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작년과 마찬가지로 광주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인지라 첨단쌍암공원, 빛고을 시민문화관, 금남로공원, 그리고 구도청 바로 옆의 쿤스트할레에서

삼일동안의 일정이 꽉 차 있는 거다. 이번 포스팅은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플레이스로 쿤스트할레, 혹은

아시아문화마루라 불리는 장소에서 벌어진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현장 스케치.

 




 

폐컨테이너 수백개를 활용해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마루, 월드뮤직페스티벌 첫날 저녁에는 이곳에서

세계 각지의 뮤지션들 사이의 네트워킹 파티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날, 아직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상황에서 먼저 구경가본 쿤스트할레 건물은 커다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성과 같은 느낌이다.

밤이 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확 바뀌어버린 분위기. 내부에는 맥주 등 간단한 음료를 파는 펍이 있고

공연을 보러 온 외국인들이 제법 많아져서 그런지 낮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공연장 2층에 올라 1층을

내려다보니 아직 공연 전이라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들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이날 저녁의 첫공연, 컨테이너 박스를 이어붙여 커다란 빅 컨테이너 박스처럼 만들어진

공연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적당히 무질서하게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무대를 향했다. 열맞춰 늘어서지

않고 되는 대로 편하게 놓인 좌석 배치가 맘에 들었다.

이번에 새로 앨범을 냈다는 가수, '야야'라는 한국가수의 첫무대였다. 다소 마른 체형의 그녀는 의외의

파워풀한 보이스로 분위기를 돋웠고, 음악에 한껏 취한 채 가볍게 폴짝폴짝 뛰며 노래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관객들을 무대 앞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는 무대 앞까지 밀려나가 노래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쿤스트할레의

커다란 컨테이너 공간이 삐걱거리며 음악에 맞추어 출렁이기 시작하던 순간, 어디선가 들고온 도라에몽

얼굴모양의 커다란 가방이 가면처럼 얼굴 앞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도 없진 않았다.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라거나, 2층 오른켠의

난간 가까이에 선 채 두주먹 불끈 쥐고 아래 무대를 응시하고 있는 교통경찰의 인형. 저 초점없고 생기없는

눈동자가 제복을 입은 채 뜨거운 열기를 풀풀 내뿜는 무대를 내려보고 있다는 이질적인 실감 그 자체가

왠지 무대를 즐기는 사람들의 흥분을 더욱 고조시켰던 거 같다.


그리고, 자칭 '지구음악'을 한다는 다국적 밴드 수리수리 마하수리. 그들의 인상적인 노래와 연주는 모두를

거의 무아지경 상태로 몰아놓고 있었다. 국적 불명의 다양한 악기와 창법, 전혀 생소한 멜로디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그들이야말로 월드뮤직페스티벌에 딱 맞는 라인업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곳 쿤스트할레, 아시아문화마루는 꼭 월드뮤직페스티벌이 아니어도 나름 광주의 문화예술을 위한

요람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9월, 10월, 공연 일정이 꽉 차 있었고, 주류와 비주류를

굳이 가를 것도 없이 다종다기한 스타일의 공연을 위해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긴 애초 컨테이너를

활용해 이런 공간을 만든 것부터 꽤나 참신하고도 도전적인 마인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그런 발랄하고 열려있는 마음가짐이 광주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이끌 주된 동력 아닐까.

밤이 깊어가는데 오히려 관객들은 숫자상으로도, 그들이 내뿜는 열기로도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디제이 시코(DJ Cyco), 전혀 디제잉에 문외한인 내 막귀에도 그의 믹싱은 뭔가 달랐던 거 같다.

관객들도 그런 마음이었던 걸까. 의자를 버려둔 채 모조리 무대 앞까지 달려나가 음악에 몸을 맡겨버렸다.

그렇게 밤늦도록 이어지던 쿤스트할레의 실내 공연. 월드뮤직페스티벌을 빛내는 각국의 전통 음악을

소개하는 공연도 좋았고 아시아의 아이들이 하나된 모습으로 노래하는 모습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페스티벌을 진정 즐길 수 있으려면 이런 야밤의 뜨거운 공연이 빠질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쿤스트할레를 거점으로 벌어졌던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 중에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했던

