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비키니', 미모의 여자 외계인이 지구에 들어와 하룻밤새 원하는 정자를 얻어 임신을 해야 하는데,

막상 마주친 사람은 서른네살까지 연애 한번 못해본 혼전순결주의자에 숫총각인지라 그를 유혹하고 얼르고

고문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는 게 이 영화를 보기 전 마주했던 몇몇 시놉시스들의 대략적인 얼개.

시놉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고 신선하다 싶어 꼭 봐야겠다 싶던 영화였다.


굉장히 가볍고 발랄한 구성, 거침없는 표현과 상상력이 뭉게뭉게 피어나는데다가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보다 결정적인 세팅은, 말하자면 '발정난 여자'와 순결을 지킨다며

'거절하는 남자'라는 전복적인 상황 그자체였다. 외계인이니 뭐니 장식된 설정들을 떼어내고 보면 결국 당장

남자의 몸을 바라는 여자가 남자를 달래고 얼르고 유혹하고 만지고 물고 빨고 심지어 때리는 상황.


마사지와 카마수트라, 최음제와 밧줄까지 동원되는 그녀의 '정자를 얻기 위한' 몸부림은, 여러 가지 장면과

자연스레 연결됐다. 여자는 그저 일종의 '정액받이'나 살아있는 공기인형처럼 다뤄지며 남자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는 온갖 포르노들, 그리고 포르노만큼이나 말초적이고 일방향적인

성희롱, 성폭력들과 돼지발정제니 최음제니 온갖 도구들. 그렇게 여자를 대하고 돈주고 사면서도 동시에

순결 이데올로기와 정조 관념 따위를 주입하려 드는.


그런 남자들의 거침없는 판타지와 본능이라 당연시되는 욕망이 영화속에서 여자의 것으로 표출되며 남성이

대상화되는, 그런 낯설고 미묘한 상황이 재미있으면서도 불편하고, 또 오히려 더욱 적나라하기도 했던

거 같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저 멍청한 남자녀석 같으니, 라는 울림이 쉼없이 울렸단 것도 사실이지만.


음. 스토리로 뽑아낼 부분은 그 정도란 게 맞을 듯 하다. 그 앞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그러니까 남자의

과거사라거나 외계인과 그 사이의 섹스 이후에 지구에 벌어진 일들 따위-은 애초 그렇게 남녀의 스타일이

역전된 상황에 덧씌워진 액자틀과도 비슷한 거 아닐까 싶어서다. 액자 속 그림과 액자틀 자체의 디자인이

잘 어울릴 수도, 혹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고 섞이지 못한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건 부수적인 이야기일 듯.

아니, 부수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딱히 스토리라인에 편입되지 않는 이미지나 뚝뚝 끊어진 단상같은

거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만들고 싶진 않아서 그닥 별 의욕없이 만들어낸 기승전결의

허울을 위한 이야기랄까, 이야기가 딱히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하나의 반짝거리는

메타포-남녀의 성에 대한 관념과 행태가 뒤바뀐-를 공들여 세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다. 지구가 멸망해버리는 그 시니컬하고 터무니없는 새드 엔딩은 그래서 굉장히 맘에 들었다.



* 그런데 왜 이리 이 영화를 개봉하는 영화관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며, 막상 찾아서 들어가보면

이렇게 사람들이 적은 거냔 말이다. 아쉽고 아쉬웠던.




왓포에서였던가, 금발 꼬맹이 하나가 잔뜩 늘어진 고양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무진 애를 쓰는 중이었다.

고양이한테 소리도 질러보고, 슬쩍 꼬리나 귀를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철저히 몸뚱이를

내팽개친 채 끄떡없이 눈을 감고 있던 이 녀석. 야윈 목덜미를 감싼 색색의 목걸이가 눈에 닿았다.

방콕 가이드북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짜오프라야강 서안, 운하가 촘촘한 그 어디메를

헤매이다 발견한 늠름한 개자식. 더럽고 위험해보이는 이곳에도 피터팬과 푸우는 살풋

이불보처럼 내려앉아서 개자식의 위용에 커튼을 더했다.

실은 이 녀석의 밥을 훔쳐먹는 두 마리 까마귀를 담고 싶었는데, 영악한 녀석들은 카메라

렌즈 움직이는 소리에 멀찍이 도망가고 객쩍은 참새만 남아서 부리질 중이었다. 그나마도

찰칵, 소리에 눈을 뜬 개자식은 더운 나라의 개답잖게 미친 듯이 짖어대며 밥값을 했다.

