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의 맨 아랫곁, 남해 바다를 향해 싹둑 잘린 느낌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토막토막 논을 일군 오랜 흔적. 다랭이논.



한창때의 짙푸른 녹음이 그악스런 산복판이나 계단처럼 차곡차곡 내려오는 논밭이나 시퍼렇기는 매한가지.


구름다리 두개가 듬성하니 지나가며 바닷가의 날카로운 바위들을 가로지른다.


다랭이논조차 만들 엄두를 낼 수 없도록 깍아지른 바닷가 가파른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바다 저아래 수천년 수만년 파도에 시달렸을 바윗덩이는 평생 땅을 파먹고 사느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했던


할배의 손등같기도 하고.



한발 멀찍이서 보면 온통 빽빽하게 무성한 초록 지천이더니 가까이 다가서면 이런 산책로와 논두렁길이 숨어있다.


다랭이논이 산의 사면을 따라 슬금슬금 올라가는 모습.




역시 여름이다. 사람들이 꽤나 오다녔을 텐데도 서슬이 퍼런 잎사귀는 손바닥보다도 크게 자라나 길을 가렸다.



해남 땅끝마을에 비해서는 조금 북쪽에 위치해있다지만, 느낌으로는 거기 못지않다. 땅끝의 느낌.







남해 다랭이마을을 돌아보는 길은 '남해바래길'의 일부로 다랭이지겟길 코스라고 한다. 남해의 수려한 풍광을 한켠에


두고 반대로는 산비탈을 깍아만든 다랭이논을 지나볼 수 있는 트레킹코스.

한라산 등산코스는 대충 다섯 개, 보통 성판악으로 올라가 백록담을 보고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많이 찾는다지만,

 

영실코스를 통해 윗세오름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도 짧고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탓에 무리없는 트레킹이 가능하다.

 

 

백록담까지 가볼 수는 없다지만 뭐 꼭 산행이라는 게 꼭대기를 짚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가 좀 흐린 탓에 백록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을 바에야 안 가본 길을 가보자던 생각. 이미 예전에 활짝 개인 파란 하늘 아래 백록담을 보기도 했고.

 

 

영실휴게소에서 시작해서 얼마 걷지 않아 나타난 병풍바위, 근 1.5km 지점이던가.

 

길도 성판악과 비교해서는 나무 데크로 정비도 잘 되어 있는 편이고 경사도 완만한 편 같다.

 

 

..그렇지만 역시나 한라산은 얕볼 수 없는 산. 조금씩 경사가 가팔라진다 싶으면서 식생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게 느껴진다.

 

슬쩍 뒤돌아보면 굽이굽이, 나무데크가 끊길 듯 안 끊기며 저 멀리서부터 이어져 오는 모습이 내려보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삽시간에 주위를 삼켜버린 구름..이라 해야 하나 안개라 해야 하나.

 

 

관음사 코스에서 참 멋졌던 죽은 주목나무의 잔해들, 여기도 조금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이름 모를 보랏빛 꽃들이 활짝 피어난 경사면, 그리고 탐방길 우측으론 그보다 급한 경사의 산비탈.

 

 

 

 

올라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안개. 공기까지 촉촉하게 젖어드는 느낌.

 

 

문득 경사가 끝났나 싶더니, 마치 마트 싱싱코너에서 물안개를 흠뻑 맞은 채소들처럼 싱싱하게 초록초록한 나무들.

 

 

멀찍이 백록담인지 뭔지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숲을 벗어나서는 야트막한 풀들이 가득한 초지다. 걷기도 좋고 기분도 딱 좋은 그런 길.

 

 

아까까지 시커멓게 먹장구름을 드리웠던 하늘이 조금씩 파란색을 머금기 시작하기도 하고.

 

 

마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막판에 잔뜩 업된 채 걸었던, 그런 완만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의 산길.

 

 

그렇게 해발 1,700미터 고지의 한라산 윗세오름 도착. 여기에서 백록담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어서,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옆으로 틀어 어리목 코스로 내려가거나 해야 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많이 몰려들어 짖어대던 까마귀떼들. 컵라면과 음료를 현.금.으.로.만. 판매하는

 

매점 위에 앉아서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을 구경하느라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고 보면 매일 비슷한 일정이다. 아침 7시반쯤 출발, 오후 4시에서 4시반쯤 대충 도착. 가끔 오후 6시까지 걷기도 하고, 혹은 아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움직인 적도 있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씩만 걸어도..하루 열시간 가까이 걷는 거구나.

 

 

히말라야 캠프의 롯지는 고작 세 동이던가, 위로 올라갈수록 롯지 수도 줄어들고 마을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 많다더니 정말이다.

 

그래도 납작평평한 돌들로 이렇게 테라스도 만들고 계단도 쌓아두고,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렇다고 따뜻한 온수가 나온다거나 난로가 지펴지는 건 아니어서 꽤나 추웠지만, 덕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땀과 땟국물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방금까지 열심히 걸으며 온몸 가득 흠뻑 젖었던 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진 상태.

 

건물 외벽에 나와있는 요 단촐한 시설이 세면대. 여기에서 씻고 이닦고 발도 닦고.

 

어느 포터의 등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등짐에 대충 질긴 천을 찢어 묶어서는 어깨끈을 만들었다.

 

히말라야 캠프 앞쪽의, 아마도 공용 설비라고 해야 하나. 뭐 딱히 롯지끼리 니꺼내꺼 갈라 쓰는 분위긴 아니라지만 여긴 위치상 공용.

 

속속들이 집결하는 트레커들. 촘롱 이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은 이길 하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람들이던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이던 결국 몇번씩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우기의 끄트머리라 그런가, 그러고보면 4일차에 이르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다. 그나마 하루 빼고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걷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중간에 하루 비맞으며 마침 굉장히 오래 걷고 났더니 굉장히 타격이 크다. 옷도 다 젖고.