'플리마켓' 이야기를 빼놓을 수도 없다. 인근의 광주 문화예술인들이 전부 모인 듯 직접 만든

예술작품이나 소품들을 갖고 나와 좌판을 벌인 모습도 보였고, 캐리커쳐로 쓱싹 얼굴을 그려주는

아티스트도 있었으며, 국적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옷가지들을 들고 나와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꼭 뭔가를 사서가 아니라, 그 옆에서 팔고 있던 케밥을 씹으며 두리번두리번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그 자체로 쏠쏠하게 재미지던 플리마켓.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나온 것도 아니다. 직접 그리고 오려붙여 만들었다는 카드를 두 장 사서 마켓 귀퉁이의

빈자리를 찾아 쭈그려 앉았다. 바닥에는 목이 기린만큼 긴 강아지가 꼬불꼬불 그려져 있었고, 그 얼굴 위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묘기를 펼쳐보이고 있었고. 뭐랄까, 쿤스트할레의 분방한 외양 만큼이나

분방한 분위기를 사방으로 퍼뜨려 이런 사람들을 모아들였구나 싶은 느낌.

 


낮에 보았던 아시아문화마루, 쿤스트할레의 텅빈 공연장은 바야흐로 월드뮤직페스티벌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아시아 문화의 교류, 화합의 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광주의 원대한 포부가 이곳에서부터

응축된 에너지로 아시아 국가들로 뻗어나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광주에서 즐기는 7일간의 아시아문화여행'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보여주듯, 올해 최초로 열린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녹아드는, 그런 기회를

여러 차례 예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력하고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역시 음악의 영역에서

아시아 각국의 전통 문화를 서로 소개하고, 알아가고, 끝내 어우러지던 그런 자리들이었다.

2011 광주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문화주간 중에서도 금토일, 가장 중요한 대목에 해당하는 시기를 책임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클라이막스를 광주 도심 한복판의 금남로공원, 아시아문화마루인 쿤스트할레, 그리고

빛고을 시민문화관과 첨단쌍암공원을 넘나들며 책임져야 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가장 먼저 만났던 공연은

아시아 각국의 대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각자의 고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선사했다.

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는 하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면 서로 생김새도 딱히 같다고 하기 뭐하고, 표정이나

악기의 음색, 연주법 따위도 다 다르지 싶으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했다. 대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뭘까.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걸까.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수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쪼개어 각자의 민족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아시아'로 뭉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신명나게 고조되는 음악의 힘을 빌어 희미한 힌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버린 순간 그 다양한 국적,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베트남 등등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의

덩어리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모양이 많이 달라지고 제각기의 민족성이나 특성에 따라 변주되는

악기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원형은 지켜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뜨겁고 무더운 날씨에도 관객들은 좌석을 꽉 채우고 더러는 뒤에서 서서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페스티벌의

분위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 점잖게 자리에 앉아 연주되는 음악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쿡 눌러쓰더니 카메라폰을 들고 무대 앞까지 돌입하셔서 사진을 찍기에 이르셨다.

아마도 카메라폰 쓰는 법을 가르쳐준 손자나 손녀에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아닐까.

다음 무대는 인도네시아였던가, 왠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남국에서 왔을 법한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이 차지했다. 그들의 몸에는 온통 타투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나풀거리는 천조각은 카메라를 들고 그 빈틈을 노리며 무대 주변을 맴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차림새나 타투들 만큼이나 노래 역시도 생경해서, 이건 혹시 자메이카나 아프리카 같은 멀고도

이국적인 곳에서 온 음악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아시아'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DNA가 이만큼 광범위하고도 풍요롭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인기 만점이었던 이들의 이 멋진 무대의상, 이랄까 혹은 전통의상이랄까.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달려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는 통에 그냥 스킵하기로 했다.

은근히 여성 관객이나 여성 진행도우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듯.

계속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는 계속 그랬다. 넋놓고 그들의 음악을 즐기다가도 어느순간, 어라 근데 이게

아시아음악이라고? 그리고 저 연주자가 아시아사람이라고? 그만큼 음악적인 색깔도, 연주자의 외모나

신체적 특징들도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에서 느껴지는 색감이나 미감 역시

뭔가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상식이나 선입견이 얼마나 좁고도 편협했는지 돌이켜보게

해줄만큼 충분히 자극적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무대 뒤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미 리허설이나 공연 중간중간의 조우를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힌 게 틀림없는 공연자들끼리 어느새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서 무대 뒤에서 서로 장난도

하고 웃고 떠들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이런 게 아마 우리가 바라는

'아시아 문화'의 정수 아닐까.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 친밀한 감정, 그리고 저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마침 한국과 몽골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는 올해, 몽골에서 온 연주자들의 공연도 있었다. 선명한 원색의

옷차림에 독특한 악기들이 이목을 특히 끌었었는데,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마치 짙초록색의 드넓은

몽골 초원 위를 내달리는 말위에 몸을 맡긴 듯한 그런 느낌. 초원위를 가지런히 갈퀴질하며 지나는 바람소리를

닮은 그네들의 악기도 그랬지만, 몽환적이고도 격정적인 구령소리같은 노랫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가만히 보니 현악기의 머리 부분에 조각된 건 다름아닌 말의 머리 모양. 정교하게 말갈기와 주둥이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연주와 노래가 마냥 신기했는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의 뒷모습.

