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에서 굳이 마애관음좌상 이야기를 따로 빼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문사라는 절 하나를 돌아보는 것만큼

마애관음좌상을 보러가는 길과 마애관음좌상 자체의 무게가 묵직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렇게 보문사 극락보전을 돌아 마애관음좌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채 밟기도 전부터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이전 포스팅 :  석실 안에 모셔진 천오백년 전 부처님의 모습, 석모도 보문사에서.)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싶은데 벌써부터 계단 양쪽에 버티고 선 석등에는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쌍쌍이 손을 잡고, 혹은 아이의 손까지 잡고 사이좋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만 글쎄, 내가 본 바로는

계단 중간쯤부터는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며 대개 손을 놓고 제한몸 건사하기에도 힘겨워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약 10분 소요'된다는 이 계단은 경사가 꽤나 가파르기도 하고, 애초 절에서부터 마애관음좌상까지의 거리도

10분이 걸린다기에는 조금 무리다 싶은 1킬로미터 가량이라고 하니.

계단을 오르는데 눈에 띈 현수막 하나. 소원을 담는 곳이라나. 소원을 적어서는 유리병 속에 담아 100일을 채우고 나면

스님께서 축원을 올려주시고 태워서 날려보낸다는 건데, 딱히 불자는 아니지만 이런 걸 보면 왠지 한번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소원이라고 하면, 음..아무래도 로또나 연금복권 당첨 같은 것 밖에 떠오르질 않는 걸 보면 딱히

부처님에게까지 들고 가서 부탁할 일은 아직 없는 거 같다.

계단을 오르면서 계속 보문사 쪽을 돌아보았다. 아직 기운이 팔팔하던 계단 초입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풍진 숲속에

포옥 감싸여 있는 절의 전체적인 모습이 계단을 좀 오르면서 점점 각도를 달리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거다.

이런 식으로 보는 각도와 방향을 달리 해서 보문사를 굽어 볼 수 있다는 건 마애관음좌상을 친견하러 가는 계단 위에서

얻는 예기치 않은 또다른 즐거움.


오르는 길이 어찌나 가파른지, 계단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어 두었어도 어느 순간 아래를 내려보면 살짝 아찔하다

싶을 정도의 각도로 꺽어지고 있었다. 지그재그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이 저 아래 어디쯤에선가 앙상한 나무사이로

삼켜져 버려서 이젠 더이상 보문사의 기와지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노랗고 따뜻해 뵈는 등불을 품고 있던 석등이 중간중간 있어서, 저기까지만 가서 쉬면 되겠다, 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석등에서 석등을 마음으로 짚고 넘어가는데 점점 하늘이 어두워진다. 해가 워낙 짧고

금방 사그라져버리는 계절, 겨울이 오고 있는 거다. 마음이 급해지는데 앞에 왠 반짝거리는 유리병들이 보였다.


아까 계단 입구에서 봤던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유리병들이 여기다 모여있었다. 색색의 종이에 꾹꾹 눌러 씌인 사람들의

소원이 반짝거리는 말간 유리병 안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용 대여섯마리가 서로의 몸을 비비 꼬며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사이에도, 용의 사슴뿔 위에도

사람들은 겁도 없이 유리병을 걸어두었다. 저렇게 하면 용을 타고서 조금이라도 빨리 부처님께 가닿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마애관음좌상 도착. 툭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로 돌을 돋을새김한 부처님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겠다. 여기 예전에 왔을 때는 문득 비가 나려서, 저 눈썹바위 아래에 바싹 붙어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내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 고마웠어요 부처님, 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보문사는 600년경에 창건된 천년사찰이라 하지만 이 마애석불좌상은 아직 백년도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가 9미터가 넘고 너비가 3미터가 넘는 이 커다란 부처상도 그러고 보면 내가 그날 그랬듯

이 눈썹바위 덕분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다.

