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앙상한 겨울나무 두 그루가 코엑스 유리벽 너머에서부터 뿌리를 내리더니 코엑스 대리석 바닥에까지

 

촘촘하게 잔뿌리를 내리뻗었다. 앨리스가 뛰어들었던 거울 속 풍경으로 뛰어든 거 같기도 하고.

 

그 풍경에 이렇게 소용돌이를 더하는 장난, 필터를 쓰던 프로그램을 쓰던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고 재미있는 방식은 역시 두손으로 꽉 잡은 카메라를 직접 돌리며 셔터를 누르는 거다.

 

삼각대로 고정하듯 카메라의 축이 단단히 잡혀 있지 않아서 회전이 조금 찌그러지기도 하고, 그래서

 

저렇게 형광등 불빛이 지렁이 똥싸듯 삐뚤빼뚤해지기도 하지만. 그리고 회전의 중심이 어디로 잡힐지

 

알 수 없어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그런 의외성과 예측불가능성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꼭 사진이 수직수평을 제대로 잡고 있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기울기로 왠지 모를 분위기나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는 사진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세상이 뭔가 잔뜩 망가지고 헝클어지고 멸망할 듯한 느낌.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저 털뭉치였다.

흐릿한 하늘 아래 황토빛 털복숭이가 하나, 해안가의 시꺼먼 현무암 돌담 위에서 바다로

나서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귀를 쫑긋 세우고는 등을 둥글게 말아올린

고양이가 배웅이라도 하듯,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먼바다로 나서는 배에 붙박혀있었다.
 

배가 멀찍이 나아가며 점점 나아가는 걸 확인하고야 귀찮다는 듯 슬쩍 몸을 돌려 카메라를

바라봤다. 뭐야, 배웅하는데 왜 방해하고 그래, 라는 투다. 배에 녀석의 친구나 주인이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님 누군가가 배를 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바다를, 배를

바라보고 꼼짝없이 앉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온갖 드라마를 불러온다.

가파도엔 왜 이리 고양이가 많아, 싶어지도록 몇걸음 채 걷기도 전에 다시 발견한 이쁜 고양이.

현무암 돌무더기에 살짝 가려진 몸을 빙글 돌리고는 얼추 반쯤 가려진 얼굴로 이쪽을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히 드러난 한쪽눈의 모양새라거나 얼룩덜룩한 무늬가 호랑이같은 몸의

실루엣이라거나, 뒷배경으로 당당히 서있는 싱싱한 풀떼기의 위풍당당함이라거나.

잠깐 그렇게 포토세션을 갖고는 이내 가르릉대며 몸을 피해버리는 도도한 녀석. 뭐, 그래도

저렇게 멋진 포즈를 잡아주었으니 그걸 제대로 포착하고 못하고는 찍는 사람의 문제인 거다.

이제 여기저기서 고양이가 툭툭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달까. 가파도의

해안길을 따라 둘려진 바람숭숭 돌담 위에서도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했다. 이녀석, 비를

피하지도 않고 저렇게 계속 맞고 있는 건가, 싶도록 엉망이 된 털인데다가 눈도 잘 못뜨고

꼬박꼬박 조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온몸을 잔뜩 옹송그리고 꼬리까지 바싹 몸에 두른

모습이 정말 어디가 안 좋은 건가 싶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도 귀찮다는 듯 고개만 휘휘 돌릴 뿐 딱히 새초롬하니 도도쟁이 놀이를

하지도 않고, 움직임도 느릿느릿하다. 그냥 졸릴 뿐인거 같기도 하고.

가파도의 한가운데 교회 앞마당에서 발견한 껌정얼룩고양이. 정문 뒤에 슬쩍 몸을 가린 채

이쪽을 경계하는 모습을 처음에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한걸음씩 가까이 접근하는 모습을 바싹 곤두선 모습으로 경계하다간 후다닥 도망가서

몸을 숨기겠답시고 벽돌 뒤에서 눈치를 빤히 보고 있던 녀석이다. 저기에 몸이 숨겨질거라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법 커다란 벽돌의 든든함이 맘에 들었는지

꽤나 가까이 다가서도록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얼음, 하고 있었다.