 

3천미터 어간에서부터 주의해야 하는 고산병.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몸이 무거워지는 등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요새는 고산병 약으로 (혈관 확장효과 때문에) 비아그라를 많이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치만 현지 가이드의 추천을

 

듣건대, 그리고 내 경험상으로도 단언컨대, 고산병에는 마늘수프가 최고다. 갈릭 수프.

 

저녁은 간단하게 갈릭수프와 감자전 비스무레한 것. 갈릭수프는 기대 이상으로 꽤나 맛있었고, 몸도 따뜻하게 덥혀주는 효과까지.

 

네팔같은 빈국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기본적인 생필품들의 퀄리티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쪽이 칼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얇디얇은 저 손잡이들. 칼뿐 아니라 숟갈이나 포크 역시 마찬가지다. 칼날만큼 얇은 손잡이.

 

그리고 가스 버너. 한국의 등산가들이 갖고 와서 쓰다가 놓고 갔다던가. 왠지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 싶다.

 

 

그리고 전기조차 귀해서 알전구가 빠져 있는 내 숙소방. 전기가 끊긴 건지 전구가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게 지급된 초 한자루.

 

바깥 기온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실내 기온 때문에 오리털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또 덮었지만 별무소용이라, 따뜻한 물을 다시

 

주문해서 계속 마셨다. 양초도 어찌나 조악하고 조그맣고 얇은지, 생일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초라고 해도 믿겠다.

 

그래도 이토록 짙고 농염한 어둠 속에서도 양초 한 자루, 그리고 헤드랜턴 두개를 가지고 히말라야의 긴긴 밤동안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가져갔던 책이 네 권인데 전부 다 읽고 돌아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거침없는 오르막길, 그 문턱에 있는 시누와. 시누와까지만 당나귀나 물소가 다니고 그 위로는

 

사람만 등짐을 메고 다닐 뿐이라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의 습격도 없고 당나귀 똥밭도 없긴 하지만, 또 그래서 시누와 위쪽으로는

 

미네랄 워터를 팔지도 않고 그저 끓여서 정제한 물만 판다는 단점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물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있고.

 

시누와를 지나 2,310미터 고지의 밤부Bamboo에 다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밤부, 맞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게 꽃나무고 풀떼기들인데도, 이렇게 플라스틱 케이스를 재활용해서 롯지 곳곳을 식물로 꾸며놓았다.

 

롯지 앞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대나무숲, 사람들이 몇명 들어가서 대나무를 베고 죽순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미 슬쩍 소슬해질 만큼 낙차가 느껴지는 기후, 맨땅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워져서 꼭 저렇게 양털가죽을 깔고 앉으라

 

말해주는 세심한 가이드, 그 덕분에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달밧을 시켰는데 반찬이 색다르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더니 밑반찬도 대나무 속대로 만든 요리. 맛있었다.

 

 

다시 배를 채우고 출발, 해발 2,920미터 고지의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대충 500미터 어간을 올라야 하는 셈.

 

체코에서 오신 70대 노부부의 페이스에 맞춰서 살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가이드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은 역시나,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가. 무작정 서두르고 다그치며 오르는 한국인들이 많은가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옆에서 대나무 속대를 채취해서는 다듬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등짐을 메고 이마로 끈을 버팅기며 저 무거운 가스통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

 

 

앞의 체코 노부부를 챙기는 가이드도 굉장히 살뜰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을 지날 때는

 

원, 투, 쓰리, 발 딛을 곳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줘가며 인도해주고, 어떨 때는 이렇게 힘껏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아무리 봐도 네팔어는 참, 저 글자를 어떻게 쓰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쓴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점점 안개인지 구름이 휘감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경사도는 완만해질 줄 모르고 끝없이 오르막인데다가 짐은 무겁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들, 급류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과 온통 초록초록한 가운데 점점이 뿌려진 꽃송이들.

 

그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히말라야 캠프. 2,920미터의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이제

 

세개 포스트 남았다. 데우랄리,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해발 2,590미터의 타다파니, 롯지들이 몇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집집마다 티벳 불교도임을 알리는 깃대가 섰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 치즈를 얹은 볶음면. 고수도 들어가고 몇가지 향신료가 독특했지만 전반적으로 좀 질척하고 양도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4시반부터 걸은 코스는, 고레파니에서 왼쪽위의 푼힐, 다시 고레파니로 가서 데우랄리에서 벤탄티, 타다파니까지.

 

점심을 먹고 나면 출레, 구르정을 지나 촘롱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계속 오르막길.

 

 

 

점심을 먹고 계속 가는 길, 점점 구름이 짙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날씨다 싶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느 아저씨는 물소고기를 손질하느라 휘어진 모양의 네팔 전통칼을 능란하게 휘두르고 계시고.

 

롯지 앞을 장식한 염소의 뿔.

 

그리고 한사람이 겨우 지나는 오솔길을 턱하니 온몸으로 막고 선 물소 녀석. 네팔을 떠나기 전 네녀석 고기를 맛보고 싶었는데 아쉽.

 

 

잠시 쉬었다 가는 길. 물소가 지났던 길에는 거머리를 조심하라더니, 여기서 잠시 쉬다가 순식간에 거머리의 습격으로 피를 빨리고.

 

 

 

그리고 여기서 쉬던 참에는 우연찮게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스페인 친구가 또 거머리에 당해버렸다. 어찌나 피를 많이 빨던지.

 

 

그리고 촘롱까지 가는 길, 더이상 억수같이 붓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사진은 없고,

 

그저 우비를 입고 가방에도 비막이를 씌우고 물을 뚝뚝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몇시간을 더 걸었다는 것만.

 

대략 오전 4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걸었으니까..13시간 이상 걸은 셈이다. 그리고 촘롱에서 도착직후 쓰러져 잠들다.

