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서울 세관본부 건물 앞 대형스크린에 생경한 포스터가 하나 반짝거리고 있었다. "안아주기할까요?" 안아주기는

뭔지. 무슨 행사인지 몰라도 관세청의 마스코트인 '탐마루', '탐아라', 두 마리 탐지견 인형이 입구를 지키고 선 걸로 보아

꽤나 크고 의미있는 행사인 듯 하다.


"안아주기". 더이상 쓰지 않는 경과 시계 등을 모아서 시아, 아프리카에 보내주기 운동의 약자란다. 그 안에 숨겨진

뜻도 뜻이지만, 그걸 저렇게 절묘하게 줄여서 표현했다는 것도 대단하지 싶다. 시력이 맞지 않거나 유행이 지나버리고 조금

낡아서 어딘가에서 하릴없이 뒹굴고 있던 안경과 시계를 모으는 것과 동시에, 상표권 침해로 폐기될 예정이던 '짝퉁 의류'를

모아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 특히 이번엔 방글라데시 국민들에게 전달하게 된다고 한다.

이번 행사로 수혜를 받게 될 방글라데시가 어떠한 나라인지, 한국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수십점

걸려 있었고, 그 한켠으로는 명품 가방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짝퉁 밀수품이 어떻게 제조되어 한국으로 들어오는지

최근에 있었던 밀수 시도 사건들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도 함께였지만 시선은 계속 가방들에 꽂혀 있었다. 얼핏 보기엔

마무리도 깔끔해 보이고 진품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저 상품들이 전부 짝퉁이라니.

 


그리고 그 옆으론 온갖 종류의 밀수품들. 탄피로 만들어진 장난감에 일본도에 총에, 발기부전제니 비만치료제,

마약 같은 온갖 이상한 약품류와 뱀술에 전갈가루, 호랑이가죽 같은 것들까지 신기한 것들이 잔뜩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아이템 두 개. '식품사용불가'란 설명이 붙어있는, 마치 조그만 가죽주머니 두개를

매달고 있는 대나무 꼬챙이처럼 바싹 말라붙은 사슴의 생식기랑 '조선'에서 나온 네오비아그라란 약품. 조선말과

러시아어와 중국어와 영어, 무려 4개국어로 그 효능이 광고되고 있던 이 '네오비아그라'.

세관에서 근무했던 선배들이 사재를 털어 마련했다는 팔각정이 시원하게 앉아잇는 서울세관 청사내 정원 앞에서

기증식이 열렸다. 관세청장과 서울본부세관장,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와 명예세관원으로 위촉된 연예인 정보석이

함께 내빈석이 앉아 진행된 기증식에서 방글라데시 대사는 감사패를 빌어 한국 국민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오늘 방글라데시에 전달될 물품들은 총 3천점에 가까운 안경, 의류, 시계들로써, '짝퉁' 의류들에는 연단 옆에 전시된

옷에 그려져있는 태극무늬가 색칠되어 전달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안경의 경우에는 케이스에 내외빈과 참가한

학생들이 메시지를 적거나 그림을 그려 전달하게 된다고 하니, 그렇게 사람들의 손을 타고 정을 머금은 물품들이

방글라데시에 전달되면 양국의 국민들은 서로를 한층 가깝고 친밀하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학생들은 인근의 언북중학교나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희망한 학생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봉사란 게

하나의 스펙처럼 여겨지는 시대지만, 그래도 이처럼 봉사의 의미가 뚜렷하고 그 수혜대상이 분명한 봉사라는 건

많이 할수록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안경케이스마다 차곡차곡 학생들의 메시지가 담겨가고, 점점 솜씨가 늘어가는

학생들은 급기야 색색깔로 글씨를 꾸미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계, 국내에 유일하게 있다는 동서울대학교 시계학과에서 봉사하러 온 십여명의 학생들은 중고시계를

수리하고 세척하는 작업을 맡아 정말 쉴 틈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끔하게 수리되고 깨끗하게 세척된

시계들이 열지어 테이블 위에서 햇볕을 나른하게 쬐게 있노라면 어디선가 중고등학생 동생들이 나타나 이쁜

종이 케이스에 새것처럼 조심스럽게 잘 말아서 포장작업을 하는 거다.

물론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 봉사학생들의 손놀림이 어느 순간 흔들리거나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인기를 몰고 다니던 일일명예세관원 정보석. 그의 등장과 함께 학생들은 주위를 포위한 채 사방에서 카메라폰을

꺼내들었댔다. 그 뒤에서 약간은 섭섭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관세청장과 서울본부세관장이 보인다.