툭 튀어나온 바위가 지붕처럼 부처님을 가호해주고 있는 셈, 그리고 그 부처님은 이곳에서 저 아래 보문사, 그 아래 석모도,

그리고 강화도 너머 멀리까지 굽어살피며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가호해 주고 있는 거랄까. 여기서

다시 내려다본 지그재그 계단은 생각보다 별로 안 길어 보이는 게 아쉽다. 실제로는 숨이 턱까지 차서야 올라왔는데.

신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참 연약해 보인다지만, 특히나 저렇게 단단한 바위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조그마해 보인다. 그저 눈에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마치 빙하처럼 저아래로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낙가산 전체의 기운과 무게감이 부처님 조각에 실려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새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부처님 앞에 모셔진 촛불들이 더욱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안내판 참조) :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불상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정병을 든 관음보살이 연꽃받침 위에 앉아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보문사는 관음보살의 성지로서 중요시하던 곳이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딱히 기별도 없이 해가 넘어가버릴 생각인가 보았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면 서해바다로

곤두박질치는 붉은 해의 모습과 노을로 타오르는 하늘과 바다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나는 올 때마다

날씨가 이렇게 흐린지 모르겠다. 이런 것도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면 인연이려나, 시시각각 어둠이 내려앉고 계단을

지키던 석등의 노랑 불빛이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보문사를 넘어 석모도의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향불이 쉼없이 살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각기의 소원을 빌고 부처에 의탁하며, 빨강노랑초록색 향에 불을 쟁여

부처님께 바치고 있었다. 거칠 것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라, 바람이 한번 불어닥칠 때마다 바싹 빨아당기는

담배 끝처럼 향 끝에서 붉은 불꽃이 일렁이며 거침없이 타들어갔다. 향로에 무질서하게 꽂혀있는 색색의 향들이

만들어낸 모양이 삐죽삐죽 제멋대로의 고슴도치 같기도 하고.

이곳 보문사 마애관음좌상은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세속의 차원에서 보자면

보문사와 더불어 인천이 품고 있는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일 것이고, 부처님을 모시는 차원에서 보자면 이렇게 석등의

갓 위에까지 도톨도톨하게 돌멩이를 올려둘 만큼 절절하고 영험한 관음보살의 도량인 게다. 그리고 내게는, 아직

연이 닿지 않아 보지 못한 낙조 풍경이 숙제처럼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제긴 숙제지만 유쾌하게 받아들고

기꺼이 하고 싶은 그런 류의 숙제 말이다.




* 인천관광공사에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국민적 자존심까지 걸고서 삼수 끝에 획득해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직후의 뜨거운 열기는

한여름 무더위와 함께 한풀 가신 듯 하고, 이제 동계올림픽 개최로 발생할 득실에 대한 냉정하고 차분한 손익계산과

함께 '승자의 저주'를 피하고 가능한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점이다.


'New Horizons'라는 모토를 앞세운 평창의 비전을 앞장서서 구현하며 진두지휘할 사람,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났다. 애초부터 그가 기획한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이제 강원도의 수장으로 앞장서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그가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이러한 기대와 우려의 교차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성공적인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제한적인 시간과 조건하에서나마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해서 처음부터 반대했고 유치 이후에도 걱정만 맘속 한가득인 본인으로서는 나름 궁금했던, 걱정됐던 몇 가지 지점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질문의 형식을 빌려 우려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대답을 듣고 우려가 좀

사라지고 개최해야 되겠다는 설복이 되었냐고? 답은, 인터뷰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의 마음 속에 있지 않을까.