푼힐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고레파니의 롯지로. 어제 저녁 주문해놨던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구릉족 고유의 빵과 감자,

 

그리고 오믈렛까지 든든하게 먹고서 다시 길을 떠날 준비. 이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가야 한다.

 

 

짐싸기 전, 밤새 싸늘한 추위에 오리털 침낭안에 들어가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채로 머물렀던 내 방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의 설봉.

 

이른 아침의 향내가 은은한 가운데, 입구에는 어김없이 꽃 한송이가 바쳐졌다.

 

롯지의 다이닝룸, 그리고 온갖 기초적인 음료와 간식류들.

 

하트 모양이라 해야하나, 길쭉한 고추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 할튼 숙소방 열쇠들.

 

달밧과 구릉빵과 온갖 메뉴들을 주문받아 만들어내는 주방.

 

어느결엔가 차갑게 식어버린 난로. 그 위의 온갖 세탁물들과 침대 커버들이 무색하다.

 

 

다시 내 방의 창문. 2인실이었지만 아직은 비수기인 덕택에 혼자 널럴하게 다 썼다. 침대 하나는 테이블로 삼고.

 

공용 화장실. 앙상한 세면대와 샤워기, 그리고 그나마 파스텔톤의 색감이 느껴지며 다른 곳의 화장실보다 낫던 곳.

 

출발, 여기도 허수아비를 세워두는구나.

 

 

고레파니에서 동쪽으로 계속 가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챠레의 두 봉우리 아랫목까지 걸을 생각인데, 제법 이쁜 길이 이어진다.

 

다른 트레커들의 짐을 들어주고 계시던 포터 할아버지, 나이도 꽤 지긋해 보이시는데다 슬리퍼 차림이라니 깜짝 놀랬다.

 

 

그리고 꽃밭. 온통 노랑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선 사방에서 돌비서라운드로 들리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마구 뒤섞인다.

 

 

 

해발 3천미터 고지대에서 오르내리막하다보니 온통 안개 속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그 중 하나의 꼭지점에서 잠시 휴식.

 

 

성수기에는 저 집에서 음료도 팔고 물도 팔고 그런다는데 지금은 그저 텅 비어있는 버려진 초막 같은 느낌.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노란 꽃들과 보라색 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풍경, 그 가운데로 뻗어나가는 구불구불한 오솔길까지.

 

 

 

 

 

왜 그 등산화를 포함해서 등산용품들을 선전하는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히말라야 트레킹' 장면 같은 멋진 풍경들이다.

 

 

 

나무가 꺽여나간 그루터기 위, 소담한 이끼와 이파리들이 하나의 조그마한 숲을 이루었다.

 

중간에 들른 어느 마을, 하루에 20여킬로씩 걷다 보면 마을을 최소한 세네개는 지나게 되는 것 같다. 여긴 입구부터 버섯을 말리는 중.

 

잠시 차 한잔 마시며 쉬었다 갈까 하다가, 별로 힘들지 않은 길이고 걷기에 참 좋은 길이어서 그냥 계속 가기로.

 

 

 

 

중간에 만난 자그마한 폭포.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은 어찌나 물이 많은지, 사방에서 조그마한 내와 폭포가 흘러넘친다.

 

 

개울을 지나는데 깜짝, 이렇게 돌탑을 쌓아두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건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납작평평한 이 동네에서

 

자주 보이는 돌들이 이런 돌탑을 쌓는데에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굉장히 엉성하게 나무 두어그루를 묶어둔 것도 있고, 이렇게 제법 꼴을 갖춘 것도 있고.

 

 

 

알게 모르게 설렁설렁 올라가는 길 같기도 하고, 갈수록 점점 산이 깊어진다는 느낌은 짙어진다.

 

그리고 해발 2,870여미터의 고레파니에서 삼백여미터 아랫춤의 타다파니(해발 2,590미터)까지 도착해서 점심시간.

 

 

 

푼힐전망대, 안나푸르나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3,210미터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게 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직전의 데우랄리쯤과 비슷한 고도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새벽 4시반부터 롯지를 나와 산행을 시작한 건,

 

이 전망대에서 해뜨는 걸 보며 동시에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마차푸챠레, 닐길리, 힌출리 등의 이름 높은 산들을

 

바라보고자 함이지만, 사실 밤새 구름이 많이 끼고 심지어 비도 조금 내렸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드랜턴으로 헤치며 근 1시간가까이 헉헉대며 산행을 했을까, 해발 2,874미터에 위치한 고레파니에서 수직으로

 

약 400미터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 셈이니 생각보다 거친 산행이었던 셈이다. 슬몃 하늘이 밝아진다 싶을 때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멀리 닐기리 산의 눈덮인 정상부가 짙은 구름 사이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는 게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구름에 숨은 상태.

 

 

우선 전망대에 위치한 찻집에서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몸을 좀 녹였다. 보통 롯지에서는 50루피 내외(KRW 500원 정도)이던 찌야가

 

무려 240루피. 역시나 여기서도 네팔 본국 사람에 대한 우대는 여전해서, 같은 찌야가 고작 120루피. 대개 그렇듯 차 역시 반값이다.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날카로운 삼각뿔 형태의 안나푸르나 사우스에 갈갈이 찢기면서도 하릴없이 몰려왔다. 볼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한쪽의 벤치에는 쌍쌍이 앉아 있는 커플들, 마치 알프스의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산정에 오른 듯한 분위기를 연출 중이다.

 

구름이 없이 맑은 날이면 전망대 아랫춤에 붙어있는 그림처럼 쭈욱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끈덕지게 시야를 가로막던 구름들이 조금씩 산개하며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의 전망탑. 하늘은 파래졌지만 사실 아직 태양이 지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은, 그야말로 일출 직전의 긴장감.

 

 

밤새 이슬이 내려앉은 어느 벤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봉우리들.

 

 

삐쭉, 봉우리가 구름 위로 솟았지만 여전히 계속 감질나는 시츄에이션.

