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계속해서 아이들을 낳으려면, 덜 방황하려면, 거대한 고독 속에서 사회적 위험물로 변하지 않으려면

모두 사랑의 열병을 앓게 해야 한다는 것이 통치자들의 판단이었다...진정한 사랑이라는 신화를 장려해야 했다.

개인들의 실패한 사랑은 어디까지나 실수로 여겨져야 한다. 물론 한두 번 실패했다고 믿음을 잃어선 안 된다.

제 몫으로 만들어진 반쪽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적 신화를 믿는 한 사람들은 맞는 짝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 광적인 요구는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몇몇 운 좋은 사람들이나 사랑을 누렸지만 이제 좋은 것은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민주주의 이상에

따라 우리 사회는 사랑을 모든 이와 그네들 일생의 중심이자 기본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 구도가 완성되려면

어느 정도 성적 충동을 해방시켜야 했지만 대신 성행위는 어디까지나 사랑의 수단이란 걸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랑 없는 섹스는 모욕이고 착취이며 상대를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란 생각은 금세 만인의 지지를

얻었다...


공권력은 일체의 감상적 사랑을 배제한 섹스만으로는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간파했다. 그러므로

대중을 시장 원리에 복종시키려면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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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다 보면, 모든 것이 사랑을 위해, 혹은 사랑을 기다리기 위해 준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녀와 데이트를 하고 싶으면 자동차부터 장만하고, 멋진 남자를 잡으려면 마스카라부터 사라고, 남편에게

사랑받으려면 밥솥을 바꾸고, 아이들의 사랑을 얻으려면 보험에 들어라는 식이다. '죽어도 좋아'란 영화는,

이제 어르신네들까지 쑤석거리면서 그 사랑찾기 대열에 합류시키려는 '놈들'의 프로파간다일지 모른다.

OST는 끝까지 반짝반짝했지만, 스토리는 갈수록 값싼 광택을 내는 플라스틱보석처럼 후져버린 '소울메이트'..

뒤늦게서야 우르르 봐버리고 나서의 씁쓸한 뒷맛을 말끔히 씻어낸 소독용의 매콤한 공업용 메탄올같은 책.

단 메탄올은 에탄올이 없을 때 고작해야 입에 머금을 정도의 대용품일 뿐, 삼키면 죽는다.

사랑하면 죽는다 - 6점
마르셀라 이아쿱 지음, 홍은주 옮김/세계사


나만 그런 걸까. 두 사람의 관계는 대개 '넌 참 이기적이야'란 말, 그리고 '난 정상'이라는 암묵적인 말로 하는

땅따먹기같다. 어디까지가 과연 이기적인 건지..그리고 어디부터가 이타적인 건지 그 명확치 않은 경계설정과

의미부여는 당연히 어느 쪽이 더 약한지에 달려있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하다란 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잡히고 있단 얘기. 투전판에서 패를 몽창 까보인

후에야 뭘 어쩌겠는가. 그래서 게임같은 연애를 즐기는 건, 상대와의 샅바싸움이기도 하고 꼬리잡기 게임같은

건지도 몰라. 상대보다 조금은 더 우월한 고지에서..내 마음은 보전한 채 상대의 마음을 뺏겠다는 그야말로

'이기적인' 경기규칙.


이번에는 그 이기적인 경기규칙을 넘어서서, '난 정상/넌 이기적'이란 자기중심적인 소아병을 이겨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관계는 살벌한 투전판 위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봄볕에 갓 말린 보송한 이불 위에서 뒹굴듯

그렇게 다정하고 장난스런, 그치만 서로를 위한 긴 여정 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엑셀로드의 게임이론이

망측스럽게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무한반복될 거라 믿는 게임에선 윈-윈의 가능성을 찾는 게 인간이니까..

약점을 처음에 누가 먼저 얼마나 많이 쥐어주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쥐어준 건 내 약점이지만, 그녀는 내 약점을 이해하고 고이 보듬어줄 보석함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들며 협박하는 게 아니라 외려 약점에서 장점과 강점을 발견해내며..넌 약하지 않아,

혹은 난 너만큼 약해..라고 말해주는 것. 그런 게 가능할 거라 믿었다.


물론 모르지 않았다. 한발 밀리고 두발 밀리다 보면 과연 내가 어디까지 양보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질 뿐

아니라, 그녀 역시 '난 정상'이라며 강변할 영역 역시 한없이 넓어지게 만드는 거라고. 길들임..이라는 단어를

이런 때도 쓸 수 있다면, 최소한 내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그어놓고 그건 지켜내야 하는 거라고

그녀에게 알려야 했고, 나 역시 그녀와 함께 그 경계에 길들여져야 했다.


다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난 그럴 수 없었고 한발 두발 밀려났다. 그저 밀려났다고 불안감만을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한발 두발 밀고 들어왔다기보다는, 자신이 밀려났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우린

그저 처음 우리가 그어놓았던 '이기적'이란 의미 그곳에서 한걸음도 밀리거나 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밀려났다고, 비참해지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 묻는다. 난 이기적이었나. 이기적으로 변해갔나. 자기애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연애놀음에서 한발짝이라도

멀어져서, 상대를 진정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입장에 서 본적이 있었던가.


운전을 할 때, 특히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면, 종종 앞차와의 추격전을 벌이곤 한다. 앞의 검은색 그랜저,

50m, 30m, 10m, 0m, 아싸..추월. 그리곤? 다시 앞에 차가 나타난다. 이번엔 흰색 카렌스, 50m, 30m, 10m, 0m,

다시 추월. 계속해서 내 앞의 차들을 넘어서고 도로를 장악하려고 한다. 거침없는 정복욕이랄까..

때론 추월하려던 목표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더욱 거리만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일렁이는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상처입는 자존심. 비록 여전히 전반적인 도로의 흐름보다 앞서 있다 할지라도, 그래서 여전히

앞서 뛰어넘었던 몇 대의 차들을 뒤에 두고 있다 할지라도 이미 먹어버린 것들은 기억하지 않는 나쁜 습관.


그런 습관의 발현인 걸까. 기억나지 않는다. 난...노력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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