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만리타향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곳, 그리고 애초 계획에도 없던 곳, 이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적지않이 위로가 되었다. 요 깜찍한 사이즈의 자물쇠들이 내가 속한 따스한 공간을 무채색의 흐릿한 파리 시내의  낯섦과 어두움에서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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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으로 향하는 지하철 출구.
적당한 지하철 출구를 찾아 한걸음씩 위로 올라설 때마다, 어떤 풍광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두근거리며 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휴가땐 다른 사람을 빠른걸음으로 앞지르지 말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다지 잘 지켜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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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파리시청, 흐릿흐릿하니 비가 흩뿌리다 바람이 날리는 날씨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햇볕 한줌을 위해 수고로이 몸을 옮기는 나는야 빠리지앵. 근데 갈색 낙엽 흩뿌려지는 가을 날씨에 흠씬 두들겨져서는 가을을 타다가 돌아온 한국의 날씨란, 왜 이다지도 더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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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청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입상들. LEBERTE, EGALITE, FRATERNITE..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어느 공공기관이나 건물에서고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선명한 국가 정신과 그러한 탄탄한 지반 위에 서 있는 프랑스 사회.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는 건 그 정도의 역량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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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몇 대의 패키지 관광객들이 살포시 찍고 가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이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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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좀더 '하늘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잔뜩 흐리고 뿌연 빛만 비산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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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이 사진은 한국의 서울시청. 뭐..일제의 잔재 청산,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다 떠나서, 파리시청과 비교했을 때 무지 담백하달까, 밋밋하달까. 어쩌면 고층아파트나 특징없는 현대적인 빌딩만 가득한 서울의 현재 이미지는 이미 시청건물이 지어지던 시기부터 예정되어있었는지 모른다.

김포공항에서 인천으로 리무진버스타고 나오면서, 그리고 인천공항 내에서까지 날 열받게 하는 일들이 계속 눈에 거슬렸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인데 MB 따위야 머릿속에서 며칠간만이라도 지운 채 떠나고 싶었지만, 애초 '시사인'을 비행기 안에까지 끌어들인 건 나 자신이기도 했다. 포크레인이 얄밉게 굴러다니던 헐벗은 붉은흙빛 굴포천 방수막 2차 공사..가 실은 대운하 사업의 한 부분인 경인운하를 대비하는 공사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고, 그런 황량한 풍경이 김포에서 인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는 노조분들께서 인천공항 민영화 반대 서명을 받고 있었다. 하다 못해 면세점서 신발 한켤레를 사면서도 완벽하게 실패한 채 일관성과 신뢰성을 상실하고 만 환율정책 나부랭이가 부아를 돋구었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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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풀 겸, 다시 시청 앞 동상과 함께 한 파리 시청건물. 여행 첫날 첫방문지. 사실은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컨셉을 따라, 퐁피두센터까지 가는 길에 살짝 지나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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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겋게 물든 하늘이 너무 이뻐서 한 컷. 여태 자동모드로만 놓고 찍던 카메라였어서, 잠자던 수동기능을 일깨워 카메라를 제대로 활용해 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다.

내가 아는 한, 열한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중의 하나는 서울에서 파리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것.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베일리스도 마시고, 책을 보고, 밥을 먹고, 잡지도 보고, 자다가, 와인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꼬냑도 마시고, 옆사람과 수다도 떨고, 자고. 그러고 나니 러시아 하늘을 날고 시베리아의 툰드라 동토를 지나 지구의 삼분지일을 돌아버렸다.

참, KLM이나 에어프랑스는 중간에 컵라면을 간식으로 준다. 대한항공같으면 비즈니스석에만 제공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늘에서 먹는 컵라면은 살짝 불었음에도 참 맛있었다. 먹고 난 뒤 기내에 꽉 차버린 라면 냄새조차 구수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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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와인 달랬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가차없는 손길로 뚜껑을 돌려버린 병에 투명한 컵을 얹어 건네는 스튜어디스. 그런데 받고 보니 화이트 와인인 게다. 비행기값을 생각하며 기내에 실린 마지막 알콜 한방울까지 빨아먹겠다 다짐했던 나인지라 바로 항의. "제가 시킨 건 레드 와인인데요."