인터뷰는 평창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되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이 진행될 메인스타디움이

위치한 알펜시아 리조트를 둘러보고 메인스타디움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 콘서트'를 함께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파워블로거얼라이언스'에 소속된 블로거 중 한명으로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MBC사장, 한국방송협회 회장, 민주당 국회의원, 민주당 유비쿼터스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2011년 4월 이래 강원도지사로 선출되기에 이르렀으니 뻣뻣할 만도 하건만, 그는 남들보다 먼저 물병을 잡아

물을 따랐고 막걸리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무겁거나 위엄부리는 몸가짐이 아니라 그냥 친근하고 부담없는

윗집 아저씨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감자'란 별명을 멋쩍게 소개하던 문순C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첫인상은 빗나가기 쉬운 법, 아무리 이렇게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인간적이고 호의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중요한 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품고 있는 컨텐츠다. 게다가 개인 최문순이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위한 도지사이자 '공인' 최문순을 만나야 하는 자리다. 그렇다. '공인'이란 건 이럴 때나

적당한 단어다. 공인에 대한 공적인 인터뷰. 먼저 궁금했던 건 평창 동계올림픽을 어떤 식으로 치뤄낼지에 대한 각오였다.


그는 도지사직을 수행한 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꼽았다. 강원도의 수익원 대부분은 관광에서

발생하는데, 동계올림픽 개최를 통해 내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유인하여 열악한 도의 재정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싶다고 했다. 154만에 불과한 강원도 인구의 국민소득은 만오천불에 지나지 않을 만큼 낙후되어 있는 강원도의

인프라와 재정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는 다짐이다. 인천과 강릉 간 고속화철도를 개통하고 용산과

춘천간 2층 철도를 운행하는 등 철도, 도로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기로 했으며, 다른 관광상품들도 많이 개발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연히 '비용' 문제와, 그렇게 개발된 관광상품들의 질적, 문화적 수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 순서다. 그는 '동계올림픽의

저주'란 단어를 사용하며 본인이 적자 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가능한 기존 인프라와 경기장을

재활용해서 적자가 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 답했다. 또한 문화가 바탕이 된 관광상품을 만들어내야 실제로 관광산업이

발전하는 것이라며, 중국, 대만, 홍콩 등 눈 구경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눈꽃 체험 관광이라거나 DMZ 안보관광을

상품화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눈꽃'의 경우, 작년 상해엑스포 때에 기업연합관에서 인공으로 눈을 뿌리는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큰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검증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지만, 안보관광은

요새 같이 냉각된 남북관계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겠다 싶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또다른 포인트는 환경 문제다. 가리왕산에 대한 환경평가가 졸속이라느니, 대규모 토목공사와

인프라 건설로 환경에 커다란 타격이 갈 거라는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강원도의 관광경쟁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환경'을 꼽았다. 강원도처럼 울창한 숲이 보존되어 있는 지역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으며, 산과 바다를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원도 내 지역마다

다양한 옥수수맛이라거나 고유한 산지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제맛이 나지 않는 황태 같은 특산품에 대해서 줄줄 읊는데

정말 강원도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챙길 수 있을까 싶어 조금 감탄했다.

그가 강원도지사에 출마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최문순'이란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말안해도 강원도민이 먼저 알 거라고. 그는 연임에 대해서는 이미 욕심이 없다며

어느 인터뷰에선가 밝힌 바도 있거니와, 2018년에 열릴 평창 동계올림픽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아 이름값올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단 게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도지사의 공관을 최초로 일반에 개방했다는 데에서는

문득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최초로 일반에 돌려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버랩되기도 하던 최문순 도지사.

그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지,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 좀더 깊이있게

묻고 싶었지만 시간과 장소가 여의치 않았고, 그래도 날림이나마 대강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진정 온국민의 축제로 성공리에 치뤄지려면, 뭔가 큰 건 하나 했다고 무턱대고 기뻐하고는

잊어버릴 게 아니라, 계속해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검사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포스팅의 제목을 '숙제 검사'라며 도발적으로 달아본 이유기도 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알펜시아 리조트의 이곳저곳, 유럽의 어느 분위기있는 리조트를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이고 고급스런 외양이 눈에 확 띈다. 2018년, 지금부터 7년 후. 이 곳에서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은 어떠한

모습일까, 최문순 도지사와 함께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관심이 필요한 거다.

지치지도 않고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아이들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함께 즐기려는 아이들이

전부 모여들어선 벗어던진 신발이 땅바닥을 덮었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길 소망해본다.




