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리슐리외관

이 영악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그렇지만 뭐든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그야말로 사랑의 신이 가져야 할 법한 눈빛이다. 날개달린 어린 아이로 표현되어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근방을 맴도는 사랑의 신, 큐피트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에서 묘사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내 맘이 쏙 드는 표정이다. 아이처럼 여리고 부드럽고, 순수한 몸이지만 그 눈빛과 입가의 웃음은 왠지 조금 악마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조용히 하라며 오른손가락을 입술에 대곤, 왼손으로 슬몃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드는 순간. 큐피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눈빛으로, 혹은 뭔가 재미있는 일을 잔뜩 기대하는 장난꾸러기의 표정으로 '사냥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신화의 어느 대목인 걸까. 뭐...뒷켠에서는 옷을 벗고 있는, 혹은 입고 있는 여성의 조각상도 보이고, 이 남성을 보면 '크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온통 세계 최고, 최대를 지향하고 선전하기에 바쁜 못난 사람들도 좀 맘의 안식을 찾으려나.

2층 리슐리외관

리슐리외관 2층에는 나폴레옹 3세의 살롱과 회랑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나폴레옹 3세가 궁전으로 썼던 리슐리외관을 1993년에 미술관으로 바꾸면서 옛모습 그대로 남겨놓은 공간인 듯 싶다. 이런 화려한 '프랑스식' 궁전은 이미 터키에서, 또 태국에서도 봤던 거지만, 그 오리지널 버전인 거다.

샹들리에에서 노랗게 빛나는 불빛, 그 아래 반사광을 번뜩이며 가지런히 정렬된 소품들과 의자들. 원래는 이렇게 거무죽죽하게 죽은 색감이 아니었는데 아쉽다.

신기하게 생긴 의자. 세명이서 서로 뒷사람 등을 슬쩍 바라보며 앉아있을 수 있는 소용돌이식 의자라니, 서로 대화하기는 쉽지 않겠다. 셋다 목을 오른쪽으로 살짝씩 틀면 어쩜 셋이 마주보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려나. 실제 앉아보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이녀석과 나 사이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바가 설치되어 있어서 포기.

이런 색감인 거다. 화려하게 발색한 자줏빛 벨벳에, 황금빛이 은은하게 머금어져 있는 밝고도 따뜻한, 사치스럽지만 우아한 분위기.

비록 샹들리에에 꼽힌 초들이 전구꼽힌 짝퉁이라 해도, 그래서 바람에 펄럭이며 살아있는 듯 너울지는 불빛과 그림자의 신비로움을 머금고 있지는 못하다 해도, 온통 돋을새김된 조각들과 무늬들은 그 빛을 당당하게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있는 촛불과 달리 이렇게 멈춰지고 굳어져 버린 느낌의 전기불빛이 비춰진다는 건, 생활의 영역에서 떨어져나와 유리관 안에서 '보존'되는 박물관에 딱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림과 조각으로 디테일한 공간마저 가득 채운 궁전.

2층의 리슐리외관이 끝나갈 무렵, 어느 방에 내려뜨려져 있던 본격 전기불빛 샹들리에. 만월들이 둥실둥실 떠있는 느낌.

2층 리슐리외관에 있던 자그마한 카페. 유리 피라밋 너머 드농관이 보인다. 애초 1980년대에 유리 피라밋의 건설을 둘러싸고 격렬한 찬반토론을 불러일으켰다지만, 결국 루브르 궁전과 유리 피라밋의 안 어울릴 것 같던 조합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여기서 눈여겨야 할 것은 '결국' 끝이 좋지 않냐..라는 게 아니라, 그 건설을 둘러싸고 진행될 수 있었던 질긴 찬반토론, 혹자는 그 소란스러움과 유난스러움이 싫다고 할 지 몰라도.

작동을 멈춘 분수대 옆에서 서로 기댄 한 커플도 키스 상태로 멈춰 있었다. 오랫동안.

2층 쉴리관

대체 이집트인들은 얼마나 많은 유물을 남기고 있는 걸까. 이 곳의 있는 이집트 유물들도 카이로 박물관 못지 않게 많다. 물론 박물관 내에다가 디스플레이 따위 상관없이 빼곡히 좌판처럼 바닥에 벌려놓은 거기만 하겠냐만, 보면서 놀라게 된다.