잠시 당황했던 그녀는, 그렇지만 이내 예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레드와인을 잡더니 뚜껑을 돌려버리고는 다시 건네주었다. 덕분에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푸짐하게 얹어놓고 홀짝대는 호사를 누렸다. 넉넉히 달랬더니 정말 넉넉히 준 스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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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경유했던 암스텔담 공항 내에는, 각 구역마다 특징적인 컨셉으로 선명하게 개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자그마한 성처럼, 혹은 노란색 반들거리는 딱정벌레처럼 꾸며진 까페들. 그런 까페들을 내려보고 있는 특이한 네온사인 하나. 수다스럽게 하이룽하이룽, 하하, 아!라고 온통 빤짝대며 말을 걸어대는, 엉켜버린 실뭉치같은 네온사인.

역시 네덜란드의 출입문 암스텔담 공항. 공항 내 면세점에는 온통 튤립 생화, 튤립모양 장식품들, 전통 나막신들과 치즈, 초콜렛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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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1시간여의 비행끝에 파리를 내려다 보다.
사실 비행기에 열몇시간씩 꾸겨져 타고 있는 건 적잖이 비인간적인 일이다. 통로쪽에 앉지 않은 이상 화장실 가는 것도, 스튜어디스를 부르는 것도, 하다못해 몸을 한번 뒤트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저 일직선으로 곧게 나아가는 비행기의 거대한 동체 안에서는 날고 있다는 실감 따위는 공기만큼 희박하다. 단지 가끔 돌부리에라도 걸린듯 비행기가 쿨럭이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묻어나는 공포감에서, 지금 여기가 지상 수천미터위 하늘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뿐.

특히나 화장실서 일보고 있을 때 비행기가 휘청대면 스릴 짱이더라. 어쨌든 두다리로 단단히 버티고 서있으니 왠지 비행기가 추락해도 이대로 땅위에 두다리로 내려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고.

그러고 보면 30일 오후 1시 비행기였는데 파리 현지시각은 30일 오후 10시어간이었다. 왠지 하루를 꽁짜로 벌은 것 같은 기분은 귀국할 때 슬몃 사그라들어 버리겠지만, 그래도 당장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된듯한 느낌이 산뜻하다. 근 일주일 동안의 기간동안 저 거리들을 내 두다리로 가위질하듯 걸어다니겠구나 생각하니 잔뜩 눌린채 떡진 머리, 딱딱하게 굳어진 근육세포들 따위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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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나오겠다고 한 친구가 버티고 있을 출구를 향해서, 한손에 카메라를 쥐고선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작년 가을쯤이었던가, 그가 잠시 서울에 왔을 때 밥한끼 먹고선 처음 만나는 순간을 찍어두고 싶었다. 그러나 출구에서 날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가장 먼저 짐을 찾아 일등으로 나왔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속속 일행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십분, 이십분, 삼십분..2001년 뉴욕 JFK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아 하루 공항서 노숙했던 기억이 불길하게 떠올랐지만. 40분, 친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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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전철 너머 보이는 황량한 역사. 그리고 뭐라씨부리노, 낙서가득한 유리창. RER B선을 타고 친구녀석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친 최초의 이미지.