내빈들도 직접 '짝퉁' 의류에 태극마크를 그려넣는 작업을 해보았다. 실크스크린으로 미리 속이 비어있는 태극무늬를

옷에 그려넣고, 빨간 물감과 파란 물감으로 태극 마크를 그리는 게 정석이다. 팔에 토시를 끼고 관세청장과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는 무척이나 꼼꼼하게 색칠을 해서 이쁜 태극 마크를 완성해 냈다.


자랑스럽게 본인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메이드 인 코리아' 의류를 들고 포즈를 취한 내빈, 그리고 마치 자기들의

삼촌이나 좀 나이든 오빠라도 되는 양 스스럼없이 구는 아이들 틈에서 살짝 빠져나온 일일세관원 정보석과 함께

다시 한번 포즈를 취한 내빈들.


그런데, 잘 생기긴 잘 생겼다. 키도 꽤나 크고 피부도 좋고, 뭔가 일반인 틈에 섞여 있어도 역시 연예인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멋진 생각! 멋진 나눔! 서울세관본부 화이팅!"이라 적힌 사인을 들고 기념촬영중인

정보석, 이번 행사가 자칫하면 쓰레기로 버려질뻔한 천여점의 의류와 천여점의 안경테, 시계를 되살려 좋은 데

쓰인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개념 연예인 맞습니다.

내빈들, 어른들의 작품이 참 모범적이고 단정한 태극 마크였다면 아이들은 조금씩 톡톡 튀는 개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태극 마크에 더해 주변에 물감으로 풍경이나 사물을 그려넣기도 하고,

조금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더하는가 하면, 마치 현대 미술처럼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물감 떡칠을

통해 본인들의 예술 욕구랄까 표현 욕구를 마음껏 불사르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이 학생들의 심오하고 깊은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아주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서울본부세관 지하에는 몰수화물들을 보관해두는 압수창고가 있다.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철문 너머에는 온통,

정말이지 온통 짝퉁 명품 가방과 의류 등속이 가득 보관되어 있었다. 심지어 아무 생각없이 밟고 있던 바닥에 깔린

게 모 명품 브랜드 짝퉁 가방을 만드는 원단 가죽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고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건 거의,

구찌 벽지를 바르고 루이뷔똥 카펫을 깔고는 샤넬 가방으로 쓰레기봉투를 삼아도 될 수준이었으니.


이런 식이었단 얘기다. 저렇게 우글우글 모여 있으니 아무리 외양이 그럴 듯하고 세련되어 보인다고 해도, 그게

진품이거나 짝퉁이거나 간에, 굉장히 '없.어.보.인.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싸구려 아이템들도 저렇게까지

우글우글 깔려있지는 않은데, 각 종류별로 색깔별로 열맞춰 놓여있는 저것들을 보니깐 참. 허영이었구나 싶다.


이렇게 발가벗겨진 가방도 있었다. 아마도 내장재가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삼아

분석대상이 된 게 아닐까 싶었는데, 반질하고 잘 여문 가죽으로 휘감겨 있던 외장과는 달리 칼질이 죽죽 그어져 속의

벌건 내피가 드러난 모습을 보니까 왠지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저런 것들도 아이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예술혼을

펼치도록 해서 저개발국가나 국내에서라도 쓰임을 찾을 수는 없을까 안타깝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그들이 진품인양 한 것은 미워해도 가방으로서의 쓰임 자체를 미워해선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관세청이 참 좋은 일 하고 있구나 싶다. 저런 밀수품이나 짝퉁 상품들을 많이 잡아내야 또 그것들이 필요한

곳으로 잘 전달되어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더욱 많이 잡아내고 더욱 많이 좋은 일들을

하는 관세청이 되었으면 좋겠다. 굳이 거창하게 몇백억씩 돈을 내고 '사회환원'이네 '사회적책임'이네 '국격'이네

어려운 단어를 섞을 필요도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시가 일억원 상당의 물품이 쓰레기가 되는 걸 막고 필요한

곳으로 가서 잘 쓰이게 된 셈이다.



* 본 포스팅은 관세청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상하이의 짝퉁시장 근처에는 한글 간판이 굉장히 많았다. 짭냄새 풀풀 나는 카피 상품에 대한 한국인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았고, 한국인이 그 제조 공정에 그만큼 깊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건지도 모른다.

'최고의 서비스', 는 알겠는데 '일반소비자가격'은 뭘까. 어쩌라구.

신기한 메뉴 투성이다. 두부김치냄비는 그렇다 쳐도, '미소코디레코딩'은 대체 뭘까. 레코드판을 먹어야 할 기세.