 

 

그렇게 첨단쌍암공원에서의 오픈 스테이지 공연은 일단 막을 내렸다. 아시아 각국, 조금은 친숙한 나라도

있었고 조금은 생경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그네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씩은 더 반가워지고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의 다채로운 복장 만큼이나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만난 아시아

각국의 연주자들, 아마도 그들이 가장 크게 서로에게 자극받고 친숙해진 계기가 된 건 아닐까.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마지막 연주는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통해 그들이 서로 '아시아인'으로 느끼고

하나되는 화룡점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막다른 통로 끝 비상구 사인 속에 황망히 선 채 굳어버린 녀석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인지 강렬하게

하얗고 파란 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공연장 1층에서 뻗어올라온 조명들만큼이나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의

빨갛고 파란 의자들이 얕은 내를 건네우는 징검다리처럼 점점이 놓였더랬다.


왠지 정엽의 '니자리'란 노래가 생각나던. 텅빈 의자들, 누군가가 앉았던, 혹은 앉을 그 자리에는

사람의 온기따위 간데없고 누군가의 실루엣과 상념만이 스물스물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더이다.



니자리 (에코브릿지 Feat. 정엽 of 브라운아이드소울)


이제와 멍하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았어
내 눈에 눈물이 고여진것도
떠나서 한참이 지난뒤

나도 몰래 니가 준 옷을입으면
왜 그리 참 잘어울려
오래된 친구와 술을 마실때면 늘 내게
말투가 너 같데

몰랐었어 니가 얼마나 나 같은지
익숙해져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종일 니가 없었더니
하루를 다 채울수없나봐
니가 없는 내 하루에 가득찬 니자리

이제와서 문득 나 생각해보면 참 따뜻했었어
내가 준 선물이 제일 좋다며
그렇게 꼭 쥐고다녔지

술취한 밤이면 걱정된다며
언제나 넌 내게 왔지
아직도 내 곁에 니가 내 여자라면
내내 취하고 말텐데

몰랐었어 니가 얼마나 소중한지
익숙해져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하루종일 니가 없었더니
하루를 다 채울수없나봐
니가 없는 내 하루에 가득찬

내겐 없는 니자리 하루를 다 채울수없나봐
니가 없는 내 하루에 가득찬 니자리





광주 쿤스트할레, 여러 뮤지션들이 나오는 공연장에서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즐기다가 문득 앞에 앉은

관객들이 만든 담장의 높이가 어디선가 훅 땅으로 꺼져버린단 느낌을 받았다.

번쩍번쩍 빛나는 조명 사이로 가만히 보니까 플라스틱 의자 사이에 앉은 사람들과는 엉덩이 높이가 확연히

다른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근데 가만, 저 사람이 깔고 앉아있는 건 뭐지 싶어서 자연스레 시선이 멈췄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인형의 집, 아니면 그냥 인형의 집 외관만 하고 있는 바구니라거나 수납가방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발랄한 핑크빛 네 벽면이 시선을 확 끌었다. 공연과 공연 사이 잠시 쉬는 시간에

옆 테이블에 올려놔진 그 녀석을 요모조모 살펴보며 계속 한번 열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손끝이

근질근질했지만, 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맘을 끝내 참아내는데 성공.


근데 정말 저게 어디서 나서 저렇게 의자로 쓰이게 된 걸까. 꼬리를 무는 의문들.




"여기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군부독재의 총칼과 맞선 광주, 전남 애국시도민들이 자유와

헌정수호의 결의로 굳게 뭉쳐 민주의 대**를 걸고 도청 탈환의 처절한 피의 항쟁을 전개한 곳이다.

더러는 찔리고 더러는 *고 무자비한 신군부의 탱크와 총칼에 희생된 채 수많은 사상자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는 시산시해의 격전장을 이루었다. **하여 도청앞 광장 그날의 절규가 메아리치는 민주**의

투쟁현장으로서 마침내 역사를 넘어 죽음을 넘어 새로이 부활하는 한국민주주의의 제1번지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되었다."