나중에 알고 보니, 샤를 드 골 공항과 파리를 잇는 이 전철은 일종의 교외선, 파리 중심부부터 1, 2, 3..5 존으로 구분되는 요금체계에서 가장 먼 5존으로 설정된, 파리 외곽을 잇는 전철이다. 인천공항이랑 서울쯤의 관계랄까. 그러니 8.5유로였던가..그 비싼 요금도 대강대강 수긍해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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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골 공항(#2)에서 RER B선을 타고 15구에 있는 친구녀석의 집으로 향하는 길. 파리 중심가부터 시계방향으로 뺑글대며 달팽이 모양으로 감겨나가는 '구'의 구획상, 15구는 파리 남쪽 끄트머리다.
내 하루 일정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12번 전철 Convention역(이라 쓰고 꽁방숑, 이라 읽는다)까지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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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8월 30일

- 13:35 인천 OUT
- 17:55 암스텔담 IN
- 20:50 암스텔담 OUT
- 22:05 파리 IN

- 숙소 도착, 휴식

ㅇ 8월 31일 (라데팡스-포름 데알 ; 서-동 중심부 횡단)

- 라데팡스
- 개선문
- 샹젤리제 거리
- 콩코드 광장
- 튈를리 정원
- 카루젤 개선문
- 루브르 궁전
- 시청
- 포름 데 알

ㅇ 9월 1일 (시테섬-스트라빈스키 광장 ; 파리 중심부-동북부)

- 시테섬
- 노틀담 성당
- 콩시에르주리
- 생트 사펠
- 퐁뇌프
- 퐁피두센터
- 스트라빈스키광장

ㅇ 9월 2일 (에펠탑 - 오랑주르 미술관 ; 파리 서남부-중심부)

- 에펠탑
- 샤요 궁전
- 앵발리드
- 오르세미술관
- 생제르망거리
- 오랑주르 미술관

ㅇ 9월 3일 (마들렌 교회 - 오페라 극장 ; 파리 중심부-북부)

- 마들렌 교회
- 몽마르뜨 언덕
- 사크레쾨르 성당
- 오페라 극장 (공연 감상)

ㅇ 9월 4일 (루브르 미술관 - 몽파르나스 ; 파리 중심부-남부)

- 루브르 미술관
- 소르본 대학(제4대학)
- 팡테온
- 룩상브르 공원
- 생쉴피스 교회
- 몽파르나스

ㅇ 9월 5일 (베르사유 등)

- 베르사유
- 생뚜앙 벼룩시장
- 유람선

ㅇ 9월 6일

- 16:25 파리 OUT
- 17:40 암스텔담 IN
- 18:40 암스텔담 OUT
- (+1일) 11:55 인천 IN

* 몇 가지 원칙들

 -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 여유있게, 느긋하게.
 - 원칙 따위 없는 게 여행, 스케줄에 구속받지 않기.

* 더 넣고 싶은 일정 혹은 장소

 - 페르 라세르 묘지 혹은 다른 공동묘지
 - 방돔광장
 - 불로뉴 숲 혹은 뱅센 숲
 - 샤르트르/퐁텐블로/생 드니 등 파리 교외 지역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후문밖에는 자그마한 유리 피라밋이 있다. 이 유리 피라밋은 코엑스몰의 중심부 푸드코트의

채광창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도심공항터미널-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현대백화점-트레이드타워-코엑스 건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휴식공간의 볼거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갛게 하늘과 구름이 비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예술작품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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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걸 본 누구라도 다음순간 떠올리게 되는 건, 루브르 박물관의 유명한 유리 피라밋일 게다. 파리땅을

밟아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불문하고 영화속에서든, 티비 속에서든, 하다못해 다른 블로그 속에서든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어버린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밋.

규모면에서 따져도 루브르의 그것이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솔직히 코엑스몰의 유리 피라밋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은 귀여운 소품에 불과한 거다. 그리고 구조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조명시설 같은 백업 면에서

루브르의 유리 피라밋은 그야말로 서울의 남대문 같은-어쩌면 그 이상의-랜드 마크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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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이 역시도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따서 워싱턴 모뉴먼트가 만들어졌듯,

이집트의 피라밋을 따서 프랑스의 유리 피라밋이 만들어진 거다. 2004년 이집트에 갔을 때..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에 들어가서 좁은 통로를 기어올라가 맞았던 그 사각형의 반듯한 무덤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한가운데 있던 크다란 석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특혜를 얻은 것도 정말 색다른 체험이었고. 수십만개의