 

그 와중에 봉우리들 틈새로 햇살이 빗겨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묵담채화도 아니고, 옅은 금빛의 햇살이 시꺼먼 산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서서히 채비를 갖췄다.

 

 

 

끝내 맑은 하늘을 못 보려는가 싶으면서도 뭐 딱히 서두를 거 있나,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

 

사실 딱히 안나푸르나 사우스니 마차푸챠레니 하는 봉우리들이 하나씩 툭툭 불거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난 푼힐 트레킹 코스

 

말고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갈 거고, 그러면 계속해서 그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게 될 테니 급할 건 없다.

 

 

 

오호라, 그렇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를 대면할 수 있었다. 금빛 아침햇살을 머금고

 

반짝거리는 새하얗고 매끄러워 보이는 만년설의 질감이란. 게다가 저토록 섬세한 디테일들이 맨눈에도 쉽게 드러나다니 감탄 또 감탄.

 

 

실컷 감상을 하고서 슬슬 내려오면서도 계속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뒤를 지켜 주었다. 이제 모두 저멀리로 날아가버린 구름들,

 

가끔 깃털인양 한두조각씩 걸쳐지는 구름들을 불어내면서 그 거대하고 웅장한, 위엄돋는 봉우리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쉬웠다. 우선 날이 밝아 발밑이 안전했고, 줄곧 내리막이었으며, 배가 고팠으니깐. 금세 푼힐전망대의

 

티켓 오피스를 지났고 이내 고레파니의 숙소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고레파니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의 회전문. 대체 왜 저런 문을 설치했나 했더니, 닭이니 염소니 물소니 그런 것들이 함부로

 

마을 경계를 넘어 도망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서는 우선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로 30여분 걸리는 포카라로 이동해야 한다. 아침 8시반 비행기로 출발,

 

포카라에 도착후 다시 택시로 한시간여 비포장도로를 달려 트레킹의 최초 출발점인 나야풀Nayapul에 도착하다.

 

 

이로써 해발 850미터의 포카라에서 1,070미터의 나야풀까지는 수월하게 도착. 이제 3,200여미터의 푼힐 전망대를 찍고 다시

 

3,700미터의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고 돌아오는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얄포름하고 앙상한 철판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구름다리. 지나는데 20여킬로그램에 달하는 가방무게에 체중이 더해져 출렁출렁.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끼고 사는 마을이라 역시 애들 낙서조차 범상치 않다. 삐죽삐죽한 산들 아래 마을, 그 앞엔 왈칵 휘여돌아가는 강.

 

골목길을 연해 활짝 뚫려 있는 이발소 아저씨는 내 카메라를 보더니 슬며시 포즈를 잡으며 미소를 짓는다. 머리는 집에 가서

 

감아야 한다는 게 네팔 이발소의 법도.

 

개와 닭들이 이렇게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정경. 확실히 평화로운 시골 동네 분위기가 물씬 배어난다.

 

 

골목이 끝나갈 무렵의 조그마한 '마트'. 바닥에 앉아 동생과 놀던 아이가 내 쪽을 손짓하며 뭐라뭐라 신나서 떠드는 중.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유용한 수송수단이 된다는 당나귀들. 길가에 똥을 어지간히도 싸질러놓는지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만드는.

 

 

다리를 지나고 체크포인트에서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를 확인받고 나서는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결정.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어있는 저 스위치들, 숫자는 많지만 정작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자주 끊긴다고 한다.

 

샤워설비가 굉장히 열악해 보이는구나, 벌써 땀은 이렇게 흐르는데. 싶었지만..나중에 3000미터 위에서부턴 샤워도 못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시점에서 샤워를 하면 자칫 감기에 걸려 고산병으로 고생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아예 제대로 씻기조차 포기.

 

티벳 불교도의 상징, 울긋불긋한 깃대를 올린 집. 사실 히말라야 산에 깃든 사람들은 대개 티벳 불교도라서

 

거의 모든 롯지(산장)에서 이런 깃대와 장식들을 볼 수 있었다.

 

첫 점심. 네팔의 전통음식이라 해야 하나, 달밧. '달'은 콩으로 만든 스프를 의미하고 '밧'은 흰쌀밥을 의미한다.

 

거기에 두어가지 찬을 더해서 제공되는 음식이 달밧. 첫 음식이니만치 든든하게 치킨 커리를 추가로 주문.

 

산장 겸 식당을 운영하는 롯지의 주인 아주머니가 쓰는 낡은 계산기와 장부.

 

그리고 다시, 1일차 오후로 접어들었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월정사로도 유명하지만, 산기슭을 따라 걷는 전나무숲 산책로가 참 좋다. 산책로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울.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여름. 저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나뭇잎들이 흙바닥에 점점이 박혔다. 레오파드 무늬.

 

 

어느결에 문득 추워질 계절을 예감하고는 더운 날씨에 도토리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들.

 

 

마른 흙길을 가운데 두고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 어디선가 짙은 숲향이 번져나오는 산책로.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비어나가다 끝내 쓰러지고 만 거대한 나무둥치.

 

 

 

그리고  그 산책로 끝에 있던 멋진 기와를 얹은 대문. 여기까지 대충 한시간 유유자적 걸었으니 다시 한시간 돌아가면 된다.

 

 

월정사에 들어서는 길에. 저 회전하는 탑 같은 걸 잡고서 한바퀴 돌릴 때마다 공덕이 높아진다던가. 소원을 이뤄준다던가.

 

 

 

탑을 가운데 품고서 사방에 들쭉날쭉 늘어선 날아갈듯한 기와지붕들.

 

탑 꼭대기에 얹힌 장식을 바싹 당겨서 살펴보니 굉장히 섬세하다. 맨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디테일들.

 

 

 

화려한 단청과, 단청의 기본 오방색을 테두리에 두른 북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저렇게 빈티지스러워졌다.