 

더이상의 논평을 주렁주렁 다는 건 무의미한 노릇, 그냥 오늘 이슈가 되고 있는 블룸버그통신의

G-20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다 못해 빈정거리는 듯하게까지 느껴지는 기사 원문은

대체 어떤가 싶어 따왔다.


(원문)

City officials leave their desks this week to sweep the streets of Seoul while seven-year-old children study economics as South Korea mobilizes its citizens for the Group of 20 meeting.

 

Posters hail the summit and video billboards tower above central Seoul exhorting its 10 million citizens to mind their manners when Barack Obama and Hu Jintao visit on Nov. 11-12.

 

South Korea President Lee Myung Bak, nicknamed “bulldozer” during his days running the nation’s biggest construction company, is deploying up to 60,000 police and troops to avoid the burning cars, smashed windows and 900 arrests that marked the last G-20 meeting in Toronto in June.

 

“I cried tears and Korea’s national anthem echoed in my heart when South Korea was selected to host the G-20 summit,” a fourth-grader wrote in a posting on a children’s website hosted by naver.com, South Korea’s most-visited internet portal.

 

The child, whose name and school are not identified to protect their privacy, is among hundreds who have posted questions on the site asking for help with G-20 homework projects. The Kids Chosun Ilbo, the junior edition of the nation’s highest circulation newspaper, published a page-2 article Oct. 26 explaining the currency market and the contents of the communique issued by G-20 financial chiefs on Oct. 23.

 

Lee hailed the event as a chance for the country to be a “protagonist in world affairs” in an Oct. 18 nationwide radio address. Advertisements on television promote the G-20 as an occasion to celebrate the nation’s rise from the ruins of the 1950-53 Korean War to Asia’s fourth-biggest economy.

 

Korean War

 

Demonstrators in Europe and North America clashed with police at previous G-20 meetings in Pittsburgh and London.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57 billion bailout of South Korea during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which helped avert the economy’s collapse, also triggered protests in Seoul over bank sales and job losses.

 

The city of Gyeongju in the south of the country provided a taste of what’s to come this time when it asked local farmers to grow special apples for the meeting of G-20 finance chiefs last month. The farmers ripened parts of each apple’s skin at varying rates to produce the name of a G-20 country on each fruit.

 

In Seoul, the education ministry postponed college entrance examinations by a week until Nov. 18 so they don’t clash with the summit. Schools in the vicinity of Coex, the meeting’s venue, may change their hours to cut traffic, according to Kim In Jong, chief of the presidential security service.

 

Hyundai Limos

 

Hyundai Motor Co., the nation’s largest automaker, on Oct. 28 delivered 129 vehicles to summit organizers, including Equus limousines to chauffer leaders from Incheon airport and around Seoul. KT Corp., South Korea’s largest provider of phone and Internet services, is providing smartphones and tablet computers for leaders and senior officials.

 

“We’re ready to make it possible for participants from overseas to watch TV channels from back home,” Seok Ho Ik, vice chairman of KT Corp., said last month. “We want to go beyond just providing communication support for the meetings, to promote South Korea as the No. 1 country for IT.”

 

Kim of the presidential security service said 20,000 police officers are being mobilized to keep demonstrators away from the Coex conference site in southern Seoul.

 

“We will deal with violent protests with a level of strictness never before seen,” he said at a briefing on Oct. 8.

 

Protest History

 

Kim also said South Korea is on alert for possible threats from North Korea, including explosions at “major facilities,” suicide bombings, chemical assaults or cyber attacks.

 

North Korea’s state-run Rodong Sinmun newspaper today said the South’s security preparations were “slander.”

 

“All this fuss has an extremely provocative and foul nature,” the newspaper said in an editorial carried by the Korean Central News Agency.

 

South Korea has a history of street protests over labor issues and demonstrations at gatherings of world leaders in the region. At an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summit in Busan in November 2005 attended by then U.S. President George W. Bush., riot police used water cannons and batons to disperse 30,000 protesters, some wielding iron bars.