이건 더 대박, '뼈없는 쇠고기 돼지갈비'. 응...응?? 쇠고기랑 돼지갈비가 같이 나온단 건가, 아님 소를 먹인

돼지 고기를 준다거나 돼지를 먹인 소고기를 준단 건가. 

이어지는 단어들, 소고기 어깨고기, 소의 갈비뼈, 혀..최소한 부위들이 제시되는 것들이니 뭔지 상상이라도

해보겠지만, 대체 '유명 쇠고기'는 뭘까.

혹시 직접 가보고 싶은 분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여기는 남북으로 jinhui로가 달리고 동서로는 xianfeng로가

가로지르는 지점쯤이다. 역시 지금의 상해는 상당부분 계획된 도시로 설계되어 그런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금보나 보건안마클럽'을 찾으세요.

가게 이름이 '오토종닭'이다. 뭘까. 오~ 토종닭? 오토(auto) 종닭? 황당무계한 간판.

자랑스런 한국의 미용산업의 명성은 진즉부터 알아모시고 있던 게다. 무려 '한국전문가 직접관리'. 신뢰100%!?

불법복제 디비디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는 섭섭치 않을만큼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본 영화가 세상엔

넘 많다. 고작 저 판때기 하나 위에 깔린 영화 중에도 안 본게 잔뜩이다.

나름의 운치를 과시하는 어느 가게의 간판. 중간에 오타나 요상한 표현이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불을 켜보려다가

말았다. 저 간판 위의 세상은, 말하자면 '시적허용'의 세계인 거다.

이 간판도 그런 세상인 걸까. 숱불구이. 하긴 이런 식의 오타나 실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한국어들조차 그다지 정확하진 않다. 표준어법을 알면서 피해가는 재치있게 비틀린 표현들 말고, 정말 몰라서

자꾸 틀리는 표현들. 그건 좀 거슬린다. 나는 않 틀린다.ㅋㅋㅋ

짭퉁들의 본거지라는 민차오패션마켓. 꽤나 큰 건물을 온통 차지한 마켓 정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

한국복식 매력 연출, 아무래도 여기에서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감수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인 거 같다. 남측보다

북측의 어휘나 분위기에 훨씬 어울리는 단어 선정이다.

수출정품관? 엄선된 상품들이란 의미의 정품(精品)인 건 알겠지만 역시 눈에 선 표현이다. 게다가 옆에 자석은

왜 갖다가 그려놓은 거지. 뭘 끌어당기고 싶은 거냐 네놈들은.

아이의 하얀 박꽃같은 엉덩이가 완전 흐뭇한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겸둥이~ 꺄아~~*

출장마사지 서비스도 있읍니다. 저 '읍'자가 아무래도 어색하게 손봐진 걸로 봐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틀리게 고쳐쓴 거 같다. 딱 억지개그치는 느낌이 가득한 게 전혀 '레알'스럽지 않은 거다.


혹시 야밤을 틈타 저기 슬쩍 다녀가신 거 아냐? 떡검들이랑 G랑 어깨걸고 '못생긴 마사지사' 찾아서?

상해에서 이번에 먹었던 음식중 가장 독특했던 건, 중국식으로 매콤한 '개구리 요리'. 우리식대로 매운 거는

뭔가 땀이 뻘뻘 나고 혀끝에서 불이 나는 건데, 여기의 매운 맛은 혀와 입안을 온통 얼얼하게 마비시킨다.

치과에서 마취제를 입안에 맞고 있는 듯한 느낌, 식용 개구리의 뒷다리는 정말이지 왠만한 치킨가게에서 파는

닭날개랑 비슷한 사이즈를 과시했다. 12足쯤 먹었으니...6마리 되시겠다.



@ 중국의 한 짝퉁 시장.

이쁜 치마를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다른 군더더기는 제하고 치마만 입혀 놓고 나니깐 그치만 되려 부작용이다.

다른 살색 부위에 대한 쾌속한 스캐닝과 동시에 치마에 대한 원망이 스물스물 일어나서, 누가 저 치마를 산다고

나서면 왠지 말리고 싶어질 듯.

벗으니까 홀가분해 보이긴 하는데, 솔직히 썩 이쁜 몸은 아닌 거 같다. 기계로 찍어내는 건데 좀더 이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잖아. 쳇.



뒷이야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발견하고는, 가게에선 사람이 부랴부랴 나와서 옷을 주섬주섬 입혔다.

상술로 벗겨놓았다기보다는-마네킹의 인권, 아니 마네킹권을 유린하는 처사로 지탄받아야 할-그냥 잠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가졌던 듯 하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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