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났다. 혜화는 절룩거리며 뒤에서 걷고 있는 전 남자친구 한수를 한참이나 백미러로

응시하다가, 기어를 쥔 손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었던 참이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기어를 'R'에 맞추고 차를 뒤로 움직였다.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

그야말로 수만가지 감정이 실린 수만가지 표정이 드러나있었다.


그건 그녀가 살풍경한 철거촌에서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챙겨올 때의 표정이기도 했고, 배신한

남자친구를 오년만에 조우했을 때의 표정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아이라 믿던 아이를 바라볼 때의

표정, 자신 때문에 잔뜩 쪼그라든 엄마를 볼 때의 표정, 그리고 내심 따르던 동물병원 원장의

결혼소식을 들었을 때의 표정이기도 했다.


그치만 그녀의 눈빛에 '단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하고, 겁나고, 화나고, 막막하고,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그런 떨림이 가득했었다. 단순히 남자친구를 다시 받아줄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갈 건지, 그녀의 주위사람들과 세상은 계속

그녀를 몰아세우며 답을 요구했고, 더이상 멈춰선 채 답하길 주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움직였다.


뭐였을까. 그 장면을 위해 영화는 달려온 거였을 거다.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혜화의 그

표정에 다다르고, 그걸 공감할 수 있도록 달려왔다. 자신을 배신했다가 불쑥 나타난 남자친구

앞에서, 죽었다 생각했던 아기가 살아있다는 소식 앞에서, 그밖에 자잘한 삶의 장애물과 고난에

주춤거리며 멈춰섰던 혜화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 영화의 제목처럼 '혜화, 동(動)'하기 위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혜화의 저 착잡한 눈빛과 입술모양, 눈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그녀는 말했었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 유약하기만 한 남자 앞에서

이토록 당당했던 그녀라면 어쩌면 기어는 'D', 앞으로 움직였여야 했던 거 아닐까. 아니면

그녀는 또다시, 자신이 짊어질 짐의 크기를 하나 더 키운 걸까.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가며 달콤하고도 씁쓸하게 울리는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이 노래가 굉장히 양면적인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전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단 것, 그렇지만 그게

앵콜같은 반복이 아니라 리셋, 새로운 이야기라면 혹시 모르겠다는 것. 갸냘픈 희망고문.


그렇지만 이 영화에선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건 아닐까.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앵콜'이던

뭐던, 주문하고 요청하는 세상에 대한 노래로 읽을 수는 없을까. 그녀가 황량한 삶 속에도 버려진

강아지들을 계속 품어내듯, 누군가 타인의 (앵콜) 요청과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스스로의 노래를

스스로의 의지로 계속 부를 수 있도록. 그에게 돌아가서 손을 내밀 테지만 그건 더이상 '앵콜'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 잡아주고 나서 계속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제 다시 움직이는 그녀에 대한, 그녀의 삶에 대한 응원가인지도 모르겠다. 앵콜요청금지.



앵콜요청금지. (브로콜리 너마저)


안 되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만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지나갈 미련인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밤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밤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아무래도 네가 아님 안 되겠어

이런 말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안되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아요




#1.

누군가 문득 내게 이어폰을 뭐 끼고 다니냐고 물었다. 요새 줄창 귀를 틀어막고 다니는 모습을 보인 탓이리라.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뭔가 이런저런 브랜드를 운운하며 아는 척을 한다. 실은 나도 갱장한 음질을 과시하는

뱅앤올룹슨(BANG&OLUFSEN)의 이어폰을 때때로 끼곤 하는데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돌아와선 브랜드네임부터 확인하고 몇번씩 입안에서 굴려본다. 뱅앤올룹슨뱅앤올룹슨. 이 이어폰에는

가죽 케이스도 있다구.


#2.

누군가 얼마전 내게 추천해줄 만한 음악을 물었다. 아직 장기하를 모르길래 그의 노래, 특히 '아무것도 없잖어',

'별일없이 산다', '나를 받아주오'를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들'을 비롯한 앨범 전곡과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노래'와 '앵콜요청금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스끼다시내인생'은 가사가 너무

시니컬하니 조심하고..까지 줄줄줄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출퇴근할 때는 부러 클래식을 듣고 있다.

마음이 너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재즈를 요새 피하는 이유기도 하다.


#3.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어언 반년이 넘었다.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밥을 마다하고 연습실로 달려가는 내

뒷통수를 바라보며 나는 말한다. 참..애쓴다.(고작 그런 식으로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한다며

자기연민에 빠진 것은 아니다.) 금속이 번쩍대는 악기지만, 엄연히 목관악기에 속하는 색소폰. 입술의 미묘한

움직임과 모양에 따라, 그리고 숨의 결과 세기에 따라, 혀의 위치와 움직임과 강도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는 사실은

여전히 경이롭다. 이토록 민감한 악기라니. 그치만 '사람'이라 불리는 백인백색의 생명체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색소폰은 익숙해지는 중이라 (건방지게도) 말할 수 있어도, '사람'은 모르겠다.


#4.

저녁에 먹었던 갈비찜을 국물까지 싹 먹었으니, 짜게 먹었다. 영화를 보고는 타는 목을 부여잡고 냉큼 집으로

돌아와 맥주부터 한 캔했다. 그러고 나니 와인이 땡겨서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나니, 지금은 또 위스키를 한 잔.

어제 만난 친구한테는, 요새는 혼자 밤에 술 안 먹는다고, 주위에 그런 이야길 하면 알콜중독초기 아니냐 하더라고

말했었다. 아하하하. 뭐랄까...따사로운 게 아니라 뜨끈하고 찐득한 '봄볕'에 맞았더니, 뫼르소처럼 왠지 어디에다

총이라도 쏘고 싶은 느낌이다. 무언가 안에서부터 바짝바짝 말라붙어가고 있다.


#5.

머리를 짧게 깍은 게 저번주 일요일. 빈말이던 아니던, 몇번이나 고등학생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문제다,

라고 생각했다. 왜 티비에 나오는 결혼적령기쯤 도달한, 혹은 사회생활에 접어든 사람들은 전부 어른스러운 표정에

어른스러운 외모에 어른스러운 말투를 하지 않던가 말이다. 때로 외관상 '성숙'해보이는-정장을 입지 않은 모습을

상상키 힘들고, 유치하거나 허술한 모습 따위 잘도 숨겼을-남성과 여성에게 이질감이랄까 거리감을 느끼고, 또

그렇다고 대학생같은 스타일과 아마추어같은 분위기에도 딱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난 어쩌면 피터팬

신드롬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부분이 심각하게 지체되어 있는 것 같다. 알콜분해효소도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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