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981년 1월생이다. 소위 말하듯 '생일이 빠른' 셈이다.


사실 "생일이 빠르다"라는 표현은 좀 적절하지는 않다고 늘 생각했다.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일찍 갔어, 라거나

생일이 빨라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한살 적어, 라는 표현은 뭔가 전달하려는 의미와 액면그대로의 표현이 딱

들어맞지 않는 두개의 톱니바퀴가 어기적거리는듯한 느낌을 남기곤 했다.


1월, 내지 2월, 혹은 약간의 편법을 동원한 3월생까지는 그보다 한해 전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별일 없는 한 같은 학번으로 대학까지 쭉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생일이 늦지만

학교를 일찍 가게 된 거라고 말하거나, 생일이 늦어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한살 적어, 라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사실 이거나 저거나 두 가지 표현 모두 이해할 수 있고 의미가 통하기엔 별 문제없는 말들이지만

말이다. 일년 중 생일이 빨라서, 그니까 앞쪽에 있는 1, 2, 3월달에 있어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다른

학교 동기들보다 생일이 늦지만 학교를 같이 들어가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적지 않게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런 '생일빠른' 자들은 자기 맘내키는 대로, 상황에 따라 나이를 둘 중

하나로 내세워서 얄밉다는 거다. 81년 1월에 태어난 나 같은 경우엔,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보이고

싶을 때는 80년생과 다름없음을 주장했고, 반면 나이가 어리고 따라서 조금 철딱서니없는 행동을 해도

된다고 강변하고 싶을 때엔 엄연히 81년생이라고 바득바득 우겨대서 주위의 지탄을 받아왔다.


그리고 2009년이 왔다.


나와 함께 87년에 국민학교를 들어가고, 93년에 중학교를 들어가고, 96년에 고등학교를 들어가 별탈없이

1999년에 대학교를 들어간 친구들은 서른이 되었다. 서른. 대학교 다니면서 광석이형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왠지 처량하고, 그야말로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허무감이 가득할 거 같은 나이라고 막연히는

생각했지만, 실제로 나와 함께 술먹고 뒹굴고 망나니짓하던 친구들이 서른살이 될 줄은 몰랐다.

어렸을 적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가졌던 환상, 그니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뭔가 어른스러워진다거나,

뭔가 세상의 비밀을 깨우친다거나, 뭔가 그럴듯한 걸 얻게 될 거라는 환상 따위 접은 지 오래인 스물여덟,

스물아홉살을 지나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난 스물아홉이라고, 엄연히 81년생인 나는 스물아홉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2008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까지 반말하고 막말하던 친구들한테 갑작스레 '형님', '누님' 칭호를 깍듯이 붙이고 있다.

장난삼은 일이지만, 올해 친구들이 서른살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두 개의

나이 중 하나는 빼도박도 못하고 서른이라는 사실은 때로 적잖은 울림이 된다.


올해는 새해맞이 (작심삼일용)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겨울방학을 맞아 살짝 들뜨고 설레어있던 학생으로

맞이했던 새해와, 별다른 일정상의 변동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직장인으로

맞이하는 새해는 느낌이 달랐다. 그렇기도 했고, 돌이켜보건대 딱히 난 새해맞이 목표를 진지하게 세웠던

적이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서른살이 반쯤은 되어서인지 기억력이...ㅡㅡㆀ


나이먹는 데에 두려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나이란 시간이 지난다고 거저 먹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스물아홉과 서른, 나이를 발음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이분의 일로 줄어버린 대신

그 압박감은 두배쯤 늘어난 것 같다. 왠지 그간 애써 외면하고 모른척하며 미뤄왔던, 스무살부터 스물

아홉살까지의 철을 올 한해동안 밀린 숙제하듯 한꺼번에 들어야 할 거 같은 느낌이랄까.


그치만 역시 아직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 걸려있는 존재니까, 다른 친구들이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빼도박도 못하는 '어른', 혹은 '아저씨/아줌마(?)'가 되어 가고 있지만 난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일년 정도...그들이 어떻게 서른살을 꽉 살아가는지를 보면서 준비할 시간을 번 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서른 즈음의 나이다.

사실 나는 기억이 차곡차곡 쟁여지고, 그러한 기억들이 계속해서 누적되면서 '나'를 이루는 걸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가끔은 손실되기도 하고, 적당한 모습으로 재구성되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내가 문득 의식을

감지한 유년의 어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 살면서 쌓아온 느낌, 경험, 그런 것들이 무한히 축적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내가 가진 기억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기억들이 '나' 자신을 구성하는 거라면,

그렇게 쌓여가는 경험치를 통해서 조금씩 맘에 드는 모습으로 다듬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쉽지도

않겠지만 '발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놈들을 끌어안고 나아가면 성숙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아니다. 사람이란 게, 한없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 끝없이 무언가를 쟁여넣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보관할 수 있는 지퍼달린 크린백이 아니었다. 우연찮게 소거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재구성되는 기억의 소실만이

아니라, 어느 시점...문득 본격적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억들, 자신의 살점들,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던 이미지들, 관념들, 기억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던 경험들, 아니면 관계들..조금씩

밀려나고 후퇴하고 있다고 설핏 느끼고 있던 오래된 살점들이 먼지가 되고 어느 순간 콸콸 소리를 내며 내 몸을

투과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흘러가고 기억이 더해지고, 더이상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전의

것들을, 지금의 내게서 멀어져버린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상실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기억들과 새로운 관계들, 그리고 새로운 감정들이 다시 채워진다. 예전에 알고 있던

나와는 약간 다른 모습, 그리고 약간 다른 체취를 가지고, 자신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들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제 된 건가. 나비가 허물을 벗듯 몸에 안맞고 시간에 지체되었던 기왕의 자신을 변화시켰으니

된건가.