빡크롱 꽃시장에서, 핏줄이 섞인 듯한 이 두 녀석이 늘어지게 자는 걸 보고 접근했더니 두 녀석

모두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앨런포의 '검은 고양이'를 떠올릴 만큼 악마처럼 새까맣던

녀석들의 잠을 방해했단 사실이 따끔따끔해지도록, 그렇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던 녀석들.

이렇게 서글서글한 눈빛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꽃시장의 아지매들, 아저씨들이 슬쩍

쌀국수 그릇을 걸친 채 한끼를 해결하던 식탁 대용 테이블에 퍼진 채 남국의 고양이다움이란

이런 것임을 늘어지게 과시하던 녀석.

오늘은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던 날. 차도와 인도가 슬몃 섞여들어가던 어느 길 위에서 지하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을 발견했다. 절실한 손과 발 모양으로 그곳을 갈구하던 도마뱀 한 마리, 도망갈까

싶어 조심조심 사진을 찍고 나서 한숨돌리며 슬쩍 발로 밀었더니 슬슬 밀린다. 고인의 명복을.

아침에 먹던 쌀국수와 캔맥주를 제하면 사실 남국의 과일로 배를 채우다시피하던 낮의 시간,

그에 더해 맥주와 재즈 공연 따위로 버무려진 저녁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배가 꾸륵꾸륵꾸르륵.

어딘가 있을 무료 화장실을 찾아 애타게 방황하던 타이밍에도 고양이는 놓칠 수 없었다.

날 그렇게 심문하는 눈초리로 노려보지 말기를. 나 역시도, 너 역시도 왜 사는지는 모르잖아.

우린 이제 요절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 한 시간에 이백바트짜리 타이 마사지로 몸을 풀기에는

배배 꼬인 구석들이 워낙 많더란 말이다. 근데, 심문을 하려는 거냐 아님 측은해하려는 거냐.

싸판풋 야시장, 라마1세 동상이 서 있는 앞에서 불경하게도 두어 시간 누운 채 노래를 듣고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었다. 따끈하게 달아오른 대리석 화단조각에서 내 게으른 등짝을

떨어뜨렸던 건, 어디선가 웽웽거리며 나타난 R/C 카, 그리고 그 자동차를 따라 짧은 발을 재게

놀리며 눈을 뗄 줄 모르고 내달리던 강아지 한 마리.

방콕의 물가는 많이 올랐다. 타이 마사지는 삼십분에 백바트, 한시간에 이백바트. 이건 그나마

배낭여행객의 천국, 게으름뱅이들의 천국 카오산의 시세고, 이런 이쁜 고양이가 지키는 다른

동네에선 한시간에 이백육십여바트. 고양이값이라기엔, 저녀석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다는.

카오산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던 날이었다. 예기치 않게 마주친 골든 마운틴, 푸 카오 텅의

황금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슬쩍 풍경과 섞여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울룩불룩한

탑의 무늬에 스며든 채 달게 자던 녀석이 부러워 굳이 탑모서리를 밟고 다가가선 카메라를

들이밀었더니, 심술궂은 눈을 번쩍 뜨고 만 녀석의 심통스러움이라니.

남쪽으로 걷던 날이었다. 팟퐁을 지나 쑤언 룸 나이트 바자를 가는 길은 무슨 공원을 하나

끼고 있었더랬다. 공원을 따라 걷는 길에, 불쑥 난 경련하듯 몸을 떨며 잠시 멈춰선 채 저

미지의 생물체가 뭔지 곰곰이 뜯어봐야 했다. 이 거대한 도시 한 가운데 수로를 유유히

헤엄치던 저 녀석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 룸피니 공원. 이리저리 물길을 품고 있는 그 공원의 울타리 저쪽으로, 더러는 버스 정류장

뒷편의 깨어진 콘크리트와 벽돌 자재들 사이로 일미터는 쉽게 넘을 거대 도마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둘기가 심상히 도마뱀의 상륙을 바라보듯, 정류장의 태국인들은 심상히 도마뱀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던 거다. 거대 도마뱀을 품고 있는 도시, 방콕.

미국식으로라면, Cock-a-doodle-do!의 순간이랄까. 카오산 로드 앞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에 들어맞을 그 사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오만한 수탉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목을 뽑아쥐고

꼬꼬댁을 외치던 타이밍이었다.

남국의 개들은 남국의 고양이들만큼이나 축축 늘어진 채 순한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 앞을 장군처럼 꼿꼿한 걸음걸이로 비장한 히프를 내민 채 사열하는 수탉들의 위엄이라니.

