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여대생 하나가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했댄다. 그리고 인터넷과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포털마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 파문' 어쩌구 하면서 아주 신났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 열폭중이시다. 루저라는 단어에 예민하거나, 아니면 '남자의 키'라는

남성들의 스트레스 요인과 자격지심을 건드렸기 때문이거나, 둘 다이거나.(혹은 언론의 부추김/오바질이거나.)


경과를 굳이 자세히 살필 필요야 있겠냐만은, 그녀가 애초 대본에 있던 내용이었다는 해명을 하고 이에 대해

방송작가 측에서 반박을 하면서 일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제2의 개똥녀파문으로 번질 것 같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난무하고, 프로그램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한 거라는 추측도 더해지고, 신나서 들들 볶아대는

여론이지만 늘 그렇듯 기껏해야 며칠 시끄럽고 말 일이다.


애초 이런 일에 계속 해명을 요구하고 뒤를 캐는 것 자체부터가 우스운 일이지 싶다. 키 작은 남자가 루저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 방송은 안 보고 그저 몇 개 언론이랍시고 뻥튀기에 자기복제만 해대는 기사들을 봤지만

그렇게 문제될 발언인지 잘 모르겠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단

게 사실이라면, 그냥 본인의 생각이다. 키작은 남자가 싫은가부지, 본인 키보다 큰 남자를 찾고 있나부지,

그렇게 넘기면 될 일 아닌가. (참 기자들 기사 쉽게 쓴다. 그것도 힘없는 사람 하나 십자포화로 때려 가며.)


뭐 말투가 좀 싸가지 없었는지도, 표정이나 뉘앙스가 영 띠꺼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방송을 직접 보고
 
인용된 문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대도 마찬가지다. 그냥 좀 뻔뻔하구나, 혹은 독특한 개념을

갖추고 계시구나, 이러고 말 일이지 뭘 그렇게 흥분을 할 일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미녀들의 수다'같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뱉어지는 대사들이 사려깊고 올곧기만을 바랬던가 말이다. 공익적이고 도덕적인 발언만 나오는

교육방송을 보고자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녀에게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물 것도 아닌 거고.


남자의 키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사항, 개인의 취향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본인의 기호와 취향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 물론 좀 덜 자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좀 다르고 불쾌하지만 그러려니 하지 뭐, 그렇게 넘어갈

만큼의 여유도 없는 건가.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당장 남성으로서 자신이 '루저'로 낙인찍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그리고 자신이 어필하려는 여성들-이 대번에 그런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도 아니잖나. 그녀의 마인드를 책임지고 고쳐줄 것도 아니고 당장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닌데, 왠 밴댕이 속알딱지같은 열폭인가.


물론 많은 여자들이 남자의 키에 예민한 게 사실이고 하나의 냉정하고 분통터지는 기준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녀는 단지 그러한 트렌드 내지 풍조에 편승해

발언한 것 뿐인 거다. 저변에 깔려있는 분위기와 여성들 일반의 '입맛'이 문제라면 문제인 거다. 말을 안 한다고

지적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이 경우에도 그녀가 이렇듯 십자포화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키에 민감한 건 오히려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딱히 남자가 자기보다
 
작아도 개의치 않는 것 같던데. 상대적으로.)


사실 언론에서 그려내듯 그렇게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은 못 봤다.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다니 어떤

의미로던 '차암~ 대단하다'는 반응, 혹은 방송에서 이특이 반응했던 것처럼 "나도 그쪽 관심없거든요"라는 식의

맞대응 정도를 봤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반인의 돌출 발언, 돌출 행동에 너무도 가혹하고 각박하게

'열폭'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늘 있어왔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이거 원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안주감 오징어처럼 짝짝 찢어발겨져 잘근잘근 씹혀진다. 힘있는 사람이어도 이렇게 집요하게 흠집내고 갈구고

꼬투리를 잡을까. 굉장히 가학적인 세상이고, 비겁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것 아닌 일을 떠들썩하게 키워내어 이득을 볼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봤다. 자극적인 기사로 조회수를

손쉽게 낚아내는 기자들, 누군가 씹을 거릴 만들어내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오지랖넓고 시간많은 한량들,