돌덩이로 짜낸 속이 꽉 차있으면서 정교한 터널과 네모반듯한 방이 있는 그 기묘함. 그 한가운데에 놓인 석실에

누워 잠들만한 사람은, 어떠한 세계를 머리속에 품고 있었을까. 피라미드를 '등산'하는 것도 꽤나 인기있는

익스트림스포츠였다고 해서 나도 꼭 해볼라 그랬는데, 더이상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낙타타고 있는 경찰이

50미터마다 배치되어 있어서...누군가 떨어져죽은 이후로 그랬다더군. 난 안 죽고 올라갈 수 있는데.ㅋㅋ"

내게 피라미드 내 석관에 눕도록 종용하곤 박시쉬를 요구했던 안내인 아저씨에겐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물경 오천년전쯤 지어졌단 그 피라미드, 내 생각엔 스핑크스는 덤이다. 첨에는 맨들맨들 크리스탈같이 이뻤던

연분홍빛 '건축물'이었던 피라미드였다지만, 이젠 그 맨 모습이 거칠거칠 보이면서..뭐랄까, 오천년쯤 지나면

인공의 것도 어떤 경지에 이르는 거 같다. 자연..이랄 경지.ㅋ 피라밋이 눈에 잔뜩 찼다 싶을 때까지 보면서,

지치도록 걸어돌아다녔지만 암만봐도 이건 진짜다.

이래서, 피라밋을 보기전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했던 게다.


어쨌든, 파리 여행을 앞두고 여행준비에 여러모로 들떠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앞뒤 토일껴서 9일동안 여름휴가다.

행선지는 파리. 사실 서유럽을 포함한 '제1세계' 국가들을 가보는 건 좀더 나이가 든 이후로 미뤄두고, 당분간은

네팔, 캄보디아나 탄자니아..이런 곳에서 거지처럼 여행다니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유학중인 친구 신세 좀 지고 다녀오기로 했다.


막상 파리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니, 부럽다는 반응들이다. 내가 히말라야나 킬리만자로 트래킹하러 네팔이나

탄자니아 갈까 한다고 했을 때와는 영 딴판인 반응, 왠지 '파리'라는 명칭과 장소가 갖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긴

한가 본데..나도 그런 걸 좀 갖고 가야 할 거 같아서, 이런저런 이미지와 스토리를 미리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게 된 게 "파리의 연인".

총 20부작에 파리를 무대로 한 건 고작 3화 중간까지. 그마저도 세느강변을 거닐던 씬은 한강에서 찍은 거였다는

누군가의 제보. 사실은 군제대하고 바로 터키,이집트로 떠나느라 이 드라마를 끝까지 못 봤던 게 못내 아쉬웠던

거 뿐이었던 거다.


핏줄의 비밀, 기억상실증, 왕자와 신데렐라, 착해빠진 주인공, 삼각관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경우엔 기주

삼촌-형에 대한 수혁의 박탈감이 되겠지만), 재벌 혹은 대기업 총수일가...하나씩 깨서 보면 그렇게도 통속적이고

뻔한 이야기들인데, 재미있었다.

뻔한 시작과 끝에 뻔한 갈등들이지만, 대사들이, 울음이, 웃음이 너무 이뻤달까나.


마지막 회에서 불쑥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버리는' 시나리오작가 김정은(태영이가 아니라)과 뭐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잘사는 박신양(기주가 아니라)과의 조우 in Seoul. 그녀의 시나리오처럼 가정부도 겸하고 있는

김정은은..모종의 아우라로 치장된 '파리'도 아닌데, 그리고 시나리오 속의 '태영이'도 아닌데, 이야기 속 정제된

대사들을 현실에서 풀어놓으며 주고받는다. 척박하고 치사한 서울에서, 쌔끈하게 빠진 기승전결로 향해 달리기도

힘든 리얼 삶속에서.