관 안에 모셔진 망자가 여전히 밖의 세상을 지켜볼 수 있도록, 자신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도록 관 외부에 그려진 두 개의 눈동자. 이집트에 가서 만들어온 반지에 있는 '호루스의 눈', 바로 그거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아로새겨진 '절대반지'.)

아네모피스 4세, 아케나톤의 거대했을 인물상이 일부만 남았다. 다소 그로테스크하게도, 뒷머리 부분이 예리하게 떨어져나갔다. 표정이며 풍채가 뭔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한웅큼 안겨 주지만, 뱀처럼 길게 찢어진 눈에 뾰족함이 강조된 턱이 그다지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다.

이집트 미술이 전시된 공간을 허위허위, 그렇지만 쉼없이 내딛다가 여기서 비로소 한번 멈췄던 듯 하다. 저런 색감의 조각은 이집트에서도 못 봤었다. 무지 현대적이란 느낌을 주는 색감이면서 눈에 탁 띌만큼 청량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온통 칙칙하고 퇴락한 색만 드문드문 발려있던 유물들 사이에서 반짝반짝거리고 있었다.

2층 드농관

2층 드농관에서는 이탈리아, 에스파냐, 영국의 회화 및 19세기 프랑스 회화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워낙 유명한 대작들이 많아 루브르에서 가장 혼잡하다고 이야기되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 곳에서 문득 내 눈에 들어왔던 회화가 한 점 있었다. 투구를 차려입은 신에게 알몸으로 달려가 뭔가를 호소하는 듯 간절한 여인. 그리고 그 뒤에 백발성성한 노인은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잘 새겨진 몸뚱이를 갈색 날개에 온전히 의지하고 있다.

이건...무슨 제스쳐지...? 님좀짱인듯? 니가 짱 먹어라? 이 무렵의 그림은 문자나 텍스트, 혹은 이야기를 직접 그림 속에 풀어넣었다고는 하지만, 저 번쩍 치켜든 엄지손가락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앞쪽에서 갑자기 출현한 일군의 관광객들이 무시무시하게도 거침없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별로 반갑지도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척 하고 싶지도 않아서 잠시 조용히 창밖의 프랑스 정원을 내다보며 앉아 쉬었다. 중간중간 앉아서 쉴 만한 곳들을 많이도 만들어놨다. 6시간쯤 넘게 계속해서 걷고 있던 상황이어서, 한번 앉으니 발가락들이 아우성친다.

저녁도 먹어야 할 텐데, 일단 2층까지 다 돌고 내려가서 카루젤 개선문 옆의 PAUL에서 빵이랑 에스프레소로 때우기로 했다. 따져보니 대략 예정대로 잘 오고 있다. 딱히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봤다는 느낌도 없고, 인상적이었던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빙빙 돌며 구경도 하고, 잠시 앉아서 바라보기도 했다. 물론 10분 이상 앉아서 쉰 적은 없으니 발이 완전히 욱신거리며 어딘가 물집이 잡혔노라고 항변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만족스럽다.

그리고 일어났더니, 발이 약간 질질 끌리는 느낌이긴 하다..

기다란 회랑, 그리고 천장과 벽면을 모두 모자이크하듯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회화들과 그림들 간의 구획을 지어주듯 구불구불거리며 온통 휘감고 있는 황금빛 장식들. 한 6시간쯤 계속해서 보다보니 이제 살짝 무감각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뭐 멋진 건 멋진 거다.

루이 15세가 대관식 때 썼던 왕관이라고 한다. 물론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굵직굵직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루비 같은 호사스런 보석들로 충분히 반짝거리기는 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뭘까 생각해 보니 그런 거다. 왕관만 덩그마니 있으니 좀 부족해 보이는 거다. 그 화려한 복식과 다른 장신구들, 왕홀 같은 것들이 함께 하지 않아서야 역시 좀 볼품이 떨어진다.





어렸을 적 빼놓지 않고 티비에 달라붙을 듯 봤던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그리고 포르토스가 나오는

만화영화가 뒤마의 '삼총사'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다. 촌뜨기 달타냥이 왠지 밍숭하게 생긴 강아지로 출현했던

'동물의 세계' 버전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아직 젖내나는 어린아이의 '인간' 버전이 있었다. 아라미스는

복슬대는 털이 고혹적이던 긴 속눈썹의 푸들, 그리고 긴 금발머리의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미남캐릭터로 나왔고,

아토스는 술잘 먹고 큰소리만 질러대는 마초같은 캐릭이었던 거 같다. 포르토스는 수염을 멋지게 다듬은 신사같은

이미지였던 거 같지만, 하도 어렸을 적이라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 만화는 내게 일종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기기도 했었다. 주인공은 오로지 하나, 달타냥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어린 내게, 달타냥보다 외모나 칼쓰는 솜씨에서나 우위에 서는 인물이 세명씩이나 균형감을 맞춰

'삼총사'로 등장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거 같다. 왠지 달타냥보다 다른 인물에게 무게가 실린다

싶으면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달타냥한테 괜히 미안해하기도 하고 그랬던 거 같다.

