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드디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 단어가 좀 이상하지만 '박물관'이 생겼다는 기사는 봤었다.

 

독립공원 내에 지어지기로 했다가, 광복회 같은 단체에서 '격이 다르다'며 건립에 반대했다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vs '피해자 한국'의 구도로만 보는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생각했던 사건이었다.

 

 

어쩌면 좀더 깊숙하게는 '전쟁' 상황에서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의 문제,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의 문제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여성', '인권' vs '전쟁'시 증폭되는 남성성의 문제, 그게 본질인지도 모른다. 한일간의 국가간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간에 붙은 이름은 무척이나 명확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가는 길은 참, 참담하도록 허술하고 허름했다.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어 종이로 전봇대에 붙여놓은 화살표가 전부.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판이 그나마 화살표를 가리고 있어서 눈 크게 뜨고 돌아보지 않고는 찾기도 쉽지 않은.

 

일본에 대고 국가 배상을 해라 말아라, 한국 정부는 떠들지만 말고 이런 기억의 장소부터 제대로 챙길 일이다.

 

 

드디어 나타난 간판.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의 날씨에 붉은 단풍이 서렸다. 근데 아무래도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좀.

 

박물관 건물 전경. 독립공원 내에 입주를 포기하고 찾은 곳이 홍대입구에서 멀지 않은 이 곳의 가정주택이었다고 한다.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얼마전 트위터에서 '미디어몽구'님이 앞장서서 모금운동을 펼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할머니들 수요집회 다니시거나

 

외부 활동 다니실 때 쓰시라고 기증된 차량도 볼 수 있었다. 모금한 분들의 이름이 하트 모양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던 핑크빛 차.

 

건물 귀퉁이에 조그맣게 있는 입구.

 

마침 수요일이어서, 수요시위를 마친 오후 세시부터 관람하러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은 오후시간만 개관.

 

입구를 들어서면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동영상이 쉼없이 돌아가는 벽면의 설치물, 그리고 매표소.

 

카드 사용이 불가하며 일반인은 3,000원, 청소년은 2,000원, 어린이는 1,000원.

 

지하 1층, 1층, 2층으로 구성된 전시공간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고,

 

개별 전시공간은 유기적인 이야기로 잘 엮여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면 티켓을 받는데, 매일 다른 할머니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11월 21일, 홍강림 할머니와의 연을 맺었지만, 이 분은 이미 스러져가신 다른 많은 할머니들처럼 세상을 뜨셨다.

 

"일본 정부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그대로 증거입니다!"라고 외치시던 분들.

 

유일하게 촬영이 허용된 곳은 2층의 소녀상. 비어있는 의자 옆에 두 주먹 꼭 쥔 소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깜박이지도 않고 응시하고 있는 곳은, 수요집회의 영상. 할머니들이, 지지하러 온 사람들이 확성기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머금고 일본 정부에 외치고 있는 영상이었다. 위안부의 존재조차 여전히 부정하는 그들을 향한.

 

슬픈 듯 분노하는 듯, 아니면 차라리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 어깨에 앉은 새 한마리.

 

의자가 두 개, 앉은 사람은 하나. 저 소녀가 혼자 진창같은 삶을 살아오다 진실이 알려진 게 고작 1991년이다.

 

이십년이 넘어가지만, 저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적기만 하다.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를 막론하고.

 

작년인가, 헌법재판소에서 그간 한국정부가 필요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던데, 바뀌려나.

 

2층에서,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한 장 굳이 찍고 말았다. 이게 뭐냐하면,

 

위안부를 상대하는 군인들에게 지급된 콘돔이다. '돌격'이라고 쓰여진 콘돔...돌격이랜다. 끔찍한 표현.

 

 

정신대, 처녀 공출 따위 여러 표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따옴표까지 포함해 '위안부'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위안부'라는 표현 자체가 남성의 시각에서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따옴표 안으로 넣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군대(국가 폭력)에 의한 집단적/조직적 강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층 테라스의 추모관. 하나둘 세상을 뜨시는 할머니들이 벽돌 하나하나를 비석삼아 쉬고 계셨다.

 

나와 연이 맺어진 홍강림 할머니, 누군가 놓고 간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벌어졌다.

 

그리고 박물관 앞뜰. 날이 좋으면 이곳에서 문화행사도 열고 담소도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찬바람만 머물렀다.

 

돌아나오는 길. 굉장히 먹먹해진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입구 겸 출구인 곳 앞에서 나비떼가 확 번져갔다.

 

그리고 들어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돌무더기 한 줌. 어찌 보면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이같이 생기기도 했고,

 

그 위에 묵직하게 얹힌 돌멩이들 하나하나가 왠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나도 돌 하나를 얹어놓았다.

