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어버리는 건 순간이다. 드라마나 여느 영화 따위에서 흔히 나오듯 문득 움찔하는 느낌도, 물건을

떨어뜨리는 전조도, 빠바바빰~하는 비극적인 음악도 없는 거다. 그냥, 아이가 서서 손흔들던 창가가 휑해지고

집에 불이 꺼져 있다. 촛불이 훅 꺼지듯, 그렇게 아이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내 아이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경찰은 느리다. 다음날 아침이면 돌아올 거라고 태평이다. 꼭 좀

찾아달라는 눈물의 읍소 앞에 오만하고 위압적이다. 게다가 부패하고 비열한 경찰은, 아이의 실종 사건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실추(라고 쓰고 '폭로'라고 읽는 게 낫겠다)하는 악재가 되고 있음에만 주목한다.

덕분에 그녀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혼란에 빠져 사리분별도 못하는 못난이 취급받는다. 나쁜 엄마이자 못된

'암캐'가 된다. 온 동네를 돌며 '제 아이도 몰라보는 여자'로 낙인찍힌다. 정신상태를 의심받더니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감된다. 다리를 벌려 매독검사를 받는다. 제안에 따르지 않아 전기쇼크-고문-기계 위에 눕혀진다.

준비되지 못한 해군과 당국, 프락치만 준비하다.[2010-03-30]

염장 지른 경찰… 실종자 가족 틈서 사복형사들 첩보활동(경향신문, 2010-03-31)
"함미에 산소 주입? 공급할 산소가 없다는데..."(오마이뉴스, 2010-03-31)


그녀는 운다. 울고 분노한다. 그녀의 아이를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아이를 되찾고 싶었지 경찰과 거물정치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도, 새삼스럽고 쌩뚱맞은 정의감과 적대감도 없던 일반인이었다. 자신의 아이만 온전히

려받을 수 있다면 경찰과 정치인들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손바닥이 닳도록 감사하고 감사했을 착한 사람.


뒷짐진 靑, 노골적 '北風 띄우기' 용인? (프레시안, 2010-04-02)
생환 기원 詩, 인터넷에 확산…국민들 심금 울려 (동아일보, 2010-04-02)
'얼 빠진' 한나라…故 한주호 준위 입관식에서 기념 촬영 (프레시안, 2010-04-02)


그렇지만 아이를 찾는 일이 점점 경찰과 시장의 썩어빠진 곳에 빛을 비추는 일과 같아지고 말았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경찰과 시장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의 권력과 위세가, 썩어빠진 곳에서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말 '국민의 종복'이고 '정의의 지팡이'였다면, 실종된 아이 앞에서 자신의

이미지 실추나 걱정하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지 따위나 고민하진 않았을 거다.

 

하여 그녀는 울고 분노하고 일어선다. 아이를 찾아야 하겠으므로. 이악물며 수치심과 정신적학대를 견딘다.

그녀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이들과 싸워 버티곤,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 위압감으로 바닥까지 동댕이쳐져서도

욕지거릴 내뱉는다. "개자식들. 벼락맞아 뒈질 놈들." 



체인질링을 봤지만 천안호를 봐버렸다. 개자식들, 벼락맞아 뒈질 놈들은 여기 또 있다.



MB, 분명히 말하건대 '불난 민심'에 부채질하는 건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민심을 따르다 보니 지지율이 절로 올라간다는 '법칙'을 알아버린 건 좋다. 그렇지만 '나영이 사건'에 대응하는

그의 언행을 보면 민심에 편승하다 못해 차라리 민심을 자극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평생 그런 사람은

격리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대통령의 마음이 참담하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말했단다. 그리고 그 후 쏟아지는 '대책'들이란 게 그렇다.

때마침 '네티즌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개편된 청와대 홈페이지 '소통마당'에 첫날 오른 글도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글이었다. (靑 "네티즌과 상호 소통 강화" 홈피에 '소통마당' 개설, 한국일보(09.10.01)) 그의 '참담함'에

화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법을 개정하겠다,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소리가 정치권과 정부에서

나오는가 하면, 러시아에서는 화학적 거세를 한다느니 사형까지 고려해야 한다느니 언론도 가세한 참이다.