시대가 선사한 공허감과 분노를 풀길 없어 간편하고 무해한 씹을거리만 찾아대는 불만증환자들. 그들은 모두

하이에나같다. '발톱사이에까지 털이 나있는' 혐오스럽고 야비한 짐승이다. 자기보다 약하고 병든 동물만

사냥한다는 하이에나-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처럼 비겁하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수혜자들이 있을 거다. 80년대 3S-섹스, 스크린, 스포츠-정책이나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먹잇감-의 조합을 의미하는 티티테인먼트라는 조어가 발휘하는 힘으로 대중의 관심을

사회/정치적인 공적영역으로부터 유리시키려고 쉼없이 노력하는 권력자들. 개똥녀니 뭐니, 그런 자극적이지만

별반 공동체에 기여할 것이 없는 이슈들로 인터넷 자원과 진득하지 못한 대중의 관심을 소모시켜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권력자들. 무대 앞에서 일개 여대생이 다구리당하고 있을 때 키득대고 있을 장막 뒤의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이 불안하다.




회사에 봉사 동호회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던 차에,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뚝딱 만들고는 오늘 첫 봉사활동을 갔다.

서울 어디메쯤에 있는 한 아동 보육시설, 3세미만 영유아부터 초등학생들까지 한 60여명이 머물고 있는 자그마한 2층

건물이었다. 앞뒷 마당을 깔끔하게 쓸고, 마침 고장나 버린 세탁기를 대신해 세탁물을 헹구고 널고, 아가들 밥먹이고

대여섯살짜리 꼬맹이들이랑 놀아주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그냥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끊임없이 안아줘, 업어줘, 한번만,을

외치는 극성스러운 아이들 틈에서 동기 하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로 변신한 채 천지사방을 기어다니고 있었고, 나 역시

어느 순간 앞에 두 녀석을 안고 뒤에 한 녀석을 업고 말았다. 자기들 맘대로 해주지 않으면 미워! 하면서 연속 로우킥도

서슴치 않는 무서운 대여섯살 짜리 아이들, 서로 안기고 업히겠다고 아우성치다간 서로의 머리통을 그야말로 퍽, 소리

나도록 내려치는 서슬에 살짝 움찔해 버렸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3살미만 어린애들의 점심을 챙기면서 시설 근무자는 제대로 본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밥 다먹어가는데 넌 왜 이리 늦어, 봉사하는 사람들 왔다고 더 칭얼거리는 거야? 얼른 안 씹을래? 갓 24개월 지났다는

애가 미처 밥을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우악스럽게 숟가락으로 입술을 눌러대고, 책으로 머리를 탁탁 쳐가며 재우쳤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과장님 말로는 자기 애는 밥먹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했는데, 그 아이들은 이십분만에

뚝딱 해치워버렸다. 봉사자들 앞에서도 전혀 거리낌없는 그 말투와 태도와 손속이라니. 한쪽에선 갓난애가 죽어라

울어대고 있었는데, 자꾸 어르고 달래주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그냥 냅두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


2층의 대여섯살 아이들은 1층으로 내려오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마당에 나가려고 계단을 한걸음
 
내딛다가 방안 가득 아이들의 새된 비명소리가, 게다가 내 가슴팍과 등언저리에서도, 뽑아져 나왔다. 안 되요, 혼나요.
 
그런가 하면, 애들 손이 안닿는 한구석 높은 곳에 쌓여있는 블럭이니 장난감들은 먼지가 묵은 때로 변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장식용이구나, 싶을 정도의 먼지 두께하며, 건네준 블럭을 주저주저하며 받아드는 아이의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태도하며.


그 시설 근무자들을 도덕적으로 탓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건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게 맞을 거다.
애들은 많고, 근무자 수는 적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친부모에게조차도 쉽지 않은 이야기인 것을. 더구나 '봉사'를 한다는 마음에 고양되어 있는 '뜨내기' 봉사자와는
 
달리 근무자들은 그것이 비일상적인 봉사가 아니라 일종의 업무, 주어진 작업일 테다.

오히려 내가 착잡해졌던 건 다른 문제였다.


