 조형들이 빚어내는 효과들이란 건,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왠지 재밌다.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다는, 1794년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스티유 감옥에서의 대량 탈주가 있었다는

바로 그 곳이다. 바스티유 광장. 뭔가 당시의 분위기를 어림해볼 흔적이 당연히, 프랑스니까,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의외로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옆에 있던 건 바스티유 오페라관. 한때 정명훈이 지휘자로 활동하던 곳이라던가, 정치인들과의 친분이 돈독하다는

그는 작년이었던가, 여기까지 그를 만나러 와서 순식간에 정리해고당한 서울시향단원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던

학생들에 막말을 했다고 한다. 니들 좌빨이지, 뭐 그런 식이었다던가. 그 기사를 썼던 분은 나름 정명훈을

위대한 음악가로서 그에 걸맞는 감성과 도덕을 가졌으리라는 기대치가 있었나보던데, 사실 그런 거 없다.


지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나 고고하게 천상에서 독야청청하는 예술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을 텐데.

작게는 정부의 온갖 되도않는 공익광고에서 이뿌고 멋진 목소리와 이미지를 팔고 있는 사람들, 크게는 음악과

예술의 천분을 팔아 자리를 차지하고 완장질하는 온갖 또라이들. 정도의 차이지만, 다들 '부역'중이다.

오페라홀에서는 공연도 없었고, 그저 거리를 배회하다 보니 바닥이 냉큼 눈에 띄는 거다. 자전거 통행길이

참 꼼꼼하게도 그려져있다. 파리는 서울과 달리 구릉이 심하지도 않고, 사이즈도 한결 작으니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기에 참 좋을 거 같다. 그래서 아마 파리의 연인들에서 김정은이 그렇게도 자전거를 즐겼는지도.

반대편에 서 있던 쇼핑센터. 여긴 아무래도 주거지역이 가까운 탓인지 '오리지널' 프랑스인들 말고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흑인들과 유색인종들도 많이 보였다. 퇴근시간이었던가, 직장인들도 많이 보이고 뭔가 입구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미국식 패스트푸드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무관심을 보이는 프랑스인들이라고 하던데, 정말 KFC니 맥도널드니

세계의 엔간한 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도시였다. 그런데 여기서

딱 발견한 KFC. 그리고 그 옆에는 다소 생경한 색감의 맥도널드까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버스 안의 쾌적한 공간에 앉아 바라본 파리의 시내 풍경.




제주도에 갈 때마다 드라이브 코스로 잊지 않는 5.16도로. 길 양쪽으로 길고 잘생긴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이야~ 여기 진짜 좋다, 란 탄성이 한 세네번 터지고 난 즈음이면 어김없이 길 한켠에 차를 대놓고 나와서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길도 적당히 꼬불꼬불거려서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온통 양치식물이나 덩굴이 휘감긴 반듯한 줄기들을 보자면

어딘가 원시림의 냄새도 풍기고.

근데 왜, 이 멋진 도로의 이름이 5.16인 걸까. 이름의 유래도 모르겠고, 그런 무성의한 숫자이름 따위보다 좀더

이뿌게 이름을 짓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예전에 '블랙홀'이란 헤비메탈그룹이 이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815, 419, 516, 1212, 518, 629, 그리고 성수대교~" 운운하며 나가는 노래였는데, 5.16이란 숫자 혹은 날짜가

갖는 애초 의미가 무엇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516도로에서 박정희의 5.16 쿠데타(누군가에겐 혁명)를 생각하지

않을까. 이 도로를 박정희 쿠데타 기념으로 착공한 건 아닐 텐데. 설마 그런건가..ㅡㅡ


차제에 이름 공모라도 해보는 게 어떨지. 이 아름다운 길에 걸맞는 좀더 이쁜 이름이 있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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