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곳곳에 숨겨진 특색있는 박물관 중에 하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박물관.

 

미국에 이주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고 하길래 찾았는데.

 

두둥. 올해말까지 더 크고 새롭게 짓는다며 리모델링이었다는. 아쉽게도 언젠가의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그리고 샌프란의 그래피티들. 이전에 갔을 때는 주로 미션 지구쪽의 이름난 그래피티 골목들을 돌았다면 이번엔 그냥 랜덤으로.

 

 

 

미국의 이미지 중 하나는, 온갖 담배와 맥주를 팔고 있는 철조망 촘촘한 구멍가게. 왠지 이런 그림에 가깝지 않을까.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 앞에서 문득 육박해들어오는 그래피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돌아보지 못한 골목에 대한 아쉬움도 한가득.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지만 외벽이 온통 음악과도 같은 느낌. 악기와 음표들과 새들이 날아다니는.

 

어디보다 맘에 들었던 그림, 선연한 빨강과 파랑, 그리고 하얀색과 왼켠의 노란색 기둥까지.

 

그러다보니 불쑥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의 공터로 흘러나왔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와

 

무거워보이는 짐보퉁이를 들고서는 힘든 듯 잠시 멈춰선 중늙은이 할아버지. 뭔가 지쳐보이는 뒷모습들이다.

 

어느 건물 벽면에 누군가 그래피티..라기보다는 캘리그래피같이 그려둔 낙서. 형체를 분간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저 그 모호한 형상과 필선의 강약만으로도 느낌을 던져주는 듯 하던.

 

여기 역시. 건물의 모든 외벽을 굉장히 세밀한 그래피티로 래핑해버린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건물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그리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본 벽면의 그래피티.

 

실컷 거리를 종횡무진,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해떨어질 무렵 숙소로 돌아와서.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인지라

 

호텔방 번호판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케이블카가 담겼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의 사계절은 두바퀴 정도 돌려서 봤던 거 같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

 

올겨울 삼엄하게 내린 눈에 호수가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본관 중앙홀에 설치된 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으로 쌓은 탑이 360도의 뷰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 작품은 볼 때마다 내가 티비를 보는 건지 티비가 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주는 듯.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라도 할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 탑의 끝쪽에는 대들보를 상량하며 적어둔 축문이 한바퀴 둘려있다.

 

 

마치 구겐하임 미술관의 달팽이껍데기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계단이 휘감긴 벽면.

 

그리고, 온통 앙상한 잔가지만 가득한 나무와는 달리 겨울철 북풍한설에도 끄덕없는 둔탁하고 묵직한 인공조형물.

 

그 와중에 과천서울랜드 매표소가 이렇게 방긋 웃고 있었다. 어렸을 때도 저렇게 웃고 있었던가, 기억이 그닥.

 

 

 

 

 

 

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PM 06:15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나온 장소가 어디인지 맞춰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 힌트 : 아래 장소와도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28



 

 

코엑스 메가박스 가는 길, 리모델링이 한창인 코엑스 곳곳에서 문닫고 사라져버린 샵과 공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늘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등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고, 마치 이 곳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인양 카메라를 들게 만든 이유.

 

 구간구간 상점들이 빠져나가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이라 살짝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다.

 

그리고 코엑스 메가박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텔레비전 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어느샌가부터 메가박스 옆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생겼다. 도슨트도 상주 중이어서 언제든 들어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지만 알차게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

 

재미지고 발랄한 작품들을 볼 겸, 슬쩍슬쩍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 곳 중 하나.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줄여서 보통 MOMA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숙소 옆인데다가 카드 혜택으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하여 시간을 쪼갰다. 짧은 일정의 여행 비스무레한 것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리는 건 다소

 

무리한 일정일 수 있었지만 이전에 여기를 돌아봤던 기억이 꽤나 인상깊게 남아있던 덕분이기도 하다.

 

 

야외 전시공간에 넉넉히 깔려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갈색머리의 아가씨, 그리고 슬쩍 눈길이 돌아간 가드 아저씨.

 

성상들이 색색으로 뉴욕의 한가운데 하늘을 이고 섰고, 그들의 발치에서는 뱀이 스르륵 미끄러지는 중.