 

월정사로 건너오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계단.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초록빛이 그득하던 오대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꺾어들어왔던 길, 등산할 생각은 없었지만

 

월정사랑 전나무숲 산책로를 걸었던 것 만으로도 무지 좋았던 기억.

 

 

 

 

서울 무악재역에서 내리면 양쪽으로 인왕산, 그리고 안산이 우뚝 솟아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멀리는 남산N타워니 국회의사당이니 63빌딩까지.

 

안산 봉우리에 있는 봉수대, 아무래도 봉수대는 입지상 훤히 트여있고 사방에 가릴 것이 없어야 할 테니 전망이 시원하다.

 

3호선 무악재역에서 내려 안산 등산로를 찾아 걸어올라가던 길, 어찌나 경사가 가파르던지

 

뒤를 돌아보니 산길을 밟기도 전에 벌써 정상에 다다를 듯한 높이에 올라버렸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들고도 이런 길을 좀 더 걸어야 한다.

 

태풍이 온다더니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완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단을 오르는 길.

 

마을 주민분들은 동네 마실 나온 차림으로 성큼성큼 잘도 오르시던데,

 

서울 한가운데 있는 산 치고는 생각보다 공간도 넓고 걷는 거리도 좀 있다 싶다.

 

그래도 봉수대까지 올라가서 내려다본 서울 전경은 참 좋았다. 아랫쪽에 서대문 형무소도 보이고, 위로는 남산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걸려있는 대형 태극기의 사괘까지 또렷하게 들어오는 정도랄까. 아기자기한 아파트 무더기들은 덤이다.

 

그리고 시야를 조금 왼쪽으로 틀면 인왕산, 그 건너편 산등성이를 끼고 청와대가 있겠지. 위에는 성벽이 이어져있다.

 

그리고 아예 왼쪽으로 확 꺾어버리니 왼쪽 안산의 둔치에서부터 오른쪽 인왕산의 아랫품까지,

 

주욱 늘어서있는 무악재 인근의 생활권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 오글오글한 풍경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저 멀리 63빌딩이 꼽혀 있는 여의도가 보이고.

 

거기서 조금더 오른편을 바라보면 뿌옇게나마 국회의사당의 푸른 돔 지붕이 보인다.

 

 

한참을 봉화대 근처에서 이리저리 서울 곳곳을 굽어보다가 내려가는 길. 사실 초행길이고 갈피가 안 잡혀서 그랬지

 

그렇게 험하거나 멀지는 않은 오름길이었다. 내려갈 때는 한결 부담없고 가벼운 마음으로. 헬기 착륙 사인을 지나.

 

대부분의 시간에 그늘을 머금고 있을 산의 서쪽면, 나무들의 서쪽면에는 짙푸른 이끼가 그대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나무 등걸에는 어김없이 버섯이 오돌토돌 돋아나 있었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시멘트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날 벽, 그 위에서부터 쪼르르 조그마한 잎들을 늘어뜨린 덩굴손.

 

산을 거의 다 내려온 즈음, 엉성한 울타리를 만들어둔다며 세워둔 두툼하고 녹슨 쇠파이프 기둥 속에서 피어난 이파리들.

 

그리고, 어느 풀밭에 살포시 내려앉은 노랑색 하트 잎사귀.

 

 

 

언젠가 다음번에는 서울에 어둠이 살풋 드리운 저녁 시간에 맞추어 올라와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삼각대는 필수, 이쪽 방향에서라면 꽤나 멋진 서울의 야경을 찍을 수 있을지도.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KBS중계소부터 울릉도 성인봉 오르는 길, 계획없이 일행없이, 또 정해진 숙소없이 가는 길이었는지라 그냥

 

내키는 대로 걷고 쉬고 걸었다. 초반에 가팔랐던 비탈길은 정말 쉬엄쉬엄 올랐고.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길을 지나 구름다리를 출렁출렁, 그냥 얌전히 지나려다가 괜히 우다다 뛰어서 건너보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잠시 앉았다가 누웠다가 온몸으로 그 출렁이는 진동을 맛보기도 하고.

 

 

고사리같은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선 바람이 일일이 그 조그마한 이파리들을 손잡아주는 걸 보았고.

 

 

안개가 슬슬 서리기 시작하는 울릉도 깊은 산속의 흐릿한 풍경.

 

 

 

 

어디선가 숲의 정령이 톡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 이어졌다.

 

 

그냥 아무 말없이, 가슴속 깊이 숲의 초록향을 들이마시며,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나무들이 드릴처럼 윙윙 뿌리를 맹렬히 땅에다 대고 회전시켜 박아버린 느낌이다. 덕분에 좁다란 숲길마저 같이 휘감긴.

 

 

 

인적조차 없는 등산로.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숲길이어서 문득 현실감이 희박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퍼뜩 현실에 발딛게 해줬던 건 저런 산악회들의 끄나풀, 그리고 살짝 거슬리던 쥐새끼들.

 

 * 울릉도 때아닌 ‘들쥐와의 전쟁’ (2012. 6. 21, 문화일보)

 

 

기사에 여러 차례 다뤄질 만큼 들쥐들이 창궐한 것도 사실인 거 같고, 고양이가 있는 민가나 마을이 아닌 천적이 없는

 

산으로 전부 올라와 사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뭐..피리부는 사나이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하여간 쥐가 문제...)

 

 

그래도, 들쥐 한마리가 길 앞섶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울릉도에서 사는 검은비둘기가 푸드덕거리며 머리 위 나뭇가지를 박차고 도망가는 게 더 사람을 놀래킨다.

 

 

 

 

이런 정경에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그저 아슴프레하고 꿈결같던 풍경.

 

촉촉하게 젖은 공기에 오래 묵은 나무 향기와 흙내음이 가득 담겨있던.

