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전동성당. 벌건 벽돌 그림자가 늘어뜨려진 성당 앞 공터에 사람들이 비켜나가길 바라던 기대는 가당치도 않았다.

 

 

 촘촘하게 햇살을 체쳐내던 하얀 창문틀. 황사가 누르께하던 중부지방과는 달리 이른 봄볕을 선물처럼 받던 그곳.

 

 

 한옥마을의 어느 까페. 야트막한 담장과 소담한 울타리 너머로 골목들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다 조그마한 단층 까페의 폭신한 의자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봄볕 한 줌.

 

검푸른 바닷빛깔의 기와지붕이 넘실넘실, 하늘을 향해 검포도빛 치마 끄트머리를 쥐고 살포시 인사하는 것만 같다.

 

 

 시퍼런 기와물결 너머, 동해 바다 저멀리의 조그마한 섬처럼 아스라히 보이는 전동성당의 실루엣.

 

 

전주한옥마을에서 삼천동 막걸리골목까지 걷던 길, 지름길이라 지레 짐작한 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산길을 겨우 빠져나온 순간.

 

 

어렸을 적 백원, 이백원을 쥐고 달려갔던 곳은 으레 허름한 공터에 엉성한 천막으로 지어졌던 '덤블링장'.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쉼없이 튕겨올라오는 그 탄력 넘치는 그물망이 좋아서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온몸이 흠뻑 땀에 젖을 때까지 뛰었던 기억이 있다. 문득 너무 높게 뛰었다 싶을 때의 짜릿한 공포감 역시 생생하다.

 

 

예기치 않게도 주문진의 어느 골목 귀퉁이에서 만난 '덤블링장', 정식이름은 트램폴린이란 건 이제야 알았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덤블링을 하며 까르르 웃음을 사방에

 

흩뿌리는 중이었다. 연령대에 따른 1점프대, 2점프대로 구분이 된 건 나 어렸을 적에도 그랬던가. 기억이 안 난다.

 

자전거를 대충 주차해놓고 그물망 위에서 온몸에 힘을 주어 발을 튕기고 엉덩방아를 튕기며 쑥쑥 키가 크는 아이들.

 

허름한 천막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건지 어설프게 걸쳐진 지붕천 사이로 봄볕이 함께 튕겨들었다.

 

무시하다 다치면 주인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안전수칙판의 낡은 상태를 보니, 내 어렸을 적에도

 

저런 거 하나쯤은 옆에 세워져 있었겠구나 싶다. 그런데 다 좋지만 6번은 대체 뭐지. 음주후엔 올라가지 못한다는.

 

그리고 11번도 웃긴다. 크게 소리지르거나 심하게 장난치는 어린이는 퇴장도 감수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룰이라니.

 

 

 

 

그림자가 엿가락처럼 축추욱 늘어지는 시간대,.

인도의 벽돌들 틈새를 짙게 메워버린 그림자가 차오르더니 보도블록을 가로지르고,

슬몃 아스팔트 바닥으로 흘러들더니 졸졸, 길다란 막대기가 내어준 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살갗을 간질이는 봄햇살의 따스함과 보드라움이 사진에 담겼으면, 하고 찍었다.

봄날엔 그림자조차 보들보들 너그럽고 따뜻한 느낌이다.



@ 대림미술관 & 통의동 어느 까페.
목련이 허벅지게 피어올랐고, 벚꽃이니 매실꽃은 팝콘처럼 터져올랐다.

나른한 봄빛이 일렁이는 도심 속 조그마한 공원, 미디엄레어로 익힌 스테이크 정도의 온기가 담긴 벤치에 앉아

유약한 연두빛이 돋아나는 세상을 본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하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다. 간질거리는 봄볕과 꿈결같은 공기의 흔들림. 아무래도 좋아, 라는 식으로 사람을

멍하게 만들어버린다. 적당한 비음이 섞인 채, 여리여리해서 금새라도 끊길 듯 하다가는 훌쩍 높은 파도를

뛰어넘는다. 노래방이 보우하사 천편일률한 바이브레이션과 과잉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단연

튀고야 만다. 흔들림없이 길게 뽑아내어지는 목소리, 그렇지만 잔잔함 속에서 사람 맘속에 숨겨진 버튼 하나를

쿡 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과 호소력.


그녀의 이번 앨범 역시 말하자면, "참 뜬금없는 이야기들, 참 특이한 노래가사들이다." 대체 정신세계가 어디를

부유하고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그녀는 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느 때처럼 All songs written by 이상은,

Produced by 이상은이니, 앨범을 두고 그녀를 말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녀의 앨범, 그녀의 조각, 그녀의

별부스러기니까. 그녀의 가사는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저기를 봐 시간의 불꽃놀이 텅빈 저 미래는 무중력의 무한한 하늘..."(Stardust)
"지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있네...아, 반짝이는 파랑 플랑크톤 저 하늘의 별들과 이어져 빛나..."(섬)
"나는 왜 멈추어 있어야만 하나...플라즈마 구름 태양풍의 파도 그 흐름 속 나는 작은 입자 인디언핑크색 나노 텐트의 LA 실크로드 위 스카이 카들의 순례..."(Cosmic nomad)


그녀는 미국과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사는 아티스트답게 노마드의 감성을 늘 유지한다. 유랑하는 음유시인,

그녀는 삶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적나라하게 긍정하지도 않는다. 밝지도 않지만 어둡지도 않다. 춥지도 덥지도,

화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다. 어딘가의 야성적인 초원이나 차들빼곡한 주차장에 주차된 차 본넷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읊조릴법한 가사들. 시간의 비밀, 우주의 비밀, 세상의 비밀, 그리고 삶의 비밀에 대한 수많은

은유와 경구들이 등장하는 그녀의 노래는 뭔가 주문과도 같다. 혹은 기도문이랄지도 모르겠다.


'속삭임'이란, 상대에 대한 압박이나 강요없이,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다.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그녀의 이야기엔 늘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목소리와 음악 자체도, 그에 얹힌 가사말도. 어디론가

빨려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시공간 속에 그녀와 함께 누워있다가 오는 느낌. 음악이 어느순간 멈출 때마다

난 몽롱한 눈빛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잠시 망연해 해야 했다.


봄날과도 같은 앨범. 그녀의 14번째, 우리는 별부스럭지에서 생겨났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햇살에 반짝거리는 때는 바야흐로 3월말. 무슨 벌레의 딱딱하고 안전한 고치처럼 섬세하고

보드라운 꽃잎을 단단히 품었던 꽃망울이 쭉, 봄볕에 잡아째지기 직전이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단 말이 내 입안에서 뒹군지는 고작 몇 년, 이 녀석들은 수백수천년 전부터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인간들의 말따위와는 상관없이 때가 되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어쩌다 보니 수묵담채화처럼 나와버렸달까. 춘삼월 미친눈에도 봄볕 한줌이 그리운 게다.

여리여리한 봄볕에 온통 하얗게 타버린 풍경이지만 은근히 따스한 느낌을 찾아내고 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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