 

 

염소상 앞에서 신나서 염소 우는 소리를 내는 꼬맹이, 그리고 함께 머리 위로 뿔을 만들며 놀아주는 엄마.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빠져들어갈 듯한 포즈의 석상 뒤로는 테이블을 점령한 채 통화중인 여유로운 뉴요커 혹은 여행객.

 

  

  

MOMA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중이었는데,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 안에서 뭔가 만드는 아이들이 보인다.

 

 

 

실내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는 참에 문득 눈에 띈 표지. 500명 이상이 모이는 건 위험하며 불법적인 행위라는 경고문인데,

 

얼마전 뉴욕과 세계 일부를 뜨겁게 달궜던 '어큐파이!(Occupy!)'의 영향이려나 싶기도 하고.

 

무지개빛으로 꽂힌 주요 언어별 MOMA 안내 팜플렛.

 

 

 

1층과 2층에 걸쳐 전시중인 현대미술 작품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 촬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주로 Contempararty Art 쪽을 둘러보며 눈길 가는 작품들을 하나씩 사진에 담아보았다.

 

 

QR코드 같기도 하고 체스판 같기도 한 작품. 카펫을 짜듯 가로세로로 직조해서 만든 듯.

 

 

 

I wasn't invited here, so I came here to see why I wasn't invited. 센스있는 어느 작가의 수기 작품.

 

 

선 몇 개로 저렇게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움직이는 느낌을 부어넣을 수 있다니.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도 못하는 발치에 동그마니 놓인 고양이밥..을 빙자한 예술작품. 이런 파격은 여전히 재미있다.

 

어느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의 작품. 스타킹을 못박고 무겁게 매달아 바닥에 철푸덕, 내려앉혀 버렸다.

 

 

 

 

벽 안에 들어간 채 불투명한 유리로 슬몃 형체만 보이는 신발들. 어떤 건 짝을 맞춰서, 어떤 건 한 짝만.

 

의자 위에 앉거나 옷장 안에 옷을 넣는 게 도무지 불가능해진 의자와 옷장.

 

 

 

 브루클린의 빈곤율과 범죄율을 예술로 형상화한 작품. 시뻘건 선들은 인연을 묶어둔 실이 아니라 범죄자와 감옥을 이은 선이다.

 

 

바랜 색감이 인상적이면서 무슨 오랜 사찰의 불화같기도 하고, 괴물을 그려놓은 거 같기도 한 게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어디서 봤었는데, 그냥 곳곳의 권위적이고 유명한 명소들에 대고 뻐큐 손가락 셀카를 찍었을 뿐이었다.

 

 

 

 

혹시 백남준의 작품인가 싶어-비디오 아트, 하면 백남준 밖에 모르니깐-봤는데 TV가 필립스다. 백은 삼성만 썼었다.

 

 

 

인디언과 선글라스와 액자 하나. 액자 속 그림이 눈부시니 인디언한테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인디언이

 

선글라스 같은 현대문물을 갖는 대신 액자 속 그림과 같은 대자연을 상실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피카소의 Weeping Woman이라는 작품 중 하나. 그림만 봐도 딱 그 제목이 번뜩 떠오르는.

 

 

특정 사물, 아마도 사람인 듯한 사물과 모서리 벽면이 중첩되는 순간을 여러 시선에서 담아낸 듯한 연작이다.

 

이제는 어느새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현대 문명'의 소산임에 틀림없는 카세트 테이프의 릴을 온통 풀어제쳐서

 

사방에 치덕치덕 흔적을 남기고 급기야 그 테이프판까지 자취를 남겨버린 작품.

 

그리고 전시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참신하면서도 재미있던 작품. 갖고 싶은 거 하나 고르라고 하면 이걸 가리키고 싶었다.

 

이미 '현대 미술'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되어버린 현대 미술의 클래식같은, 그래서 이미 너무 비싸진 작품들 말고

 

정말 따끈따끈하고 익숙치 않은 작품들이 더욱 재미있고 눈길을 붙잡았다. 

 

살짝 미소녀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작품, 그래서 더 인상적이기도 했고 마음에 들기도 했는지도.