 

 

 

 

그리고 성인봉을 900미터 남겨둔 지점. 도동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대충 4~5km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함 될 듯.

 

KBS중계소를 기점으로 해서도 거리가 별반 차이는 없을 듯.

 

 

 

그리고 초록빛 운무를 꿰뚫고 나려든 빛무리.

 

 

오히려 정상에 오르니 구름인지 안개인지 뿌옇던 시야가 말끔해졌다. 성인봉 중턱에 짙게 드리웠던 커튼을 뚫고 올랐다.

 

 

성인봉 정상의 표석.

 

 

울릉도를 에워싼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바다. 그리고 희뿌연 하늘.

 

울릉도의 듬성듬성한 봉우리들이 구름바다 위로 섬처럼 솟았다.

 

 

검은 비둘기가 날고, 온갖 산새들이 지저귀고, 그리고 구름은 잠시동안 지켜보는 와중에도 시시각각 물결친다.

 

 

 

 

 

싱싱한 대궁이 아직 살아있는데, 그 위에 얹힌 꽃은 물기가 삭 날아가고 가을이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가볍고

얄포름한 꽃잎은 바람 한오라기에도 자칫 바스라질 듯 위태롭게 아름답다.






잎사귀를 전부 떨군 은행나무, 그리고 그 밑에 소보록하니 쌓인 노란색 카펫. 이제 앙상하지만 촘촘한 잔가지를

가득 이고 있는 은행나무를 거꾸로 쥐고선 사각사각 쓸어내면 좋을 듯.

고등어는 등푸른생선, 등은 푸르고 배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소나무도 비슷한 투톤으로 바뀌었다. 등은 여전히

초록색이고 배는 갈빛으로 바뀌어버렸다.




도마뱀이 숨어있는 사진. 깨끗한 1급의 자연환경에서만 사는 게 도마뱀이라고 들었는데, 여긴 그만큼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하긴 이미 나 있던 등산로도 아니고 산 칠부능선 어딘가부터 잔뜩 헤매며 길아닌

길을 만들며 무작정 위로 오르고 있었으니.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로 지나는 등산객들을 툭툭 밀쳐낼 거 같은 압박감을 주던 나무.




무당집이나 성황당에 걸린 불그죽죽한 리본들을 연상시키던, 온갖 산악회들이 명성산에 남기고 간 흔적.



나방이 숨어있는 사진. 털이 복슬복슬한 나방은...징그럽지만, 그래도 사진 속에서도 역시 징그럽긴 하다.

누군가가 반듯하게 마모된 돌판 위에 가지런히 낙엽 세 장을 펼쳐 놓았다. 상처도 제법 있고 끄트머리엔 벌레도

슬었는지 색깔도 누렇게 죽은 부위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색감이란 역시. 가을이다.








전봇대를 따라 기어오르던 덩굴은, 미처 꼭대기를 못 밟고 가을을 맞았나보다. 이미 이파리는 거의 떨어져버렸고,

몇장 남지 않은 이파리가 세상의 모진 풍파는 다 겪은 표정으로 깔딱깔딱 붙어있었다.


백운산에 오르려다 개울을 만났다. 날이 풀리고 산이 뱉어내는 물, 개울 너머가 궁금해서

결국 벗어던진 양말과 신발 속 창백한 맨발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花. 신발을 벗어던지고 시원하다 못해 모세혈관까지 꽁꽁 얼어붙는 듯한 개울에 발담그게 만든

풍경, 낙엽이 갈빛으로 깔린 바닥 가운데로 개울이 졸졸거리며 흐르고, 나무들엔 물이 올라

불쑥 연두색 새순이 돋았고, 개울 옆에는 점점이 노랑빛 꽃이 한웅큼씩.

水.
마침 드문드문 내렸던 비로 물이 불기도 했나보다. 수량이 넘쳐서 곳곳에 엉킨 채 섬을 이룬

낙엽들, 벚꽃잎들, 그리고 위에서부터 떠내려왔을 썩은 나뭇가지들. 그렇게 자연이 순환하는

개울 위로 세상은 온통 푸릇푸릇하다.

 


花. 산등성에 가렸는지 아직 꽃눈이 채 다 벌어지지 않은 꽃송이들이 있었다. 분홍색 빛깔이

여리여리하면서도 어찌나 곱던지, 뒷배경처럼 싱싱한 연두빛이 깔린 위에 압정처럼

꽂혀있는 꽃봉오리들이 조만간 폭죽처럼 펑펑 터뜨려지리란 예감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生. 땅을 온통 뒤덮은 채  사체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난 얄포름하고 여린 이파리들이

눈에 띈다 싶더니, 그 위에 얹힌채 바람에 풀썩이는 노랑 알갱이들이 궁금했다. 잔뜩 몸을

구부려 눈에 힘을 주니 보이는 건 꼬물거리는 아기 거미들.

新綠. 그야말로 신록, 올해 새롭게 뻗어나는 녹색의 잎사귀들. 하늘을 향해 양손을 활짝 펼친

그런 겁없고 당찬 느낌이다. 온몸을 들어 하늘로 향하는 듯한, 그런 거침없고 적극적인

모양새 덕에 굉장히 동적인 분위기가 나는 거다. 게다가 저 이파리들에 햇살이라도 비칠라치면,

온통 속살까지 투명하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모습이라니.

 

影. 산이 흘려낸 물들은 모두 저수지로 모였다. 봄바람이 불자 바다처럼 잔물결이 일었지만,

그래도 제법 잔잔한 수면 위로 녹색의 나무가, 녹색의 둑길이, 녹색의 산이 전부 담겼다.

가을철의 나무처럼 아직은 헐벗고 앙상해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좀더 부드럽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이 역시, 봄날의 새순을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물씬 맴돌았다.





정답 : 얕은 내에 웅크리고 있는 도롱뇽알들.