되게 유치했던 거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식의 캐릭터에 대한 충성심이란 건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저 '무한도전'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로 '1박2일'이나 '패밀리가떴다' 같은 후발프로에 대한

경계심을 품는다거나, 어느 순간 '패밀리가떴다'를 보며 웃고 있는 나를 의식하며 '무한도전'의 여섯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거나, 별반 어렸을 적과 달라진 게 없는 정신상태랄까.


어쨌거나...개와 인간, 두가지 버전의 '달타냥과 삼총사'(기어이 만화영화 제목을 내마음대로 지어부르고 있다) 

만화의 공통적인 적은 바로 리슐리외, 루이 13세 치하의 당대 프랑스를 주름잡는 재상이었다. 개로 표현할라치면

턱밑에 주름이 꼬깃꼬깃하고 눈가는 음흉한 게 다크서클이 근육으로 안착해 버린 불독..이었던가, 그리고 사람으로

치자면 속에 구렁이를 댓마리쯤 숨기고 있는 모사꾼이자 음모가로 나왔던 거 같다.


그렇지만 리슐리외는 사실 훌륭한 재상이었다. 귀족들간의 권력 암투로 혼란해진 프랑스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여 절대주의의 기반을 닦은 유능한 정치가였다는 게 역사가들의 중평인 게다. 다시 한번, 캐릭터에 대한

충성도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이다. 새롭게 알게 된 리슐리외가 좋은가, 그저 어려서부터 주인공으로 친숙했던

달타냥과 삼총사가 좋은가.

주인공을 누구로 한 이야기를 듣는지, 그리고 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지..라는 문제는 이래서 중요하다.
서설이 길었다. 그가 살던 저택, 그가 죽고 나서는 왕가에 기증되어 유소년기의 루이 14세가 머물던 곳에 갔다.

이름도 팔레 루아얄, Palais Royal이라곤 하지만 그다지 궁전의 기품이나 긍지높은 고고함은 엿보기 힘들었다.

이미 그 앞마당은 수백여개에 이를 것 같은 얼룩무늬 원기둥으로 점령당해 있었는데, 아마 공공장소에 설치된

현대 설치미술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깡충대기에는 스스로 너무

수줍음이 많아져버린 어른들은 그 위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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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듯 했다. 무작정 앞마당을 따라 걷다보니 또 이상한 분수가 나온다. 어디서 본 거 같다

싶더니 라데팡스 가는 길에 마주쳤던 '스댕 재질'의 설치미술작품과 비슷하지 싶다. 셀카에 지친 내가 반사물을

이용한 사진은 어떨까 잠시 장난치고 있을 때 눈여겨 보았던 그 볼록거울같은 은색 구.

그걸 몇개 이어붙이니 저런 분수대가 되는구나 싶었다. 라데팡스의 그것처럼, 역시 파란 하늘과 쿠키색 건물과

카메라를 들이댄 내 모습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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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서 살짝 놀랐다. 어렸을 적 우리가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랑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문득 생각난 김에 네이버에 물었더니 프랑스의 나라꽃이 백합인지, 흰붓꽃(아이리스)인지 명확치

않은 것 같지만..어쨌든 그렇담 이 아이들이 저 하얀 기둥에 등돌리고 웅얼대던 프랑스어는 '백합꽃이 피었습니다'

라거나 '아이리스가 피었습니다'라는 의미였던 걸까.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 회전목마를 좋아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리스가 피었습니다'를 하며 노는 아이들.

보기에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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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정원은 이곳 역시 잘 가꾸어져 있어서, 가로수 두 줄로 이루어진 산책길은 선명한 아치를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구김없고 때묻지 않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여전히 맴돌고 있어서 그런지 군기 잘 잡힌 신병처럼 각잡혀서

서있는 나무들을 너그러이 보아넘길 만큼 마음이 후해진 이후, ㅁ자의 건물로 감싸진 마당이 그 자체로 포근하고

넉넉한 휴식공간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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