 

Human Rights

 

In Hong Kong less than a month later, at least 1,500 South Korean farmers rallied outside World Trade Organization talks, many battling with police in the city’s worst violence in a decade.

 

Disruptive demonstrations, often focused on poverty, the environment or human rights, have been a feature of world summits since riots broke out in Seattle at World Trade Organization talks in 1999.

 

Kim said he’s obtained intelligence on 500 people with a history of organizing violent protests, who will be kept out of the country or closely watched. A further 40,000 police and troops will be on hand to guard against attacks by international terrorists or North Korea, Kim said.

 

Heavy-handed tactics may not go down well with visiting dignitaries. Singapore was criticized when it deployed 10,000 security personnel and banned outdoor protests in 2006 during World Bank and International Monetary Fund meetings. Then World Bank President Paul Wolfowitz said the city-state suffered “enormous damage” to its reputation.


‘Divided Nation’

 

South Korea’s $832.5 billion economy grew more than fourfold since the Summer Olympics in 1988, a year after South Korea emerged from almost three decades of military dictatorship.

 

“The event will help raise global awareness of South Korea, whose image has been predominantly that of a divided nation or just another fast-developing economy,” said Lee Dong Hun, a research fellow at Samsung Economic Research Institute. “This is a chance for South Korea to elevate its status as a real contributor and lead player in global affairs.”

 

He estimates South Korea can reap at least 21.6 trillion won ($19.2 billion) from hosting the G-20 meetings as increased global recognition helps boost exports. South Korea’s economy is forecast to grow at 6 percent this year.

 

Still, more than 430 stores inside the Coex site may suffer reduced sales on Nov. 12, when ordinary citizens will be banned from entering the building as security is tightened for leaders including U.S. President Obama.

 

Shuttered Stores

 

Hyundai Department Store Co. said it will close its Coex branch on Nov. 11 and 12. Average weekday sales in November last year were about 1.5 billion won, the Seoul-based company, said in an Oct. 26 e-mail response to questions.

 

South Korean sports personalities and film stars have joined the call to promote the event.

 

Kim Yuna, the Olympic champion figure skater dubbed Queen Yuna by her fans, joined Manchester United soccer player Park Ji Sung as goodwill ambassadors for the summit. A 20 meter high by 100 meter wide poster featuring Kim and actress Han Hyo Joo in front of Seoul City Hall bears the slogan: “The world’s future opens with Korea.”

 

“Girls Generation,” a nine-member pop group famous at home and in Japan for songs including “Kissing You” and “Baby Baby,” joined a team of stars supporting the event.

 

Today, Yeun Jae Han, 48, an assistant director with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s environment management division, will head out to the conference venue to help volunteers scrape gum from nearby streets.

 

“I’m so proud of being part of this meaningful event for the nation,” he said.

 

To contact the reporters on this story: Bomi Lim in Seoul at blim30@bloomberg.net Jungmin Hong in Seoul at jhong47@bloomberg.net

 

To contact the editors responsible for this story: Bill Austin at billaustin@bloomberg.net Will McSheehy at wmcsheehy@bloomberg.ne

 

By Bomi Lim and Jungmin Hong - Nov 1, 2010

 1. 삼형제의 탄생

  2006년 10월 2일 한 가족의 저녁식사를 위한 부식재료로 구매되어 냉장 보관되고 있던 고구마, 감자 그리고 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깔끔하게 손질되어 음식으로 재탄생할 것을 기대하던 이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할 말을 잃어야 했다. 아랫도리가 잘려나간 채 수반에 얹혀지고는, 햇볕이 따뜻한 테라스에 놓였다.