 

찾아가는 길, 그리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관련 정보 다시.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려는데, 선잠에 취한 듯 나른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창구 안에서

겸연쩍은 듯이 반색을 한다. 며칠전 눈이 오고 나서는 평일에 사람 구경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어쩐 일이냐며, "학생, 밥은 먹고 다니나" 했다. 경주시내를 돌고 오릉을 거쳐

남산 서북쪽의 포석정까지 걷느라 조금은 지쳐있었는데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금세 훈훈.


에이 그냥 슬쩍 들어갈 걸 그랬네요, 하며 입장권을 받아든 내가 슬쩍 눙치니까 아줌마는

웃으면서 그랬다. 조그마한 공간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으면 바로 잡혔을 거라.

사실 경주는 고등학교 2학년때 수학여행으로 찍고찍고 돌아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이들과 놀고 장난치기 바빠서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워낙

교과서나 다른 곳에서 많이들 보이는 것들이라 대표적인 이미지들은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포석정 내에 이렇게 아지랑이처럼 꼬물꼬물 피어오른 소나무라거나, 다른 그림들이

더욱 신선한지도 모르겠다.

이게 포석정의 대표 이미지랄까, 몇 그루 나무가 장승처럼 버티고 선 공간 안에 구불구불한

수로같은 것이 한바퀴 원을 얼추 그리고 있는 형상.

포석정 입장권에도 조악한 화질로나마 나와있는 사진이 바로 그거다. 왠지 10여년전 내가

고2때 받았던 입장권도 이것과 똑같았던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입장권,

그 안에 그려진 포석정의 계절은 가을이다.

원래는 포석정을 둘러싼 형식적인 울타리 안을 넘어 들어가면 안 되었지만, 아무도 없는

텅빈 포석정에 나를 따라하다가 문화재를 파손시키거나 망가뜨리는 사람은 없겠지 싶어서

슬쩍. 가까이 찰싹 달라붙어서 봤더니 다소 멀찍이서 보던 것과는 달리 경사진 게 보인다.

수로 위쪽에서 잔에 술을 채워 찰박이는 물 위로 띄우면, 자연스레 아랫쪽으로 내려갈 듯.

그렇게 구불구불 미묘한 동감을 살리면서 술잔이 내려가다가 저 아래쯤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그 술잔을 받았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재미없게 밋밋한 수로를 내려가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물결치며 내려가도록 만들어진 수로가 슬쩍 돌아서 한 바퀴.


사실 옛날에는 이보다 훨씬 길었을 거라고 한다. '유상곡수연'이라는 이런 수로의 형태는

한중일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조성했던 형태지만 그 일부나마 남아있는 건 이 곳이 유일하단다.

비단 포석정이 없었어도, 이 곳의 숲이 신라인들이 이곳에서 노닐던 그때도 이렇게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서는 가지로 하늘을 가려주었다면 정말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았을 듯.

돌아나오면서 뭐랄까, 참 좋은 공간인데 포장이 엉망이란 느낌이 들었다. 최근 1박2일에서

경주 '스탬프찍기' 여행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관광지

앞에 선 안내문이나 동선 안내가 워낙 부실한 거다. 게다가 그 장소의 얼굴이랄 수도

있겠고 계속 그 공간의 기억을 남길 만한 기념품이랄 수도 있는 입장권이 이렇게 부실해서야.


한자가 어영부영 섞인 한글로만 설명이 있어 외국 관광객들에게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읽기에도 참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글로 적혀있을 뿐이다.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공간에 대해 필요한 정보가 다 들어갔는지도 의문이다. 경주 시내 문화재들을

시간순으로나 장소순으로 읽어내릴 통합이미지나 번호라도 있으면 훨씬 좋지 않을까.




지브리미술관 구조를 소개하는 브로슈어, 그치만 이것만 봐서는 통..뭐가 뭔지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게다가

무려 한국어를 포함한 다섯개 언어, 일본어까지 합치면 여섯개 언어로 소개가 되어있음에도 그다지 쓸데있는

정보는 안 담겨 있는 거 같다. 명색이 미술관인데, 더구나 지브리의 특성을 살려 만화로 표현해놓은 지도인데.

지도는 보고 나면 여기가 어디고 어디로 가야할지는 최소한 알아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브로슈어 뒷면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 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강력한 단서가 되어 주었다. '미아가 됩시다,

다 함께!!'라는 문구다. 영어로는 'Let's lose our way, toghether'라나. 이들은 지브리 미술관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길잃고 홀리게 만들어 기념품점을 싹싹 긁어가게 만들고, 지브리홀릭으로 만들 생각인 거다.


더구나 미술관 내 사진촬영, 비디오촬영은 모두 금지라니. 이러니 지브리에 두고 온 내 금쪽같은 추억들이

더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풍화되는 거다.