대리석 위에 새겨진 글자조차 훼손되고 마모되어서 보이지도 않는 추모탑, 그조차도 전남 구도청을

칭칭 휘감은 장벽 안 쪽에 격리된 채 잡풀만 무성해 있었다. 5.18 민주광장의 의의가 채 제대로

펼쳐지지도 않은 채 여전히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벌써 저렇게 뒷방 어딘가로

밀려난 채 녹슬고 잊혀지고 지워지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80년 광주, 대학교 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으로 본격적으로 접했던 그때의 그 사건,

그 처절했던 마지막 순간에 시민사수대가 지키던 옛 전남도청 청사. 최근 그 청사 건물이 너무 낡아

붕괴의 위험까지 있다고 하여 철거하자는 측과 보존해야 한다는 측의 의견이 맞서고 실력행사까지

있었다던가. 결국 보수,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니 다행이지만 아직 문어대가리와 물태우가

살아있는 와중에 '인권', '민주주의'같은 가치에서 '문화'로 넘어가버리는 건 좀 걱정스럽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10점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엮음, 황석영 기록/풀빛

 


전남도청에서 쭉 이어지는 금남로, 5월 21일의 계엄군 발포로 54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부상한 걸로

추정되는 피비린내 가득한 공간. 그렇게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시민 봉기가 무장항쟁으로

전환되어 광주는 22일부터 27일까지 짧지만 의미심장한 꼬뮌의 역사적 경험을 갖게 되었다. 27일 새벽,

최후의 시민군 14명이 희생되면서 도청을 빼앗기며 끝나버린 광주민주화항쟁. 그렇지만, 아무리 지금

보수공사 중이라곤 하지만, 7,8년전에 왔을 때도 그랬듯 참 남아있는 것들이 없다.

그래도 그때 왔을 때는 도청의 외벽에서 총탄의 흔적도 발견하고, 나름 비장한 의미를 가득 품고 있는

일종의 민주화 성지의 느낌이 가득했는데. 저 초현대적인 가림막이 치워지고 나서 다시 나타난 모습도

그런 아우라가 남아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컨테이너박스를 재활용해 만든 쿤스트할레 건물에

올라 바라본 도청, 근데 이거 도청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가리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 여기가 도청 건물의 정문이었다. 가림막 안쪽으로, 그 바깥의 공사현장을 구획한 높다란 장벽 너머로

보이는 하얀 색깔의 정문. 여기 어디선가 총탄 자국을 찾았던 거 같은데 아무리 망원렌즈로 땡겨서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 어디였더라...못 찾겠다. 도청 위에 내걸린 태극기만 힘없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래, 80년만

해도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에 나섰었다.

"전남도청 본관. 1930년 건립. 이 건물은 관공서 건물의 설계와 시공을 일본인들이 독차지하던 시기에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와 시공 과정에 참여하여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건립

이후 70년 이상 전라남도의 행정적 중심이 된 곳이며, 1980년에는 5.18민주화운동의 산 현장으로서

전남 지역 근현대사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정면에 수직으로 나란히 3개의 창을 설치하고 창문

사이에는 코린트 양식을 단순화한 주두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당시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의장이다." 1930년에 건축되었는지는 몰랐다. 굉장히 오래된 근대 건축물인 셈이다. 


붉은 연꽃이 커다랗게 피어나 있는 도청 앞 분수대, 천천히 위아래로 일렁이는 꽃잎의 빛깔이 너무

선연하다. 뒤로 보이는 도청 건물이 언제 가림막을 벗고 새롭게 단장된 형태를 내보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와서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민주화의 성지로, 80년 광주의 잊지말아야 할 상흔을 그대로 후세에

전달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교육할 산 현장으로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공사현장 곳곳에 섬처럼 격리되어 있는 조형물들, 광주의 사건과 그 정신을 기리고 있을

추모탑이니 조각이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다시 사람들 앞에 풀어놓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다.






'아시아'로 분류되는 지역에는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존재하지만, 그 다채로움 속에서도 종종 의외의

유사성이나 공유점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사진 속 삿갓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인데, 한국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은 베트남에선 볏짚으로 만든 '능라'라는 이름의 전통

모자라고 한다. 한중일 삼국은 물론 동남아 전역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 삿갓, 혹은 능라의 디자인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점이 바로 아시아 문화의 매력 아닐까.