이미 이른바 '민심'은, 가해자라 추정되는 사람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고 법정최고형, 사형에

처하라는 청원까지 벌이고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은 잔뜩 성난

불붙은 민심에 MB(와 똘만이), 그리고 언론이 힘을 합쳐 기름을 뿌리며 더욱 흥분시키고 있는 격이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그 와중에 MB어천가에 여념이 없고 말이다. "국민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했다"느니, 심지어 작년

일산 경찰서를 '몸소' 방문했던 기억까지 되짚는다.([현장에서]민심 정확히 읽은 李대통령, 세계일보(09.10.01))


그 잔인무도한 사건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가해자인 성폭행 전과자의 비인간성, 그리고 법원의

납득할 수 없는 감형 사유, 법감정에 맞지 않게 가벼운 형량까지. 그렇지만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자극적이고

가다듬어지지 않은 '의견'을 표하는 것은 대통령으로 보일 언행은 아니다. MB의 말 하나에 삽들고 4대강으로

돌격하는 단무지들답게,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 자체가 '분노' 해소, 보복에 치중되어 있지 않은가.


형량을 강화한다고 범죄율을 낮출 수 있을지,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피해자가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지를

따져야 하는 거다. 앞으로 장애인으로 살게 될 피해자 아이가 사회에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지, 우리 사회의 아동보호시스템이나 '아동 복지'의 개념은 어떤 수준인지, 그런 부분을 짚어보고

고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피해자 아이는 앞으로 고작 월 10만원의 장애인 복지비를 받게 될 거라는데,

가뜩이나 빈약한 복지 예산마저 다 까먹는 건 누구냔 말이다.(나영이사건 파장...참담한 장애인의 현실)


무슨 불놀이도 아니고. MB, 오줌쌀라. 불장난 그만하고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라. 분노는

헤아리되 대응은 이성적으로, 성숙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죽여라~!'하는 사람들의 성난 외침 속에 숨어있는

변함없이 형편없는 시스템에 대한 절망, 체념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말한마디로

자신의 신념이고 평소 언행이고 다 뒤집어 버리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들의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지는 못할 망정 인민재판용 장작을 하늘높이 쌓아올리도록 방조해서는 안 된다.


혹은 일가친척 다 만나서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논하게 될 추석이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나영이 사건'

하나만 이야기하길 바라고 부채질하는 건 부디 아니길 바란다. 지나친 기우라거나 뭘해도 MB욕하는

또라이라는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굳이 '나영이 사건'에 대한 MB의 대응을 짚어보고 싶은 이유다.




모처에서 인턴을 할 때 친구가 '싸대기'와 온갖 쌍욕을 들었던 이야기다.


그 부서에는 나와 또다른 친구 하나가 투입되었는데, 미처 우리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마침 비어있는 선배

자리에 급한대로 앉으라고 했었다. 뭔가 지급된 노트북을 사용한 작업을 시켰는데 책상 위는 온통 서류와 책들이

가득 어질러져 있길래 조금씩 밀어내거나 차곡하게 쌓아두고 딱 노트북이 자리잡을 정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가 공간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본 지나가던 분이 조금씩 치워서 하라고, 괜찮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인이 없는 자리를 빌려 앉으면서 함부로 위치를 옮기는 건 기분이 나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이쁨 받겠다고 일찍 출근해서는 부서원들 책상 위를 정돈하는 인턴 이야기도 얼마 전에 들었지만, 아무리 청소라

해도 자신의 책상이나 공간에 남의 손이 타는 걸 싫어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어쨌든,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그렇게 정신없고 긴장한 채 하루를 보내고 났더니 다음날 그 선배님이

출근해서 두 명 다 호출한 거다. 이 자리 누가 앉았었어, 누가 남의 자리 앉으래, 앉아도 물건을 건드리면 되겠냐,

너는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치냐, 뭐 이런 되먹지도 않은 엑스엑스 삐삐 운운. 급기야 친구는 뺨을 맞았다.


물론 그 분의 성격 자체가 스스로 흥분을 자가발전하며 열폭하는 스타일이기도 했고, 뭐 아마 그날 따라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어디에나 그런 성격을 가진 분들은 있을 수 있고, 자칫 재수없고 잘못까지 하면 이렇게

맞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케이스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 실수한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여의치 않아 남의

자리에 잠시라도 앉게 되면 그 자리 주인의 물건들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원칙 아닐까.


남의 책상에 함부로 손만 안대면 맞을 가능성은 반으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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