한바퀴 휭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냐옹냐옹. 이 녀석이

인사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님 나랑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 반가운 맘에 둘러보니

초록색 풀밭에 배깔고 누워서는 게으르게 냐옹거리는 중. 눈도 반쯤 감긴 게 얼마나 태평해

보이던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가 저런 표정이었을 거다.







아주아주 달콤하고 쌉쌀한 초콜렛 음료를 만들어내는 곳, 카운터의 모습이 반질반질한 천장에

그대로 말갛게 비쳤다. 이런저런 스토리와 추억이 얽혀있는 까페.

다른 곳의 까페. 딱 보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인테리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던 건 천장을

온통 덮고 있는 거울이었다. 친구들이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또 더러는 서로의 폰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나만 천장을 보고 사진 한장. 근데 저 지갑은 왜 연거지.

또 다른 시간의 강남역. 해가 까무룩하니 저물어가며 사방으로 빛을 퍼뜨리는 시간대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리고 LED조명이 색색으로 바뀌는 가운데 거침없이 지하도

아래로 빨려들어가고 토해내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빨강색 러브, 근데 뭔가 이상하다. 영문 알파벳이 아니라 저건 한글 모음들인 거다. L을 대신하는 니은, O를

대신하는 이응, E를 대신하는 ㅌ, 티읕. 그리고 거꾸로 물구나무선 시옷이 제대로 V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조그마한 금속링들을 붙여서 만들어낸 커다란 수탉. 벼슬과 부리의 위엄도 볼 만 하지만, 아직 성글게 자라난

꼬리깃이 좀만 더 풍성해지면 완전 볼 만 하겠다 싶었다. 중닭에서 완연한 장닭으로 변신 뾰로롱.

토이뮤지엄에서 만났던 커다란 인형, 그리고 햇살 가득 들여보내주는 관대한 창문 아래 나뭇빛 책상과 소품들.

화장실 표시가 귀엽긴 한데, 가만 살펴 보면 대체 저 쩍벌녀 꼬맹이는 급하다면서 전화기를 잡고 있으며, 저

어정쩡한 표정은 또 왜 짓고 있으며. 혹시 저 의자가 휴대용 변기인 건가..;

몇 장 너무 재미있는 그림들을 방문객들이 남겨두었길래, 차마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버렸다. 지재권은

전적으로 그리신 분들께 있으며 원치 않으실 경우 변호사 선임 및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

'거짓말하면 묻히는 거다'. 그 아래 정말 묻혀있는 피노키오.ㅋㅋ

어리다기엔 뭔가 '중닭' 정도 크기로 자라난 듯한 '어린왕자'. 소년의 복숭아빛 두 뺨은 싱그럽건만 눈빛속엔

번뇌가 눈물처럼 차올라 있으니 나이먹는 게 아쉬울 따름인가 보오.

입체 카드의 허점. 사람의 시선이 항상 최적의 위치에서 카드를 펼쳐보거나 바라보는 것만은 아닌 거다.

온통 깨어지고 뒤틀린 사자의 얼굴과 앞발바닥. 이글이글 불길처럼 타오르는 갈기, 라기보다는 그냥

되는대로 자르고 구겨놓은 쓰레기뭉치에 불붙은 거 같다.

토이 뮤지엄 앞에는, 심지어 이런 공공 시설물까지 이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포장. 무슨

거대한 선물상자같은 게 길가에 떡하니 놓여있길래 뭔가 했더랬다.

그리고,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옴직한 장면. 거대한 나무가 건물 안쪽 어딘가에서부터 무럭무럭 자라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는 덜 떨어진 질문을 좀더 참신하게 바꿔볼 수 있을 듯. 건물이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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