지브리의 입장권 두 장. 이걸 갖고 미술관 지하 1층으로 가면 오로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지브리의

단편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 약 15분에서 20분 가까이 되는 작품을 매시간 세 타임씩 틀고 있었다.


위의 입장권은 '붉은돼지'의 한 장면, 밑의 입장권은 '포뇨'의 한 장면, 필름을 이렇게 몇 컷씩 잘라내어 다시

입장권으로 재생한다는 발상도 참 감탄스럽다.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기념품.

지브리 스튜디오 입장권을 사전 예매하고 현지에서 받기로 했는데, 한국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는 곳은 대한여행사

뿐이라고 많은 블로거분들이 그렇게 알려주셨기로 나 역시.




점점 해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맹렬해졌다. 하라주쿠의 쇼핑스트리트를 돌다가 슬쩍 찾아간 메이지신궁에

도착했을 무렵은 대략 그쯤이었다. 하라주쿠는 패션과 쇼핑의 거리, 그 일정에 슬쩍 양념처럼 집어넣었던

메이지신궁은 그저 해떨어질 무렵의 산책코스였으니 얼추 맞춘 셈이다.


일본의 하고많은 신사 중에서도 '신궁'은 특별히 역대 일왕('덴노'라는 고유명사로 불러주는 게 맞을 거 같긴

하지만)을 신으로 모셔놓고 있다는 둥, 그 중에서도 특히나 조선의 식민화를 감행했던 때 재위했던 메이지

일왕을 모시고 있다는 둥의 배경지식은 별반 감흥이 없었다. 그냥 뭐, 후쿠오카나 다른 곳에서 잔뜩 본 신사나

별반 다를 거 없잖아. 누군가에게 소원을 빌고 의지하고. 혹은 그저 습관, 전통으로써 유지되고.

일왕을 신으로 모시는 거야 그네들의 종교인 '신토'에서 기본 교리에 속하는 거고, 조선을 식민지화한 그네들의

야만적인 결정도 결정이지만 그보다는 그로부터 해방된 후 뒷처리를 여전히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새삼 남의

나라 와서 격분하는 것도 우스운 일. 그래서, 그냥 해떨어질 무렵의 고즈넉한 신사를 산책하듯 돌아보았다.

어느 신사, 신궁이나 그렇듯 입구에는 도리이(鳥居)가 서 있다. 이게 하늘 천天자로부터 유래한 모양이라고들

하던데,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또 영 꿈보다 해몽인 거 같고. 6시 가까이 되어서 그런지 뭔가

방송에서 신사 방문객들의 퇴장을 종용하는 멘트가 일어, 영어로 계속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흐름도 전부

입구로부터 바깥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일단 방송은 무시, 롯데 월드 6개가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면적에 넙데데하게 자리잡은 이 메이지신궁을 전부

돌아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그냥 본전까지만, 아니면 가볼 수 있는 데까지라도 가보기로 했다. 사실은

생각보다 해가 일찍 지는 바람에 당황하고 있었다. 여섯시가 넘으니 해가 지기 시작하다니, 어쨌든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도 가고 있었구나. 쳇, 그보다 '일출~일몰'이라는 애매모호한 메이지 신궁의 개방시간이

문제인 거다.

도리이를 지나 한 십여분 걸어들어간 거 같은데 본전은 커녕 본전을 가리키는 푯말도 아직이다. 커다란 석등에

번쩍 불이 들어왔고, 어디선가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람들이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쿨럭대며 나오고 있었다.

예상보다 신사가 크다는 사실에, 그리고 예상보다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느 신사에나 이렇게 입구쯤에 짚으로 감긴 단단해 보이는 술병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몰랐는데, 이건 술이 잘 익기를 기원하며 주류 회사에서 제물로 바친 술통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술들이 나름의 라벨을 붙인 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걸 보면, 마치 방문자들을
 
향해 광고를 하려는 게 본심, '혼네'일지도 모른다.

파르스름한 어둠이 소리도 없이 땅거죽에 웅크려 앉기 시작했다. 노랗게 빛나는 석등 위의 불빛이 묘한

아늑함을 자아내기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지나는 사람 한 명 없이 온통 적막할 뿐인 너른 대로 위에 둥둥

떠오른 듯한 낯선 느낌으로 목 뒷덜미를 쿡쿡 찌르기도 했다.

본전으로 가는 길은 온통 짙푸른 숲길, 길 양켠에서 뻗어나온 탐욕스런 녹색 가지들이 서로의 어깨를 짚어내야

만족할 태세로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신사에 들어서기 전까지 시야의 왼쪽과 오른쪽을 채웠던 건

히라주쿠의 온갖 샵들에 전시된 중절모와 원피스와 각종 액세서리들. 그것들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까지의

시야 전면을 온통 가려버릴 듯한 삼엄한 기세로 조그마한 도시 하나를 점령해 버린 듯 했다.