동화속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랄까, 아님 그런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라는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물음표랄까. 더러 황당하고 어이없었다고 했던 마지막이었지만,

내겐 그랬다.

그래, 지금까지 니가 본 건 드라마야. 궁상맞고 청승스럽지만 스포트라이트받는 주인공이 결국엔 해피해피해지는

드라마. 그치만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구, 니가 주인공이라고 믿기 어려운 팍팍한 삶에

해피엔딩을 믿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사랑이란 걸 한번 믿어봐, 라는 식의 마지막.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지만, 2004년 여름까지 그런 식의 한걸음을 내딛었던 한국드라마는 드물었던 듯 하다.


*
수영할 줄 알아요? 난 수영 못하거든요.
거짓말했어요. 나 수영잘해요.
근데 그쪽도 거짓말 한 것 같아서요.
내가 옆에 있는게 싫다 그랬죠? 그게 거짓말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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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안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니스에 갔던 건 돈때문이 아니었으니깐. 내 마음이 원한 거라구요.
그런 내마음값으로 도대체 얼마를 준다는 거에요?
(자존심이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아.)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
우리 애기 놀랜 거 안보여요?
우리 애기 안놀랬니?
오빠가 알아서 할께.

애기야, 가자~

*
자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당연히 상대방을 좋아해주는 거잖아.
그런데 만약에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아주 작은 희망도 주지 않아야 하는 거래.
왜냐면 그 작은 희망도 상대방에게는 큰 고문이 될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희망고문이래.


내가 강태영한테 배운게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법.
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법.
근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사랑하는 법 밖에 모르겠다.
만약에 나중에 너를 다시 만나도 사랑하는 법만 배울꺼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강태영하고 사랑하는 법.


이제부터 당신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이 생길꺼예요.
그 안에 있는 난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내 추억 안에 있는 당신도 항상 웃고 있을테니까요.


이것보세요 한기주씨.
미안할때는요 그냥 미안하다고 하구요.
고마울때는요 그냥 고맙다고 하는거에요.
그런말 서툴다고 억지로 뻐팅기지 말구요.
고치세요. 그럼. 자존심세우면서 사과하는 방법은 없어요.


그거 알아요?
저기, 여자들은요.. 그런 상상 가끔 하거든요..
화려한 사람들 틈에 나 혼자만 시든 꽃처럼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서 내 이름 불러주고,
내 어깨 감싸안아주고, 흩어진 머리카락 가만히 쓸어주는 상상...
거기다 대문앞까지 바래다주면 그건 너무 완벽하잖아요.
.. 갈께요.


니 눈에 난 안보이니? 나 안보여?
난 어땠을 것 같은데?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앞에서 우는데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다른 남자에게 부탁해야 하는 내 기분은 어땠을것 같은데?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몰라?
이안에 너있다.
니 맘속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내 맘속에 너 있어.

*
다행이죠?
(뭐가? 다시 못보게 된게?)
나쁘게 헤어지지 않아서요..
정말 고마웠어요. 파리의 일까지 포함해서 내가 평생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해줬어요. 좋았어요, 나.

*
나 죽어도?
너 나 죽어도 이럴 거야?!
이까짓 일로 죽을 사람이었으면 헤어지기 더더욱 잘했네요.
그리고 헤어진 뒤에 죽고사는 것 나 관심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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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이 밥먹고 바래다 주고?
원하지 않아도 도와주려 그러고?
큰 상처 안주려고 작은 상처 주려고 애쓰면 그게 연앤가?
그러면 하는 거 같고.


잭 니콜라우스가 얘기했던가?
내 기술은 의심해도 내 클럽은 의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자기 자신외에 어떤 것도 비난하면 안되잖아. 비겁하잖아.
공을 치는건 클럽이지만 그 클럽을 휘두르는 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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