태국에서, 태국의 방콕에서 만났던 개와 고양이와 닭, 그리고 더러는 도마뱀들에 얽힌 이야기들.





상하이의 짝퉁시장 근처에는 한글 간판이 굉장히 많았다. 짭냄새 풀풀 나는 카피 상품에 대한 한국인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았고, 한국인이 그 제조 공정에 그만큼 깊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건지도 모른다.

'최고의 서비스', 는 알겠는데 '일반소비자가격'은 뭘까. 어쩌라구.

신기한 메뉴 투성이다. 두부김치냄비는 그렇다 쳐도, '미소코디레코딩'은 대체 뭘까. 레코드판을 먹어야 할 기세.

이건 더 대박, '뼈없는 쇠고기 돼지갈비'. 응...응?? 쇠고기랑 돼지갈비가 같이 나온단 건가, 아님 소를 먹인

돼지 고기를 준다거나 돼지를 먹인 소고기를 준단 건가. 

이어지는 단어들, 소고기 어깨고기, 소의 갈비뼈, 혀..최소한 부위들이 제시되는 것들이니 뭔지 상상이라도

해보겠지만, 대체 '유명 쇠고기'는 뭘까.

혹시 직접 가보고 싶은 분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여기는 남북으로 jinhui로가 달리고 동서로는 xianfeng로가

가로지르는 지점쯤이다. 역시 지금의 상해는 상당부분 계획된 도시로 설계되어 그런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금보나 보건안마클럽'을 찾으세요.

가게 이름이 '오토종닭'이다. 뭘까. 오~ 토종닭? 오토(auto) 종닭? 황당무계한 간판.

자랑스런 한국의 미용산업의 명성은 진즉부터 알아모시고 있던 게다. 무려 '한국전문가 직접관리'. 신뢰100%!?

불법복제 디비디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는 섭섭치 않을만큼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본 영화가 세상엔

넘 많다. 고작 저 판때기 하나 위에 깔린 영화 중에도 안 본게 잔뜩이다.

나름의 운치를 과시하는 어느 가게의 간판. 중간에 오타나 요상한 표현이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불을 켜보려다가

말았다. 저 간판 위의 세상은, 말하자면 '시적허용'의 세계인 거다.

이 간판도 그런 세상인 걸까. 숱불구이. 하긴 이런 식의 오타나 실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한국어들조차 그다지 정확하진 않다. 표준어법을 알면서 피해가는 재치있게 비틀린 표현들 말고, 정말 몰라서

자꾸 틀리는 표현들. 그건 좀 거슬린다. 나는 않 틀린다.ㅋㅋㅋ

짭퉁들의 본거지라는 민차오패션마켓. 꽤나 큰 건물을 온통 차지한 마켓 정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

한국복식 매력 연출, 아무래도 여기에서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감수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인 거 같다. 남측보다

북측의 어휘나 분위기에 훨씬 어울리는 단어 선정이다.

수출정품관? 엄선된 상품들이란 의미의 정품(精品)인 건 알겠지만 역시 눈에 선 표현이다. 게다가 옆에 자석은

왜 갖다가 그려놓은 거지. 뭘 끌어당기고 싶은 거냐 네놈들은.

아이의 하얀 박꽃같은 엉덩이가 완전 흐뭇한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겸둥이~ 꺄아~~*

출장마사지 서비스도 있읍니다. 저 '읍'자가 아무래도 어색하게 손봐진 걸로 봐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틀리게 고쳐쓴 거 같다. 딱 억지개그치는 느낌이 가득한 게 전혀 '레알'스럽지 않은 거다.


혹시 야밤을 틈타 저기 슬쩍 다녀가신 거 아냐? 떡검들이랑 G랑 어깨걸고 '못생긴 마사지사' 찾아서?

상해에서 이번에 먹었던 음식중 가장 독특했던 건, 중국식으로 매콤한 '개구리 요리'. 우리식대로 매운 거는

뭔가 땀이 뻘뻘 나고 혀끝에서 불이 나는 건데, 여기의 매운 맛은 혀와 입안을 온통 얼얼하게 마비시킨다.

치과에서 마취제를 입안에 맞고 있는 듯한 느낌, 식용 개구리의 뒷다리는 정말이지 왠만한 치킨가게에서 파는

닭날개랑 비슷한 사이즈를 과시했다. 12足쯤 먹었으니...6마리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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