아니. 문제는, 이제 알아버렸단 거다. 사람은 (적어도 나는) 버린단 행위에 절대 익숙치가 않고 버려야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껍데기와 사고들, 나 자신을 구성하던 온갖 층위의 관계와 기억들은 마치

초딩 때의 일기장처럼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단 사실이 깨어져 나갔다. 게다가, 그

당혹스러운 '상실의 의무'에 더하여, 처음 몸을 찢고 기억이 버려질 때 생긴 상처는 아물때쯤 해서 다시금

몇번이고 다시 파열되고 마는 마법같은 행사가 된다는 거다. 이제 평생 계속해서 리싸이클링될 '나'란 존재의

쓰레기 배출구가 되어..일정량 이상의 시간이 모이고 그사이 침잠해버린 이전의 나 자신을 버리고 감정과 관계를

버리고, 더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상실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목까지 음식을 채워넣은 듯한 불편함 속에서 생각한다.

허무하다. 대체 난 뭐란 말이냐. 비록 지금 이런저런 것들로 '나'를 감지하고, 내살점이라 느끼고, 이게 나다..라고

느끼고 있지만. 어느 순간 고름처럼 시간이 고이고, 시간과 더불어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씻겨나가고 있음을 불쑥

의식하게 된다. 페이지가 정해져 있는 일기장은 연필로 써야 한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내고 지우개똥이

수북해지면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사실 볼펜 따위도 주어지지 않았다.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와

죽을 때까지 쥐고 싶은 마음으로 영원한 것, 기댐직한 것을 찾지만, 고작해야 눌러 쓴 연필의 자국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기내 방송에서 문득 '노르웨이의 숲'정도를 듣게 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뿐이다.



산다는 게 상실해가는 거란 사실을 몰랐었던 것, 상실이란 게 존재의 의미..소위 '레종 데트르'라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일 준비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대략 스물에서 서른, 광석이형같으면 서른셋, 기억이 꽉 차오르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점이 지난후 그 안쓰러운 감각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는 것. 새롭게 대체되는

자신의 기억, 자신의 살점,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미리 그 상실을 예견한 채 압도당해 버리는 것. 그게 시간을

중간에 끊어버리고 자신의 소모를 막아버리곤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의 원천인 거 같다. 견딜 수 없어져

버린 게다. 비어져 가고, 잊혀져 간다는 그 느낌을.



사실 그러한 상실감을 껴안고 살아가려면 세가지 정도, 선택지가 있다. 무언가 영원한 존재를 찾아 몸을 의탁하고

정신을 맡기는 것. 신이 되었건 구도가 되었건..인간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영원성이라는 개념을 빌려오는

것. 아니면 상실감에 익숙해지고 그러려니...무뎌져 버리는 것. 원래 그런 거야, 시간이 약인거야..라는 말이 바로

그런 거다. 살아남기위한 전략으로서의 상실. 상실의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그런거.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피칠갑을 한 영혼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거다. 아프고, 절그럭거리고, 공허하고, 옆구리

어귀에서 콸콸대며 무언가 쏟아져나가버리는 느낌을 선연히 간직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막되먹은

깡다구로 살아보는 거다. 적어도...잎새 하나 띄운 물잔 건넬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게다. 내가 잊었어도

날 기억시켜 줄 친구는 있을 게다. 날 나이게 하는 것들..조금은 더 지탱시켜 줄 안정감과 안온함으로 위로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일상적인 상실이 주는 피폐함과 무의미함을 이길 수야 없을지언정.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데야..

그랬던 거 같다. '재미없다'는 말을 연발하는 친구녀석이나..뭔가 지쳐 보이는 사람들, 힘들고 우울하고 불안정해

보이는..나 역시. 의식했건 못했건, 환상이나 동화처럼 느껴지는 어릴 적과는 달라진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해

버린 거 같다. 한번 변하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다. 돌이킬 수 없는.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어제 산 김광석 인생이야기 씨디.

사실 광석이형 노래는 전부 엠피쓰리로만 있었어서 그가 라이브 공연서 청중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던 이야기는

여즉 못 들어봤댔다.


그는..환갑 때 번개불에 맞은 듯한 느낌으로 사랑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고, 로망스의 'ㄹ'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마흔 살에는 몸에 체인좀 감고 할리데이비슨을 사서,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여행이란 거

...살아가는 거랑 똑같다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볼만한 나이에도, 버스칸에 앉아 문득 들리는 노래소리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그리곤

다시 부른 노래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고 했다-노래 녹음을 하면서도 문득 목이 메여와 결국 술을

마신 채 녹음을 진행하기도 하고. 청중에게 말을 건넬 때, 그는 호흡의 묘미를 알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의 적절한 크기를 가진 쉼표, 감정의 교통을 위한 강약 중강약의 밀고 당김.

그래서 그의 ㄹ은 더더욱 로맨틱했다.


라이브 공연 실황을 담은,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계추를 스스로 멈춰버리기 고작

반년 전쯤의 그의 음성..그는 환갑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살짝 지친듯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광석이형이 자꾸 말을 걸어와서..4시에야 씨디피

배터리가 나가고 그제야 잠들수 있었다. 끼적대며 낙서도 하고, 일기도 쓰고..


김광석...광석이형. 그가 왜 죽었는지,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었던 밤이었다.

난 이해한 듯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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