 

어느 문명이 멸망하고 남긴 최후의 아이들처럼 꼬맹이답지 않은 성숙하고 비극적인 표정과 묘한 색감이 참 맘에 들었다.

 

 

* 작품을 사진으로 재촬영하며 색감과 톤이 바뀌는 건 피할 수 없었지만, 이 또한 현대 미술에서 용인할 만한 수준의

 

재현과 변용에 속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면서 새삼 '오리지널리티'란 뭘까 하고 답없는 고민을 살짝 해보았다.

 

 

 

 

 

영화는 어떤 기술적 진보에 대한 '아티스트'의 반감과 편견이 끝내 녹아내리고 새롭게 진보한 '그릇'에 어울리는 형태의

 

'아트'를 다시 재개하는 것으로 끝난다. 소리가 지워진 영화세트장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하던 그가

 

먼 길을 돌아 다시금 모두들 소리를 죽인 영화세트장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그가 발굴하고 영감을 건넸던 젊은

 

여배우와 경쾌하게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구둣발을 어찌나 감각적으로 타닥탁탁 거리던지. 타닥탁탁.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구둣발이 내는 소리를 살려내면서 유성영화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내는데 일조한 셈이다.

 

 

어쩌면 영화는, 2011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인 이 영화는, 영화에 꼭 '소리'가 필요한지에 대해 새삼스레 확인해 보고,

 

영화 속 세계에 당연하게 포함된다고 생각했던 '소리'를 어떻게 해야 인상적으로, 인습적이지 않게 재발견할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소리의 힘을 빌지 않고 표정과 몸짓과 최소한의 대사 텍스트로

 

스토리를 진행해 가다가 문득, 남자를 괴롭히거나 희롱하다가 결국엔 화해하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릴 때마다 사운드가

 

지닌 나름의 강력한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는 거다. (그보다 무성영화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더욱 감탄했지만.)

 

 

영화에선 크게 두개의 갈등이 노정되고 있는 듯 하다. 새로운 기술적 발전과 그 결과물에 대한 시선의 문제에 더해,

 

'세단 지나간다니 똥차 빼주자'는 세대간의 문제랄까. 기술 혁신과 그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이란 건, 반기는 사람에겐

 

세상이 확 바뀌고 나아지리라는 열광을, 시큰둥한 사람에겐 조잡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생겼다는 기피감과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사진기술이 개발되거나 영화가 발명되거나, 영화에 소리가 들어가거나 혹은 3D기술이

 

생기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이 생기거나 따위에 대한 찬반. 그건 대체로 '구세대'와 '신세대'의 경계와 겹치곤 한다.

 

 

그렇지만 그건 '아티스트'에서 보여주듯, 어쩌면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에서부터 웅변하듯, 그러한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요소'에 비기면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인 거다. 기술 발전이 어떠한 방향으로 얼마나 혁신적인 가능성을

 

확장시킬지라도, 혹은 그것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의 디그레이드가 될 여지가 크다 할지라도, 그걸 활용하고

 

가능성을 구현하고 제 몸에 맞는 옷으로 적응시키는 건 결국 인간. 그런 작업에 요하는 창의성과 창조성을 감안한다면

 

일종의 예술이라 해도 무방할 테니 결국 쉼없는 기술혁신기에 처한 인간은 모두 아티스트인지 모른다. 마치 그가

 

그녀와 함께 유성영화 속에서 구둣발을 타닥탁탁 하며, 목소리 대신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듯이.

 

 

그러거나 저러거나, 오랜만에 보는 무성영화-최근에 봤던 무성영화는 어느 따뜻한 나라로 떠나던 외국의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찰리채플린의 클래식이었다-는 역시나 물기를 함뿍 머금은 듯 부드럽고 촉촉한 화면의 느낌이라거나, 동작 하나

 

표정 하나 사려깊게 배치된 섬세한 세공이라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자칫 자극적이고 번다하기 쉬운 소리의 쓰임없이도

 

보는 사람을 흡인하고 이야기의 끝까지 함께 달려가게 만드는 그 힘 같은 것들에 다시금 매혹되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도

 

2011년에 만들어진 새삼스러운 무성영화, '아티스트'를 찾아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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