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무주구천동에 놀러가서 텐트치고 엄마아빠랑 '곰발바닥 닭발바닥~'하면서 놀았던 기억으로만 남았던 곳.

 

꽃구경을 하겠다며 나섰던 4월 마지막주의 무주 봄 풍경.

 

출발하기 위해 모였던 양재역 옆의 새순들. 새싹들이 새살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훌쩍 무주. 점심을 먹었던 식당 옆의 한적한 시골풍경 역시 연둣빛이다.

 

풍성하게 피어나다못해 보도블럭 아래로까지 흘러넘치던 잘디잘은 꽃송이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내려꽂힌 벼락처럼 우왁스럽고 거침없는 나뭇가지에 여린 이파리가 돋았다.

 

 

 

땅 위에 살포시 놓인 노란 물음표 하나.

 

 

봄철을 맞아 온몸에 영양제 주사를 맞고 있는 나무 한 그루. 피가 되고 살이 되길 바랄 뿐.

 

 

 

 

 

버들강아지도 아니고 뭔지는 몰라도, 오동통하게 살이 불은 솜털보숭이들.

 

 

언제든 그대로 조심스레 파내어 쓰시라며, 땅에 동그랗게 화관을 만들어둔 노랑꽃들.

 

 

 

 

무주구천동로, 두갈래 갈랫길이 쪼개지는 어간에 서서 연둣빛 행진을 사열하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바람조차 숨을 죽였는지 꽃눈이 그쳐버렸다.

 

그래서 슬쩍 자리를 이동하면 그 사이로 놀리듯 지나버리는 바람 한 줄기.

 

 

바야흐로 벚꽃잎을 우수수 밀어내며 연둣빛봄이 남도에 피어나는 중이다.

 

 

 

그나마 비로소 담아낸 한 컷. 벚꽃비가 나풀대며 '초속 5센티미터'로 날아가는 순간.

 

 

 

봄날의 새파란 하늘에다가 덥썩, 셀수없이 많은 수의 끈끈한 촉수를 내뻗었다.

땅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낑낑대고 기어오르며 더 높은 하늘에까지 팔을 뻗으려는 안간힘이

느껴졌달까. 아직 망울이 터치지도 못하고 그저 송글송글 맺힌채 징그럽도록 내걸고서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막판 꽃놀이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신사동 가로수길을 가득 채운 그 때.

탱탱한 긴장감을 꽃눈처럼 머금은 채 기다리고 있던 그 때.


가로등이 점점이 비춰주는 고수부지 아래 아스팔트 도로와 잔뜩 엉켜버린 노랑개나리 덤불.


금요일 밤, 술을 적당히 한잔하고 집에 가려는데 왠지 아쉬웠다. 택시타고 휙 가면 금방 갈 거리긴

하지만 술과 안주를 많이 먹은 듯 부담스런 속사정도 있었고, 약간 서늘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의

봄밤공기도 좋았고. 건대에서 걷기 시작해서 청담대교로, 한강 북단을 따라 걷기 시작해서 만난

첫풍경이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멍하니 손들고 있는 나무들에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 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단

가로등 기둥위에 둥글게 엉킨 채 봄바람에 흔들리던 주홍 불빛이 따뜻하면서도 왠지 서늘하다.

청담대교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한강 남쪽으로 건너갈 길을 찾지 못하고 영동대교로 가는 길.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불꺼진 구조대 건물에까지 뻗었다.

강바람이 제법 씽씽 불어서 몸을 옹송그리고 겉옷의 단추를 전부 잠궜다. 파닥파닥 나부끼던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따라 나뭇가지들이 춤을 췄고, 멀찍이 풍경들도 따라 흔들렸다.

영동대교에 가까워지는 길, 양쪽으로 어긋나는 화살표는 고집스레 서로의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고, 도로와 둔치를 가르는 안전바 역시 완강하게 짙은 그림자로 두 개의 공간을 갈랐다.


영동대교 북단 아래쪽에 이런 운동기구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새벽 세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누군가 후드를 걸치고 운동기구를 쓰며 운동중이어서 더 놀랬다. 왠지 저런 곳에서는 담배 뻑뻑

피우는 청소년들이 꼬맹이 하나 놓고 삥뜯기 알맞은 장소가 아니던가.

영동대교 위로 올라서는 길, 이 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건넌 사람은 여태 어디서 뭘하고

있었던 걸까.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차들만 레이싱하듯 굉음을 뿜는 공간에서 만난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 더 반가웠던 거 같다. 왠지, '오늘 고생했어요'라고 말건네고 싶은.

이리저리 휘영청 감아돌아가는 도로들이 사방으로 내달렸다. 금속 안전대의 싸늘하고 딱딱한

감촉이 전해져오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 유연하게 아스팔트 도로를 휘어 들어가는 모습 자체가

속도감을 느끼게 했다.

영동대교를 한참 건너던 중, 바람소리가 맹렬하게 나부꼈지만 그보다 더 강렬했던 건 거침없이

내달리며 바람과 부딪히고 바람을 끊어내던 카레이싱의 굉음. 그리고, 끝이 안보이던 길 하나.

높이높이 떠오른 풍선처럼 도무지 손뻗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보름달이 뿌연 불빛을 흘렸다.

반대쪽 한강 둔치에서 가로등 불빛이 떨궈진 곳마다 고운 연두빛과 하얀 꽃빛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듯, 가로등 불빛이 뿌려지면 봄이 오는 걸까.


올림픽대로로 올라탈지, 아님 서울 남쪽으로 섞여들지 갈라지는 분기점, 차들이 드리프트하듯

맹렬한 기세 그대로 갈래갈래 갈리는 와중에 조심스레 길을 건넜다.

그러고 나니 다시 눈에 보이는 차로변의 벚꽃나무들. 누가 그랬더라, 봄날의 꽃구경은 밤에

하는 게 진짜라고. 까뭇까뭇한 밤풍경 속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풍성한 꽃잎들이 이쁘기는

하다지만 하나 단서조항은 필요하겠다. 적정한 조명이 받춰줘야 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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