  3일 후, 그간 따뜻한 가을볕을 쬐었던 감자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감자의 옆구리에서는 하얀색의 눈이 터져나왔고, 한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눈은 불쑥불쑥 그 크기가 날로 커지고 있었다. 무 역시, 줄기가 뻗어나오면서 연두빛의 잎사귀가 움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고구마는 외로 돌아누운 채 미동도 없다.(10.2-5)



2. 감자와 무의 기(氣) 싸움

  큰형 고구마가 좀처럼 움직여볼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자, 감자와 무 간에는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무는 연두빛의 여린 줄기가 두세개로 늘어나면서 쭉쭉 줄기생장하기 시작하더니, 잎사귀가 제법 풍성해졌다. 감자는 하얗고 약하게만 보이던 눈이 한두개가 아니라 이제 마치 덩어리처럼 잔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덩어리는 보랏빛과 연두빛이 섞여들어 조금은 성숙해보이기도 한다.(10.6-10.8)



3. 질풍노도(疾風怒濤) 시기의 무

  무가 뻗어올린 대궁이가 어느 순간부터 세기 쉽지 않아질 정도로 많아지더니, 잎사귀의 키가 10~15cm에 이르렀다. 가장 왕성한 발육을 보이고 있는 무가 계속 이렇게 자라게 되면 바싹 인접해 있는 감자와 고구마가 햇볕을 쬐기에 불편함이 예상되었다. 하루하루 체크할 때마다 키가 자라며 잎사귀의 색이 짙어지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10.9-12)



4. 감자의 가출

  무의 잎사귀가 한껏 푸르러지고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감자가 불평하기 시작했다. 감자의 눈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한 사이, 녀석은 이미 흰 수염 세네 가닥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감자는 어느 순간 가출을 결심했고, 하얀색의 단조롭고 답답한 수반을 떠나서 화려한 무늬를 가진 도자기 접시로 분가해 버렸다. 고구마, 감자, 무가 꽉 찼던 수반은 이제 많이 여유로워진 모습이었고, 감자 역시 자신만의 발육 공간을 찾아 기쁜 모습이다.

  하지만 큰형 고구마는 감자와 무 간의 형제다툼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누운 자세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다.(10.13-17)



5. 조숙한 동생들

  가출해서 분가해버린 감자는 일주일도 안 지나서, 이만큼 무성한 뿌리를 만들어냈다. 수반에 넉넉히 차있는 물 때문인지 뿌리로만 너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눈은 총 6개, 너무 많아서 영양분이 분산될 수도 있다는 조언을 듣고 조만간 눈이나 뿌리를 잘라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 중이다.

  무 역시 총 열세 개에 이르는 줄기를 뻗고 있는데, 줄기에 가득 달린 잎사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벌어져 있다. 이제 저렇게 풍성해진 잎새 사이로 꽃대궁이가 올라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역시 잎사귀가 너무 많아 영양분이 분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소 염려스럽기도 하다. 조금더 지켜본 뒤에도 꽃대궁이가 안 올라오면 마음 아프지만 솎아내야 할지도 모르겠다.(10.18-25)



6. 지진아 고구마

  고구마의 완강한 침묵에 질린 채, 웃자란 감자와 무에 신경을 온통 쓰고 있었다. 자연스레 카메라에 담을 때도 고구마는 항상 사진의 구석에서 돌아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구마가 하얀 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구마의 가느다란 쪽 끝에서 하얀 색의 실뿌리가 어느새 2-3cm에 달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그 외에도, 연두색의 아주 조그마한 싹 같은 것이 그 위에 사마귀처럼 달려 있다.

  큰형이 이제야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싱싱하고 튼튼해 보이던 잎사귀와 줄기가 시들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무게를 못이기고 축축 처진다. 감자는 별다른 변화없이 묵묵히 큰형의 뒤늦은 기지개를 바라보고 있다.(10.26-31)



7. 역주(力走)하기 시작한 고구마

  고구마는 일단 싹을 틔우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자, 마치 예전의 무가 그러했던 것처럼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가냘픈 연두색의 싹은 고구마의 몸체와 비슷한 자주색으로 변화하면서 쉽게 알아볼 만큼 자라났다.(약 1.3cm)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그 싹은 좀더 자라나 끝에 잎사귀가 말린 듯한 모양의 망울을 달게 되었다. 그저 밋밋한 하나의 줄기가 아니라, 첨단부에도, 그리고 옆 켠에서도 가지가 생겨나고 잎사귀가 펼쳐지고 있다.(11.1-4)

 


8. 생식에 실패한 무와 남일같지 않은 감자

  무는 이미 너무 많은 양분을 잎을 자라는데 써버려서 꽃을 피울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좀더 일찍 손을 썼어야 하는 거였다고 후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쪽의 줄기들을 전부 솎아 내었다.