@ 백운산


일시 : 2011년 5월 6일(화) PM 15:55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괴물체의 정체가 뭘까요, 맞춰주세요.
             (얼핏 보면 똥 같기도 하고, 구불구불 이어진 게 뱀같기도 한..)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5장


In Hon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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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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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황사라더니 햇살만 눈부시던 날. 아무래도 5월의 첫날 메이데이의 집회/시위를 막으려던

음모는 아닌가 싶도록 그럴 듯한 날씨였다. 붉은 목련이 햇살을 맞고 온통 하얗게 탈색된 그런 날.

서울 근교에 있어 지하철로도 갈 수 있는 경기도 모락산, 산 이름을 발음하니 재미있다 싶었는데

사모할 모, 낙양 낙, 해서 조선시대 왕이 낙양을 사모하며 올랐던 산이라나. 봄볕이 갸냘픈 신록을

뚫고 뚝뚝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그런 산길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들어가니 좀더 짙어진 나뭇가지들의 차양, 덕분에 좀더 짙어진 녹색과 갈색의 향연.

자잘한 잎새들이 사방에 온통 튀어버린 페인트 물감처럼 점점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사가 극심할 거라는 일기예보 탓인 듯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고즈넉한 산길.

겨울산이 잔뜩 품었던 잔설들이 투명하고 맑은 물이 되어 산의 옆구리에서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

사람들이 걸어서 오르내리던 계단이 한단한단 물그릇이 되어서 잔뜩 물을 움켜놓았다.

하늘이 조금 뿌옇긴 했지만, 그래도 갓난애 뺨같이 보들거리고 싱그러운 느낌의 둥근 산자락이다.

아스파라거스나 브로콜리처럼 봉긋봉긋, 그러면서도 울룩불룩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산등성에서 또다른 등성으로 넘어가는 길, 잘 정돈된 잔잔한 평지를 지나니 또다시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핏줄처럼 돋아난 오르막길이다. 뭐하나 반듯하게 수평이 잡히지도 않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기울어진 천연 나무계단에 약간씩 뒤틀려 자라나는 나무들, 덩달아 지나는 사람들도

제각기의 각도로 기울어진 채 산을 타고 있었다.

잔뜩 말라붙은 채 두껍게 나무에 덧붙어있는 껍질들, 드문드문 떨어져나간 모습이 더 황량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반짝반짝 연두빛 꼬마전구들이 켜진 덕에 조금은 부드럽게 다독다독. 근데 저건

무슨 코르크나무도 아닌데 나무껍데기가 저렇게 두꺼운가.


아무래도 블랙 & 화이트의 그림에서는 뭔가 서늘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는 거 같다. 아무래도

봄의 신록을 잡아내기에는, 저렇게 하늘 향해 조막손을 펼친 새순들을 찍는다 해도 왠지 그냥

전부 겨울산, 겨울나무 같은 느낌. 뭔가 분위기도 무거워지고 사연있는 느낌이랄까.

여릿한 잎사귀의 유아틱하게 작고 귀여운 비율을 가진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채 제대로

염색되지 않은 옅고 여린 빛깔이 아무래도 어린 잎의 뽀인트 아닐까. 저런 연두빛 잎새로

쫙 한줄기 햇살이라도 들이치면.


문득 느낌이 이상해서 하늘을 보면, 문득 파란빛이 담겼다간 이내 뿌옇게 흐린 구름이나 먼지에

덮여버리곤 하는,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날씨. 그런 침침한 하늘 아래 침침하게 뻗는 나무의

잔가지들, 그리고 물기 뺀 큰 붓을 비틀어 대충 꾹꾹 누른 듯한 연두빛뭉치들. 청소 오랫동안


안한 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 같기도 하다.

모락산 정상,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라 쉬엄쉬엄 오르멍 사진찍으멍 밥먹으멍 놀았지만 금세

올라버렸다. 아래로 펼쳐진 건, 자줏빛 진달래숲, 연둣빛 나무숲, 그리고 회색빛 아파트숲.

휘휘 둘러보다가 문득 시선이 콱 꽂혔던 풍경이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지만 저게 황사인지

안개인지 구름인지는 모르겠고, 그 아래 여전히 까슬한 채 잎사귀옷을 챙기지 못한 나무들이

부드럽게 뭉개져버린 풍경 속, 연둣빛이 저렇게 강렬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모락산에서 능선을 타고 가면 바로 이어지는 백운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뭐,

표지판이 말해주겠지 싶어서 설렁설렁 내딛던 발걸음. 양쪽으로 아직은 힘이 덜 붙고 나이가

덜 찬 나무들이 구불구불 길을 만들어주던 그 오솔길을 세심하게 헤아려주던 봄바람.

지루했던 겨울과 지겨워질 여름 사이에서 잠깐 주어지는 봄날, 한눈팔 시간도 없는 거다.




봄이면 으레 드는 생각. 뭔가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저런 생명을 품고 있었구나. 만물이

푸릇푸릇 움트기 시작하고 죽은 듯하던 나뭇가지에서 어여쁜 연두빛의 잎사귀가 꼬물꼬물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작고 여려서 손가락끝 갖다대기도 저어스러워지는

그런 여린 속살이 어떻게 저런 딱딱하고 두텁한 나뭇가지를 뚫고 나왔을까.

거칠한 나뭇가지를 기어가는 빨간 벌레인 줄 알고 자세히 살폈더니 꽃눈이었다. 전혀 나뭇가지와

어울리지도 않고 융화해보이지도 않는, 툭 돌출한 까실까실한 꽃눈. 일단 한번 눈에 뜨이고 나니

나뭇가지 곳곳에서 툭툭 터져나오고 있었다. 정답을 알고 난 숨은 그림찾기처럼.

고만고만하니 고개만 삐죽이 내민 꽃눈, 잎눈들이 아니라 나름 날개를 펼친 아이들. 바싹 마른채

툭툭 분지러질 거 같이 위태한 나뭇가지 끝에서 한웅큼 새순이 올랐다. 보기만 해도 보들보들.