위의 능라를 쓰고 공연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전라도 광주 일대에서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동안

벌어진 '아시아문화주간' 행사 때의 모습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음악, 미술, 영상, 춤, 문화 등 5대 장르에서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교류하고 나아가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비전을 천명했었다. 가장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당장 한국에 늘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거주외국인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씻고 화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당장 저렇게 베트남과

한국의 문화적 유전자를 한몸에 지닌 아이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대니까 말이다.



ㅇ 다문화 정치로 하나되는 아시아! (아시아 문화이해강좌)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는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아시아창작공간 네트워크, 아시아문화이해 공개강좌,

아시아문화포럼, 아시아 청소년문화축전 그리고 아시아어린이합창단 등 여섯꼭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전북대에서 있었던 아시아 문화이해공개강좌, 왜 아시아문화를 주목하는지, 지금 한국과 아시아는 얼마나

가까워져버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강의였다. 


한-몽 수교20주년이 된 2011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은 약 3만명, 2008년에 귀화한 '이라'씨는

한국 최초의 다문화 정치인으로 현재 경기도 의원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한국에 다문화 정치인이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2011년 현재 이미 130만명(인구의 2.2%)에 달하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있는 걸 감안하면

정치 무대에 나서는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한국의 국제결혼이 2004년 이래 매년 10%이상 증가추세를 보인다며, 특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비록 전국에 200여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수혜층은

고작 전체 다문화가정의 30% 내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앞선 '능라'를 쓰고 있는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융화되려면 정말 갈 길이 멀지 싶다.


사실 한국인의 '단일민족'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한국에 있는 700여개 성씨 중에 440여개는 외국에서

귀화해서 만들어진 성씨라고 하는데 당장 이라씨의 성도 성남이씨로 새로 만들어졌다니 귀화성씨는 점점

늘어날 게 뻔한 거다. 점차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정책과 시스템 차원에서의 지원과

더불어 다른 아시아국가에 대한 이해와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ㅇ 한국 다문화가정의 공연들 (@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아시아 문화주간 중 벌어지는 월드뮤직페스티벌에는 세계적인 아시아 문화예술가들도 많이 오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과 2세들이 꾸미는 공연들도 적잖이 준비되어 있었다. 8월의 끝물,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광주 쌍암공원에서 태국과 베트남의 민속춤을 추는 이주여성분들.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 양산을 든채 맨발로 무대에 올라선 태국 출신의 그녀들이다.

잠시 그녀들의 공연을 감상. 그렇게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지만 갖춰입은 무대의상도 확실한 데다가

미소의 나라 태국에서 오신 분들답게 계속 방긋방긋 웃음을 잃지 않는 게 매력포인트. 프로 댄서들처럼

손으로 맺는 수인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우아한 느낌은 아니지만 한국에 살고 계신 얼마 안 되는 분들로

이런 공연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감탄할 만 하다. 


뒤이어 베트남에서 온 분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베트남의 삿갓, '능라'를 들고서 전통 무용을 보여주는

그녀들의 몸짓 역시 아마추어의 느낌이 역력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무대에 오른 그녀들의 용기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한편 무대 아래로 내려온 태국 출신 공연자분들 옆으로 다가온

아이들이 보였다. 내 자리 옆에서 엄마의 공연을 박수치며 구경하던 꼬맹이들, 금세 엄마한테 달려가서

손잡고 말걸고, 당연한 말이지만 여느 한국의 가족 모습과 하나도 다를 거 없는 모습이다.

태국과 베트남의 민속춤 공연을 준비한 곳은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이 곳과 연계되어 각국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공연에 나갈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이미 라인업은 어느 정도 짜여있어서

올초 부처님오신날에도 공연을 했다는 사무국장님 말씀. 공연 시작 전 무대 뒤에서 계속 연습을 함께

하며 틀린 곳을 교정해주고 격려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서로 얼굴 마주하며 일상적으로 부대끼다 보면 한국 내의 다문화 가정들이 자연스레 기존

한국 가정들과 허물없이 지내게 되는 거 아닐까. 이러니저러니 차가운 책상머리에서 짜여지는 계획이나

아이디어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건 이렇게 서로 섞여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피부색이니 국적이니 언어가 다를 순 있지만 그 밑에 숨은 '사람'이 보이게 되는 건 이런 와중일 거다.

그렇다고 그런 아시아문화의 적극적인 교류나 화합이 각 나라와 각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가리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될 일이다. '아시아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있기 전 리허설 장면과 실제

공연의 모습. 아이들의 눈코입은 똑같은데,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연습할 때보다 각자의 전통을 드러내는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아래 모습이 더욱 각자의 개성도 살고 그림도 풍성하니 화려하다.