  감자는 눈이 비대하게 자라났으면서도 더 이상 그로부터 무언가 생겨날 기미가 안 나타난다. 무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손속에 잔정을 남기지 않고 하나의 눈만 남긴 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이렇게 했으니 감자는 생식에 실패한 채 그냥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무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할 텐데.

  고구마는 싱싱한 자주색의 줄기를 쭉쭉 뻗어올리더니 아주 정결하고도 예쁜 초록색 잎을 기어코 펼치는데 성공했다. 뿌리도 점차 굵어지면서 보랏빛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촘촘하게 실뿌리가 자라나고 있다. 잔뜩 시들어버린 채 줄기만 앙상하게 뻗은 무가 보기 싫어서 다시 한번 솎아내버리고 아직 덜 자란 줄기 세네 가지만 남겨놓았다.(11.5-11.10)



9. 무의 죽음

  무는 결국 아무런 자손도 퍼뜨리지 못하고, 최소한 생식을 위한 기관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렸다. 젊었을 때 ‘위풍당당한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버린 탓인 것 같다. 무를 만져보니 처음의 느낌과 조금 달랐다. 약간 푸석푸석해진 듯하면서 말랑말랑해진 것 같았다. 무가 다시 대지로 돌아가면 어딘가의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으며, 무를 수반에서 치웠다.

  고구마는 이제 상당히 볼만한 잎사귀를 다섯 장이나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잎은 가로 5cm, 세로 4cm에 이를 만큼 자라났으며, 뿌리는 이미 잔뜩 자라나있어서, 무가 떠난 빈 자리를 가득 채웠다.

  감자는 막내 무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만 남긴 채 모두 솎아버린 눈 끝에서 조그마한 싹이 돋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무엇인지 알 수 없다.(11.11-17)



10. 대기만성(大器晩成) 고구마

  고구마는 그동안 무 때문에 자신이 자라지 못했던 것이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떠나간 무의 빈자리를 순식간에 가득 자란 뿌리로 메꾸고는, 싱싱하고도 튼튼한 줄기를 힘차게 뻗어올렸다. 총 연장 23cm에 이르는 줄기에는 8장 정도의 잎이 달려있으며, 보라색 줄기에 짙은 초록색의 잎사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가장 큰 잎은 이미 가로 10cm, 세로 9.5cm 정도로 손바닥만하다는 비유가 알맞을 정도이다.

  감자는 눈의 첨단부위에 몽글몽글하게 털이 난 조그마한 망울이 생겨났다. 일주일을 매일같이 지켜보아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혹시 겨울눈은 아닐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지만, 조금 더 지켜보면 무언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11.18-25)



11. 현재 상황(2006.11.26)

  2006년 11월 26일 현재 고구마는 12장의 건강한 잎사귀를 활짝 피운 채, 두툼하고 싱싱한 줄기를 뻗치고 있다. 조금 더 자라나면 꽃이 맺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한편 감자는 그 끝의 망울이 점차 커지면서 이제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한 정도이다.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으며, 그것이 계속 자라면 무엇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하다.

  앞으로도 계속 관찰을 지속할 예정이며, 고구마의 경우는 감자와 무의 선례를 통해 얻은 경험을 통해 싱싱한 초록색을 더욱 싱싱하게 피워올릴 수 있도록 주의깊게 돌볼 생각이다.



@ 2006. 2학기 '생활원예' 수업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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