그렇다고 이 따뜻한 봄날이 온통 생명의 기운,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만 충만한 건 아니다.

겨우내 산이 품고 있던 물들이 흘러넘치는 개울가에 푹신하도록 뭉쳐있는 솔잎들, 그리고

이미 분해되기 시작한 그 주검들 위에 내려앉은 얇고 투명한 벚꽃잎들. 쓰나미가 몰아닥쳐

온갖 부산물들이 뒤엉킨 그런 현장처럼 뒤숭숭하고 비감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드문드문 바람결에 휘감겨 개울로 낙하하는 벚꽃잎들. 이미 많이 상하고 시든

꽃잎이지만 벚꽃잎의 위엄은 그대로다. 새하얀, 투명한, 그리고 입술처럼 감각적인 모양새까지.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돌틈에 숨어 한숨 돌리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만나서

넝출거리며 비비대기도 하고.


물살이 빨라지는 곳, 돌멩이 위에 차곡차곡 잔뜩 걸려있는 낙엽들 위에 슬쩍 얹혀버린 꽃잎

한장이 동그란 구멍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글보글 봄볕에 끓는 물빛이 투명하기만 했다.

더러는 이렇게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어딘가에 단단히 정박중인 고목나무를 붙잡고 있기도.

옆에는 그새 형체를 사그라들어가버린 벚꽃잎의 자취가 남았다. 조금은 서늘한 기분.

개울가 옆에 하얗게 내려앉은 벚꽃잎들, 녹지 않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 듯한 기세로

바닥을 온통 하얗게 덮은 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나풀.

 

개울이 흘러 저수지에 다다랐다. 전날의 폭우로 잔뜩 흐려진 수면 위에서 더욱 싱그러운

연두빛의 잔가지들. 저 수많은 뉘앙스의 색감을 표현할 단어란, 초록색, 연두색, 연두빛,

풀색, 누런색, 노랑색 등등이 뒤적뒤적 뭉쳐진 그 무언가쯤이 되려나.

딱딱하고 바싹 말라 되려 쭉쭉 갈라터지는 나뭇가지 속에 저런 솜털보송보송한 잎사귀가

숨어있었다는 것도, 조그만 티눈같았을 점에서부터 저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잎사귀

형체를 뻗어내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 부드러운 잎사귀에 떨어지는 이 따사롭고

포근포근한 봄볕까지. 모든 게 다 황홀하던 어느 봄날.




@ 백운산.(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옆)

하늘을 이리저리 내키는대로 구획하고 있던 까맣고 강단진 나뭇가지들이 까칠해 보였지만,

그네들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주홍빛의 살짝 길쭉하고 둥근 열매는 마냥 풍만해보였다.

장대가 닿기 쉬운 가지 아랫자락은 몽창 털린 채, 바짝 손들고 선 나무 꼭대기층에나

듬성듬성 남은 채 대책없이 매달려있던 감들. 정확히 말하자면 감 중에서도 대봉시들이다.

감을 딴다는 것, 감이 아니라도 나무에 달린 뭔가를 딴다는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사실

평소에 별로 생각을 해볼 일도 아니고 상상을 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나무

작대기 끝에 천으로 대강 기워진 주머니를 달아서는 하나씩-좀 숙달되면 세네개씩-따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없단 건 조금은 놀랍달까. 더 편하고 더 빠른 방법이 없다니.

감나무를 기어오르기란 생각보다 수월한 게 디딜만한 어깨를 여기저기에 마련해둔 거다.

나무 높이의 반절만 기어올라도 잔뜩 달고 있는 묵직한 대봉시들의 무게로 추욱축 늘어진

가지를 손쉽게 털 수 있다. 여차하면 장대 대신 손만 뻗어도 될 만큼 눈앞에 매달린 녀석들.

감나무에 달린 건 감뿐 아니라 지저분하게 말라붙은 감잎새들도 있어서, 사진 찍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를 찍으려니 잎사귀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수목에 뭔가 너무 지저분해 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거의 감나무와 밤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이 산에서 정말 가을철 한 때는 온통 감빛 열매가 지천에 매달린 풍경은 꼭 정제되고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닌 게 사실이니까.

올해는 태풍도 여러 번 다녀가고, 감산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여느 해보다 감이 조금 달린

편이라고 했지만 딱히 작년이나 이전의 풍경을 못 봤으니 이 자체로 충분히 감탄하고 말았다.

저렇게 얇고 허약한 가지 끄트머리에 저토록 씨알이 굵고 무거운 열매를 우글우글하게

피워올린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 그야말로 일종의 기적인 듯 싶다.

보다 보면 나무 끝에 이렇게 이쁜 엉덩이처럼 두개가 톡 붙어서 몽실몽실 커나간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브이자로 갈라져 자라나간 가지 양끝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듯 마주보며 커나간

녀석들도 있었다. 저런 녀석들은 장대를 요리조리 움직여 한큐에 담아내는 재미도 있지만

가지째 잘 꺽어내서 어딘가 걸어둔채 오늘의 가을을 기억하는 재미가 더 쏠쏠할 듯.

장대로 훑어낸 대봉시들은 꼭지 끝에 남아있는 나뭇가지를 떼어내고 포대에 차곡차곡 담는다.

어떻게 보면 출산이랑 같다. 나뭇가지로 연결되어 한몸이던 나무와 열매를 억지로 떼어내선

탯줄과도 같았을 '꼬다리'를 잘 정돈하고 나면 저렇게 배꼽자국이 거칠게 남는다. 이녀석들,

포대 안에서 응애응애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감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감이 익을수록, 조금씩 커질수록

감나무 가지 역시 고개를 숙여간다. 급기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툭 떨궈지고 마는 시선.




@ 경남 하동. 11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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