국내에 있는 다문화가정의 유소년 중에서 경쟁을 거쳐 선발된 50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다문화어린이

합창단이라더니 실력도 단연 뛰어나다. 아리랑이나 다른 영어 가사의 노래들을 부를 때 화음도 들을 만

했지만, 아이들의 표정이나 몸짓들이 잘 가다듬어진 게 꽤나 준비했겠다 싶다. 국내에 있는 다문화가정

인구의 60%가 유소년, 그러니까 그들의 2세라고 했었다. 이 아이들을 차별없이 고난없이 얼마나 잘

품어줄 수 있는지가 그야말로 한국의 '국격'을 재는 바로미터와 같을 거라 생각해 본다.



ㅇ 아시아청소년문화축전, '아시안비트'

그런 다문화에 대한 감각, 아시아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주축은 역시 우리들의 청소년.

전국의 청소년, 대학생들과 국내 유학생이나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등이 모여서 만들어낸 공연 '아시안비트'.

무슨무슨 스탄으로 끝나는 서남아시아에서부터 몽골초원을 거치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의 한국으로,

제각기의 피부색과 신체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아이들이 허물없이 웃고 깔깔거리며 공연을 준비하더니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가니 굉장히 진지해졌다.

아이들이 공연을 마치고 손에 손 맞잡고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성별의 차이도, 국적의

차이도, 나이 차이같은 것도 모두 넘어설 수 있는 단단한 인간애를 키워나갈 수 있기를. 수월에서 왔다는

방글라데시 출신 슈학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8년이나 일했다는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는데, 아시아문화를 아우르는 축제인 아시아문화축제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최소한 아이들끼리는 서로 오해나 편견이 많이 줄어서 더욱 화합하는 분위기가 될 거 같다고.



ㅇ 아시아문화정보원 준비관 &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홍보관


금남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전남구도청, 그 옆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정보원

준비관'은 이런 아시아문화를 고취하고 서로간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하드웨어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된 곳이라고 한다.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유산 중의 공통된 부분들을 발견하고 이를 아시아 전체의

문화자원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아카이브의 역할인 셈이다.

아시아청소년들이 아시아문화정보원에 대한 설명도 듣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와 배경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받고 있다. 한쪽에 이렇게 마련된 강의장이나 세미나실은 앞으로 이 곳을 허브로

삼아 벌어진 다양한 차원의 학술제나 문화행사를 염두에 둔 듯 한데, 이를 통해 한국과 아시아 각국이

모두 윈-윈하는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아시아 각국의 문화자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아카이브도 구축하여 검색이 가능하고, 전시관 내부에선

아시아를 묶는 키워드가 되는 문양들, 상징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가 하면 직접 베틀의 문양을

짜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가 어떻게 그 비전을 키워왔으며 얼마나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홍보관을 구경했다. 구도청 옆의 쿤스트할레, 컨테이너 수백개를 활용해 만들었다는

'아시아문화마루' 건물에는 아시아문화주간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광주는 이미 십여년전부터 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차근차근 인프라를

갖추고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넓혀가며 이렇게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를 열기에 이른 것이라고.

앞으로 2023년까지 내다보는 장기 비전에는 광주의 고유한 가치, 아시아평화예술도시의 꿈과 함께

아시아문화교류도시의 꿈이 더해지고 있었다.

홍보관 내부의 전시물들과 광주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진 네트워크 속에서 아시아 각국의 주요

도시들을 밝히고 있는 전구 불빛들. 2014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완공되어 아시아문화교류의

중심공간으로 활용될 거라 하니 올해처럼 광주 일대 여기저기에 산재된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불편은

없을 거 같다. 광주의 오늘, 아시아문화의 오늘보다 내일을 그리게 되고 기대하는 이유다.

아직 '아시아문화', 그리고 아시아문화를 교류하고 화합하는 공간으로서의 '광주'라는 곳은 전부

채워지지 않은 공간과 같아 보인다.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아시아문화를 운위하기 이전에 한국사회의

문화 자체도 아직 척박하고 아시아에 대한 이질감이나 심지어 적대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것을

짚어 보아야 할 거 같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몽골출신의 다문화정치인 1호 이라씨가 이야기했듯,

이미 한국의 제도나 사회분위기 자체가 많은 부분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일지, 내년의 '제2회 아시아문화주간' 행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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