뾰족한 기술이나 실질적인 도움될 만한 게 없어 사실상 '몸빵'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닌 봉사였다. 그저 애들하고 잘

놀아주고, 조금이라도 웃게 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쩌면 시설 근무자들이나 아이들에게나 역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아이는 마냥 이쁘지만, 막상 같이 사는 '가족'(시설 근무자)의 입장에선
 
그게 또 아닐 거다.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그렇게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예스로 일관하러 온 봉사자들이란, 어쩌면 애들을 망치고 애들과 시설근무자들의 관계마저 악화시키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잠깐씩 손님처럼(손님으로) 왔다 가는 봉사자들의 선심쓴 관대함을 최대한 이용하려 들고, 근무자들은 관심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성격만 극성스러워지고 (사회적인 어법으로 말하건대) '버릇만 나빠지는' 아이들을 다루느라

진이 빠질 거다. 아이들과의 마주침은 흡사 전쟁과도 같아지고, 늘어나는 건 제재요 후퇴하는 건 '당위적인 도덕률'들일
 
거다. 아마도 그렇게 진행되어 오는 상황일 텐데 거기에다가 '애들은 사랑으로'라느니, '절대 때리면 안 된다'느니

배부른 이야기는 차마 못 하겠다.


그 와중에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사진찍고 찍힌다는 행위가, 뜬금없게도 얼마전 고양이까페에 갔을 때의 그것과 중첩되어

보였다. 다소의 어이없음과 불쾌감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동 보육시설에서의 (일회성) 몸빵

봉사활동과 고양이 까페에서의 고양이 사파리-고양이들과 놀아주는 것-의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두드러졌다. 몇가지만
 
떠오르는 대로 적어봐도 꽤나 많다.


아이들이 드글드글대는 공간, 고양이가 드글드글대는 공간.
 
적절하고 꾸준한 관심을 줄 수 있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 주인이 없는 고양이들. 

로우킥을 날리고 머리채를 잡아도 귀엽다고 마냥 관대해지는 자세, 고양이가 바지에 오줌을 싸도 마냥 귀엽다는 자세.

아이들(의 버릇, 생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홀가분한 입장, 고양이에 대한 책임은 질 필요없는 홀가분한 입장.

아마도 노인이나 장애인보다 아이들을 좋아할 취향, 아마도 개나 예컨대 쥐보다 고양이를 좋아할 취향의 문제.


뭐..시니컬하게 나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비교적 온건한 것들도 벌써 이만큼이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갈파한 바

서로를 책임지지 않는, 길들여지지 않은 관계란 것은 온실 속 백만송이 장미꽃과 나의 관계다. 일회적인, 혹은 비일상적인

'봉사'가 갖는 치명적인 허점이 아닐까 싶다. 책임질 필요없는 대상에 대한, 취향이 반영된 선심. 더구나 그

누군가의 새삼스런 선심으로 인해서 더욱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마저 생겨버린다면.


봉사란 뭘까.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걸까. 한번 다녀오고 고민만 늘었다.

어쩌면, 비일상적인 봉사는, 그야말로 비일상적인 부분에 그쳐야 할지도 모른다. 쓸고 닦고 빨고, 그런 부분. 부족한

사랑을 채워준다는 미명으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마냥 귀엽다며 다 받아주는 '봉사'란 건 길게 봐선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맘으로,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면.







고냥이님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취향분석법'에 따르면, 나는야 '일탈적 개인주의자'.

세번을 해봤으나 결과가 거푸 똑같이 나왔던 건...테스트 자체의 허술함 탓일까 아님 정말 내가 강편향의 성향을
 
갖고 있어서일까.

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http://www.idsolution.co.kr/



난 신도 믿고, 과학도 믿고, 그리고 일요일 저녁 약속이 있을 거란 것도 믿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칙 따윈 믿지 못하겠군.” - 길 그리썸, CSI 라스베가스

 

이곳은 격식과 통념에서 벗어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탈적인 비주류를 위한 곳입니다. 고답적인 창작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의 예술과 문화의 성역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규율과 질서를 숭상하는 엄숙주의자, 국민 정서와 사회 정화를 믿는 검열주의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당장 사라져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화 예술 애호가. 문화 예술에 대한 평론가 수준의 심미안과 감별력을 소유했을 가능성도 있음.

  • (문화 예술 애호가가 아닐 경우) 경험과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감각을 가졌음.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을 알아보는 타고난 감각
     
  •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감과 솔직함, 진실을 존중함
     
  • 극단적 개인주의, 전위적 창의력을 장려함.


*                                                   *                                                   *

음...참고만 해야겠다.ㅋㅋㅋㅋ 별로 와닿지는 않는 듯. 무엇보다,

"사회적 규율과 질서를 숭상하는 엄숙주의자, 국민 정서와 사회 정화를 믿는 검열주의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저 도발적인 말투는....맘에 들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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