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본적인, 그래서 쉽게 눈에 띄는 문제들만 해결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리고도 일단 풍경이 성립되고 나면, 그 기원은 은폐되고 만다. 쇠고기가 시중에 풀리면서

점차 촛불의 당위성과 에너지가 부식되듯...)

안전한 식품을 먹을 권리라거나, 외국에 나가서 사고를 당할 때에도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라거나, 어떠한

성격의 정책을 추진하던 과정상의 민주주의는 지켜지는...그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ABC는 '국가(권력)'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절차적/의례적 민주주의가 다져지면서 그정도는

누가 수권하더라도 최소한 확보될 거라 생각했다. MB가 당선될 거 같은 분위기에서 이민가야 되겠다고, 농담삼아

친구들과 말하기도 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나를 좌절시키고 있는 중이다.



보통 시위에서 자국기를 흔드는게 우파건만, 조중동과 보수세력들이 손가락질하는 '좌파빨갱이'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나라란 것부터 개인적으로는 맘에 안들지만, 어쨌든 촛불이 조금만 진지해져서 얼굴의 웃음기를 지웠더니

바로 폭력세력, 시위꾼들로 매도되고 있다. 안전한 식품을 먹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 사전예방의 원칙이

주권사항이라는 근거로 이미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 항변에 실없는 변명과 같잖은 사과로 대응하며

끝내 버텨내고는 급기야 역공에 나선 MB의 꼬락서니라니.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실용'이라는 도그마에

빠져서 노무현정권을 비롯한 이전 10년의 국내외적 성과를 뒤집어 엎으려는 피해의식과 망상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금강산에서의 관광객 피격사태. 하다못해 동아일보조차 사설에서 MB를 비판한다.


"이 대통령은 사건 발생 8시간 30분이나 지나서야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늑장 보고였지만 11일 오후 2시로 예정된 국회 개원연설까지 50분의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원고 내용을 바꾸거나 별도로 유감 표명을 했어야 함에도 준비해 간 원고를 그냥 읽었다. 이 사건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고에 적힌 대로 북한에 ‘전면적 남북대화’까지 제의했다. 금강산 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대통령 연설에 박수를 친 국회의원들과 연설 생중계를 지켜본 국민이 기만당한 기분이 안 들겠는가."(08.7.14. 이명박 정부의 ‘이완과 마비’ 드러낸 금강산 대응)


물론 그간 이른바 정통 보수를 자처해온-그 안에서도 숱한 균열선이 있지만-세력들과 MB 역시 일정한

간극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며,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실용아닌 실용'을 주창하는 MB와 보수세력간의

시각차가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만의 리그나 권력 다툼, 헤게모니 다툼은 관심도 없지만 다만..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런 언급도, 예비적인 비판도 없을 수 없을까.

당장 날선 비판을 하라거나 격앙된 반응을 보이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을

보일만큼의 휴머니티를 MB에게 바라지도 않는다. 당신이 대표하는 일국의 국민이 죽은 거다. 전후사정을

모르니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면, 원칙적인 수준에서 우려와 유감을 표시하는 건 상식 아닌가. 북한에 대한

유화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북한에 대한 외교적 선물로 바치고자 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은데다가, 그의 강경일변도의 냉전적 대북정책기조의 궤를 벗어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MB에 대해 분노할 때마다 번번이 부딪히고 되새기게 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상.식'이다. 그는 상식이 없다.

좌와 우의 스펙트럼 논쟁 이전에...그는 기본적으로 상식이 없다...다른 표현을 못 찾겠다. 상식이 없다.

대통령이 뭐하는 자리인지는 알까 모르겠다.



굳이 직선형의 근대적/계몽사관적 역사관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퇴행이다. 나선형의

순환적 역사관에도 진보와 퇴행의 물결은 존재하는 거다. 분명히 이건 퇴행이다. 나로서는 지난 10년이

진보 일색이었다고도, DJ와 MH이 진보정권이었다고도 생각지 않지만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적 절차를

온존시켜왔고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선 그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담 지금은? 지금은, 제 국민을 위하지도,

국민에 의하지도, 국민의 것도 아닌 채 존립하고 있는 권력이란 측면에서...난 MB를 부정하고 싶다.



MB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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