히라주쿠를 서울의 어디랑 비교해봐야 할까 생각해봤지만, 홍대나 삼청동이나 압구정동이나 명동, 그 어느 한

곳이라기보다는 그 모든 공간을 합쳐놓은 조그마한 소도시 정도로 놓아야 사이즈면에서나 분위기면에서나

비스무레할 듯. 일본은 확실히 대국인 거다. 인구면에서나, 도시의 사이즈면, 발전도면에서나. 1억 2천의 인구와

5천의 인구, 아무리 서울이 인구과잉의 초고밀집지역이라 해도 도쿄의 사이즈나 밀집도에 비길 바는 아닌 듯.

결국 본전까지는 포기. 거의 떠밀리다시피 돌아나와야 했다. 이미 입구에는 철문이 닫혔고, 시간은 칼처럼

지키는 일본인들은 다소간의 에누리도 없이 방문자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나온 걸까,

아쉬움에 카메라에 담았던 쪽문으로 빠져나오고 나자 등뒤에서 철컹, 문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델리에서 약 200킬로 떨어진 아그라에 도착, 티켓 오피스 앞에 섰다. 약 200킬로면 사실 한국에서야 두시간임

주파할 수 있는 거리지만 여기 기준으로는 네시간 반 정도. 안 그래도 전날의 숙취가 고스란히 누적된 상황에서

멀미 기운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티켓을 받아드니 없던 힘도 불끈 생겨나서, 정신차리고 돌아보기 시작. 티켓 뒷면의 도장은 타지마할

티켓을 사고 아그라의 다른 네 개 유적을 돌아보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표시라는데, 살짝 빵꾸가 뚫려있는

AGF, 아그라 포트만 돌아볼 수 있었다.

매표소 옆에 붙어있는 노천 까페/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길, 기둥마다 그려진 소박하고 단순한 그림들이 눈을

끌었다.

그러고 보니 매표소 건물 입구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코끼리, 비슈누상. 굳럭을 상징하는 시바신의

화신 중 하나라는 비슈누다.

매표소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약 1킬로 정도 걸리는 그 길을 걸어서 가는 방법이 하나, 다른

하나는 전기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는 거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지마할의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실은 몇년정도 비공개로 쉬게 하라는 권고를 받을 정도였던지라 도입된 전기 자동차라고.

인도의 정정은 사실 그리 확립된 편은 아니다. 작년에도 테러가 있었고,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싼 파키스탄과의

알력이라거나 분리주의자들의 격한 움직임도 유의할 대목.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계속 이런 체크포인트와

장벽들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유있게, 쓰레기통 깊숙이 얼굴을 처박고 먹을 거리를 찾는 소 한마리.

길 끝에서 타지마할의 입구를 만났다. 적색 벽돌로 매끈하게 가다듬어진 저 성벽 너머엔 타지마할이 있다.

인도 날씨는 꽤나 후텁지근할 거라 생각했지만 델리나 아그라 지역은 사실 1월엔 그다지 기온이 높진

않은 편이다. 다소 쌀쌀한 봄의 아침날씨정도랄까. 그럼에도 저렇게 댓바람부터 길거리에 사지를 뻗고

누운, 그야말로 개팔자 상팔자의 강아지들. 

역시나 입구 옆에는 소총을 둘러멘 경비원들,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예 벽돌로 저렇게 진지까지 구축해

놓았을 정도로, 테러의 위협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현실로 체감하고 있나보다.

마법의 숲을 지나 늪을 건너, 금속탐지기와 거친 손놀림의 스캐너를 거치면 타지마할 입성.

난 타지마할에 들어가면 바로 새하얀 그 궁전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기대를 배신하고,

쭉 이어지는 테라스와 붉은빛 벽돌담. 이것도 이쁘지만 난 얼른 타지마할이 보고 싶을 뿐이라구~ 생각하다가

사실 타지마할이 뭔지도 제대로 안 알아보고 덥썩 여기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저기가 타지마할로 들어서는 입구. 타지마할은 힌두교와 이슬람의 영향이 혼합된 방식으로 지어진 사원으로,

익히 알려졌든 '타지Taj'라는 왕비를 위해 바쳐진 사후궁전인 셈이다. 현지어로는 '따즈마할'이랄까, 좀 다르게

발음하는 것 같던데.

외국인 여행자들이 쉼없이 들고 나고, 그 와중에 두껍게 무장한 병사들은 살벌한 쇠막대기들을 들고 발소리

척척 맞추어 사방을 순시하고 있었다.
 
정확한 좌우대칭이 되도록 힘썼다는 이야기, 힌두교 사원들이 엄격하다 싶을 정도로 좌우대칭 형태에 집착한

것처럼 타지마할 경내의 건물들 역시 마찬가지 맥락인 거다.

건물 안을 지나던 길,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문득 발견한 창문 하나, 쏟아지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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